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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의 '삼국전투기'와 무적핑크의 '삼국지톡'의 경우 잡담, 고민나눔



 

                        부제 : 충(忠)과 의(義)의 가치가 빠진 삼국지는 삼국지가 아니다.

 

 

 이 글을 쓰려다가 문득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마 2천년대 초반이던가 한 유력언론사 블로그 서비스에 그 신문사 기자로 있는이중 하나가 ‘어떤 삼국지를 읽으면 좋은가 ?’라는 주제의 글을 올린적이 있었다.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올라있거나 또는 글쓰는 활동을 하다보면 주위 학부모로부터 ‘아이들한테 어떤 삼국지(삼국지연의)를 읽히면 좋으냐 ?’는 질문을 자주 받게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솔직히 필자는 ‘삼국지연의가 과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필독서로 읽힐만한 책인가 ?’ 하는 문제에 회의적인 시각을 품게 된지가 꽤 오래되었다. 다만 그 부분은 추후 기회있을때 다른 주제의 글에서 논해보도록 하겠다. 

 

 다만 대신에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삼국지연의에 대해 개괄적으로 한번 살펴보았다. 일단 일제 강점기 나왔거나 월북작가 박태원이 썼다는 삼국지까지는 제외하고 보면 60-70년대 나온 박종화라던가 김구용,김동리,정비석,양주동 삼국지등을 그런대로 ‘1세대 삼국지’라 구분할수 있을 것이다. 보통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학자 출신이라는 ‘김구용 삼국지’가 가장 번역이 잘 된 삼국지로 꼽히는 모양인데 일단 필자는 월탄 박종화가 쓴 삼국지를 1세대 삼국지중에선 가장 잘된 것으로 뽑는다.  

 

 이후 2세대 삼국지라 할 수 있는 80년대 이후의 삼국지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문열 삼국지’다. ‘이문열 삼국지’는 특히 조조를 재평가하며 정사와 연의의 내용을 비교평가하는 일종의 ‘평역(評譯) 삼국지’의 형식이었는데 다만 이후 일부 오역논란이나 역사의 자의적 해석 같은 문제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헌데 생각해보면 ‘이문열 삼국지’가 한동안 공적이 되었던 것은 이문열이 안티조선 운동이 기승을 부리던 당시 이를 비판하던 편에 있었던점 때문에 진보적인 학자,지식인,논객들 사이에서 일종의 ‘공공의 적’ 같은 표적이 된 면도 있었기때문 아닌가 싶다. 어쨌든 박종화 삼국지와 이문열 삼국지를 비교평가하는 필자의 느낌은 ‘박종화 삼국지가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이라면 이문열 삼국지는 옆집 아저씨가 들려주시는 재미있는 이야기같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1세대,2세대 삼국지를 논하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는 부분이 일본작가 요시가와 에이지가 쓴 이른바 ‘요시가와 삼국지’다. 사실 원전 삼국지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의군을 모집하는 방’이 붙은 것을 유비,장비등이 보게되면서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가 이어지는 스토리로 시작되는 반면 요시가와는 초반의 이런 설정이 너무 갑작스럽다고 봤는지 유비,관우,장비의 인연을 좀 더 개연성 있는 스토리로 ‘재창작’을 하였다. 소위 어머니가 드실 차를 사드리기 위해 낙양선을 찾아갔다 돌아오는길에 황건적을 만나고 이후 홍부용이란 아가씨와의 인연이 맺어진다던가 장비의 도움을 받게되는식의 인연이 ‘요시가와’ 삼국지의 시작이다. 헌데 문제는 국내에서 번역된 삼국지중 이미 김동리,양주동등이 이 ‘요시가와 삼국지’를 본땄으며 한동안 웬만한 만화,동화,소년삼국지는 물론 80년대 KBS에서 제작,방영한 ‘인형극 삼국지’도 초반부 스토리는 요시가와 삼국지의 스토리를 따라갔다는 점에 있다. 

 

 이문열 삼국지가 이런점에서 분명 ‘평가’받아야 할 점이 있는데 초반부 스토리에서 이런 ‘요시가와’ 방식을 벗어난 ‘자신만의 창작’으로 유비,관우,장비의 인연과 조조,손견의 성장기는 물론 유비의 조운(조자룡)의 인연까지도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비로소 일본작가 요시가와의 창작에서 독립한 ‘한국형 삼국지’가 만들어진 셈이라고나 할까 ? 그리고 사실 이문열 삼국지가 한동안 유명해지고 심지어 ‘청소년 필독서’라고까지 불리게 된데는 80년대 후반이던가 90년대 초반 어느 수능 만점자가 인터뷰에서 ‘논술시험은 이문열 삼국지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한 것이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한편 70-80년대까지는 ‘삼국지연의’를 실제 정사와 본격적으로 비교하는 작업은 거의 없었다. 사실상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가 최초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가령 삼국지연의는 실제역사와 허구가 7:3 정도로 뒤섞여있다고 막연히 설명하거나 관운장의 오관참육이나 적벽대전때의 화용도 사건 또는 제갈량이 동남풍을 비는일등은 실제 역사에는 나오지 않는 허구라는 설명을 서문이나 해설정도에서 짤막하게 언급하는 수준이었지 정사와 연의를 비교하는 경우는 그 시절까지만 해도 그리 많지 않았다. - 다만 여몽이 난데없이 손권앞에서 자신을 ‘관운장의 혼령’임을 주장하며 피를 토하며 죽는장면 같은 경우엔 소년삼국지나 만화삼국지를 엮은이들의 눈에도 너무 황당하게 느껴졌는지 ‘나중에 만들어진 전설을 작가가 소설로 각색한 것 같다’는 식으로 설명을 덧붙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들어서 김원중이 본격적으로 ‘정사(正史) 삼국지’를 번역해냈고, 삼국지연의와 관련 이런저런 분석,해설서가 난데없이 붐을 이뤘던때도 이때의 일이다. 헌데 90년대에 특히 10대-20대들 사이에서 갑자기 일어난 ‘삼국지 붐’은 일본의 게임제작사 ‘코에이사’가 만들어낸 ‘게임 삼국지’의 영향으로 봐야할 것이다. 일단 근본적으로 ‘게임 삼국지’가 구조상 ‘삼국지연의’에 대한 이해 없이는 – 경우에 따라선 정사까지도 살펴봐야 할 정도로 – 접근이 불가능한 게임이었고, 다만 이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10대-20대 사이에 갑자기 늘어나면서 하이텔,나우누리 같은 온라인 매체에 이 게임 삼국지와 관련한 ‘온라인 동호회’까지 생길 지경이었으니 90년대의 난데없는 ‘삼국지 붐’은 이와 무관치 않다고 봐야한다. 당시 언론은 난데없이 일어난 ‘삼국지 붐’을 ‘난세에 영웅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반영된 것 같다’는 식으로 어느어느 학자나 심리학자의 인터뷰까지 덧붙여 분석을 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엉터리 분석이다. 90년대 삼국지붐은 확실히 ‘코에이사’가 만든 컴퓨터게임 ‘삼국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한다.   

 

 이제 세월은 흘러흘러 박종화 삼국지나 이문열 삼국지를 접해본 세대가 다음세대한테 삼국지 이야기를 전해줘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 같던 박종화 삼국지 시대나 ‘삼촌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같던 이문열 삼국지 시대하고 지금은 그 사회 분위기가 하늘과 땅차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정사 삼국지’가 번역되어 나온지도 어느덧 20여년 세월이 흘렀고, 시중에 나와있는 삼국지연의 관련 분석책도 많고, 자치통감이나 십팔사략 번역본을 구해보는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아예 유튜브에서 정사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비교하며 분석평가하는 영상도 수두룩하게 나와있다. 그저 단순히 만화삼국지나 소년용 동화삼국지 서문이나 해설 같은데서 화용도 이야기나 여몽의 죽음은 정사와는 다르다고 간단히 언급해 놓았으니 막연히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던 시절과는 이미 하늘과 땅 차이고 실제 삼국지연의를 읽어보거나 하다못해 삼국지 관련한 분석서적이라도 한권 읽어보지 않고는 ‘코에이 삼국지(컴퓨터게임)’를 즐길수가 없었던 90년대와도 많이 다르다. 

 

 근래 인터넷에선 삼국지 재창작물로 최훈의 ‘삼국전투기’와 무적핑크(변지민)의 ‘삼국지톡’이 화제다. 이 둘은 웹툰, 다시말해 만화다. 만화라고 해서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글이 위주가 되는 소설과 달리 만화는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보니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연령층이 쉽게 접할수 있고, 그래서 그런 나이어린 연령층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함인지 재미를 위한 유머나 풍자가 많이 들어가게 된다. - 학습용을 지향하는 ‘과학만화’나 ‘역사만화’에도 그런 재미를 위한 설정은 흔히 등장한다. 

 

 허나 그런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두 작품은 삼국지연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되었다. 특히 최훈의 ‘삼국전투기’가 그 경향이 심한데 이것을 단순히 웹툰의 성격상 보이는 ‘웃기기위한’ 풍자나 유머로 봐야할지 아니면 작가 나름대로 그 시절 영웅들의 위선적인 면모라도 좀 까발리기 위해 이런 설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삼국지연의의 나름 명장면이나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들을 비트는 경우가 많다. 굳이 대표적 사례를 들자면 장판파에서 조운이 아두를 구한뒤 유비가 아이를 내던지며 ‘너 때문에 명장 하나를 잃을뻔 했다’고 탄식하는 장면을 엉뚱하게 그 주체를 조운으로 바꿔놓는다던가 고육계를 제안한 황개가 되려 다른 장수들을 언급하며 뒤로 빼는 장면이라던가 17로 의군이 처음 화웅을 맞닥뜨렸을 때 앞장서서 싸울 것을 부추기는 조조와는 달리 다른 제후들이 ‘그렇게 잘났으면 니가 하라’는 식으로 미루는 장면등이다. 

 

 사실 고전소설의 현대소설과 가장 큰 차이점은 극중 설정이나 사건,등장인물간의 인과관계가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우연이 너무 겹치고 비합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인 내용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전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다면 역시 그것은 현대에 이르러 점차 사라져가거나 한번쯤 되새겨볼만한 그런 ‘가치’를 고전소설에서 발견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 가령 심청전을 통해 ‘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던가 춘향전을 통해 한 남자에 대한 절의를 끝내 잃지 않은 춘향이의 삶을 다시한번 음미해본다던가. 

 

 삼국지니 초한지니 하는 중국 고전소설에서 찾을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역시 ‘충’과 ‘의’일 것이다. 물론 왕조시절 임금에게 무조건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충’의 가치는 오늘날 민주사회에 맞지 않는 면도 분명 있으나, 가령 헌법적 가치나 법질서를 지킨다던가 여론과 민심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그 국가 공동체가 유지해야할 질서와 지향점(그것에 통일이 되었든 경제적 번영이 되었든)을 따르는 모습도 일종의 ‘나라에 충성’하는 모습이 될수 있을 것이다.  

 

 의(義)의 경우는 충(忠)의 경우와 비교조차 될수 없을 정도로 오늘날에도 백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가치다. 가령 ‘장사는 신용’이란 말에서도 볼수있듯 국가공동체가 되었든 기업이나 직장이 되었든 종교단체나 사회동아리가 되었든 그 구성원간에 서로간의 ‘신의’가 없다면 그 공동체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심지어 그것은 사기를 치거나 남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범죄집단이라도 크게 다르진 않다. 적어도 사기든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든 공모를 하거나 동조자가 있을 경우 그 동조하는 집단의 목표를 이루기전까진 공모하는 자들간의 근본적인 ‘신뢰’가 없다면 그 범죄 시행도 하기전에 모두 들통나 다들 쇠고랑차게 될 것이다. - 오죽하면 ‘깡패세계의 의리가 더하다’는 말까지 있겠나.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를 따르는 무리는 근본적으로 무너져가는 한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한실부흥’이라는 대의명분하에 뭉친이들이다. 이런 대의명분하에 뭉친이들간에 그 정도의 신뢰나 희생정신이 없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 아닌말로 정말 유비가 전란중에 무슨 해라도 입었다면 한실부흥을 외치는 이들은 갓난아기 유선이라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계속 그 길을 가야하는 것이다. - 그게 싫은 사람이면 진작에 힘센 조조한테 투항하던가 하다못해 다른 지방실력자 밑으로라도 들어가 자기몸하나 온전히 보존하면 그만인것이고 

 

 황개의 고육계도 마찬가지다. 적은 군사로 많은 병사를 대적해야하는 불리한 상황에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 (거짓투항이지만 상대가 그 투항을 믿게 하기위해) 자신이라도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그렇게 비아냥댈일일까. 솔직히 ‘전우애’란게 말이 쉽지 그렇게 단순한 성질이 아니다. 평화시의 군대내의 ‘전우애’라면 80년대 코미디 꽁트였던 ‘동작그만’의 한 장면마냥 뺀질이 김한국이 이경래랑 PX에서 몰래 간식이나 야식 함께 훔쳐먹는 그게 전부겠지만 실제 전시상황이라면 ‘너를 위해 내가 죽을수도 있다’는 친구나 동료를 위해 자신이 가장 ‘극한의 희생’을 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이 ‘전우애’다. - 그런 희생정신이 없는 군대라면 일찌감치 전쟁 포기하고 적국에 항복하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덜 줄이는 일이 될 것이다.  

 

 동탁을 치기위한 17로 의군이 화웅과 맞닥뜨리는 장면에서 조조가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느냐 ?’며 제후들을 다그치는 장면에서 ‘삼국전투기’는 다른 제후들이 ‘그렇게 잘났으면 조조 니가 한번 나서봐라’는 식으로 비아냥대고 있는데 이 또한 유감이다. 사실 여기서 만약 화웅을 깨트리는 제후가 나온다면 이건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면에서도 기가막힌 우위를 선점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왜 ? 나중에 ‘역적 동탁을 치고 무너지는 한실을 바로잡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1등공신’으로 청사에 길이남게 되기 때문에 ??? 아니, 동탁을 치고 어찌어찌 후한 황실을 수습을 하게되든 동탁 이후에 더 난세가 되든 그 이후까지 생각한다면 이때 화웅을 깨트린 제후는 대단한 ‘기선제압’을 하는 실리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봐라 !!! 내 밑에는 화웅까지 박살낸 명장이 있다. 당신들 그러니 앞으로 내게 함부로 까불지 마라 !!!’는 동탁 이후에 어떤 시대가 열리든 다른 제후들이 함부로 자기영지를 넘볼수 없게 만드는 확실한 ‘기선제압’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어쩌면 두 번다시 올 수 없는 그런기회를 제후들이 손가락만 빨면서 그냥 날려먹는다고 ??? - 최훈의 ‘삼국전투기’ 내용만 반박하다 잘하면 책한권 분량 뽑을수 있을 것 같아 아쉽지만 여기까지만 하겠다. 

 

 무적핑크(변지민)의 ‘삼국지톡’은 삼국지연의 시대에 ‘만약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존재했다면 ?’ 하는 가상의 설정하에 삼국지를 재구성한 일종의 환타지성 이야기다. 사실 ‘무적핑크’는 이전에 ‘실질객관동화’란 동화를 통해 일종의 ‘동심파괴’라고나 할까 어릴 때 읽어보았던 동화나 전설,설화같은 이야기를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로 한번 재구성 동화를 비틀어 재해석하는 이야기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던 작가다. 다만 ‘실잘객관동화’에 이어 그 후속격으로 다음에는 영화의 내용을 비틀어보는 ‘실질객관영화’란 연재를 시작하게도 했는데 실객동에서 보여준것과 같은 풍자와 재치를 ‘실질객관영화’에선 그다지 보여주지 못하게된다. 이후 방향을 틀어 ‘조선왕조실톡’이란 새로운 연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역사속 사건이나 인물을 조선시대에 ‘스마트폰’이 존재했다면 하는 가상의 설정으로 다시한번 재미와 인기를 끌어모으게 된다. 

 

 이 ‘조선왕조실톡’의 인기에 고무된 후속작격으로 도전하게 된게 ‘삼국지톡’인 셈인데 일단 근본적으로 ‘삼국지시대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존재했다면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하는 가상의 설정이란점에서 기존의 다른 삼국지연의(소설이든 만화나 동화형식이든)와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변지민씨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솔직히 ‘삼국지톡’에 대한 느낌은 ‘이런식의 삼국지가 무슨 의미가 있나 ?’ 하는 생각이다. 최훈의 삼국전투기가 주제가 실종된 삼국지라면 무적핑크의 ‘삼국지톡’은 시대가 실종된 삼국지다. 물론 삼국지톡은 그 전제 자체가 ‘삼국지 시대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존재했다면 ?’이란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이야기긴 하지만 만약 삼국지를 생전 처음 접해본 10대라면 ‘삼국지톡’을 보고나서 어떤 느낌이 들까. 문득 그 상상을 해봤다. - 행여 유비,관우,장비가 스마트폰 문자주고 받는 내용이나 병사들이 식판으로 배식받는 장면만 기억에 남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 

 

 물론 70-80년대 코미디 꽁트 같은데서도 가령 우리나라 고전을 다루면서 ‘별주부전’ 패러디의 경우엔 토끼가 용왕한테 ‘용왕님, 저 실은 B형 간염 걸렸는디유...’하면서 너스레를 떠는 이야기나 ‘흥부전’을 다루면서 ‘형님, 요즘 누가 유치하게 제비다리를 찾아요 ? 저 주택복권(혹은 올림픽복권) 당첨되었어요’ 하는식의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류의 고전은 어린 학생들이 읽는 동화에서도 그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게 되고, 또 코미디란 장르에 대한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한 나이가 되면(대략 10대 초반 정도 ?) 저 정도의 장면은 그냥 ‘웃기기 위해’ 만든 장면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허나 삼국지연의의 경우는 삼국지도 과거에 만화,동화,소년삼국지가 무수히 나왔지만 이런류의 삼국지들은 삼국지연의 자체가 워낙 방대한 분량인데다가 아이들이 읽기엔 내용이 어려운면도 분명 있어 어린 학생들이 ‘삼국지’란 소설에 대한 대체적인 내용을 이해할수 있도록 쉽게 풀어쓴데 그 목적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설사 실제 ‘삼국지연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최소한 유비,관우,장비나 조조가 대패한 적벽대전 혹은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갔다는 ‘삼고초려’ 같은 대표적인 인물이나 사건 정도는 인지할수 있게되니까. 그렇다면 과연 최훈의 ‘삼국전투기’나 무적핑크의 ‘삼국지톡’을 통해 처음 삼국지를 접해본 요즘 10대들이 나중에 이문열이나 박종화 삼국지 혹은 황석영이나 박태원 삼국지등을 접하게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게될까 그 생각과 우려를 안할 수가 없었다.  

 

 ‘어떤 삼국지를 읽으면 좋은가 ?’하는 질문 이전에 ‘도대체 삼국지연의를 왜 읽어야 하는가 ?’ 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고전소설을 읽으며 그 고전에서 현대인들이 다시금 생각해봐야할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런 고전소설은 굳이 읽을필요가 없다. - 설마 ‘컴퓨터게임 삼국지를 잘하기 위함’이 삼국지연의를 읽는 주목적은 아닐 것 아닌가.  

 

 충(忠)과 의(義)에 담긴 공통된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이성간의 그것이 아닌)대상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수도 있다는 정신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든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든 또는 사랑하는 동지나 동료,친구를 위해 때로는 자기자신을 희생할수도 있다는 정신. 어쩌면 인간이라는 지적생명체만이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등생물’의 감정을 그렇게 함부로 평가절하하고 비아냥,조롱해선 곤란하다.  

 

 만화는 어찌되었든 문자위주의 소설보다는 어린세대들이 더 쉽게 접할수 있는 매개체다. 따라서 최훈의 ‘삼국전투기’나 무적핑크의 ‘삼국지톡’은 이제 앞으로 소설로 된 ‘삼국지연의’보다 먼저 자라나는 세대들이 인터넷에서 접하게 될 ‘삼국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래서 과연 최훈의 삼국전투기나 무적핑크의 삼국지톡으로 처음 삼국지를 접하게된 자라나는 세대들이 나중에 이문열이나 박종화 삼국지 혹은 황석영이나 박태원 삼국지등을 접하게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게될지 그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어 이런 주제의 글을 쓰게되었다. 

 

 

 

 

 


덧글

  • 함부르거 2020/08/31 11:07 # 답글

    말씀하신 내용은 공감합니다만 그렇게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고전이란 건 끊임 없이 재해석 되고 재생산 되기에 고전인 거고 최훈 삼국전투기 같은 것도 그런 재해석의 일환인 거죠. 과거에는 충의를 중심으로 놓고 해석했다면 오늘날엔 기름기 싹 빼고 냉소적으로 해석하는 게 대세 아닌가 싶어요.

    어떤 작품이든 거기서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작품을 비평할 때 고증이나 완성도 같은 걸로 비평할 필요는 있지만 작품이 주는 가치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논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저는 최훈 삼국전투기의 촉한 멸망 스토리를 보면서 오히려 충의라는 가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거 같습니다.

    암튼 패러디와 냉소로 일관된 삼국지라 할 지라도 삼국지인 거고, 그걸 계기로 고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겠죠. 진정으로 우려해야 하는 건 이런 새로운 해석이 나오지 않는 거라고 봅니다. 재생산이 되지 않는 고전은 죽은 고전이니까요.
  • 훼드라 2020/08/31 22:21 #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별일없는 펭귄 2022/09/30 03:29 # 답글

    속이 다 시원하네요. 이걸 이제서야 보다니...실례지만 퍼가도 될 까요? 제가 본 삼톡 비판글 중 가장 와닿는 글 중 하나네요ㅇㅇ
  • 훼드라 2022/10/10 18:50 #

    저도 뒤늦게 이 댓글을 봤내요 그리고 퍼가는건 얼마든 환영합니다. 어차피 다 내글 홍보하자고 블로그 하는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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