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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여자친구 소원 (3)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부제 : 응답하라 ! 1975





 준열의 두 딸 은희,순희의 반대로 난항에 부딪힌 소원과 그의 재혼문제였지만 이미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절실해져있기 때문인지 이후에도 준열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설득해보려 했다. 그나마 아들 둘은 여전히 ‘새엄마’가 생기는 것에 긍정적이거나 아버지의 재혼을 이해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준열의 나름 진정성을 갖춘 아이들에 대한 설득은 조금씩 진전된 결과를 보여주긴 했다. 은희의 경우엔 나중엔 ‘그럼 아버지의 재혼 자체까진 말리지 않을테니 그 식당아줌마(소원)말고 다른 여자분이면 안되겠느냐 ?’ 정도로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허나 이미 준열의 마음 자체가 소원에게 가 있고 이제와서 다시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것도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만약 준열이 정히 재혼을 할 생각이라면 지금와서 다른 상대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선택하기 어려운 사양이 되기도 했다. 그런식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준열의 재혼은 서서히 기정사실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허나 막상 그렇게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은 상태가 되자 하루는 수정이 소원의 자는 방문을 두드렸다. 수정의 식당과 연결되어있는 그녀의 살림집 구조는 수정과 남편이 쓰는 방과 건너편에 소원이 쓰는방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 소원아...자니 ? ”

 “ 아니, 안 자는데 왜. ”

 뭔가 안쓰럽고 딱한 감정을 담아 밤늦은 시간에 소원의 방으로 들어온 수정. 한숨을 한번 내쉬어보고는 그녀의 손을 한번 잡아본다.

 “ 소원아...차라리...우리 그냥 식당일 접고 고향에 내려가서 살면 안될까 ? ”

 “ 언니...그건 또 갑자기 무슨소리야 ? ”

 중학생 나이에 성폭행 피해를 고향에서 입은뒤 3년여 정도의 시간을 고통속에서 보내다 그래도 자신을 늘 친동생처럼 돌봐주던 수정과 함께 떠나온 고향이다. 헌데 그런 고향으로 지금와서 돌아간다는 것은 그녀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일이 될 것 아닌가. 무엇보다 두 번다시 돌이키고 싶지도 않은 몸서리쳐지도록 싫은 그 상처의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날게 뻔한데 그걸 모를 사람도 아닌 수정이 갑자기 왜 이러는가. 수정은 눈물고인 얼굴로 나름 간곡한 마음을 담아 말한다.

 “ 내 생각에...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좀 아닌거 같아서... ”

 “ 언니... ”

 “ 내가...이거 아무래도 너 귀찮아서 팔아치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그 집에

  어쨌든 애가 넷이나 된다. 게다가 그집 딸들 애초부터 너 새엄마로 받아들이는 문

  제...아버지 재혼 탐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아이들이잖아. 헌데 그걸 니가 어떻게

  감당해내려구... ”

 “ 언니, 이제와서 그런소리 하면 뭐해. 이미 다 준열씨와 서로의 마음도 다 확인하

  고 결혼날짜까지 정해놓은걸...그리고 준열씨한테 들으니 그집 큰딸도 지금은 마음

  을 돌린 듯 하더라...그리고 막내딸이야 뭐 어차피 아직 어린애고... ”

 이미 고등학생,중학생인 첫째와 둘째라면 모를까 아직 어린아이인 셋째와 넷째 정도는 서른살 어른인 자신이 얼마든지 휘어잡고 통제할수 있을거란 자신감이라도 있는것일까. 소원은 제법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고 있고, 그러나 막상 준열의 재혼과 특히 소원을 시집보내는 문제를 자신이 먼저 나서 주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게 현실화되니 생각이 복잡해지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과연 이게 내가 잘하는 짓인가’ 하는 번민과 고뇌. 마흔다섯살 애가 넷딸린 홀아비와 성폭행 피해 전력이 있는 서른살 노처녀의 중신. 과연 합리적인 연결이라고 할수 있을지 수정 입장에선 새삼 고뇌와 번민이 일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개를 한번 다시금 가로저어보기까지 하는데 이젠 오히려 소원이 어떤 확신이라도 들어서인지 되려 그녀가 수정을 설득하고 있다.

 “ 언니, 너무 그러지마. 이러면 내가 오히려 미안해져. 그리고 꼭 이런일이 아니더

  라도... ”

 “ ??? ”

 “ 나도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언니집에서 얹혀 살아야만 할까. 내가 참...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그런 과거가 있는 몸이긴 하지만...그래도 언제까지 마냥 이렇게 늙

  어죽을때까지 언니집에서 신세지고 살수도 없고...그러니 이 선택은...언니 떠나 이

  제 내 의지로 스스로 살아보기 위해 한 결심이기도 해.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마 언

  니. ”

 “ 소원아... ”

 소원의 결심이 그러하다고 하니 더욱이 애초에 이 중신 자체를 자신이 주선한것이니 이제와 말을 바꾸는 것 자체가 우스운 모양새가 될수도 있고, 따라서 수정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허나 막상 그런데 시집가고나서 소원이 그곳에서 배겨나고 버텨낼수 있을지 그걸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같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소원에겐 시집갈 나이가 될 딸을 챙겨줄만한 그런 엄마도 지금 없는상황 아닌가. - 소원의 친모는 그녀가 어릴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열 살많은 수정이 그런 소원의 엄마노릇까지 대신해주고 있는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래서인지 막상 이렇게 소원의 결혼이 현실화되어가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수정은 소원을 말없이 한번 안아보고 소원은 나름 어떤 결연한 의지라도 담긴 말투로 말을 이어간다.

 “ 언니, 너무 그러지마. 나 어쨌든 다 큰 아이들은 다 큰 아이들대로 어린애들은 어

  린애들대로 내 힘이 닿을수 있도록 잘 지낼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이거 언니가 나 귀찮아서 팔아치우는걸로 생각안해. 그러니 그런 자책감일랑 추

  호도 갖지마. 이건 분명 내 의지대로 내가 판단해서 결정한 부분도 있어. 그러니

  언니는 아무 잘못 없어. 무엇보다 내가 언제까지 마냥 늙어죽을때까지 언니 신세만

  지고 살수는 없어서 결심한 부분도 있는거니까 너무 미안해하지마 언니. ”

 “ 녀석... ”

 소원이 이미 다 큰 서른살 어른이라는게 새삼 느껴지는것일까. 수정은 새삼 그녀가 흐뭇해보이기까지 하다. 여하튼 어릴때부터 소원을 돌봐준 열 살차이 동네언니 수정임을 생각하면 그녀가 아직도 어린애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제 소원이 어른스레 자신을 위로해주는 말까지 입에담는 것을 보면 이 아이도 다 크긴 컸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고 있다. 서로의 감정을 추스르고나니 여유가 좀 생기기라도 한것일까. 수정은 살짝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 근데 너 얼핏 조금전에 늙어죽을때까지 어쩌구 하는걸보니...그래도 오래살 생각

  도 있긴 있나보구나. 언제는 지금이라도 당장 죽어버리고 싶다며 그리 몸부림치던

  아이가... ”

 가끔 식당에서 밤늦은 시간에 짖궂은 술손님한테 희롱을 당하거나 또는 중학교때 당한 그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다보면 울부짖으며 그렇게 말하기도 했던 소원. 헌데 그럴때마다 ‘지금이라도 당장’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하던 여자가 ‘늙어죽을 때’ 운운하는걸 보면 인간에게 ‘자살’이란게 그렇게 쉽게 선택할수 있는 문제란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한다. 여하튼 수정은 소원에 대한 그런 안쓰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모두 두 손에 담아 그녀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고2인 동수와 중2인 은희가 아직 겨울방학을 시작하기는 한달반쯤 남았을 때, 10월은 이미 거의 다 갔고 이제 막 11월에 접어들 무렵 이준열과 소원은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다만 두 사람 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고 주위에 초대할만한 하객도 마땅찮아 결혼식은 자연스럽게 조촐한 분위기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소원이야 10대 후반 나이에 수정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고 또 과거가 그러하니만큼 고향에 청첩장을 보낼만한 친구나 친지가 있을 입장이 아니고 게다가 이준열 역시 택시기사를 하며 늘 바빴던 통에 학창시절 친구라던가 이런 사람들과 만나거나 교류할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그나마 준열의 먼 친척 몇몇이 재혼소식을 듣고 먼 거리를 마다않고 하객으로 찾아준점, 그리고 소원의 고향언니인 수정이 평소 식당일을 하면서 교류가 있던 몇몇 지인,동료들을 초대 그나마 예식장 분위기가 쓸쓸하지 않았단 것을 다행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준열의 네 자녀중 아들인 동수,동호 그리고 아직 어린 막내 순희야 혼자 집에 남아있을수도 없는일이니 오빠들이랑 같이 결국 아빠의 재혼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첫째딸 은희는 끝끝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은희는 학교 친구들과 그 당시 개봉 인기리에 상영중인 영화를 보며 복잡한 속을 달랬다.

 신혼여행 역시 서울 근교지역으로 주말을 이용 3박4일 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간단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한편 준열과 소원이 한 집에 살면서 4남매가 사는 방 구조도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어쨌든 결혼한 준열과 소원이 거실에서 잔다던가 각방을 쓰는 것은 있을수 없는일. 결국 준열과 소원 내외가 한 방을 쓰고 나머지 4남매는 아들인 동수,동호가 한방을 그리고 딸인 은희와 순희가 또 다른 한 방을 같이 쓰는 것으로 일단 합의를 보았다. 적어도 이 문제는 불가피한 사정이라서인지 은희와 순희 역시 별다른 불만은 없이 따라주었다. 막내 순희 입장에서도 4남매중 그나마 마음이 가장 잘 통하는 자매인 은희언니와 한방을 쓰는거라면 마다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허나 전쟁은 준열과 소원이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 다음날부터 벌어졌다. 아침부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은희는 잠을 깨지 않을수가 없었다. 어차피 지난 6년 이 집안 여섯식구의 식사당번은 늘상 은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라면 끓이는일이야 어차피 그리 오래걸리는 일이 아니니 은희도 평상시 뭐 그렇게까지 꼭두새벽에 일어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지내왔다. 헌데 그런 은희보다 이미 먼저 일어나 부엌에서 뭔가 분주히 움직이는 불빛과 소리가 느껴졌던 것이다. 이상해서 일어나보니 아니나 다를까 소원이 뭔가 부엌 싱크대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은희,순희가 쓰는 방에서 문을 열면 바로 부엌 싱크대니 발견을 못할래야 못할 수가 없는 집안구조다.

 “ 뭐하시는거에요 지금 ? ”

 은희가 무척 놀라고 어이없다는 듯 그와같이 물었고, 허나 소원은 그런 은희를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 아, 은희씨. 조금만 기다려요. 이제 막 아침상 준비를 하려던참인데... ”

 “ 뭐...뭐라구요 ? ”

 “ 집에 이렇게 찬거리가 없어서 어떡해요 ? 저도 뭐 은희 아버지로부터 대충 들은

  야기가 있지만...조금만 기다려요. 오늘 아침은 일단 두부국이라도 끓여서 내올테니

  까...하지만 이따가는 제가 직접 시장도 보고 밑반찬거리도 준비해야할 것 같아요.

 ”

 어떻게보면 진짜 다 큰 딸과 대식구 아침 찬거리 준비라도 걱정하는 가정주부이자 안주인마냥 이와같이 말하고 있는 소원. 허나 은희는 소원의 그런 태도보다도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는것에 대한 몹시도 심한 모멸감과 굴욕을 느꼈다. 적어도 지난 6년 이 집안 식구들의 식사당번은 나. 그런 오로지 자신만의 신성한 공간이었던 부엌 싱크대다. 헌데 이미 그 싱크대를 장악하고 있는 서른살 새엄마 소원. 은희는 더 듣고 싶지도 않다는 듯 바로 소원을 거세게 밀쳐냈다.

 “ 저리 비키지못해요 ? 아빠랑 동생들 식사는 제가 챙겨요. 대체 아줌마가 이른아

  침부터 뭔데 이러는거에요 ? ”

 “ 으...은희씨... ”

 큰딸 은희의 반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 소원은 적잖이 당혹했다. 게다가 적어도 큰딸 은희는 소원 자신은 못마땅해도 아버지의 재혼 자체까지는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변화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 물론 결과적으로 그 반대하는 대상이었던 식당 종업원출신인 자신이 새엄마가 되긴 했지만 – 지금보니 영 아니지 않는가 하는 모습에 소원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편 은희는 은희대로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적어도 내 자리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소원을 밀쳐낸 상태 그대로 자신이 평소 라면들을 보관해넣던 별도의 공간에서 이미 라면 몇 개를 꺼내 그것을 끓일 준비를 시작했다. 허나 그것을 이제 소원이 만류한다.

 “ 대체 지금 뭘 하는거에요 ? 아침부터 식구들 라면이나 끓여서 학교 보내고 아버

  지 출근시키게요 ? ”

 “ 식구들 아침은 제가 알아서 책임져요. 그러니 아줌마는 참견하지 말아요. ”

 “ 은희씨... ”

 첫날부터 일이 이런식으로 돌아가니 소원 입장에서도 참 난감해졌다. 그러나 적어도 아닌건 아니라는 듯 할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소원도 결국 한마디 한다.

 “ 지금껏 그렇게 식구들 늘상 라면만 끓여먹였다면서요 ? 그래서 대체 어쩌자는거에

  요 ? 삼시세끼 라면만 먹는 것 몸에도 결코 좋지 못하다고 TV나 라디오에서도 가

  끔 이야기하는거 못들었어요 ? 게다가 아침일찍부터 일나가셔야 하는 아버지...게다

  가 오빠도 이제 곧 고3인데 한참 든든히 먹고 공부해야할때잖아요. ”

 “ 지금 대체 뭐하자는거에요 ? 아줌마가 뭔데 우리집 식구들 일 일일이 그렇게 참견

  이에요 ? 그리고...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아빠가 아줌마한테 그렇게 시시콜콜 우리집

  안일 일일이 고자질하고 그랬던거에요 ? 둘이 지금까지 그래왔던거냐구요 ? ”

 “ 뭐야 ?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아침부터 ? ”

 이준열의 집이 실내평수만 수십평은 될 재벌가 집도 아니고 부엌과 거실공간은 물론 식구들이 쓰는 방도 정식으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30평 남짓한 충산층 집안도 아닌 코딱지만한 거실과 부엌공간에 두명이 쓰기도 벅찬 작은방 세 개가 겨우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런 집안에 살면서, 이른아침부터 서른살 새엄마와 사춘기 의붓딸의 싸우는 소리에 다른 식구들이 깨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되리라. 아버지 이준열과 장남 동수가 이미 그와같은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와보았다. 나와본 정도가 아니라 싸움의 내용과 사태파악도 이미 하고 있는듯한 눈치다. 아직 어린 셋째 동호와 막내 순희는 그 시끄러운 소리에도 마냥 세상모르고 아직 쿨쿨 자고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일단 동수가 다가와 동생 은희를 말려보려한다.

 “ 은희야 너 왜그래 ? 아침부터 어머니가 우리들 밥차려주려고 준비하시는데 버르

  장머리없이 ? ”

 “ 뭐...뭐라구 ? 어머니 ? 아니 도대체... ”

 은희는 기가막혔다. 지금껏 6년동안 식구들 식사당번이었던 자신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동수의 입에서 나온 호칭이 ‘새엄마’도 ‘새어머니’도 아니고 그냥 어머니였던 것이다. 솔직히 이런 호칭 일부러라도 그렇게 쉽게 입에 붙지 않는법인데, 비록 동수가 처음부터 가장먼저 아버지 준열의 재혼을 이해하고 동생들을 설득해보려한 아들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첫날부터 이미 아버지의 재혼상대에게 붙이는 호칭이 ‘어머니’인 것이다. 그야말로 소원을 이미 새어머니도 아닌 그냥 어머니로 인정하는듯한 이런 태도. 잔뜩이나 심기불편한 은희의 속을 제대로 건드려놓는다.

 “ 오빠 도대체 뭐하는거야 ? 오빤 그렇게도 이여자가 좋아 ? 도대체 뭐가 좋아서

  첫날부터 대놓고 어머니,어머니 하는건데 ? 어머니라니 ? 대체 이 집에서 누가 누

  구 어머니라는 소리야 !!! ”

 “ 그...그만하세요. ”

 이러다간 아침부터 진짜 대판싸움부터 벌어지겠다는 생각에 아니다싶은 소원이 결국 만류하며 자신이 한발 물러서기로 한다. 생각해보면 소원 입장에서도 처음으로 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와 처음 집안살림을 시작하는 그런날이 아닌가. 헌데 그런날부터 가족들간의 한바탕 싸움으로 얼룩져버리는 것은 소원으로서도 결코 좋은 추억이 되지 못하리라. 따라서 자신이 일단 한발 물러서기로 하고 미안하다는 듯 은희에게 말한다.

 “ 미안해요 은희씨. 그럼 오늘아침은 늘 하던대로 은희씨가 준비하세요. 아무래도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어차피 전 집에 어차피 식구들 찬거리도 마땅찮고 하니

  낮에 시장도 봐오고 해야할 것 같으니 오늘 아침은 그냥 은희씨가 하세요. 그래도

  아버님이랑 동수씨 간단히 두부국이라도 끓여드리는게 좋을 것 같은데... ”

 소원은 자신이 들어온 첫날부터 남편과 이 집의 장남에게 라면만 끓여줘서 내보내는 것은 그래도 끝내 마음에 걸리는지 그와같이 말꼬리를 흐리는데 은희는 소원의 이런 태도가 더욱 맘에 안 드는지 이와같이 한마디 한다.

 “ 됐어요 !!! 저 밥 안먹어요. 학교갈거에요 !!! 그러니 다른 사람들 국을 끓여먹든

  라면을 끓여먹든 마음대로 하세요. ”

 그리고는 아직 학교에 가긴 이른시간이건만 어느새 잽싸게 교복까지 챙겨입고 나와 집을 나서고 소원은 소원대로 아침부터 이와같이 불편해진 집안 한복판에서 어쩔줄을 모르고 있다.





 소원과 은희의 2차전쟁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첫날아침에 은희 앞에서 찬거리라도 마련하기위해 오후에는 시장을 봐야겠다고 말한 소원이었지만 정작 그날은 사정이 여의치않아 하지 못했고, 대신 그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은희의 눈에 한눈에 거슬리는 풍경이 그러잖아도 비좁은 집안 거실공간에 그대로 펼쳐져있었다. 아마 오늘 시장을 봐온 듯 대충 보니 무슨 나물과 풀 정도로 보이는것들을 하나가득 바닥에 펼쳐놓고 한참 씻고 다듬고 하는 모습이 은희의 눈앞에 펼쳐져있는 것 아닌가. 그 광경 자체가 바로 눈에 거슬린 은희가 소원에게 따졌다.

 “ 지금...뭐하는거에요 ? ”

 “ 아, 은희씨 지금 학교에서 오는거에요 ? ”

 “ 지금 뭐하는거냐구요 ? ”

 “ 은희씨 피곤하지 않으면 혹시 나 좀 거들어줄수 있겠어요 ? 솔직히 혼자서 이걸

  다 하려니 힘이 좀 부치는데... ”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말투긴 했지만 어차피 은희는 새엄마 소원이 지금 집안 한가운데 이렇게 잔뜩 너저분하게 벌려놓고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는 그 자체가 거슬리는중이다. 그래서 더더욱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데 소원은 다시금 거듭 그런 은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말을 건넨다.

 “ 보다시피 식구들 밑반찬거리라도 장만을 해야할 것 같아서 시장을 좀 봤어요. 미

  안해요. 원래 어제 하려고 했는데 제가 사정이 여의치않아서...어제는 그냥 제가 일

  하던 식당 언니에게 부탁해 저녁찬거리를 빌려왔는데 오늘은 시장을 봤거든요.

  그러니... ”

 “ 뭐...뭐라구요 ? ”

 “ 그리고 진짜 어떻게 집안에 하다못해 김치라도 있던가 하지 그런 반찬거리가 하

  나도 없나몰라. 조만간 배추랑 무도 좀 사서 김치도 담그고...아니 그보다 곧 겨울

  이니 김장준비도 해야할 것 같은데...아, 참 그러고보니 은희씨. 어차피 김치 담글

  때는 배추와 무 무거워서 저혼자 운반할 수는 없으니... ”

 “ 이것봐요 !!! ”

 마치 정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엄마 일손좀 도와달라고 딸에게 부탁이라도 하는 것같은 말투라 그러잖아도 잔뜩이나 심기가 거슬려져있는 은희는 제대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고 말았다. 그래서 발길질로 힘껏 그렇게 기껏 만들어 담아놓은 반찬통 하나를 발길로 뻥 차버리고 만다. 그나마 은희가 힘이 그렇게까지 세진 못한지 다행히 반찬통이 엎어지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그런 행동이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려했던 소원을 기어이 화나게 만들었다.

 “ 아니, 왜 그래요 ? 도대체 왜 그걸 발로 차요 ? 식구들 먹을걸 담아놓은걸... ”

 “ 싫다고 말하는거 지금 안 보여요 ? 안 들려요 ? ”

 엄밀히 따지면 은희의 입에서 ‘싫다’는 표현은 지금 처음 나온것이지만 굳이 그런 표현을 안써도 지금까지 보인 반응과 태도에 충분히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소원이 아주 바보나 쑥맥도 아니니 그런 은희의 의도와 속마음을 모를리도 없고 - 게다가 애초부터 아버지 준열의 재혼을 가장 결사 반대했다는게 은희 아닌가. - 결국 소원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지 한마디 하고만다.

 “ 이것봐요 은희씨. 도대체 애써 반찬 장만하고 있는 사람한테...고맙다는 말할지언

  정...아니, 알았어요. 정 싫으면 방에 들어가 있어요. 도와달란 소리...시키지 않을

  테니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해요...나 원... ”

 그래도 이쯤에서 무슨 소리를 더 하지 않고 물러나는걸 보면 그래도 참을성이 소원에게도 어느정도는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은희도 소원과의 싸움을 더 크게 벌이고 싶진 않았는지 ‘쾅’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는 한참을 책가방도 저만치 던져놓은채 오랜시간 바닥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는데, 그런 소원에게 할말이라도 있는지 동수가 보자고 한 것은 그런일이 있고도 한 며칠이 지난뒤의 일이다.

 “ 뭐야 오빠 ? 숙녀방에 예의도 없이 불쑥 들어오고. ”

 은희는 이런 오빠 동수의 들어섬조차 귀찮고 거슬린다는 듯 한마디 하고, 허나 원래 그런 문화나 습관이 이 집안 식구들 사이엔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것인지 동수가 그런 여동생의 태도에 어이없어한다.

 “ 야, 너 왜 그래 ? 대체 우리가 언제부터 내외하는 사이였다구 ? 너 그리고 불과

  3년전까지만 해도 나하고 같은방 썼어. ”

 바로 준열의 재혼으로 새엄마가 생기면서 여섯식구가 되면서 남자형제 둘은 그네들끼리 또 다른 여자형제 둘은 여자들끼리 그렇게 방을 쓰도록 재배치했던 것 아닌가. 그리고 그보다 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셋째 동호와 넷째 순희의 경우처럼 동수와 은희도 국민 학생 시절까진 같은방 쓰던 사이였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첫째와 둘째도 다들 커가고 고등학생,중학생이 되어가니 아버지 준열이 보기에도 계속 같은방 쓰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다른방을 쓰도록 조치를 했던것일뿐, 동수가 말한것처럼 그가 중학교 3학년이고 은희가 국민 학교 6학년일때까지만 해도 같은방을 쓰던 오누이다. 허나 그런식의 시비가 더 어이가 없어서인지 은희도 지지않고 한마디 한다.

 “ 그땐 어릴때고 애들때니까 그렇지. 그때가 지금이랑 같아 ? 앞으로 나랑 순희방

  들어설땐 조심좀 해줘 !!! ”

 “ 아,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 니네들 방 들어올땐 조심하지. 가만 헌데 그럼...그럼

  뭐 나나 동호 또 아버지도 다들 남자니까 이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건 이제 조심해

  야 하는거고...그럼 새엄마의 경우엔 되겠네 ? ”

 “ 뭐라구 ? ”

 은희는 ‘지금 무슨말을 하는거냐 ?’라고 바로 발끈하는투로 그와같이 내뱉고, 동수도 동수대로 여전히 은희에게 할말이 남았는지 사뭇 놀리는투로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인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야릇한 미소가 지어지는것과 함께.

 “ 새어머니는 여자니까 그럼 니네방 들어와도 되는거 아냐 ? 내 말 틀려 ? ”

 “ 무슨 헛소리야 ? 그 여자가 내 방에 왜 들어와 ? ”

 사실 소원이 이 집에 들어온 첫날부터 바로 ‘어머니’라 부르기 시작한 동수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엄마를 불편해하는 은희의 심정을 배려해서 동생 앞에선 ‘새어머니’란 표현을 쓴건데 은희는 대뜸 ‘그 여자’란 표현을 쓰면서 화를낸다. 무엇보다 이런식으로 자신을 놀리는 오빠의 의도가 더더욱 불쾌하고 괘씸해 은희는 동수에게 다시금 화난투로 말을 건넨다.

 “ 아까 니 입으로 그랬잖아. 나도 아버지도...어쨌든 이제 니들 방 들어올땐 조심해

  야 하는거고...아무튼 여자들 방이니까...그럼 새어머니는 괜찮은거냐 이 말이지 내

  말은 ? ”

 “ 시끄러워 !!!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내 방에서 나가 !!! 도대체 여기서 지금 그 여

  자 이야기가 왜 나와 ? ”

 지금 은희의 태도로 봐선 확실히 새엄마 소원도 허락없이 자기방에 드나드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듯하고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동수는 생각해보니 진짜 어이없다는 투로 말을 건넨다.

 “ 그럼 나,아버지 동호까지 다 이 방에 이제 함부로 들어와선 안되는거고...새어머니

  는 니가 싫어하니까 더더욱 그럴거고...그럼 대체 앞으로 이 방에 들어올 사람은 누

  가 있는건데... ”

 “ 왜 없어 ? 순희 있잖아... ”

 허나 동수는 동생의 그런 태도에 더더욱 실소를 터트린다. 어차피 이 방 자체가 새엄마가 생겨 식구가 늘어나면서 방을 재배치 하는 과정에서 여자형제 둘이 함께 방을 쓰도록 한 것 아닌가. - 물론 거기엔 점점 커가는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심려도 어느정도 포함되어 있었을것이고 - 그러니 어차피 일곱 살 막내동생 순희를 어디 팔아치우기라도 할 생각이 아닌이상 이 방은 은희와 순희 두 자매만의 방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헌데 ‘그럼 이 방에 들어올수 있는 사람이 앞으로 누가 있냐 ?’는 물음에 그것도 아직 어린 일곱 살 막내동생 이름을 들먹이면 대체 그 의도는 또 무엇인가. 여하튼 앞으로 이 방은 은희와 순희 두 사람 외엔 함부로 들어서선 안되는 ‘철의장막’이라도 치겠다는 작정인것인지. 그러고보면 우연치고 공교롭게도 바로 아버지 재혼 반대파였던 은희와 순희 두 자매가 한 방을 쓰게된것인데, 그렇게 제대로 갈려버린 아버지 재혼 찬성파와 반대파. 그야말로 조국분단도 서러운 반공시대 70년대 중반에 이준열의 집안엔 4남매간에 새엄마 문제로 ‘또다른 3.8선’이 쳐질판이다. 게다가 은희와 순희는 새엄마가 자기네방에 들어오는것도 쉬이 허락할 것 같지 않으니 이 방이야말로 이준열 집안의 ‘철의 장막’이 될 판 아닌가. 동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지 여동생 은희와 다시금 이야기를 잘 해볼 생각으로 차분하게 말을 걸어보려 하지만 은희는 오빠와는 아무말도 하기 싫다는 듯 거듭 ‘내 방에서 나가’라는 소리만 거듭할뿐이다. 결국 동수도 심기도 불편해지고 머리도 복잡해져 두통이라도 오는 듯 이마를 손으로 집어보기까지 하면서 ‘숙녀들의 방’이면서 자매의 방에서 천천히 나와버린다.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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