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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여자친구 신비 (10.마지막회)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부제 :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1997년.

 늦가을 무렵에 김길홍 장로의 8남 현규(69년생)가 결혼식을 올렸다. 6.25때 호남의 피난지에서 만난 한 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 그녀와의 사이에 1952년부터 74년까지 장장 22년에 걸쳐 열명의 아들을 보게된 김길홍. - 그리고 김길홍은 그 사이 권사에서 장로가 되어 있었다. - 특히 양주(지금의 남양주)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마침 그때 교회를 개척한다며 폐허속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주워모아 수리하고 있던 송수만 전도사(당시)를 도와주면서 그 인연이 되어 수만이 개척한 ‘바울교회’에 첫 등록교인이 되기도 했던 김길홍.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과 온전한 그리스도의 기업이 세상 끝까지 이어가게 해달라’는 소망을 갖고 기도하게되었다는 그 김길홍이 어느덧 여덟째 아들을 장가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길홍은 자신이 기도해온대로 열명의 아들이 모두 신앙가운데에서 건실하게 양육되고 자라온 것을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리고 있었다. 현재 길홍의 첫째 진규(52년생)는 의사, 둘째 정규(54년생)는 검사, 셋째 용규(57년생)는 대기업의 본부장, 넷째 승규(59년생)는 공인회계사, 다섯째 민규(62년생)는 사관학교를 나와 현재 육군 장교, 여섯째 태규(64년생)는 공무원, 일곱째 한규(67년생)는 유력 언론사 기자로 재직중이다. 결혼은 첫째 진규가 79년에 첫 스타트를 끊었고 둘째 정규와 셋째 용규는 81-82년 사이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어 넷째 승규가 89년, 다섯째 민규가 90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여섯째 태규는 다소 늦은 90년대 중반에 들어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일곱째 한규가 그보다 조금 이른 90년대 초반에 결혼 여섯째 형보다 순서를 살짝 제쳤다. 그리고 여덟째인 1969년생 현규가 드디어 결혼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아홉째 아들 인규(72년생)는 영문과에 재학중이고, 74년생인 막내 병규는 어릴때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역시 대학에서 그 방면의 전공을 택해 공부중이다. 무엇보다 아들 열명 모두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할수 있었던것에 김길홍은 더더욱 감사드리고 있었다.

 결혼은 대개 각자 학교나 직장생활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된 동기나 동료 또는 동아리 회원을 배우자감으로 만나 하게 되었는데 역시 다행히 다들 크리스찬 자매이거나 아니면 교제과정에서 길홍의 아들들이 직접 하나님께 인도한 그런 여자들이었다. 사실 결혼문제에 있어서 길홍이 보기에 다소 흡족치 못한 며느리감이 한둘 있어서 그때 약간의 갈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역시 대체로 믿음안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배우자감을 아들들이 데려온것이기 때문에 길홍은 대체로 흔쾌히 허락하였다.

 다만 여덟째 현규의 결혼은 약간의 반대와 갈등이 좀 있었다. 사실 현규는 당시 20대들을 중심으로 인기이던 pc통신 ‘하이텔’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하이텔의 1969년생 크리스찬 동기모임에서 만나게 된 그런 자매와 사귀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다만 길홍의 경우엔 나이나 세대가 그렇다보니 컴퓨터 자체를 잘 모르고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인지라 그런 컴퓨터를 이용한 무슨 동아리에서 배우자감을 만났다는것을 좀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래서 현규가 직접 자신이 결혼하고픈 배우자감이라며 사귀는 자매를 직접 집으로 데려와을때도 별로 흡족해하지 않는 모습이었고, 결국 현규가 그런 아버지를 여러번 설득하고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뒤 길홍이 직접 현규가 사귀는 (바로 그 하이텔의 1969년생 크리스찬 동기모임에서 만났다는) 자매의 부모님을 직접 만나보고 난 뒤에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그제서야 결혼을 허락한 것이다.

 길홍의 다른 아들들도 그리하였지만 여덟째 현규 역시 길홍이 지금까지 어느덧 40여년 세월 신앙생활을 한 바울교회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다만 현규는 결혼식을 올린뒤에는 직장문제로 다른 지역에 신혼 보금자리를 꾸밀 예정이기 때문에 어쩌면 현규 입장에선 이 결혼예배가 아버지 길홍과 함께 태어나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온 바울교회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될수도 있다. - 사실 지금까지 길홍의 다른 아들들도 바울교회에서 결혼식만 올리고 그 뒤에는 각자 직장등의 이유로 타 지역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기에 신앙생활은 각기 그냥 자신들이 사는 지역 인근의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길홍의 아들들 모두 그가 지금껏 기도해온대로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을 계속 영위해가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만큼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송수만 목사의 주례로 이어진 결혼예식이 다 끝나고 김길홍은 감회에 젖어 송목사외 이야기를 나눈다. 송수만 역시 길홍의 아들들이 자신의 교회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며 자라왔는지를 지켜봐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길홍의 아들들이 하나하나 결혼식을 올릴때마다 그 지켜보는 감홍이 남다르긴 했다. 그런 수만이 김길홍 장로에게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넨다.

 “ 김장로님...여하튼 그동안 고생이 참 많으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어느덧 열분의 아

  드님중 벌써 여덟분이 장가를 가게 되었군요. 허허허...벌써 그렇게 되다니 참 세

  월이 빠릅니다. ”

 “ 그러게 말입니다. 여하튼 저 여러 가지로 부족한 김길홍의 기도를 그래도 하나님

  께서 어여삐 여기시고 들어주시는것만 같아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교회의 다른 성도들이나 동료 장로,권사들도 길홍에게 다가와서는 한두마디씩 그런식으로 축하와 격려 인사 한두마디 건네는 것을 잊지 않고 길홍도 그런 성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만 이번 여덟째 아들의 결혼식만은 여전히 2퍼센트 흡족치 않은 무엇이 있는지 그에대한 아쉬움은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 그 뭐 어쨌든...교회다니는 애를 만났다니까...딱히 더 이상 반대할 명문은 없어 허

  락한 결혼이긴 하지만... ”

 “ 그...무슨 컴퓨터 동아리에서 만났다면서요 ? ”

 “ 글쎄 여하튼 하이텔인가 뭔가 그런 동호회인지 동아리인지 그런데서 만났다고 하

  지 뭡니까. 어차피 저야 컴퓨터를 모르니...당최 무슨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갔지

  만. 그래서 처음엔 여간 꺼림칙하고 석연찮은 기분을 떨칠수 있어야 말이죠. 이 녀

  석이 혹시 무슨 이단 단체나 그런데 빠져 그런데 관련있는 여자앨 만난 것은 아닌

  지 별 걱정이 다 되더이다. ”

 “ 아, 그런 걱정을 다 하셨었군요. ”

 “ 그래서 나중에 그 아이 부모님을 직접 만나보고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난뒤 그리

  고 안심이 되어 결혼을 허락했다 이겁니다. 적어도 신실한 믿음을 가진 그런 가정

  의 여자애를 만난것만은 분명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그걸 확인하고 허락

  한 것이다 그 말이지요. ”

 “ 그러셨군요. 하하...하긴 뭐 저도 어느덧 나이 70이 가까워지니 요즘애들 사고방

  식은 도무지 이해 못할때가 많아요. 뭐 제가 알고 있기론 그 하이텔인가 뭔가 저

  희 애들도 가끔 하는 것 같긴 합니다. 뭐 거기서 딱히 무슨 동아리나 그런 활동까

  지 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

 김길홍과 송수만은 20년대 후반 태생으로 비슷한 연배이긴 하지만 6.25 동란 와중에 피난처에서 평생의 배필감을 만난 김길홍과 달리 송수만은 결혼적령기가 훨씬 지난 나이 40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결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때까지는 6.25때 고아가 된 동네 고아들을 거두어 키우는 ‘총각아빠’로 60년대 후반까지 그런 시간을 보내다가 7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교회 청년회 자매의 후배의 동료라는 여자를 소개받아 결혼을 하게된 송수만. 그렇게 만난 열다섯살 연하의 배우자와의 사이에 송수만은 2남2녀 총 4남매를 낳았는데 이 넷은 당연히 70년대 태생이다. 따라서 송수만의 자녀들은 90년대에 20대로 특히 이때 한참 붐이 일던 pc통신에 푹 빠져있을법한 그런 세대. 그래서인지 송수만이 오히려 김길홍보다는 하이텔 동호회에 대한 이해도는 다소 있어보였다. 그래서인지 송수만이 오히려 길홍의 여덟째 아들 한규가 하이텔의 1969년생 크리스찬 동기모임에서 인연을 만나 결혼약속까지 하게되었다는 그 과정을 어느정도 이해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1998년 5월.

 바울교회의 창립 45주년 기념 예배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휴전이 되기 두달전쯤인 53년 5월. 폐허가 된 남양주(그 당시엔 양주)땅에서 쓸만한 물건과 집기등을 모으고 창고를 수리한뒤 세명의 등록교인과 함께 시작을 한 송수만 목사(그 당시엔 전도사)의 교회가 어느덧 성도 천여명이 등록되어 있는 그리고 남양주 지역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그런 대형교회로 성장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말씀대로 달랑 초신자 세명으로 시작한 교회가 실로 40여년만에 적어도 남양주땅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큰 그런 대형교회로 성장하고 부흥한 기적의 역사가 이뤄진 순간이라고나 할까.

 사실 45주년 기념예배가 있기 5년전쯤인 40주년 기념예배때 송수만 목사는 특별한 자리를 갖기도 했다. 바로 바울교회 최초의 등록교인이었던 김길홍과 박인수 그리고 김순기 집사까지 세 사람을 특별히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북에 5남매를 두고 혼자 피난을 온 실향민으로 바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박인수, 그리고 6.25때 부역자 혐의로 남편과 시댁식구를 잃은 상처를 안은채 혼자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아온 김순기. 그리고 김길홍까지 세 사람이 모두 바울교회 최초 등록교인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다만 김순기와 박인수는 각자의 사정으로 이후엔 타 지역으로 이주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해왔고 어느덧 교회 장로가 되어있는 김길홍이 유일하게 지금까지 40년 세월을 바울교회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 세 사람을 최초 개척교회 분위기가 나도록 별도의 자리를 마련해 앉게했고 그리고 다른 성도들은 평상시와 같이 일반 예배당 예배석에 앉아 예배를 진행한 것이다. 다만 김순기 집사의 경우엔 이미 고인이 된 상태라 그 아들인 이재혁이 대신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예배 설교에 들어가기전 세 사람은 각기 별도의 인사말 시간을 갖기도 했다.

 “ 저희 어머님으로부터 생전 ‘바울교회’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

  희 어머님께서 연세 60을 조금 넘으신 나이에 소천하셨는데, 한 몇 년만 더 사셨

  으면 바로 이 자리에 직접 앉아계실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니 새삼 아쉽고 마

  음이 아파오기도 합니다. 사실 전 그땐 세 살도 채 되기전 아주 애기때라 바울교회

  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어머님은 물론 누님도 – 누님은 그때 다섯 살 정도일때입

  니다만 – 어렴풋이 바울교회에 대한 기억은 있는지 이따금씩 그 이야기를 입에 담

  곤 하시더라구요. 누님께선 그때 예배가 시작되면 누님은 아직 애기들이라서 다른

  성도들이 저만치 앉혀놓고 그리고 예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헌데 그때 그런 조그

  만 아기였던 제가 오늘은 목사님께서 마련해주신 특석에 그것도 어머님을 대신하여

  앉게되는 특혜를 누리게 되는군요. 하늘나라에서 어머님도 이 순간을 내려보며 기

  뻐하시리라 믿습니다. ”

 “ 나이 30대 후반에 이북에 아이들 다섯을 두고 홀홀단신 월남 아는사람도 없고 정

  처없이 떠돌던 시절 이곳 바울교회에서 처음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저도 그 뒤 남

  한땅에서 새장가를 가서 4남매를 더 두긴 했지만, 이날 이순간까지 아쉬움은 아직

  도 이북에 남아있는 다섯 아이들에겐 복음전할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듣기론

  아마 6.25 이전까지는 이북땅이 교회가 더 크게 부흥했던 그런 고장이라고 하죠 ?

  하지만 전 바울교회에 처음 등록을 했을때만 해도 그 이전까진 예수님 믿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사정과 사연을 전혀 몰랐습니다. 허나 나중에 그와같은 한국

  교회사와 우여곡절을 알고나니 여러 가지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저도 이제 나이

  어느덧 80이 다 되어간 늙은몸인데, 어쨌든 이제 정말 살날도 머지않은 이몸, 그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북에 미처 아직 복음을 전하지 못한 그 아이들에게도 어서

  복음 전하고, 그래서 북의 5남매와 남에서 본 4남매 그렇게 9남매가 모두 신앙안에

  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 날을 하루속히 보게되길 진심으로 바랄뿐입니다. ”

 45주년 창립예배가 끝나고 송수만 목사는 식사자리에서 김길홍 장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자신이 교회 짓는일을 도와주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그렇게 시작된 남다른 인연이 어느덧 45년 세월을 이어오고 있는 것 아닌가. 수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교회를 지을만한 모양새와 시설을 폐허가 된 창고를 겨우 수리해서 그런대로 구색을 갖춰갈때쯤 그때 자신을 찾아와 ‘이 교회의 최초 세례교인’이 되고싶다 간청하던 그때의 20대 중반의 청년 김길홍의 모습을. - 다만 ‘세례’는 어쨌든 일정부분 절차가 있어야 하는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진 못하고 대신 그렇게 박인수,김순기 두 사람과 함께 ‘최초의 등록교인’이 되는 것으로만 만족했던 김길홍. 세례는 그후 휴전이 된 뒤에 신학대학들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자리를 잡아갈때쯤 송수만이 먼저 목사안수를 받고나서 김길홍을 비롯한 그때까지 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다른 교인들이게 직접 세례를 주었다.

 “ 김길홍 장로님께선 그때 말씀하셨죠.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과 온전한 그리스도

  의 기업이 세상끝나는 날까지 계속 이어가게 해달라는’ 그런 소망을 갖고 기도하게

  되셨다구요. ”

 “ 그랬었지요. ”

 새삼 그때의 일들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올려져서인지 감회에 사로잡혀 하는 김길홍 장로의 대답. 송수만 목사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무엇보다 그렇게 기도하신대로 아드님 열분을 다 신앙안에서 훌륭하게 양육해오신

  것을 저 또한 누구보다 감동하고 은혜로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솔직히 생각

  보다 힘든게 가족구원이거든요. 뭐 김장로님과 저만 있는 자리니까 솔직하게 드리

  는 말씀이지만, 저도 누님 여섯분이 계시지만 – 그리고 그분들중 이미 소천하신 분

  도 몇분 계십니다만 – 그분들중에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분이 몇

  분 계십니다. 심지어 끝내 영접하지 못한채 세상을 등진분도 계시고요. 그런데 김

  장로님께서는 아드님 열분을 모두 신앙안에서 이렇게 건강하게 양육해오셨으니 솔

  직히 목사인 저보다 장로님이 더 나으십니다. ”

 “ 하하...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리고 누님이나 형님이 되었든 부모나 삼촌이 되었

  든 윗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는것보다야 아랫사람에게 전하는게 더 쉬운일이겠지요

  . 그러니 굳이 그런것으로까지 과찬하실 것은 아닙니다. ”

 “ 하하...아닙니다 장로님. 뭐 장로님이나 저나 다 이제 자식들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만 세상에 부모 마음대로 안되는 것 또한 자식들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윗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것보다 어쩌면 자녀들에게 복음 전하는일이 정말

  더 어려운일일수 있어요. 헌데 장로님께선 그걸 해내신것입니다. 해내셨어요. 정말

  장하십니다 장로님. ”

 그렇게 서로를 권면하고 칭찬하며 겸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김길홍 장로와 송수만 목사. 한편 송수만 목사는 그 나름대로의 또다른 감회이자 착잡한 심경이 있는 듯 말을 이어간다.

 “ 그리고 김장로님의 기도제목이 그와같은것이었다면 저는 애초 이 바울교회를 개척

  하면서 세운 기도가 그것이었지요. 이 양주땅의 모든 영혼을 구원하게 해달라는...

  하하...다시말해 양주지역(지금은 양주와 남양주가 분군되어 남양주이긴 합니다만)

  모든 주민들이 다 저희 바울교회 다니게 해달라는 다소 오만할수도 있었던 기도였

  는데...하나님께서 양주땅 모든 주민들을 저희 교회에 다니게 하는 기적을 주시는

  대신 남양주에서 제일 큰 교회를 주시는 기적을 주셨습니다. 허허허... ”

 그렇게 다소 멋쩍게 웃는 송수만. 실제 송수만 목사의 바울교회는 남양주 지역 외에도 미금,구리시라던가 의정부 또는 양주군(남양주가 분군되고 난 뒤 남은 양주지역) 또는 주변의 경기 가평,양평군이라던가 심지어 서울 강북,노원지역에서까지 예배를 드리러 오는 성도들도 꽤 있다. 그만큼 바울교회 송수만 목사의 설교가 은혜롭다는 증거로 봐도 되는것일까. 다만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95년 시군통합때 미금시-남양주군이 남양주시로 통합)이지만 애초 송수만이 바울교회를 개척할때만 해도 그냥 ‘양주군’이었다. 그리고 그 양주군이던 시절 송수만의 기도가 ‘양주땅의 모든 이들이 구원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때의 양주지역은 지금 남양지,미금,구리시 일대는 물론 의정부와 현 양주군 지역 심지어 서울의 강북,도봉 일부지역까지도 포함이 된다. - 물론 하나님께서 그런 행정구역,인구 변동사항 일일이 따져가며 영혼구원하시는 분은 아니시겠지만 ^^;; 어쨌든 애초 송수만이 ‘양주땅의 모든이들을 구원하게 해달라’고 소망기도를 올렸을때는 그 광범위한 지역이 모두 해당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당시엔 그 양주군 인구만 해도 겨우 10만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96년 인구통계 기준으로만 봐도 남양주시 인구만 16만 3천여명, 거기에 미금,구리시 일대 또는 의정부라던가 남양주가 떨어져나가고 남은 양주군 지역 혹은 인근의 가평,양평군 인구까지 모두 합하면 무려 60만이 넘는 인구가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경기도 북동부 일대에선 가장 ‘큰 교회’ 일수도 있는 천명 성도가 다니는 바울교회‘ 그 담임목사 송수만은 멋쩍게 웃으면서 이런 소회를 거듭 밝히고 있다.

 “ 애초에 제가 하나님께 드린 간구는 ‘양주땅의 모든 어린양들을 구원할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선 그 간구 대신에 남양주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를

  세울수 있게 해주시는 기적을 주셨습니다. 허허허허...... ”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난뒤, 김길홍의 집에 그의 열명의 아들이 모처럼만에 다들 한자리에 모였다. 현재 길홍의 장남 진규부터 8남 현규까지는 모두 결혼을 해서 각기 따로나가 살고있고, 아홉째 인규와 열째 병규도 현재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각기 자취 혹은 하숙을 하고 있는데, 그 열명의 아들들은 물론 며느리,손자,손녀들까지 그 모두를 김길홍이 불러들인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만에 길홍의 집은 그의 열명의 아들과 여덟명의 며느리 그리고 결혼을 한 아들들에게서 각기 나온 평균 2-3명 정도의 손자,손녀들까지 포함 30여명의 대가족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길홍의 결혼을 한 아들들은 각기 자녀를 한명 낳은 경우도 있고 두명 또는 세명을 낳은 경우까지 이는 제각각이다. 여하튼 그렇게 아들,며느리,손자,손녀까지 모두 30여명이 모인자리. 길홍은 그들을 모두 거실에 집합시킨후 그들에게 뭔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 이게 내가 지금까지 모은 전 재산이다. ”

 그 말에 아들들은 물론 며느리와 손자,손녀들도 일시적으로 긴장했다. 길홍의 손자들중 아직 결혼을 한지 얼마 안된 6남이나 7남,8남의 경우엔 아직 아이들이 태어난지 얼마 안된 갓난 아기들이었으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결혼한 장남,차남,3남의 경우엔 이미 아이들이 중,고생 정도의 나이였다. 헌데 그 아이들까지도 대체 할아버지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저러시나 일시적으로 긴장을 한 것이다.

 “ 이 재산이 전부 합해서 얼마 되는지는 내가 말하지 않겠다. - 솔직히 나도 굳이

  세어보진 않았고...다만... ”

 “ ...... ”

 “ 이것이 모두 내 평생모은 재산. 그리고 내가 꼭 실력이나 능력이 좋아서 벌었다

  기 보단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벌어모을수 있던 돈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애비가 지금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든 생각이 결국 그것이다. 이 세상

  에 존재하는 모든 재물과 재산은 결국 하나님의것. 나는 잠시 그 재물을 빌려 쓰고

  있는 그런 존재에 불과할뿐. ”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기에 서두가 이와같은것인지, 허나 아버지의 지난 수십년 신앙생활의 모습을 지켜본 아들들 입장에선 웬지 그 속내나 의도가 짐작이 갈 것 같아서인지 살짝 이의를 제기하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것도 아니나, 공연히 자신이 분위기를 깰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 침묵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만 있다.

 “ 따라서 이 재물과 재산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날때쯤엔 언젠가는 하나님께 돌려드

  려아 한다. 그 생각을 하고서 지금껏 살아왔다. ”

 그리고는 사뭇 비장하게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 이 재산중 3분의 1은 탈북자를 돕는 선교단체 후원금으로 낼 생각이고 또 나머지

  3분의 1은 내가 지금껏 신앙생활을 한 바울교회에 헌금으로 바칠 것이다. 그러고나

  면...

 “ ...... ”

 “ 그 나머지 3분의 1은 나 죽고나면 그때 그건 너희들이 각자 알아서 나누어 쓰든

  말든 그건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탈북자 돕는 선교단체에 후원한 것, 교회에 헌금

  한 것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너희들 마음대로 써도 좋다 그말이야. 무슨말인지

  알겠느냐 ? ”

 휴전직후부터 지금까지 어느덧 40년 세월을 중소기업을 해오면서 특히 그 중소기업이 만드는 제품이 30여개국에 수출까지 할 정도로 그만큼 잘 나가는 기업으로 성장해오기도 했지만 사실 생각보다 김길홍이 벌어모은 재산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령 공장부지의 경우엔 김길홍은 최근 현역 사장자리에서 퇴임하고 간부진중 능력이 좋은 사람을 하나 후계자로 세운뒤 명예직으로 물러나있는 상태다. 헌데 그렇게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공장건물의 소유권도 새 경영자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그 건물은 이제 더 이상 김길홍의 것이 아니다. 그럼 남은 재산은 현재 살고있는 길홍의 집과 그리고 약간의 예금과 그동안 틈틈이 사모은 주식이 전부다. 헌데 그것을 전부 모을 경우 아마 1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 될 것이다. 헌데 그 1억 조금 넘는 재산마저 3분의1은 선교단체에 후원하고 3분의1은 헌금으로 내고 그 나머지 3분의1만 그것도 무려 열명의 아들들이 나누어쓰라니. 그런식으로라면 각자 개인에게 돌아올수 있는 몫은 그야말로 지극히 적은 일부분이 되어버린다. 차마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몇몇 아들은 물론 며느리들의 눈빛에도 살짝 실망하는 눈빛이 스친다. 뿐만 아니라 손자,손녀들중에도 아직 어린 애기들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조차 못하겠지만 어느덧 중,고등학생정도 되어있는 손자,손녀중에는 ‘뭐야 ? 할아버지 재산 많은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그중 우리에게 돌아올몫은 아예 없는거잖아. ’ 웬지 내심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실망해하는 눈빛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그 이상하고 심상찮은 분위기에 길홍도 살짝 불쾌해졌는지 위엄있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 아니, 대체 왜 이렇게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 ? 내 말이 무슨말인지 알아

  들은게야 ? 못알아들은게야. ”

 “ 아...아닙니다 아버님. 이의없습니다 아버님. 얘들아, 너희도 그렇지 ? ”

 한참만에야 ‘이거 안되겠다’ 싶은지 장남 진규가 가까스로 그렇게 답하고 동생들에게도 호응을 해줄 것을 촉구한다. 결국 다른 아들,며느리,손자,손녀들도 너나 할것없이 ‘예’ 하고 대답하고, 그런 자녀들을 쭉 돌아보며 길홍은 거듭 강조하며 이야기한다.

 “ 거듭 말하지만 이 세상은 잠깐 스쳐가는 나그네 같은 길. 따라서 이 세상의 존재

  하는 재물과 재산도 본래 하나님의것을 내가 잠시 빌려 맡아서 쓰고있는 것 뿐이

  다. 따라서 내가 떠날때는 마땅히 하나님께 다 돌려드려야 하는 것. 다만 그렇게

  실천하고 싶을뿐이다. ”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들을 모두 밖으로 나오게 한다. 그리고 산책삼아 길을 걸어간다. 방향은 ‘바울교회’가 있는쪽이다.

 “ 이 길이 내가 예전 젊을 때 어린 너희들을 데리고 주일마다 교회에 오가곤 하던

  그 길이구나. 거기를 올망종망한 너희들을 때로는 품에 안고 때로는 걷게하고 때

  로는 이끌고 그러면서 다니던게 엊그제 같은데...벌써 세월이 이렇게 흐른것이구나.

 ”

 길홍은 다시금 지난시간에 대한 감회에 잠기고 아들들은 각자의 아내 및 아이들과 함께 묵묵히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길홍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 늘 하는 이야기지만 난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무렵부터 ‘건전한 그

  리스도의 가정과 온전한 그리스도의 기업’이 세상 끝까지 이어가게 해달라고 기도

  해 온 사람. 그리고 비록 부족하나마 너희 열명을 지금껏 이와같이 키워왔구나. ”

 “ ...... ”

 “ 허나 이제 내 나이도 어느덧 70. 그러니 나의 역할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지금부

  터의 일은 너희가 맡아야 할 일이구나.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이 세상 끝까지 이

  어가게 해달라고 한 내 소망기도. 너희도 내 이 기도와 바램이 세상 끝나는날까지

  그치는일이 없도록 끝까지 이어가야 할 것이야. 내 말 무슨말인지 알겠느냐 ? ”

 “ 예, 잘 알겠습니다 아버님. ”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김길홍이 70회 생일이 되어 칠순잔치를 치르게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길홍 장로의 칠순잔치라서 송수만 목사는 제법 신경을 써서 그의 칠순생일을 준비해주었고, 길홍이 중소기업을 40년 넘게 운영해오면서 알고 지내온 정,관계 인사라던가 지역유지등 그런 관계자들도 많이 있기에 칠순잔치 파티장은 그런 제법 사회저명인사급 되는 사람들도 적잖이 참석하였다. 그런 자리에서 송수만 목사는 인사말씀을 겸해 한마디 한다.

 “ 제가 오늘 특별히 칠순을 맞으신 저희 김길홍 장로님의 생신파티 자리에서 한말씀

  드리려 합니다. 무엇보다 전 이렇게 김장로님의 칠순잔치상을 보니 저와 김장로님

  의 지난 40여년 인연이 새삼 다시 한편의 영화 하이라이트처럼 새록새록 피어오릅

  니다. 처음 제가 교회개척을 할 때 도와주시던일 하며 저희교회 첫 등록교인이 되

  고싶다 자처하신일...그리고 그 뒤에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을 세상 끝까지 이어가

  게 해달라는 소망기도를 하기 시작하신 장로남... ”

 “ ...... ”

 “ 무엇보다 전 정말 김길홍 장로님의 그 기도하신 소망이 있는 그대로 이루어진것에

  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생각해보면 그 전쟁의 환란가운데

  서 다시 일어나는 기적의 역사를 이 민족과 국가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그리고 김

  길홍 장로님께는 열명의 정말 주안에서 강건하게 양육되고 자라나는 그런 자제분들

  을 주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처음 바울교회를 개척할 때 시작한

  기도는 ‘양주땅의 모든 영혼을 구원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선 그런 제

  게는 대신에 남양주애서 가장 큰 교회로 바울교회가 성장할수 있게 해주셨고, 한편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이 세상 끝까지 이어나갈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김길홍

  장로님께는 이렇게 모두 열명의 귀한 아드님을 주셨습니다. 모두 건실한 크리스찬

  자녀로 자라난 그런 아드님들을요. ”

 다소 장황해진 송수만 목사의 이야기. 목이 좀 말라오는지 물 한모금을 마신뒤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 첫째 아드님 김진규 집사님은 지금 의사, 둘째 김정규 집사님은 지금 검사, 셋째

  김용규 선생님께선 지금 대기업 본부장, 넷째 김승규 집사님이 공인회계사, 다섯째

  김민규 선생이 육군 장교, 여섯째 김태규 형제는 공무원, 일곱째 김한규 형제는

  유럭 언론사 J일보 기자, 여덟째 김현규 형제는 대학교수, 아홉째 김인규 형제는

  명문대 영문과를 나와 지금 한참 취업을 준비중이고, 막내 김명규 형제는 역시

  명문대에서 천문학자를 꿈꾸며 천문학을 전공하고 있고, 이쯤되면 정말 어디 내놓

  아도 손색이 없는 그런 크리스찬 명문가라고 자랑할만하지 않습니까. ”

 “ 하하...송목사님 이거 민망하네요. 이제 그쯤 하시죠. ”

 ‘크리스찬 명문가’라는 말에 김길홍이 살짝 민망해졌는지 잠시 제지한다. 허나 그러면서도 김길홍도 그리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크리스찬 명문가’. 어쩌면 김길홍이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과 온전한 그리스도의 기업이 세상 끝까지 이어가게 해달라’는 소망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언젠가는 꼭 한번 듣고 싶었던 그런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내심 분명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을 김길홍이기에 ‘크리스찬 명문가’라는 말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살짝 미소지어지는 모습이 숨기기 힘들어진다.

 “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정말 저희 바울교회의 중요

  한 신앙의 동역자 김길홍 장로님의 복된 칠순잔치를 맞아 김장로님의 귀한 자녀

  들은 물론 김장로님의 평생동안 교제해오신 신앙의 벗, 사업을 하며 만난 동료들

  그 외 사회 각계 인사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축하해줄수 있게 해주심 감사드립니

  다. 돌이켜보면 정말 환란가운데 귀한 역사주신 하나님. 전란으로 피폐해진 이 땅

  에서 크리스찬 형제,자매들이 더 이상 낙심하지 않고 일어나 경제기적을 일으키는

  역사를 보여주신 하나님. 그 놀라운 기적 그대로 김길홍 장로님의 가정에도 그와

  같이 임해주셨으리라 저희도 믿습니다. 정말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과 온전한 그

  리스도의 기업을 소망하며 지금까지 기도하며 살아오신 김장로님. 기도하신 그대로

  김장로님께 귀한 열분의 아드님 주시고, 그 열분의 아들들 모두 건전한 크리스찬

  자녀로 양육되어 자라고 세상의 귀한 직업 얻게해주시고 무엇보다 믿음안에서 서

  로 신뢰하며 살아갈수 있는 그런 배우자 또한 주셨기에 그 크신 은혜 더더욱 감사

  드립니다. 정말 기도하옵기는 김길홍 장로님의 가정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으뜸가

  는 거룩하고 신실한 ‘크리스찬 명문가’로 빛날 수 있도록 세상끝날까지 주님 인도

  해주시옵기를 김길홍 장로님의 아들,손자,며느리 자자손손 모두 훗날 천국갈수 있

  게해 주시옵소서. 정말 거룩하신 하나님. 물같은 은혜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

  이제 칠순을 맞은 김길홍 장로님 남은 여생도 그 믿음 변치않고 건실한 신앙생활

  끝까지 잘 지켜나갈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탈북자를 돕는 선교

  단체를 남몰래 후원하며 기도하시는 김길홍 장로님의 그 소망기도 잊지 않으시고

  김장로님의 그 (탈북자 선교단체를 후원하는) 마음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이

  루어질수 있고 이끌어질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정말 여기 김길홍

  장로님의 가정이 건전한 크리스찬 가정으로 정말 거룩하고 신실한 크리스찬 명문

  가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 더욱 영롱히 세상에 빛을 내게 할 수 있는 그런 형

  제,자매님들이 될수 있도록 하여주시옵고 세상 끝날때까지 그 기도, 그 소망, 그

  믿음 영원히 이어질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김길홍 장

  로님의 칠순잔치를 축하하러 오신 김길홍 장로님이 평생동안 교제해오신 신앙의

  벗들, 사업의 동료들 그 외 사회 각계 인사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구분치 마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로 모두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우리를 구원하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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