부제 : 벌받는 여자 8
미주는 서울 인근 위성도시에 있는 서민형 빌라에 월세방을 구해 살고 있다. 원래 충남 보령에서 나고자란 미주는 대학은 인근 지방의 대학을 다녔고, 이후 성우를 해보고 싶다며 서울로 올라와 살게된것인데 그때부터 마련한 거처가 서울 인근 월세방인 것이다. 서울 집값은 비싸니 불가피한 선택이긴 했지만, 그로인해 생긴 고충도 있었다. 실은 성우일을 하면서 알고 지내야하는 동료,선배들과 함께하는 회식자리,술자리다. 엇비슷한 연배의 동료,동기들하고의 술자리야 너무 늦을 때는 적당히 핑계라도 대고 빠져나갈수도 있지만 선배나 생사여탈권을 쥔 피디와 함께한 자리에서는 그러기도 쉽지 않은 것 아닌가. 근본적으로 서울 바깥지역의 빌라가 자신의 거처니 전철이나 해당지역까지 운행하는 광역버스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귀가를 해야한다. 아직 출연료가 그리 많지 않은 신인급인 미주가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것도 쉽지 않을터이고. 여하튼 나름 그런 고충을 않고 지난 1년 성우활동을 하며 서울 인근의 월세방에서 살며 생활을 해온것인데,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미주다보니 집으로 돌아오면 잠밖에 잘 일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지 방은 한 개가 아닌 두 개고 그 옆에 부엌겸 거실로 쓰는 공간이 있는데, 여하튼 그곳에서 간단한 취사를 해본 경험조차 그리 많지 않았을정도로 집에와선 너무 피곤해 바로 잠자리에 들곤 했던 그런 미주의 일상이다. 헌데 그런 미주에게 밤늦은 시간에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늦게 귀가해서 막 꿀같은 잠에 들려던 미주인지라 귀찮아서라도 받지 않으려 했다. 헌데 휴대폰 벨소리는 한동안 울리다가 자신이 받지않자 전화건 상대가 포기를 했음인지 끊기긴 했는데 그리고나서도 한 두어차례 휴대폰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벨소리가 한참을 울리다가 미주가 받지않자 포기했는지 끊고마는 그런 패턴이 두어번 반복되었는데 미주가 공연히 잠을 설치면서 휴대폰을 받고싶지 않아 아예 그것을 저만치 던져버리기까지 했는데 그러다 새벽녘에 깨어서는 그 휴대폰을 다시 집어들었다. 처음엔 휴대폰을 제대로 정돈하기 위해 집어든것인데 그러다 간밤의 전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번호를 확인해보려했다. 그러다 미주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간밤에 그렇게 여러차례 전화를 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미주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 밤늦은 시간에 전화를 거는일은 별로 없었는데. 혹시 무슨 중요한 문제라도 생긴것인가 그러면서도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상반된 감정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가운데 걸어본 전화. 이른 새벽이건만 엄마가 바로 받긴 했다.
“ 엄마, 무슨일이에요. ”
“ 미주야, 너 왜 간밤에 전화 안 받았니 ? ”
“ 어...엄마 그게...간밤에 회식 때문에 늦어서...게다가 술도 한잔 했고... ”
실은 전날에는 회식이 있어 늦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전화를 받지않은 미안한 핑계를 그와같이 대고 미주 어머니의 울상이 된 목소리가 바로 이어서 들려온다.
“ 미주야, 그나저나 이를 어쩌면 좋니 ? 이를 어쩌면 좋아. ”
“ 엄마, 도대체 무슨일인데 그래요 ? ”
“ 니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니 아버지가... ”
“ 네, 뭐라구요 ? ”
나이 서른무렵에 결혼 1년여만에 유일한 딸인 미주를 낳고 지금껏 살아오신 미주의 부모님. 일단 미주 부모님은 그 윗대부터 대대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그런 집안이고, 미주는 그런 부모님 밑의 외동딸로 그런대로 귀하게 자랐다면 귀하게 자랐다. 그런 미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성우를 해보고 싶다며 올라간 것이 1년전의 일. 다만 서울로 올라와서 성우시험에 합격 공채로 입사한 뒤엔 이후 대체로 바쁜 일상을 보냈기에 부모님과는 가끔 통화만 할뿐 직접 찾아뵙거나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서울 올라가 성우 한번 해보고 싶다’며 그렇게 올라간 직후 지금까지는 – 전화통화는 가끔 했어도 – 직접 만나뵌적이 없는 그런 부모님이기도 한데,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니. 연락을 받고 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다는 병원으로 미주가 바로 내려가긴 했다.
“ 원래는 그냥 평상시 늘 하던대로 밭작물이나 좀 돌보려고 나가신건데...근데 어쩐
일인지 돌아오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니 아버지가 안 들어오시는거야. 그래서
궁금해서 나가보았는데 글쎄 밭 한가운데 쓰러져계시지 뭐니. ”
헌데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웃 주민이든 인근 다른 논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든 그런 사람들 눈에도 띄었을만도 한데, 그렇게 오랜 시간 발견이 되지 않았다면 그것도 이해가 안가는 일이긴 하다. 일단 병원에선 ‘뇌졸중’이란 진단이 내려졌고 미주는 청천벽력같은 느낌을 받았다.
“ 이를 대체 어쩌면 좋으니 미주야 ? 이를 대체 어쩌면 좋아 ? ”
미주 어머니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내린 것 같은 막막한 심정에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고 일단 서울로 돌아온 미주도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저 답답하고 불안해져 있었다. 이러다 정말 아버지가 잘못되시는 것은 아닌지 별의별 불길한 생각이 다 들었고 그런 미주가 자기 감정을 주체못하고 방송국 한 으슥한 곳에서 울고있을 때 이걸 또 발견한 것이 노승욱이었다.
“ 이미주씨 왜 그래요 ? ”
“ 어, 선배님. ”
바로 일전에 선배 여자성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구해준일이 있는 미주보다는 스물다섯살이 많은 대선배 노승욱. 미주의 이런 모습을 보고 걱정되어 다가오는 승욱에게 미주는 순간 당황했지만 웬지 그에게는 숨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는지, 아니면 잠시나마 그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심리가 발동했는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 선배님...저 어쩌면 좋아요. 저 이제 어쩌면 좋아요. 흑흑흑흑~~~!!! ”
“ 그러니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 이야긴건가요 ? 그것도 뇌졸중으로 ? ”
스물네살의 이미주가 ‘뇌졸중’이란 병명에 대해 지금껏 전혀 못 들어보진 않았을것이고 다만 그 증상이 어떻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그런 구체적인 정보까지 접해볼 기회는 거의 없었으리라. 어쩌면 뇌졸중으로 발작해 쓰러진 환자의 모습을 직접 보는게 처음이었을수도 있고. 그야말로 사방팔방이 꽉 막히고 갑작스러운 어둠이 급습해 오는것만 같은 그런 심리상태의 한가운데 있는 이미주가 잠시나마 승욱에게 몸을 기댔다.
“ 근데 병원에는 입원하셨나요 ? 아무래도 병원비가 많이 들텐데... ”
승욱 입장에선 일단 그 걱정부터 되었고, 미주나 그녀 어머니도 그 문제에 대해선 현재 대책이 없는 상태인지 미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자 그런 미주를 보고는 순간 승욱이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말한다.
“ 일단 한번 병원으로 가보죠. ”
“ 네 ? ”
이게 갑자기 무슨말인가. 순간 제대로 이해를 못한 미주가 어리둥절해하고, 승욱이 그런 미주를 보며 말을 이어간다.
“ 아버님 상태가 어떤지 한번 제가 직접 뵙고 싶어서요. 그리고 병원비 문제 제가
도움을 줄수 있다면 한번 미주양에게 도움을 주도록 해보죠. ”
승욱이 평상시 이렇게까지 후배들을 챙기는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미주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말에 직접 병원으로 찾아가 보겠다는 말까지 한 승욱. 그리고 미주와 함께 그녀의 고향인 보령시내의 한 병원에 입원해있는 미주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보았다. 미주 부모 입장에선 서울에 올라간지 1년동안 통 내려오지 않은 딸이 그것도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까지 접한 상황에서 웬 나이들어보이는 중년남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으니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 이분은 누구... ? ”
“ 저희 선배님이세요. 저와 함께 성우활동을 하시는 선배님. 노승욱 선배님이시라고
... ”
어차피 미주 입장에선 그렇게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을터이고 승욱은 미주 부모님께 정식으로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기까지 했다. 방송활동을 함께 하는 선배 성우라니 그런 사람이 이렇게 문병까지 직접 와주었다는것만으로도 미주 부모 입장에선 놀라고 감사한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 좀 괜찮아요 미주양 ? ”
승욱은 병원비에 보태쓰시라며 약간의 돈을 사양하는 미주 부모님께 얹어드리기도 했고 어차피 병원비를 걱정해야할 미주 부모 입장에선 예의상 한두번 사양은 해도 어차피 무조건 마다할 처지는 못 되었다. 그러니 미주 입장에서도 더더욱 놀랍고 감사한일이 될 수밖에 없고, 그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난 얼마후 두 사람이 방송사 인근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 선배님... ”
“ 그래요. 괜찮으니까 어려워말고 말해봐요 미주양. ”
무엇보다 이런일을 태어나서 처음 접해봤을 것 같은 나이어린 미주라서인지 그래서 더더욱 걱정되는 마음으로 이렇게 물은것이고 미주도 승욱 앞에서만큼은 자기 감정을 일부러 숨기거나 하고싶진 않은지 사실대로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다.
“ 솔직히 처음엔 진짜 무서웠어요. ”
“ ...... ”
“ 사실 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
거든요. ”
물론 뇌졸중으로 사람이 바로 죽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몸이 불편해진 상태로 오랜 시간을 살아야하니 그게 문제일뿐. - 사실 당사자 입장에선 그게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일이 되리라. - 허나 아직 젊은 미주 입장에선 이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라서인지 그 솔직한 심정을 계속 승욱 앞에서 토로하고 있다.
“ 그런데 막상 그렇게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 - 솔직히...이런말까지 하면 죄받을
지 모르지만...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이전에 제가 알던 아버지가 아닌 것 같다
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
그냥 평범한 수준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미주의 부모님. 따라서 대체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온 미주이겠지만 그래도 미주에게 아버지는 딱히 나쁜 감정이 생길만한 그런 아버지는 아니었다. 대체로 매사에 성실하신 분이셨고 무엇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끔찍이도 위해주고 챙겨주셨던 아버지. 헌데 그런 아버지가 그것도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워계신 모습. 얼굴이나 입술부위가 살짝 일그러져있는 모습만으로도 미주에겐 적잖은 ‘정신적 충격’이었을거다. 바로 그렇게 1년만에 병원에서 맞닥뜨리게 된 아버지의 모습. 그 순간 받은 충격을 미주는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 그냥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가...‘우리 아빠 아닌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 차마 ‘괴물같다’거나 이런식의 직설적인 표현까진 하지 못해도) 어쩌면 이제...제
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세상이 아닌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생각만 들고...그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해지는...그런 생각밖에 들
지 않았어요. ”
“ ...... ”
“ 저 이제 어쩌면 좋아요 선배님. 으흐흐흑~~~!!! ”
급기야 다시금 울음을 터트리는 미주. 어쨌거나 아직 20대 중반의 젊은 그녀가 그 이전까지 성실하고 건강했던 그런 아버지를 그전의 아버지가 아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병원에서 마주대하게 되었다는 점. 그 자체만으로도 미주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앞으로 어찌해야한다는 주의사항 정도는 충분히 들었을터이고, 그러면 지금 당장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그런 사태까지 들이닥치진 않는다해도 이전까지의 아버지가 아닌 완전히 다른 모습의 아버지를 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생각해보면 미주에겐 정말 견디기 힘든 노릇이 되었을 것이다. 일단 병원비 문제는 승욱이 급한대로 일단 도움을 주긴 해서 급한불을 끄긴 했지만 지금 단지 돈문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병원비 문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그보다 천억배 이상 더 크고 무거운 짐일수도 있는 충격과 상실감. 그런 감정들이 지금 미주에게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 기운내요 미주양. ”
미주네보단 어쨌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몸이라는 것 빼고는 어차피 승욱도 어디까지나 성우고 방송인이지 의사가 아닌이상 지금 그렇게 쓰러저 누워계신 미주의 아버지를 고쳐준다거나 할 수 있는 방도는 없다. 하지만 나름 인생 50년을 가까이 산 선배의 입장에서 미주에게 해주고픈 충고나 조언 정도는 있어서인지 차분하게 그의 말이 이어진다.
“ 솔직히 인생이란게 살다보니 그렇더라구요. 나도 20대 후반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그로부터 한 3-4년 지나 어머니까지 잃었지만...막상 그러게 아버지를 잃고나니 그
직후의 심정은 정말 한동안 형언할 수가 없는 상실감과 허탈함 그런 가운데 시달렸
었어요. ”
“ 선배님도요... ”
“ 뭐 나도 20대때야 지금 미주양 같았겠지 내가 뭐 그리 대단하고 잘난게 있다고 미
주양의 지금 모습하고 크게 다를게 있었겠나. ”
“ 그럼 그때 어떻게 견뎌내셨는데요 선배님은 ? ”
“ 글쎄...뭐 한두마디 말로 간단하게 요약,설명하긴 힘들 것 같은데, 그때부터 하나하
나 ‘홀로서는 방법’을 배워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
“ 홀로서는 방법이요 ? ”
아직 승욱이 하는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제대로 와닿지 않아서인지 미주가 그와같이 묻고 승욱이 그런 미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어쨌든 이전까지는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게 큰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계
셨지. - 그리고 지금의 미주양처럼 아버지가 부재한 세상은 한번도 머릿속으로 상
상해본적이 없는...그게 20대 후반때까지의 나였으니까. 허나 이제 아버지가 안 계
시니 하나하나...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결하고 임해야하는구나. 그런 홀로서는 방
법을 배워가며 ‘아버지가 부재한 시간’을 견뎌내갔던거에요. 그리고 그런식으로 홀
로서는 시간을 견뎌내다보니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더군. 흔히 하는 말이지만...시간
이 해결해주었다고나 할까요. ”
“ ...... ”
“ 그런 의미에선 어떻게보면 미주양은 그때의 저보다 처지가 낫다고 할수도 있어요.
”
“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선배님 ? ”
“ 어쨌든 미주양은 아버지가 쓰러지신것이지 완전히 떠나시거나 하신 것은 아니지
않나. 여하튼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니...이전의 농사일을 하면서 정상적으로 보내
던 그 일상으로 돌아가시긴 사실상 힘들어지신것이지만... ”
미주가 묵묵히 승욱의 충고를 듣는 가운데 그의 말이 계속되고 있다.
“ 어쩌면 차라리 이런식으로 곁에서 아버지를 지켜드리고 병간호도 해드리면서 쓰러
져계신 그 곁을 지켜드리는게...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둘수 있는 그런 단련의 시간
이 될수도 있어요. 비유가 적절할련지는 모르겠지만...미리 예방주사를 맞는것이나
같다고나 할까. 나같은 경우엔 아버지가 주무시다 어느날 갑자기 영원히 눈을 감
으신것이라...너무 갑자기 들이닥친일에 진짜 아무런 정신을 못차리겠더라구. 그런
나에 비해선... ”
“ ...... ”
“ 아직은 그러니 미주양에겐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이 몇 년이라도 더 예비가 되는
것 아닌가. 비록 이전의 건강하고 밝으시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보진 못한
다 할지라도...비록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라도 한 몇 년을 돌봐드리면서 그동안
다 못했던 자식된 도리도 좀 더 해드리고...그런 시간을 보낼수 있다는게 그게 다
행이란 말이지. 그러니 미주양... ”
“ 네, 선배님. ”
“ 경제적으로 혹 도움이 필요한일이 있으면 나한테 언제든 어려워말고 말해요. 내가
뭐 그렇게까지 갑부는 아니지만 미주양에게 혹시 도움을 줄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 주리다. 그러니 미주양은 그저 이 시간을... ”
“ ...... ”
“ 아버지께 그동한 못다한 효도라도 해드릴수 있는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차츰
홀로서게 될 그날을 준비하도록 해요. 그게 그나마 미주양이 이 시간을 슬기롭게
견뎌낼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게야. 내 말 무슨말인지 알겠죠 ? ”
하루는 승욱이 일이 있어서 귀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밤늦은 시간. 승욱의 아내 유진이 방에서 혼자 잠을 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쑥 들어오는이가 있었다. 다름아닌 유진의 딸인 중학생 원희다.
“ 엄마, 자 ? ”
“ 아니 왜 ? 무슨 할말이라도 있어 ? ”
딸아이가 무슨 용건이라도 있어 그런가 싶어 유진이 원희를 바라보는데 중학생 원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좀 엉뚱했다.
“ 엄마 저번에 미안했어. ”
“ 미안하다니 뭐가 ? ”
의아해하며 묻는데 원희는 어느새 은근슬쩍 침대위로 올라와 엄마옆에 살짝 누웠다. 어릴때야 유진이 늘 품에 안고 재웠지만 사춘기 여중생인 요즘은 아빠는 물론 엄마의 가벼운 스킨쉽조차도 싫다며 질색을 하는 아이였는데 갑자기 왜 이러나 의아해지는데 딸아이의 말은 이어진다.
“ 저번에 엄마가 물어봤을 때, 엄마,아빠 이혼하면 누구랑 살거나고 물어봤을 때... ”
“ 아, 그거 ? 근데 그게 왜 ? ”
그때만 해도 뭐 그리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 생각이 좀 궁금해서 물어본것이기 때문에 딸이든 아들이든 반응이 어땠든지간에 크게 마음에 담아두진 않고 잊고 있었다. 헌데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그때의 태도에 대해 마음에 걸리는게 있어서일까. 이렇게 제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 실은 그날 갑자기 엄마가 그런 이야길 하고 해서 당황도 되었고...그래서 아무말
못한것뿐이야. 나 엄마한테 나쁜감정 없어. ”
“ 원 애두...별소릴 다 한다. ”
유진 입장에서야말로 그때 문득 그런 질문을 한 것은 그냥 아이들 생각이 궁금해서 물어본것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것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걸 굳이 이제와서 사과도 하고 해명도 하는 딸아이를 보니 괜시리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 한번 안아주기까지 하는 유진. 운희의 말이 이어진다.
“ 엄마, 근데. ”
“ 응, 왜 또 ? ”
“ 엄마, 아빠하곤 정말 아무문제 없는거지 ? ”
아무래 그래도 그날 엄마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여전히 마음이 쓰이기 때문일까. 진심으로 걱정되는 듯 이와같이 묻는 원희. 유진은 이제 딸의 이런 모습이 되려 어이없어보이기까지 해서 피식 헛웃음까지 흘리며 손을 내젓는다.
“ 내가 니 아빠랑 문제생길일 없어. 그런거 없으니 걱정마. ”
“ 정말이지 ? ”
“ 그렇다니까. ”
딸이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서 강조라도 하듯 목소리까지 한옥타브 높인 유진. 남편 승욱도 성우지만 아내 유진도 아나운서라서인지 그 목소리는 사뭇 청아하기까지 하다. 잠시후 다시 원희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말투로 말을 건넨다.
“ 근데 엄마. ”
“ 왜 ? 또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건데 ? ”
“ 혹시 아빠도 다른 젊은 여자랑 바람피우거나 그러시진 않겠지 ? ”
“ 뭐어 ? ”
이상한 막장드라마 같은게 애들을 버려놓은 탓일까. 얼마전 이미 제 엄마 입에서 이혼 어쩌구 하는말이 나오기도 했었고 물론 그 부분은 ‘아무문제 없다’며 유진이 원희를 안심시키긴 했지만 그런류의 드라마 영향탓인지는 몰라도 진심으로 걱정되는 말투로 묻고있는 원희. 허나 유진은 기도 안찮다는 듯 말한다.
“ 야, 노원희. 다른문제는 둘째치고라도 니 아빠 생긴걸 봐라. ”
젊은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나이 40대 후반인 지금도 여자는 물론 같은 남자가 봐도 그다지 호감가는 외모는 아닌 노승욱. 그런 남편임을 새삼 상기시키며 유진의 말은 이어진다.
“ 니 아빠 얼굴이 어딜봐서 요즘 젊은애들이 좋다고 쫒아다닐 그런 남자냐 ? 한 최
수종이나 이재룡쯤 되는 탤런트라면 모를까, 니 아빠는 절대 그럴일 없을 사람이니
까 그건 안심해도 돼. ”
“ ...... ”
“ 오죽했으면 니 아빠 요즘 그 케이블 재연드라마에서도 맨날 범죄자나 이상한 남자
역할만 맡고 있겠냐 ? 그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니 아빤데...적어도 니 아빠는 요즘
젊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그런 스타일 아냐. 그러니까 그건 안심해도 돼. ”
사실 나이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성우일이 점점 떨어지고 있던 승욱은 그렇다고 일을 아예 쉴수도 없고 방송가 외에서 다른 일을 찾기도 쉽지 않아서 대신 한 케이블 방송의 재연프로에 고정으로 출연중이었다. 승욱이 출연중인 재연프로는 주로 과거 신문에 났던 범죄사건이나 법정에서 공방이 오간 이런저런 소송사건을 소재로 한 그런류의 ‘재연드라마’인데 승욱은 그야말로 이미지탓인지 이웃에 사는 성격 이상한 남자나 혹은 엽기적이거나 변태적으로 가족들을 괴롭히는 그런 ‘이상한 남자’ 역을 단골로 맡고 있었다. 이쯤되면 40대 후반 노승욱의 외모와 이미지가 어떤지는 충분히 짐작이 갈터. 따라서 유진은 더더욱 가당치도 않은 의심이고 걱정이라는 듯 거듭 손을 내저으며 헛웃음을 흘린다.
“ 니 아빠는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못 피울 그럴 사람이니 여하튼 그건 안심해도 돼
. 바람을 혼자 피우냐 ? 상대가 있어야 피우지. 그러니 다른건 몰라도 그건 안심
푹 놓아도 되는 문제니까 마음 푹 놓고 잠이나 편히 주무세요. 아셨죠 ? 우리 꼬마
아가씨 ? ”
새삼 어린시절 딸 원희를 보살피던때가 생각이라도 난 듯 그때 아기 원희를 부르던 애칭까지 새삼 입에 담으며 말하고 있는 유진. 원희도 대충 수긍이 가는 듯 거기에 더 이상 별다른 토를 달지 않는다. 헌데 이런식으로 모처럼만에 한 침대에 눕게된 원희와 유진 모녀. 마침 잘되었다 싶은 듯 유진이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 근데 노원희. ”
“ 왜 엄마 ? ”
“ 너 진짜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하고픈 생각 없어 ? ”
“ 외국에서 ? ”
“ 괜히 그러는게 아니라 요즘같은 세상에는 기왕이면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수 있어. 그러면서 견문도 넓히고 세상에 대해서도 더 폭넓게 알
게되고... ”
헌데 내키지가 않는것일까.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원희. 안 그래도 아이들 조기유학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이 남편 노승욱인데 딸까지 이러면 엄마 입장에선 더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유진이 이렇게 묻는다.
“ 너 지금 답하기 곤란해서 답 못하는거지 ? ”
“ 무...무슨... ??? ”
순간 당황한 원희가 이와같이 내뱉고 헌데 유진은 무슨 이유인지 탄식을 섞어가며 말을 이어간다.
“ 너 가만보면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꼭 그러더라. 여하튼 지난번 엄마,아빠
이혼하면 누구랑 살거냐는 물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너 답하기 곤란해서 그
러는거지 ? ”
“ 아...아냐 엄마. ”
“ 일부러 그럴 것 없어. 엄마도 딱 너만할 때 그랬으니까... ”
“ ??? ”
“ 엄마도 딱 너만할때 그랬어. 어른들이 뭐 곤란한 질문을 하시거나 또는 ‘예,아니
오’로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 나오면...엄마도 그땐 말 잘 안했거든. 근데 너 지금
이러는게 딱 엄마 너만할 때 모습이더라. ”
“ 어...엄마... ”
엄마로부터 이런말을 들으면 딸은 어떤 기분이 들까. 일단 원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데 유진은 그런 딸을 되려 한번 안하주며 착잡한 감정을 담아 말을 이어간다.
“ 그런걸보면 딸은 어쨌거나 엄마를 닮는다는 말이 맞는거 같다. ”
“ ...... ”
“ 말을 안해서 그렇지 너 키우면서 딱 그걸 느꼈어. 너 하는짓이 딱 엄마 어릴 때
하던짓과 비슷하다는...그러면서...외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
셨을까...그런 생각도 많이 해봤고... ”
새삼 이런저런 착잡한 감회에 젖어들어서일까. 유진의 목소리가 잠겨있다. 원희가 그런 엄마를 잠시 애처롭게 바라보고 유진은 그런 딸을 한번 꼭 안아준다.
하루는 승욱이 민아를 찻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승욱도 민아도 다 공영방송의 공채 성우로 성우생활을 시작한 몸이니 바로 그때부터 생긴 선후배사이로서의 친분이 어느덧 2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헌데 오늘은 어찌된 영문인지 승욱이 뭔가 착잡한 심경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 선배...저 솔직히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드는거있죠. ”
“ 무슨 생각 ? ”
“ 글쎄요, 이런 생각이 드는것도 제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문득문득 제 지난 시절...특히 20대때의 일들을 생각하다보면...그때 차라
리 이런선택을 하지 말고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하는건데...그때 이렇게 하지말고 저
렇게 했어야 하는건데...그런 새삼 드는 뒤늦은 자책이나 후회라고나 할까... ”
“ 그게 무슨소리야 ? 대체 뭔 후회를 그렇게 많이 한다는건데 ? ”
“ 후회라기보단...저도 어느덧 50 가까이 인생을 살아보니까 인생사란게 그런 것 같
더라구요. 10대때 미처 깨닫지 못한 세상이치를 20대가 되어서 깨닫게 되기도 하고
20대까지도 깨닫지 못한 이치를 30을 넘겨서 깨닫게 되기도 하고, 30대까지도 못
깨달은 세상이치를 40 넘겨서 깨닫게 되기도 하고...가만보니 인생사 자체가 그렇
게 흘러가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쩌면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철
없었을 때 못 깨달은 이치를 나이가 들면서 점차 깨닫게 되는 그게 인생사가 아닐
까 하는... ”
“ 허허 참... ”
아무리 그래도 민아보다는 세 살어린 승욱이 자신 앞에서 이런 이야길 한다는게 당돌하고 가소로와 보여져서일까. 민아는 좀 묘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그런 민아를 보며 승욱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심지어 남녀관계도 그래요. 솔직히 제가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20대때는 여자문제
에 참 서툴렀던 것 같아요. ”
“ 그건 또 무슨소리야 ? ”
“ 어느 한두가지 경우를 꼭 집어 말한다기 보단...그때 했던 모든게 다요. 뭐 어쨌
든... - 전 뭐 솔직히 학교다닐 때 공부도 썩 잘한편은 아니지만... - 학창시절엔
공부이외엔 다른데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러다 대학가고 사회에 나와보니...그
저 전체적으로 여자를 다루거나 대하는 방식 모든게 다 서투르고 어설펐다고나 할
까요 ? ”
“ ...... ”
“ 그냥 그때는 다들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서 보는것처럼 어느정도 성인이 되고 나
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좋은 인연 만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런식으로 이
루어지는건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거야 ? 결혼생활을 후회하기라도 한다는 이야기야
? ”
그러고보니 이전에 승욱은 방송활동을 하면서 알고지내는 다른 남자선배와의 술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민아가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전해듣기라도 했는지까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뭔가 불안하고 석연찮아보이는 눈빛으로 승욱을 바라보고 승욱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사실 지금 아내와의 인연도 그래요. 어찌보면...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설프고 서툰
연애였죠. 뭐 솔직히 그것을 연애라고 할수 있을련지도 모르겠지만... ”
공영방송 성우로 활동하던 승욱, 그리고 아나운서로 활동하던 유진. 그런 두 사람의 인연은 이런식으로 이어졌다. 인연이 될려고 그랬던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찮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은 성우고 한 사람은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라디오프로에서 출퇴근 시간 현재 교통상황을 알려주는 그런 코너가 하나 있었다. 남녀 각기 1인씩 두명이 진행하는 ‘교통정보’ 코너였는데 그것을 한 1년 남짓 승욱과 민아가 함께 진행을 하게된 것이다. 일단 프로가 프로이니만큼 두 사람은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닌 ‘도로교통정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수 있는 그런 외부 스튜디오에서 진행을 하게되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신들이 방송을 해야하는 스튜디오오 방송국을 오가기도 하고 또 서로 그날그날 진행해야하는 방송내용에 대한 의논도 하면서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던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일로 만나는 직장동료’ 그 이상으론 생각해보지 않아서였을까. 처음 한동안은 함께 진행을 하면서도 별다른 이성으로서의 감정이나 연애감정 같은 것은 생겨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다음 개편때 코너 진행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뀔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그렇게 두 사람이 맡은 프로가 다른 사람으로 바뀔수도 있어 둘이 함께 방송진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수도 있는 대충 그런 무렵의 일이었다. 함께 식사라도 하면서 또는 그날 방송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간혹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 노승욱씨는 근데 뭐하다가 여태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봤어요 ? ”
어쨌든 한 1년 가까이 함께 방송활동을 하면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일 외에도 여담으로 이성친구가 있는지 또는 결혼이나 연애경험 유무에 대해 물어볼 기회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데 적어도 승욱의 나이가 서른을 좀 넘겼고 승욱보다 네 살연하인 유진이 어느덧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그 무렵. 아직 두 사람이 그때까지별다른 연애경험도 이성친구도 없다는 것은 확인이 되어있는 상태. 그런 상황에서 유진이 하루는 사뭇 놀리듯 그렇게 물었던것이고 좀 어이없다는 듯 승욱이 이렇게 되받아쳤다.
“ 그러는 유진씨는 뭐하다 여태 변변한 남자친구 한번 못 사귀어 보았는데요 ? ”
그런식으로 어찌보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릴수도 있는 질문이라서 만약 어느정도 익숙해져있는 사이가 아니라면 매우 불쾌해졌을수도 있는 질문을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두 사람. 헌데 그런식으로 인연이 쭉 이어져나가보다보니 어쩌다 두 사람이 그런 사이가 되었고 결혼에까지 이른 것이다. 참 ‘시시한 연애’를 했다고나 할까. 여하튼 지금은 어느덧 그것도 대략 한 16-17년전의 일이고, 지금은 두 사람 사이에 어느덧 중학생,초등학생 두 자녀까지 낳고 지금껏 15년 세월을 살아왔는데 그런 승욱이 이제와서 이런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 좀 어이없고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긴 하다. 일단 승욱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솔직히 전 정말...제가 만약 20대때로 되돌아갈수 있다면... ”
“ ...... ”
“ 정말 여자마음을 잘 알아서 이해해주고 제대로 배려해주며 감싸주는 그런 멋지고
근사한 남자로 여자에게 베풀어주고 싶어요. 헌데 지금 생각해보면...20대때 저는
그리하지 못했다는게 그게 가장 아쉽고 안타까와요. ”
“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건데 ? ”
무슨 종교나 신의 문제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힘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던가 젊은시절로 돌아갈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상식으로 알 수 있는 문제다. 헌데 나이 40대 후반에 접어들어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승욱이 이제와서 ‘만약 20대로 되돌아간다면 ?’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는 그런 후회를 하고 있다면 어쩌란말인가. 승욱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여하튼 전...차라리 이쯤에서 모든걸 돌이킬수가 없을까. 차라리 정말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20대때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그때...실제 제 20대때는 제대로 해보지
못한것들...또는 그때 잘못되거나 부족한 판단력때문해 했던 바보같은 판단들, 어리
석게 선택했던것들...그걸 전부 하나하나 제대로 되돌리고 싶다 그런것이죠. ”
만약 정말 그 무슨 ‘평행우주’ 같은것이라도 존재해 그곳에 ‘또 다른 노승욱’이 존재한다면 그 노승욱에겐 다른길을 선택할수 있도록 하게하는 그런 방법이 있을수 있을련지는 모르겠다. 허나 지금 노승욱이란 사람이 이 지구행성에서 20년 넘게 성우로 활동하면서 네 살연하의 방송가 동료였던 아나운서 출신 여성과 결혼 15년을 함께 살아온 그 시간을 되돌릴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여하튼 나이 40대 후반에 이른 노승욱이 거듭 하게된다는 그 시절에 대한 자책. 어차피 그 문제에 대해서 민아도 해결방법이 없는 이상 딱하다는 듯 이와같이 말해줘.
“ 그러지말고 지금 아내한테나 잘해줘.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지말고. ”
설마 노승욱이 그럴 사람은 아니겠지만 혹시 지금 아내말고 다른 엉뚱한 생각이라도 하는 것은 아닌가 슬몃 그런 의심까지 들어 민아가 이와같이 말한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나도 정유진씨 그동안 몇 번 만나보기도 했고...아나운서 시절 그녀 평판도 대충
들어본 사람이지만...세상에 그만한 여자 없어. 그만큼 매사에 착실하고 일에 열심
인 그런 사람도 없다고. 그러니 괜히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유진씨한테나 잘해
줘. ”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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