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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강화에서 생긴일





 대진교(大眞敎)는 창립직후인 80년대에는 경남 창원에 총무원을 소재해두고 있었고, 이후 90년대 초,중반에는 서울에 총무원 사무실을 두었으니 서울 사무실은 비용문제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폐쇄하고 말았고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인천에 소재한 송도(松島) 회관에 총무원을 두어 운영해오고 있었다. (* 총무원(總務院)의 기능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은 주위 불교신자들의 자문을 구하시길. 글자그대로 불교 총무원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곳임. 게다가 사실상 기도의식이나 조직명칭등은 대다수 불교 명칭을 그대로 본따거나 베낀게 많았기 때문에) 대진교는 전국에 서울,인천(송도),대구,부산,창원,광주,전주,영월,옥천(충북),용인등 총 열곳에 회관이란 종교집회 장소를 두고 운영을 해 왔는데, 90년대 중반에 들어서 11번째 회관인 ‘강화회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사실 대진교가 명색이 민족종교(民族宗敎 - 글자그대로 ‘민족주의’를 교리로 표방하는 종교단체를 말함. 보통 단군을 숭상하는 계열과 후천개벽이나 미륵등을 주장하는 계열로 나뉘는데 대진교는 굳이 계보구분을 하자면 후자에 해당됨)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단군성조가 제를 올렸다는 고대로부터의 전설이 전해지는 강화지역에 회관 하나를 그때까지 두지 못한 것이 종단 입장에선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었는데 실로 창립 약 10년만에 그 숙원을 이룬 셈이라고나 할까. 바로 그 강화회관이 만들어질때의 비화를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대진교 송도회관은 일반신자들이 기도를 드리거나 종교의식을 행하는 ‘대성전’과 그리고 총무원 도직자(道職者)들이 업무를 보는 ‘사무실’로 나뉘어져있는데, 사무실은 일반적으로 ‘종무실’이라 불리고 종무실은 글자그대로 사무 업무를 보는 ‘사무실’과 그리고 그 뒤쪽에는 총무원에 상주하는 도직자나 성직자들이 먹고자는 ‘살림방’으로 구조가 나뉘어져있다. 대진교 총무원의 공식 조직표에는 총무부,재무부,교화부,사업부,자경부,청년부등 총 12개의 부서가 있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그 12개 부서가 늘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일상적으로 그 부서의 부장(部長)이 존재하는 부서는 보통 5-6개 많아야 7개 부서를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부장 밑으로 필요에 따라 젊은 교사(敎師 - 교사는 교회 전도사 기능과 비슷)급의 성직자를 ‘국장’으로 두게 되는데 보통 일반적으로 총무원 종무실에 근무하는 ‘국장’은 2-3명선 많아야 5명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평상시 2-3명 정도 많을때는 5명선은 ‘국장급’ 총무원 도직자중 일종의 리더랄까 또는 ‘사무장’격이 되는 사람을 ‘서무국장’이라고 부른다. 서무국장은 일반적으로는 종단의 대내외 서류업무 전반을 관장하게 되고 그 서무국장은 ‘총무부장’의 직속으로 있는 국장이다. - 그 외에 일반적으로 종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국장들은 재무국장이라던가 교화국장 대충 그 정도의 직책을 갖고있는 교사(敎師)들이 있다.

 어쨌든 그렇게 90년대 중반부터는 인천 송도회관에 총무원을 두어 운영하게 된 대진교. 그 95년의 봄날이었다. 서무국장 김진관은 이른아침부터 사무실에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직장의 사무실이라 쳐도 출근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시간대이긴 한데, 어쨌든 그 시간대에 사무실로 들어서는 세명정도의 청년이 있었다. 이중 두 사람은 바로 대진교 산하 청년회 단체인 ‘청운동지회(靑雲同志會)’ 회원으로 서무국장 김진관과도 평상시 면식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진관이 바로 사무실에 들어서는 이들을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 어, 형 어서와요. ”

 진관이 그렇게 인사를 건넨 사람은 송도회관 청운회장으로 있는 김호근이란 청년이다. 나이는 현재 20대 중반인 진관보다 두 살 많은데, 요즘은 하는일이 없는지 낮에 시간이 좀 있어 이렇게 이따금 대진교 사무실에 들를때가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멀리 부산에서 올라온 정종현과 김신영이라는 청년이다.

 “ 뭐야 ? 달랑 한명 데려온거야 ? ”

 이 두 청년중 정종현이란 청년은 대학에서 유도부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인데, 사실 대진교 종단에서 업무관계로 좀 필요해서 밀지를 하나 내렸다. 바로 유도부이기도 한 정종현이란 청운회원에겐 힘좀깨나 쓰고 기왕이면 인상도 좀 강렬한 그런 유도부원을 한 두어명 차출해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을 했고, 그리고 송도회관 청운회장인 김호근에게도 혹시 평소 어울리는 친구나 동료중 역시 힘 좀 세고 인상도 강렬한 – 한마디로 주먹 좀 쓸 것 같이 생긴 – 그런 사람을 한 두어명만 좀 모아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다. 헌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김호근 회장은 혼자만 사무실에 도착했고 아마 중간에 만나서 같이온 것으로 추정되는 정종현 역시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달랑 한명만을 데리고 왔는데 그게 김신영이라는 유도부원이다. 심지어 키도 작달막해서 평상시 운동을 좀 하는 녀석이 맞는지까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다지 신뢰할만한 인상이나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진관의 인상이 바로 찌푸려졌다.

 “ 그...서너명 정도 데리고 올수 있다면서 ? ”

 “ 그게...원래는 그리 할라 캤는데... ”

 종현이 경상도 억양을 살짝살짝 내비치며 일단 사정설명을 하려들었다. 진관은 일단 사정이나 좀 들어보자는 심사로 그의 해명을 들어보기로 했다.

 “ OO이는 갑자기 집에 일이 있어서 못온다 캤고...OO이는 그래도 어제까진 별 문제

  없었는데...갑자기 ‘없던 선약’이 생겼다 캐서는... ”

 “ ‘없던 선약’이란말이 세상에 어디있어 ? 선약(先約)이란게 글자그대로 먼저 잡은

  약속이란 뜻인데 없던 선약이란. 우리랑 약속하기 전에 있던 약속이라면 모를까...

  나중에 생긴 사정이나 약속이면 그게 우리쪽 일이 선약이 되는거지 어떻게 그게

  선약이 돼 ? ”

 “ 아...아무튼 못온대요 형... ”

 사실 ‘선약’ 운운하는 표현에 진관이 유독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종현과 어울리는 학교 유도부원이 평상시 종현을 따라 대진교 종단이나 청운집회에 참석을 한 경험이 있는지까진 모르겠으나, ‘선약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것은 원래 대진교 청운회원들이 가장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종단집회나 청운회 모임 참가에 난색을 표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흔하게 대는 핑계였다. 그게 집안일이든 다른 친구나 모임약속이 되었든 또는 학업문제나 기타 다른 중요한 문제가 되었든, 다른건 몰라도 어떻게 이 청운회 회원이란 녀석들은 한결같이 젊은 녀석이나 나이어린 청소년이나 초창기 멤버들이나 나중에 청운회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 녀석이나 오래다닌 녀석이나 처음온 녀석이나 늘상 ‘선약’핑계를 대는지. 어떻게 이 대진교 쳥운회 회원들은 하나같이 종단집회나 청운집회 모임참석이 곤란하다고 할땐 바로 그 ‘선약’핑계쪽으로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지. 이건 진짜 별도로 종교학이나 청소년 심리학적으로 연구가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다 들 지경이다. 다만 지금 이 아침시간에 그런 문제를 장시간 논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일단 그쯤해두고 아쉬운대로 이 세사람만을 데리고 뭔가 할 이야기를 의논하려들기 시작한다. 일단 세 사람을 사무실 한쪽에 있는 접대용 테이블 의자에 앉게하고 그리고 진관의 할 이야기가 시작된다.





 “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차분히 잘 들어. ”

 뭔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진관은 송도회관 청운회장 김호근, 부산회관 청운회원 정종현 그리고 그 정종현의 학교 유도부 동료라는 김신영이란 학생까지 세명이 모인 자리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관의 말이 이어진다.

 “ 뭐...나도 결국 위에서 지시받은대로 이 일을 추진하는거긴 하지만 말야. ”

 진관의 입장에서 윗사람이라면 서무국장인 그의 윗사람격인 총무부장 혹은 대진교의 부장,회관장급인 법사들, 그 외 대진교를 초창기부터 지켜온 ‘순도사(殉道師 - 여기서 순도란 기독교에서 흔히 생각하는 ’순교(殉敎)‘와 대략 비슷한 의미다. 다만 기독교와 다른 것은 대진교는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을 ’순도사‘라고 하고 있다.)’들을 지칭하는것일수도 있다. 뭐 여하튼 직속상관인 총무부장이 되었든 다른 부장이나 회관장의 직책을 맡고있는 법사들이나 순도사가 되었든 그런 사람들을 지칭해서 ‘위에서 지시받은 일’임을 굳이 강조하고 있는 진관.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뭔가 그리 내키지는 않는 일임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진관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 너희들도 강화에 대해선 들어봤을거야. ”

 “ 강화에도 회관 세운다는 말이 있었잖아. ”

 대진교에서 회관 하나를 새로 세울때는 자연스레 신도들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조금씩 말이 나오긴 했다. 어차피 회관을 하나 새로 세울려면 그만큼 비용도 들고 하니 불사(헌금과 비슷)도 받아야하고 자연스레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말이 안 나올수는 없는데, 다만 대진교 강화회관 같은 경우엔 조금 이채로운 과정을 거치는 중이었기 때문에 진관이 이렇게 덩치도 제법 있고 나름 인상파이기까지 한 이들을 부른 것이다. 진관의 말이 이어진다.

 “ 그...강화회관 같은 경우엔 좀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그래. ”

 아직 회관을 세운것도 아닌데 이미 ‘회관’으로 단정지어 표현하고 있기까지 한 진관. 그의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원래 대진교가 세워지기 전에 대진교 종단대표(대도사)와 채무관계가 좀 있던 무당이 있었다고 한다. 대도사와 원래 예전이 교류가 있었던 무당이었는데 그때 돈이 좀 필요한 사람이라서 대도사가 지원을 해줬고, 그때 간단하게 채무계약을 맺었는데, 만약 10년안에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무당이 자신이 사는 집을 내놓겠다는 식으로 계약체결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빠른게 세월이라 그 10년의 세월이 어느덧 지났는데, 현재 강화에 사는 그 문제의 무당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고, 다만 종단측에서는 일단 계약관계가 그러하니 아직 계약서가 효력이 있다는 것을 변호사를 통해 확인 해당 무당의 집을 ‘압류’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이 진관의 설명의 요지였다. 진관의 말은 좀 더 이어진다.

 “ 헌데...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다 명색이 도(道)닦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야박하게

  빚 못갚았다고 바로 압류절차 들어가고 사는 사람들을 쫒아내고 그러냐. 그러니

  일단 채무관계 당사자인 강화에 사는 무당을 만나긴 해야겠는데 현재 그 사람이

  연락이 안되고 있어. 한마디로 실종상태라고나 할까. ”

 “ 그럼 뭐 어떻게 해야하는건데요 ? ”

 사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정치활동을 하면서 선거출마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빚이나 사채를 끌어다쓰다 자산이 압류에 들어가보고 그런 경험은 제법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전 그런쪽과 관련이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란이들이라면 나이 20-30대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무슨 빚 때문에 압류딱지가 들어가고 하는 경험을 못해보는 경우도 제법 많다. - 심지어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서 이따금 보는 압류들어가는 과정이나 압류원인 발생요인도 제작진이 저런걸 잘 모르고 썼구나 하는걸 느낄때가 많았다. -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김호근이나 정종현등도 무슨 가압류 딱지가 붙고 그런건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서나 봤지 실제로 겪어보진 못한일이라서인지 제법 긴장된 얼굴로 그와같이 물었고 진관은 그네들을 바라보며 설명을 계속 이어간다.

 “ 물론 가압류절차는 변호사 공증을 통해서 정식 절차를 밟아 하는거지 무작정 깡

  패같은 사람들이 쳐들어가서 하고 그러는건 아냐. 다만 정식으로 그 절차를 들어

  가기전에 해결해야할 문제가 좀 있어서 그래. ”

 “ 어떤...해결을요 ? ”

 긴장된 빚이 역력한 대학 유도부이기도 한 정종현이 그와같이 물었고, 진관의 설명은 계속된다.

 “ 일단 요지는 그거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무작정 거기 사는 사람들을 내쫒고

  우리가 가압류 딱지를 붙이고 무작정 들어가 살겠소 그러냐. 일단 그러니 현재

  행방이 묘연한 문제의 강화무당을 찾아내는게 급선무야. 그리고... ”

 “ 그리고요 ? ”

 “ 사실 이 일을 추진하기 앞서 원로 순도사 두분이 사전답사차 그 강화의 무당 사는

  집을 한번 찾아가본적이 있어. 뭐 아무리 연락을 해도 되지않고 해서 일단 사람을

  찾으러 가본거지. 헌데 가보니까...여하튼 무당은 보이지 않고 그 무당의 아마 딸인

  가...그렇게 되는 아주머니가 자기 아이들하고 살고 있더라. ”

 “ 그건 또 무슨말이에요 ? ”

 언뜻 상황이해가 되지 않아서일까. 그와같이 물어본 것은 종현을 따라 함께온 김신영이란 부산의 대학 유도부원이었다. 일단 진관이 좀 더 덧붙이는 부연설명은 이랬다. 어쨌든 그런 무당이었다면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을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추정해볼수 있을터. 다만 어쨌든 무당에게도 자녀가 세명정도 있다는 것이다. 헌데 그중 아들 두명은 하나는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또 한 사람은 멀리 경상도 모처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딸 한명이 친정엄마가 되는 무당을 지금까지 그곳에서 모시고 자기 아이들과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무당의 딸은 나이가 30대 후반정도 되는 중년의 주부라는데 그 딸에게도 현재 12살,7살된 두명의 자녀가 있다는 것이 현장답사를 다녀온 순도사 두명이 해준 설명이었다. 여하튼 그 무당의 딸 역시 자기 어머니 행방은 모른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여하튼 채무관계 해결을 위해선 당사자인 무당을 찾아내는게 급선무인 종단측에선 차라리 이런 방식을 취해보기로 한 것이다.

 “ 헌데 좀 분명하게 해두고 넘어가야할것이 있는데...우리가 진짜 무슨 깡패처럼 가

  서 폭력을 쓰거나 그러겠다는 것은 아냐. 다만 어느정도 위협은 주자는거지. ‘당신

  들 정말 이런식으로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

  수준의 위협은 줄 필요가 있다는거야. 솔직히 아닌말로 그쪽에서 어차피 빚 갚을 

  능력이 안 되니까 버티는것일수도 있잖아. ”

 듣고보니 일리있는 말이긴 하다. 일단 어쨌든 채무관계 당사자인 강화사는 무당이란 사람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 딸이란 여자는 무조건 어머니 행방에 대해 ‘모른다’고만 하면 어찌하는가. 사실 이미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으면 피차 어느정도 짜증나는 상황까지는 왔을것이란 짐작은 충분히 될 것이다. 그래서 일단 종단측으로선 해결해야하는 두가지 문제. (1) 문제의 무당을 찾아내는것과 (2) 채무관계 해결. 이게 제대로 원만히 돌아가지 않으니, 차라리 법적 절차를 밟아 바로 가압류 딱지를 붙이느니 사전에 일종의 ‘최후 경고’ 같은 위협정도는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진관의 설명이었다. 이쯤되면 왜 이 일을 굳이 밀지까지 보내고 사람을 불러 일을 추진하려는것인지는 어느정도 이해가 될듯도 하다. 그래서일까. 호근도 종현도 뭐 그런대로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그래서...난 솔직히...그 유도부원 애들 좀 몇 명 더 데리고 오라니까. 어쨌든 우

  리가 직접 폭력을 쓰려는게 아니라 위협...한마디로 분위기만 좀 험악하게 만들만

  한... ”

 “ 그럼 차라리 윤서인이 시키지 그랬어. 이런일 시키는데 딱이잖아. ”

 “ 장난해요 ? 여기서 윤서인이 이야기가 왜 나와 ? ”

 김호근이 불쑥 농담처럼 한마디 하자 진관이 어이없다는 듯 되받아쳤다. 그리고는 손사래를 쳤다.

 “ 걔는 가면 사고칠 것 같아 오히려 난감해요. 윤서인이 걘 안돼. ”

 “ 왜 ? 윤서인이는 생긴것부터가 완전 깡패,양아치잖아. ”

 호근이 언급한 윤서인이란 아이는 아주 갓난아기때 대진교의 한 법사가 거두어 지금까지 창원회관에서 길러진 아이다. 다만 성장기나 자라온 환경이 그토록 남달랐기 때문에 어딘가 모르게 늘상 어둡고 무서운 그런 분위기를 갖고있는 아이였는데, 그래서인지 청운회 집회에도 웬만하면 잘 참석을 안하고 비슷한 또래의 청운회원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던 그런 아이였다. 헌데 이야기를 듣고보니 – 정히 험상궂게 생긴 사내 몇몇을 데리고 가 ‘위협’을 주는게 목적이라면 – 그 역할에 딱 어울릴만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허나 김진관은 거듭 그것은 곤란하다는 의사를 표한다.

 “ 미안하지만 조금 긴장을 좀 해줄래요 ? 우리가 지금 할 일없어 장난치는게 아니

  잖아. 어쨌든 강화에 회관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게 우리 종단 초창기부터의 숙원이

  있고, 헌데 마침 좋은 방안이 생겼길래 이렇게라도 해보겠다는건데...그러니 제발

  긴장좀 해줘요. ”

 “ 알았어, 알았어. 그럼 윤서인이 이야기는 내 안할게. 안하면 되는거지 ? ”

 “ 그리고 서인이 형이 어디 깡패축에나 끼어요 ? 완전 3류 날라리, 날백수 건달인거

  지 그냥. ”

 윤서인에 대해 언급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정종현도 한마디 하고 싶은들 불쑥 그와같이 끼어든다. 허나 진관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언급될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에서인지 일단 그 이야기는 다시 제지시킨다.

 “ 여하튼 그 이야긴 좀 하지말고...어쨌든 중요한 문제는...이렇게 좀 주먹질좀 할 것

  같은 사내 몇몇이 찾아가서 ‘이금순(강화 무당 이름) 여사 지금 어디있냐 ? 그 사람

  제발 좀 찾아내라. ’이 이야기를 하려는건데, 그래서 애초에 종현이가 마침 대학 유

  도부이기도 하니 유도부도 좀 몇 명 동원했으면 했던건데... ”

 “ 그럼 뭐 우리 셋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 괜히 여러사람 우르르 몰려갔다가 그

  사람들이 진짜 깡패들인줄 알면 그것도 곤란하잖아. ”

 “ 뭐 어쨌든 그런 취지와 사정이 있어서 추진하는 일이니 그렇게 알고 긴장하고 이

  일을 잘 좀 추진해줘요. 거듭 부탁하지만 우리가 ‘여차하면 우리가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수준의 위협만 주자는거지 무슨 진짜 폭력을 쓰려는건 아니에요. 만약

  정말 그랬다간 – 아닌말로 그쪽에서 폭행죄로 맞고소를 할수도 있는일인데 – 어떤

  법적문제로 비화될지도 모르는일이니...여하튼 우리 입장에선 정식으로 법적절차 들

  어가서 가압류딱지 붙이기 전에 일을 원만히 해결하고 싶어서 이러는거니까 그 취

  지를 잘 좀 알아듣고 그렇게 좀 시행해줘요. ”

 


 대진교 교리집(敎理集)에는 대진교 창립 배경과 과정에 대해 전국 각지에서 각기 수도생활을 하던 도인,도사 10명이 갑자년(甲子年)인 서기 1984년 ‘이제 후천개벽(後天開闢) 미륵의 세상,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열린다는 천지신명(天地神明)의 계시를 받고 한민족이 후천세계의 시조자(始祖者)가 되고 한반도 배꼽땅에서 5만년동안 인류를 구원할 대(大) 철학을 창시하게 위해 대진교를 세웠노라’고 되어있다. 허나 사실상 실제 대진교의 창립과 이후의 운영은 종단대표인 대도사(大道師)가 주도했으며 다만 대도사의 갑자년 이전까지의 전력은 종단 초창기 창립멤버나 몇몇 순도사 외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정도로 베일에 싸여있다. 사실 대진교는 대도사 자체의 전력을 종단의 ‘신비주의 컨셉’을 위해 일절 비밀로 했기 때문에 대도사의 갑자년(서기 1984년) 이전까지의 전력은 종단의 아주 초창기 멤버나 핵심멤버가 아닌 다음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없다.
(솔직히 필자도 잘 모른다. -.-) 다만 종단의 대외협력자로 가끔 풍수지리사나 관상가 혹은 사주,관상을 보는 무당이나 보살이 이따금 대도사와의 과거 인연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또는 글자그대로 대외적인 일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어, 아마 대진교가 창립되기 이전까진 그런 무당이나 보살 혹은 풍수사,관상가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도를 닦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막연히 짐작할 따름이다.

 헌데 바로 그런 수도시절의 인연이 있던 강화의 한 무당과 어떤 그런 채무관계가 있었음은 분명한 듯 한데, 허나 도닦는 도사가 무슨 고리대금업자나 사채업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느덧 10년전의 일인 그런 채무관계를 꼬박꼬박 기억하며 쫒아다녔을리는 없고, 다만 명색이 ‘민족종교’를 표방하고 있으면서 그런면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상징적인 곳인 강화에 회관 하나가 없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터에 그 10년전 인연을 생각해냈고, 그래서 애초에 계약대로 한번 그 무당이 정히 빚을 못 갚겠으면 집을 내놓을수는 없는지 그 의사를 타진해보려 했던 것이다. 허나 막상 그 무당의 행방을 찾으려니 이미 10년전 일이라 행방이 묘연했고, 하는수없이 종단의 순도사 두명이 10년전 그 강화무당이 살던곳을 한번 찾아가 보았는데 이미 문제의 무당은 소식을 모르고 무당의 딸이라는 이가 자신의 자녀 두명과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 두 순도사의 전언이었다.

 어쨌든 종단 입장에선 ‘강화회관’이 하나쯤 있는 것이 상징적으로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 채무관계 무당을 찾아보려 했던 것이다. 헌데 좋은말로 차분하게 접촉을 시도하니 그 ‘무당의 딸’이라는 30대 후반의 주부는 대진교측을 만만하게 보는지 아니면 빚을 못 갚겠다고 버티는것인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선 끝끝내 행방을 모른다고 해서 이 문제가 난항에 부딪혔던 것이다. 다만 일단 법적으로는 10년전 계약서가 여전히 효력이 있다는 변호사의 자문과 법적 공증을 받은뒤라서, 차라리 좋은말로 하느니 일종의 위협을 줘서라도 무당의 행방을 찾거나 회관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이런 차선의 방책을 궁리한 것이다. 서무국장 김진관이 김호근,정종현등에게 말한것처럼 (실제로 폭력을 쓰라는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여차하면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위협정도만 주며 문제의 무당을 찾아내던지 아니면 집문제를 해결을 보자는 그 말을 하기 위해 조금 덩치가 큰 청운회 몇 명을 차출하려 했던 것이다. 때마침 부산회관 청운회중에 대학에서 유도부로 있다는 학생이 한명 있어서 차라리 그 청운동지의 동료 유도부원이라도 몇 명 차출할 생각을 했던것인데, 다만 애초 서너명정도 데려올수 있다던 정종현이란 청운회원은 결국 자기학교 유도부원들이 각자 개인사정들이 있어서 한명밖에 데려오지 못했고 여기에 평소 체구도 건장하고 키도 훤출한 송도회관 청운회장 김호근까지 모두 세명이 가는 것으로 했다. 다만 윗선인 부장과 법사님들께 보고를 하니 서울이나 인천에 사는 청운회원중 시간이 되는 동지 한두명 정도 더 차출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아 결국 이들 세사람만 출발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들이 강화무당이 사는집은 모르니 애초에 그 집을 찾아갔던 순도사 한명이 길안내를 위해 동행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어차피 차에 다섯명까지 타는 것은 무리니 차량운행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청운회 세명에 강화무당 사는집을 아는 순도사까지 그렇게 네명이 출발하기로 하고 차 운전은 김호근 회장이 맡았다.

 “ 헤임요, 그럼 우리 가서 뭐 우찌해야하는깁니꺼 ? 정말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서 보

  는것처럼 막 욕도하고 마... ”

 “ 그렇게는 안되지. 그랬다간 진짜 우리가 무슨 폭력집단이라도 되는것처럼 오해받

  으려고 ? ”

 사실 대진교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외부에 자신들이 ‘사이비종교’처럼 알려지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래서라도 ‘위협’까지는 몰라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채권자나 그 하수인들이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는 그런 행동은 하기 곤란하다. 여하튼 일단 강화무당의 사는 집을 찾아가서 지금은 그녀의 딸이 아마 무당에겐 손자,손녀가 될 그녀의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 어떻게든 대화로 문제는 잘 해결을 봐야할것이고, 다만 어쨌든 ‘여차하면 우리도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그 정도 수준의 위협을 주자는 것이 근본 취지. 그러자 정종현이 다시금 김호근에게 농을 건다.

 “ 헤임요, 그럼 차라리 윤서인이도 여기 딱 끼워줬으면 좋을뻔했네예. ”

 “ 윤서인 걘 안돼 ! 걔 끌어들이면 거기서도 우리 진짜 깡패집단인줄 알아. ”

 윤서인이란 바로 갓난아기때 대진교 초창기 멤버이기도 한 법사중 한 사람이 입양해 지금까지 키웠다는 아이. 지금은 그도 어느덧 20대 중반의 청년이 되어있긴 했지만 남다른 성장기 탓인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와 사람들과 쉬이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성격의 아이였다. 덕분에 얼핏 봐서는 진짜 잘못 건드리면 바로 ‘묻지마 폭행’이라도 할것같은 그런 날카롭고 무서운 인상을 가진 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아이의 근본 성정 때문에 윤서인을 끌어들이는것만은 다들 난색을 표했다.

 “ 헤임요, 근데 서인이 이야기 꺼낸김에 한마디만 더 하겠는데예... ”

 “ 왜 또 ? ”

 서인이 이야기를 자꾸 언급하는 것은 김호근 회장도 불쾌한지 살짝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고 일단 정종현은 개의치않고 말을 덧붙인다.

 “ 서인이 그눔아도 이 다음에 장가 갈수 있을까에 ? 난 솔직히 그게 진짜 궁금해서.

 ”

 “ 못가지 ! ”

 종현은 사뭇 장난기를 담아 그리고 내심 평상시 윤서인을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긴 했던것인지 그런 마음을 덧붙여 물은것인데 뜻밖에 김호근이 바로 단호하게 그와같이 말했고, 그러자 되려 정종현이 반발심이라도 생겼는지 묻는다.

 “ 와예 ? ”

 “ 몰라서 묻냐 ? 개 근본적으로 태어는 출생 배경이나 자라온 환경부터가 그렇고...

  그렇다고 뭐 학교를 제대로 다니길 했냐, 뭘 했냐. 그러니 그런 아이를 어떤 여자

  가 좋아하고, 어떤 집안에서 그런애를 사위로 삼으려 하겠냐 ? ”
“ 그래도 그런건 몰라예. 세상에 인연이란것도 있고...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도 있

  지 않습니까. 다 지 팔자대로 언젠가는 좋은사람 만나겠지예. ”

 정종현의 유도부 동료라는 김신영이란 아이가 이야기 주제의 본질이나 대화에 거론된 당사자에 대해 제대로 파악은 하고 말하는것인지 그런식으로 끼어들기까지 하는데 호근은 운전을 하는 와중에도 내심 절망적이라는 듯 손까지 내저으며 마치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막내동생 같은 철없는 아이들 타이르듯 설명을 덧붙여준다.

 “ 니들이 아직 몰라서 그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오히려 그런건 더 따지고 까칠

  해지는 그런 분위기로 가는 것 같더라고. 가령 학력은 어떤지 부모님이나 자라온

  환경은 어떤지...또 다니는 직장의 장래성은 어떻고 한달 월급은 얼마나 되는지, 또

  그런일해서 출세할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심지어 요즘은 무슨 건강기록부까지 챙

  겨오라는 경우도 있다며 ? 그렇게 까칠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윤서

  인이가 어디 그 많은 조건 통과할수 있는 사안이 어디 하나라도 있냐 ? 니들이 아

  직 몰라서 그렇지 윤서인 걔는 절대 장가 못가. ”

 그야말로 단호한 어조로 김호근이 그와같이 말하자 정종현과 김신영은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아서인지 별다른 말이 없는데, 호근은 그런 세상물정 모르는 후배이자 동생들을 좀 더 가르쳐줘야겠다는 마음인지 말을 계속 이어간다.

 “ 게다가 행여...종교문제로 부딪히는건 어쩔거구 ? 가령 아닌말로 진짜 독실한 예

  수쟁이 집안의 그런 딸이라도 만나거나 그럴경운 어쩔건데 ? 물론 근본적으로 그런

  집에서 자란 아이가 윤서인 같은애를 좋아할리도 없거니와 그런 집에서 서인이 반

  대할 것은 불을보듯 뻔한사실 아니냐 ? 그러니 어떤 조건에 대입해봐도 윤서인이는

  안되는애야. ”

 사실 군소규모의 종교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이 다음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 행여 종교문제로 상대방이나 상대집안에서 반대하진 않을지 그 문제를 나이가 들면서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 실제 바로 그런 문제로 대진교 청운회를 탈퇴한 청년도 꽤 된다. - 따라서 다른 문제는 몰라도 바로 그 점은 정종현도 수긍을 하는지 별다른 대꾸가 없이 되려 진지하고 어두운 표정이 되기까지 하는데, 다만 정종현이 데려온 김신영이란 아이는 김호근의 그와같은 말들이 여전히 이해가 안가는지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기도 한다. 헌데 그러자 이들의 길안내를 맡은 순도사가 결국 끼어든다. 현재 나이는 50대 후반으로 대진교 회관의 회관장과 총무원 부장을 여러차례 역임한 핵심멤버이기도 하다.

 “ 거 자네들은 왜 쓸데없이 남 이야긴 계속 하고 있나 ? 그러지말고 우린 우리일에

  집중하자고. 우리가 지금 어디 놀러가거나 장난하러 가는거 아니잖아. 그러니 쓸데

  없는 이야긴 그만하고 오늘일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수 있을지 그거나 좀 고민해

  봐. ”

 어쨌든 괜시리 이 자리에 없는 남 헐뜯는 모양새가 되어서인지 순도사의 제지의 발언에 대체로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순도사는 순도사대로 여하튼 오늘 강화회관(아직까지는 아님)을 찾아가 해야할 일이 책무가 막중하다는 말을 다시한번 덧붙이고 있다. 김호근의 운전하는 자동차는 그렇게 어느덧 점심때가 다 되어갈 무렵이 되어 강화로 진입하고 있었다.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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