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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 선생님의 사극 원칙론을 다시 생각해본다 방송,연예



 사실 지금와서 사극의 역사왜곡 문제를 논하는 것은 지나치게 한가한 주장이다. 아니 한가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그 시기를 놓쳤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이미 중병말기 상태엔 환자에게 감기몸살을 낫게 해 주겠다며 해당 약품을 사다주는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 사극의 망가짐은 어디서부터 그 문제를 논해야할지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그 망가짐의 정도가 극심하다.


 허나 너무 복잡하게 꼬인 매듭처럼 되어버린 문제이니만큼 차라리 그 매듭이 어디서부터 잘못 엉킨것인지 침착하게 좀 살펴보듯, 혹은 단추가 잘못 꿰어진 부분이 어딘지 찾아내어 거기서부터 다시금 문제를 해결해보려하듯 최소한 문제가 잘못꼬인게 어디서부터인지를 짚어보는 정도의 의미는 있을 것 같아 지난시대 우리나라 사극의 거장이셨던 신봉승 선생님께서 제시한바 있는 ‘사극의 원칙론’을 다시한번 되짚어볼까 한다.


 사극의 역사왜곡 문제는 사실 오늘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TV 드라마 초창기 시절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다만 그 시절의 역사왜곡은 대개 역사속 인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논란 혹은 극중 등장하는 실제 역사속 인물이 악역으로 묘사되거나 잘못 묘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 후손들인 문중에서 항의가 들어온다던가 대개 그런문제들이었다. 한마디로 같은 역사왜곡 논란이라도 오늘날 사극의 문제점과는 본질적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른것이었다.


 그래서 신봉승 선생님께서 80년대 ‘조선왕조 500년’을 집필하시던 시절 내세운 원칙이 주요 등장인물들의 생몰년이라던가 주요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나 시대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게 일종의 철칙이었다. 일종의 사극을 제작하는데 있어 아무리 극중 재미나 흥미를 위해 창작을 덧붙인다 하더라도 지켜져야하는 기본 뼈대와 골격을 제시하신 것이라고나 할까. 저와같은 기본골격이 일종의 사극에서 ‘창작’이란 살을 덧붙이더라도 지켜야하는 기본적 밑바탕이자 밑그림이라고나 할까. 만약 저와같은 기본골격마저 해치게 되면 시간이 흐른뒤에 역사를 모르는 후세나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주어 혼란을 야기시킬수 있다는 점을 신봉승 선생님께서는 지적하신 것이다.


 바로 그와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예로 든게 세조시대 사육신과 다른길을 걸었던 ‘신숙주’와 관련된 이야기다. 신숙주의 경우 그 아내의 죽음이 일부 잘못된 기록이 있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신숙주의 부인이 사육신이 죽을 때 자기 남편도 죽지 않은 것을 알고 부끄러워 자살했다’는 식의 소설이 나온 문제점을 들었다. (* ‘단종애사’,‘윤씨부인의 죽음’등. - 그러나 세조실록엔 신숙주의 부인 윤씨가 세조2년(병자년.1456년) 1월에 병사(病死)한 것으로 되어있고, 사육신의 죽음(병자옥사)은 그해 4월에 있었으니. 신숙주의 부인의 죽음이 사육신의 옥사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 조선중기에 발행된 ‘송와잡기’의 기록은 오류다.)


 대체로 정통사극이 되었건 민중사극(* 역사적 사건이나 위인을 다룬 것이 아니라, 가공인물을 통해 과거 민초들의 삶을 조명한 사극)이 되었건 저와같은 역사골격 원칙은 90년대는 물론 2천년대 초,중반까지도 지켜져왔다. 그러나 2천년대에도 대조영(2005-07년 방송)의 경우엔 683년에 죽고 없어야할 설인귀가 드라마 종반부 발해가 건국되는 시점(698년)까지 살아있는등 이런 원칙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대장금에서도 연산군 시절에 출생한 것으로 설정된 장금이가 38년동안 즉위한 중종 사후까지 여전히 미혼의 젊은 궁녀인것처럼 묘사되고, 심지어 그보다도(중종사후) 시간이 더 지난뒤에 민정호와 결혼 아이를 낳고 사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어 저와같은 역사의 시간적 흐름을 아는 시청자의 입장에선 보기가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 그나마 장금이의 경우엔 해당역할을 맡은 배우가 원래 오래전부터 피부미인,최강동안으로 유명했던 배우라 그런 방향으로 이해해줄수 있기는 하다. ^^;;


 한편 9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시대 위주였던 우리나라 사극은 대체로 2천년대 들어와서 고려나 고구려,신라(장보고를 다룬 ‘해신’)시대등을 다루기도 하는등 변화의 조짐이 있었는데(* 90년대 초반에도 KBS가 삼국통일 시점을 다룬 ‘삼국기’를 제작하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 시대 등장인물 대다수가 일반 시청자들에게 생소하고 낯설어서였는지 시청률 부진의 고전끝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허나 고대사로 올라가면 남아있는 역사기록이 워낙 적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데 다소의 고충이 있었다. 결국 해신이라던가 주몽,대조영등의 고대사 사극은 주요 등장인물만 어느정도 역사기록에 맞게 설정한뒤 70-80퍼센트 이상의 스토리는 작가의 창작으로 채워나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적어도 ‘주몽’,‘대조영’,‘해신’등의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기까지는 최소한 정통사극은 정통사극다운 중후함과 무게감은 유지되었다. 그러다 2009년 방영된 ‘선덕여왕’의 경우 난데없이 나중에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공주가 어릴 때 머나먼 타클라마칸 사막지대로 추방되어 자라나는등 지나치게 환타지적 요소가 많이 만들어졌고 2014년 방영된 기황후에선 고려사에 패륜군주로 묘사된 충혜왕을 기황후와 커플로 엮어 묘사하려 하다가 역사왜곡 지적이 있자 ‘왕유’라는 가공인물로 가상설정을 하는등 조금씩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였다.


 사실 근본적으로 사극도 드라마이니만큼 어느정도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극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시작한 원인도 결국 근본적으로 시청률 문제라 봐야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략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선덕여왕’이라던가 ‘시크릿가든’,‘제빵왕 김탁구’,‘자이언트’ 같은 시청률 30-40%를 기록하는 대박 드라마들은 종종 있어왔다. 헌데 불과 근 10년 사이에 특히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은 10%는커녕 5%를 넘기도 쉽지 않을정도로 추락하였다. 인터넷의 보편화와 젊은세대들은 예전처럼 가정용 TV로 본방시청을 잘 하지 않고 인터넷 다시보기나 스마트폰 TV를 이용하는등 TV 시청문화와 생활습관등의 변화를 고려해도 불과 10년사이에 이와같은 지상파 드라마들의 시청률 추락은 그 근본원인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게 대략 90년대 후반-2천년대 초반 무렵부터인데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지났을때까지도 30-40퍼센트 대박 드라마는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극이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트렌드(유행)의 변화 때문이다. 드라마들 특히 일일,주말극의 경우엔 신데렐라,캔디형 드라마나 출생의 비밀, 사각관계등이 들어간 드라마가 아니면 시청률이 안 나오는게 일종의 흐름이 되면서 드라마의 스토리와 등장인물 구조설정이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져 가면서 사극도 자연스레 그 흐름의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옷만 바꿔입은 신데렐라 드라마가 사극의 새로운 대세가 되면서 출생의 비밀, 갓태어난 아이 바꾸기등 심지어 조선시대라면 결코 용납될수 없었던 설정이나 구도까지도 단지 젊은 여성 시청층 취향에 맞추기 위해 무리한 설정과 구도를 계속 만들어 갔던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역사왜곡 논란을 피하기 위함인지 가령 조정 대소신료들은 실존인물이 아닌 100퍼센트 가공인물로 등장시키거나 아예 가상의 왕자나 공주까지도 만들어가며 저와같은 ‘신종 신데렐라형 사극’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헌데 저런식의 신데렐라형 사극이라면 퓨전이나 환타지 같은 장르로 구분하기도 모호하다. 일단 판타지라면 그야말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100% 환상의 세계를 말함인데 조선이 되었든 고려가 되었든 화면에는 버젓이 조선이나 고려시대 의복이나 가옥,궁궐이 나오는데 그 속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왕자나 공주가 평민이나 노비출신과 연애하는 ‘헷갈리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그냥 환타지로 봐달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퓨전(fusion)이란 본래 이질적인것들이 뒤섞인다는 뜻이라던데, 옷만 한복을 입은채 버젓이 현대식 말투와 행동을 일삼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그냥 ‘퓨전사극’이라 말해도 되는것일까 ? - 차라리 그 무슨 ‘평행우주 이론’이라도 얼치기로 접목시켜 ‘평행우주형 사극’이라고 부른다면 모를까.


 사실 사극은 제작에 있어서 현대물과는 또 다른 고충이 많은 장르인것도 사실이다. 실제 연출이나 제작에 있어 제작진들의 비화를 들어보면 생각지 못한 고충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가령 미술,채색과 관련된 부분만 해도 단청(丹靑)의 경우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게 삼국시대 중반 이후니 불교풍 건축이나 그림(연꽃문양이라던가), 문화를 묘사하는 것은 삼국시대 초기 사극으로 올라가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종이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종이는 서기 105년 채륜이 발명(* 최근엔 ‘발명’이 아닌 ‘개량’이란 주장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종이와 제지술이 들어온 것 역시 삼국시대 중반경, 따라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삼국시대 후반에나 들어서라고 봐야할테니 삼국시대 초,중반 사극에선 결국 ‘죽간’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헌데 죽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령 붓글씨로 멋스럽게 화선지에 휘갈긴다던가 그런 연출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고충도 있다.  - 이래저래 사극은 조선시대가 가장 무난하고 거기서 더 올라가봐야 고려 이전까지는 올라가지 않는게 덜 골치아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또한 극중 갈등구도의 경우 가령 여말선초시대를 묘사한다던가 또는 통일신라 말기(후삼국 시대) 혹은 고구려나 백제 멸망과정을 그린다 하더라도 극중 갈등구도에서 오늘날 보수-진보의 갈등구도와 유사한 구도가 만들어지는게 아무래도 불가피할 것이다. 개혁을 한참 부르짖던 시대를 묘사한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은 어차피 이제 80년대 ‘조선왕조 500년’ 과 같은 10년 가는 시리즈물 사극도, 90년대 후반-2천년대 초반 있었던 ‘태조왕건’이나 ‘용의눈물’,‘대조영’ 같은 100회가 넘는 긴 호흡의 ‘대하사극’ 제작도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다. 캐스팅,제작비,시청률 등등 80년대나 90년대 방송,연예가 분위기와 오늘날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극이 망가진 것은 결국 단순한 역사왜곡 문제뿐만 아니라 시청률과 사람들의 문화,취향,가치관의 변화, 제작환경의 변화등 다각도의 관점에서 검토,분석해봐야 하는것이지 어느 한쪽 방면의 문제만 지적해서는 본질적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 시대는 지난시절과 같은 무게감 있는 정통사극을 다시 보는 것은 불가능한 시절이 된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어찌보면 향수삼아 또 어찌보면 그래도 중병환자를 치유할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일찍이 사극거장 신봉승 선생님께서 세우신 ‘사극원칙’론을 다시금 생각해본 것이다. 역사왜곡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최소한 ‘사극다운 사극’이라도 좀 다시한번 보고싶다. 언제까지 사극조차도 옷만 바꿔입은 신데렐라 여성 환타지물로 변질된 모습을 봐야하는걸까.


* 최소한 부왕의 젊은 후비가 왕자가 태어나길 바라면서 심지어 갓태어난 아기까지 바꿔치

  기하는 이런 설정이라도 좀 자제하자. 옛날 중전이 아무렴 무슨 요즘 재벌가 후처나 숨겨

  둔 애첩과 같았겠냐 !!! (실제 21세기 재벌가에서 그런일이 벌어지기나 하는지조차도 불분

  명하고) - - 아니면 차라리 기왕에 막장사극을 만들거면 나라면 젊은 왕자가 부왕의 젊은 후궁과

  간통을 해 애가 생겼는데 그 애가 나중에 중국이나 일본 또는 러시아나 동남아 같은데로 망명해서

  새나라를 세우는 이야길 한번 만들어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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