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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러블리즈 베이비소울 (3) 걸그룹 팬픽 9 (러블,오마)




                                          평행우주 이야기 – 2. 열국 쟁패기





 역적 동완의 세력은 섬멸하였으나 새롭게 황제가 된 유광식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의군을 소집하자는 이야기였는데 새 의군을 세우기도 전에 총수자리를 놓고 조연남과 원광호 사이에 분열부터 일어난 것이다. 허나 자신들끼리 싸우면 결국 유광식만 이롭게 한다는것정도는 알만한 사람들이었기에 일단 새 의군 총수는 조연남-원광호 공동운영체제로 하기로 하고 정 두 사람의 뜻이 안 맞을시엔 제후들의 의결을 거쳐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헌데 원래 17로 의군이었지만 이중 공희준은 유광식의 ‘소 쿠데타’로 감금되고 군사들마저 유광식에게 다 빼앗긴것이고, 기노일,이택행,백승주,미두리,부대원,조홍은 이미 유광식 지지로 돌아선 상황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일수 있는 제후가 얼마나 더 될지가 미지수였다. 일단 새 의군 조직을 위해 제후들 회의를 소집했으나 이 자리에는 원래 조연남을 따르던 영진과 송대성 그리고 하북지역 태수들이라 지금까지 원광호와 함께 움직여온 홍자와 개자추 이들 넷만 모였다. 여기에 조,원까지 합해 달랑 여섯만 모인 셈이니 조연남과 원광호는 기가막혔다. 일단 유광식쪽으로 붙었거나 공희준처럼 사실상 움직일수 없는 상황이 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의 사정을 알아보려했다.

 “ 진달방 태수는 자기네 관할구역 화재진압과 이재민 구호가 다 끝나자 일이 다 끝

  난 것으로 생각 자기네 병사들을 데리고 먼저 영지로 돌아가버렸고 아자개와 홍우

  례의 경우엔 유광식의 철군령을 받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 황제의 명대로 복구부대

  를 편성할 병사들만 남기고 역시 철군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

 “ 미쓰나리는 ? ”

 “ 미쓰나리 태수는 지난번 동완과의 전투때 부상이 악화되어 화재진압때도 사실상

  그 부장들의 지휘하에 진압작전을 펼쳤는데, 미쓰나리의 부상이 갈수록 악화되어

  결국 며칠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구심점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들 역시 사실상

  철군하여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합니다. ”

 “ 라니아케아의 경우엔 어찌되었소 ? ”

 “ 라니아케아는 무슨 이유인지 아예 회의 소집령을 전하러간 사자와의 면담 자체를

  거부하였습니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역시 철군쪽으로 기운 듯 합니다. ”

 “ 허허...이런... 결과적으로 제후들 회의소집에 따른쪽보다 유광식의 철군령을 따른

  제후들이 더 많다는 소리 아니오 ? ”

 “ 그게 무슨 황제의 명을 따른것이오 ? 다들 전란에 지친데다가 팔자에도 없는

  화재진압까지 한달넘게 했으니 마침 철군령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다들 보따

  리를 싸는게지. 에잉~~~!!! 쯧쯧... ”

 조연남과 원광호는 일단 급한대로 자신들을 따르는 영진,송대성,홍자,개자추 이들 넷에 자신들까지 여섯으로만 새로운 일을 도모해보기로 했다. 허나 이들 사이에도 새로운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우선 원광호의 밑에서 하북지역 태수를 하던 홍자와 개자추는 자신들끼리 은밀히 만나 새로운 대책을 의논했다.

 “ 사실 원광호야말로 동완이니 유광식이니 하는자보다 더 위험한자요. ”

 “ 개자추 태수도 그리 생각하시오 ? ”

 “ 생각해보시오. 그동안 원광호 저자가 하북의 총수라는 명목하에 그동안 기주,병주

  ,청주,삭주 4개주에서 백성들을 핍박하고 수탈한게 얼마요 ? 어떤의미에서 하북의

  백성들은 동완의 폭정보다는 원광호의 전횡에 더 큰 고통을 받았소. 게다가 하북의

  총수자리마저 따지고보면 그 선대의 공훈으로 얻은 자리를 명예직처럼 공짜로 물려

  받은 것이 아니오 ? 사실 지금까지 노나라에서 선대의 공훈으로 저런 자리를 받게

  되면 일반적으로는 그정도로 감지덕지 그야말로 명예직으로 대우만 받으며 사는 것

  이 공신가문 자손들이 해온 관례였소. 헌데 원광호 저자는 그런이들과는 달리 정말

  로 자신이 하북지역 왕이라도 된것처럼 행세해온게 문제요. 하북에서 왕노릇 하던

  자가 황제자리인들 꿈꾸지 않겠소. 그러니 우린 하북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유광

  식보다 먼저 제거해야하는게 원광호란 말이오. ”

 소위 하북총수란 명예직(?)으로 있어온 원광호고 자신들은 하북지역 태수라 임지에서 소임을 맡아해온것뿐이라 어쩔수 없이 지금까지 원광호를 따라왔지만 이젠 오히려 천하를 위해 원광호부터 먼저 도모해야한다는게 이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원광호를 명목상으로나마 따라왔던 하북파에 새로운 분열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조연남과 뜻을 같이 해온 영진과 송대성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송태수는 아직도 모르시겠소 ? 조연남이야말로 항차 천하에 더 큰 화근이 될 인

  물이라는 것을 ? ”

 사실 영진과 송대성은 연주와 인근 다른주 경계지역에 있는 군(郡)의 태수로(* 노나라는 주(州 - 자사), 군(郡 - 태수), 현(縣 - 현령) 제도) 염제시대 이후 있어온 지역 변란때 조연남의 도움을 몇 번 받았고 그런 인연으로 조연남과 가까워져온 사람들이다. 허나 그만큼 조연남의 출중한 능력과 실력을 알고있는 이들이기에 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영진이 송대성을 설득했다.

 “ 생각해보시오. 영진은 흑두적의 난이나 어황족의 난때 보여준 그 출중한 무예나

  지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장도 뛰어나 일찍이 간신 엄태호를 성토하는 글로 황

  제의 칭송을 받은일이나 심지어 OO태후의 생신때 노나라 개국공신 김두선과 박정

  만의 공을 칭송하는 글을 올려 바친것도 탁월한 명문으로 세상에 알려졌을 정도로

  글솜씨도 뛰어난자요. 한마디로 문무에 모두 통달한자에 심지어 가무에도 능한자요

  . 한마디로 너무 많은 능력을 한몸에 갖춘 그런자란 말이외다. 무엇보다 저런자는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자만과 독선에 빠지기 쉬우며 남의말을 쉬이 들으려 하지않

  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빠져 모

  든 상황을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해석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만 일이 유리하게 진

  행되도록 그렇게 일을 처리할수 있는 그런 위험이 있는자란 말이외다. - 한마디로

  나를 따르면 정의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불의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질수 있는 매

  우 위험한 자요 !!! 그래도 내 말이 무슨말인지 모르시겠소 !!! - 혹 태평성대라면

  그 탁월한 능력으로 능히 황제를 돕고 백성들의 삶을 편안케 하는 명신이 될수

  있을지 몰라도 난세에는 엄청난 화근이 될 수 있는 자란 말이외다. 만약 하늘이

  이 시대에 저런자를 보낸 뜻이 있다면 둘중 하나일거요. 정말 이 노나라를 환란

  가운데에서 구하기 위해 보내신 영웅이거나 아니면 천하를 더 큰 혼란에 빠트리

  기 위해 보낸 천하의 간웅이거나 둘중의 하나일거란 말이오. ”

 “ 그래서 앞으로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

 “ 어쨌든 지금은 새로운 도적 유광식-백승주의 무리를 토벌하는 것이 급하니 당

  분간은 계속 조연남을 도와야할것이나 이후엔 우리끼리 새로운 일을 도모해야하

  오. 유광식-백승주의 무리를 몰아내고 나면 그 다음 도모해야하는 자가 바로 조

  연남과 같은자란 말이외다 !!! ”

 한마디로 원광호파의 개자추,홍자의 생각이나 조연남쪽의 영진,송대성의 생각이나 대동소이하였다. 네사람 다 원광호든 조연남이든 이들이 세상에 더 큰 화근이 될 수 있는 야심가들이니 제거해야 한다는 소리다. 다만 생각이 다른 것이 있다면 원광호파인 개자추,홍자는 유광식을 도모하기전에 원광호부터 처치하자는것이고 영진과 송대성은 유광식-백승주부터 먼저 몰아낸 뒤에 조연남 문제를 처리하자는 일의 선후순서의 생각 차이만 있을뿐 외형적으로는 조,원을 따르지만 내적으로는 적극적으로 그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홍자,개자추,영진,송대성 네 사람 생각의 공통점이었다. 또 사실 따지고보면 이들 네 사람도 각기 경우에 따라선 천하를 자신이 직접 주도해보고 싶다는 야심도 있었으니 그런면에선 네 사람이 또한 생각이 각자 다르다고 할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미 조연남,원광호 두 사람 사이에 새 의군 맹주자리를 놓고 분열이 있었는데 그 밑의 홍자,개자추 또는 영진,송대성은 그들대로 조연남,원광호를 제거해야한다는 식의 분열이 있으며 그 홍자,개자추,영진,송대성 네사람도 모두 각자가 천하에 뜻이 있으니 그런식으로 분열이 있는 셈이라 분열속에 또 작은 분열이 있고 그 작은 분열속에 더 작은 분열이 있는 그런 형국이었다.

 사실 애초에 17로 의군중 가장 세력이 컸던 것이 조연남과 원광호의 세력이었고 홍자,개자추,영진,송대성도 대략 1-2만 정도의 군사를 이끌고온 만만치 않은 세력이었다. 그 외 나머지 열은 많아야 1만 작은곳은 겨우 1,2천에서 5천정도의 병사만 데려왔으니 군사 세력만은 조연남-원광호쪽 여섯이 나머지 열의 세력보다 대략 2-3배 이상 우위에 있었으나 현재 상황에선 단합이란 측면에서 조,원이 열세에 빠지게 된 셈이다. 오히려 유광식을 지지하기로 한 기노일,이택행,백승주,미두리,부대원,조홍등은 상대적으로 야심이 적었기 때문에 유광식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었던반면 조연남,원광호,영진,송대성,홍자,개자추 이들 여섯은 비록 세력은 컸지만 제각기 다른 야심이 있기에 분열속에 또 분열이 일어나는 그런 형국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다섯은 사실상 철군)





 결국 세력은 약세였지만 대체로 야심은 적은편인 제후들끼리 모인 유광식 지지파와 세력은 강했지만 야심이 만만찮은 이들만 모인 유광식 반대파의 대결에서 유광식 파는 자연스레 새 황제 유광식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는 모양새가 되었고 반대파는 자신들끼리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모양새가 되어가며 양측의 대치가 이어졌다. 한편 장로대신이 된 백승주는 무엇보다 얼마전까지 맹주로 있으면서 조연남과 원광호의 갈등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책략가이기도 한 내정대신 제갈선생과 함께 계책을 의논 조연남과 원광호 사이를 적당히 이간질 시켜가며 내분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어차피 동완의 세력을 몰아내느라 한바탕 큰 전란이 있었고 거기에 황도의 대화재까지 진압 겨우겨우 민심을 수습해야하는 상황에서 또 한바탕 큰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기에 조연남파와 원광호파 사이에 서로를 의심하게 하는 이간책을 써서 내부분열을 유도하는게 더 나을것이란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유광식 반대파는 서로를 의심하며 다투는 상황으로 이르렀고 유광식파는 그 빈틈을 이용 반대파를 기습 하나하나 섬멸시켜 갔다. 유광식파가 반대파를 기습할때는 반대파 여섯제후가 사실상 연합이 불가능할정도로 사이가 틀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한세력,한세력 제압해나갈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유광식 반대파를 제압하고 이를 주도한 조연남과 원광호는 역적의 이름으로 처단되었다.

 새롭게 황제가 되고 반대세력 제후마저 제압한 유광식은 황궁과 황도에 대한 복구작업을 서둘렀고 2-3년 정도가 지나 황도와 황궁은 완전히 복원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대략 70-80% 정도는 그런대로 옛모습을 갖춰가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져가고 있었다. 한편 이 무렵 유광식은 황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황후는 다름아닌 백승주의 측근 제후였던 미두리의 2녀2남중 둘째딸인 여식이었다. 미두리는 백승주와 함께 유광식 지지선언을 한 이후에는 황실 내부문제를 보살피는 내금총장(內禁總長 -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비유하자면 ‘노나라당 천막당사 임시 사무총장’쯤 되는자리)을 맡았는데, 황도 복구작업이 거의 끝나갈때쯤엔 국가의 문화와 교육사업을 책임지는 문교태사(文敎太師)에 임명되었다가 이후 황제의 신임을 점차 얻어가며 급기야 자신의 딸을 황후로 바치게되는 영광까지 얻은 것이다. 미두리의 딸 미황후는 황후가 된지 1년쯤 지나 아들을 하나 낳았고 이름을 유선재라 지었다. 한편 유광식은 신하들의 추천으로 얼마 않가 또다른 후비를 하나 더 얻게 되는데 후노(後盧)의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충신집안 자손인 성삼대란 신하의 딸이었다. 성삼대는 자녀가 딸만 셋이었는데, 이중 둘째딸이 황후가 되었다. 성황후는 유광식과의 사이에 아들 둘을 낳아 이름을 유홍재와 유원재라 지었다.

 사실 유광식이 황제가 되고나서 완전히 태평성대가 이뤄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일단 한실종친에 전국옥새까지 손에넣은 명분이 있고 게다가 동완과의 전쟁때 이룬 공이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황제 유광식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갔으나 천하의 자사,태수들이 모두 유광식에 완전히 복속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연치고는 공교롭게도 유광식의 반대파와 싸울 때 사실상 반기를 들만한 세력이 큰 제후들은 모두 제거한것이나 다름없어, 세력이 작은 자사나 태수들은 한동안 함부로 유광식에게 반기를 들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인사이동 같은 형식을 취해 유광식에게 반기를 들만한 자사나 태수들은 유광식에게 충성할만한 다른 인물들로 자연스레 교체되어가기도 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광식의 정통성 문제에 시비를 거는 목소리도 자연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아무리 황실종친이라지만 14대 염제부터 따지면 20촌이나 되는 먼 친척이고 동완의난을 진압하기 전까진 일개 농사꾼 출신에 불과했던 자를 온전한 황제로 인정할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심지어 유광식이 노나라 황실의 종친이나 후예가 아닐수도 있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고, 유광식이 다스리는 시대를 과연 후노(後盧)의 연장선상으로 볼수 있느냐는 진지한 반론도 나왔다. 일단 14대 염제가 후사없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염제의 조카들끼리의 대란이 약 2-3년간 지속되었고 이후 ‘3조카의 난’을 진압한 동완이 임시로 세운 새 황제가 얼마안가 죽고 그 어린아들 일제(16대 황제)마저 동완이 유폐시키고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세우려 했던 상황에서 일어났던게 17로 의군. 헌데 그 17로 의군이 동완세력을 섬멸하고 동완은 황도와 황궁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상황에서 얼떨결에 황제가 된 유광식. 헌데 유광식은 실제 조서나 칙령에서 무슨 다른 의도나 이유가 있는지 ‘후노’ 혹은 ‘노나라’란 말을 잘 쓰지 않았다. 물론 대신들이 쓰는 공식 문서나 상소등에는 ‘후노’.‘노나라’란 표현이 계속 쓰이고 있었으나 유광식이 웬만하면 ‘노나라’란 표현을 잘 쓰지 않자 결국 ‘혹시 자신이 노나라 황실의 연장선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니냐 ?’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언제부터인가는 실은 동완이 유폐시켰던 일제가 어디엔가 살아있다는 말, 한술더떠 동완도 실은 아직 죽지않고 서량 이북지역 어디엔가 숨어 반격을 별르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 다만 일제 생존설이나 동완 생존설 및 반격시도설은 세월이 훨씬 오래 지난뒤에도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유광식의 정통성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초창기 10여년간은 큰 변란은 없이 비록 위태로운 상황이 다소 있었을지언정 대체로 무난하게 유광식의 치세가 이어져갔다. 헌데 유광식의 치세가 10년이 조금 지났을 때 유광식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실은 동남국이란 곳에서 혼인동맹을 청해온 것이다.

 동남국은 글자그대로 노나라 동남쪽에 위치한 나라 또는 지역이었는데 노나라가 400년(진노,후노 포함) 이상 이어져내려오면서 애증관계가 계속 이어진 지역이었다. 사실 동남국이란 명칭 자체가 노나라에서 그냥 일방적으로 동남쪽 지역이라 부르는 이름이었을뿐, 그곳에는 평균 70-100년정도의 단명 왕조가 몇차례 있기도 했고 또는 통일왕조는 없이 소수부족으로 흩어진 상황이 몇십년간 지속되는 시절도 있었다. 다만 노나라 중원과 동남국 사이에는 ‘대장강(大長江)’이라는 큰 강이 흐르고 있어 노나라는 동남국을 쉽게 도모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대체로 방치상태로 두었던 것이다. - 한마디로 노나라와는 별개의 ‘독립체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보면 된다. (* 진대륙과 남부 이민족 지역 사이에 있는 ‘큰 강’과 노나라 중원과 동남지역 사이의 ‘대장강’은 전혀 다른 강이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이따금 동남국 지역에서 노나라에 저항할 기미가 보이면 노나라가 직접 군사를 보내 정벌한적이 두어차례 있었을뿐 그 외에는 웬만하면 서로 간섭하거나 건드리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 동남국쪽이나 노나라쪽이나 서로가 원하는 바였던 것이다.

 헌데 그 동남국에서 노나라 염제 이후의 혼란기를 틈타 ‘손정활’이란 자가 일어나 동남국 지역 소수부족을 다시 하나로 통합 ‘승도국(承道國)’이란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중원에서 유광식이 황제가 되어 나라가 안정을 찾아갈때 승도국도 거의 동남지역을 통합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중원의 노나라와는 싸우지 않고 친교를 맺어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로 혼인동맹을 제안해온 것이다.

 동남국의 혼인동맹 제안을 받은 유광식은 대소신료들의 회의를 소집 뜻을 물어보았고, 반대의견도 일부 있었으나 상당수가 동남국과 친교를 맺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비쳐 결국 혼인동맹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공교롭게도 유광식은 황제가 되어 복구작업을 거의 마친뒤 미황후와 성황후를 황후로 맞아 세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미황후는 유선재를 낳은지 얼마안가 세상을 떠났고 ‘제2황후’였던 성황후도 유홍재와 유원재를 낳은지 약 5년쯤 지나 갑작스럽게 얻은 병을 오랜시간 앓다가 세상을 떠나 황제가 된지 10년이 조금 넘은 유광식은 현재 황후가 없는 상태였기에 결국 동남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혼인동맹을 맺기로 한 것이다. 동남국은 손정활의 10남1녀(후궁소생 포함)중 막내딸인 여식을 유광식의 세 번째 황후로 바쳤으니 이때 유광식은 이미 40을 넘긴 나이였고 손정활의 막내 여식은 아직 스무살도 채 안된 어린 여자였다.

 한편 유광식은 총 23년간의 치세를 마치고 나이 50을 넘겨 세상을 떠났고, 유광식이 세상을 떠난뒤엔 장남인 태자 유선재가 그 뒤를 이어받아 황제가 되었다. 한편 유광식이 황제가 된지 10년쯤 지났을 무렵엔 유광식이 황제가 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17로 의군의 맹주였던 당시 나이 70의 백승주가 어느덧 나이 팔순을 넘겨 세상을 떠났고 애초에 공희준의 책사로 유광식 3형제를 발탁하였던 제갈선생 역시 유광식이 죽고 유선재가 즉위할 무렵 세상을 떠났다. 한편 백승주는 세상을 떠날 무렵 나라를 위한 ‘11가지 간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제갈선생 역시 ‘17가지 충언’을 새 황제 유선재에게 올리고 세상을 떠났는데 백승주의 11가지 간언과 제갈선생의 17가지 충언에 한결같이 나오는것중 하나가 ‘동남국과 화친하라’는 것이었다.





 백승주와 제갈선생이 하나같이 ‘동남국과 화친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갔고 무엇보다 선황때 혼인동맹을 맺게 된 것이 동남국이었지만 유선재는 오히려 황제가 되고나서 동남국을 손에 넣고 싶다는 야심이 생겼다. 특히 무엇보다 유선재가 탐을 낸 것은 동남국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름진 평야지대였다. 대장강을 경계로 그 이하 드넓은 평야를 지니고 있는 동남국. 물론 중원이나 하북지역도 농사지을 땅은 충분했지만 그 넓이나 생산량으로 동남국과는 비교할 수준이 못되었다. 동남국은 심지어 농사만으로도 1년 먹고 남는 양식이 충분히 나온다는 말까지 있어 오히려 사람들이 농사 이외에 다른 생계수단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다른 산업이나 과학기술의 발달은 느린 약점까지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더욱 동남국을 손에 넣고 싶어했던 유선재는 결국 황위에 오른지 3년만에 동남국과 대대적 전쟁을 벌인다.

 허나 1차 전쟁에선 전격적 기습작전으로 동남국의 수도를 공략 동남국 2대 황제이자 1대 황제 손정활의 아들인 손경의 목을 손수 베기까지 한 유선재였지만, 동남국이 약 1년여후 보복전을 펼쳐왔다. 다만 군사력이 약한 동남국이 대장강을 넘어오진 못했고 대신 풍세를 이용한 전략으로 장강 근처의 유선재의 군사를 대대적으로 불살라버렸다. 유선재의 주력부대 70% 이상을 잃은 끔찍한 참패였다. 유선재는 1년여후 전열을 정미 다시 동남국을 정벌하려 했지만 이번엔 대장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이 장기간 대치하며 별다른 의미가 없는 소모적 소규모 교전만을 수십차례 벌이다 결국 서로 군대를 물리기로 합의를 보았다. 결국 3년간 세차례 연이어 벌어진 동남국과의 전쟁은 총 1승1무1패의 결과를 낳았다.

 한편 유선재가 계속 동남국과 전쟁을 벌이려하자 괴로워진 것은 역시 유광식의 세 번째 황후가 되었던 손황후였다. 지금은 태후의 몸이 된 손태후지만 자신과 나이차이도 얼마나지 않는 유선재가 계속 동남국과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두고볼수만 없어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다. 사실 손황후가 처음 유광식에게 시집을 왔을 때 손황후가 19세였고 유선재는 열두살이라 두 사람 사이에 나이차이는 얼마나지 않았지만 유광식의 제2황후였던 성황후 소생의 유홍재와 유원재는 자신이 시집왔을 때 아직 4살,2살이었고 무엇보다 친엄마를 잃은지 얼마되지 않아 그런 두 자녀를 자신이 거두어 키운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과 일곱 살 나이차이밖에 나지 않는 유선재와의 사이는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그저 데면데면한 정도의 사이였는데 그런 유선재가 황제가 되더니 계속 동남국과 전쟁을 벌이니 괴로워하다 결단을 내렸다. 유선재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거두어 키운 성황후 소생의 둘째 유홍재를 황위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유홍재를 황위에 올린뒤 동남국과의 화친을 다시 이루기로 한 것이다. 허나 유선재가 사전에 이와같은 손황후의 쿠데타 음모를 알아버렸고 격노한 유선재는 성황후 소생의 유홍재는 물론 유원재까지 죽이고 손황후마저 유폐시켜버렸다. 헌데 손황후가 유폐가 된 것을 알고 이번엔 동남국의 3대 황제 손태가 격분하였다. 동남국 3대황제 손태는 손정활의 차남 손진의 아들로 2대황제 손정이 유선재의 동남국 1차정벌 때 목숨을 잃게되자 그 뒤를 이어 3대 황제에 오른 인물이다. 사실 동남국 1대황제 손정활에겐 모두 아홉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였던 딸 손황후가 시집을 갔을 때 그녀의 조카들은 대개 어리거나 태어나기 전이라 손황후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자신들의 나라에서 시집을 보낸 황후가 태후가 되었는데 그 태후가 유선재에 의해 강제로 유폐되었다니 격분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지략가인 손태는 힘으로는 자신들이 유선재나 중원과 맞서 싸울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작전을 세우기로 했다. 그것은 중원 남부의 유선재 불만세력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 이들과 연합을 해서 중원의 유선재를 치려는 계책이었다. 사실 유광식 황제시절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생긴 자사나 태수들의 불만은 대개 다음과 같았다. 사실 유광식 치세는 딱히 선정이라고도 폭정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그런 수준의 치세였었다. 다만 대체로 지방세력들은 지나치게 간섭을 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살도록 놓아두었으나 다만 염제시대 이후의 혼란상이 결국 지방의 군벌때문 – 동완부터가 바로 그런 서량의 군벌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군벌을 몰아내기 위해 다른 군벌들이 연합으로 일어선것이고 – 이라고 판단 지방의 군벌들이 성장할 가능성만은 철저히 차단하였다.

 한마디로 내정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세금을 지나치게 걷는일은 없었지만 대신 사신을 수도없이 파견 군벌의 성장 가능성만은 철저하게 차단토록 하였는데 우선 필요없는 무기를 많이 생산하거나 개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단하였고 각 주나 군현에서 열명 이상의 사람들이 불필요한 목적이나 이유로 모이거나 회합을 갖는것도 가급적 금지시켰다. 한마디로 지방세력들이 세력을 키우거나 손을 잡는 일만은 철저하게 차단한것인데 바로 그로인한 불만들이 유광식 치세 후반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하나는 역시 인사에 대한 불만인데 사실 유광식 치세 초창기에 장로대신이던 백승주는 반란을 일으킬만한 유광식 반대파 성향의 자사나 태수들을 대대적으로 교체하였다. 헌데 노나라 시절 자사나 태수들중 상당수는 오랜시간 대대로 지역이나 영지를 다스리면서 토착세력화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중앙에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 자사,태수를 대거 교체한것에 대한 불만이 안 나올수가 없었다. 게다가 만약 새로바뀐 자사나 태수가 이전의 자사나 태수보다 선정을 베푼다면 사정이 그나마 나을것이지만 반대일 경우엔 문제가 안 생길수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반 유광식파 자사나 태수가 폭정을 일삼았는데 새로 임명된 친 유광식파 자사나 태수는 선정을 베푼다’면 문제될것이 없으나 그 반대일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령 하북지역의 경우엔 원래 ‘하북총수 원광호’의 전횡이 워낙 극심했기 때문에 원광호 세력이 대대적으로 제거되고 새로운 자사,태수들이 부임해온것에 대해 오히려 쌍수를 들어 환영하거나 불만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허나 그 외 다른 지역에선 오히려 선정을 베풀던 자사나 태수가 ‘반 유광식파’이거나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하여 까닭없이 제거되고 새롭게 부임한 ‘친 유광식파’ 자사나 태수가 전횡을 일삼아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면 자연스레 민심이반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유광식 치세때는 특히 후반부들어 그런 부분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들이 커져가긴 했으나 유광식이 워낙 군벌의 성장을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유광식에게 반기를 들만한 딱히 좋은 명분이 없었기 때문인지 조직적인 반발이나 저항을 못하다가 유선재의 대에 이르러 바야흐로 명분을 찾은 것이다. 사실 3년간 세차례 연거푸 벌어진 동남국과의 전란으로 인해 특히 중원 남부지역의 백성들 삶이 많이 피폐해져갔던 것이다. 손태는 바로 이러한 약점을 이용 중원 남부의 태수와 자사들과 손을잡고 유선재를 치기로 한 것이다. 결국 동남국과 손을 잡은 남부지역 자사,태수들과 한바탕 전란이 벌어지게된 유선재. 그 와중에 결국 유선재는 죽게되고 중원은 다시금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헌데 중원이 다시 혼란에 휩싸이자 더 큰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실은 중원 북방에 대다수 유목민이기도 한 이민족이 대대적으로 중원으로 쳐들어와 새 나라를 세우는 ‘5호 16국’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사실 북방의 이민족들은 대개 유목민이기도 했지만 그네들의 입장에선 중원을 자주 넘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북방지역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춥고 농사짓기도 마땅찮으니 그나마 날이 따뜻한 시절이면 자신들끼리 유목생활을 하거나 하면서 대체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할 수가 있었지만 날이 추워지면 결국 충분한 식량이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원을 넘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방 이민족의 중원 침탈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에 철이되면 언제나 변함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중원으로선 불가피하게 치를 수밖에 없는 홍역이었는데, 그 때문에 노나라 시절에는 북방과의 국경지대인 서량,하북등의 방비는 더더욱 튼튼히 했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서량이나 하북등은 그런 북방 이민족과의 대결에 맞서면서 자연스레 지역 군벌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허나 유광식이 황제가 되면서 군벌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에 그런 가운데 하북,서량등의 군사력은 지속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동남국과의 잦은 전쟁 때문에 중원 동부와 남부의 지역 백성들의 삶은 나날이 피폐해져갔고, 따라서 유선재의 치세는 북방과 서부지역은 약해진 군사력으로 인해 이민족의 침입을 받고 남부와 동부지역은 동남국과 손을 잡은 반란세력들로 인해 어지러워지는 그야말로 사방이 온통 난리인 혼란상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유광식-유선재 2대로 이어지는 치세는 과연 노나라나 후노의 맥락을 잇는 황실로 봐야할지 그 개념정의마저 모호해진 상황에서 사방에서 각종 이민족과 반란세력의 공격을 받으며 멸망해갔고 중원과 하북,서량지대등은 북방의 5호 이민족들이 내려와 16개의 중구난방형 중소규모 국가를 세우는 ‘5호 16국’의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었던 것이다.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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