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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레드벨벳 슬기 (8.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10 (레벨,블핑)




                                            부제 : 강화에서 생긴일





 대진교의 회관들은 크게 지역의 야산 중턱같은곳에 평지를 만들어 그곳에 일종의 불가의 사찰(산사) 비슷하게 종교시설을 지은 산사형 구조, 그리고 도시의 주택가 같은곳에 있는 주택형 구조, 그리고 상가건물 한층을 빌려 사용하고 있는 상가건물형 구조. 대략 이렇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져있다고 볼수 있는데, 이중 송도(인천),창원,영월,옥천등이 그와같은 산사형 구조고 서울,전주,대구등은 주택가에 위치한 개인주택형 구조 그리고 부산과 광주,용인의 경우엔 도심의 상가건물 한층을 빌려 사용하고 있는 상가형 구조다. 그리고 보통 전국 단위규모의 행사는 아무리 그래도 참가자 규모가 이삼백명은 되기 때문에 그정도 인원이 수용 가능한 영월이나 창원,송도회관 등에서 열리곤 했고, 그 외 주택형 구조나 상가건물형 구조로 되어있는 회관은 그 지역별로 다달이 신도회 집회나 청운집회 또는 기도회등을 갖는 그런 형태였다. 회관별로 일반신도회는 많은곳은 대략 50명 안팎, 적은곳은 열명 안팎 수준인 그런곳도 있었는데 일단 주택형이나 상가건물 회관은 적어도 그런 50-60명 정도의 성인이나 청소년 정도를 수용할수 있는 그 정도 규모이긴 했다. 다만 강화회관의 경우엔 그 이전까지 점보는 무당이 자신의 가족들과 살던 그런곳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장소가 생각보다 더 협소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일단 건물은 크게 양옆으로 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왼쪽에는 아마 점보는 할머니가 사용하던 사당과 그리고 아마 그 무당이 사용하던 방으로 추정되는 그런 공간이 있었고, 건너편인 오른쪽에는 여인이 자기 아이들과 살던 살림집 같은 그런 구조로 되어있던곳이다. 살림집은 일단 아마 여자(무당의 딸)가 쓰던 방으로 추정되는 안방 그리고 아이들이 사용한듯한 방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부엌겸 거실로 사용하던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달랑 네식구가 살던 공간이었으니 집 건물 전체 크기며 방은 그리 넓지가 않았던 것이다.

 강회회관 개원식때는 일단 무당이 사당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임시성전’ 비슷하게 만들어 그곳에서 개원식과 도덕가 대회를 치렀지만 사람이 열명도 들어가기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보니 일반신자나 초청한 외빈들조차도 밖에서 행사에 참석해야하는 불편을 겪었으며, 여하튼 개원식때는 장소가 협소한 불가피한 사정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히 무당이 쓰던 집과 딸과 손주,손녀들이 쓰던 살림집 사이의 거리는 좀 떨어져 있어서(눈 어림으로 대략 30-50M 정도 ?) 적어도 마당으로 활용할만한 공간이 제법 넓은편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그래도 전국의 신도 및 청운회 외부 손님등 백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참석한 개원식 집회다보니 식사때나 파티때는 집안은 아무래도 협소해서 밖으로까지 나가서 주위 대충 빈공간을 잡아서 그곳에서라도 식사를 하는게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종단측에선 개원식을 치르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강화회관 건물 증측의 불가피함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단 서무국장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모델은 서울회관과 대구회관 구조를 반반씩 뒤섞은 형식의 ‘주택형 구조’다. 서울회관은 글자그대로 2층짜리 단독주택이고, 대구회관의 경우엔 정중앙에 성전건물 그리고 좌우로 회관장의 방과 사무실 공간으로 쓰는 건물 또다른 한쪽에 신도들이 사용할수 있는 방과 공양간 건물이 있는 그런 구조였는데, 서무국장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구조는 대충 그와 엇비슷하게 집터 중간쯤에 성전건물 하나를 대략 한 40-5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그 정도 규모로 짓고 양옆에 신도나 청운회등이 거처하기나 자체 집회를 가질수 있는 ‘방’ 그리고 회관장방과 사무실을 짓자는 것이었다. 다만 기왕 건물을 짓는 것 서울회관처럼 2층구조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굳이 2층으로 지을필요까지 있을까요 ? 1층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

 가령 송도나 영월,창원의 경우처럼 전국단위 규모의 집회나 행사같은 것을 개최하는곳으면 그래도 한 일,이백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시설 – 가령 방을 여러개 만든다던가 – 을 짓는게 불가피하겠지만, 그냥 그 지역에서 적당히 교화활동을 해서 열명이든 이십명이든 신도가 모이면 그네들끼리 집회를 하고 기도회를 할 수 있는 공간이면 사실 지나치게 넓을 필요까진 없다. 서울회관이야 원래 있던 2층집건물을 구매해서 그곳을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2층집이 된 것이지만 여하튼 서무국장은 가급적 ‘2층건물로 짓는게 낫다’는 자신의 구상을 계속 역설하고 있었다.

 “ 아무래도 강화회관은 지역적 상징성도 있고 하니까...거기에 맞는 구조를 해보자

  이거죠. 하다못해 청운회 수련회 정도는 개최할수 있는... ”

 “ 청운회 수련회를 여기서 개최한다구요 ? ”

 서무국장의 구상이 이미 거기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보고 회관장은 물론 그를 보좌하는 교사도 다소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설명한바와 같이 대진교의 전국규모 집회는 수련회가 되었든 전국 회관이 모두 모이는 전국규모 집회나 행사가 되었든 그런 것은 대개 영월이나 창원,송도같은 사찰형 구조 회관에서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전형적인 개인주택형 구조인 강화회관의 경우엔 그저 교화활동으로 끌어들일수 있는 신도나 청운회등을 중심으로 지역 집회나 조금 여는 그정도 규모로만 꾸려가는 것을 생각했지 여기서까지 전국규모 행사를 치르는 것은 사실상 ‘개원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음을 개원식때 이미 웬만한 종단 성직자나 간부들은 다 실감했던 것이다. 헌데 서무국장은 강화의 지역적 상징성을 언급하면서 ‘최소한 청운회 수련회개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정도 인원 수용은 가능한 그만한 건물울 짓자는것이었고, 그렇다면 2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1층이든 2층이든 여하튼 새로운 건물을 짓는데 관공서 허가는 불가피한것이고 관공서측에는 행여 ‘종교시설’을 짓는다고 신고하면 허락이 안 날수도 있으니 강화회관장을 그곳에서 새로 들어와 살게된 ‘집주인’쯤 되는 것으로 하고 실은 그 집주인(강화회관장)이 사업을 좀 하는 사람이라 종종 손님들을 자주 초대해야하고 경우에 따라선 가든파티 정도는 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그래서 증측이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 하지만 이미 강화회관 개원식때 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고 자연스레 동네 주민들에게도 그 풍경이 다 목격이 되었을터이니 종교시설이 아닌 사업을 하는 사장의 개인주택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긴 했다. 여하튼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관공서에서 증축공사 허가가 떨어져 바로 공사에 들어갈수가 있었다.

 “ 니, 재밌나 ? ”

 그렇게 강화회관 증축,확장공사가 허가가 떨어지고 본격 작업에 들어간 어느날. 강화회관 공사 현황을 돌아보기 위해 총무원 서무국장등 3인방(재무국장,교화국장까지) 역시 자주 인천에서 강화까지 오갈 수밖에 없던날. 하루는 그렇게 공사현장을 돌아보고 잠시 쉬고있는 서무국장에게 재무국장이 한마디 했다. 사실상 집을 헐고 새 집을 짓는것이기 때문에 서무국장등은 인근에 작은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며 공사현장을 돌아보았다. 헌데 그러다 하루는 재무국장이 텐트안에서 쉬고있는 서무국장을 톡쏘듯 한마디 한 것이다. 당황한 서무국장이 되묻는다.

 “ 예 ? ”

 “ 니...재밌냐고 ? ”

 일전에도 한번 ‘니 언제까지 이런 생활 할건데 ?’ 하면서 이제 그만 정신차리고 다른일 찾아보라는 식으로 서무국장을 설득하던 재무국장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오늘 또 느닷없이 이렇게 한마디 톡 쏘는 재무국장의 말이 서무국장을 또다시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 니...재밌냐고 물었다 안하나... ”

 서무국장은 별다른 답이었다.





 “ 여기 전에 살던 아줌마 어디 가셨어요 ? ”

 강화회관을 개원하고 2-3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아직 회관장만 발령을 받아 이곳에서 막 기거를 시작한 때인데, 회관장을 보좌하기로 한 청운회 출신도 아직 정식으로 강화회관엔 들어오기 전이었던 상황에서 개원식 행사가 끝난뒤 회관장 혼자서 청소,정돈작업등을 하면서 강화회관을 혼자 지키고 있을때였다. 나이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로 추정되는 여성의 방문을 받은 것이 그때의 일이다. 여성은 나름 의아하기도 하고 뭔가 좀 이해도 안가는듯한 말투로 물었다.

 “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 ”

 강화회관장은 일단 침착하게 여인의 방문을 받았고, 여인은 일단 나름의 당혹스러움 때문인지 어찌보면 시비를 거는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 그...여기 애들 엄마요. 유진이,민철이 엄마...어디 뭐...이사간거에요 ? ”

 말하는 것으로 봐선 여하튼 이전까지 살던 무당의 딸 가족과 친분이 있던 이웃주민 같은데, 그렇다면 일단 며칠전 제법 요란하게 대대적으로 사람이 몰려와 개원식 행사를 치르는 풍경이 – 하다못해 식사나 저녁파티때 밖으로 나와서 삼삼오오 모여 신자들끼리 식사나 술을 한잔 나누는 모습을 봤을수도 있을테고 – 어느정도 눈에 띄었을테고 다만 정히 궁금하다면 그날 당일 들어와서 종단 관계자들에게 ‘대체 어떻게 된거냐 ? 그동안 이 집에 무슨일이 있었던거냐 ?’는 식으로 물어봤을수도 있을터인데 여하튼 개원식 행사는 다 치르고 신도와 성직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거처나 회관으로 돌아간지 2-3일 정도 지나 이와같이 찾아와 회관장에게 질문을 건넨 것이다. 회관장은 일단 차분하게 자신들이 이 집을 인수받아 살게되었음을 자신이 자초지종을 아는 한도내에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 그럼...유진이네는 다른곳으로 이사를 간건가요 ? 이를테면 ? ”

 유진이가 그 집 딸아이 이름이고(무당에게는 손녀) 따라서 이웃주민인 여인은 그렇게 아이 이름을 따서 ‘유진엄마’,‘유진이네’ 이런식으로 불러온 듯 한데, 여하튼 그네들이 다른곳으로 떠났다는 사실에 다소 놀랍고 어떤 서운한 감정도 있는듯한 말투로 혼잣말처럼 말한다.

 “ 그 참...근데 어떻게 우리한테는 말도 안하고...일전에 한번 아이들 공부시키는 문

  제 때문에라도 서울로 이사가 살고싶다...그런말은 언제 한번 했던것도 같은데... ”

 상식적으로도 이사를 가는것이든 무엇이 되었든 거처를 옮기게 되었으면 그동안 살았던 정든 이웃식구들에게 간단하게 작별인사라도 나누는게 인지상정일텐데, 그런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것에 대한 서운함을 그와같이 내비치는 듯 하다. 여전한 아쉬운 감정이 남은 듯 여인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럼...유진이네가 다시 여기 온다던가 다시 연락이 온다던가 그럴일은 없는건가

  요 ? ”

 “ 글쎄요, 그거야 뭐 그분들 마음이니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 저흰 그저 어디

  까지나 합법적으로 이곳을 인수받아서 회관으로 쓰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

 “ 회...뭐라구요 ? ”

 회관장은 차분하게 대충 대진교 교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비록 평범한 중년아줌마지만 그래도 무슨 후천개벽이니 미륵이니 그런 표현들을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어본적은 있는지 이와같이 묻는다.

 “ 그러니까...증산도라던가 뭐 그런쪽이에요 ? ”

 “ 하하하... ”

 지금까지 대진교의 성직자로 있으면서 아마 가장 많이 들어봤을법한 질문이라서인가. 회관장은 ‘그럴줄알았다’는 듯한 미묘한 웃음소리를 터트리고 그리고는 미소를 머금은채 대충 해명을 겸한 설명을 덧붙인다.

 “ 보통 그렇게 오해를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증신도

  나 대순진리회 그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마 증산도든 대순진리회든 그

  쪽 관계자들도 솔직히 저희에 대해 잘 모를거에요. 저희도 그쪽과 교류해본적이 전

  혀 없구요. ”

 “ 증산도나 대순진리회가 아니라구요 ? ”

 일단 한두마디로 간단히 끝날 이야긴 아니라서인지 회관장은 대진교 자체내의 홍보책자등을 가져와서 어느정도 종단 교리에 대해 설명을 해주긴 한다. 사실 이런식의 설명을 듣고나면 열중 일곱,여덟 정도는 그저 이단이나 사이비정도로 생각하고 더 이상의 관심은 보이려하지 않는데, 그래도 뜻밖에 아주머니는 관심이 좀 가는지 이와같이 묻는다.

 “ 그러니까 이를테면 민족종교다 뭐 그런건가요 ? 무슨...서양귀신을 물리치고 민족

  영혼을 제대로 살리자는 ? ”

 학습능력이 제법 되는 아줌마인지 회관장의 간단한 교리설명을 듣고도 그새 익숙해진 듯 그와같이 묻는데, 여하튼 대체로 뜻밖에 이 여인과 회관장의 대화는 잘 통하는 듯 했다. 애초엔 원래 이전까지 이 집에 살던 식구들이 어찌되었는지 그 궁금함에 시작된 질문이고 대화인데 잘하면 강화회관에 제1호로 등록하는 신자가 될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로까지 대화가 진행이 된 것이다.

 한번은 또 이런일이 있었다. 강화회관을 개원하고 2-3주 정도 지난 무렵, 그러니 학생들 여름방학도 거의 끝나갈때인데 이번엔 웬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 두명이 찾아왔다.

 “ 저어...실례합니다. ”

 “ 네에, 무슨일이신가요 ? ”

 이때는 어느덧 회관장을 보좌할 ‘준교사’급 청운회 출신 여인도 들어오고 서울회괸 재무사로 있던 여인도 와서 공양사를 할 때. 사춘기 소년 두명은 회관안으로 들어서는 회관장에게 이와같이 물었다.

 “ 여기 무슨 전통문화 계승사업...그런거 하는데라 들었는데... ”

 그 사이 회관장이 교사(준교사)와 공양사와 함께 인근마을을 돌며 종단 홍보책자와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는데, 그런 홍보물을 접해보기라도 한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와같은 홍보물을 접해보았다면 대체 어떻게 이해를 했는지는 몰라도 ‘전통문화 계승사업을 하는곳이라 들었다’며 이와같이 말한 것이다.

 “ 네, 뭐 취지는 대충 맞아요. 헌데 무슨일로 ? ”

 “ 저희 실은...학생인데...요즘은 학교에서 자원봉사 활동점수 그거 주잖아요. 그거

  하려면 자원봉사 해야하고...그런데 아직 자원봉사 할만한곳을 못찾았거든요. ”

 “ 아, 그래요 ? 잘 되었네요 마침. 그럼 들어와요. ”

 중고등학교 내신에 ‘자원봉사’ 점수가 들어가는 제도가 실시된것도 대략 이 무렵(90년대 중반) 부터인데, 다만 그로인한 부작용도 제법 있어 그러한 보도가 종종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일단 자원봉사 점수를 내신에 반영하는 제도 자체가 아직은 학생이든 학부모나 선생님이든 익숙치 않던때라 가령 무슨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짜장면 백그릇을 시키고 자원봉사 점수를 받아온다던가 또는 실제 자원봉사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대충 관공서 건물이나 또는 문화재 관리구역 같은데를 찾아가서 점수만 받아오곤 하는 그런일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이었다. - 그리고 자원봉사 내신반영제는 실시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이 뭐 그리 많이 개선된 것 같지는 않다. ^^;;

 일단 근본적으로 대진교 산하에 ‘대도문화재단’이란 부설기구가 있고 그 재단의 대외적으로 내건 명분은 장학재단이면서 문화재단으로 문화재단의 대외적으로 내건 사업이 결국 ‘전통문화계승’과 관련된 부분이다. 헌데 용케도 종단 홍보 책자에서 그런 ‘대도문화재단’과 관련한 사업계획 같은게 눈에 띄었는지 여하튼 ‘전통문화 보존사업’과 관련이 있는것이라 생각 그런쪽으로 자원봉사를 하면 될것이라 생각했는지 찾아온 것이다. 회관장은 일단 좀 당혹스럽긴 해서 문화재단 관련 실무자인 서무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도되는지 여부를 물었고 서무국장은 잘되었다는 듯 그리하라고 했다. 그래서 중,고생 정도로 추정되는 이들 학생 두어명은 회관에서 청소 두어번 해주고 전통문화 보존사업을 하는 문화재단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도장을 받아가기도 했다. 재단 실무자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문화재단 실적사항으로 보고할수 있는 사항이 하나라도 더 생긴것이니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는 사안이었다.

 다만 이런식으로 강화회관도 조금씩 신도와 청운회과 한명,두명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보면 대진교는 교리적 측면보다도 ‘인간적 친화력’이 더 좋은 그런 특성을 가진 종교단체라고나 할까. 사실 이른바 청년,학생회 단체에 해당되는 ‘청운회’의 경우엔 소위 민족정신을 되찾는다느니 민족영혼을 되찾는다느니 하는 그런 ‘민족주의’ 지향의 교리가 나름 젊은 혈기를 격동시키는 그 무엇이 있는지 그런 방면으로 호감을 느껴 신자가 되는 경우가 제법 있었고 일반 신자들의 경우에는 굳이 비유하자면 어디 사주,관상이라도 보러가는 기분으로 아니면 자식이나 배우자 잘되기를 축원기도라도 드리고픈 심정으로 그런식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으면서 대개 그렇게 대진교에서 신앙생활을 하게된 것이다. 교리보다는 인간적 친화력 때문에 그리고 ‘민족주의’라는 경향으 젊은이나 청소년들에겐 나름 뜨거운 피를 격동시키는 그 무엇이 있기에 그런식으로 청운회나 일반신도회가 조금씩 늘어나는 그런 종교가 대진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식으로 대진교 11번째 회관인 강화회관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대진교 강화회관 증축은 10월에 준공허가가 나서 반년정도가 지난 이듬해(96년 봄) 완공이 되었다. 그냥 일반인의 눈으로 볼때는 그냥 좀 평수 좀 넓은 2층짜리 주택형 건물과 그 맞은편에 그보다 다소 작은 규모의 작은 1층건물 하나가 들어선 그 정도의 모양새였다. 서무국장 김진관은 강화가 갖는 지역적 상징성때문에라도 최소한 청운회 수련회 정도는 이따금 개최할수 있는 그 정도의 규모로 짓는게 좋겠다고 주장(대진교 청운회 수련회는 하계는 약 150-200명 정도 동계는 대략 70-80명 정도의 청운회원들이 참가하게 된다.) 그 정도의 어린이,청소년 수용이 가능한 그 정도 크기의 건물로 지은 것이다. - 20-30명 정도는 수용이 가능한 방 6-7개 정도가 있는 2층짜리 건물로 생각하면 된다.

 강화회관 중측이 완공되고 그 간단한 기념행사도 갖긴 했는데, 행사가 끝나고 서무국장은 혼자 강회회관을 빠져나왔다. 원래 총무원 서무국장으로 있는 몸이니 행사가 끝나면 총무원으로 복귀하는게 그의 할 일이긴 하지만 서무국장은 나름의 고민이 있는지 혼자 인근지역을 돌며 상념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 니 그러지말고 다른일 찾아봐라. 니가 몰라서 그렇지 평범한 보통 여자들의 눈으

  로 볼때는 니 이렇게 사는거 별로 안 좋아한다 안하나. 그러니 더 늦게전에 다른일

  찾아보란말이다. ”

 재무국장이나 교화국장의 경우엔 어쩔수 없이 대진교 종단에 뼈를 묻기로 작심한 몸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무국장은 달라야 한다며 그런식으로 설득한 그녀. 오늘따라 그녀의 말이 서무국장의 가슴속을 묘하게 맴돌았다. 또 얼마전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를 한번 가보고 싶어 들렀다가 우연히 고등학교때 수학선생(학창시절 수학선생 나이 는 대략 50대 후반정도)을 만나 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 너 이 X 정신 안 차리냐 ? 너 일전에 보니까 웬 기집애 대여섯명이랑 종로 한복

  판에서 노닥거리더라 ? 정신차려 이 X아 !!! 기집애 밝히다가 인생 명 짧게 종친X

  많아 !!! ”

 아마 자신이 대진교 산하 문화재단일로 그 실무를 맡아 재무국장,교화국장과 함께 관공서를 드나들 때 그때 모습이 수학선생의 눈에 뜨였던 모양인데, 여하튼 서무국장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없는 오해이기도 했다. 일단 근본적으로 여자애들이랑 노닌게 아니라 종단 업무와 관련 함께 일하는 총무원의 실무자들과 서울의 정부기관을 다녀온것이고,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그런 업무로 서울을 오갈 때 늘상 동행하던이는 재무국장과 교화국장 달랑 두명이니 – 그리고 무엇보다 총무원에서 일상적으로 근무하는 교사나 직원수를 총합해 보더라도 – 아무리 생각해도 나오지 않는 계산이 ‘젊은여성 대여섯명’인데 대체 수학선생은 어디서 뭘 봤고 무슨 착각이나 오해를 했는지 – 또 상대적으로 학창시절에 수학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별로 눈에 뜨이지도 않았던 학생인 김진관을 어찌 기억하는지 – 자신이 젊은 여자애 대여섯명과 평일 대낮에 노닥거리는 것으로 오해했단 말인가. 그런 일련의 사건과 기억들이 상념으로 겹쳐지면서 여러 가지로 김진관의 마음속을 혼란스럽게 하고 흔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인천으로 돌아온 진관은 총무원으로 복귀는 하지 않고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한병을 샀다. 그리고 비디오방에 들어가 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최근 나온 최신 영화는 아니고 진관이 한 1-2년전쯤에 우연히 비디오방에서 보게된 오래된 영화였다.

 ‘파멸의 기록’이란 뭔가 단순해보이면서도 직설적이고 강렬한 느낌의 제목으로 되어있는 영화는 1970년대에 나온 영화로 90년대를 기준으로도 이미 20년전인 꽤 오래된 흘러간 영화였다. 다만 막상 그 영화를 보니 ‘3류’영화라는 비아냥성 수식어를 붙이기엔 아까운 그런대로 작품성도 있었고 내용의 몰입도,흡입도도 만만찮았고 무엇보다 라스트씬이 공연히 진관을 가슴찡하게 만들면서도 울컥하게 만드는 그런 내용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랬다. 가정사의 상처가 있어 아버지와의 사이도 그리 원만하지 않았고 10대 후반 – 20대 초반 무렵에 일시적으로 호감을 느꼈던 여성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거절당해 상처받은 남자. 다만 유일하게 이 남자가 즐기는게 있는데 그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알바비로 직접 구입한 오토바이다. 오토바이에 직접 이름까지 지어주며 마치 인격체를 대하듯 무척이나 애지중지하는 그것이 주인공의 모습이었는데, 실제 영화속에서 주인공은 문제의 오토바이를 마치 친한 친구나 깊은관계의 연인이라도 대하듯 그런식으로 오토바이를 대하고 아끼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지금까지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로부터 별다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영화 주인공이 대신 그 보상심리로 쏟아붓는 사랑의 대상이 그 문제의 ‘오토바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자신이 어설프게 다가갔다 실패한 짝사랑의 대상들, 그 여성들에게 실제 하지 못했던 것을 그 애정공세를 대신 오토바이에게 퍼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한편 그 무렵 주인공은 짝사랑 하던 여자에게 또다시 거절당하는 상처를 입고 그 무렵 아버지는 웬 젊은 여성이랑 재혼 두 번 상처를 받는다. 세상도 가족도 모든 것이 다 싫어진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마구 달리며 절규한다. 그러나 덕분에 지나친 폭주가 되었던것일까. 결국 사고가 나고 오토바이는 그만 과열탓인지 폭발하고 만다.

 무엇보다 라스트씬에서 이미 폭발해서 산산조각이 나버린 오토바이 잔해를 붙들고 우는 주인공의 절규이자 마지막 대사가 제법 진관의 가슴을 울렸다. 지금껏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유일하게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라도 되는양, 그리고 그 인격체를 (실제로도 이미 고치는게 불가능해질정도로 엉망이 된 오토바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려낼 자신이라도 있다는 듯 또는 그 오토바이가 죽으면(?) 안된다는 듯 피눈물을 흘리며 슬피우는 주인공. 그 영화속 주인공의 넋두리. 이런 영화가 왜 최소한의 3류급 영화란 별명도 못 듣고 이렇게 인천 비디오방 한구석에 수십년간 묻혀있었단 말인가. 그 의문이 들 정도로 진관의 심금을 울린 영화였다.

 한편 영화를 보기전 편의점에서 소주두어병을 샀던 진관은 술을 마시며 영화를 봤던탓엔 라스트씬이 나올때쯤엔 그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가 다 끝나고나서도 나오지 않는 손님이 의아해 결국 비디오방 직원이 들어와 그를 깨웠다.

 “ 손님...손님. 영화 다 끝났는데요. ”

 그와같은 직원의 말에 술에서 깨며 정신을 차리고 터덜터덜 비디오방을 나오는 진관. 말없이 그리고 술기운은 여전히 남아있는채로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 니 간밤에 술마싰나 ? ”

 다음날 총무원에 출근을 해보니 여전히 나는 술내와 무엇보다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듯한 서무국장의 모습에 재무국장과 교화국장이 번갈아가며 그렇게 말했다. 재무국장이 술이라도 깨라는 듯 차가운 음료수를 갖다주며 서무국장을 격려했고, 서무국장은 일단 고맙게 그 음료수잔을 받았다. 그리고 꿀꺽꿀꺽 마셔댔다.

 “ 저기요... ”

 문득 공연히 재무국장을 불러본 서무국장. 재무국장이 돌아봤지만 서무국장은 별다른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다만 일전에 했던 재무국장의 말이 서무국장의 가슴속을 다시금 묘하게 맴돌고 있었다.

 “ 니 그러지말고 더 늦기전에 다른일 찾아봐라.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이런데서 일하는기이...평범한 보통 여자들이 봤을때는 별로 안 좋아보인다 안하

  나. ”

 그때는 서무국장이 재무국장에게 별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지만 재무국장의 말은 서무국장의 가슴을 제대로 흔들어놓았다. 다만 서무국장은 나름대로 거기 반박할 말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 딱히 그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 헌데 밖에서...일반사회에서 제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

 솔직히 학교다닐 때 공부를 그리 잘했던것도 아니고 그나마 인문계 과목은 취미가 좀 있었지만 여하튼 대체로 성적은 좋지 못했던 그런 김진관이다. 게다가 운동이나 문화예술 같은 방면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손재주나 잔재주가 있는것도 아닌 김진관. 따라서 막상 일반사회로 나간다고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그게 김진관이 하고있는 진정한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바로 그와같은말을 자신에게 한바있는 재무국장을 말없이 쳐다만 볼 뿐이다.

 “ 와 ? 니 나한테 무슨 할말있나 ? ”

 서무국장의 시선이 계속 자신을 향하자 재무국장이 결국 그와같이 물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딱히 그 복잡한 속내를 토로하기도 못해 서무국장은 대충 말을 얼버무린뒤 자기 자리에 앉는다. 다만 아직 술기운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은 상태여서인지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무심한 봄바람만이 서무국장 김진관의 심란한 가슴을 다시한번 헤집고 지나갈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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