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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여자친구 신비 (6)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부제 :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 나는 우리 각하(박정희 대통령)께서 이 나라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의 기반과 기초

  를 닦는 ‘기승전결’의 ‘기’의 역할을 해주시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

  게 각하께서 이 나라 경제와 산업성장의 기초를 닦고 뿌리를 내리시면 그 다음엔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할 다음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겠죠 ? ‘기승전결’에서

  ‘승’의 역할을 해야할 사람 말입니다. 나는 그 ‘승’의 역할, 각하께서 일구어놓으신

  경제성장의 밑바탕위에서 성장의 고속도로를 계속 달려가고 이어가게 할 사람. 뿌

  리내린 자리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할 역할앨 해줘야할사람. 그 역할을 우리

  김종필 중령이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8년동안 이 나라

  경제성장의 밑거름역할을 해주시면 그 다음엔 김종필 중령이 8년동안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도로를 만들어놓고 그렇게 16년을 각하와 김종필 중령이 연이어 한다

  면 이 나라는 반드시 반석위에 놓일거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김길홍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던 공태광 의원. 하지만 김길홍과 공태광의 인연은 그 이상 오래갈수가 없었다. 실은 박정희의 공화당 정권이 ‘3선개헌’을 천명하면서 JP계였던 공태광은 그에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그래서 공태광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축출당하고 만다. 뿐만아니라 그렇게 쫒겨난 공태광은 머지않아 의문의 실종을 당해 이후 공태광을 본 사람은 더 이상 있을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치권에서 사라져버린 공태광. 따라서 공태광의 지역구(의정부,양주)에서 지난 6-7년 세월 교류를 쌓아오며 특히 6대와 7대총선 두차례나 그의 선거를 도왔던 김길홍도 수난을 당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루는 검은 세단차가 길홍의 사업장으로 와서는 그를 데리고 갔다. 다름아닌 정보부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끌려간 김길홍은 그 취조실에서 한바탕 수난을 겪고만다.

 “ 김길홍 선생... ”

 어두컴컴한 취조실에서 취조를 당해야만 했던 김길홍. 자신을 조사하는 정보부 수사관은 제법 점잖게 길홍을 ‘선생’이라 부르고 있었으나 되려 그 예를 갖추는 모습이 길홍을 더더욱 소름끼지게 만들었다. 오히려 저렇게 나오는 자세에서 어떤 반전이나 다른 의도같은게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어 길홍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더욱 무서운 상상에 겁에 질리고 두려워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수사관은 차분하게 길홍에게 이런저런 차트를 들이밀며 몇가지 질문을 건넸다.

 “ 공태광 의원과는 참 오래 교류를 하셨더만요. 선거때도 늘상 같이 다니시고...그

  래, 공의원에게 얼마나 처먹였나요 ? ”

 “ ??? ”

 “ 공태광이한테 선거자금 갖다 바치셨을 것 아닙니까 ? 선수끼리 괜히 능청떨지 맙

  시다. 바른대로 말해요 ! 공태광한테 얼마나 줬어요 ? ”

 “ 우리나라 실력있는 정치인들이 돈 많은 기업인들에게 늘 의지한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긴데, 제가 굳이 그런 것을 이 자리에서 선생님께 말씀드려

  야 합니까 ? 그리고 그런식으로라면 어차피 우리나라 힘있는 정치인들 재벌들 다

  잡아들여야할판인데 그럴 생각이신가요 ? ”

 “ 아니, 근데 이 사람이 ? ”

 겁에 질린줄 알았는데 되려 당당하게 나오는 길홍의 모습에 수사관이 순간 당황했다. 허나 이미 길홍에 대한 뒷조사는 다 마칠대로 마친뒤라서인지 다시한번 차트를 들이밀며 길홍을 위협한다.

 “ 당신 세무조사 한번 제대로 당해봐야 정신 차리겠어 ? 설마 그만한 기업체를 운영

  하면서 지금까지 재산세며 소득세 꼬박꼬박 빠짐없이 다 냈다고 말하진 않겠지 ?

  어디한번 작정하고 파헤쳐볼까 ? ”

 “ 난 정보기관이 남북분단의 현실에서 공산당 때려잡기 위해 만든 그런 기관인줄 알

  았는데, 이제보니 기업들 뒷조사까지 하나보죠 ? 그러면서 무슨 여력이 남아서 공

  산당을 때려잡고 간첩을 잡습니까 ? ”

 “ 뭐가 어쩌구 어째 ? 아니, 이 사람이 보자보자하니까... ”

 생각보다 당당하고 의연한 길홍의 모습에 수사관은 벌컥 화를냈다. 길홍의 선거법 위반문제라던가 탈세의혹 이런것들에 대한 심문이 일정부분 끝나고 수사관이 여담삼아 길홍에게 한마디 한다.

 “ 당신...한가지만 묻지. 당신은 우리 각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

 “ 전 박정희 대통령께서 혁명공약때 말씀하신대로 절망과 기아선상에 사로잡힌 이

  나라의 경제를 일으켜세우시고 공산당을 막을수 있는 실력을 길러 그런 부강한 나

  라로 이끄시는 그런 지도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대통령의 그와같은 정책을

  지지하기에 지금껏 그 작은 한부분이나마 도움을 드렸던것이고요. 제가 박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공화당 의원 선거운동을

  도왔겠습니까 ? ”

 “ 근데 왜 지금와서 삐딱선을 타 ? 왜 이제와서 갑자기 3선개헌은 반대하고 나서냐

  구 ? ”

 “ 욕심이 지나치면 사망을 낳는법... ”

 “ 뭐...뭐라구 ? ”

 “ 3선개헌 반대는 공태광 의원께서 하신것이지만 제가 뭐 ‘저하곤 관련없다’는 식으

  로 회피하려 들진 않겠습니다. 어차피 저와 공의원의 6-7년간 교류와 친분의 시간

  을 다 조사하셨을테니,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겠죠. 하지만 전 진실로 각하께서 이

  나라 굶주리는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런 인물이라 생각

  했습니다. ”

 “ 이건 또 갑자기 무슨소리야 ? ”

 “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많은 리더들이 나옵니다. 개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따라 백성들을 능히 잘 이끈 그런 리더가 있는가하면 처음부

  터 하나님께 순종치 않고 탐욕의 길을 갔다가 패망한 왕이나 리더도 나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왔으나 나중에 교만하고 탐욕의 길로 빠져

  패망한 그런 왕과 리더도 있습니다. 나는 부디 우리 대통령각하께서 초심을 잃지

  않으시고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겸손한 그런 지도자가 되시길 바랍

  니다. ”

 “ 이것봐요 김길홍씨, 당신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우리 각하는 기독교 신자 아

  냐. 여태 그런것도 모르고 있었어 ? 대체 지금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거야 ? ”

 “ 비록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어여삐 여기는자라면 그 또한

  거룩한 그리스도의 백성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허나 주의종들을 핍박하는 자라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수 없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

 “ 대체 무슨말을 하고 싶은거야 ? ”

 “ 저는 각하께서 진실로 교만치 아니하시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시고 초심 그대로

  헐벗고 굶주린 이 나라 백성들을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구제하시겠다는 그 마음 그

  대로 8년의 임기를 무사히 다 마무리 하시고 물러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리고 그 다음은 또 다른 하나님의 선택한 자가 지도자가 되어야겠지요. 거듭 말씀

  드리지만 대통령 각하께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권면을 해드리고 싶습니

  다. (혹 실제 그런일이 벌어질련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혹시 직접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1:1로 만나뵙는 자리가 생긴다면 그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부

  디 절망과 기아선상에 사로잡힌 이 땅의 백성들을 구제하겠다는 초심 그대로만 하

  십시오. 절망과 기아선상의 이 나라 국민들의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공산당에 맞서

  싸울수 있는 부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신 혁명공약의 그 초심대로만 하시라고

  말입니다. 허나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마십시오. 욕심을 너무 부리는자는 곧 하나

  님을 두려워하지 않는자이며,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자는 결국 패망과 사망의 길로

  접어들고 말것이라는 그 말씀만은 꼭 대통령 각하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김길홍에게 생각보다 그다지 트집거리는 많이 나오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이미 3선개헌 반대파중 한사람이었던 공태광 의원은 해치운뒤라서 굳이 그 측근격이었던 김길홍까지 해칠 필요는 못느꼈는지 길홍은 한 일주일정도 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은뒤 풀려나고 말았다. 다만 김길홍이 하나님 어쩌구 하며 수사관앞에서 늘어놓은 말 때문이 길홍을 돌려보낸뒤 수사관은 살다보니 참 별다른 경험을 다해봤다는 듯 혼잣말로 주절거렸다.

 “ 허허 참...진짜 별스러운 예수쟁이였어 진짜... ”





 “ 집사님, 아이구 김길홍 집사님 괜찮으십니까 ? ”

 김길홍이 정보부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는 그를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 있는터라 일주일여만에 김길홍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송수만 목사가 걱정도 되고 반갑고 다행이라는 생각에 한달음에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한편 이때 길홍의 집은 어느덧 번듯한 2층짜리 그런대로 규모도 작다고 할 수 없는 그만한 집을 새로 짓고 살고있을 때였다.

 “ 염려해주신덕분에 이렇게 무사합니다. 별 걱정을 다하고 계셨네요 목사님 ? ”

 정보기관에까지 끌려갔다온 사람답지 않게 길홍은 사뭇 여유로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허나 이게 어찌 ‘별 걱정’을 하지 않을수 있는 일일수 있으랴. 사실 JP계로 3선개헌 반대입장이던 재선의 공화당 의원 공태광의 의문의 실종사건은 이미 언론보도까지 나간 상태라, 그런 기사를 접한 사람들중 특히 양주지역에서 길홍과 태광의 관계를 알만한 사람이라면 공태광도 저지경이 되었는데 혹시 공태광과 각별한 사이였던 김길홍 사장도 무슨 화나 봉변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다못해 세무사찰이라도 당하던가) 그 걱정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허나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돌이온 김길홍. 길홍의 아내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온것에 반가움과 다행의 눈물을 쏟지 않을수가 없었지만 송수만 목사 역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까지 올리지 않을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런 송목사를 바라보며 김길홍은 차분하게 입을 연다.

 “ 뭐 어쨌든...저도 막상 말로만 듣던 정보부에 그렇게 검은색 차에 실려갈때는 ‘혹

  시 내가 가서 영원히 그곳에서 못 나오는건 아닌가 ?’ 하는 그런 생각도 솔직히 들

  었습니다. 처음 정보부 수사요원과 맞닥뜨렸을때는 당장 그 자리에서 무슨 고문이

  나 폭행이라도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도 많이 났구요. ”

 “ 그래서...고문이나 폭행같은 가혹행위는 당하지 않으셨습니까 ? ”

 “ 뭐 전혀 안 당할수야 없었겠죠. 하지만 대체로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심문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제게서 별다른 혐의점이나 트집거리 잡을게 없었는지

  한 일주일 괜히 그곳에 쓸데없이 붙잡아 놓았다가 이렇게 풀어준것이고요. ”

 “ 어쨌거나 다행입니다 집사님. ”

 길홍의 아내가 타 내놓은 차를 한잔 나누며 그와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송수만 목사. 길홍이 수만을 바라보며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 하지만 막상 그런곳에까지 끌려가며 조사를 받으니...실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

  게도 해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

 “ 하하 참...집사님도...그런곳까지 끌려가서 대체 뭘 깨달으셨다는건데요 ? ”

 “ 목사님께서도 제가 정치인과 너무 가까이 지내는 것을 늘 우려하고 경계의 말씀을

  해주셨지만...그걸 느꼈어요. 세상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것만은 분명 아니구나 하

  는... ”

 “ ...... ”

 “ 저야 늘 목사님께 그런 말씀들 드렸지만 저야 어디까지나 순수한 마음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을 지지하기에 그 지지하는 마음으로 작은힘이나마 돕고싶

  은 생각에 여당의원을 선거때 한두번 도와드린게 전부인데...그런 저의 마음이 아무

  리 순수해도 세상이 그런 제 순수한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을수도 있겠구나 그 깨달

  음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보부에 끌려가있던 일주일의 시간이 말입니다. ”

 수만은 별다른 말이 없이 길홍의 손을 한번 꼭 잡았다. 사실 여느 일반인같았으면 ‘거봐라, 내가 정치인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 ? 내 말 안들으니 꼴 좋다. ’ 그런식으로 빈정대고 놀렸을법하기도 한데, 허나 그런말은 일절 입에 담지않고 다만 김길홍의 손을 꼭 한번 잡아보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목사님은 목사님이다. 그런 송수만 목사를 바라보며 김길홍 집사의 말이 다시금 이어진다.

 “ 허나 제 마음은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습니다. ”

 “ 그건 또 무슨말씀이신지요 ? ”

 “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저는 애초 5.16 혁명이 일어났을때부터 ‘절망과 기아선상

  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혁명정부 정신의 누구보다도 강력하고 열성적인 지

  지자였습니다. - 그 혁명정신을 돕는답시고 여당 국회의원과 너무 가까이 지내고

  그 선거운동까지 도왔던 것은 어쨌든 제 불찰이라면 불찰이지만요 – 그 마음이 지

  금이나 그때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거지요. 만약 여전히 우리 대통령각하께서

  이 나라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이바지하시어 이 나라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는

  그 기초와 기반을 다지는 일을 굳건히 하시는데만 전념하신다면 전 여전히 마음으

  로 그분을 위해 기도하며 그분의 정책이 성공할수 있도록 도울것입니다. ”

 “ 뭐 김집사님도 다 신문도 보시고 방송뉴스도 다 보시는 분이니 아시겠지만...이 정

  권도 결국 3선개헌은 밀어붙였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하나 다

  를것없지요. ”

 “ 안타까운 일이지요. 정치인들이 하는일을 권력자가 하는일을 어찌 힘없는 저같은

  사람들이 막을수 있겠습니까. - 저조차도 아무리 이 지역에선 그런대로 잘 나가는

  기업인이고 지역유지라 한들 정보부에서 부르면 꼼짝없이 불려가야만 하는 힘없는

  민초중 한 사람인것을요. ”

 “ ...... ”

 “ 그래서 더더욱 안타까움에 기도하겠다는 말입니다. 우리 대통령각하 부디 초심 잃

  지마시고 욕심 너무 부리시지 마시고 그저 이 나라 경제발전과 산업성장의 기초와

  기반을 잘 닦고 가시겠다는 그 마음만은 변치않고 남은 시간동안 이 나라를 잘 통

  치해달라는 그 염원을 갖고 기도할 따름입니다. ”

 “ 김집사님의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그 마음만은 목사인 제가봐도 늘 감

  동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김집사님의 그 마음을 잘 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

  습니다. ”

 그렇게 이어지고있는 김길홍과 송수만의 대화. 여하튼 정보부에 끌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줄만 알았던 김길홍 사장이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것이고, 그로인한 다행스러운 마음을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차는 그 사이 어느덧 다 식어있는데 송수만이 이번엔 언뜻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

 “ 아, 참 그리고 집사님. ”

 “ 네, 목사님. ”

 “ 그...얼마전에 OO이하고 OO 자매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OO이는 OO시에서 지금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하고 OO 자매는 좋은 사람을 만나 머지않아 시집을 가

  게 될 것 같다며, 혹시 가능하다면 제게 주례라도 맡기고 싶다는 그런 뜻까지 편

  지에 밝혔더군요. ”

 “ 그래요 ? OO이하고 OO이가 벌써 그만큼 자란건가요 ? ”

 길홍과 수만이 방금 언급한 두 사람은 다름아닌 수만이 휴전되기 직전 바울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를 모으면서 그때 거두었던 인근에 사는 전쟁고아들이었다. 수만은 사실 교회를 세우고 한동안은 이 근방 대략 한 5-6명 정도되는 전쟁고아를 손수 거두어들이기도 했는데 그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키우는 이른바 ‘총각아빠’로 살아오기도 했던 것이다. 바울교회 개척 당시엔 송수만은 아직 미혼의 전도사였는데 사실 수만은 그때 전쟁고아 몇몇을 거두어 키우면서 그 아이들이 자랄때까지 결혼도 하지않고 ‘총각아빠’로 그 전쟁고아들을 키워왔던 것이다. 허나 그게 벌써 16년전의 일. 그때 거둔 전쟁고아들중 상대적으로 약간 큰편이었던 6-7세 정도 되는 아이 두어명이 지금은 벌써 22-23세 정도 나이가 되었다. 따라서 남자라면 이미 군대도 다녀와 직장생활을 할만한 나이고 여자라면 60년대 후반에 22-23세 정도면 시집도 충분히 갈만한 그런 나이이기도 하다. 이미 성인이 되어 자신들을 키워준 총각아빠 곁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 아이들이 총각아빠였던 송수만 목사가 생각이 나 그와같이 각기 취직과 결혼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송수만은 물론 바울교회 첫 등록교인이기도 했던 김길홍 입장에서도 여간 감사하고 기쁘지 않은일일수가 없었다. 





 다시 2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다사다난했던 1960년대가 모두 지나고 대망의 1970년대가 시작된 것이다. 6.25 당시 휴전이 되기 직전 양주 남부지역에서 개척된 바울교회는 그 사이 어느덧 등록교인만 500명이 넘는 중(中)규모 교회로 성장해 있었다. 건물도 그 사이 그전보다 더 크고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로 세워져있었고 교육전도사도 네명이나 두어 운영하는 그 정도의 교회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김길홍의 경우엔 이때까지 아내하고 사이에 모두 여덟명의 아들을 두게 되었다. 6.25 당시 호남의 피난처에서 그곳에서 심부름을 하는 여자와 눈이 맞아 아이까지 갖게된 길홍. 그때 그 여인과 비공식적으로 결혼식까지 올리고 같이 양주까지 올라와 살게되었는데, 그 뒤 휴전이 되고 1년쯤 지나서 둘째를 보았고 다시 57년과 59년에 두명의 아들을 더 낳았고 60년대 들어서도 대략 2-3년 정도의 터울을 두고 네명의 아들을 더 보게된 것이다. 실로 8형제를 두게된 ‘다복한 가정’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가구공장을 하는 길홍의 회사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고 근래에는 일본이나 대만은 물론 멀리 동남아지역에까지 물품을 수출하는 그런 수출우량 중소기업으로 커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어느새 아들을 여덟씩이나 두게된 김길홍을 두고 송수만 목사는 하루는 이렇게 놀리기도 했다.

 “ 허허 참 이거...김집사님 국가시책에 너무 역행하시고 계신 것 아닙니까 ? ‘덮어

  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는 표어에 이어 이젠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

  아 잘기르자’는 말까지 나오는 판인에 아드님을 한둘도 아니고 무려 여덟이나 보

  시다니요 ? ”

 다른 것은 몰라도 헐벗고 굶주린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 나라를 반드시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하고 말겠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그 발전방향만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김길홍 집사가 아니던가. 헌데 경제정책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성적인 박정희 대통령 지지자였던 그가 적어도 산아정책에 있어서만큼은 60년대부터 시작된 ‘가족계획’ 정책에 아주 제대로 반대로 나가고 있는 셈이었다. 너무 많은 인구, 너무 많은 아이가 오히려 국가 경제발전에 저해가 된다며 출산률을 낮추려고 무단히도 노력했던게 이 시절의 일인데 김길홍은 적어도 그 정책만큼은 아주 제대로 지키지 않고있는 셈이다. 그나마 50년대에 낳은 아들 네명에 대해선 ‘그때야 아직 산아제한 정책이 실시되기 전 아니냐 ?‘는 식으로의 변명이라도 가능했겠지만 60년대 중반부터는 사실상 그 출산제한 정채이 본격화되고 소위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는 노골적이기까지 한 구호까지 나와버렸으니 그 60년대에 추가로 더 낳은 네명의 아들에 대해선 김길홍 집사의 입장에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 근데 결과적으로 보면 60-70년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둘만낳아 잘 기르자‘는 식의 정책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실 일전에 김길홍이 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을떄도 조사관이 의외로 김길홍에게선 별다른 탈세나 비리혐의가 나오지 않자 결국 나중에는 그 부분을 따지기까지 했다.

 “ 이것봐요 아저씨. 그리고 세상에 무슨 애를 이렇게 많이 낳았어 ? 세상에 아들이

  한둘도 아니고 무려 일곱이 뭐야 ? 일곱이. (* 정보부에 끌려간게 69년 상반기때 일이

  니 아직 여덟째는 출산하기 전) 세상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는 소

  리도 못 들었어 ? ”

 “ 허허...아이들이야 기왕에 생긴 것 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된 생명일진데 어찌 낳

  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 그리고 전 뭐 어쨌든 이만한 기업이라도 일구며 장사

  를 하다보니 그런대로 애들 밥은 굶기지 않을 정도로 살고 있습니다. ”

 “ 나 원 참... ”

 김길홍의 그 예하 여유만만하고 능청스러운 모습에 수사관은 다시금 혀를 내둘렀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덧 2년전의 일이다. 어느덧 70년대도 2년차로 접어들어 1971년이 된 어느날. 하루는 김길홍이 목사실에 들러 송수만 목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한 어여쁜 아가씨 하나가 다소곳이 들어와 두 사람의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고 갔다.

 “ 누구신가요 ? 저 자매님은 ? ”

 사실 좀 의아한 일이었다. 바울교회도 어느덧 이만한 규모의 교회가 되다보니 사무실도 별도로 두었고, 사무실은 간사급의 남자직원 한명과 두명의 여직원이 이끌어가고 있었다. 헌데 일단 그런 여직원은 아닌 것 같고 교회 청년회 자매인가 싶기도 했지만 일단 길홍의 기억엔 없는 자매였다. 사실 어느덧 바울교회도 등록교인만 500명이 넘고 청년회 회원도 70-80명선에 달하니 김길홍도 그 많은 성도며 심지어 청년회 회원들 얼굴까지 다 기억하고 있긴 어렵다. 허나 아무리 기억을 해봐도 낯선데다가 무슨 회사 사무실도 아닌 그것도 목사실에서 젊은 여성이 차를 대접한다는 것 웬만해선 보기힘든 그런 풍경이기도 하다. ‘요즘은 목사도 개인 여비서를 두나 ?’ 순간 그런 의심까지 생기는 판에, 혹 길홍이 이상한 오해라도 할까봐 일단 송수만이 손을 내저으며 해명을 한다.

 “ 아, 실은 OOO 자매의 대학 후배의 친구라고 합니다. 헌데 두어주전부터 우리 교

  회에 등록 출석하고 있어요. ”

 “ 아, 그럼 청년회 자매였다는 말씀이십니까 ? ”

 허나 청년회 자매였든 누가 되었든 목사실에서 이런 차 심부름을 한다는 것은 확실히 뭔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송수만은 뭔가 납득이 갈만한 변명거리가 더 이상 없어서인지 그 정도 선에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는데, 헌데 이 이상한 젊은 자매의 정체는 머지않아 곧 드러나고 만다.

 사실 송수만은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전쟁고아 몇몇을 거두어 키워왔었다. 그때 거둔 전쟁고아가 대략 5-6명 선인데, 어쨌든 그 아이들을 키우면서 수만은 60년대까지 그냥 ‘총각아빠’이자 ‘총각목사’로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거둔 전쟁고아들이 다 자라기 전까지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송수만 목사. 허나 그러다보니 송목사의 나이도 어느덧 40을 넘기고 있었다. 목사님의 나이며 처지가 이렇다보니 사실 평소 목사님을 따르는 교회 성도들은 종종 ‘결혼하셔야죠’ 라고 권면하거나 보기 딱했는지 아예 자신이 직접 나서 맞선을 주선하겠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허나 적어도 전쟁고아들을 다 키우기전까진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송수만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 권유를 모두 단호히 거절했던 것이다. 헌데 6.25가 어느덧 18년전의 일. 그때 거둔 전쟁고아들이 상대적으로 좀 큰 아이들은 6-7세 정도 작은 아이들의 경우엔 4-5세 정도에서 심지어 세 살도 채 되지 않은 그야말로 아기나 다름없는 아이도 있었는데, 허나 어느덧 그 아이들도 모두 20대를 넘긴 성인이 되었다. 지금은 그래서 다들 다른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등 모두 저마다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며 가끔씩 송목사에게는 편지같은 형식으로 소식을 전해주는 그정도였다. 그렇게 전쟁고아 5-6명을 다 키우고 나니 어느덧 나이 40을 넘긴 송수만 목사도 이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헌데 그런 송수만 목사의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청년회 20대 중반의 한 자매가 꾀를 내었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서 굳이 따진다면 자신의 대학 후배의 친구뻘쯤 되는 그런 자매를 하나 자기교회에 등록을 시킨 것이다. 자매는 6.25때 아버지를 잃고 그 뒤에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외동딸로 자라온 그런 여인이었는데 교회는 대략 중,고생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그런 사람이었다. 여하튼 대체로 신앙심은 깊은 그런 자매였는데 그런 사람을 자기 교회로 인도하고 그리고 목사님 가까이 두게 한 것이다.

 그리고 송수만 목사와 자매의 관계는 머지않아 곧 들통(!)이 날 수밖에 없었다. 수만은 실은 처음엔 가급적 교회 성도들 눈에 뜨이지 않게 하려고 자매와는 가급적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가서 데이트를 즐겼다. 송수만은 송수만대로 교회나 자택에서 따로 나오고 또 자매도 자매대로 그녀의 집에서 따로 나와 제3의 장소에서 접선(!)을 한뒤 다시 헤어질때는 각자 돌아가는식의 나름 ‘007 작전’ 같은 데이트를 하며 두 사람의 사이를 키워갔는데, 허나 어느덧 등록교인수만 500명이 넘는 교회다보니 교회 사정거리를 웬만큼 벗어나지 않고는 성도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양주군 남부지역 일대는 물론 멀리 의정부나 심지어 서울 강북(* 대략 지금의 서울 도봉,노원구 일대 정도)지역에서도 ‘바울교회 송수만 목사님 설교가 참 은혜롭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성도들이 종종 있어 송수만 목사가 자신의 데이트를 성도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사정거리 밖까지 가서 즐기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더 이상 숨길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송수만은 대체로 평소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권사나 집사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교제사실을 알렸다. 김길홍 집사도 그래서 송수만에게 좋은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을 그 무렵에야 알게되었다.

 “ 아니, 그게 정말이십니까 목사님 ? 그럼 그 자매님과 ? ”

 “ 네...하하 참...아무래도 이제 더 이상 숨길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군요. 여하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런 자매라면 조만간 날을 잡아 식을 올릴 생각으로 있습니

  다. ”

 사실 나이 40을 넘길때까지 전쟁고아들을 거두어 키우느라 ‘총각아빠’로 살아온 송수만이 나이 40을 넘겨 결혼을 한다는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더더욱 집사나 권사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두 사람의 나이차였다. 송수만과 사귀는 그리고 최근 그런식으로 신분을 위장해(?) 교회 청년회에 등록한 자매의 나이는 현재 스물일곱살. 1971년 현재 만 42세인 송수만과는 15년 나이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 헌데 대체...목사님 사모님이 되기로 결심하는것도 쉽지 않으실텐데 어떻게 거기에

  이렇게 나이많은분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것인가요 ? ”

 시간이 좀 더 지난뒤, 그러니까 송수만이 자신이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의 축복을 받으며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얼마후 김길홍은 그렇게 목사님 사모님이 된 자매를 만나게 된 자리에서 궁금함에 그와같이 물었다. 그때 자매는 이와같이 답했다.

 “ 목사님의 목회 비전이 절 감동시켰다고나 할까요 ? ”

 “ 목사님의 목회비전에 감동하셨다구요 ? 그건 무슨말씀이신지요 ? ”

 “ 사실 저도 중,고생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해왔고, 어린시절 아버지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온 처지기도 하지만...사실 처음엔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들에게

  어느정도 기대나 환상같은게 있었어요. - 인간에 대해 그렇게까지 큰 기대를 한 것

  은 아니지만 세상의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겠지 하는...그런... ”

 “ 그런데요 ? ”

 “ 헌데 막상 교회를 다니고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 후반에 이르기까지 교회에서

  이런저런 형제들을 만나 대화도 나눠보고 친해지기도 하면서 솔직히 되려 실망한

  경우가 많았어요...뭐랄까...고작 이쁘고 괜찮은 자매 만나 결혼하게 해주세요...좋

  은직장에서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겨우 그런 기도나 드리는 형제들을 보면서

  믿는 사람들이라도 젊은시절의 소망은 세상의 다른 평범한 남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구나 그걸 느꼈죠. ”

 “ 헌데...송목사님께는 그런 다른 형제들과 다른 뭔가를 느끼기도 했다는 말씀이신

  가요 ? ”

 “ 사실 처음엔 OO언니가...이런 목사님이 계신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많이 망설이기도 했어요. 제가 지금껏 딱히 사모가 되겠다는 기도나 소망같은 것

  을 가져본적도 없고...무엇보다 나이도 저보다 많은 그런분이란데서 좀 당혹스럽기

  도 했죠. 허나...OO언니가 평소 믿는 형제들에게 실망을 많이했다는 절 지켜보면

  서 나름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일단 한번 만나는 보자 그런 생각이었

  져. ”

 “ 그런데요 ? ”

 “ 한 두어번 만나고나서 송목사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지켜볼때가 있었죠. 양주

  땅의 보다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싶다며 늘 기도하는 목사님을 바라

  보면서...‘아, 어쩌면 저런 모습이 내가 꿈꿔왔던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고작 이 다음에 이쁜자매 만나서 결혼하게 해달라는

  또는 좋은직장에서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그런 세속적인 기도나 올리는 일반적

  인 형제와는 다른...자신이 뿌리내리고 사는 지역의 보다 많은 이들을 주님께 인

  도할수 있도록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하는 목사님을 보면서 ‘아, 확실히 저런분

  은 뭔가 다르다.’ 그런 생각을 했었죠. ”

 “ 송수만 목사님의 그런면을 보면서 마음이 끌렸다 그 말씀이신가요 ? ”

 “ 네, 자신이 뿌리내리고 사는 지역의 보다 많은 어린양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그

  런 목자가 되고싶다며 늘 기도하시는 목사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분의

  내조자로...이런분의 아내로 헌신하고 살면서 그런 삶에 제 인생을 바치는것도

  보람된 일이란 생각을 하게되었죠. 그래서 송수만 목사님을 선택하기로 한 것 입

  니다. ”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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