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 이야기 – 2. 열국 쟁패기
계족은 원래 서량 북부에 위치한 유목민이었는데 동완시절에는 동완의 군세가 워낙 막강해 감히 침략할 생각을 못하였다. 동완 이전의 노나라 서량자사들은 때로는 계족과 화친하기도 하다가 또 계족이 침탈하거나 갈등이 생기면 이들을 격퇴하는등 대체로 애증의 관계가 지속되었는데, 계족 역시 유광식-유선재의 시대에 서량의 군세가 약화되면서 이 지역으로 쳐들어 내려왔다.
계족은 원래 수레와 마차를 이용한 날랜 기병을 움직였으며 서량 북부 산악지대에서 나는 철과 구리를 이용 많은 무기들을 생산해냈다. 특히 이중 이중완이라는 자가 있어 현명하고 똑똑해 서량과 그 북부지대 광산을 이용 많은 철과 구리를 채굴 수많은 수레와 전차,갑옷을 만들어냈으며 또 때론 수출까지 했다. 그러다 서량의 군세가 약화되면서 쳐들어내려와 ‘촉’나라를 세웠다. - 원래 서량 남쪽에 ‘촉’이라는 지역이 따로 있긴 했으나 계족의 이중완도 자신이 서량에 세운 나라 이름을 그냥 ‘촉’이라고 지었다. 한편 원래 서량 남쪽의 촉지역은 노나라때도 오히려 영향력이 그곳까진 닫지 못해 촉은 동남국의 경우처럼 그냥 자기네들끼리의 독립된 공동체를 유지해가고 있으며 나라 이름도 자기네들끼리 별도로 짓곤 했으니 애초 노나라에서 서량 남부지역을 이름해 부르던 ‘촉’은 갈수록 그 의미가 없어져갔다.
이중완은 ‘촉’을 세우고 서량과 그 북부지역 광산에서 금과 구리를 계속 생산해내 많은 전차와 수레 그리고 무기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서량은 땅이 척박해 농사지을 땅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급자족할 수준이 못되어 이웃나라와의 교역으로 식량을 지원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족이 세운 연나라 시절에는 주로 연나라에 철과 구리를 팔면서 그곳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수입해갔으나 걸족의 고돌왕국이 중원을 차지하면서 교역을 거부 촉나라의 살림은 힘들어졌다. 이후 도족의 성위가 다시 세워지면서 서량지역 국가들과의 교역이 재개되었다.
이중완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촉을 세우고 황제가 되어 3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말년에 서른살 어린 미주리라는 후비를 들여 아들 둘을 보았는데, 그때 이중완에겐 이미 이현우라는 장성한 아들이 있어 미주리와 나이가 엇비슷했다. 허나 이현우가 원래 애초부터 황위 계승에 뜻이 없어 오래전에 혼자 궁을 떠나버렸고 그래서 이중완은 자연스레 미주리의 소생중 장남인 이정우를 후계자로 세웠다. 헌데 이중완이 죽고 이정우가 즉위하면서 이정우가 아직 나이가 어려 미주리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이때 오히려 이현우가 자주 황궁을 드나들었다. 심지어 태후가 된 미주리의 침소에 들러 밤새도록 머물다 새벽이 되면 돌아가곤 하니 사람들은 이중완의 아들 이현우가 미주리와 사통하였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심지어 이정우와 이상우까지 실은 선황 이중완의 자손이 아닌 이현우의 자손일지 모른다는 소문까지 퍼졌으나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못했다.
다만 세월이 훨씬 지난뒤 이때의 일을 소재로 누군가가 창극을 하나 지었다. 제목은 ‘돈 카를로스’였는데 주인공인 돈카를로스가 원래 젊은시절부터 짝사랑하던 이웃나라 공주가 있었는데 오히려 부황의 후비가 되었고, 선황이 죽은뒤에도 공주를 잇지 못하던 돈카를로스는 새 황제가 즉위하고 선황의 후비가 태후가 되었는데도 계속 태후의 침소에 드나들며 이룰수 없는 사랑에 가슴아파하더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다만 이중 돈카를로스가 원래 부황의 후비와 사랑하던 사이였다는 이야긴 실제와 다르며 이중완의 장남 이현우가 미주리를 만난 것은 보다 후일의 일이다. 또한 이현우와 미주리가 실제 그런 관계였는지는 세월이 오래 지난뒤에도 끝끝내 확인되지 못하였다.
이정우는 어린나이에 즉위 미주리가 수렴청정을 하다 나이 스물이 되어 친정(親政)을 하였는데, 허나 건강이 좋지 않아 얼마못가 세상을 떠났다. 후사가 없어 아우 이상우에게 황위를 물려주었다. 이상우가 약 20년을 더 즉위하고 이후 그 아들 이기가 다시 20년, 이기의 아들 이세가 다시 20년, 이세의 아들 이봉이 다시 20년씩 총 3대 60년을 즉위하였는데 이 시절엔 별다른 변란이 일어나지 않고 태평성대가 지속되고 경제도 융성해져 후세의 사가들은 이 시대를 ‘기-세-봉의 치세’라 불렀다.
허나 촉나라도 기세봉의 치세를 지나면서 쇠락해졌는데 그게 이봉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이태때부터였다. 사실 이봉도 후사가 없어서 조카뻘인 이태를 후계자로 삼았는데 이태는 정사보다는 놀기를 좋아하고 주색을 밝히는 자였다. 정사를 돌보지 않으니 간신 엄봉수와 노만일이 나라를 전횡하여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반란세력이 일어나 간신 엄봉수와 노만일을 죽이고 이태마저 폐위시키니 촉나라도 결국 7대 150여년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촉나라가 한참 번성할 때 세곡보살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상한 예언을 하였다. 중원은 운이 쇠했고 동쪽 반도에 훗날 이인이 나타나 세상을 통치하게 될것이란 예언이었다. 당시 황제는 이상우였는데 이상우는 세곡보살을 요사스러운 중이라 하여 처형하였다. 세곡보살을 처형하는날 억수와 같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문관일은 이중환때 승상을 지낸 자인데, 그 덕이 크고 성품이 온화하여 황제를 잘 보좌하고 백성들의 살림을 잘 보살폈다. 장기간의 연구 끝에 새로운 농사법을 개발하였는데 문관일이 개발한 농사법으로 척박했던 서량땅에 그나마 생산력이 다소 늘수가 있었다. 허나 장기적으로 서량의 척박한 토양의 상황을 극복할만한 대책은 되지 못하였다.
한편 미주리와 사통하였다는 소문까지 났던 이중완의 장남 이현우는 황도를 떠난뒤엔 한동안은 그 인근 모처에서 살며 자주 황궁을 드나들었지만 미주리까지 세상을 떠난뒤엔 서량에서 더 먼 북서쪽으로 가서 그곳에 혼자 숨어 지냈다. 그땐 이현우도 어느덧 나이 70이 넘었는데 그곳에서 젊은 후처를 얻어 자손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미주리의 친가 자손으로 오태경이란 자가 있었는데 열다섯살 나이때부터 그 용맹이 늠름하기 이를데없어 이중완이 불러들여 장수로 삼았다. 오태경은 이웃나라와의 전쟁에 몇차례 출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촉나라가 7대 150여년만 망하자 이후 촉나라의 잔존세력 몇몇이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우니 촉나라의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후촉’이라 이름하였다. 후촉 초대황제는 조두남이라는 자가 되었는데 조두남은 그 선대가 촉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의 자손이었다. 촉의 시절을 여전히 잇지 못하는 옛 촉나라 공신가문의 자손들과 뜻을 모아 결국 후촉을 세운 것이다.
조두남은 28세에 후촉 초대 황제가 되어 이후 50년을 집권하며 나이 80이 다 될 때까지 장수하였다. 조두남에게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먼저 세상을 떠나고 조두남의 뒤를 이은 황제는 손자인 조민수였다. 한편 조두남은 나이 70에 10대 후반의 어린 후비를 들였는데 이름은 루드벨라였다. 루드벨라는 조두남의 아들보다는 스무살이나 어렸고 손자인 조민수보단 열 살 많았다. 한편 루드벨라가 후비가 된지 얼마 되지않아 조두남의 태자가 세상을 떠나자 신료들과 세상 사람들은 혹시 루드벨라가 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 수군댔다. 허나 조두남이 죽고 황위는 손자인 조민수가 10대 후반의 나이에 물려받았고 루드벨라는 조두남과 사이에 소생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조민수는 자신보다 열 살많은 새할머니뻘인 루드벨라와 정사를 종종 의논하였고 때론 딱히 국정을 논할 사안이 없는데도 종종 루드벨라의 처소에 들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이들은 옛 촉의 초대황제 이중완의 후비였던 미주리와 이중완의 장성한 아들 이현우때의 일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허나 루드벨라가 조민수보다는 열 살이나 위였기때문에 그런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회의론도 있었다.
10대 후반에 즉위한 조민수가 20년간 집권하고 그 뒤를 이어 태자인 조방헌이 3대 황제가 되었다. 한편 애초 서량에는 계족의 한 일파가 북서부지역에 ‘촉’을 세웠고 동남부 지역엔 또다른 계족의 일파가 ‘양’나라를 세웠는데, 촉은 오히려 광산지대에 있어 철과 구리가 생산되어 그것으로 중원의 나라의 식량과 교환하는 교역을 하였는데, 양나라는 오히려 광산지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식량생산이 많은 비옥한 토지가 있는것도 아닌 애매한 지역이라 위치가 어정쩡했다. 그래서 처음엔 양이 종종 촉을 침략하였고 이에 후촉 2대 황제 조민수대에 이르러서는 촉과 후촉을 자주 침략하는 양나라를 응징하기로 했다. 조민수는 이채익과 배국남이란 장수를 발탁 이 둘로 하여금 양나라를 침략하게 했고 네차례에 걸친 전쟁 끝에 결국 양나라를 멸망시켰다. 양나라는 후촉에 의해 멸망하자 좀 더 동부지역으로 이동 그곳에 ‘동량’이란 나라를 다시 세우기도 했다.
촉에 이은 후촉도 중원과 교역을 원했고 이때 중원지대는 연나라도 고돌왕국도 모두 멸망하고 도족의 다른 일파가 ‘성위’를 세웠을때인데 그래서 후촉은 성위와 교역하였다. 허나 동량은 후촉이 자신들의 양나라를 멸망시켰다 하여 원한이 많았고 그래서 종종 두 나라 사이의 교역로를 차단 후촉으로 식량자원이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였다. 이에 조민수는 양나라를 멸망시켰던 이채익,배국남 두 장수를 옛 양나라땅의 태수로 임명 그곳을 다스리게 하고, 성위와의 교역로를 차단 훼방놓는 동량을 견제하게 하였다.
한편 이채익과 배국남이 옛 양나라땅 태수가 되어 성위와 통하는 교역로를 지키게 되자 동량은 이 두 장수야말로 자신들을 멸망시킨 철전지 원수라 하여 더 그들을 응징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처음엔 미인계를 써서 어린여자를 이채익과 배국남에게 접근시켜 그들을 해치우려 했다. 허나 이채익,배국남 두 장수 모두 여색을 밝히는 스타일이 아니라 미인계는 실패하였다. 사실 이채익,배국남 모두 본처 이외에 첩을 한둘씩 더 둔 장수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부부관계인 자신의 처와 첩을 지극하 시랑하였으므로 미인계를 통해 다른 여인이 접근할 틈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미인계가 실패하자 이번엔 동량은 두 장수를 모함하기로 했다. 모함의 내용은 이채익과 배국남이 모두 실은 각자 야심이 있어 옛 양나라땅의 태수로 있으면서 반란을 일으켜 후촉을 도모하고 자신들이 황제가 되려한다는 것이다. 허나 후촉의 2대황제 조민수는 물론 그 후임인 3대 조방헌도 모두 현명한 황제라 그와같은 모함에 넘어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바야흐로 이간계를 써서 이채익과 배국남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가 하려 했으나 이간계도 두 사람이 워낙 현명하고 또 서로에 대한 신뢰가 탄탄한 사이인지라 먹혀들지가 않았다. 결국 동량이 이채익,배국남을 해치우고자 세운 세가지 계책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조민수에 이어 3대황제 조방헌도 약 20년 재위 끝에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어 조방헌의 차남 조일수가 황제가 되었다. 조방헌에게 모두 세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나 차남이 황제가 된 것이다. 조일수는 동량이 이채익,배국남을 모함하여 후촉을 혼란에 빠트리려 하였고 교역로 차단을 계속 획책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량을 정벌하려 하였다. 허나 조일수의 동량 정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3대황제 조방헌때에 돌암이라는 괴팍한 이(싸이코패스)가 있었다. 돌암이는 19살 나이에 마을에서 첫 살인을 한뒤 이후 10년동안 20명이 넘는 이들을 연쇄살해했는데 이들이 모두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중반 사이의 나이어리거나 젊은 꽃미남,소년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애초 후촉의 관리들은 첫 살인때는 단순 살인사건으로 생각하였는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인근 마을에도 계속 엇비슷한 형태의 살인사건으로 비슷한 연령대와 상황의 소년,청년들이 살해되어 나가자 누군가의 연쇄살인으로 생각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약 30여리 떨어진곳에 은신해 살며 여전히 연쇄살인극을 꾸민 돌암이를 체포하였다.
돌암이가 체포되었을때는 이미 돌암이의 연쇄살인극이 후촉 전체를 벌벌떨게할 정도는 물론이고 이웃 동량이나 중원에까지 소문이 났을 정도라 황제 조방헌은 돌암이를 황도로 소환 그 죄를 엄히 추궁토록 하였다. 심문을 하니 돌암이는 어려서부터 못생긴 외모로 자격지심이 컸고, 특히 그런점 때문에 이런 외모로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몹시도 원망하였으며 10대 중,후반의 나이에 마음에 드는 몇몇 처자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당함에 이 모든게 자신의 외모탓이라 생각하여 그때부터 젊거나 나이어린 꽃미남을 연쇄 살해한것이라 했다. 조방헌은 격노하여 돌암이를 후촉의 모든 백성들이 보는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하게 했다.
4대황제 조일수는 약 10여년간 후촉을 통치하였는데 20대 중반 나이에 즉위 30대 후반에 세상을 떠났다. 헌데 30대 후반에 나이어린 후비를 들이니 태자가 혹 후비가 아들을 낳으면 자신이 황위 경쟁에서 밀릴까봐 경계하였다. 후비의 이름은 말레나라 했는데 오히려 인심이 후덕하여 태자인 조광에게도 진심으로 잘 대해주려 하였다. 허나 조광은 말레나의 마음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경계하는 마음만 커져갔다. 말레나는 조일수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약 5년간 그의 후비로 있었으나 조일수와의 사이에 소생을 보진 않았다.
허나 조일수의 뒤를 이어 5대 황제가 된 조광은 무작정 말레나를 불러들여 처단하려 하였다. 신하들은 말레나를 ‘계모이나 후덕한 분이었으며 진심으로 조광 태자님을 아껴주신분’이라며 처벌이 불가하다 하였으나 조광은 듣지 않았다. 이러자 조광의 마음을 대충 파악한 몇몇 약삭빠른 신하가 말레나를 모함 더욱 엄벌에 처하도록 하였다. 헌데 조광은 말레나를 바로 처벌하지 않고 일단 감옥에 가둔뒤 며칠간을 고민하였다. 그러다 하루는 연회를 열어 신하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 말레나를 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말레나의 옷을 벗기고 그 음부에 술과 음식등 이물질을 마구 넣으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해 신하들이 기가막혀 했고 차마 그 꼴을 더 볼수 없어 연회장을 떠나는 이도 있었다. 연회장은 파해졌지만 이후에도 조광은 말레나를 바로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둔뒤 이후에도 자주 연회를 열어 그 자리에 그녀를 불러 그런식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신하들이 불가하다 간했으나 조광은 듣지 않았다.
결국 조광의 변태스런 만행을 보다못한 한 장수가 하루는 반란을 일으켜 조광을 전격 체포하였다. 반란을 일으킨 장수는 원기준이란 자로 원래 말레나와 한동네에서 자란 고향오빠였다. 어린시절엔 내심 말레나를 연모하는 면도 있었는데 그녀가 황궁으로 들어가자 마음을 접고 장수가 되었다. 헌데 선황의 후비였던 말레나가 오히려 태자였던 조광이 황제가 된뒤 저런 능욕을 황제로부터 당하자 도저히 두고볼수가 없어 조광을 처단한 것이다.
허나 조광을 처단한 원기준은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될것인지 다른이를 황제로 세울것인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한동안 고민을 하였다. 그래서 후촉은 한동안 황제가 없는 무정부상태가 되었으며 이 틈을 타 동량이 후촉을 침략 결국 후촉도 5대만에 멸망하였다. 후세의 사가들이 평하기를 후촉은 한때 현명한 황제들이 있어 나라를 잘 다스렸으며 특히 동량과의 전쟁을 여러차례 승리로 이끌었으니 이는 가히 이채익,배국남과 같은 출중한 장수 덕분이라 하였다. 동량은 여러차례 후촉과 중원 사이의 교역로를 차단하였으나 이는 단순히 후촉에 대한 원한때문이니 명분이 약하다 하였다. 후촉이 현명한 황제가 있던 시절에는 나라가 잘 지탱이 되었으나 5대황제 조광은 성격이 비뚫어져 별다른 근거도 없이 나이어린 계모를 오해하고 심지어 자신이 황제가 된 뒤엔 자신에게 잘해주었던 계모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으니 불효에 배은망덕한 짓으로 그가 패망한 것은 결국 인과응보라 말하였다.
무안국이라는 총명한 소년이 후촉에 있었다. 12살 나이에 이미 학문에 통달 어려운 경서를 익히기 시작하니 마을과 세상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고을의 현령이 무안국을 불러 그 지혜를 시험하니 현령이 낸 문제를 무안국이 모두 맞춰 현령과 관리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후촉 3대황제 조방헌이 소문을 듣고 무안국을 불러 등용하니 그때 무안국이 15살이었다. 허나 무안국이 너무 어린나이에 벼슬자리에 오르자 시기하는 신하들이 생겨 무안국을 모함하였다. 조방헌은 신하들이 무안국을 모함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무안국을 처벌하지 않으면 신하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결국 무안국의 벼슬만을 거둔뒤 고향에 돌아가 조용히 살게하고 특별히 세상의 경서와 전서를 여러권 선물로 주어 고향에 돌아가 학문에 정진할 것을 권유했다.
고향에 돌아가 학문에 정진하던 무안국은 그러다 나이 스물아홉이란 다소 늦은 나이에 주변인의 소개로 아리따운 처자를 만나 혼인을 할수 있었다. 10년을 함께 살며 아들 둘을 낳았으나 무안국이 나이 40이 되었을 때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무안국은 재혼을 하지 않고 혼자 아들 둘을 키우며 살았으니 그 처량함과 궁상이 이루 말할수 없었다. 아들 둘이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한 뒤엔 타지로 가서 살게 되었으니 무안국의 노년은 자식들도 모두 떠난뒤 혼자 쓸쓸히 살다 세상을 떠났다. 무안국이 어릴 때 총명하여 소년시절 출세하였으나 이를 시기한 신하들의 모함으로 벼슬을 내놓아야 했고, 젊은 나이에 아리따운 처자를 만나 혼인하였으나 10년만에 아들 둘만을 남긴채 상처하였으니 중년에 상처하여 외로와졌고 노년에는 자식들마저 떠나 혼자가 되었으니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이 남자의 3대불행을 ‘소년출세,중년상처,노년고독’이라 말했다.
양나라는 서량의 동남부에 위치해 있었다. 허나 서북의 광산지대에서 철과 구리가 생산되는 촉나라나 식량자원이 풍부한 중원지대에 비해 오히려 광산도 없고 땅도 농사를 지을만한 비옥한 토양이 되지못해 애매한 상황이라 살림살이가 더욱 척박했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중원과 교역을 하는 촉나라의 교역로를 훼방놓거나 아니면 아예 광산지대라도 확보하기 위해 자주 촉나라를 침략 두 나라 사이에 전란이 끊이지를 않았다.
양나라를 세운 초대황제 서무수는 원래 계족의 무인(武人)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무리 100여인을 이끌고 내려와 서량 남동부에 양나라를 세운것이나 지형적으로 많이 불리한곳이라 그로인한 비난을 면키 쉽지 않았다.
서무수에게 아들 넷이 있는데 이름을 서영춘,서영환,서영수,서영서라 했다. 네 아들이 모두 제각기 출중하고 개성넘치는 재주를 지녔다. 우선 첫째 서영춘은 세상의 모든 경전을 통달(* 다만 여기서 ‘세상’이란 진대륙에 국한한다.) 모르는 것이 없었고 둘째 서영환은 출중한 무인이라 일당백의 용사였다. 또한 셋째 서영수는 가무와 그림실력이 뛰어났고 넷째 서영서는 기술이 좋아 쇠붙이 몇조각만 주어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었고 양나라의 고장난 수레나 기기가 있을시 백성들은 무조건 서영서 왕자만 찾아가면 고쳐진다는 속설이 있을정도였다.
첫째 서영춘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둘째 서영환이 황위를 물려받았다. 서영환이 20년간 통치한뒤 황위는 그 아들 서경준이 물려받아 3대 황제가 되었다. 서경준에게 딸이 셋 있었는데 이중 셋째공주가 하루는 평범한 농부출신의 청년과 눈이 맞아 황궁밖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서경준이 격노하여 공주와 농부청년을 붙잡아오라 했다. 황제앞으로 끌려온 농부청년은 오히려 굴하지 않고 공주를 진심으로 사랑하니 혼인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서경준은 이에 자신이 내는 세 문제를 모두 맞추면 공주와의 혼인을 허락할것이나 맞히지 못하면 ‘네 목숨을 거둘 것이다’라고 했다.
우선 서경준은 테이블에 성냥개비 네 개를 올려놓고 십(十)자 모양을 만들고 청년에게 명했다. ‘만약 여기서 성냥개비 하나를 움직여 ’네모‘ 하나를 만든다면 네 목숨을 살려줄것이나 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죽게될 것이다’ 하였다. 성냥개비는 십자모양이나 자연스레 끝부분인 서로를 마주대하는 형국이 되어 있었는데 청년은 망설임없이 그중 맞닿아있는 성냥개비 하나를 살짝 위로 잡아당겼다. 성냥개비 네 개의 끝부분이 맞닿은 공간이 살짝 넓어져 틈이 생기며 바로 ‘네모’ 모양이 되었다. 지켜보는 대소신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이번엔 서경준이 두 번째 문제를 내었다. 이번엔 물컵과 종이 그리고 날계란 하나를 가져오게 하였다. 서경준은 우선 테이블에 물컵을 올려놓은뒤 그 위에 종이를 얹어놓았다. 그리고 종이위에 날계란을 살짝 올려놓은뒤 말했다.
“ 컵이나 계란에 손대지 않고 이 계란을 물이 담긴 컵안에 넣어보아라. 그럼 너와
공주의 혼인을 한번 고려해보겠다. 허나 하지 못할시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
그러자 청년은 망설임없이 종이를 잽싸게 잡아뺐다. 그러자 계란은 잠시 종이가 빠진 공간에 붕 뜬 듯 하더니 바로 아래로 떨어져 결국 물컵안에 담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역시 대소신료들이 모두 탄복해 박수를 쳤다. 그러자 서경준은 이번엔 세 번째 문제를 냈는데 두장의 종이위에 뭔가를 적은뒤 그것을 반으로 접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반으로 접혀진 종이라 무엇이 종이안에 쓰여져 있는지 알수가 없었는데 그것을 보며 서경준이 명했다.
“ 이 두장의 종이에 하나는 ‘결혼’ 하나는 ‘사형’이란 단어가 쓰여져있다. 네가 ‘결혼
’을 택하면 공주와의 결혼을 허락할것이요, ‘사형’이란 단어를 선택하면 바로 그대
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
허나 실은 두장의 종이엔 모두 ‘사형’이라 적혀있었다. 청년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가 종이 하나를 먼저 집어서 안의 글씨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말했다.
“ 이제 남은 한 장의 종이에 무엇이 쓰여저 있는지를 확인하면 제가 먼저 선택한 종
이에 무엇이 쓰여져 있었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되겠군요. ”
서경준은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체념하고 공주와 농부청년의 혼인을 허락하였다. 다만 황도밖 멀리 떨어진곳에 살도록 하여 그곳에서 말썽없이 조용히 살 것을 명하였다.
서경준이 아들이 없어 그 동생 서동준의 아들 서태원이 4대황제가 되었다. 서태원이 15년간 집권한후 그 아들 서지영이 5대황제가 되었고 5대 서지영의 뒤를 이어 동생 서지원이 6대 황제가 되었다.
원래 진대륙 노나라에는 잡극,창극,경극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종류의 연극이 있었다. 그리고 북방 유목민들도 자기네들끼리 전통적으로 공연해오는 연극공연이 있었는데 이를 ‘원극(原劇)’이라 불렀다. 원극 문화와 풍습은 5호 16국이 중원지대로 내려와 나라를 세운뒤에도 이어져 내려왔는데 특히 이때 양나라에는 페넬로페란 유명한 원극 작가가 있었다. 네 개의 작품이 있었는데 모두 인간의 삶속에서 일어날만한 갈등,질투,욕망등을 그려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네 개의 작품중 첫 번째 작품은 ‘복수혈전’이라고 했는데 부왕의 젊은 후비와 장성한 아들이 짜고 왕을 살해하니 젊은 후비의 아들이 이복형과 자기 엄마의 관계와 음모를 알아차리고 이를 세상에 폭로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작품은 ‘애정단심’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장애가 있는 고관대작이 어여쁜 흑인여성을 후처로 들인다. 헌데 이 흑인여성과 나이든 장애인이기까지 한 고관대작 사이를 이간하는 자가 있어 장애가 있는 고관대작이 흑인아내의 정절을 의심 살해하는 내용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여인별곡’으로 옛날 어느나라에 젊어서 남편을 잃고 혼자 딸 셋을 키우며 나라를 다스려온 그런 나이많은 여왕(女王)이 있었는데, 여왕이 나이들어 자신의 딸들에게 영토를 셋으로 나눠 물려주려 했으나 나중에 딸 셋이 모두 여왕이었던 어머니를 배신하게 되고 늙어 딸들에게 배신당한 여왕이 길게 탄식을 하며 죽어가는 내용이었다. 네 번째는 ‘요설혹망’이란 작품이었는데 어떤 요사스러운 마녀로부터 ‘나중에 황제가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은 필부가 그 예언만을 믿고 살아가다 패망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 네 작품이 양나라는 물론 중원에까지 퍼져 여러차례 많은 원극단,잡극단,창극단,경극단에 의해 개작되어 수도없이 공연되었다. ‘페넬로페의 4대비극을 보고 울지않은자는 지성체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바야흐로 황제도 기이하게 여겨 작가 페넬로페를 불렀다. 이때가 5대 황제 서지영때다.
기이하게 여긴 황제가 페넬로페에게 물었다.
“ 대체 네 그 신묘한 글재주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 ? ”
이에 페넬로페가 답했다.
“ 제 목덜미에 어릴때부터 작은 혹이 하나 나 있는데 아무래도 제 재주는 그 혹에
서 나오는 것 같사옵니다. ”
황제가 믿을수 없어 확인해보니 일단 혹이 있는것인 사실이었다. 허나 글재주가 혹에서 나온다는 말만은 믿을 수 없어 우선 이와같이 물었다.
“ 네가 작품 하나를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이더냐 ? ”
“ 중편 정도의 작품은 보통 15-20일 이내면 거뜬히 쓸수 있사오나 장편은 한달이
넘을수도 있사옵니다. ”
황제 서지영이 페넬로페의 말을 듣고 명했다.
“ 네게 20평 정도의 공간이 있는 방을 하나 특별히 내어주마. 욕실과 화장실이 딸
려있으며 물론 밖으로 통하는 창문도 있다. 다만 네가 그곳에서 나올수는 없으며
음식과 술은 네가 원하는 만큼 내가 시자들을 시켜 얼마든지 들여보내주마. 단 너
는 그 공간에서 한달이내에 두편의 중편이나 아니면 한편의 장편을 써내야 한다.
만약 내 명대로 한달안에 이행할수 있다면 네게 후한 상금을 내릴 것이나 한달내
에 이행치 못할시엔 네 혹을 벨것이니라. ”
명을 받고 페넬로페가 창문 하나만 밖으로 통할수 있는 20평짜리 방안으로 들어가니 보는이들이 모두 황제의 뜻을 알 수 없어 두려워하고 우려하였다. 한달이 지나니 마침내 페넬로페가 장편 하나를 써냈다. 그리고 말했다.
“ 애초에 중편 두편을 쓸까 했으나 혹 시간이 부족할 수가 있어 장편을 선택하였습
니다. 그리고 황제께서 명하신대로 장편 하나를 써내었나이다. ”
허나 황제는 페넬로페가 쓴 장편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불에 태워버리고는 페넬로페의 목을 베었다. 세상사람들이 서지영의 뜻을 알 수 없어 탄식하고 아까운 작가 하나가 허망하게 참형에 처해진 것을 안타까와 하였다.
양나라가 본래 토질이 좋지 않고 자원이 많지 않아 중원과 교역하는 방식과 촉을 침략 광산지대를 차지하는 두가지 방식중 하나를 택할 생각이었으나 중원과의 교역은 일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광산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자주 촉을 침략하였고 그때마다 격퇴당하였다. 촉과 그 뒤를 이은 후촉이 결국 자신들을 자주 침략해온 양나라를 뿌리뽑아야겠다는 생각에 이채익과 배국남을 보내 결국 멸망시켰다. 이에 양나라인중 일부가 좀 더 동쪽으로 땅을 옮겨 새 나라를 세우고 나라이름을 ‘동량’이라고 지었다. 허나 동량은 중원의 고돌왕국이나 그 뒤에 세워진 성위와 국경을 맞닥뜨리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지형지세는 더 불리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중원의 고돌왕국은 원래 다른 이민족의 나라와 교역 자체를 탐탁찮게 여겼고, 그 뒤를 이은 성위는 촉과 교류하였으나 촉의 사신들이 연달아 성위를 방문 그곳 황제와 대신들에게 늘상 동량을 헐뜯었기 때문에 성위의 황제와 신료들에게 양나라나 동량의 이미지는 좋지 못했다. 촉의 입장에선 늘상 자신들을 침략하고 심지어 중원과의 교역로마저 훼방놓는 양나라에 좋은 감정을 가질수가 없었겠으나 그 험담을 성위의 황제와 대신들에게까지 했으니 양나라로선 더더욱 공교롭고 난감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동량을 세운이는 원래 양나라 장수였는데 원래 성이 없었으나 나라를 세운뒤 자신의 성을 ‘망절’씨라고 지었다. 이름이 본이니 ‘망절본’이 되었다. 망절본이 나라를 세운지 5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 태자 망절연재가 2대황제가 되었다. 망절연재는 양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지역 태수가 된 이채익과 배국남을 해치우고자 여러차례 계교를 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는수없이 동량은 여전히 중원과 촉사이의 교역로를 막고 훼방놓는 방식으로 나라를 지탱해갔다.
망절연재가 20여년간 통치하고 그 뒤를 이어 망절상태가 3대 황제가 되었다. 원래 망절연재에겐 모두 다섯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병으로 둘째는 사고로 일찍 죽고 막내아들마저 요절함으로써 셋째 망절상태와 넷째 망절상호만이 남아 셋째 망절상태에게 황위를 물려준 것이다.
망절상태때 OO 고을에 미야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미야는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고 스무살이 될때까지 장사를 하는 한 이웃집에 입양되어 살다가 스무살 많은 홀아비에게 시집을 갔다. 헌데 그 홀아비에겐 무려 일곱명이나 되는 자녀가 있었다. 허나 미야는 그 일곱명의 자녀를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친자식처럼 품어 키우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라하고 그 후덕한 성품을 칭송하였다. 망절상태가 소식을 듣고 미야라는 여인을 직접 보고자 황궁으로 불렀다.
“ 어린나이에 일곱이나 되는 자녀가 있는 홀아비에게 시집가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
거니와 그 전처소생 자녀를 한둘도 아니고 일곱이나 키우는 일은 더더욱 보통일이
아니었을것이오. 헌데 그대는 어찌 그와같은 선택을 하고 그런일을 능히 해낼수 있
었소이까 ? ”
미야가 황제께 절을 올린뒤 미소를 머금으며 차분하게 답을 하였다.
“ 제 낭군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떠돌던 저를 거두어주었으니 제겐 은인과도 같은
존재요 그 은혜를 갚고자 낭군의 자녀들을 친자식처럼 키웠을 뿐이외다. 은혜를 갚
으니 이는 곧 지성체의 도리라 할만하외다. 또한 여인은 본래 자신이 임신을 하여
자기 배속으로 아이를 낳으나 자신의 배아파 낳지 않은 아이를 거둠은 곧 가슴으로
아이를 품는다 할것이외다. 제가 비록 나이 어리나 여린 가슴으로 일곱 아이를 품
었을 뿐이외다. 배아파 낳은 자식에게 갖는 여인의 감정은 본능지심이요, 가슴이
아파 품은 자식은 곧 측은지심이라 하였소이다. 저는 다만 측은지심과 보은의 도리
를 다 하였을뿐이옵니다. ”
황제가 미야의 덕을 칭송해 이를 기리기로 했다. 미야에게 은덕부인(功德婦人)이란 시호를 친히 내리고 시인과 작가를 불러 그녀의 덕행과 삶을 기리는 시와 극을 짓게 하였다.
망절상태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망절희재였다. 허나 어린시절 사고로 머리를 크게다쳐 이후 ‘지적장애’를 갖게 되었다. 나이 열다섯이 되도록 그 언행이 다섯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 같았으며 비가오거나 천둥,번개가 치는날이면 발작증세를 일으키기도 했다. 망절희재가 발작증세를 일으키면 황궁을 뛰쳐나가 저자거리를 떠돌며 이런 소리를 외쳐댔다.
“ 나는 듣보잡이다 !!! 멸치대가리 같은 세계적인 미학자가 될테다 !!! 음양의 조화
가 있어야 고기가 나온다 !!! 음양의 조화가 있어야 고기가 나온다구 !!! 아자자자
자자자자자자자~~~!!! ”
망절희재가 발작을 일으키며 저자를 떠돌때는 시자들이 모두 당황해 쫒아가 그를 만류하여 궁으로 데려오는일을 반복하였다. 망절희재가 궁을 나가면 때론 족히 3-4일은 지나 빗물과 흙탕투성이가 되어버린 몰골로 발견되곤 했으니 시자들이 모두 괴로워하며 탄식하였다. 결국 망절상태는 대신들을 불러 망절희재의 일을 논하기로 했다.
“ 내 아들 희재는 어릴 때 뇌를 다쳐 이후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하게 되었으니 황위
를 물려받기는커녕 내가 죽은뒤 저 아이의 삶을 어찌 보전할수 있을지 그 조차 걱
정이 클 판이오. 경들에게 어떤 대책이 있다면 말해보시오. ”
먼저 제1대신 나카무라가 간했다.
“ 어느 창살없는 감옥같은 큰 공간을 만들어 망절희재를 그곳에 가둔뒤 나오지 못
하게 하여 물과 음식을 주지않아 자연스레 사망에 이르게 하면 어떻겠나이까 ?
왕자를 고통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니 그나마 왕자마마에 대한 배려가 될 것
이옵니다. ”
허나 망절상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굶어죽은 것을 차마 볼수 없어서인지 거절하였다. 이번엔 제2대신 무라야마가 간했다.
“ 어느 산골마을 같은곳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왕자마마가 조용히 살다가게
하면 어떨련지요 ? 인적이 미치지 않는곳에 그런 처소를 마련해놓으면 다른 백성들
에게 민폐를 끼칠일도 없을것이오 왕자마마를 굶어죽지 않게 하면서도 그런곳에 숨
어 조용히 살다가게 해드릴수 있는 방편이 될수 있을것이옵니다. ”
허나 망절상태는 황궁에서 고이자란 왕자가 어찌 그런 산골생활을 견딜수 있겠냐며 그조차 거부하였다. 그러자 이번엔 제3대신 노무라가 간했다.
“ 사약을 매일같이 조금씩 먹여 서서히 왕자마마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은 어떠
하올련지요. 약이란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오나 조금씩 먹으면 그 성분이
자연스레 몸에 쌓이게 되는것이니 왕자마마를 고통없이 돌아가시게 할 수 있는 방
편일것이옵니다. 왕자마마는 사약도 음식이니 굶는일은 없을것이오 왕자마마는 자
신이 죽어간다는 사실도 모른채 고통없이 태평하게 돌아가실수 있을것이옵니다. ”
“ 이 X !!! 넌 지금 내 아들을 독약을 써서 죽이자는것이냐 ? ”
격노한 망절상태가 그 자리에서 노무라를 베어버렸다. 망절상태는 하는수없이 왕자를 황궁 어느 어둡지만 습하지 않은방에 유폐시키고 그곳에 물과 음식을 조금씩 주어 그렇게 살다 가게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망절상태가 자손으로 하여금 황위를 이어가게 할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그 뒤를 이어 아우 망절상호가 즉위하였다. 망절상호는 2대황제 망절연재의 넷째아들이었다. 허나 망절상호때 급기야 후촉이 성위와 연합 동량을 침략하여 동량은 4대만에 멸망하였다. 후촉으로선 여전히 자신들의 교역로를 막으며 또한 자신들을 침략할 뜻을 버리지 않은 동량이 계속 두통거리가 되어 결국 중원의 성위와 연합하여 동량을 치기로 한 것이다. 성위는 본래 동량과 특별히 원한살일이 없었으나 촉의 사신들이 올때마다 항상 양나라와 동량을 헐뜯었으니 자연스러 양과 동량에 대한 감정과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되어 후촉의 연합군 제안에 응해 결국 동량을 멸망시킨 것이다.
동량이 4대 망절상호의 대에 이르러 멸망하였으나 망절상호의 아들 망절대우가 마지막 부흥운동을 벌이려 하였다. 망절대우는 자신을 따르는 1백의 무리와 함께 앞에는 강을 끼고 뒤에는 수풀이 우거진 어떤 마을로 들어갔다. 서량이 본래 산악지대이나 동량과 중원 사이에는 그런대로 큰 강이 하나 흐르고 있었는데 그 뒤쪽 마을이 의외로 천연요새가 되었다. 무엇보다 북방 유목민들은 대개 초원이나 산,평야지대의 싸움에 익숙하지 수전에는 능하지 못해 강을 앞으로 하고있는 마을을 쉬이 쳐들어가지 못하는 천연 요새가 되었다. 결국 망절대우는 1백인과 함께 그 강을 낀 요새같은 마을에서 버티며 끝까지 항전하였으니 훗날의 사람들이 이를 두고 ‘1백인의 결사대’라 평가하였다. 허나 계족이 세운 촉,후촉,양,동량들도 결국 백수십여년만에 허망하게 모두 막을 내린 것이다.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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