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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EXID 정화 (1) 걸그룹 팬픽 7 (마마무,EXID)



 고아, 또는 입양에 관해서 옛날에는 인식이 무조건 부정적이었을 것 같으나 좀 더 고찰을 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우선 근본적으로 우리는 6.25를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있었고 따라서 이 고아들을 거두는 고아원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었다. 종교시설에서 아이들을 거두는 경우도 많았으니 기독교,천주교등의 외래 종교들도 그런식으로 점차 대중들에게 친화적으로 다가왔던것이며 입양의 개념도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 고아입양 특례법이 처음 제정된 것이 1961년의 일이다.)

 오히려 요즘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막장드라마에서 걸핏하면 갓 태어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걸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로 아이를 ‘유기’하는 행위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명백한 범죄행위다. 물론 예전에도 절간 같은데 아이를 맡기고 부모가 도망치거나 하는일이 종종 있었다고는 하나 이것은 또 불교 나름의 종교적 특성과 관련해서 이해해야할 문제인 듯 하다. 대다수의 고아원에서는 아이는 정식 절차를 거쳐 맡겨지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뒤인 60-70년대에도 가난등의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대개 주변 친척이나 지인등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거나 또는 버려진 아이들을 복지기관에서 거둔뒤 일정기간과 절차를 거쳐 고아원에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허나 막장드라마에서 보듯 갓 태어난 아기가 무작정 고아원에 버려지는 경우나, 2-3세 정도 되는 아이가 주변 친척,지인의 도움이나 복지기관 관계자들에 의해 발견이 되는 경우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갓태어난 아이나 2-3세 정도 나이에 그런식으로 고아원에 맡겨지는 아이나 자기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기는 마찬가지일것이고, 또한 고아원에 맡겨진 경위도 특별히 당사자가 궁금해서 고아원 선생님이나 관계자에게 묻기전까지는 굳이 그것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을 것 아닌가. 따라서 갓태어난 아이가 고아원에 버려진것이든 2-3세 정도때 고아원에 맡겨진것이든 처지는 크게 다를것이 없으리라.

 쓰고자하는 소설의 주제상 불가피하게 무슨 시사칼럼 같은 서론이 불가피하게 길어졌는데, 일단 이야기의 배경은 1983년 봄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약 이때 10대 초반 정도 나이의 소년이라면 태어난 것은 대략 70년대 초반. 만약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라면 6.25가 있은지는 이미 20년쯤 지난뒤의 일이니 상식적으로 ‘전쟁고아’일수는 없을것이고 경제적 문제나 기타 피치못한 사정등으로 고아원에 맡겨져 자라게된 경우이리라.

 아이의 이름은 준이. 1983년 이때 나이는 만 11세로 초등학교 5학년이다. 고아원에서 아이 이름을 지어줄때는 그래도 성도 당연히 붙여줄테니 당연히 성도 있을것인데, 다만 이 아이의 경우엔 그냥 ‘준이’라고 불렀다. 그냥 그렇게 부르는게 편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 30여명 가량의 아이들을 맡고있는 ‘OO 보육원’에서 불려지는 이 아이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그냥 ‘준이’였다.

 고아라고 다 그렇게 자라진 않겠지만 준이는 일반적으로 말이 없었다. 사실 고아라고 하면 대개 꼭 부정적인 인식이라기 보다는 ‘불쌍한 아이’로 보는 시각이 있어서인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더욱 주눅이 들거나 침울한 성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고아라고 해도 개중 제법 성격이 밝고 적극적인 아이들은 자기 친구들을 ‘여기가 우리집이야’ 하면서 당당하게 고아원까지 데려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반 친구들이 일부러 물어보는 경우가 없는한 굳이 자신이 앞장서서 직접 밝히는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어쨌든 준이는 학교에서도 고아원에서도 대체로 말수도 적고 어둡고 침울한 그런 분위기의 아이로 자랐다고 보면 된다. 고아원 관계자들은 준이가 두 살이 채 되지 않았을때쯤 복지기관 관계자에 의해 발견되어 맡겨진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그때 그 두 살된 아이가 어떤 경위로 버려진것인지는 고아원 관계자나 준이를 맡긴 복지기관 관계자들도 당연히 알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친부모조차도 누구인지 알길이 없는 준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83년 봄까지 그렇게 고아원에서 살고 있었다.

 고아원 접견실에 찾아온 손님 하나가 있었다. 이 고아원을 후원하는 후원자중 하나인 ‘이종태 PD’란 사람이다. 이 정도 규모의 고아원이면 당연히 후원이나 자원봉사를 하러오는 봉사단체도 있고 후원단체나 개인후원자도 있기 마련인데, 이종태의 경우는 젊은시절부터 인연이 있던 봉사단체의 인연으로 가끔씩 자원봉사도 하고 후원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통 종태는 봉사단체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고아원에 들르곤 했는데, 헌데 오늘은 자원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그냥 개인적으로 고아원에 들른 것이다. 그 이종태 PD를 고아원 관계자 한 사람이 차를 한잔 대접하며 환담을 나누는 식으로 그를 접대하고 있다.

 “ 준이가 오늘은 늦나 보네요 ? ”

 바로 그 준이를 언급한 이종태 PD. 사실 이종태 PD는 준이를 눈여겨본지가 좀 되었다. 대략 한 1-2년전쯤 부터라고나 할까. 그전에도 종태가 준이와 면식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종태는 준이를 그저 자원봉사하러 오는 보육원의 수많은 고아들중 한명 정도로만 알고 있을뿐 그렇게 크게 눈여겨보진 않았다. 헌데 그 준이를 종태가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2년전 크리스마스 행사때 고아들이 직접 만들어 공연한 한 연극에서 조연으로 연기를 한 그때부터였다.

 물론 방송사 PD 정도라면야 현역 연기자는 물론 수많은 연기 지망생이며 연영과 학생들을 오디션장에서 수도없이 보게될테니 프로건 아마츄어급이건 그렇게 수도없이 연기하는 사람을 보게되는 이종태에게 이 정도 규모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꾸민 연극공연에서 그것도 조연을 맡은 아이를 그런점 때문에 눈익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종태도 그 ‘준이’란 아이가 말수도 적고 너무나 어두운 분위기의 아이란 관계자나 다른 고아원 아이들 혹은 자원봉사자들의 하는 이야기로 귀동냥으로 들은 기억은 있을터. 그래서 처음엔 그 ‘준이’란 아이가 맞나 싶을정도로 의아하며 뜻밖이란 시선으로 고아원 행사 연극에서 조연을 맡은 준이를 지켜본 정도다. 허나 무슨 이끌림이라도 있는것일까. 아니면 ‘너무 말수가 적고 우울한 아이’라는 고아원 관계자나 자원봉사자들의 말이 마음에 걸리기라도 했던것일까. 여하튼 그무렵부터 종태가 준이란 아이에게 시선이 간것만은 분명한 듯 하다.

 “ 그러게 말이에요. 보통은 그래도 한 저녁시간쯤 되면 오곤 하는데... ”

 그 우울하고 말수적은 아이 준이가 가끔씩 고아원에서 혼자 나가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고 저녁때쯤 되면 들어오곤 하는 것은 대략 한 2-3년전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처음엔 고아원 선생님들이 그런 준이가 걱정되어 만류도 하고 야단도 쳤지만 그 습관 자체가 크게 고쳐지진 않았다. 다만 그래도 고아원 원생들이 저녁식사를 해야할때쯤이면 돌아오곤 했고 무엇보다 큰 말썽을 부리거나 하는일은 없는 아이라서 또 한편으론 애를 너무 단속하면 오히려 더 비뚤어지진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고 해서 그 정도선에서 아이를 놓아두곤 있었다. 헌데 무슨 ‘오는날이 장날’이라도 되는지 이종태 PD가 찾아와서 그것도 ‘준이’란 아이를 언급한날 하필 준이는 원래대로라면 근처 어디에 바람이라도 쏘이러 나갔든 혼자 상념에라도 잠기고 싶어 나갔든 올때가 거의 다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늦자 고아원 관계자도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차라리 이종태 PD를 이쯤에서 돌려보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다만 아직은 겸사겸사 대화나 좀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인지 화제를 돌려 말을 건넨다.





 “ 헌데 이피디님은 왜 여태 결혼을 못하신거에요 ? 나이도 벌써 서른아홉이신데

  ? ”

 “ 아...예...하하...그거야 뭐... ”

 막상 이런 질문을 들으니 무안하기도 하고 대답하기도 난감한것일까.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여보이기도 하는데 일단 차를 한모금 음미 목을 축인뒤 이런식으로 얼버무린다.

 “ 뭐...방송사 피디일이 늘 바쁘니까요. 그러다 그렇게된거죠. ”

 허나 이런식의 변명은 생각보다 납득시킬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방송가에서 일하다보면 그만큼 사람을 만날일도 많은데 바빠서 결혼을 못했다는 것은 핑계가 될 수밖에 없고, 사실 늦은나이까지 결혼을 못한 남자든 여자든 그런 질문을 받으면 흔히 하는 변명중 하나이긴 하다. 바빠서 못했다던가, 돈이 없어서(경제적 사정 때문에) 못했다던가. - 허나 따지고보면 늦게까지 결혼을 못한 사람들 일일이 사연을 캐보면 그 자체만으로 장편소설 한권 분량이 충분히 나오리라. - 다만 고아원 관계자는 공연히 종태를 난감하게 만든 질문이 되어서인지 미안한 마음에 다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 그런데 전 솔직히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가요. 결혼도 안 하신분이 아이를 굳이 입

  양하려는 심리를...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것인지...그것도 남자분이...그동안

  아이가 없어서 입양을 하고파서 고아원을 찾는 돈 많은 부부는 종종 봐왔지만...

 ”

 입양특례법은 80년대에 이미 존재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법률이 촘촘하지 못했고 입양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지금처럼 크게 하던 시절이 아니니 그것도 입양을 원하는 남자가 독신이든 아니든 그건 고아원측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대상은 못될 것이다. 더욱이 고아원 관계자와 입양희망 당사자간에 이미 어느정도 인간적 신뢰가 쌓여있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양해가 될수도 있을터이고. 다만 고아원 관계자는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듯 다시금 말을 건넨다.

 “ 준이가...그렇게 마음에 드세요 ? ”

 사실 이종태 피디가 입양을 희망하고 있는 아이가 바로 그 ‘준이’였다. 준이가 종태의 눈에 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2년전 크리스마스 행사때 아이들이 하던 연극때부터였다. 다만 그때 준이가 딱히 연기를 잘 했다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다만 평소 말수도 적고 어둡고 우울하다는 아이가 뜻밖에 저런 역할도 잘 소화한다는 점에 눈길과 관심이 갖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종태 피디는 고아원을 찾을때마다 준이에 대한 관심을 표시해왔던 것이다.

 “ 우선...제가 비록 사정상 결혼은 여태 못했지만...아이 하나쯤은 좀 키우고 싶다...

  그래서 기왕이면 제가 이렇게 가끔씩 고아원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하는 몸이기도

  하니...부모없이 자란 불쌍한 아이 하나쯤을 양자로 거둬 키우고 싶다 그런 생각

  을 한 것이죠. ”

 서른아홉살 독신의 이종태 피디가 입양을 희망하는 이유를 그와같이 밝힌것이고 다만 그 상대가 하필 준이라는 점은 고아원 관계자 입장에선 안도와 우려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관계자는 일단 우려의 말부터 입에 담는다.

 “ 사실 저희야 고아들을 늘 보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 부분에 대한 편

  견 같은게 있을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 아니, 오히려 저희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

  들은 그런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이 더 눈에 뜨일때가 많아요. 솔직하게 말

  씀 드리자면... - 어쨌든 준이의 남다른 어둡고 우울한 성격은 이선생님이 감당하실

  수 있을지 그게 좀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

 “ ...... ”

 “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기에 안도하는 부분도 있고요. 솔직히 말이 났으니 하

  는 이야기지만 이 다음에 준이가 자라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게될까. 그 걱정은 저

  희도 많이 했어요. 물론 뭐 아직은 어리니까 좀 더 크고 자라고 친구들도 생기고

  그러다보면 좀 나아지겠지. 그 마음으로만 지켜보고 있는 중이지만요.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종태. 다만 고아원 관계자가 말하는 것으로 봐선 준이에 대한 입양의사가 있는 자신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고있진 않은듯해 마음이 놓이는 듯 하다. 다만 하필이면 오늘같은날 준이가 늦는 것은 관계자나 종태나 두 사람 다 난감한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정말 하필 오늘따라 준이가 늦네요. 이 녀석 안되겠어요. 오늘은 들어오면 야단을

  좀 치던가 해야지. 그것도 하필 이선생님까지 오신날... ”

 “ 하하...아닙니다. 저도 이만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

 “ 그러세요. 너무 늦었네요 – 서울까지 가는 시간도 있고하니 – 저기...이피디님

  그러면 차라리 제가 준이한테도 별도로 이야기해서 두분이 따로 만나는 시간을

  잡아보던가 해볼께요. 그러면 오늘처럼 허탕치시는 일은 없을테니까요. 조만간

  한번 두분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을... ”

 “ 아...아닙니다. 제가 실은 당분간은 좀 바빠질 것 같아 그렇게 여기 자주 찾아

  올 시간이 없어요. 실은 새로 준비하는 단막극을 하나 연출하게 될 것 같거든

  요. 그래서 한두달 바빠질 것 같습니다. - 실은 그래서 더더욱 당분간 준이를

  못 보게 될 것 같아 그래서 작품제작 들어가기전에 한번 만나러 온건데...뭐

  여하튼 아쉽지만 어쩔수없이 이만 돌아가봐야겠네요. ”

 준이를 입양하는 문제를 마음속으로 고려는 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렇게까지 급하게 추진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일까. - 오히려 당분간 드라마 촬영 문제 때문에 고아원을 자주 못오게 될것같아 그전에 한번 찾아온것이라고 말한 이종태 피디다. - 준이를 만나서 뭐 그렇게까지 특별히 중요한 이야기를 할 생각까지는 없었는지 여하튼 이쯤에서 돌아가겠다고 하는 종태. 다만 준이를 못 만나고 가는것에 대한 아쉬움은 다시금 내비친뒤 이만 접견실을 나온다.

 사실 이때 이종태 피디는 말한것처럼 새로 시작하는 2부작 정도의 특집극 하나를 준비중에 있었다. 어떤 윗선의 지시에 의해 만드는 특집극은 아니고 원래 정규편성되는 단막극 시리즈중에 하나로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소재는 실은 산업재해로 죽어간 청소년 근로자의 사연을 한번 드라마로 만들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사실 80년대 초,중반 정도면 산재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도 별로 없었고 – 물론 시대적으로도 그런류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도 쉽지 않은일이다. - 다만 가끔씩 그런류의 기사가 주간지 같은데 가십기사나 가끔씩은 유력 언론사에서도 사회면 한구석 정도의 한 두어줄 정도의 분량으로 다루는 일이 있었다. 종태의 경우 바로 이따금 그렇게 주간지 따위에 실리는 그런 사회문제를 다룬 기사를 관심있게 읽어보곤 했는데, 그러다 한번은 공장에서 15-16세 정도 되는 청소년 근로자의 사망이 있었다는 기사를 하나 보게된 것이다.

 사연의 내용은 그 시절 대개 그렇듯 돈을 벌기위해 고향에서 올라와 수도권의 공장에서 일하는 청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화학약품을 주로 다루는 공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나름 열심히 돈벌어서 가족들을 호강시켜줘야겠다는 일념때문인지 때로는 위험한 일(화학약품 처리를 맡는일 등)도 마다않는 그런 소년이었다. 허나 결국 그로인한 부작용이 발생한것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한동안 앓다 소년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장측은 소년의 죽음을 외면했고 경찰이나 관공서를 찾아가 하소연을 해보려고 해도 대개 ‘자기네 관할이나 책임소관이 아니다’라는 식의 답변만 나와 유가족들은 아이의 죽음을 안타까와 하면서도 하소연할곳이 없어 답답해하던 중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 가족이 그나마 다행히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주간지 관계자와 연이 닿을수 있었는지 해당 주간지에서 그나마 주로 사회이슈를 다루는 지면에서 두페이지 정도를 할애 소년의 사연을 비교적 세세히 다루어주었다. 그리고 이피디는 그 기사를 접하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번쯤 드라마 소재로 다뤄보고픈 사회문제’라고.

 하늘의 도우심이라도 있는지 그러다 자신이 일하는 방송국에서 정규편성되는 단막극 제작의 순서가 자신에게 오게된 것이다. 그래서 이 소재를 한번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일단 단막극 집필을 맡을 작가를 찾아가보니 상대도 대체로 취지에 공감하는지 흔쾌히 응했다. 그래서 문제의 ‘산재소년의 죽음’을 다룬 드라마를 단막극 제작 준비를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종태는 그렇게 당분간 자신이 제작하게된 단막극 연출에 전념하게 되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뜻하지 않은 돌발상황이 빚어졌다. 실은 애초 단막극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청소년배우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원래 드라마 소재의 모티브가 된 실화의 당사자가 15-16세 정도의 중3-고1 정도 되는 청소년 근로자였으니 비슷한 연배의 청소년 배우를 한명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었다. 작품의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어느정도는 그런 배경이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이해가 충분해야할 그럴만한 아역배우중에 캐스팅을 했던것인데, 그 배우가 하필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처음엔 경미한 사고이길 바랬는데, 병원에선 3-4주 정도 치료를 받아야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산재 근로소년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다면서 거기에 출연하는 청소년 배우를 혹사시킬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다른 대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 드라마 캐스팅할 때 일반적으로 제작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제2,제3의 대안 정도는 생각해두기 마련이다. 헌데 일이 꼬이려니 제대로 꼬여지기로 작정이 된 것인지 다른 대안으로 염두에 둔 아역배우들도 연락을 취하니 다들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이다. 학업문제 때문에 당분간 배우활동은 자제하기로 했다, 다른 스케줄과 겹쳐서 곤란하다, 심지어 가족들이 모두 조만간 해외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했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쯤되면 정말 핑계도 가지각색이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세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대사이던가 ‘슬픔은 한꺼번에 찾아오기 마련’이라는데, 살다보니 슬픈일보다는 복잡하고 짜증나는일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경우가 많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애초 산재소년 소재 단막극 제작에 흔쾌히 응했던 작가도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차라리 다른 소재의 드라마를 만들던가 다른 피디와 일을 해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기까지 했다.

 “ 준이... ”

 문득 준이를 생각한게 그때였다. 물론 이종태는 애초에 준이를 입양을 할 아이로 생각한것이지 배우로 캐스팅할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름의 소신과 생각을 갖고 야심차게 준비한 단막극이 이렇게 난항에 부딪히자 작품 자체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어 별의별 궁리를 다 해 보다가 결국 ‘준이’를 한번 섭외해볼까 그 생각을 다 한 것이다. 다만 준이야 정식으로 연기수업을 받아본적도 없고, 연기경력이래봤자 고아원 행사에서 잠깐 조연급 역할을 해본게 전부다. 헌데 그것도 나중에 고아원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기막힌 내막이 하나 있었다.

 “ 원래 그 배역은 맡기로 한 애가 따로 있었어요. 헌데 하필 공연행사 앞두고 그 아

  이가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 겨울철이니까요. 크리스마스 행사였으니까 – 그

  래서 급히 준이로 교체했던거에요. ”

 원래 애초에 준이는 말수도 적고 성격도 어두운 아이라서 연극공연 행사를 고아원 차원에서 준비를 하면서도 주변에서 심부름 같은 일 정도만 시킬 생각을 했지 연기를 시킬 생각은 안했다는 것이다. 허나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하는수없이 준이를 대신 그 배역에 내보냈고 생각보다 준이가 그 역할을 제법 잘 소화해냈던게 그날 크리스마스 행사의 내막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아원에서 연말에 아이들끼리 모여 자신들을 후원하는 어른들에게 보이는 재롱잔치 같으니까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고,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 아닌가. 무엇보다 극본을 맡기로 한 작가가 이종태 피디가 새로운 대안을 언급하자 벌컥 화부터 낸다.

 “ 이피디, 지금 나랑 장난해요 !!! ”

 무엇보다 작품의 성격이 성격이니만큼 해당작품의 배경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만한 그런 중고생 나이의 배우로 캐스팅해야 한다는데는 두 사람이 처음부터 공감이 되어있던 것 아닌가. 헌데 애초 캐스팅한 배우가 갑작스런 사고로 촬영을 할수 없는 상황에서 캐스팅이 계속 난항에 부딪혔던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이런 대안을 내놓으니 작가도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김작가님. 일단 한번 오디션부터 보시죠. 연기 테스트부터 해보자고요. 준

  이가 생각보다 제법 소질이 있어요. ”

 허나 그것은 이종태 피디가 진짜 준이의 연기를 그렇게 평가하거나 눈여겨보고 있었다기 보다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에 가까웠다. - 어쩌면 그만큼 산재근로소년의 문제와 그 주제의 드라마 제작에 그만큼 집념이 강했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 애초 종태가 준이의 연기를 본 것은 그 고아원 행사때의 조연 연기가 전부고 늘 보는게 연기자와 연기자 지망생인 방송사 피디 입장에선 그 정도 어린아이의 그 정도 수준의 연기는 별로 신통찮게 보일 수밖에 없다.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앞에서 이런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 그리고 이피디, 아닌말로 왕년에 교회나 성당에서 행사할 때 그만한 연극 안해본

  사람이 누가 있어요 ? 그런식으로라면 나도 학교다닐 때 축제에서 연극 한번 해본

  적 있는 사람야. 어디 한번 보여줘봐 ? ”

 심지어 정말 다른 작품을 고려해 보겠다고까지 나오는 작가를 종태는 거듭 설득 준이의 오디션은 일단 보는걸로 결정했다. 오디션날 작가가 건네준 테스트용 대본은 모두 세장면. 극중에서 주인공 소년이 초반부에 돈벌러 서울로 떠나겠다며 식구들과 인사하는 장면, 어린시절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장면, 그리고 나중에 산재 부작용으로 인한 질병에 걸려 그 고통이 극에달해 ‘죽겠다’며 병원에서 발악하듯 몸부림치는 장면 그렇게 셋이었다. 헌데 막상 그 오디션을 보고난 작가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 허...이 녀석 제법이네 ? ”

 애초엔 장난하냐며 펄쩍뛰며 화를 냈던 작가는 오디션을 보고나니 오히려 이종태 피디에게 ‘역시 연출가답게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칭찬의 말까지 입에 담았다. 그렇게 비록 벼락 캐스팅이 된 준이이긴 했지만 이종태 피디가 나름의 야심작으로 만든 산재 근로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단막극은 애초 입양을 고려하던 아이였던 준이가 그렇게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막상 드라마를 제작하고 방송에 내보내니 반응도 생각보단 괜찮은 편이었다. 물론 그런 수준의 단막극이라면 시청률 수십퍼센트를 기록하며 장안의 화제가 되는 그런 수준이 될수는 없고, 그저 작품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잘 보았다’는 격려전화나 궁금한 사항이 있다는 ‘문의전화’ 정도가 오는게 전부다. - 심지어 요즘처럼 인터넷 게시판 서비스같은것도 없던 시절이니까 – 여하튼 단막극을 보았다는 시청자 몇몇이 전화를 해 왔는데, 대개는 단막극에서 열연을 한 주인공 배우가 대체 누구냐는 물음이었다. 일단 그만큼 연기도 꽤나 열연을 펼치며 잘했고, 무엇보다 TV 출연이 처음인 준이였으니만큼 그전까지 그런 배우를 본적이 있을리 없는 시청자 입장에선 ‘대체 그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배우가 누구냐 ?’는 식의 문의 전화를 안해올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종태 피디 입장에선 애초엔 산재 근로청소년 문제를 다루고자 만든 드라마가 정작 그 메시지의 전파는 뒷전으로 밀리고 열연을 펼친 ‘준이’에 대한 관심이 더 쏠린 상황이 되었으니 주객이 전도되어버려 씁쓸한 감정이 약간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일이 준이와의 인연을 더더욱 깊어지게 만들어 종태는 그로부터 몇 달정도 시간이 더 지난뒤 준이를 정식 입양해서 고아원에서 자기집으로 데려왔다. 처음엔 그저 평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다주던 고마운 아저씨였고, 거기다 드라마 피디라서 얼떨결에 자신에게 드라마 출연 기회까지 주신 아저씨니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는데, 거기다 자신을 입양까지 하겠다니 준이 입장에선 그야말로 행운이 넝쿨채 굴러오는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막상 고아원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부분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준이는 그렇게 그해 여름도 지나고 가을쯤이 되었을 때 이종태의 집에 입양이 되었다.

 한편 준이는 종태의 집에 입양이 되면서 이름도 새로 짓게 되었다. 원래 고아원에서 일반적으로 불리던 준이의 이름은 그냥 ‘준이’였다. 허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배우 이름을 그렇게 내보낼수는 없는 일이라 일시적으로 예명을 이종태가 지어주었는데 ‘하이준’이란 이름이었다. 하필 성(?)을 하씨로 한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종태가 대학때 짝사랑하던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여성이 ‘하씨’였다. 그래서 약간 장난스럽게 그 여성의 이름을 따 ‘하이준’이라고 해서 주연배우 이름으로 방송 출연자 명단 자막에 내보낸 것이다. 따라서 배우 이름을 묻는 시청자 문의전화가 와도 당연히 배우 이름은 그렇게 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런식으로 ‘하이준’을 준이의 새 이름으로 아예 못박아두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실 이때만해도 종태는 준이는 어디까지나 그때 부득이한 사정으로 잠시 단막극 주인공 대타를 시켰던것일뿐 정식으로 그를 연기자나 연예인으로 데뷔시킨다던가 하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허나 이미 세상에 이름이 하이준으로 알려진 이상 차라리 그것을 준이의 ‘새이름’으로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준이의 이름을 ‘하이준’으로 지어준 것이다.

 “ 준이야...아, 참 이제는 하이준이지 ? 그래 하이준. 이제부터 여기가 네가 살 집

  이야. ”

 이종태 피디가 혼자 살고있는 30평 아파트에 그렇게 들어와 살게된 준이, 아니 하이준. 일단 준이가 아직 초등학생이고 무엇보다 식구라고야 지금까지 이종태 혼자 살아온 집이니만큼 하이준의 눈에는 자신이 꽤 크고 깔끔한 예쁜집에서 살게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보면 지금껏 살아온 고아원을 떠나게된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을 잠시나마 채워지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집이기도 했다. 한편 종태야 애초부터 하이준을 입양할 생각이었지 연기나 연예계 데뷔를 시킬 목적은 아니었던것이기에 ‘이제 여기서 살면서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하이준은 그렇게만 자라주면 아저씨가...아니 아빠가 무척이나 기뻐할거야.’ 이런식의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허나 이준의 길은 종태의 바램과는 달리 이미 엉뚱한 길로 꼬여가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애초에 단막극 주인공 대타로 준이를 투입시켰던데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던 것으로 봐야하는것일까. 일은 이준을 입양해서 집으로 데려온 그해 가을에서는 한 몇 달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을때부터였다. 적어도 그때까진 별 탈 없이 이종태의 집에서살면서 새로 다니게 된 학교 생활도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이준은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 과정이 다 끝나고 6학년이 될 무렵의 일이다.

 “ 이봐 이피디. 그 지난번에 자네가 우리 드라마에 캐스팅했던 아이말야. 원래는 자

  네가 입양할 생각이었더는 아이. ”

 “ 이준이 말씀이십니까 ? 우리 이준인 지금 집에 잘 있는데 갑자기 왜 그러시죠 ?

 ”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그 산재소년 소재 드라마를 다룬 단막극을 맡을 때 집필을 맡은 작가였다. 이종태야 어차피 방송사 PD니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방송국에서 계속 피디로 일하고 있었고, 작가야 프리랜서니 충분히 다른 방송사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작품을 맡아할 수가 있다. 헌데 그 작가가 전해온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 실은 자네도 MOO에서 하는 ‘김이장네 일기’라는 드라마 알거야. 그 농촌드라마

  로 주간에 1주 1회씩 하는 드라마. 실은 내가 그 드라마에 내년부터 새 작가로

  투입이 될것같아. 아니 투입은 이미 되었지. 그래서 작품회의도 이미 들어갔는데

  아마 ‘김이장네 일기’가 내년부터는 작품이며 가족 구성원등에 변화를 좀 주기로

  했어. 아마...김이장 집에 막내로 아역을 하나 더 투입시키려고 그게 논의중인데

  그 상의를 제작진과 하다 문득 하이준이가 생각났지 뭐야. 그...하이준이는 지금

  뭐하나 ? ”

 “ 예 ? 우리 하이준이를요 ? ”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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