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벌받는 여자 8
“ 아, 참 그러고보니 여태 후배님 이름조차 물어보질 못했네요. 후배님 이름은 어
떻게 되나요 ? ”
10년위 여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입 후배를 구해주고, 그녀를 위로해준다면서 밥한끼를 사주면서도 정작 우리사회의 잘못된 선배,직장상사들의 갑질문화를 비난하는데만 한바탕 열변을 토해 지금껏 그녀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는 나온 승욱의 물음. 미주는 사실대로 대답한다.
“ 가만있자...이미주라면 ? ”
들어본 기억이 있는 후배라서인지 잠시 그 이름을 되뇌어본다.
“ 개소리를 정말 잘내는 신입이 하나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그게 그럼 그쪽이었나요
? ”
성우든 탤런트든 신인때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단역 연기를 맡게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미주에게 한동안 맡겨지던 배역이 개소리,새소리 이런것들이긴 했지만 미주가 ‘개소리를 잘내는 신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식의 이야기까진 그녀도 오늘 처음 들었는지 순간 좀 당황한다. 어차피 방송사에 후배 신인들은 많으니 노승욱 정도 되는 대선배가 그 많은 후배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그런식으로라도 노승욱 선배가 지금껏 자신을 기억해오고 있었다면 그것도 미주에겐 고맙고 감사한 일이 될 터. 잠시 고민을 하던 미주가 사실대로 대답한다.
“ 네, 맞아요. 한동안 개소리,새소리 이런걸 주로 맡긴 했는데...뭐 최근엔 다른 조연
역할도 맡게되긴 했지만... ”
바로 이인숙이 열감기증상 때문에 잠시 방송을 못하게 되자 그녀가 맡았던 ‘조연급 악당’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그 작품에 이어 새로 시작한다는 애니매이션에서도 또 비슷한 수준의 비중인 ‘조연급 악당’을 맡게된 이미주가 아니던가. 바로 그런식으로 미주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이인숙이 그녀에게 일종의 ‘군기잡기’식으로 미주를 괴롭히려 했던 것 같고. 여하튼 미주 입장에선 다시금 묘하게 난감한 상황이 되기도 했는데, 일단 승욱은 그런 미주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어간다.
“ 사실 요즘은 성우의 위상도 예전같지가 않아요. ”
“ ...... ”
“ 사실 성우란게 만화영화 더빙도 맡고 외화더빙도 맡고 라디오 드라마도 하고 그
럴때가 가장 황금기고 전성기였는데, 요즘은 외화도 거의다 케이블에서 자막으로
내보내주고 라디오드라마야 이미 한물간지가 오래니... ”
실제 방송가에서 점차 줄어드는 성우의 위상에 대한 탄식인지 아니면 그 시절에 대한 새삼 일어나는 그리움이나 향수인지 그와같은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하는 승욱. 미주를 바라보며 그의 말이 이어진다.
“ 후배앞에서 사실 앞날에 도움이 될만한 좋은 충고나 그런걸 해주고 싶긴 한데...
솔직히 난 요즘은 후배들이나 또는 성우가 되고싶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러지
말고 차라리 다른일을 찾아보라고 그렇게 권하고 싶어요. 요즘 목소리만으로 딱히
그렇게 밥벌이가 될 수 있는 직업이 그렇게 많을련지는 모르겠지만... ”
“ 홈쇼핑 나레이션 같은것도 있고 뭐 많지 않나요 ? 제가 볼땐 성우의 전망도 그리
어두워보이진 않아보이던데... ”
“ 하하...그렇게 느꼈나요 ? ”
미주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별로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살짝 미소만 지은채 손만 좀 내저어보이는 승욱. 그리고는 다시 회고담이 이어진다.
“ 성우는 아무리 그래도 애니매이션,외화더빙,라디오드라마 이렇게 3두마차일때가
최전성기였어요. 근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그 시절 같지는 않다 이 말이지. 당장
나만해도 그래요. 나도 이 바닥에서 어느덧 20년 넘게 일해왔고 나이도 50을 바라
보지만...벌써 일이 점점 떨어져나가는 그런 추세인걸 ? 솔직히 내가 신인때만 해도
연세 60-70이 다 되도록 연로하신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배 성우 선생님
들이 많았어요. 나같은 새카만 후배는 늘 저만치서부터 90도로 인사할 준비부터 하
고 방송국 복도를 지나가야 했을 정도로말이지. 특히 그때만해도 라디오 드라마로
이런저런 정치다큐나 재계비화 이런걸 많이 하던 시절이라 중견,원로 성우분들중엔
그런쪽에서 활동하시는 어른들이 많았지. 그러다가 전직 대통령이나 유명 재벌회장
목소리를 단골로 맡는 그런분도 나오셨고 말이야... ”
“ ...... ”
“ 또 그때만해도 지상파에서 ‘주말의 명화’ 같은 것을 정기적으로 방송하기도 하고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때면 명절 특선영화 이런걸 많이 해줄때라서...성우들은 명절
때만 되면 요즘의 아이돌 못지않게 바빠지기도 했어요. 명절특선외화 더빙하러 늘
바빴으니까말이야. ”
헌데 그러고보면 결국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놓기만 하는 셈이라 미주 입장에선 지루한 이야기가 될수도 있다. 겨우 이러자고 자신에게 밥한끼 사주겠다고 했나 좀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법도 한데, 그런 미주의 지루해질수 있음을 눈치챘음인지 승욱이 은근슬쩍 화제를 돌린다.
“ 사실 나도 한때 ‘디카프리오’ 전문 배우였던적이 있어요. 우리때만 해도 유명한 외
국배우 같은 경우엔 그 배우 목소리만 맡는 전문성우까지 있던 그런 시절이었거든.
내가 디카프리오 역을 처음 맡았던게 아마 ‘타이타닉’ 할때니 그래도 아직 데뷔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신인급이었을땐데...원래 나 이전까지 주로 로맨틱한 외화 주인공
역만 단골로 하시던 선배성우가 계셨어요. 그래서 원래는 타이타닉 주인공도 그분
이 맡을 예정이었는데 그분이 더빙날짜를 앞두고 갑자기 개인사정이 생기셔서 방송
활동을 더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로맨틱형 주인공의 첫경험이자
디카프리오역 첫 경험을 하게 된건데말야... ”
그때만 해도 승욱도 신인급이던 시절이라서 단역이나 조연정도만 떨어지던 시절이었을텐데 허나 – 어떻게보면 지금의 미주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수도 있을만큼 – 그런 승욱이 때마침 운이 좋았는지 원래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 역을 맡기로 한 로맨틱형 외화주인공 전문배우가 사정이 생겨 하는수없이 대타로 자신이 디카프리오가 맡는 타이타닉 남자주인공을 맡게되었고 그때부터가 노승욱이 디카프리오 전문배우이자 새로운 ‘로맨틱형 외화주인공’ 전문배우 역할을 도맡아하게 되었다는게 그 시절 승욱의 추억담이다. 허나 노승욱이 ‘디카프리오 전문성우’였다는 말은 미주도 좀 믿기지가 않았다. 디카프리오도 어느덧 나이 50이 다 되었지만, 타이타닉이야 워낙 사건 자체가 너무나 유명한 ‘대헝 선박침몰사고’였고 그를 소재로 한 영화도 유명했기에 미주도 한두번 귀동냥으로 못들어보진 않았을터. 무엇보다 타이타닉 영화 자체는 케이블을 통해 한두번이라도 본 경험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데 비록 20여년전이라도 그런 타이타닉 영화 주인공 더빙을 자신의 눈앞에 있는 노승욱이란 중견 성우가 맡았었다니. 실제 디카프리오란 배우의 젊은시절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이미지가 동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게 현재 미주의 눈앞에 있는 노승욱이란 중견성우 외양이다. 그렇다고 못생겼다고까진 할수 없어도 약간 비호감스런 그런 외모라고나 할까. 가령 동네에서 으슥한 골목 같은데서 마주쳤다면 공연한 경계심이 들었을수도 있고, 혹 술이라도 한잔 걸친채 지하철 의자에 앉았더라면 옆자리 승객이 남자였건 여자였건 그에게 괜한 불편함을 느꼈을수도 있을법한 그렇게 생긴 사람이 미주의 눈앞에 있는 노승욱이란 중견성우다. 헌데 그 노승욱이 바로 타이타닉의 남자 주인공이기도 한 ‘디카프리오 전문 성우’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겨지지가 않아 미주는 괜시리 고개를 살짝 가로저어보기도 한다.
승욱은 공영방송의 공채 아나운서 출신인 5살 연하의 정유진과 결혼 현재 15년째 함께 살고 있다. 승욱역시 성우활동을 그 방송사 공채로 시작했으니 두 사람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이루어진셈이다. 2천년대 중반에 결혼한 두 사람은 현재 1녀1남 총 두 자녀를 두었고 딸 원희가 현재 중학교 2학년, 그리고 아들 원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한편 유진은 공영방송 아나운서로 10여년정도 활동하다 그 이후로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케이블 방송의 시사프로 진행을 두 개 정도 맡고 있고 종종 이런저런 행사 사회자로도 섭외가 들어오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성우 일거리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승욱에 비해 요즘은 오히려 아내 유진의 벌이가 더 괜찮다고 봐야할 그런 상황이기도 한데, 이런 상황에서 하루는 승욱이 일을 마치고 귀가한날 아내 유진이 이런 닦달을 했다.
“ 어떻게 할거야 ? 더 늦기전에 결정해. ”
“ 결정하다니 ? 뭘 ? ”
“ 말했잖아. 원희나 원석이 둘중 하나쯤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학교 다니게 하고 싶
다고. 근데 원희가 중학생이고 원석이도 곧 중학생 돼. 더 늦기전에 결정해야할 문
제라구. ”
“ 거 참... ”
조기유학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 대략 90년대 중,후반부터의 일이니 현재 나이 40대 후반의 승욱이라면 조기유학을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볼만한 꼰대세대는 아닐 것이다. 허나 어쨌든 승욱은 아내의 이런 닦달에 거듭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 이제와 하는말이지만 솔직히 난 그런거 별로야. 자기나라 문화나 정서도 아직 제
대로 몸에 배기전에 외국 나가서 그곳 잘사는 집안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오히려 외
국문화나 정서에 더 익숙해진 인생을 사는거 나 별로라고. 나중에 대학들어가고 난
뒤에 유학을 가는 문제라면 모를까. 사춘기때 외국유학은 난 별로야. ”
“ 당신도 참...무슨말을 그렇게 해 ? ”
근본적으로 승욱이 아이들 조기유학 문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남편이다보니 아내는 아내대로 시간이 갈수록 답답하고 속이 타들어갈 지경이었다. 유진의 말마따나 초등학교 6학년인 원석이라면 모를까 중학생 원희의 문제라면 마냥 지체할수도 없는일 아닌가. 이런식으로 어영부영 한 2-3년 지내다보면 ‘조기유학’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나이가 될수도 있다. 그래서 유진은 답답해지는데 그런 유진을 보며 승욱의 말이 이어진다.
“ 거...얼마전에 드라마 보니까 그런 이야기도 나오더만. 젊은 새엄마가 사춘기 의
붓아들과 함께 사는게 불편해서 억지로 해외유학 내보내려 하는거... ”
“ 당신 참 무슨말을 그렇게 해 ? ”
아무리 그렇기로 이런식의 비유는 너무하지 않느냐는 듯 유진이 펄쩍뛰고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남편때문인지 가슴을 몇 번 치기까지 하다가 속상한 듯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리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눕는 아내. 승욱은 승욱대로 씁쓸히 입맛을 다시고 있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승욱이 방송활동을 하면서 평상시 교류가 있는 방송가 선후배,동료 몇몇과의 술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승욱은 평소 허물없이 지내는 선배 한명 앞에서 이런 심정을 솔직히 토로했다.
“ 선배님...근데 결혼생활이란게 말입니다. 막상 살아보니까요. ”
“ 살아보니까 왜 ? 무슨 문제라도 있어 ? ”
방송활동을 하면서 승욱을 지켜본지 오래인 선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승욱의 결혼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못들어본 것 같아 의아한 듯 그렇게 묻고 승욱의 말이 이어졌다.
“ 그게 참 그렇더라구요. 신혼때 한 2-3년 정도나...뭐랄까 그전까지 서로 잘 모르
고 살던 사이끼리 한집에 살게되면서 생기는 어떤 신비함...그렇다고나 할까...그런
느낌이 드는거지...그러다 아이 생기고 키우다보면 갓태어난 아이 막 귀엽고 이쁘고
그런맛에 키우고...그럴때가 재미있는거지 그때 지나면 진짜 별거 없더라구요. ”
“ 허허 참...자네답지않게 별소리를 다하는구먼. ”
평상시 지켜본 승욱의 인격이나 인품으로 봤을 때 결혼생활 그 자체에 어떤 회의를 느끼거나 가정에 소홀히하며 다른 생각을 할 사람같아 보이진 않았기에 선배는 이렇게 말하는것이고 허나 승욱은 뭔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문제라도 있는지 소주를 한잔 들이킨뒤 고개를 가로젓는다.
“ 선배님...전 솔직히말이죠 만약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수만 있다면요... ”
“ 되돌릴수 있다면 뭐...지금까지 한 결혼생활 도로 물리기라도 하게 ? ”
“ 아뇨, 뭐 꼭 그런 의미라기 보담은요... ”
“ 그럼 뭐 ? ”
“ 차라리 지금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 그 새로운 여자와 다시 애기낳고 처
음부터 알콩달콩 그렇게 살아보면 어떨까...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
“ 허...자네도 참... ”
듣자하니 너무 어이없는 이야기라서인지 선배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근본적으로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고 어쨌든 결혼생활을 지금의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택하고 싶다는 그런 소린데,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승욱의 말이 당치도 않다는 듯 선배는 거듭 손을 내젓는다. 승욱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인다.
“ 당신 자... ? ”
하루는 잠자리에 눕는데 유진이 승욱을 불렀다. 사실 요즘은 유진이 승욱보다 일거리가 더 많으니 피곤하면 유진이 더 피곤하지 승욱이 피곤할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부르는 유진. 승욱은 고개를 돌린채 이미 잠을 청하고 있다.
“ 당신 뭐해 ? 자는거야 벌써 ? ”
헌데 실제 잠든 것은 아니었는지 아내의 거듭 부르는소리가 성가시게 느껴져 인상을 찡그리는 승욱. 그러더니 바로 몸을 휙 돌려 이와같이 말한다.
“ 지금 시간이 몇신데...그냥 자. 나 피곤하다. ”
허나 현재 승욱과 유진 부부의 스케줄을 보면 분명 유진이 더 피곤할일이 많지 승욱이 피곤할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유진이 이런 남편의 태도에 더 어이없어하고 승욱은 다시 몸을 돌려 아내를 등진채 잠을청한다.
“ 너희들 혹시 어떻게 생각하니 ? ”
하루는 원희,원석 두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불쑥 유진이 이렇게 물었다. 의아해서 묻는 두 아이에게 유진이 이렇게 묻는다.
“ 너네 엄마,아빠 이혼하면 누구 따라갈거야 ? ”
“ 엄마,아빠 이혼해 ? ”
엄마 유진의 의도를 알 수 없는 두 아이가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래져 묻고 생각보다 당황해하는 아이들에 놀란 유진이 손을 내저은뒤 말한다.
“ 아니, 얘들이...놀라기는. 그런게 아니라...그냥 너희들 평소 생각이 어떤지 궁금해
서...혹시라도 만약 그런일이 벌어지면 너희들 어떡할래 ? ”
헌데 ‘이혼’이라는 아이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너무 엄청난 이야기가 엄마 입에서 나와서일까. 진담으로 한 소리든 아이들을 떠보고 싶거나 장난스레 한 이야기든 엄마 유진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원희는 별다른 반응이 없고, 그래서 잠시 기묘한 침묵이 흐르는데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 원석이 불쑥 나선다.
“ 난 아빠따라 갈래 !!! ”
“ 뭐...뭐라구 ? ”
말이 없는 원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들 원석이 불쑥 이렇게 나오자 놀라고 당황하는 유진. 순간 어떤 배신감이라도 느껴졌다고나 할까. 사실 애초에 유진도 그냥 한번 아이들 생각이나 떠보고픈 의도로 물은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런 반응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았는데, 말없는 딸은 그렇다치고 아들의 태도가 이와같자 결국 그 이유를 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이의 말이 이어진다.
“ 엄만 맨날 화내고...짜증내고...잔소리하고 그래서 싫어. 아빤 그래도 잔소리 안하
고 거실에서 신문만 보거나 TV만 보면서 지내는데(* 늘 집에 있다는 소리가 아니
라 스케줄 없이 집에 있는날 그렇다는 이야기임) 엄만 맨날 잔소리만 해서 싫어. ”
“ 아니, 근데 얘가 정말...아니 그리고 내가 뭐 그렇게 잔소리 한게 있다구 ? ”
생각해보니 진짜 어이가 없는지 거듭 반발하는 유진. 그러자 딸 원희가 이 상황을 무마라도 시켜야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동생 원석을 나무란다.
“ 노원석, 너 쓸데없는 소리좀 그만해 !!! ”
누나의 핀잔에 기가죽었음인지 입술만 삐죽이 내밀고는 더 말을 하지않는 원석. 다만 유진은 유진대로 아들 원석의 태도에 받은 충격이 쉬이 가시지 않는지 한동안 자기감정을 주체못하고 있고, 그렇게 기묘한 기류가 모처럼만에 네식구가 다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형성된일이 있었던 것이다.
임민아라는 성우가 있다. 나이는 52세로 노승욱보다 세 살위로 봐야할텐데, 노승욱처럼 공영방송사 공채로 성우를 시작했으며 다만 남자의 경우엔 군대를 다녀오기 때문에 기수로 따지면 민아는 승욱보다 6기 정도 선배다. 헌데 무슨 우연인지 인연인지 그 민아가 실은 미주가 새로 캐스팅된 애니매이션에 중요한 배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사실 민아는 어느덧 성우경력 30년에 그동안 수많은 애니,영화더빙,광고 나레이션등 수많은 분야에서 활약을 해온 베테랑급 성우이기도 하다. 따라서 후배 여자성우들중엔 그런 민아를 일종의 롤모델로 삼고 활약하는 성우도 있을 정도인데 그런 민아가 하루는 미주를 조용히 불렀다. 헌데 미주가 민아를 따라나선 자리엔 놀랍게도 지난번 이인숙과 함께 미주를 괴롭혔던 이른바 4인방에 포함되는 유수경과 남혜리가 있었다. 순간 놀라고 당황하는 미주. 헌데 민아는 미주와 유수경,남혜리가 함께 한 자리에서 그녀게 이와같이 묻는다.
“ 미주야, 얘네들이니 ? 저번에 너한테 막 뭐라고 하고 괴롭힌애들이 ? ”
“ 예 ? ”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을까. 일단 미주가 이야기한 것이 아닌이상 설마 4인방이 그 일을 자랑이랍시고 동네방네 떠들었을리는 없고 그렇다면 민아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할만한 사람은 결국 노승욱 선배밖에 없다. 헌데 그걸 생각해보니 미주로선 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일단 민아는 미주와 마주하게 된 두 후배성우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한다.
“ 너희는 참...아직도 그러고들 다니니 ? 지금이 어느시댄데... ”
“ 아...아니 저 선배님. ”
“ 시끄러워 !!! 어디다 말대꾸야. ”
헌데 따지고보면 공영방송 공채출신인 민아가 케이블 채널 애니나라 공채출신인 유수경과 남혜리한테 이런다면 이것도 일종의 갑질일수 있다. 어쨌든 민아가 수경이나 혜리한테 직계선배는 아닌 것 아닌가. 다만 어쨌든 이런저런 다양한 성우활동을 하면서 민아에겐 유수경도 남혜리도 평상시 면식과 친분이 있는 그런 사이였던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민아가 거듭 두 후배를 다그치고 있다.
“ 어서 이미주씨한테 정식으로 사과해. 도대체 그게 무슨짓들이야 ? ”
“ 선배님...저희는 그냥... ”
뭔가 항변을 하고싶은 눈치인 유수경과 남혜리다. 사실 그날 그런일을 벌인 것 자체가 열감기로 잠시 방송을 쉰 동기이기도 한 이인숙이 예기치않은 후배의 등장으로 자기자리를 빼앗길까 하는 위기감이 생긴 가운데 이른바 유수경-남혜리-조일수-이인숙 이들 4인방이 생사를 함께 하기로 한 동지이자 동료인 인숙을 위해 벌인짓. 따라서 미주가 무슨 잘못을 하거나 선배한테 버릇없이 굴었던것도 아니니 이들에겐 그 어떤 변명의 여지가 있을수 없다. 허나 대선배인 임민아한테 불려나와 이런 망신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으로선 망신이고 굴욕일 수밖에 없는일. 그날 임민아는 유수경과 남혜리를 한바탕 꾸짖고 돌려보냈다. 허나 막상 이러자 미주가 되려 더 당혹스러워져서인지 민아에게 한마디 하려든다.
“ 선배님...이러시면 제가... ”
혹시 자칫하다가 다른 선배들이 미주에게 뭐라고 하면 미주가 그걸 민아에게 일러바치고 민아가 미주를 괴롭힌 선배들을 불러 대선배 입장에서 야단치는 미주 입장에선 더 공교로운 그림이 그려질수도 있어서일까. 미주가 오히려 민아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써준것에 대해 불편해질지경인데, 민아가 그런 미주를 안심시켜주려는 듯 말을 건넨다.
“ 미주씨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안그래도 나도 방송가의 이런 선배들의 갑질문화
좀 사라졌으면 하던 참이야. 그러니 차라리 잘된일이지 뭐. ”
“ 고...고맙습니다 선배님. ”
아무튼 대선배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감싸줬으니 미주 입장에선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야 안 드릴수 없는 상황. 다만 일이 이렇게되니 새삼 궁금해진게 있어서 묻는다.
“ 근데 선배님. ”
“ 왜 ? 뭐 다른 할 이야기라도 있어 ? ”
“ 그렇다기보단...노승욱 선배님한테서 들었는데 우리나라 장유유서 문화가 많이 잘
못되어 있는거라면서요 ? ”
“ 누가 ? 승욱이가 그래 ? ”
“ 네, 뭐 원래는 한 다섯 살차이까지는 그냥 친구나 동료로 지내야 하는거라면서
... ”
미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민아가 괜시리 기분이 묘해지는지 한번 씨익 웃어보인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간다.
“ 승욱이라면 능히 그런말을 할만한 애지. ”
“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
“ 노승욱이가 원래 옛날부터 무슨 역사책이나 중국고전...이런거 읽는걸 좋아하던 애
였어. 가령 신인시절에도...원래 휴식시간엔 휴게실에서 보통 대본연습이라도 하던
가 아니면 자기네들끼리 그냥 노닥거리며 쉬던가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는데...가끔
보니 승욱이 얘는 꼭 책을 읽더라고. 뭐 그런식으로 소일거리를 삼았던것일수도 있
지만...어쨌든 궁금해서 가끔 보니 무슨 중국고전(가령 4서5경이나 노자,장자,사기
그런것들)이나 역사책들 그런걸 즐겨읽더라구. 하루는 좀 이상해서 핀잔조로 내가
한마디 하기도 했었는데...‘얘 넌 뭐 방송국 휴게실에서까지 그런책을 보니 ?’ 하면
서... ”
취향이나 관심분야야 사람들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성우가 중국고전이나 역사관련 서적들에 관심이 많다면 뭔가 부조화스러운 느낌이 나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어쨌든 노승욱의 그런 젊은시절에 대한 이야기까지 민아로부터 듣게된 모양새인 미주. 한편 민아는 살짝 화제를 돌린다.
“ 얘, 그런데 너 개소리를 그렇게 잘 낸다면서 ? ”
“ 네 ? ”
“ 아...미안미안...‘개소리’라고 하니까 너무 이상하네. 어쨌든 너 동물소리 굉장히 잘
낸다고 정평이 다 나있더라. ”
신인성우 시절일 때 단역이나 대사가 아닌 그런 소리가 역할로 주어지는 일은 흔히 있는일. 다만 그럴 때 그런 ‘동물소리’나 ‘개소리’를 너무 흡사하거나 절묘하게 내서 뜨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헌데 적어도 그동안 미주를 지켜본 선배들이나 제작진 입장에선 그녀가 ‘개소리’ 또는 동물소리를 잘 내는 그런 신입성우쯤으로 인식이 되었던것인지. 미주 입장에선 공연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솔직히 내심 미주는 어쨌든 이인숙 선배의 역할이 공백이 생겼을 때 대타로 들어가 ‘조연급 악당’을 잠시 맡았고 이후 다른 작품에서까지 ‘조연급 악당’을 맡게되면서 한번 이후 자신의 전문분야를 이렇게 ‘조연급 악당’으로 캐릭터를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까지 하던 중이었다. 겨우 두 번 그런 역할이 주어진것가지고 벌써 거기까지 꿈을 꾸었다면 너무 앞서나간 것 같기도 하지만 – 또 하필 그럴때 군기잡기 내지는 기선제압용인지 이인숙이 자기 패거리 4인방을 데리고 와 그녀를 괴롭히기까지 했고 – 여하튼 내심 그런 희망을 갖고있던 상황에서 고작 ‘개소리를 잘내는 신인’이란 이야기를 다시한번 들으니 살짝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민아가 미주에게 주문한다.
“ 한번 내 앞에서 해봐. 얼마나 잘하는지 좀 보게. ”
어떻게보면 이런것도 갑질이라면 갑질일수도 있는데 여하튼 후배의 실력을 테스트해보겠다는 대선배의 명을 거절할수도 없다. 민아는 그 자리에서 ‘개소리’외에도 몇가지 소리를 더 해볼 것을 요구했고, 소문이 적어도 거짓은 아니었음을 확인해서일까. 민아는 박수까지 쳐댄다. 헌데 그리고는 순간 묘한 탄식을 내뱉는다.
“ 아깝다. ”
“ ??? ”
“ 아깝다...참으로 아까워... ”
“ 네 ??? ”
이건 또 갑자기 무슨소린가. 대체 뭐가 아깝다는건지. 어리둥절해하는 미주를 보며 민아의 말은 이어진다.
“ 너 그 이야긴 들어봤지 ? 90년대, 아니 어쩌면 한 2천년대 초반까지도 성인영화
더빙은 대개 성우들이 했다는거. ”
원래 ‘동시녹음’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일반영화 더빙도 주로 성우들이 했었고, 일반영화들이야 동시녹음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그럴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이른바 ‘성인영화(에로물)’는 여전히 성우들을 시켜 녹음을 했다. 민아도 어쨌든 성우 활동을 한지 1년 가까이 되어가니 귀동냥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을터. 헌데 대체 개소리,새소리 잘내는것과 그게 무슨 상관이란말인가. 의아해하는 미주를 보며 민아는 또 한번 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건넨다.
“ 너 그거 모르지. 나한테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전설이 있는 것. ”
“ 숨겨진 전설이요 ? ”
사실 임민아 역시 30년 성우활동을 다양한 방면에서 해온 미주같은 새카만 신인에겐 대선배이긴 하지만 그래도 ‘성우 임민아’ 하면 딱히 상징적으로 알려진 그런 이미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후배들 입장에선 ‘30년 성우 외길만 걸어온’ 그런 대선배일뿐. 헌데 뜻밖의 사실을 하나 민아가 미주에게 알려준다.
“ 나 왕년에 신음소리만 30분 넘게 녹음해봤던 여자야. ”
“ 예 ??? ”
사실 미주는 남녀관계에 있어선 매우 쑥맥같은 여자다. 여태까지 성관계 경험은커녕 변변한 남자친구 한번 사귀어본 경험이 없는 그런 여자를 미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성인영화’란 장르 자체에 대해서 이해가 전혀 없거나 한 정도는 아니고 막연히 그런 영화가 있다는 것 정도만 이야기를 들어봤을뿐. 헌데 그런 미주 앞에서 ‘왕년에 신음소리만 30분 넘게 녹음해봤던 여자’라는 자신의 전설을 들려주고 있는 임민아. 미주 입장에선 도저히 이게 무슨말인지 이해 자체가 안 갈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단 민아는 미주가 그렇게 장시간 그런 장면을 녹음했다는 사실(!)에만 놀란 것으로 알았는지 차분히 진상을 설명해준다.
“ 사실 소문이나 전설같은게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과장과 왜곡이 생기
는것이긴 하지만말야...여하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30분간 성인영화 신음소리
만 녹음했다’는 전설은 90% 정도는 진실과 거의 부합해. ”
그러면서 들려주는 90년대 성인영화 더빙도 성인들이 맡아하던 시절 임민아가 30분간 녹음했다는 문제의 그 장면 진상은 대략 이와같았다.
“ 원래는 그날 내가 맡기로 한 성인물에 성관계만 15분 가까이 남녀가 갖는 그런
장면이 있었어. 그러니 자연스럽게 신음소리만 15분동안 나오는 장면이었지. - 사
실 10분이 되었든 15분이 되었든 성인영화에서 그런장면만 쭉 나오는 경우는 흔히
있으니까...적어도 나처럼 성인영화 더빙 경험이 제법 있는 성우들은 한 10분정도
신음소리만 녹음하는거 그렇게 큰 문제될일은 아닐수도 있어. 헌데 문제는... ”
“ ...... ”
“ 기억에 당시 성인영화 한편 분량이 한시간이 조금 넘는 70-80분 정도 분량이었는
데말야...아무리 그래도 극중에서 신음소리만 더빙해야 하는 장면 그래도 한 10분
이상 넘어가는 경우는 웬만하면 잘 없어. 그래도 기껏해야 한 5분에서 7-8분 정도
인거지...헌데 그날따라 이례적으로 한 15분 내내 신음소리만 토해내야하는 그런 장
면이 있었던거지. ”
민아의 이 말이 그날의 상황이 쑥맥인 미주에게 제대로 이해가 갈련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민아는 거듭 그날 그 전설의 당일날 있었던 일을 좀 더 설명해준다.
“ 헌데 실은 진짜 문제는...그 문제의 15분짜리 성관계 장면 녹음을 거의 다 마쳐가
는데 녹음기기가 고장이 났더라구. 그런 돌발상황에서 잠시 쉬긴 했는데...한 1-2분
정도 지나서 다행히 기기가 고쳐지긴 했어. 다만 내가 녹음한 장면이 정상적으로
녹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녹음을 해야한다는게 그날 현장감독의
이야기였어. ”
“ ...... ”
“ 사실 나도 15분씩이나 신음소리만 토해내는 장면 녹음은 그날이 첫경험이라 너무
숨차고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 그런 녹음 직접 그렇게 오래 해본 사람 아
니고는 녹음 마친 직후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아마 그거 이해 못할거야. - 어쨌든 나
도 너무 지쳐서 (15분짜리 분량을) 처음부터 다시 녹음해야 한다는 감독의 말에 손
을 내저으며 ‘오늘 너무 힘드니 내일 다시하면 안될까요 ?’ 그렇게 애원을 하긴 했
는데 감독은 그런식으로 미루다 출시일이 늦어지고 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오늘 녹
음 다 마쳐야 한다는거야. 그래서 2분도 채 쉬지 못하고 바로 감독의 요구대로 문
제의 15분짜리 장면 재녹음에 들어가야했던거지. ”
15분짜리 성관계 장면 녹음을 원래는 해야했는데 녹음기기가 고장이 나 녹음이 제대로 되지않아 일단 임시로 기기가 작동이 되도록 고치긴 했기 때문에 2분도 채 쉬지 못하고 15분짜리 분량 녹음을 다시 처음부터 해야했다는 이야기. 아마 그런식의 이야기가 나중에 소문이 퍼져 ‘성인영화 녹음더빙 하던 시절 30분동안 신음소리 장면을 녹음한 선배가 있다더라’는 식의 전설이 만들어진듯하다. 그리고 바로 문제의 전설 당사자라고 밝힌 임민아. 이미주는 다소 놀랍고도 얼떨떨한 심정으로 그런 전설의 진상을 보다 정확히 들려주는 민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민아는 새삼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려지는지 손사래를 친다.
“ 사실 말이 30분이지...그거 진짜 직접 해보지 않으면 어떤 기분인지 모른다. 숨차
고 현기증에...정신이 하나도 없더라니까. 거의 뭐 빈혈증상이라도 생기는 느낌이
라고나 할까. 여하튼 그날 작업 끝나고 바로 약국에 들러 약까지 사먹었으니까말
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잠부터 한숨 푹 자고나니 그제서야 맨정신으로 돌아오더라.
”
헌데 원래 미주가 ‘개소리 잘내는 신입후배’란 이야기를 듣고 그걸 확인해보려다 나온 이야기 아닌가. 민아는 소문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듯 동물소리 몇 개를 내보라는 주문을 했던것이가. 그리고 나온 ‘아깝다’는 말. 민아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 어쨌든 요즘은 성인영화 녹음도 현장에서 직접 하는 모양이니까 성우들 불러서 그
런거 녹음해야할일은 거의 없을테지만... ”
“ 제가 그런걸 했다면 잘 했을 것 같다 뭐 그런 말씀이신가요 ? ”
묻는 미주나 이야기를 해주었던 민아나 민망하다면 민망한 이야기라서인지 둘 다 얼굴이 빨개져있기까지 하다. 개소리든 뭐든 소리를 잘 내는 주특기가 있는 미주니 아마 ‘성인영화 신음소리 장면’을 성우가 더빙하는 시절이었다면 미주가 그런것도 잘 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 그래서 지금은 이미 그러던 시절은 지난 것 같아서 ‘아깝다’는 말이 민아에게서 나온 것이다. 민아가 다시금 미소띤 얼굴로 미주를 바라본다.
“ 여하튼 잘해봐 미주씨. 그런 소리를 잘 낸다는것도 여하튼 성우를 하면서 자신만
의 개성과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일수도 있으니까말야. ”
사실 미주는 살짝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전 그런것보단 조연급 악당 같은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성우가 되어버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개소리를 잘내는 신인성우’니 ‘만약 성인영화도 더빙을 하던 시절이었다면 신음소리 장면도 제대로 소화했을 것 같다’느니 솔직히 과히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일수도 있다. 뭔가 개운치않은 뒷맛을 안은채 미주는 집으로 돌아갔다.
- 3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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