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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러블리즈 베이비소울 (5) 걸그룹 팬픽 9 (러블,오마)



           

                                       평행우주 이야기 – 2. 열국 쟁패기





 5호16국중 고돌왕국은 걸족 제1부족 부족장인 고재열이 세운 나라다. 고돌왕국은 옛 노나라 하북지역 기주와 병주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고재열은 고돌왕국을 세운뒤 자신과 함께 나라를 세운 걸족의 공신들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했고 노나라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다. 한편 고재열은 같은 걸족이 세운 탁현민의 탁돌왕국과 김용민의 용돌왕국과 연대하기를 희망했으나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이 애매한 태도를 취해 뜻이 이루어지진 못했다.

 고재열이 20년 재위 끝에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 고동준이 2대 황제가 되었다. 2대 황제 고동준은 도족이 세운 연나라가 쇠락해져가는 틈을 타 연나라를 침략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했다. 연나라는 2대황제 존콜리가 황후 제이미에 의해 독살되고 제이미가 그 아들을 어린 황제로 세우고 수렴청정을 했으나 제이미의 국정운영 능력 부족으로 나라가 쇠락해져갔는데, 이때 고동준이 연나라를 침략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한 것이다.

 고동준은 40년간 즉위한뒤 65세로 세상을 떠났고 아들 고상이 있었으나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 그 아들(고동준의 손자) 고경이 3대 황제가 되었다. 고경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가 제1황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고웅이고 둘째가 제2횡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고홍이다.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열다섯살 차이였는데 고경이 15년의 재위 끝에 세상을 떠나자 처음엔 제1왕후 소생 고웅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허나 고웅에게 소생이 없어 아우인 고홍에게 후계자리를 물려주기로 약속했는데 이후 뒤늦게 고웅이 다른 후궁에게서 소생을 보자 그 아이를 왕위에 올리려 했다. 이에 분노한 고홍이 반란을 일으켜 4대 고웅에 이어 5대 황제가 되었다. 고홍은 20년간 즉위한뒤 그 아들 고민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고민대에 반란이 일어나 고돌왕국은 멸망하였다. 원래 고돌왕국이 처음 하북의 기주와 병주지역을 장악하고 나중에 연나라를 멸망시켜 중원까지 장악한것인데 도족의 연나라가 옛 노나라 백성들과의 포용정책을 편 반면 걸족의 고돌왕국은 노나라 백성들을 노예로 삼고 심하게 탄압하고 핍박해 여기에 들끓던 옛 노나라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결국 고돌왕국이 멸망한 것이다. 고돌왕국이 멸망한뒤엔 중원땅엔 또다른 도족이 내려와 ‘성위(成魏)’라는 나라를 세웠다.

 탁돌왕국은 고돌왕국의 동남쪽인 병주 일부와 삭주 일부를 차지했는데(* 삭주는 병주와 기주 남쪽에 위치), 고돌왕국과의 연맹은 거부한 반면 용돌왕국과는 오히려 동맹을 맺었다. 용돌왕국은 삭주와 청주 일부지역을 차지했다.

탁돌왕국의 1대황제 탁현민이 15년 재위 끝에 사망하고 그 아들 탁형춘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탁형춘은 용돌왕국과 연대를 꾀해 유족이 세운 태을국과 동을국을 침략하였다. 태을국은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의 연합공격으로 무너져내렸고 동을왕국도 좀 더 동남쪽으로 쫒겨 내려갔다.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이 처음 연합군을 조직 태을국을 멸망시키고 동을국을 몰아냈을시 애초엔 태을국과 동을국의 영토를 반씩 나눠갖기로 했다. 허나 탁돌왕국이 약속을 어기고 태을국과 동을국 옛 영토를 모두 차지하려 하자 용돌왕국이 반발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탁돌왕국과 용돌왕국 사이의 전쟁은 10년동안 무려 7차례나 벌어졌는데, 탁돌왕국 치세로는 2대 탁형춘의 뒤를 이어 그 아들 3대 탁재인 대(代)까지 2대에 걸쳐 벌어진 전쟁이었다. 용돌왕국과의 거듭된 전쟁으로 탁돌왕국은 쇠락해져갔는데, 3대 탁재인의 아들 탁원제가 4대 황제에 올랐을때까진 그런대로 명맥이 이어져내려갔다. 그러나 5대 탁재훈대(代)에 이르러 결국 농민반란과 사이비 종교세력의 발호로 멸망하고 말았다.  

용돌왕국 황제 김용민은 본래 걸족의 제3부족 부족장이었는데 덩치가 크고 기골이 장대해 어려서부터 용호장사(龍虎壯士)란 별명을 얻었다. 용돌왕국은 고돌왕국이 차지한 병주와 삭주지역 이외 나머지 지역을 차지했는데, 아무래도 영토가 상대적으로 좁아 탁돌왕국과 연합 유족이 세운 태을국과 동을국을 침략한 것이다. 헌데 애초 태을국과 동을국의 영토를 반씩 차지하기로 한 약속을 탁돌왕국이 어겨 용돌왕국과 탁돌왕국의 10년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용돌왕국 초대황제이자 어려서부터 ‘용호장사’라 불렸던 김용민은 25세에 즉위 113세까지 살아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초(超)장수했다. 김용민에겐 25살 어린 용철이란 이복동생이 있었는데 김용민이 너무 장수하자 왕위를 물려받을 가망이 없다하여 결국 반란을 일으켜 김용민을 살해하고 2대황제가 되었다. 허나 용철 역시 황제 즉위 당시 70대 후반의 고령이었던지라 즉위한지 3년만에 세상을 떠났고 용철의 아들도 용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용철의 손자 용수가 3대황제가 되었다.

 용돌왕국의 원래 영토는 고돌왕국은 물론 탁돌왕국의 그것보다 훨씬 작았지만 오히려 용돌왕국 영지내에는 금광이 있어 용돌왕국은 그곳에서 채굴한 금을 이웃나라에 팔며 부자가 되었다. 헌데 애초 용돌왕국의 금광은 민간 장사치가 채굴하여 자발적으로 이웃나라에 수출하는 수출입형태로 관리가 되었으나 3대황제 용수대에 이르러 그것을 국가소유로 전매(專賣)하려 하였다. 이에 장사치들이 불만을 품고 용수를 살해 이후 용돌왕국의 땅을 옛 노나라 동남쪽에 위치한 ‘동남국’에 바치려 하였다. 허나 동남국과 용돌왕국은 거리상 다소 먼거리라 동남국이 직접 통치하기엔 한계가 있어 용돌왕국 옛 영토는 한동안만 형식적으로 동남국의 소유가 되었지 이내 머지않아 다른나라들이 그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태을(太乙)국과 동을(東乙)국은 유족이 세운 나라였는데 모두 하북의 남쪽 지역인 청주와 삭주 일부지역에 터전을 점았다. 애초엔 유족에 용팔이와 덕팔이란 자가 있었는데, 노나라가 멸망하고 하북지역이 쇠락해진 빈틈을 타 하북 남부지역까지 내려와 태을국(太乙國)을 세운 것이다. 허나 태을국을 세울 때 애초에 용팔이와 덕팔이가 함께 웠으나 나중에 덕팔이가 배신하여 동을국(東乙國)을 세우는 바람에 이렇게 태을국이 둘로 갈라져 태을국과 동을국이 된 것이다.

 태을국 초대황제 용팔이에겐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나온 병팔이와 두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성팔이란 아들이 있었는데 병팔이는 유족의 유목민 시절 낳은 자손이라 애초부터 황제고 뭐고 이런데에 관심이 없이 혼자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에 용팔이는 두 번째 부인에게서 나온 성팔이를 왕위에 올리려 했는데, 태을국 백성들은 오히려 ‘적장자 계승 원칙’이란게 있으니 병팔이가 왕위에 올라야 한다 주장하였다. 허나 용팔이를 따르는 조정중신들은 병팔이는 오래전에 왕위계승을 포기하고 혼자 세상을 떠돌고 있으니 자격이 없고 용팔이에게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있는 둘째 성팔이가 왕위를 계승받음이 마땅하다 간하였다. 우스꽝스럽게도 병팔이와 성팔이 당사자 의견과는 관계없이 태을국 백성들은 병팔이를 조정중신과 공신들은 성팔이를 선호하는 모양새가 그려진 것이다. 일단 태을국은 용팔이가 사망한뒤 조정중신들과 공신들의 지지를 받아 2대 황제가 되긴 했으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결국 나라가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탁돌왕국과 용돌왕국 연합국이 공격해와 2대 35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덕팔이는 원래 유족시절부터 용팔이와 동고동락하던 사이로 처음엔 함께 태을국을 세웠으나 이후 배신하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따로 ‘동을국’을 세웠다. 애초 둘이 함께세운 태을국의 영토가 반으로 갈라진 셈인데 동을국의 영토는 태을국 원래 영토의 40% 정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덕팔이는 본래 여색을 밝히는 자로 동을국 황제가 된뒤 모두 열명의 후궁을 두었다. 후궁은 ‘선녀(仙女)’라 부르게 했다. 덕팔이는 성선녀,을선녀,지선녀,홍선녀,계선녀,보선녀,희선녀,영선녀,우선녀,노선녀등 모두 열명의 후궁을 두어 이들과의 사이에 모두 30여명의 왕자와 20여명의 공주를 낳아 적어도 황실만은 번창하게 되었다. 허나 덕팔이는 말년에 막내선녀 노선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짤막이를 후임 황제로 세우려 했는데, 여기엔 당연히 노선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다. 이때 짤막이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말년에 죽을때가 다 된 덕팔이가 짤막이를 황제로 세우려 하자 다른 선녀의 소생인 흥부리우스와 놀부리우스가 반란을 일으켜 짤막이와 노선녀를 살해하고 부황(父皇)의 부음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덕팔이가 죽고나서 먼저 놀부리우스가 황위에 올랐으나 흥부리우스는 놀부리우스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성공했을시 자신에게 나눠줄 영지를 주지 않는다며 반발 놀부리우스마저 살해하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허나 이때는 이미 동을국은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의 연합공격을 받을때였다.

 태을국은 이미 멸망하였고 이어 동을국마저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의 공격을 계속 받고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히 덕팔이가 세상에 남긴 30여명의 왕자중 상당수가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힌 용장들이었다. 따라서 처음엔 탁돌왕국,용돌왕국의 침입에서 오히려 동을국이 계속 승리 적군을 격퇴시켰으나 두 나라의 침입이 계속되면서 점점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흥부리우스는 결단을 내려 동을국의 영토를 옮기기로 하고, 이 무렵엔 덕팔이가 남긴 왕자들중 상당수도 탁돌,용돌왕국과의 전란 끝에 모두 전사한 뒤였다. 그리고 흥부리우스가 무리를 이끌고 좀 더 동남쪽으로 이동 그곳에 다시 나라를 세우고 이름은 ‘동을국’을 계속 이어갔다.

 동을국의 새 영토는 다름아닌 ‘대장강’을 사이에 두고 동남국과 인접한 지역이었는데, 대체로 기름진 평야와 간간이 수려한 산세와 강,수풀로 이루어진 그런 지형이었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소금산지이기도 했으며 또한 서남부 일부 지역은 특이한 토질을 지닌곳이 있어 이곳에선 ‘석용’과 ‘우달수’라는 특이한 약초가 자라고 있었다. 석용과 우달수는 복용할시 90노인도 득남을 하고 15세 소녀도 능히 백명을 상대할수 있는 여장부로 만들어준다는 힘을 가진 신비의 약초로 원래는 예전부터 이 일대 남서부특이한 토질의 지역에서 자연산으로 났으나 흥부리우스가 그 효능과 잠재력을 알고 이후 인공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소금과 석용,우달수는 동을국의 전통적인 수출품목이 되었다.

 동을국은 동남국과는 동맹을 맺었고 하지만 먼저 자신들을 침략하였던 걸족의 탁돌왕국,용돌왕국과는 계속 불편한 관계가 이어져갔다. 흥부리우스는 이에 도족의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과 연주를 세운 고돌왕국과 동맹을 맺기 원했으나 고돌왕국의 왕실도 원래 유족이 세운 동을국을 탐탁찮게 여기고 있어 동맹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고돌왕국,탁돌왕국,용돌왕국에 모두 둘러싸인 모양새가 된 동을국은 진대륙의 대장강 북쪽 중원에선 동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오직 동남국하고만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고립된 나라로 자국에서 나는 특산물을 수출하는것으로만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한편 동을국의 황실은 이때까지도 성씨가 없다가 바야흐로 이때 흥부리우스가 황실의 성을 지었는데 이를 덕흥씨(德興氏)라 했다. 흥부리우스도 이에 덕흥부가 되었는데, 약 30년의 재위 끝에 세상을 떠나고 이후 덕흥부의 장남 덕흥수완이 왕위를 이어받았다. 동을국의 황제 대수(代數)를 덕팔이때부터 따지면 이때 덕흥수완이 5대가 되는 셈이나(2대 짤막이, 3대 놀부리우스, 4대 흥부리우스) 흥부리우스가 새로운 지역을 영토로 삼고 황실의 성을 만든 덕흥부를 초대황제로 친다면 덕흥수완은 2대가 된다. 덕흥수완에 이어 그 장남 덕흥우길, 차남 덕흥칠우가 각기 10년씩 재위를 했고 이때까지만 해도 동을국은 커다란 변란은 없이 대체로 평온한 치세가 이어져갔다. 다만 동남국하고만 동맹을 맺은채 고돌왕국,탁돌왕국,용돌왕국과 불편한 관계인 상태에서 소금과 신비의 약초 석용,우달수를 재배,생산,수출하는것만으로 나라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덕흥부로부터 따지면 5대째가 되는 덕흥칠우의 아들 덕흥우식때 동을국 남서부 지역에 한 이인(異人)이 태어나 열두살 때 큰 바위를 손수 옮길수 있고 15살 부터는 옛 노나라의 병서들을 수집해 모아 스스로 병법을 공부한 아이였다. 이름은 임두만이라고 했는데 덕흥우식이 소문을 듣고 그 재주를 이채롭게 여겨 불러들였다. 이에 임두만이 덕흥우식에게 이렇게 간했다.

 “ 동을국은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의 거듭된 침입으로 동남부로 밀려나 오늘날 이곳

  에 터전을 잡게되었사옵니다. 허나 지금은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이 서로간의 전쟁으

  로 피폐해졌고 내부적으로도 변란이 끊이지 않아 쇠락해져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땅히 선대의 원한을 갚고 옛 영토를 회복할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또한 동을국은 고돌왕국,탁돌왕국,용돌왕국에 둘러싸여 고립된 상황이니 그 고립

  무원의 상황을 극복할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이옵니다. 어찌 폐하께선 이 호기에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을 도모하지 않으십니까 ? ”

 덕흥우식은 그 뜻을 가하게 여겨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을 도모할 계획을 세웠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오히려 신하들은 임두만이 자신이 공을 세운뒤 덕흥우식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거나 황제가 될 욕심이 있는자라 모함하였다. 이에 처음엔 덕흥우식이 신하들의 간언을 믿지 않았으나 신하들이 점점 계책을 써서 덕흥우식과 임두만의 사이를 이간하니 덕흥우식이 점점 임두만을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덕흥우식은 임두만을 가두고 그 삼족을 멸하게 했다.

 10년 세월이 흘러 또다른 이인이 일어나니 북서부 지역에 사는 고하승이란 자였다. 열다섯살 나이에 천리를 달리는 말을 몰줄 알며 백리밖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의 종류를 알아맞힐수 있는 기이한 자였다. 덕흥우식이 역시 이번에도 고하승을 불러 장수로 세우려하니 고하승은 10년전 임두만과 똑같은 취지의 간언을 했다.

 “ 용돌왕국과 탁돌왕국은 이전에 우리를 침략 이 지역으로 몰아낸 불구대천의 원수

  이외다. 무엇보다 우리 동을국은 용돌왕국과 탁돌왕국에 둘러싸여 국력을 더 뻗어

  나가게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사옵니다. 헌데 지금은 용돌왕국과 탁돌왕국이 서로간

  의 전란으로 피폐해진데다가 내부적으로도 계속되는 내분과 반란으로 이제 멸망직

  전에 있습니다. 이제 마땅히 용돌왕국과 탁돌왕국을 도모하면 쇠락해진 두 나라를

  능히 무너뜨릴수 있고 고립무원 상태인 동을국의 한계도 극복할수 있사옵니다. 어

  찌 폐하께선 이 절호의 계회를 보고만 있사옵니까. ”

 덕흥우식이 이에 가하다 하여 고하승의 뜻을 받아들여 용돌왕국과 탁돌왕국을 도모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은 10년전 임두만의 경우처럼 이번엔 고하승도 모함하였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이 공을 세워 세력을 키운뒤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덕흥우식이 고하승을 의심하니 고하승은 덕흥우식앞에 무릎을 꿇고 칼을 손수 바치며 울며 말했다.

 “ 만약 신에게 다른뜻이 있다면 폐하께서 이 칼로 손수 신의 목을 치시오소서. 신에

  겐 오직 동을국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고픈 충정만이 있었을뿐인데 이런 신을 의심하

  신다면 손수 그 칼로 신의 목을 베시옵소서. ”

 덕흥우식은 차마 고하승의 목을 베진 못하였으나 역시 의심은 버리지 못하였다. 고민 끝에 이번엔 고하승을 동을국땅 천리밖으로 추방하라는 영을 내렸다. 그나마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임두만의 경우보단 처지가 낫다는게 신하들이 주고받는 말이었다.

 덕흥우식이 20년만에 죽고 후사가 마땅치 않았는데 그러자 그 조카 덕흥노관이 황실부재의 틈을 타 황위에 올랐다. 그는 덕흥우식의 사촌 덕흥편광의 아들로 덕흥편광은 덕흥우식에게 백부(伯父)가 되는 덕흥우길의 서자(庶子)였다. 헌데 덕흥노관도 불행히도 딸만 다섯을 낳았을뿐 나이 50이 넘도록 아들이 없었다. 이에 대신들이 후비나 후궁을 들일 것을 간했으나 덕흥노관은 후비나 후궁의 자손으로 인해 후대에서 황위를 놓고 변란이 있던 사례가 동서고금에 한둘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하들은 어차피 덕흥노관에겐 아들이 없으니 딸에게 후사를 물려줄수는 없으니 다른 자손을 보도록 후궁이나 후비를 들이라는것인데 무엇이 문제이냐며 거듭 간했으나 덕흥노관은 끝내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10년 세월이 더 지났을 때 덕흥노관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천명(天命)을 받들어 자손(子孫)을 두어 후사를 도모함이 천지의 이치이거늘 무엇

  을 망설이느냐 ? 네 OO월 OO일 OO시에 목욕재계를 하고 OO고을 동남쪽 50리밖

  으로 가면 흰쥐가 나무호랑이를 쫒는 모습을 보리니 나무호랑이 밑에 천려(千麗)

  비단을 보리라. ”

 덕흥우식이 꿈에서 깨 기이하게 여겨 반신반의하며 낮에 OO고을 동남쪽으로 가 보았다. 한 소년이 나무를 베고 있었는데 나이를 물으니 17세라 했고, 띠를 따져보니 ‘쥐띠’였다. 나무의 이름을 물으니 ‘옛부터 이 나무는 장작과 땔감을 쓰는데 많이 애용된 나무로 불에 잘 타고 성질이 거치니 우호(羽虎)나무라 부르옵니다’ 라고 답했다. 이제야 흰쥐가 나무호랑이를 쫒는다는 뜻을 알 것 같았는데 ‘쳔려비단’은 무슨뜻인지 알길없어 고개를 갸웃하였다. 헌데 소년이 말했다.

 “ 저희 고을에 예부터 소문난 규수가 있는데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 ”

 “ 규수라니 ? ”

 “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혼자 홀어머니를 모시며 비단을 짜 시장에 내다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효녀(孝女)가 있사옵니다. 이름은 비천사(飛天使)라 하옵는데, 그 외모가

  몹시도 아리따우나 성품이 올곧고 강직한 면까지 있어 뭇 사내들이 함부로 범접하

  지 못하옵니다. 원하시다면 폐하께 제가 그 처자를 소개시켜 드리겠나이다. ”

 황제가 기이하게 여겨 일단 소년을 따라가니 마을 남동부 다소 후미진곳에 초라한 초가 하나가 있었는데 말하는대로 한 처자가 있었고 이름이 ‘비천사’라 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는데 가난한 살림살이였지만 그 외모만은 십리밖에서도 광채를 느낄정도로 뛰어났다. 황제가 몇가지 물음을 하고는 데려와 배필로 삼았다. 얼마후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진수(眞守)’라 지었다. 황제가 기뻐서 비천사를 소개시켜준 소년에게 상을 주기위해 사람을 불러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으나 막상 신하들이 가보니 애초 소년이 있던곳에 소년은 보이지 않고 ‘우호나무’만 수십그루 보일뿐이었다. 의아해서 마을사람들에게 물으니 ‘이 근처에 그런 소년은 살지 않고, 아주 어릴적 역병으로 죽은 불쌍한 소년이 있는걸로 압니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고 혼자되신 아버지를 모시며 손수 땔감을 지어 아버지를 봉양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역병으로 17세 나이에 죽고 이후에는 소년을 본 사람이 없사옵니다. ’ 하며 마을사람들이 안타까이 여겨 소년이 죽은뒤 묻어준 무덤 있는곳을 일러주었다. 무덤은 우호나무숲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있었는데 소년이 죽은지는 이미 수십년도 더 되어 소년과 일찍이 교류하던 마을벗들중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들은 이미 나이 80을 넘겼다는 것이다. 이에 신하들이 무서워서 공포에 떨었다.





 나이 60에 기이한 꿈이 원인이 되어 아들을 보게 된 덕흥노관은 이후 10년을 더 산뒤 세상을 떠났으며, 기이한 꿈 끝에 보게된 아들 덕흥진수가 열 살 나이라 황위에 올랐다. 한편 이때는 동을국을 핍박하던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은 다 내부의 반란과 쇠락해진 국력으려 멸망한 뒤며 중원에도 고돌왕국이 멸망하고 도족의 (연나라가 아닌) 다른 부족이 ‘성위(成魏)’라는 나라를 세웠다. 고돌,용돌,탁돌왕국과는 달리 도족의 성위는 유족이 세운 동을과는 아무런 악연이 없으니 신하들이 간하여 성위와는 친교를 맺게 했다. 이래서 이 무렵 동을국은 고돌,용돌,탁돌왕국의 침략을 받던 시기와는 달리 동남으로는 대장강 아래의 동남국과 서북으로는 중원의 성위와 친교를 맺으며 자국의 특산물들을 수출하는 교역으로 나라의 부를 키워가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한편 옛 고돌,탁돌,용돌왕국등이 다스리던 하북이 공백상태가 되자 동을의 신하들은 차라리 이참에 북진 하북땅을 동을의 소유로 하자는 신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허나 또 다른 신하들은 공연한 전쟁이나 무리수록 백성들을 피곤하게 하거나 훗날의 화근이 되느니 그냥 이 상태로 이웃나라들과 교역이나 하면서 현상유지를 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렇게 동을국은 자연스레 북진주장파와 현상유지파로 둘로 나뉘어졌는데, 다만 덕흥진수는 우유부단하여 이들 두 파벌의 신하 사이에서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였다.

 열 살에 즉위한 덕흥진수가 재위 30년만에 나이 40을 넘겨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 덕흥태우가 20대 초반의 나이에 즉위하였다. 덕흥태우도 30년을 즉위 나이 50을 넘길때까지 살았고 젊은시절에 본 제1황후와의 사이에 덕흥광일과 덕흥광우란 아들을 보았다. 헌데 나이 50을 넘겨 지혀니라는 제2황후를 맞아들였는데 지혀니와의 사이에 새로운 아들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지혀니는 덕흥태우에게 간하여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올려달라고 말했고 이러자 이때 이미 나이 20대 중반에 접어든 덕흥광일과 덕흥광우는 분개하였다. 덕흥광일과 덕흥광우가 곧바로 반란을 일으켜 부황 덕흥진수를 유폐시킨뒤 지혀니가 낳은 갓난아기를 그 모후인 지혀니가 보는 앞에서 참혹하게 능지처참하고 지혀니는 그 자리에서 갓태어난 아기가 덕흥태우의 장성한 아들들에 의해 참혹하게 찢겨죽이는 모습을 보고 혼절하고 말았다. 허나 여전히 분이 안풀린 덕흥광일과 덕흥광우는 지혀니의 두 눈알을 뽑아 장님을 만든뒤 옷을 발가벗긴뒤 나라의 중죄인들이 수십년째 복역하고 있는 지하감옥에 그녀를 처넣어 죄수들로 하여금 지혀니를 겁탈하게 하였다.

 부황을 유폐시키고 제2황후 지혀니마저 죄수들로 하여금 겁탈하게 하고 지혀니가 낳은 자신들에게 이복동생이기도 한 갓난 왕자까지 참혹하게 살해한 덕흥광일과 덕흥광우. 이중 장남인 덕흥광일이 황위에 올랐다. 20대 중반에 황제가 된 덕흥광일은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황위에 오른지 10년이 지나도록 후사를 보지 못했고 제1황후마저 광일의 나이 30대 중반때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제2황후를 들이긴 했는데 제2황후는 광일과의 사이에 덕흥유진과 덕흥남진이란 두 아들을 낳았다. 허나 제2황후도 덕흥광일이 나이 50이 되었을 무렵 세상을 떠났고, 덕흥광일은 유진과 남진이 나이 서른이 다 될 때까지 그들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이미 덕흥광일은 나이 60대 중반을 지나 7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헌데 이 무렵 한 후궁을 들여 한참 그 어린 후궁에게 푹 빠져있었는데 나이 16세의 예리니란 후궁이었다. 예리니란 후궁은 덕흥광일과의 사이에 딸 둘을 먼저 낳았고 이어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광일과 인연을 맺은지 5년만의 일이었다. 헌데 이번엔 예리니가 덕흥광일과의 사이에서 낳은 어린 아들을 황위에 올리고 싶어해 이번엔 격분한 덕흥유진과 덕흥남진이 반란을 일으켰다.

 유진과 남진은 그 부친 광일이 숙부 광우와 함께 조부 덕흥태우에게 했던것처럼 먼저 덕흥광일을 유폐시키고 광일의 어린 후궁 예리니를 끌어내었다. 유진과 남진은 먼저 예리니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어린 딸 둘을 먼저 잔혹하게 살해했고 이어 역시 갓태어난 예리니의 소생인 그리고 그녀가 황위에 올리기를 바랬던 황자마저 잔혹하게 살해하였다. 유진과 남진은 그것도 모자라 예리니에게 손수 물볼기 백대를 내려친뒤 역시 중죄인들이 있는 지하감옥에 처넣었다. 그리고 지하감옥의 중죄수들에게 예리니를 겁탈하도록 명했다. 그 선대 덕흥광일이 부친 덕흥태우와 그 젊은 후비 그리고 어린 황자에게 했던것과 똑같은 짓을 덕흥유진과 덕흥남진도 그 부친 광일과 어린 후궁 그리고 어린 공주와 황자에게 자행한 것이다.

 허나 광일과 광우때는 덕흥광일이 아우인 덕흥광우의 양보를 받아 무난히 황제가 될수 있었으나 유진과 남진은 달라서 서로 황제가 되려 해 다시 친형제까리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했다. 한편 이 무렵 동을국에는 보황녀라는 여인이 있어 그 출신은 알 수 없고 다만 사람들의 사주,관상등을 보며 앞날을 예언했는데 ‘500년후 동을국에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나올 것’이라 말하며 교리를 전파하니 한때 동을국에 보황녀를 따르는 이가 1천이 넘었다. 심지어 보황녀의 교세는 그 이웃나라에까지 확산될 지경이었는데 이에 골치가 아파진 성위와 동남국도 동을국에 사신을 보내 보황녀라는 자의 행보를 자제시킬 것을 당부하기까지 했다.

 덕흥유진과 덕흥남진은 자신들끼리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서도 보황녀의 존재만큼은 그냥 두어선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결국 보황녀를 끌고와서 요설로 세상을 현혹하는 혹세무민하는 계집이라 하여 처형하였고, 그녀를 따르던 무리들도 멀리 귀양을 보냈다. 헌데 보황녀를 따르던 간부급 인사들을 귀양보내던날 갑차기 천둥,번개가 치며 이례적으로 거센 소나기가 한바탕 몰아치기까지 했다.

 덕흥유진과 덕흥남진은 서로 전쟁을 치르다 둘 다 죽고 말았고 이에 하는수없이 동을국의 대신들은 덕흥광우의 아들인 덕흥윤을 임시 황제로 세웠다. 허나 이때는 동을국마저 쇠락해졌고 한편 보황녀를 처단한것에 앙심을 품은 한때 보황녀의 측근이었던 심재원과 무두리라는 자가 또다시 반란을 일으켜 동을국은 혼란에 빠졌다. 덕흥윤은 아직 나이가 어려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능력이 되지 못했고 신하들은 갈팡질팡 결국 동을국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동을국은 태을국에서 갈라져 나온 덕팔이때부터 치면 14대 175년만에 막을 내렸고, 탁돌왕국과 용돌왕국에 쫒긴 동을국이 흥부리우스에 의해 터전을 옮겨 동남쪽 평야지대에 다시 나라를 세우고 황실의 성을 ‘덕흥씨’로 한 때부터 따지면 11대 150여년만이다. 이후 한동안 중원의 동남쪽이며 대장강 남쪽의 동남국에선 북서지역인 이 일대는 한동안 공백지역이 된다.

 훗날 역사가들이 논하기를 덕흥태우가 이미 장성한 태자와 황자가 있었음에도 젊은 후비를 들여서 낳은 황자를 황위에 올리려 한 것은 분명 잘못이며, 후비인 지혀니 역시 과한 욕심을 부리다 결국 패망한 것이라 평했으나 그러나 부황을 시해하고 부황의 후비를 참혹하게 처단하였으며 비록 어머니는 다르나 아우가 되는 갓태어난 황자까지 참혹하게 죽인 것 또한 잘못이며 매우 지나친 처사라고 하였다. 헌데 그렇게 황위에 오른 덕흥광일이 다시 나이들어 망령이 들어 새로들인 나이어린 후궁에게서 낳은 어린 아들을 황위에 올리려 했으니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망각의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하였다. 헌데 덕흥광일의 어린 후궁과 황자와 공주도 그 선대에서 광일과 광우가 부황의 어린 후궁과 황자를 죽인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참혹하게 살해하고 처단하였으니 이 또한 인과응보의 세상이치가 아닌가 말하기도 했다. 또한 덕흥태우의 젊은 후비인 지혀니나 덕흥광일의 젊은 후궁인 예리니나 똑같이 과도한 욕심을 부려 패망한 것이 사실이나 덕흥광일과 덕흥광우가 비록 나이는 어리나 새어머니뻘인 지혀니를 그리 참혹하게 처단한 것은 인륜을 저버린 패륜적 행위였고 덕흥유진과 덕흥남진이 역시 부황의 어린 후궁에게 참혹하고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 역시 똑같은 패륜이라 말하였다. 패륜의 반복 끝에 동을국은 결국 내부의 반란으로 무너지고 말았으니 이 또한 하늘이 주는 응보라 말할수 있다 평하였다.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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