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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여자친구 신비 (5)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부제 :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그 공태광의 정체를 김길홍이 정확히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1년반 정도의 시간이 지난뒤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어느덧 1963년 봄. 이때는 혁명정부의 지도부인 최고위원회 의장 박정희가 민정(民政)에 참여할것인지, 또는 군정을 더 연장할것인지에 대한 논란과 설왕설래가 계속되던 무렵. 하지만 그 결론이 어찌되었든간에 정상적인 정치활동은 사실상 시작되고 있는때였다. 가령 김종필 중령이 주도해서 만든 ‘민주공화당’이 이해 2월26일 창당되었고, 민간 정치인들의 정치활동도 1월부터 허용되어 민정이 시작될때를 대비한 신당창당 준비와 물밑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때. 그때 공태광이 다시 김길홍을 찾아온 것이다. 다만 그때는 어디 등산이라도 하던가 나들이라도 다녀오는듯한 그런 중년남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깔끔한 양복정장을 하고 제법 신사같은 분위기로 길홍을 찾아왔다. 그러나 길홍은 이미 이때 양주지역에서 한참 잘 나가는 중소기업인이고, 따라서 공사다망한 그가 일관계로 만나보는 사람이 이미 한둘이 아닐터. 1년반전에 자기 공장을 찾아와 30-4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간 다소 엉뚱해보였던 그 남자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무엇보다 그때와는 옷차림새도 완전히 달라져있는 그런 공태광이 아닌가. 따라서 공태광이 그때의 일을 언급을 하자 길홍이 겨우 기억을 해낼수가 있었다. 여하튼 반갑다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길홍 입장에선 다소 애매한 재회일 수밖에 없을텐데, 태광은 그에게 다시 자신의 명함을 정식으로 건넸다.

 “ 그때는 미안했습니다. 그땐 사정상 제 정확한 신분을 댈수가 없어서 거짓 명함을

  임시로 하나 만들어 보여드렸는데, 사실 이게 지금 제가 정확히 하는일입니다. ”

 그때 건네준 명함에 적혀있던 직함에선 길홍은 무슨 공무원인가 – 허나 당시 하던 이야기나 분위기로 봐선 공무원 같아 보이지도 않았고 – 막연히 태광에 대해 짐작했었는데 이번에 건네준 공태광의 명함에는 ‘공화당’ 어쩌구 하며 무슨 당직 명칭 같은게 적혀있었다. 그것을 읽어보며 길홍이 묻는다.

 “ 그럼...그 군정에 참여하고 있는 군인들이 만들었다는 그 공화당에 참여하고 계신

  분이란 말씀이십니까 ? ”

 “ 사실 저도 불과 얼마전까진 군인이었습니다. 대위였죠. 그리고 작년에 예편했습니

  다. 다만 이전에 사장님을 찾아뵈었을때는 제 신분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난감한

  면이 없지 않아서... ”

 “ 아, 그러셨군요. 헌데 대체 제게 무슨일로. ”

 혁명정부에 참여한 군인이었든 또는 그뒤 예편해서 신당창당 작업에 참여한 인물이든 어쨌든 그런 사람이 자신을 거듭 찾아왔다니 길홍 입장에선 더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차분히 마주앉아서 차 한잔을 들며 태광이 그런 길홍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건넨다.

 “ 그전에 제가 김사장님께 하나 여쭤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사장님께선 저희 의장

  님께서 혁명을 일으키신 그 진짜 뜻을 알고 계십니까. ”

 “ 그...혁명이야 애초 혁명공약에...절망과 기아선상에 빠진 나라를 바로잡고 공산

  주의에 맞설 실력을 기르며...그렇게 적혀있지 않았습니까. ”

 “ 바로 그겁니다. 절망과 기아선상에 빠진 나라를 바로 잡고자 저희 각하께선 분

  연히 일어나신거죠. 그리고...과연 그 절망과 기아선상에 빠진 나라를 바로잡으려

  면 무엇부터 해야할까요 ? ”

 “ 그...글쎄요... ”

 진심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는 길홍도 쉽지 않은지 망설이고 있는데, 그런 길홍을 바라보며 태광은 마치 혁명정부의 공식 대변인이라도 되는양 목에 힘을주어 말한다.

 “ 경제를 부흥시켜야하지 않겠습니까 ? 그렇겠지요 김사장님 ? ”

 “ 네, 그건 그렇지요. 경제가 살아나야 백성들도...국민들도...자연히 먹고살기 편하

  게 되지 않겠습니까. ”

 “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바로 국민들이 잘먹고 잘살게 하기위해...경제를 일으키

  기위해 무엇을 해야겠냐 이겁니다. ”

 “ ...... ”

 “ 산업을 발전시켜야하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국가 경제성장의 기반이 될만한 터전

  을 닦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경제성장의 터전과 기반을 닦으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 ”

 “ ...... ”

 “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기간산업을 육성하고, 또 많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할수 있는 그런 기업들을 많이 육성해야겠지요 ? 안 그렇습니까 ? ”

 어쨌든 5.16 군사혁명에 가담했던 장교출신으로 지금은 공화당 당직자로 참여하고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은 분명한 듯 한데 바로 그러한 공태광으로부터 일장연설이라도 하듯 줄줄 나오고 있는 나름의 국가경제발전 이론이라고나 할까. 그 자신의 소신인지 아니면 윗분들에게서 이미 전해들은 정책을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이야기는 좀 더 이어지고 있다.

 “ 그래서 바로 그런 경제육성,산업육성 그리고 무엇보다 수출일꾼을 육성하기 위해

  선 선생님같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그래서 제가 선생님을 만나뵈려 한것입니

  다. ”

 “ 제가 무슨 도움이 될만한게 있겠습니까 ? ”

 “ 듣기로는 선생님께서 평소 소신이 1등제품을 많이 만들어 내다파는 그런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것이라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

 그것은 언젠가 김길홍 사장이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바울교회’에서 송수만 목사에게 자신의 기도제목이라고 여러차례 말해온것중 하나. 무엇보다 이 나라가 ‘1등제품 많이 만들어 수출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을 갖기 시작했고 자신과 자신의 가구공장 역시 그런 방향으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보탬이 되는 그런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한 김길홍. 헌데 그런 이야기를 이미 공태광이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길홍에 대한 뒷조사를 그동안 제법 많이 해온것만은 분명해보인다. 공태광이 그런 길홍을 바라보며 다시금 말한다.

 “ 그래서 제가 직접 선생님을 만나뵙고자 한것입니다. 저희 각하께서 갖고계신 경제

  개발계획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펼쳐지고 열매를 맺기 위해선 선생님 같은분들

  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기에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직접 선생님을 찾아뵈러 온 것입니

  다. ”





 태광은 그 뒤에도 이따금 김길홍의 사업장을 찾아왔고, 길홍도 어쨌든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써 혁명정부와 그 정도의 인연이 있는 사람과 교류를 갖는것도 나쁠 것은 없겠다 싶어 그런식으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무엇보다 ‘1등제품 많이 수출하는’ 그런 기업을 일구고 싶다는 길홍의 비전이 5.16을 일으킨 박정희 의장의 경제발전 소신과도 그런대로 맞아떨어진다하니 이런 사람들과 손을 잡는 것이 앞으로 자신의 사업을 더더욱 번창케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하에 그리한 것이다. 그렇게 길홍과 태광의 사이가 가까워지던 어느날. 태광이 문득 길홍에게 이렇게 물었다.

 “ 김선생님께서도 혹 그 이야기는 들어보셨죠. 장도영은 나기브같고 박정희는 낫세

  르 같다는... ”

 ‘장도영은 나기브같고 박정희는 낫세르 같다’. 애초에 5.16 혁명 제1성이 울려퍼졌을때는 그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이름이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으로 나왔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국민들은 라디오를 타고 나오는 방송내용 그대로 장도영 육참총장이란 사람이 주도해서 군사혁명을 일으킨줄만 알았다. 헌데 정작 그 장도영은 5.16 발발 두달만에 되려 ‘반혁명분자’로 전격 체포되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고, 박정희 부의장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의 일이다. 무엇보다 5.16의 전모가 차츰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외국소식을 자주 접해볼수 있는 지식인과 언론인들 사이에서 박정희와 장도영의 일을 놓고 그와같은 비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기브와 낫세르는 실은 5.16이 있기 10년전인 52년에 이집트에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인물. 헌데 애초 군사쿠데타를 주도한 1인자는 나기브였으나 얼마후 2인자 낫세르가 나기브를 축출하고 자신이 1인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고보면 이 경우와 박정희-장도영의 경우가 상황이 거의 비슷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언론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장도영은 나기브같고 박정희는 낫세르 같다’는 식의 분석과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때쯤이면 이만한 중소기업 사장에 지역유지쯤 되는 인사인 김길홍 정도면 그러한 세간의 비유와 평가는 충분히 들어봤을법한 사람이고, 다만 권력무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도영이 반혁명분자로 전격 체포된 것이 이미 2년전 일이기 때문에 그 이름인 어느새 사람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어있었다. 헌데 지금 새삼 그 장도영의 이야기는 왜 꺼낸단 말인가. (* 한가지 설명을 더 덧붙이자면 솔직히 장도영씨는 5.16 과정에서 기껏해야 얼굴마담 내지 기회주의자였다고 평가할 인물이지 나기브급으로 비교할수 있는 인물도 못된다. 원래 박정희 소장은 장도영 총장의 위치와 지명도 그리고 그간의 개인적 정분과 정리 때문에 여러차례 그에게 ‘5.16 거사 의지’를 밝힌바 있었고, 헌데 장도영은 이미 그와같은 박정희의 5.16 거사계획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윤보선 대통령이나 장면총리는커녕 그 어느 민주당 정부 고위인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따라서 장도영은 박정희가 혁명의 대외명분이나 장총장의 지명도등을 고려해서 내세운 얼굴마담 정도거나 끝까지 거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하지 못한 기회주의자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 공화당 창당이 김종필 중령에 의해 주도된 것은 알고 계시죠 ? ”

 “ 뭐 그거야 이미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만... ”

 언론의 자유가 무슨 21세기 현재하고 비교할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여하튼 일정부분 정치판 돌아가는 이야기나 그 정도 보도는 할수 있던 시절이니 공화당 창당과 관련된 소식을 신문기사를 통해 접해볼수는 충분히 있었을테고 또 김길홍이야 공태광과 교류를 나누면서 김종필 중령의 이름을 들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 다만 이때는 아직 김종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던 시절이다.

 “ 저는 진심으로 혁명을 일으키신 저희 각하(박정희)께서 혁명공약에서 천명하신 것

  처럼 절망과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이 땅의 백성들을 구제하시고 이 나라 산업과

  경제발전의 기반을 제대로 닦아놓으시길 바라는 그런 사람중 하나입니다. ”

 “ ...... ”

 “ 허나 대통령이란 자리가 천년만년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고, 만약 4년 중임제

  로 개헌을 한다면 저희 각하가 하실수 있는 시간은 8년밖에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각하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다시 그 뜻을 이어 이 나라 경제의 지속가

  능한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야하겠죠, ”

 “ 듣고보니 그 또한 일리있는 말씀이시네요. ”

 대통령을 옛날 임금과 동일시하는 인식이 60년대나 7,80년대는 물론이고 심지어 21세기에도 적잖이 존재한다는게 이 나라 국민들의 인식과 가치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963년 정도면 ‘4년중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12년(이승만 대통령 시절)간 경험했던게 이 시절의 국민들이다. 게다가 그 이승만이 너무 오래한다며 ‘독재정권 물러가라’며 4.19로 끌어내린 것이 이때의 국민 다수 의식수준이기도 하다. 63년 봄이면 아직 군정을 연장할지 민정을 시작할지에 대한 설왕설래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만약 정말 민정을 하게되면 그 제도가 ‘4년중임의 대통령 중심제’가 될것이라는 것은 어느정도의 식자층이라면 쉽게 예상해볼수 있는 제도다. 아직까지 이 땅의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할수 있는 민주 통치제도는 ‘4년중임제와 내각제’ 외에는 없는 것 아닌가. - 87년의 5년단임제는 ‘장기집권을 막아보자’는 의식하에 애초에 여당이 제안했던 ‘6년단임제’를 1년을 더 줄여 ‘5년단임제’로 정착시킨 제도다. 그렇다면 민정이 시작된다면 ‘내각제’는 이미 2공화국 열달간의 혼란상을 이미 봤으니 선호할수 있는 제도가 못될것이고, 결국 자연스레 ‘4년중임의 대통령 중심제’가 다시 시작될것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 정치일정이기도 하다. 헌데 공태광은 바로 그렇게 예측되는 정치일정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전 박정희 의장께서 먼저 8년을 하시고나면 그 다음에 김종필 중령이 다시 8년

  을 더 이어서 하셔서 그렇게 16년동안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반을 닦아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소설이나 연극의 ‘기승전결’론처럼 박의장께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기반을 8년동안 닦아놓으신다면 그 기반위에 다시 8년을 더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야할 사람이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 바로 박정희 의장

  님의 경제발전 의지와 정신을 계승해서 말입니다. ”

 “ 그 정신을 계승할만한분이 김종필 중령이란 말씀이라도 하고 싶으신건가요 ? ”

 “ 쉬잇~! ”

 순간 당황한 듯 공태광은 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가리는 시늉을 한다. 실제 태광은 화두에서 ‘장도영은 나기브같고 박정희는 낫세르같다’는 5.16 직후에 항간에 떠돌았던 속설을 화두로 꺼내긴 했지만, 후일 60년대 중,후반쯤에 김종필과 JP계가 여권에서 부각되면서 이번엔 ‘박정희가 나기브같고 김종필이 낫세르같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허나 60년대 중,후반쯤에 가서야 나올 이야기를 63년에 일개 대위출신 공화당 중하위 당직자인 공태광이 그런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는 것은 다소 무리일 것 같고, 다만 4년중임제로 개헌이 이루어져 대통령선거를 하게될 경우, 박정희가 8년을 한 뒤에 그 다음엔 누가 할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는것까지는 그리 무리가 가는 발상은 아닐 것이다. 허나 아직까지는 그런 이야기를 너무 노골적으로 꺼내는 것은 조심스러운 이야기라서인지 공태광은 일단 그 정도에서 ‘쉬잇~!’ 하는 시늉을 해보이는 것이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전 이 나라의 경제성장과 발전이 누구에 의해 시작되고 누구

  에 의해 그 뜻이 계승받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하는것인가 그 문제를 말씀드리

  는것입니다. 경제성장이란게 사실 한 5년,10년 해서 눈에띄는 성과를 낼수 있는 것

  은 아니지 않습니까. 8년정도면 이 나라의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의 기반을 닦는 기

  승전결의 ‘기’에 해당되는 시간, 그리고 그 다음 그렇게 기반을 닦은 성장의 토대

  위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고 일구어가야할 ‘승’의 역할을 해야할사람. 그렇

  다면 그 ‘기승전결’의 ‘승’의 역할을 해야할 사람이 누구여야할것인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 그...승에 해당되는분으로 김종필 중령인가 그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 말씀을

  하시는거군요. ”

 “ 아이구 김사장님. 너무 그렇게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시기상

  조일 것 같습니다. 그러다 큰일나시면 어쩌시려구요. 어쨌든 전 절망과 기아선상에

  사로잡힌 이 나라 국민들의 민생을 어찌하면 해결할것인가 하는 구국의 일념으로

  일어나신 저희 각하의 뜻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나가기를 고뇌하는 그런 한

  사람으로서 드린 말씀일뿐입니다. ”

 “ 뭐 여하튼 공선생님의 뜻은 제가 잘 알고 있겠습니다. ”

 사실 그 외에 공태광이 김길홍에게 도움을 원하는 것은 또 하나가 있었다. 실은 공태광은 민정이 시작되고 총선이 치러질것에 대비 이 지역에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중인 사람이기도 하다. (* 실제 경기도 양주지역에서 60년대에 국회의원을 역임한 사람은 6대 강승규(63년. 민정당(民政黨) - 야당), 7대 이진용(67년. 공화당) 의원의지만 (선거구 : 경기도 의정부,양주) 그러한 사실관계 및 저 두 인물의 전력,이력등과는 상관없는 100퍼센트 가상 창작의 상황임을 밝힙니다.) 실제 총선이 다가오면서 김길홍은 공태광에게 도움을 청했고 태광은 이 지역에서 어느덧 10년째 중소기업을 운영해오고 있는 길홍의 도움을 받아 그해 12월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무난히 국회의원에 당선될수 있었다.





 양주에서 이미 지역유지급이 되어있는 중소기업가 김길홍 사장의 도움을 받아 공태광은 6대에 이어 7대 총선까지 두차례 연이어 당선될수 있었다. 6대 총선이 야당의 분열로 공화당 입장에선 민정으로 이양해서 치른 첫 총선임에도 불구하고 압승할수 있었고, 4년후인 7대 총선(67년)은 4년전인 63년 6대 총선과 달리 그래도 ‘신민당’이라는 통합야당이 출범했는데도 공화당이 175석 의원정수중 129명의 당선자를 내 압승한 반면 신민당은 45석의 당선자를 내는데 그쳤다. 사실 67년 총선은 이른바 ‘6.8 부정선거’란 시비가 있었던 총선이기도 했지만, 통합야당인 신민당이 바로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계파갈등으로 삐걱댄점, 무엇보다 4년간의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의 한 일에 대한 평가와 재승인을 그와같이 내린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당장 박정희 대통령이 4년전 5대 대선에서 윤보선 후보와 붙었을때보다 6대에서 표차를 더 벌렸던것만 봐도 비록 소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을 지언정 민정(民政)에서 치러진 두 번의 대선을 통해 박대통령의 ‘통치의 정당성’을 그와같이 부여한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두 번 연속 경기 의정부,양주에서 공화당 소속 공태광 후보를 도왔던 김길홍은 덕분에 약간의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그 홍역은 7대총선 선거운동기간 아니 그전부터 시작된것이었다. 7대총선에는 공태광 이외에도 단일야당 신민당 후보 그 외에 무소속과 군소정당 후보가 한명씩 더 출마했는데, 이들이 공태광 후보뿐만 아니라 곁에서 늘 그를 도와주는 김길홍까지 싸잡아 비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민당 후보는 합동유세장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공태광은 도적놈이고 그 X을 도와주는 김길홍이란 X은 더 큰 싸가지없는 도적X’이라며 극렬하게 비난했다. 뿐만아니라 신민당의 선거운동원들도 그와같이 공태광-김길홍 콤비를 비난하고 다녔기 때문에 김길홍과 가족들은 종종 지역 여기저기서 적잖은 봉변을 치러야만 했다. 참다못한 김길홍의 부인은 하루는 신민당 운동원들이 선거운동을 하는 한 장소에 뛰어들어 한바탕 이런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 우리 진규아빠(김길홍. 진규는 길홍의 장남 이

  름(52년생)가 도적놈이라니. 대체 누가 그래요 ? 우리 진규아빠가 도적X이라니 ?

  당신들이 그런말을 하고도 이 양주땅에서 밥먹고 살 자격 있다고 생각해요 ? 생각

  해봐요 ? 여기 우리 진규아빠 때문에 백수건달 신세 면하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된 사람이 몇 명인데, 어떻게 그때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어요 ? 뿐이에요 ? 여기 양주땅에서 우리 진규아빠 공장에서 생산하는 책상,의

  자 사서 구입 안해본사람 여기 얼마나 돼요 ? 또 우리 진규아빠가 또 틈틈이 동네

  에서 연세드신 외로운 노인들, 배고픈 어린아이들을 위해선 남몰래 얼마나 봉사를

  많이 했는데 그런데 당신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 생각해봐요. 따지고보면

  여기 우리 진규아빠 도움 안 받고 살아온 사람 양주땅에 얼마나 되는데...그런데

  어디서 당신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 ”

 사실 다른건 몰라도 ‘진규아빠 때문에 6.25 직후에 백수신세 면한 청년들이 많다’는 것은 변명이나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실제 김길홍은 처음 공장을 세우면서 애초에 전쟁직후 일자리 없이 빌빌거리며 사는 젊은 청년들을 하나둘 직원으로 채용 그렇게 공장을 키워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엔 대략 6,7명 정도의 직원으로 시작된 ‘바울가구(김길홍의 가구공장명)’는 지금은 어느덧 수십명정도의 직원들이 일하는 제법 큰 공장으로 성장해있고, 또 지금은 그 명성을 듣고 먼 지역에서도 일을 하고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50년대는 물론 한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길홍의 공장은 그냥 대충 인근지역에 사는 할 일없는 젊은이들을 채용 월급을 주며 꾸려나가는 그런 공장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50년대 후반은 물론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 백수청년들이 그 신세를 면하고 잠시나마 일자리라도 생길수 있게 해주었던 ‘바울가구’. 그리고 그렇게 일하던 청년들이 어느덧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들 30-40대 결혼하고 집에 자녀 하나둘정도는 있는 그런 중년이 가까운 나이로 성장해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진규아빠 도움 안 받아본 사람 – 특히 일자리의 측면에서 – 이 양주땅에 얼마나 되느냐 ?’는 김길홍 아내의 항변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기도 했다. 헌데 그런 김길홍을 지금은 고작 여당 국회의원과 한편먹은 그런 사업가 정도로 치부하며 격하하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길홍의 아내되는 이 입장에선 그 서운함과 야속함 그리고 억울함이 생기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총선이 끝나고나서 김길홍은 공태광의원을 만나 약간의 걱정을 논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선거를 치르고 그 뒷마무리를 하는 자리에서 길홍은 이렇게 말했다.

 “ 6대총선때는 야당후보가 분열되고 난립한 상황에서 공의원님이 60%의 득표율을

  올리며 압승을 했어요. 허나 7대총선에선 불과 42퍼센트를 득표 39퍼센트를 얻은

  신민당 후보에게 가까스로 신승(辛勝)했습니다. 4년전 60퍼센트나 얻은 득표율이

  4년만에 42퍼센트로 줄었다는점...좀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요

  ? ”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63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공태광의 선거를 도운 김길홍이다보니 제법 예리하고 날카로운 선거분석가라도 된양 그와같은 분석의 평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다만 이건 실제 6대,7대 총선 경기 의정부,양주 선거결과와는 상관없는 100퍼센트 창작,가상의 설정이니 이 점 오해없기 바랍니다.)

 “ 여기저기 지금 부정선거라고(실제 7대 총선은 이른바 ‘6.8 부정선거’라며 부정선거 논란

  이 많았던 총선)라고 말이 많은 총선이었는데, 그래도 전 그렇게 득표율이 높지 않은

  걸보면 그래도 전 깨끗하게 선거를 치른편이라고 봐도 되는결과 아닐까요 ? ”

 “ 하하 참...그게 또 그런식의 분석이 가능한건가요 ? ”

 어차피 인간은 가급적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분석하고픈 성질을 가지는 존재인것일까. 만약 압승을 했다면 다른 이야기가 나왔을수도 있었을터인데 되려 신승을 한 선거를 놓고 ‘그래도 난 깨끗하게 선거치렀다고 볼수도 있지 않느냐 ?’는 식으로 말하는 공태광의 모습을 보며 김길홍은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여하튼 그렇게 김길홍은 63년에 이어 67년 총선까지 두차례 공태광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것이다.

 허나 김길홍의 이와같은 행보를 우려스럽게 보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아닌 송수만 목사였다. 송수만 목사인들 선거때 김길홍과 관련해 나오는 이런저런 지역에서의 구설수를 왜 듣지 못했을까. 그래서 하루는 김길홍을 은밀히 불러 이와같이 말했다.

 “ 김집사님, 저도 솔직히 요즘의 김집사님 행보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

 “ 왜 그러시나요 목사님 ? 제가 공태광 의원을 돕는다고 해서 그러시는건가요 ? ”

 “ 꼭 그렇게까지 하셔서 사업을 번창하게 하셔야겠냐 그 이야기입니다 제말은. 굳이

  정치인과 유착관계가 없이 하더라도 김집사님 능력 정도면 충분히 혼자서도 사업을

  번창게할 그럴 능력이 되는 분일텐데...굳이 왜 ? ”

 “ 목사님... ”

 그렇기 정색을 하며 송수만 목사를 부르는 김길홍의 말투와 눈빛엔 어떤 야속함과 서운함이 담겨있었다. ‘당신마저도 내 마음을 모르겠느냐 ?’는 그런 생각이 담긴 눈빛이라고나 할까. 길홍의 말이 이어진다.

 “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 전 어디까지나 다만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 정책

  이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그분을 지지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로 그러한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신 분께 제

  작은힘을 보태드린것뿐이고요. ”

 “ 김집사님... ”

 “ 기억하시지요 목사님 ? 전 바울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을 키워왔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건전한 그리스도의 가정과 온전한 그리스도의 기업’이 세상

  끝까지 이어가게 해달라는 그런 소망을 안게 되었고, 그렇게 기도하며 일해온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희 공장이 ‘1등제품 많이 만들어 수출하는’ 그런 기

  업으로 성장해서 이 나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그런 기업으로 큰 역할을 할수

  있게 해달라는 그런 소망을 갖고 기도해온 사람이고요. ”

 “ 뭐 정책적으로 지지하는 것 자체는 뭐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만... ”

 길홍의 논리에 살짝 밀리는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송수만 목사가 살짝 그렇게 말꼬리를 흐리고 있는데, 그러나 차 한 모금을 음미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송수만은 다시금 길홍에게 할말이 더 있는지 한마디 한다.

 “ 그러나 기업하는 사람이 정치인과 자꾸 손잡고 하는 것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수

  없습니다. 공태광 의원과 개인적 친분이나 교류를 하는것까지 제가 말릴 이유는

  없지만 너무 정치적으로 그분을 돕는 것은 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

 “ 목사님... ”

 그런 송수만을 다시금 정색을 하고 부르는 김길홍. 그러다 길홍은 잠시 어느 한쪽을 바라본다. 실은 길홍이 바라본쪽은 바울교회 예배당이 있는 방향이지만 어차피 여긴 방안이니만큼 여기서 예배당이 보일수는 없다. 다만 길홍이 응시하고 있는 방향이 어느쪽인지를 송수만이 모르지는 않을터. 그러다 다시금 길홍이 수만을 바라보며 말한다.

 “ 처음 바울교회를 세우고 하신 설교가 그것이었죠 ? ‘환란속에서 다시 일으켜세우

  시는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요. ”

 “ 그걸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 ”

 자신이 처음 신앙생활을 하게된 교회 – 그것도 이제 막 세운 개척교회의 첫 말씀선포이기도 했던 – 에서 들은 설교를 시간이 훨씬 지난뒤에도 기억하고 있는 교인이 얼마나 될련지는 모르겠다. 허나 지금 김길홍은 바로 그 송수만 목사가 있는 자리에서 그때의 설교를 떠올리며 이와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솔직히 전 그때 그 설교를 그저 단순히 저희에게 위로삼아 주시는 말씀으로 이해

  했습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고보니...이 시간이 정녕 하나님이 이 민족이 다시 일어

  서게 하는 그 기적을 주시는 시간이 아닐까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

 “ ‘박정희 대통령은 하나님이 내려주신분...’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발언이 될

  까요 ? 중요한 것은 전 그렇게 경제성장의 발판과 기반을 닦아가는 이 나라를 보

  시며 ‘이것이 정녕 하나님께서 환란 끝에 이 나라와 민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보여주심’이로구나. 그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장이 돌아가고, 젊

  은이들이 일자리가 생기고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올라가고 이렇게 절망과 기아선

  상에 빠져있던 이 나라가 이제야 이런식으로 좋은 지도자를 만나 일어나기 시작하

  는구나 하는...그래서 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

 “ ...... ”

 “ 전 그래서 감히 이 시간이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기회며 치유하시고 회

  복케하시고 일으켜세우시는 그 기적을 주시는 시간이 아닌가 그 확신을 갖게되었

  습니다. 그리고 이 작고 부족한 영혼 김길홍은... ”

 뭔가 울컥 치밀어오르는 뭔가라도 있는 듯 길홍은 잠시 침을 꿀꺽 삼키며 스스로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마무리라도 하듯 말을 이어간다.

 “ 이 환란속에 다시 일어나는 기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이 시간에 작은 기여와 보

  탬이 되고 싶을뿐입니다. 다만 그것뿐입니다. ”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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