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이야기 – 2. 열국 쟁패기
“ 얘야 !!! 얘야, 루카스 !!! 루카스 !!! 루카스 지금 어디 있느냐 ? 루카스 지금 방안
에 있는게냐 ? ”
날이 밝아서야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영지는 루카스의 처소로 찾아가보았다. 설마 그만한(?)일로 루카스가 자살이라도 하겠냐마는 어제 자신이 루카스의 마음을 거절한 순간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하는 루카스의 모습은 이전까지 본적이 거의 없었기에 술이 깨서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보니 여간 걱정이 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헌데 생각해보면 영지가 어느덧 모족과 인연을 맺은지도 10년 세월이지만 그중 상당수는 대개 자신을 거두어주었던 모족의 한 족장이자 지금은 동탄의 황제가 된 홍원석과 교류를 하며 지낸 시간이었고 또 지난 한 3년간은 서탄에서 부사인의 제안으로 군기도감 총수가 되어 무기 만드는일에만 전념하였기에 모족 일반인 개개인 특히 모족의 여인들과 교류해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모족 여인들의 문화나 풍습,전통 특히 그네들의 깊은 심리를 파악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영지. 아니, 근본적으로 지금까지 여자 경험도 거의 없었고 관심도 없었던 영지이니 비단 모족뿐만 아니더라도 여자의 깊고 복잡한 속내를 헤아리기엔 너무나 부족한 존재로 자라났을 것이다. 다만 그래도 그간 홍원석,부사인등과 교류하면서 먼발치서나마 간간히 지켜보았던 모족 여인들의 모습은 대체로 당차고 적극적인 어찌보면 여자라기보단 선머슴처럼 느껴지는 면까지 있었던 그런 여인들이었고 심지어 때론 뭔가 못마땅해보이거나 맘에 안드는 일이 있으면 자신보다 한 열 살 많은 남성이라도 때론 욕설까지 입에 담으며 구박하는 모습도 보이던 그게 모족의 여인들이었다. 헌데 그런 모족의 여인들에게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그런 모족남자가 신는 ‘후철’이라는 일종의 양말이나 버선같은 것을 손수 지어다 바치며 고백하는 그런면도 있었다니. 그 자체도 뜻밖이었지만 막상 그렇게 거절을 당하자 그토록 수치스러워하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뛰쳐나가는것도 전혀 예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 강인해보이던 모족 여성이 알고보면 남자에게 애써 고백한 마음이 거절당하자 차마 굴욕을 견디지 못해 울며 뛰쳐나가는 그런면도 있던 여자들이었단말인가. 여자의 마음을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라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는데 여하튼 루카스의 마음을 달래주긴 해야겠기에 그녀의 처소로 찾아온 영지. 한편 루카스는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으며, 어쩌면 이미 방에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까지 들 정도로 기척 자체가 없었는데 혹시 걱정이 되어 영지가 인근 근처를 돌아다니며 다시 루카스의 행방을 찾아보았으나 밖에서는 루카스를 찾을수가 없었고, 혹시나 하여 다시 처소로 돌아와보니 한참만에 루카스가 방문을 열어주긴 했다. 헌데 늦은시간이건만 씻지도 않은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무척이나 깔끔하게 하고 목욕도 자주 하는 모족의 여인들임을 생각하면 당혹스러울정도로 딴판인 루카스의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어제 일이 일이니만큼 하룻밤이 지나 다시 만나고서도 어색함에 피차 말을 잇지 못하는 두 사람. 무엇보다 영지는 그렇다고 이제와서 마음을 바꿔 루카스의 마음을 받아주거나 할 생각도 없었기에 그래서 루카스를 어떻게 달래줘야하나 그 마땅한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해 오랜시간 망설이고 있었다. 다만 어쨌든 무슨 말이든 해보아야겠기에 한참만에 영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 루카스야. ”
영지를 말없이 바라보는 루카스. 영지의 말이 이어진다.
“ 난 아무래도 이곳을 떠나야할 것 같구나. ”
“ 나으리... ”
순간 겁이라도 났는지 다급하게 영지를 불러보는 루카스인데, 그런 루카스를 다독이며 영지의 말은 계속된다.
“ 어제도 말했지만 난 이제 모족과 연을 끊을 생각으로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
오직 모족만을 위해 너무나 많은 살생무기만을 만들며 살았어. 이제 그 시간을 청
산하고픈게 내 마음이구나. ”
“ 나으리... ”
거듭 안타까이 영지를 불러보는 루카스이지만 영지의 마음은 이미 굳혀진 듯 다만 루카스에게 하고픈 말은 아직 남아있기에 그 이야기를 마저 들려주려 한다. 영지가 손수 루카스에게 차 한잔을 따라주기까지 한다.
“ 내가 모족과의 인연을 끊으려 하는 것은 그러면서 산 내 지난 10년간의 삶에 대한
후회와 자책도 있지만...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모족에게서 어떤 한계를 보았기 때문
이란다. ”
“ ??? ”
“ 모족은 수백수천년의 시간을 진대륙 북방과 동부와 서부지역 그 먼거리를 유랑하
며 많은 다른 부족들의 핍박을 받으며 살았다고 했던가. 그러면서 쌓인 한들을 이
해해보자면 이해 못할바는 아니지만 모족에게 제대로 나라를 이끌만한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없구나. 그걸 이제야 깨닫게 된거야. ”
“ 그건 또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으리 ? ”
“ 너도 알다시피 서탄의 부사인은 알고보니 복수심과 횡포,광태로만 가득한 그런 황
제였고 동탄의 홍원석은 그나마 선정을 베푸는 자이긴 했으나 그대신 자신의 권력
을 빼앗기진 않을까 늘상 두려워하던 자이더구나. 그래서 행여 자신의 경쟁자가 될
만한 이가 성장하는 것은 용납할수 없었던게야. 그래서 내게도 대장군이란 허울뿐
인 자리만 주었을뿐 실권은 주지 않았던 것 아니겠느냐. 그렇게 포악하고 광포하기
만한 서탄의 부사인도 선정을 베풀지만 라이벌을 늘상 경계하던 동탄의 홍원석도
둘다 한계가 있는 지도자들이었더구나. ”
“ 그럼 부탄의 부족장들은 어떠하였는지요 ? ”
“ 그들은 그냥 용기도 없고 배짱도 없는 그런자들이었지. 뭐 기왕이면 전쟁 치르지
않고 이웃 국가들과 적당히 친교만 맺으며 자신들의 안위만을 적당히 유지하며 살
자는 그런 수세적인 태도. 이해해보자면 못할바도 아니지만 그런 용기도 없고
배짱도 없는 자들로는 이 난세를 제대로 헤쳐나가지도 못해. 역시 마찬가지로 머
지않아 이 모족의 백성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 자들이란 것을 깨달았단다. 한마디
로 동탄에서 서탄에도 부탄에도 제대로 된 지도자들은 없었어. 한마디로 다들 한
가지씩의 크고 작은 결함들이 있었던게지. ”
“ ...... ”
“ 모족의 앞날이 어찌될지 참 많은 시간 고민을 해보기도 했단다. 허나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부질없는 고민을 하고 있구나 그 판단이 들더구나. 생각해보면 내 피의
반만 모족일뿐 나머지 반은 모족이 아니고, 애초 어릴때부터 내 어머니가 모족출신
이란 출생의 비밀도 모르는채 강가에서 고기를 잡고 뒷산에서 나무를 베는 나이많
은 노부모에게 거둬져 자라났으니, 어쩌면 내가 모족출신이란것도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수도 있는자가 나라는 존재란다. 그러니 그런 내가 굳이 이 모족을 위해 그
토록 걱정하고 헌신할 필요가 무엇이 있나 그 깨달음이 생기더구나. 그냥 나 혼자
훌훌 털고 떠나버리면 그만인 것을. ”
“ 그래서 모족곁을 떠나고 모족여인과는 혼인도 안 하시겠다는 그런 결심을 하신건
가요 ? ”
루카스의 그 물음에 탄식을 내뱉는 영지. 영지가 말이 없자 루카스가 울음을 터트렸다. 영지가 애초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내가 사람을 잘못봐도 단단히 잘못 봤구나 하는 후회와 절망감. 어쩌면 자신의 그런 못난면에 대한 자책으로 이 자리에서 목숨이라도 끊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지금 루카스의 마음일련지도 모른다. 허나 일단 그런 루카스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은 여전히 추호도 없는 영지. 루카스를 달래주며 말을 거듭 이어간다.
“ 내 다만 너랑 약조 하나만은 하마. ”
“ 어떤 약조를요 ? ”
“ 어제밤 있었던 일...어제 우리가 나눈 대화는 오직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무덤속
으로 가지고 가마. 어차피 난 이제 모족곁을 떠나 멀리멀리 떠나 모족의 인연이 닿
지 않는곳에서 혼자 살 생각을 한몸. - 어제 노나라 여인과 혼인하고 싶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워낙 노나라 여인들이 서탄에서 핍박을 받는 모습을 봐서 그 안
타까운 마음에서 한 이야기일뿐. 지금 내가 달리 인연을 맺은 노나라 여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허나 어쩌다 만약 인연이 닿는다면 노나라 여인과 혼인을 하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는것뿐...솔직히 말하면 기왕이면 아예 정히 인연이 없으면
혼인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먼곳에서 나 혼자만의 삶을 영위하다 떠나버리고 싶
구나. ”
“ ...... ”
“ 그러니 내가 그 약조를 지키면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일일게야. 그렇게 모족
곁을 멀리 떠나 혼자 살기로 한 내가 그런말을 다른이에게 하거나 옮길일이 뭐가
있겠느냐 ? 물론 너야 더더욱 간밤의 일을 다른이에겐 말하지 않을것이고. 그러니
우리둘만 비밀을 지키면 어젯밤의 일은 너와 나만이 아는 무덤속까지 가져갈수 있
는 비밀이 되는게야. 무슨말인지 알겠느냐 ? ”
어젯밤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영지의 말이 그나마 루카스에게 죽고만 싶은 절망감에서 조금은 빠져나올수 있을 것 같은 위안이 되긴 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영지에 대한 야속한 눈물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영지는 그런 루카스를 자신의 처소로 다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 이걸 받거라. ”
“ 이걸...왜 ? ”
지난 3년간 영지의 시중과 수발을 드는 여비서 역할을 한 루카스였기에 그것은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영지가 지난 10년간 연구해온 각종 신무기의 제조비법과 작동원리,기술등이 담긴 책자였다. 영지가 직접 육필로 쓴 일종의 노트같은 형태의 책자라고나 할까. 그것을 통째로 루카스에게 주니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 나야 이제 모족곁을 떠나 더 이상 살생무기를 만들지 않고 살아가기로 한 몸. 허
나 넌 뭔가라도 하며 살아야 할게 아니냐. 이 무기 제조비법을 네가 간직하고서 기
술이 필요한곳에 아이디어를 제공하든지 팔든지 해라. 그래서 그 대가로 돈을 받으
면 너 혼자 먹고살만한 밑천은 충분히 마련할수 있을게야. 이런 신무기들...아직 모
족이외엔 이 기술을 모르는 이들이 많으니...그 기술과 비법이 필요한이는 아직 천
지사방에 널렸을테니 니가 이 비법이 적힌 책자를 간직하고만 있으면 넌 그것만으
로 평생 먹고살 돈을 벌수가 있어. 그러니 네가 이 책자를 간직하고 있다가 그동안
내가 개발한 신무기 기술을 사방 곳곳에 팔도록 해라. ”
어찌보면 지난 10년 모족만을 위한 살생무기를 만들었다고 자책하는 영지가 오히려 루카스에겐 그런 제조비법이 담긴 책자를 안겨주며 그 속의 비법과 기술을 팔아 돈을 벌라고 하는게 앞뒤가 안 맞는 일일수도 있지만 영지 입장에선 그나마 루카스의 앞날을 위해 해주는 최대한의 배려일수도 있다. - 고대 솔파행성 모족여인의 입장에선 영지는 루카스의 순결을 앗아간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그래놓고 이 정도 배려도 하지 않는다면 영지가 진짜 ‘나쁜남자’가 되는 것이다. 루카스는 영지가 건네준 책자를 받아들고는 하지만 끝내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영지에 대한 야속함은 쉬이 지우지 못한채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울먹이는 루카스에게 손수건을 하나 건네주며 영지는 루카스를 그녀의 처소로 돌려보냈다.
서탄은 부사인의 노나라 백성들에 대한 핍박과 괴롭힘에 반발한 노나라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때를 기회로 잡은 용돌왕국이 침략을 해와 멸망하고 말았다. 성불구였던 부사인에게 마땅한 후사가 없었던 것 역시 서탄의 멸망을 앞당기는데 일조를 했다. 부탄의 경우엔 국경을 인접한 금진,모란등과의 화친정책을 취하며 그들과 교류를 해나가며 자신들의 안위를 살피는 ‘현상유지’를 하는 방향의 정책을 펴나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금진,모란에 동화되어갔다. 동탄이 그나마 홍원석의 선정으로 이후 10대 약 150여년간 나라를 이어가긴 했으나 역시 이후 금진과 모란의 침략을 받아 자연스레 멸망하고 말았다.
진대륙 400년 통일왕조였던 노나라가 멸망하고 이후 일시적으로 부흥했던 유광식-유선재 체제마저 무너져 내리자 북방의 유목민들이 내려와 5개 유목민이 16개국을 이루었던 이 시대를 후세의 사가들은 ‘5호 16국 시대’라 부른다. 5호16국 시대는 대략 150-200년간 이어져갔다.
도족의 경우에는 5개 유목민중 먼저 중원을 차지 연나라를 세웠으나 3대만에 멸망하고 걸족의 고돌왕국이 일시적으로 중원을 차지했으나 이후 고돌왕국이 무너지면서 연나라의 후속국을 자처한 ‘후연’이란 나라가 다시 일어났다. 후연을 세운 테지니아는 연나라를 세웠던 테리우스의 9촌조카뻘임을 스스로 주장했으나 그 사실관계 여부는 확실치 않다. 허나 테지니아가 세운 후연도 약 4대 50여년만에 무너져내리고 이후 다른 도족의 일파가 내려와 ‘성위’라는 나라를 세웠다. 하북지역에선 유족과 걸족이 내려와 걸족은 ‘고돌왕국’,‘탁돌왕국’,‘용돌왕국’을 세웠고 유족은 ‘태을국’과 ‘동을국’을 세웠으나 고돌왕국은 한때 중원까지 차지하며 세력이 강성해져 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후연에 멸망당하였고 탁돌왕국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다만 용돌왕국은 일시적으로 모족이 세운 ‘서탄’을 멸망케 하고 남쪽으로도 유족의 ‘태을국’을 멸망시키고 ‘동을국’ 세력을 몰아내는등 한때 제법 세력이 강성하게 뻗어나갔으나 역시 내부의 분열로 멸망하고 말았다. 유족의 태을국도 2대만에 무너져내렸고 유족의 다른 일파가 세운 ‘동을국’이 나라를 약 150여년간 이어가긴 했으나 역시 이후 내부 분열과 반란으로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한편 서량에서 나라를 세운 계족의 ‘촉’,‘후촉’,‘양’,‘동량’등의 나라도 150여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으나 다만 서량에는 시간이 지난뒤 계족의 다른 일파가 새로 나라를 세워 이름을 ‘원촉’이라 지었다. 중원에 다른 도족의 일파가 세운 ‘성위’도 다소 장수하긴 했는데 성위는 한때 유족과 걸족이 세운 나라들이 모두 멸망한 하북지역까지 세력을 뻗어나가는등 제법 강성하게 성장해 나가기도 했다.
이후 진대륙에는 더 이상의 ‘통일왕조’는 등장하지 못하고 서량은 서량대로 중원은 중원대로 또 하북이나 이남지역은 그네들대로 이런저런 후속왕조가 평균 약 200-300년 정도의 수명을 이어가며 생겨났다 이어졌다 멸망하기를 반복하였다. 한편 세월이 좀 더 지난뒤 도족의 한 일파와 모족의 한 일파가 합친 일종의 ‘혼혈족’이 하나 생겨났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융성족’이라 불렀다. 융성족은 하북 이북지역부터 유주 북쪽지역까지를 차지하며 금진,모란과 국경을 맞닿는 강성한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융성족은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원(元)’나라라 지었다.
한편 아리수 이북의 맥섭,부루란 지역엔 오래전부터 금진과 모란이라는 또다른 유목민족이 세력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는데 이들도 언제부터인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다. 금진과 모란은 원래는 유목민으로 시작했으나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반농반목(半農半牧)’의 형태로 사는 모습을 바꿔갔다. 그러면서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다. 한편 아리수 반도에는 아주 오래전엔 세 개의 나라가 갈라져 있었는데 우선 반도 서부의 3분의2 가량을 차지한 나라는 ‘천해국(千海國)’이라 불렀다. 나라이름엔 아마 ‘천개의 바다를 차지하고 싶다’는 제법 포부가 크고 야심찬 의미가 담겨있었던 셈인데, 다만 뜻과는 달리 약 700여년 왕조를 유지하는동안 아리수 반도 서부지역 바다를 차지하는데만 그치고 말았다. 한편 아리수 동부지역에는 ‘흥국(興國)’이란 나라가 세워졌는데, 초창기엔 아리수 동부지역의 3분의1도 채 차지하지 못할정도로 세력이 작았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그 세력이 커졌다. 그리고 아리수 북부와 맥섭,부루 남부의 일부지역을 차지하는 ‘감진(甘眞)’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감진은 한때 맥섭,부루지역을 터전으로 하는 금진,모란과 격돌하기도 하고 심지어 한때는 노나라를 대적하는등 세력이 강성했으니 세월이 많이 흐른뒤 ‘흥국’이 감진을 멸망시켰다. 아리수의 ‘삼국시대’는 나중에 흥국이란 나라가 감진과 ‘천해국’을 모두 멸망시키고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허나 ‘통일흥국’은 안타깝게도 그 나라가 오래가지 못해 약 300여년만에 멸망하였고 이후 아리수반도는 다시 여러개의 나라가 패권을 다투는 ‘신 열국시대’가 되었다. ‘신 열국시대’가 반세기 정도 지속되다 왕씨성을 가진 ‘용이’란 자가 반도를 재통일하고 나라이름을 ‘화려(華麗)’라고 지었다. ‘화려왕조’가 약 600년 정도 지속되다 이씨성을 가진 수종이란 자에 의해 멸망당하고 이수종이 세운 새 왕조 ‘유선(柳宣)’이 등장하였다. 허나 화려왕조 600년이나 유선왕조의 일은 보다 시간이 많이 지난뒤의 일이니 여기서 구체적인 언급은 생략한다.
금진과 모란이 맥섭,부루 지역에 자신들의 왕조를 세운 것이 아리수반도 ‘신 열국시대’가 끝나가고 화려왕조가 세워질 무렵의 일인데 금진은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홍(洪)’나라라 지었고, 모란은 자신들의 나라 이름을 ‘신(辛)’나라라 지었다. 홍나라, 신나라 모두 약 500년간 지속되었고 이후 다시 새 왕조가 들어서 500년정도 더 이어졌다.
‘진대륙’에서 5호16국 시대가 끝나갈 무렵 중원에는 도족이 세운 성위가 하북까지 세력을 뻗치며 제법 강성해져 있었다. 허나 이때엔 성위도 간신들의 발호와 내부의 반란으로 쇠락해져가고 있었다. 헌데 이때 성위라는 나라에 ‘을산부인’이란 여인이 있었다. ‘을산부인’은 일종의 고아원을 운영하는 여인이었는데 ‘5호16국’ 시대에 워낙 전란과 내란 그리고 사이비종교 세력등의 발호가 끊이지를 않아 그 난리통에 부모를 잃고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도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는데, 이를 불쌍히 여긴 한 여인이 성위의 한 도시에서 세운 ‘고아원’이다. 을산부인은 특히 부모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직접 거두어 키웠으며 다만 아이가 15세가 넘었을시에는 귀족집 하녀나 기방에 기생 또는 하녀로 팔아넘겼다. 여인들의 사회활동이나 진출에는 한계가 많은 고대시대에 다른 마땅한 차선책이 거의 없기에 불가피한 선택일수도 있다.
‘을산부인’이 나이 50을 약간 넘겨 세상을 떠난뒤엔 그 딸 ‘선영부인’이 고아원을 물려받았는데 그녀 역시 부모잃은 고아를 거두어 키운뒤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귀족집 하녀나 기생으로 팔아넘겼다. 선영부인이 어머니 을산부인의 뒤를 이어 고아원을 맡은지 한 10여년쯤 지났을 때 이 고아원에 ‘지민’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지민이란 아이는 얼굴이 곱상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다른 여자아이들의 시기,질투를 많이 받았고 특히 걸핏하면 우는 그런 매우 딱하고 처량한 아이였다. -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는다는 캔디와는 정 반대 캐릭터다’ ^^;; - 선영부인이 따돌림을 당하는 지민이를 가엾이 여겨 고아원 아이들을 모아놓고 지민이와 사이좋게 놀 것을 당부하면 오히려 고아원 아이들은 선영부인이 지민이만 싸고돈다며 더욱 그녀를 미워하고 외톨이로 만들었다. 그러던 지민이도 15살이 되어 귀족집 하녀로 팔려가게 되었다.
지민이 팔려간곳은 박유라고 하는 성위(成魏) 시절부터 명신급정도는 되는 그런 명문가의 집안이었다. 박유는 이때 이미 나이가 70을 넘겼는데 지민을 단순히 하녀라기 보다는 사실상 자신의 잠자리 상대로 삼고자 사온 것이다. 한편 이때는 성위는 이미 무너져내리고 형대조라는 자가 자신을 따르는 일파와 함께 ‘형가(形駕)’라는 나라를 새로 세웠을때인데 형대조는 형가를 세운뒤에 성위시절 공신이나 충신,명신의 집안들을 모두 몰살시키려 했다. 허나 박유의 집안은 일단 형대조와 적당히 타협 소극적으로나마 그를 돕기로 해 간신히 자신의 가문을 보존할 수가 있었다.
박유는 지민을 잠자리 상대로 삼고자 고아원에서 샀으나 이때 이미 나이가 70을 넘긴 상태라 관계는 갖지 못하고 다만 침상에서 매일밤 안고 잤을 뿐이다. 헌데 지민을 들인지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박유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헌데 박유의 장례를 다 치르고 나서 박유의 장남인 박태원이란 자가 그만 지민을 겁탈해버렸다. 헌데 얼마안가 지민이 그만 임신을 하고 말았다. 면목도 없고 쑥스러워진 박태원은 은밀히 지민이 살만한 거처를 마련 일단 그녀가 그곳에서 살며 아이를 낳아 키울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한편 애초 박태원의 부친 박유는 형대조와 적당히 타협 형가의 시대에서도 자신의 집안을 보존해가려 했으나 이후 형대조가 무리한 정책을 펴고 폭정을 일삼으며 무리한 세금을 거둬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자 명색이 성위시절 명문가의 자손인 박태원은 두고볼수만 없었다. 결국 형대조의 정책의 부당함을 논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는데 박태원의 상소를 읽고 격분한 형대조는 결국 박태원의 집안을 몰살시켜 버렸다.
다만 이때 지민은 박태원이 마련해준 별도의 처소에서 태원에게 당해 생기게 된 아이를 혼자 은밀히 키우며 살고 있었기에 목숨은 건질수 있었다. 그런 지민에게도 박태원의 집안이 몰살을 당했다는 소식은 들려왔는데 지민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헌데 그런 지민에게 찾아온 것은 뜻밖에도 태원이었다. 허나 지민은 태원을 차갑게 외면했다.
“ 절 보실이유가 없지 않나요 ? ”
“ 지난일들은 다 어쩔수 없다해도...우리가 낳은 아이만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 그
일을 논하기 위해 찾아왔다. ”
“ 뭐라구요 ? ”
지민 입장에선 태원과의 있었던 일이 돌이키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기억이었기에 그와 마주대하는것조차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래도 태원이 자신이 살만한 거처는 마련해주는 것을 보고 그나마 양심은 있는 자로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잊고 살려고 했는데 그런 태원이 자신을 찾아와선 이런 제안까지 하는 것이다.
“ 실은 어떻게든 그 아이는 살려야하지 않겠나. 그래서 하는말인데...내 비록 가문
은 몰락했으나 이전에 사귀던 지인들과 여전히 이따금 연락은 주고받고 있네. 그
래서 하는말인데 그 아이에게 무예를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 ”
“ 무슨 뜬금없는 소리에요 ? 무예라니 ? ”
태원은 난세에 자기몸 하나라도 보존하려거든 간단한 무술이라도 익혀야하지 않느냐며 지민을 거듭 설득했고 그래서 결국 아이에게 자신이 아는 무사 두어명을 소개시켜 그들을 아이의 무예스승으로 삼았다. 애초 지민은 아이의 이름은 그냥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환’이라 지으려 했으나 태원은 어쨌든 자신의 집안 핏줄이니 자신의 집안 성씨를 따야한다며 지민을 거듭 설득 아이의 이름을 ‘박지훈’이라 지었다.
그렇게 지민과 태원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세월이 흘러 만 17세가 되었다. 한편 그래도 이따금은 아이가 잘 있는지 보러오던 태원은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조차 묘연한 상태가 되었는데 다만 지민은 아이가 그쯤되면 무예는 태원 말마따나 자신의 몸 하나쯤은 보전할만한 실력을 가질만큼 배웠으니 그 정도로 하고 그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기를 바랬다. 허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지훈이라 이름지어진 아이는 하루는 저자거리에 몰래 나가보았다가 ‘형가’에서 새로운 무예인재를 뽑기위한 무술대회를 연다는 방을 보게 되었다. 실은 5호 16국중 웬만한 나라들은 대개 이런식의 무술대회를 통해 새로운 젊은 무사들을 뽑곤 했는데 성위도 그런 제도가 있었기에 그 성위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운 형가도 대략 한 2-3년에 한번꼴로는 무예대회를 개최해오고 있었다.
다만 이때는 어느덧 형가의 치세도 1대 황제 형대조의 20년과 그 장남 형일선의 10년 치세를 지나 3대인 형대조의 차남이며 형일선의 이복동생 형진의 치세에 이르렀으나 폭정이 갈수록 심해져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한편 지민은 자신의 아들 지훈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를 대충 알려주기는 해서 마찬가지로 형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적잖이 자리잡아가고 있는때였다. - 지민의 입장에서 자신을 겁탈한 박태원은 두 번다시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존재였으나 그 태원이 진정을 다해 자신과 아이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 지훈이 적어도 어떤 집안에서 나고 자라게 된 아이인지 정도는 알려준 것이다. 아울러 지민 역시 박태원이 형대조의 폭정을 부당하다 간하는 상소를 올리다 몰락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복잡한 심경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지민 입장에선 아들 지훈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기를 바랬건만 끝끝내 무예대회에 참가하기를 지훈이 바래 그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지민의 뜻을 저버리고 무예대회에 출전한 지훈. 다만 자신의 정체를 숨길필요가 있어 이름은 일단 ‘일견(一見)’이란 가명을 일시적으로 지어 무예대회에 참여하였다.
뜻밖에도 일견의 무예실력은 뛰어나 무술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제법 뛰어난 젊은 무사의 재능을 본 형가의 3대 황제 형진도 일견의 실력을 치하하며 말했다.
“ 약속대로 무예대회의 우승자에겐 큰 상과 함께 원하는 소원을 하나 정도는 들어
주도록 되어있다.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면 어떤 소원이든 얼마든지 들어주마.
그러니 한번 말해보라. 네 소망이 무엇이냐 ? ”
헌데 갑자기 일견이 싸늘하게 형진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칼을 겨누며 외쳤다.
“ 내게 오직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성위의 제위를 찬탈하고 참람되이 새 나라를
세운뒤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린 형대조-형일선-형진의 집안을 몰살시키고
천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어주는 것이다 !!! ”
하면서 심지어 이 자리에서 무슨일을 저지를 기세로 칼을 뽑아들고 달려드는 일견. 어느덧 무예대회를 지켜본 황실과 조정의 중신들,심사위원들이 있는 자리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허나 일견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차피 황실 호위병을 당해내긴 무리였기에 결국 얼마안가 체포되고 말았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일견에게 목숨을 잃을뻔하다가 호위병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형진은 혼비백산했고, 격노하여 일견을 가두도록 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무예대회에 참가한 모든이들은 물론 참가자에게 무예대회 참석을 권하거나 독려한 주변인들도 모두 잡아들여 조사하도록 했다. 혹시 일견과의 사전 공모가 있었는지를 밝히기 위함이었다.
한편 화가 끝까지 오른 형진은 다음날 일견을 저자거리에서 참형에 처할 생각이었으나 어린 애첩이 잠자리에서 술을 권하며 ‘너무 함부로 사람을 죽이시면 안된다’고 애교있게 말해 그 자애로운 성품에 일시적으로 녹아들어 일단 일견을 처형하는 것은 보류하도록 했다. 다만 하북 북부지역에 있는 한 광산지대에 노예로 일견을 팔아넘기도록 했다.
이때 하북 북부지역은 형가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주공산으로 이 일대의 광산은 몇몇 부호의 개인소유가 되어 있었다. 성위때만 해도 조공이나 세금을 바치는 식으로 광산을 보유한 부호들과 교류가 있었으나 형가왕조가 들어서서는 폭정이 거듭되고 민심이 떠나가자 광산의 부호들도 등을돌려 그저 자신이 소유한 광산만 개인적으로 소유하며 돈을 버는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중 광산이라기보단 ‘채석장’이라 할수 있는곳이 있었는데 하북 북부에서도 아주 험준한 산세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일견은 그곳에 노예로 팔려간 것이다.
채석장의 인부들은 정식으로 월급을 받고 고용된 직원들과 일견의 경우처럼 노예로 팔려온 경우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고용된 직원들은 대개 조장이나 급장정도의 자리를 맡으며 상대적으로 편한일을 하고 있었고 노예들은 보통 험한 산꼭대기를 오르거나 험준한 낭떠러지나 비탈 같은데서 밧줄에 의지해서 작업을 하는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하였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작업을 하면서도 댓가는 한푼 없는 그야말로 끔찍한 노역이 계속되는 곳이었다. 일견은 이런곳까지 추방되어 한동안은 체념한 상태로 묵묵히 채석작업에만 전념했다. 허나 피는 못속이는 것인지 일견도 나름 강직하고 올곧은 소리를 이따금 하는면이 있어 조장이나 급장의 부당한 대우나 명령에 이따금 반항을 하기도 하고, 조장,급장들이 노예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면 거기에 일시적으로 저항하거나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을고비를 넘긴 노예들을 도와주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그런 일견의 모습이 조장,급장들에게 언제부턴가 눈밖에 나기 시작했고 조장,급장들은 결국 흉계를 꾸며 일견을 해치우기로 했다. 채석장에서 작업중에 고의로 사고를 일으켜 일견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헌데 자신을 평상시 종종 도와주던 일견을 고맙게 여긴 노예 한명이 조장들의 음모를 귀띰해주어 일견은 사고 현장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질수 있었다. 허나 부상을 심하게 입어 채석장 복귀가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다. 조장,급장들은 자신들끼리 일견의 문제를 어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인근 강가에 버려 강물에 떠내려가다 저절로 죽게 내버려두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어느날밤 조장들 몇몇이 부상당한 일견을 들것에 들고나와 적당히 커다란 뗏복 비슷한데 올려놓은뒤 강물에 띄워보냈다.
- 1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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