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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러블리즈 이미주 (1) 걸그룹 팬픽 9 (러블,오마)



 

                                       부제 : 벌받는 여자 8 

 


 ‘왈왈왈왈~~~!!!’ 

 미주의 첫 대사는 개소리였다. 비단 성우뿐만 아니라 다른 연기자나 코미디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애니매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인 ‘애니나라’에 OO기 성우 공채시험에 합격한 미주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역할이자 대사가 그와같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단역. 물론 미주가 입사한 회사가 24시간 애니매이션만을 방송하는 글자그대로 ‘애니 전문 채널’이니만큼 미주가 투입되는 방송프로는 달랑 한편이 아닌 몇편이 더 있기는 했지만 그런데서도 주어지는 대사는 한동안 그와같았다. 가령 SF 공상과학만화 같으면 악당들이 주인공에게 쓰러지며 지르는 비명소리, 혹은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나 새들의 지저귐, 아니면 동네 꼬마아이들의 울음소리 같은 ‘말’이라기 보다는 그냥 소리라고 봐야할 대사가 한동안 주어졌던 것이다. 다만 미주가 그런대로 짐승 울음소리 흉내내는데는 재주가 좀 있어서였는지 한동안 개소리는 물론 새소리 심지어 소가 ‘움머움머’ 하는 소리까지도 한동안 제법 많은 동물소리가 미주에게 대사이자 역할로 주어지긴 했었다. 

 그런 미주에게 한번은 제대로 된 기회가 찾아왔다. 실은 미주보다는 입사 한 10년차 선배로 주로 공상과학물이나 미소녀 전사물 같은데서 ‘의미있는 조연(주로 악당역)’을 단골로 하던 선배 성우가 하나 있었는데 최근 열감기 때문에 한동안 성우활동을 쉬게 되었다. 이 성우는 이때 애니나라에서 방송하는 케이블에서 ‘조연’을 맡고있는 프로가 세 개나 되었는데 방송사측은 일단 이 성우가 쉬는동안 그녀가 맡는 배역들을 다른 성우로 교체하긴 했다. 헌데 뜻밖에도 그 교체된 역할중 하나가 미주에게 주어진 것이다.  

 글자그대로 ‘의미있는 조연’.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캐릭터는 아니고 극 중반 한 10회 정도 나오게 되는 역할인데 ‘미소녀 전사’물에서 전사쪽과 대적하는 악당그룹의 일종의 ‘부대장’쯤 되는 여두목 역할이었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악의 무리’들이 미소녀 전사들을 해치우기 위해 악당들을 계속 내보내는데 이 ‘악당부대’를 지휘하는 ‘부대장’급 악당들이 있다. 헌데 총 60회가 넘는 이 만화해서 첫 번째 악당 부대장이 대략 10회쯤에서 쓰러지고 나면 그 다음에 새롭게 나오는 악당 부대장이 있고, 다시 이 악당 부대장이 또 쓰러지고나면 다시 새롭게 나타나는 악당 부대장이 있다. 이렇게 ‘악당졸개’들을 진두지휘하는 ‘세번째 악당 부대장’쯤 된다고나 할까. 여하튼 대략 20회쯤에서 30회가 조금 넘을때까지 10회가 조금 넘게 등장하는 그런 역할이었는데 바로 그 역할에 캐스팅된 선배가 열감기 때문에 방송을 쉬게되자 하는수없이 새 성우를 투입하게 되게 그게 이미주였다. 

 신인 1년차로선 이례적으로 그래도 꽤나 비중있는 배역이 주어진 셈인데 미주는 제법 긴장되면서도 어떤 뿌듯함과 설레임도 함께 가진채 역할에 임했다. 아직 신인인 그녀에게 모처럼만에 찾아온 기회이자 행운이 아니던가. 10회가 조금 넘는 분량에서 미주가 맡게되는 악당 부대장의 대사는 많아봤자 열마디 이상을 넘는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기껏해야 개소리 아니면 새소리,아기울음소리 이런 배역만 줄곧 맡아오던 그녀에게 얼마만에 찾아온 ‘큰 역할’인가. 기대감을 갖고 미주는 더빙 녹음실을 찾았다. 

 “ 걱정마십시오 헤라여신님, 이번에야말로 꼭 ‘웨딩클라스’를 해치울 방도가 있사옵 

  니다. ” 

 “ 벌써 몇 번째나 ‘해치울 방도’를 찾아냈다는 소리냐 ? 해치울 방도를 찾아냈다고 

  말만 하고서 번번히 실패했으면서 ? ” 

 “ 허나 이번에 ‘웨딩클라스’에게 보낼 여전사는 다릅니다. 이전에 허접했던 녀석들 

  과는 다른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아이옵니다. ” 

 대략 이런식으로 이어지는 미주가 맡은 ‘악당 부대장’ 역할의 대사. 사실 미주는 저음이라기보다는 고음에 가까운 음색이었는데, 이런 목소리는 좀 악당역할에 안 맞는 면이 있다. 그래서 처음엔 미주를 캐스팅한 연출자도 좀 망설이긴 했는데, 일단 테스트를 해보니 오히려 미주의 목소리가 앙칼져보이면서도 뭔가 독기가 서려있는 느낌이 들어 그런대로 이 역할을 소화할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런식으로 ‘악당 부대장’역에 캐스팅 된 이미주. 원래 이 역할을 맡기로 한 10년위 선배가 아파서 누워있는동안 절묘하게 역할을 잘 소화해냈고 피디도 ‘그런대로 괜찮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처럼만에 맡은 중요한 역할을 잘 해냈다는 생각에 미주가 한참 뿌듯해하고 있는데, 그러다 얼마정도 지난뒤의 일이다. 

 “ 이미주씨 잠깐 좀 보지. ” 

 바로 이전 프로에 미주를 캐스팅했던 피디가 그녀를 다시 불렀다. 이전의 인연도 인연이거니와 부르는 목소리와 분위기 자체가 일단 그리 나쁘지는 않아보여 미주도 괜한 설레임이 순간적으로 일며 피디를 따라갔다. 피디가 조용한곳에서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 실은 다음달부터 새로 방송하게될 애니매이션에도 이미주씨를 캐스팅해보면 어떨 

  까 해서 ? ” 

 “ 저를요 ? ” 

 사실 단역으로 출연하게 되는 성우나 배우들은 일종의 ‘5분대기조’처럼 늘상 기다리고만 있다가 급하게 필요한 역할이 있거나 할 때 대충 피디에 눈에들면 그냥 역할에 투입이 된다거나 이런식인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이렇게 진지하게 불러 캐스팅을 하는 분위기면 일단 이전의 개소리나 아기 울음소리 같은 단역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이런식으로 자신도 단계가 올라가는것인가 순간적으로 기대감이 일기는 했는데, 일단 피디의 말은 미주의 기대감이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다. 

 “ 다음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가 ‘달에서 온 여신’이란 프로야. 뭐 이 작품도 여전사 

  물이긴 한데...내용이 대충 달에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내려온 ‘수호천사’들이 평상 

  시엔 평범한 여학생들하고 살아가다 악당들이 들이닥치면 역시 수호천사로 변신 악 

  당들을 물리치는 그런 내용이지. ” 

 ‘미소녀 전사’물의 설정이 대개 그런식이긴 한데, 다만 미주에게 그련 여전사나 천사요정 같은 주인공을 맡기겠다는 소리는 아닌 것 같고 피디의 말은 일단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 ‘우무카이’라고 극중에서 지구인들을 해치려는 암흑제국의 여성 총사령관이 있어. 

  뭐 지난번 작품에서 이미주씨가 맡았던 역할하고 거의 비슷한 비중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 

 피디가 덧붙여준 ‘우무카이’란 등장 캐릭터의 설정은 대략 이랬다. 지구를 침략하는 ‘암흑제국’의 일종의 최종 보스같은 역할이 있고 그 밑에 남자사령관과 여자사령관이 있다. 그 남자사령관과 여자사령관이 번갈아가며 지구에 계속 악당들을 내보내는 그런 스토리인데 그중 여자사령관 이름이 ‘우무카이’란 소리다. 따라서 역시 악당 ‘총두목’은 아닌 ‘부대장급’ 정도 되는 역할. 무엇보다 이 우무카이란 여자는 지구인들에 대한 나름의 한과 사연이 좀 있어 표독하고 앙칼진 그리고 뭔가 한서린 목소리를 낼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음과 저음의 약간 중간형태인 미주의 목소리가 그 역에 딱 어울릴 것 같아 미주를 캐스팅해보려고 했다는게 피디의 설명이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애니매이션 프로에도 의미있는 조연으로 캐스팅되어 한껏 고무되어있던 어느날이었다. 하루는 휴게실에서 다른 방송 스케줄이 없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때 들어오는 한떼의 사람들이 있었다. 총 네명이었는데 순간 미주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이었다. 방송사를 오가면서 선후배 성우들간에 늘 인사야 주고받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 많은 선배들을 다 기억하기는 한계가 있고 다만 그래도 지금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네명의 여성은 다들 지금 한참 활발히 방송활동을 하는 성우들이라서인지 모두 미주에게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헌데 순간적으로나마 미주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네명중 한사람 때문이었다. 바로 그녀가 얼마전 열감기 기운이 있다며 잠시 방송활동을 쉬었던 그래서 덕분에 그 역할을 미주가 대신하게 되었던 원래 그 역할을 맡았던 ‘이인숙’이란 선배 성우였기 때문이다. 미주보다야 10년 위 선배이긴 한데, 허나 설마 그렇다고 자신한테 무슨 싫은소리를 하거나 해꼬지를 하러 온 것은 아니겠지 하고 일단 ‘설마’ 하는 정도의 심정으로 있었는데 어느새 네명의 성우는 미주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 니가 미주 맞지 ? OO기 이미주 ? ” 

 “ 네, ‘애니나라’ 공채 OO기 이미주입니다. ” 

 마치 군대 신병같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한 미주. 헌데 그런 미주를 보며 네명은 뭔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뭔가 계속 미주에게 불안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한데, 이어 또 한명의 성우가 미주에게 말을 건넨다. 

 “ 우리 잠깐 나갈래 ? ” 

 “ 예 ? ” 

 “ 우리가 좀 할말이 있어서 그래. 그러니 잠깐 좀 나가자. ” 

 그렇게 미주에겐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미주를 끌어내다시피 휴게실에서 데리고 나온 그녀들. 다만 휴게실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 시선이 있어서인지 살짝 팔짱도 껴보고 다정한 포즈를 취해보기도 한다. 허나 그런식으로 방송국 안 어느 으슥한 구석으로 미주를 데리고 간 네명. 공교롭게도 여긴 늘 켜져있던 형광등도 고장이 났는지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 

 미주를 에워싼 네명. 헌데 바로 이인숙 선배가 다가와서는 괜히 말돌리거나 복잡한 서론 길게 늘어놓을 것 없다는 듯 위협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너 내 자리 꿰찼다며 ? ” 

 “ 네 ? ” 

 순간 황당해하는 미주. 물론 미주가 이인숙이 열감기로 방송을 쉬는동안 그녀가 나갈수 없던 배역을 미주가 대신 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런식으로라면 인숙이 열감기로 쉬는동안 빠지게 된 프로가 몇 개 더 있으니, 그 프로 배역에도 다른 성우들이 투입이 되었는데, 그럼 인숙은 그렇게 자기 배역을 대신 맡은 다른 후배 성우들한테도 이런식으로 한다는 소린지, 그리고 따지고보면 자신이 결석을 하는동안 자기 자리를 대신 채워줬으니 되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억울한 생각까지 순간적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가운데 이번엔 인숙이 아는 그 옆의 또 다른 선배 성우가 이렇게 말한다 

 “ 너 어디 출신이냐 ? ” 

 “ 네 ??? ” 

 순간 말귀를 잘 못 알아들은듯한 미주가 이와같이 되묻자 그녀는 이제 짜증까지 난다는 듯이 이와같이 말한다. 

 “ 어디 라인이냐구 ? 니가 나온 학교가 있을거 아냐 ? A대야, 아니면 B대야 ? 어 

  디 연영과 출신인지 묻고 있는거잖아 지금 !!! ” 

 방송연예가도 다른 직업세계처럼 소위 어느어느대 연영과 출신인가 하는식으로 같은대 학연끼리 서로 밀어준다던가 하는 문화가 있다는 소리는 공공연하게 퍼져있고 미주도 그런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은 바 있다. 헌데 졸지에 출신학교까지 추궁(?)당하고 있는 미주는 그래서 되려 더 억울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숨길 이유는 없다는 듯 당당하게 대답한다. 

 “ 저 연영과 출신 아닌데요 ? 철학과 나왔어요 ! ” 

 “ 뭐라구 ? ” 

 ‘뜬금없이 웬 철학과 ?’. 순간 이런 느낌이라도 들었음일까. 물론 철학과 나온 것 그 자체가 문제될일은 아니겠지만 성우로 일하고 있는 여자의 출신과치고는 너무 황당하고 뜬금없다는 생각마저 들었음인지 네명의 성우들은 서로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미주는 분위기 파악이 되는지 안 되는지 다시금 자기가 나온 대학과 학과를 자랑스레 입에 담는다. 

 “ OO대 철학과 OO학번입니다. ” 

 “ 뭐라구 ? ” 

 철학과를 나온것까진 그렇다치고 막상 그녀에게서 언급된 대학 이름이 이름조차 생소한 지방대학명이서일까. 네명의 여자 성우들은 다시 서로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마치 ‘대한민국에 그런 대학도 있느냐 ?’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금 미주에게 한마디 한다. 

 “ 누가 물어보기나 했어 ? 우리가 니가 철학과를 나왔든 어느 대학을 나왔든 누가  

  물어보기나 했냐구 ? ” 

 원래 애초에 ‘어느대학을 나왔냐 ?’고 물어본건 오히려 그녀들 아닌가. 물론 그건 어느어느 연영과 출신인지 그 학연이나 선후배 관계를 확인해보기 위해 물어본것이고, 지금은 일단 미주가 연영과 출신이 아니라는점에서 그녀가 어느대 출신인지 여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어서인지 이런식으로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인숙이 나선다. 

 “ 너 새 프로 하나 맡게된다며 ? ” 

 “ 네...네 저...다음달에 새로한다는... ” 

 정직하게 대답할까 하다가 순간 미주는 ‘아차 !’싶었다. 그러잖아도 지금 이들은 몸이 아파 잠시 방송을 쉬었던 이인숙이 맡아야하는 배역을 이미주가 했다는 점 때문에 배알이 뒤틀려서 이러고 있는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니 배역이 무엇이 되었든 지금 미주가 그걸 자랑스럽게 이들 앞에서 내세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바로 말을 멈추긴 하는데 인숙이 그런 미주를 조여온다. 

 “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거니 ?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내 차리 파고들거야 ? ” 

 “ 서...선배님... ” 

 원래 애니나라 ‘OO기’중에 한참 잘나가는 4인방이 있었다. 그게 조일수,남혜리,유수경 그리고 이인숙까지 네명이었는데 그 네명이 지금 이 여자들이다. 이중 조일수의 경우에는 주로 여전사 애니매이션에서 주인공 캐릭터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 애니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케이블 채널에서도 그 비슷한 역할을 언제부터인가 주로 단골로 맡아오고 있었고 남혜리는 시작은 애니나라에서 시작했으나 요즘은 홈쇼핑 나레이션으로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중이었다. 그리고 유수경의 경우엔 좀 뜻밖에 한 2-3년전쯤에 한 라디오방송국에서 하던 정치드라마에 뜻밖에 캐스팅이 되어 눈길을 끈바 있다. 해당 드라마는 과거 군사정권시절 한국 야당사와 야당비화를 다루는 일종의 ‘정치다큐 드라마’였는데 유수경은 이 드라마에서 50-60년대 야당투사였다는 ‘박순천 여사’역을 맡았다. 사실 이들 네사람이 모두 기껏해야 미주에게 10년정도 선배니 지금 나이는 30대 중반정도. 따라서 이 정도 나이에서 50-60년대 여성 야당투사 박순천을 알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수경의 목소리와 분위기가 생각보다 생전 고 박순천 여사의 목소리나 분위기와 많이 흡사해 주목을 받았었고 한편 이인숙은 ‘애니나라’에서 지난 10년동안 주로 ‘조연급 악당’역을 단골로 맡아왔었다. 이인숙의 살짝 허스키하면서도 뭔가 음습해보이는 목소리가 흉계를 꾸미는 ‘여자악당’ 목소리에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던것일까. 그게 주효해서 언제부터인가 ‘애니나라’에서 방영되는 애니매이션의 ‘조연급 악당’은 ‘무조건 이인숙’이란 말이 나오기까지 했던 바로 그런 성우가 이인숙이다. 그렇게 애니나라 OO기중에서 한참 주목받는 4인방 조일수,유수경,남혜리,이인숙. 그래서인지 이들에겐 일단 입사동기이기도 해서 지난 10년을 함께 방송활동을 하면서 ‘살아도 같이살고 망해도 같이 망하자’는 식의 일종의 도원결의 비슷한 동지같은 관계가 형성이 되었던 것이다. 헌데 그런 4인방중 하나인 이인숙이 열감기로 잠시 고생하는 사이에 자신의 단골역할이었던 ‘조연급 악당’을 새로운 신인에게 빼앗길 위기가 생길판이니 그 ‘동지’이자 동료인 다른 세명이 가만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심하고 혼내줘야겠다는 듯 이렇게 미주를 에워싼 것이다. 인숙이 비아냥과 위협이 반반씩 섞인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 너 한번 솔직히 말해봐라. ” 

 원래 여자악당을 10년동안 전문으로 해온 인숙이라서일까. 이럴 때 분위기와 목소리는 실제로 천사와 악당무리들이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애니매이션에서 흉계를 주로 꾸미는 ‘조연급 여자악당’을 직접 보는듯한 착각까지 들 지경이다. 미주는 순간 공포와 두려움에 울상까지 되는데 인숙이 그런 미주를 바라보며 말한다. 

 “ 너 나 죽기를 바랬지 ? ” 

   


 요즘 세상에 설마 자기 자리나 위상이 빼앗기거나 위태로와졌다고 해서 후배나 부하직원한테 이렇게까지 갑질하는 선배나 상사가 있겠냐마는 인숙은 사실 지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옛날같으면 그저 ‘감기기운이 있어서 한 며칠 쉬어야겠습니다’ 이러고 집에서 약먹으면서 몸조리나 잘 하고 있었을 그 정도의 열감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조금의 잔기침이나 열이 좀 나도 ‘혹시’하는 마음에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그런상황 아닌가. 직장에서도 그렇고 주위에도 웬만큼 가까운 친구나 친지가 아니면 ‘감기기운이 있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아진 세상. 실제 인숙은 감기기운이 있다는 것을 결근사유로 밝히긴 했어도 그 뒤에 집에서 한동안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접 진단까지 받아온터이기도 했다. 행여 진짜 ‘코로나 확진’이라도 되었으면 어쩌나 해서 열이나기 직전 한 며칠간 자신이 쏘다니던곳을 기억을 더듬어 되뇌이기까지 해봤다. 일단 코로나 증상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고 감기도 나아서 다시 방송활동을 재개하게되긴 했지만 자신의 자리를 덮석 꿰찮것이나 다름없는 후배가 생겼다니 불안함을 지울수 없었던 것이다. 한 수년전부터 웬만한 여전사물 애니매이션에서 ‘조연급 악당’ 단골로 자리매김해온 그런 이인숙. 헌데 다음달부터 새로 편성되는 애니매이션에 그런 조연급 악당 배역을 바로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원래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대신 하게된 신인 후배 성우가 연이어 맡게 되었다니 불안함을 지울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평상시 믿고 신뢰하며 어울리는 동료들과 함께 그 이미주를 군기잡기에 나서기로 한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애니나라’ OO기 4인방인 유수경,남혜리,조일수가 동료인 이인숙을 지원하기 위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인숙은 거듭 미주를 압박해간다. 

 “ 너 솔직하게 말해봐. 너 은근히 나 코로나 확진판정이라도 받아 죽기라도 바랬던 

  것 아니냐구 ? 나 죽고 없어지면 그 자리 영원히 니 차지가 되는 것 아냐, 그래 

  안 그래 ? ” 

 “ 선배님 그게 무슨말씀이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선배님 저 절대 그런 여자 아니 

  에요. ” 

 미주는 어떻게 후배고 신인인 자신을 그런 아이로 몰아붙일수 있느냐는 억울함까지 겹쳐져 항변을 하려고 했고 헌데 인숙은 어느새 직접 미주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 

 “ 이게 근데 바락바락 말대꾸만 하고 나한테 사과한마디를 않네 ? 야, 너 내가 그렇 

  게 만만하게 보여 ? 내가 그렇게 우스워보여 ? ” 

 “ 거기 뭐하는거야 !!! ” 

 이때 어디선가 남자의 소리가 들렸다. 4인방이 모두 놀라 뒤돌아보니 마침 지나가다 이 광경을 목격한 남자 한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4인방은 모두 당황했다. 다가오는 이는 이들 4인방에겐 대선배격으로 20여년전에 공영방송의 성우 공채로 합격한뒤 지금은 프리랜서 성우로 활약하며 ‘애니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꾸준히 성우일을 해왔던 현재 나이 40대 후반의 노승욱이란 선배였다. 4인방에게도 최소한 10년 이상 선배이니 넷 다 당황할 수밖에 없을터. 다만 4인방중에 굳이 따지자면 리더격이라고 할수도 있는 조일수가 일단 해명겸 상황 무마라도 시킬겸 나서기는 했다. 

 “ 선배님 여긴...저희끼리 좀 긴한 이야기를 할게 있어서... ” 

 “ 무슨 긴한 이야기를 해 ? 저쪽에서 이미 다 봤어. 여럿이서 나이어린 후배 하나를 

  괴롭히는게 긴한 이야기인가. 어서 후배한테 사과하고 다들 해산하지 못해 !!! ” 

 “ 서...선배님... ” 

 4인방은 당황한 가운데서도 뭔가 억울한 무엇이라도 있는듯한 표정을 짓고 허나 성우경력 어느덧 20여년으로 이 바닥의 일에 대해선 알만한건 다 알만한 노승욱이라서인지 얼렁뚱땅 자기눈을 속이지는 못한다는 듯 거듭 한마디 한다. 

 “ 아니, 근데 얘네들이 정말 ? 나도 한번 너희들이 후배한테 한것처럼 너희한테 해 

  볼까 ? 도대체 요즘이 어느시댄데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나이어린 후배 하나를 

  잡으려 들어 ? 도대체가 말이야... ” 

 굳이 비유하면 자식이 부모한테 야단을 맞는데 그 앞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부모를 야단치며 곤경에 빠진 손자를 구해주는것과 같은 모양새라고나 할까. 4인방은 노승욱의 호통에 결국 풀죽은 모습이 되어 하나하나 흩어져버리고 혼자 남게된 미주에게 승욱이 다가온다. 

 “ 괜찮아요 ? ” 

 애니매이션 전문 방송사에서 활동하는 성우가 한둘은 아닐터이니 미주도 그 많은 성우들을 다 기억하긴 어려워서 – 게다가 성우는 탈렌트나 코미디언등과는 달리 TV에 직접 얼굴을 내비치는 직업도 아니고 – 일단 조금전 4인방과 나누었던 남자의 대화로 봐선 이 사람도 선배 성우가 분명하긴 한데 도대체 누구인지 가늠이 안되어 우선 되는대로 인사를 건네보긴 한다. 

 “ 죄...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선배님. ” 

 어쩄든 대선배급쯤 되는 성우는 분명해보여 그와같이 말을 건넨 미주. 승욱이 그런 미주를 달랜다. 

 “ 괜찮아요. 그리고 나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 ” 

 “ 죄...죄송합니다. 얼굴은 뵌적이 있는 것 같은데...성함을 제가 미처...기억을 잘 못 

  해서... ” 

 “ 난 노승욱이라고 해요. 얼마전에 끝난 OOO의 모험에서 ‘엔터프라이즈’역을 맡았 

  고 또 요즘 방영중인 OOO에서 OOO역을 그리고 OOOO이란 프로그램에선 OOOO 

  역을 맡고 있지요. ” 

 승욱이 대충 요즘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 명을 몇 개 대니 미주도 들어본적은 있는 작품명인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거듭 승욱에게 감사인사를 건넨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 

 “ 세상이 바뀌어도 참 변하지 않는게 하나 있네요. ” 

 아무래도 선배들에게 집단 괴롭힘들 당했던 미주가 너무 당황하고 놀란 듯이 보여서인지 승욱이 미주를 직접 데리고 나와 인근 식당에서 밥을 샀다. 그러면서 미주를 거듭 위로해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중이다. 

 “ 아무리 민주화가 되고 이전에 비해 갑질문화나 이런게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참 끈질기게 안 바뀌는게 하나 있어요. ” 

 “ ...... ” 

 “ 바로 그게 장유유서 문화에서 비롯된 이 X의 잘못된 선배들의 군기잡기, 선배들의 

  후배에 대한 갑질문화란말야. 도대체 이런건 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안 바뀌는건 

  지말야. ” 

 새삼 그렇게 쉽사리 바뀌지 않는 직장이나 일터에서의 선배의 갑질문화에 대한 한탄을 입에 담고있는 승욱. 그의 말이 이어진다. 

 “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게 하나 있어요. ” 

 “ 그게 뭔데요 선배님 ? ” 

 “ 장유유서 문화에 대해서...뭔가 크게 잘못알고 있단말이지. 원래 소학에선 장유유 

  서 문화를 이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다섯살 차이까진 친구처럼 지내되 (나이 한 살 

  이라도 어린 사람이) 약간 뒤에서 걷고 한 열 살차이쯤은 되어야 장형(長兄)으로 섬 

  기라’고 되어있어요. 한 살 많다고 형이고 선배라고 갑질하고 직장이나 군대에 석 

  달 먼저 들어왔답시고 선배라고 오만가지 구실로 후배한테 심부름하고 갑질하고 그 

  러는게 장유유서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냥 엇비슷한 나이끼린 친구처럼 지내고, 조 

  금 더 나이차이가 지면 그때 ‘형’이고 윗사람 대접을 해주라는 소리지, 한 살위라고  

  한 살아래 후배한테 오만가지 갑질하고 석달먼저 직장이나 군대들어왔다고 석달늦 

  게 들어온 후배한테 오만가지 갑질하고 괴롭히는 그게 ‘장유유서’가 아니란말이지. 

  근데 도대체 이걸 왜 이리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가몰라. 에잉...쯧 

  쯧... ” 

 방송경력이 오래인 승욱이라서인지 알고있는 잔지식이 많아서일까. 그런식으로 ‘잘못된 장유유서 문화’에 대한 한바탕 비판의 사설을 늘어놓고 있는 승욱. 사실 나이많은 꼰대 아저씨의 공연한 아는체와 일장연설로 들릴수가 있긴 한데, 바로 그런 10년 선배들의 위협과 압박에 괴롭힘을 당한 직후의 미주라서인지 승욱의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긴 한다. 승욱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그건 우리나라 역사사료 같은 것을 조금만 찾아봐도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에요.  

  거...요즘은 인터넷에서 이런건 검색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정보니까 후배님도 나 

  중에 집에 찾아가서 직접 찾아보던가 하란말이죠. 가령 흔히 우리가 ‘친구간’이었던 

  걸로 아는 성삼문과 신숙주 사이라던가 ‘오성과 한음’으로 더 유명한 이항복과 이 

  덕형 그런 사이도 실제로는 한 두어살 나이차이가 나는 그런 벗이고 동료였지 우리 

  가 흔히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쉬운 그런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란 말이지. 실제 한 

  일제 강점기 정도로 올라가서 찾아볼수 있는 문헌기록만 봐도 – 가령 편지나 일기 

  장 형식의 글이라던가 – 두어살 정도 차이까진 그렇게 꼬박꼬박 형님이나 선배로  

  대접하는게 아니라 되려 ‘벗’이니 ‘벗님네’니 이런식으로 호칭하는 경우 어렵지 않 

  게 찾아볼수 있다 이 말이에요.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 불과 70-80년전까지만 해도  

  한 두세살차이에 어울리는 문화가 그와같았던것인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석달 

  만 먼저 들어와도 오만가지 구실로 후배 괴롭히고 갑질하는 그런 문화가 만들어진  

  것인지...도무지 이해가 안가 !!! ” 

 물론 미주야 10년 선배들한테 그런 압박을 받은것이지 한 한두살 차이나는 언니들이나 몇 달 먼저 입사한 선배한테 그런 괴롭힘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승욱은 적어도 여기 내 앞에 있는 이미주라는 젊은 여자한테만은 우리사회의 ‘잘못된 장유유서’ 문화를 제대로 일깨워주고 싶다는 듯 거듭 열변을 토하고 있고 미주는 묵묵히 그런 승욱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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