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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행우주 이야기 – 1. 솔파행성의 세은공주





 몇 년후.

 압독국의 북부지역은 땅이 척박해 농사를 짓기 적합치 않은 남부지역과는 달리 그래도 농사는 지을수 있는 평야지대다. 다만 그렇게 비옥하지는 않아 자급자족이나 겨우 할 수 있는 그 정도 생산량이 나오는 그런 지역. 그 압독국 북부지역 한 마을에서 콩밥집을 경영하는 여자가 있다. 콩밥집은 대개 인근에서 생산되는 ‘콩’을 비롯한 곡식류를 사들여 그것으로 음식을 지어 파는 그런 일종의 ‘식당’인데 ‘루루 아줌마’라고도 불리는 이 식당주인은 이 지역에서 콩밥장사를 해온지가 어느덧 20년 가까이가 된다. 콩밥집은 그렇게 크지는 않고 그렇다고 아주 작은 규모도 아니라서 그래도 직원 두명정도는 두어야 식당이 돌아가는 그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다. 바로 그 콩밥집에서 열심히 콩을 물에 씻고 있는 한 젊은 여직원이 있다. 다름아닌 세은이다. 남부의 대부호 엠파스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나 그 집을 떠난지가 어느덧 수년세월. 그동안 압독국의 수많은 마을이며 촌락을 돌아다니다 어느덧 여기까지 오게된 것이다. 중간에 한 두달정도 삶과 세상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며 한 산등성이에 머물며 수도생활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그녀. 그런 세은이 이제 생계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기에 압독국 여러지역을 돌아다니다 어느덧 북부지역까지 와서 그곳의 어느정도 농사를 지을수 있는 마을에 있는 콩밥집에서 여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세은이 이 콩밥집에서 일하게 된지는 어느덧 2년여정도 된다.

 “ 이봐, 세은이 잠깐 나좀 볼까. ”

 한참 그렇게 콩밥집에서 파는 음식의 주재료인 콩을 물에 씻는 작업을 하고 있던 세은을 부른 사람은 다름아닌 주인 루루아줌마. 주인아주머니의 부름에 세은은 차분하게 그녀에게 다가간다.

 “ 다름아니라 세은이에게 내가 좀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게 있어서 그래. ”

 이 마을에서 콩밥집을 해온지 어느덧 20년이 되는 루루아줌마. 그리고 이 콩밥집에서 일하게 된지 어느덧 2년이 조금 넘은 세은. 뭐 그 정도면 서로에 대한 신뢰는 어느정도 쌓일만한 그런 시간이간 하다. 헌대 대체 지금 이 시점에서 세은에게 무슨 당부를 하고 싶다는것인지. 어리둥절해하는 세은에게 루루아줌마의 말이 이어진다.

 “ 세은이도 알다시피 난 이 지역에서 어느덧 콩밥장사를 한지 20년 가까이가 되어

  가. 남편은 그리고 어느덧 6년전에 있었던 전쟁때 군인으로 불려나가 전사했고...

  그리고나서도 난 남편잃고 혼자 쭉 이렇게 콩밥집을 운영해온것이고... ”

 압독국인들이라면 누구나 끔찍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 2년전쟁(* 압독국 4대황제 수피아의 3남 종피아와 4남 찬피아가 서로 황제가 되겠다며 싸운 2년 반동안의 전쟁)도 그러고보면 어느덧 6년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때 루루 아줌마는 남편을 잃었다는 이야긴데, 어쨌든 그 뒤에도 혼자 쭉 이 콩밥집을 운영해오고 있는 루루 아줌마. 세은이 알기로는 루루 아줌마도 이미 50을 넘긴 나이로 알고 있다. (* 솔파행성 고대사회 지성체들의 평균수명이 50세 안팎)

 “ 그리고 난 알다시피 남편과의 사이에 모두 열명의 자녀를 낳았지. 위로 첫쨰부터

  넷째까지가 아들이지만 그 넷은 다 이미 결혼해서 각기 따로나가 살고있고 다섯째

  와 여섯째가 딸이지만 그 아이들도 어느덧 결혼 적령기가 되어 동네 청년과 혼담

  이 제각기 오가고 있고... (* 솔파행성 고대사회 결혼 적령기 평균 20세 안팎) 그

  리고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가 넷이 더 있지. 그중 일곱째와 여덟째가 아들

  아홉째와 열째가 딸이네만... ”

 “ ...... ”

 “ 실은 우리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를 세은이가 좀 맡아주면 어떨까 그 생각을

  해봤어. ”

 “ 절더러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를 맡아달라구요 ? ”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는 다름아닌 루루 아줌마의 일곱째와 여덟째 아들 이름이다. 갈가리우스의 현재 나이는 15세로 세은과는 8살 차이가 나고, 달다리우스의 나이는 12살이니 세은과는 10살 이상 차이가 나서 세은 입장에선 그야말로 막내동생 같은 애들이긴 한데, 그리고 무엇보다 식당 직원으로 2년간 일해오면서 종종 그 아이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는 대체로 세은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편이었다. 하루는 세은이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 갈가리우스는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 ”

 “ 군인이요. ”

 “ 군인 ? ”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아버지가 있으니 ‘군인’이란 직업을 좀 싫어할수도 있으련만 오히려 군인이 되겠다니 좀 뜻밖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역시 남자애는 남자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되는 답변이기도 했고. 달다리우스는 세은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 전 그냥 농사나 지을래요. ”

 어차피 루루 아줌마 집안이야 귀족집안은 아닌 평민 집안이니 거기서 무슨 크게 출세를 한다던가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혹 남부로 가서 장사를 하거나 금은세공기술이나 채굴기술 같은 것을 익히면 그런쪽으로 전문 기술공으로 출세하는 방도도 있긴 하지만 압독국 북부지역 아이들은 대개 환경이 그래서인지 ‘농업’ 그 이외의 종사할만한 직업을 생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실제 이미 결혼해서 따로 나가 살고있는 루루 아줌마의 네 아들도 대다수 그냥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수준의 텃밭이나 운영하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따라서 ‘농사나 짓겠다’는 생각은 이 시절 압독국의 평민집안 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사고방식일수도 있겠다. - 어떤 의미에선 그런 아이들에게 ‘너 이 다음에 뭐가 되고 싶냐 ?’는 식으로 물은 세은이 다소 바보같은 질문을 한 셈이다. 어쩔수 없는 부잣집 막내딸 출신의 티와 한계가 이런식으로 드러난것인지. 헌데 그런 세은에게 루루 아줌마는 자신의 두 아들을 당부하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어쨌든 세은이도 알다시피 나도 50이 넘었고...솔직히 내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을 할때가 많아. 이 콩밥집을 남편과 운영한 것이 벌써 20년전의 일이고 그

  남편도 이미 수년전 전쟁통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

 솔파행성 고대사회 지성체의 평균수명이 50세 안팎이니 루루 아줌마 정도 나이면 누구나 자신의 기력이 쇠해짐이나 자신이 세상을 떠난뒤의 일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무슨 특별한 장수비결이라도 갖고 있거나 돈이 많아 자녀들에게 넘겨줄 유산이 많은 그런 경우라면 모를까. ‘내가 이 세상을 떠난뒤에 아이들을 어찌하나...또는 이 콩밥집은 또 어떻게하나’ 그 걱정은 이제 루루 아줌마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인 것은 분명한데 그 루루 아줌마가 세은에게 이런 당부를 거듭 하고 있는 것이다.

 “ 내가 이 콩밥집을 내 손으로 직접 일구어갈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을 이젠 확실히 느껴. 그리고 아들 넷은 이미 장가를 갔고 딸인 다섯

  째와 여섯째도 이제 혼담이 오가고 있으니 걱정할일이 없네만 아직 아이들인 나머

  지 넷이 걱정되어 하는 이야기야. 딸인 아홉째나 열째는 적당한 나이되어 좋은 사

  람 만나 시집이나 가면 그만일테지만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의 앞날이 걱정이 되

  어 누군가에게라도 그 아이들을 좀 맡겼으면 하는 그 고민을 쭉 해왔던게야. 어때,

  세은이 내 부탁좀 들어줄수 있겠나.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말이야. 혹시 그 아이

  들이 성인이 되거나 각기 제 짝을 만나기 전에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그 아

  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세은이가 좀 맡아달라는 소리지. ”





 한편 세은은 이따금씩 밤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루루아줌마의 콩밥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사는 재워니우스란 약간 괴짜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헌데 세은은 재워니우스의 집을 찾을때면 늘 뭔가를 한아름씩 잔뜩 싸들고 갔다. 인근 야산에서 캔 풀뿌리나 이런저런 식물류였다. 사실 세은이 재워니우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콩밥집 음식 재료로 쓰는 콩을 구입하기 위해 콩농사를 짓는 농부의 집을 오가던 어느날의 일이었다. 이따금씩 광주리와 호미 같은 것을 들고 야산을 오르내리는 이상한 아저씨가 세은의 눈에 띄었다. 호기심이 생겨 아저씨를 따라가 묻자 남자는 이와같이 답했다.

 “ 약초를 캐는 중일세. ”

 “ 약초를 캔다구요 ? 그건 뭐에 쓰시려구요 ? ”

 “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캐는것이지 무엇때문이겠나. ”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재워니우스라고 말한 그의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안타깝게도 아직 압독국엔 병을 치료하는 의사도 없고 약을 만드는 이도 없어. 그

  래서 내가 한번 나서기로 했네. 예부터 압독국에는 병자를 치료해준다며 돌아다니

  는 무당이나 보살이 많았지. 유피아가 압독국을 세우기전 소수 부족민끼리 모여살

  던 시절에 말일세. 하지만 유피아가 압독국을 세우면서 무당이나 보살은 모두 요사

  스러운 행위라며 금지시켰네만 유피아의 40년 태평성대가 끝나고 세상이 혼란스러

  워지면서 다시금 그런 무당이나 보살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네. 허나 병이란

  약으로 치료하는것이지 그런 무당이나 보살따위를 불러 벌이는 굿판을 벌이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서 나라도 나서서 병자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해 보려

  하는것일세. ”

 그게 재워니우스의 말이었다. 세은도 원래 엠파스의 집을 떠나 곳곳을 돌아다니며 불치병을 앓는 동생이 있는 고아남매를 보기도 하고 장애인이나 기형아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한 그런 몸이 아니던가. 그런 세은에게 ‘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한다’는 재워니우스란 사람이 자연스레 관심이 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틈틈이 세은은 그런 재워니우스의 집을 찾았고 이따금 재워니우스의 부탁을 받고 혼자 야산에 가서 이런저런 혹시 약재로 쓸 수 있는 풀같은게 없나 하고 그런 것을 캐오기도 했다. 오늘도 그렇게 재워니우스의 부탁을 받고 약재로 쓸만한 풀을 잔뜩 캐온것인데, 그리고나서 차분하게 재워니우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아저씨, 근데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돼요 ? ”

 “ 부탁 ? 무슨 부탁 ? ”

 “ 실은 제가 가끔씩 이렇게 아저씨 부탁을 받고 약초를 캐오곤 하지만 솔직히 힘에

  부쳐요. 그리고 낮에는 식당일을 하니까 시간이나 체력적으로도 한계가 좀 있고요.

  그래서 제가 아저씨 일을 도울만한 아이 둘울 좀 추천하고 싶은데... ”

 “ 세은이가...이 일을 도울 애들을 추천하고 싶다고 ? ”

 실은 세은은 바로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를 재워니우스에게 추천하려 한 것이다. 바로 얼마전 루루아줌마로부터 자신의 훗날을 당부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를 부탁한다는 그런 당부를 받았던 세은이 아니던가. 하지만 20대 초반의 일개 나이어린 식당 종업원에 불과한 세은이 무슨 능력이 있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는 아이들을 건사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세은은 그 부탁을 한번 재워니우스에게 해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재워니우스의 부탁을 받고 소위 병자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한다며 캐오는 약초들 그것도 어쩌다 한두번이지 세은도 어쨌든 식당일을 하는 몸으로써 이따금 짬을내서 이 일을 맡는 것이 갈수록 일이 많아지면서 차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잘되었다’ 싶어서 재워니우스에게 그와같은 당부를 하려고 한 것이다.

 “ 루루 아주머님네 아이들이라면 나도 면식이 없는 것은 아니네만...일단 한번 만나

  는 보겠네. ”

 다만 루루 아줌마는 조금 시간이 지난뒤에 그 일을 알고 다소의 반대를 하긴 했다. 자기 아이들을 당부했더니만 세은이 이 아이가 무슨 엉뚱한 일을 꾸미나 황당해하기도 했고. 그러나 세은은 루루 아줌마를 설득했다. 어차피 그냥 평범하게 농사나 지으며 가던가 또는 전쟁터에 나가 무슨 변을 당하는 그런 꼴이 되느니 차라리 뭔가 조금이라도 더 의미있는 일을 해보는게 낫지 않겠냐며. 병자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한다는 재워니우스라는 사람 그렇게까지 엉뚱한 사람은 아니니 한번 믿어봐 달라며 세은은 루루아줌마를 거듭 설득했다. 사실 재워니우스라는 사람 자체가 이 마을에서 대체로 괴짜취급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루루 아줌마 입장에서는 떨떠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지만 세은이 거듭 루루 아줌마를 설득하고 또 설득해 그녀도 결국 포기나 체념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세은의 구상을 그런대로 반 승낙한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상황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루루아줌마로부터 당부를 받은 그녀의 아들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는 세은의 소개로 병자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한다는 재워니우스란 사람 밑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 이봐, 세은이. 세은이 지금 뭐하나 ? ”

 밤에 무슨 볼일이 있는지 루루아줌마가 세은이 거처하는 방을 찾았다. 루루 아줌마네 살림집은 콩밥집과 바로 붙어있었는데 세은도 바로 그 집의 한 방을 루루 아줌마가 내어주어 지금까지 쭉 그곳에서 지내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따금 밤늦은 시간이라도 볼일이 있거든 루루 아줌마가 세은의 방에 들르기도 하곤 그랬었는데, 헌데 이날따라 세은은 루루 아줌마가 방에 들어서자 황급히 뭔가를 감추는 모습을 보였다.

 “ 아니, 왜 그래 세은이 ? 뭘 그렇게 황급히 감추는게야 ? ”

 “ 아...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냥 개인적인건데... ”

 세은은 대수롭지 않은것이라며 넘기려는 듯 그와같이 변명했고, 허나 루루아줌마는 여전히 석연찮은 무엇이 있기라도 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듭 세은에게 물었다.

 “ 아무것도 아니긴...그러고보니 전에도 그런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말해봐

  세은이. 대체 밤늦은 시간에 뭘하고 있는게야 ? ”

 “ 아...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그냥...일기를 쓰고 있었어요. ”

 “ 일기 ? ”

 일기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무엇을 쓰려거든 근본적으로 글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이 시대 솔파행성 압독국에는 아직 ‘여자도 배워야한다’는 의식은 없던 시대다. 다만 귀족이나 대부호 같은 경우엔 집안 재량이나 사정에 따라 귀족집 딸로서의 최소한의 교양이나 학식은 갖추기 위해 개인교사 같은 것을 두어 딸들을 가르치긴 한다. 물론 세은도 원래 그런 부잣집 딸이었고. 다만 루루 아줌마는 세은의 이전의 그와같은 신분까진 모르는데 일기를 쓰든 뭘하든 그건 근본적으로 글을 쓰고 읽을줄 안다는 소리 아닌가. 무엇보다 ‘일기를 쓴다’는 개념을 루루 아줌마가 어찌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판에 그녀는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는 듯 거듭 세은에게 묻는다.

 “ 나 원...대체 이 밤늦은 시간에...뭘 그렇게 쓰고 자시고 한다는게야...대체 그게 뭔

  데... ”

 “ 아휴...그냥...그런게 있어요. 그냥 여자들이 심심할 때 밤늦게 그냥 자기 생각이나

  고민 같은거 쓰고 그러는거에요. 별거 아니에요. ”

 얼핏보니 세은이 쓰는 책상 한쪽에 종이뭉치 같은게 놓여있긴 했는데 사실 한두장 일기나 낙서 같은 것을 끄적거리기엔 다소 많은 분량이긴 하다. 다만 루루 아줌마는 거기에까지 딱히 의혹이나 의문을 가질만한 그런 정도의 판단력은 갖추지 못한 듯 했다. 일기나 낙서 같은 것을 이따금씩 ‘쓴다’고 하는 세은의 말을 어찌 이해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세은은 당황헀던 기색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개인적인 것이니 너무 신경쓰지 마시라’며 아줌마가 가질법한 의혹을 애써 해소시키려 한다. 루루 아줌마는 그녀대로 밤늦게 들어온 용무를 이야기하고 방을 나가고 세은은 루루 아줌마가 방을 나간뒤 그 자리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허나 살짝 고민스러워진 얼굴. 혼자 다소 긴 시간 생각에 잠긴 모습이 된다.





 한편 루루아줌마는 1년쯤 뒤에 세상을 떠났다. 루루 아줌마는 세상을 떠나기전 세은에게 자신이 20년동안 운영해온 콩밥집은 처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따라서 세은은 아줌마의 유언대로 했다. 세은보고 맡아달라고 한 아들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는 자신이 책임지기로 하고 한편 그 외에 아직 미성년자인 아홉째와 열째 딸 두명이 루루 아줌마에게 더 있었는데 역시 딸인 다섯째와 여섯째가 루루 아줌마가 세상을 떠나기전 시집을 가게되어 아직 미성년인 그 두 딸은 다섯째와 여섯째가 맡기로 했다. (* 압독국의 풍습으로 부모가 돌아가신 상태에서 미성년인 딸이 있을 경우 만약 시집을 간 언니들이 있으면 그 언니들이 여동생들이 시집을 갈때까지 맡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 세은은 갈가리우스,달다리우스와 함께 재워니우스 밑에서 병자를 치료하는 약을 맡드는 일을 계속 하게된 것이다.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재워니우스는 세은과 갈가리우스,달다리우스와 함께 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재워니우스는 그 취지를 이와같이 말했다.

 “ 내가 늘 이야기해왔지만 압독국엔 부족국가 시절부터 병자를 치료해준답시고 굿을

  하고 돌아다니는 많은 보살이니 무당이니 그런 자들이 있네. 유피아 황제 시절에는

  그런것들을 모두 요사스러운 행위라고 금지시켰는데, 유피아 치세가 끝나고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서 다시 그런 요사스러운 자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난 그런 자들을 대신해서 진짜 병자들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해 아픈 환자들을 치

  유하고 싶네. 내가 그동안 개발한 영약들을 갖고 세상의 병자들을 치료하고 싶다

  그 말이지. ”

 세은은 재워니우스의 그와같은 취지에 동의를 했는지 자신과 함께 그동안 재워니우스의 약을 만드는 일을 도와준 갈가리우스,달다리우스 형제와 함께 병자를 치료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세은 역시 처음 집을 떠나 이런저런 마을을 돌아다니며 가난하지만 약이 없어 죽을날만 기다리는 고아라든가 독거노인등 불우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며 세상에 대한 많은 충격을 받았던 터. 약으로 병자를 치료하겠다는 재워니우스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고 감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루 아줌마가 특별히 부탁한 그녀의 아들들 갈가리우스,달다리우스와 함께 병자를 치료하는 여행을 그와같이 떠나게 된 것이다.

 여행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사람(세은,재워니우스,갈가리우스,달다리우스)은 한 마을에 당도하게 되었다. 네 사람은 그곳에 있는 한 여관에 묵게 되었는데, 세은이 그곳에서 여관주인을 불렀다.

 “ 혹시 이 마을에 아픈 환자가 있나요 ? ”

 “ 아픈환자요 ? 뭐 병자들이야 늘 있지만...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오 ? ”

 “ 실은 저희는 아픈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만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픈 병자들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어서... ”

 허나 여관주인은 또 무슨 요사스러운 무당이나 보살같은이가 찾아와 이상한 일을 꾸미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세은 일행을 탐탁치않게 여겼다.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건만 첫 출발부터 난항에 부딪힌 셈이었다. 세은은 몇차례 간곡히 여관주인을 설득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직접 마을사람들을 접촉해보려 했지만 이 마을 역시 그동안 요사스러운 무당이나 보살에 수도없이 속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병자를 치료해준다’ 어쩐다 하는 이들 일행의 말을 곧이 들으려하지 않았다. 굿을 하려는 무당이나 보살이 아닌 병자를 치료하려는 약을 개발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는 마을사람들. 여행을 떠난 첫 마을에서부터 이런 난관에 부딪히니 재워니우스 일행은 난감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쩔줄을 몰라했다. 재워니우스는 일단 낙담해있는 세은을 위로했다.

 “ 너무 낙심하지 말게 세은이. 따지고보면 얼마나 그동안 수많은 무당이나 보살들이

  병자를 치료하는 굿을하네 어쩌네 하며 많은이들을 속여왔을지 짐작할수 있는일이

  아니던가. 그러니 정말 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한 사람이 왔대도 믿지 않는게 당

  연하겠지. 일단 너무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말고 차츰차츰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길을 생각해보자구. ”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길.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일인가. 세은은 마땅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었고 함께 길을 떠나온 갈가리우스와 달다리우스 형제는 아직 어린탓인지 그들대로 역시 어떤 답답함을 호소하고 토로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날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 너 이녀석...잘 만났다. 게섰거라. 꼼짝말고 이리와. ”

 하루는 그날도 답답함에 세은이 여관방에서 나와 입구쪽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여관주인이 손님을 맞는곳(일종의 카운터)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지는게 들려왔다. 무슨일인지 궁금해 가보았는데 여관주인이 웬 어린 소년을 붙잡고 있었다.

 “ 그동안 없어진 돈이 한두차례가 아니야. 그동안 한거 모두 네놈짓이지. 잘 만났

  다 이 놈. 요즘 압독국에서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하면 얼마나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지 네놈도 알고있지. 당장 관리소(일종의 경찰서)로 가자. 관리소에서 양 손목

  이 잘려나가봐야 네놈도 정신차릴게야. ”

 “ 아...아주머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이번이 정말 처음이에요. ”

 “ 처음이라고 ? 내가 그런 네 말을 곧이 들을 것 같아 ? 그동안 내 여관에서 없어

  진 돈이 한두번이 아닌데 내가 그 말을 믿으라구 ? 지금까지 우리 여관에서 상습

  적으로 돈 훔쳐간거 그거 네놈 맞잖아. ”

 “ 이봐요...무슨일이에요. ”

 세은은 궁금함을 견딜수 없어 결국 여관주인에게 다가왔고 처음엔 세은보고 상관할일 아니라며 나오던 여관주인은 정히 궁금해하는 세은에게 결국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 글쎄 이 놈이 상습적으로 우리 여관에 와서 도둑질을 해온놈이 맞다니까요. 그동

  안 우리 여관에서 도난사고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데...다 이 놈이 한짓이 틀림없어

  요. ”

 “ 여관에서 남의 돈을 상습적으로 훔쳐가다니 정말 질이 안 좋은 아이로구나. 보아

  하니 아직 나이도 어린 소년 같은데 왜 그런짓을 하고다녀 ? ”

 세은도 일단 상습적인 절도범이란 여관주인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소년을 나무라듯 말했다. 헌데 소년은 마치 억장이라도 무너지는듯한 말투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 어르신...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여관에...배가 너무 고파서 뭘 훔치러 온 것은 사

  실이에요. 하지만...저 정말 오늘이 처음이에요. 상습적으로 하진 않았어요. 오늘이

  처음이란말입니다. ”

 “ 처음한짓이라구 ? ”

 “ 아니, 근데 이 놈 이 뻔뻔스럽게 하는말좀 보게. 이봐요, 그쪽은 여하튼 상관없는

  일이니까 상관하지 마슈. 어쨌든 네놈은 관리소에 끌고가야 정신을 차려. 관리소에

  서 법도대로 네놈은 양 손목이 잘려나갈테니 그렇게나 알아라. ”

 “ 아주머니...저 정말...억울해요. 오늘 먹을거 훔치러온건 제가 잘못한거 맞아요. 하

  지만 상습적으로 돈 훔치러 온 것은 정말 아니라구요. 저 그냥...배가 고파서...집을

  나온지 여러날 되었는데...그래서 며칠째 굶어서 너무 배가고파서 먹을것이라도 훔

  치기 위해 여관에 들어와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상습적으로 돈을 훔쳤다뇨 ? 그건

  정말 아니에요. 아주머니...저 정말 억울해요. ”

 소년을 지금껏 자기 여관에서 상습적으로 절도행각을 벌인자로 단정하고 거듭 관리소로 끌고가겠다며 난리를 치는 여관주인. 하지만 소년은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훔치려고 시도(!)는 해보았지만 상습절도는 하지 않았다’며 ‘오늘 여기 처음 왔다’며 억울함을 거듭 호소하고 있었다. 세은은 처음엔 공연히 자신이 휘말릴일이 아니다 싶어 그쯤에서 방으로 들어가보려 했는데, 헌데 아무래도 세은의 그 호기심병이 결국 발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금 세은은 여관주인에게 다가와본다.

 “ 저기...주인 아주머니... ”

 “ 아, 왜요 또 ? 그쪽은 상관하지 마시라니까. ”

 “ 그보다 제가 잠깐 이 소년과 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어서요. 소년이 이렇게 억

  울해하는데...정말 억울한걸지도 모르잖아요. 아직 이 소년이 정말 상습절도범이 맞

  는지 확실한 증거도 없고... ”

 “ 아, 글쎄 척하면 척이지 뭘 자꾸 그러슈 ? ”

 “ 아주머니 그러지마시고요...소년을 관리소에 끌고가든 뭘하든 그걸 지금 그렇게

  당장 해야할만큼 급한일은 아니잖아요. 보다시피 소년은 일단 이렇게 붙잡힌 상태

  니까...제가 한번 이 소년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게요. ”

 “ 아니...나 원 진짜 별 사람 다 보겠네...아니 대체 이런 뻔뻔한 절도범과 무슨 이

  야기를 나누겠다고 그래요 ? ”

 “ 아니라잖아요. 이 소년 말로는 그냥 배가 고파서 뭘 먹을것이라도 구하려다 그

  만 미수에 그친 모양인데...소년이 상습절도범이란 확실한 증거도 없고...또 이렇게

  거듭 억울하다고 하잖아요. 그리고...소년과 제가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뭐

  큰일 나는것도 아닌데...아주머니 그러지말고 저한테 잠깐 넘겨주세요. ”

 “ 나 원 진짜 별 사람 다보겠네. 좋아요. 잠깐 이야기를 나누든 뭘하든 맘대로 해

  보슈. 대신 이야기 끝나거든 저한테 바로 넘겨주셔야 합니다. ”

 그러고보면 어느덧 세은 일행은 이 여관에 장기투숙이 된 상태이기도 한데, 그 무슨 병을 고친다 어쩐다고 해서 여관주인도 세은 일행을 또 무슨 이상한 보살이나 무당쯤 되는 그런이들인가보다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헌데 그런 일행중 한사람인 세은이 상습절도범(?)으로 붙잡힌 소년과 이야기를 해보겠다니. 더 이상하고 괴이한 일이긴 했지만, 일단 절도범이든 무엇이 되었든 소년의 신병이야 확보된 상태고 여관에서 소년이 딱히 도망칠만한 방도도 없을 것 같으니 일단 세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너무 오래 시간끌지말고 이야기 끝나거든 반드시 자신에게 넘겨달라는 부탁과 함께. 일단 여관주인의 승낙을 받은 세은은 소년을 자기방으로 데리고갔다.

 “ 이름이 뭐니 ? ”

 “ 장덕상이라고 합니다. ”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소년. 자신의 이름을 ‘장덕상’이라고 했는데, 여하튼 좀전의 그 뭔가 억울한 심경, 그리고 자신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어쩐다 했지만 이 사람들도 뭐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 눈치인지 소년은 대체로 툴툴거리는듯한 표정은 쉬이 풀지 않고 있었다. 세은이 차분하게 그런 소년에게 말을 건넨다.

 “ 아까 여관 주인 말로는 니가 여기서 상습적으로 돈을 훔치던 아이라던데... ”

 “ 아니라니까요 !!! 저 정말 여기 처음왔다니까요. ”

 억울하다는 듯 다시금 목청을 높이는 장덕상이라는 소년. 세은은 일단 소년을 진정시키고, 그리고 그럼 여길 왜 왔는지 그 질문부터 건넸다. 그러자 장덕상은 아직도 뭔가 못마땅하고 불만스럽다는 말투로 짤막하게 세은의 질문에 답했다.

 “ 가출했어요. 집을 나왔다구요. 그리고 며칠째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면서...

  며칠째 쫄쫄 굶었거든요. 그래서 너무 배가고파서...그래서 뭐 먹을것이라도 있나

  해서...네, 맞아요 먹을거 훔치러온거 맞아요. 헌데 저 오늘 이 마을에 처음왔고

  정작 훔치는건 시도도 해보기전에 조금전 보신것처럼 주인 아주머니에게 보기좋

  게 붙잡혔어요. 그게 전부에요. 저 진짜 상습절도범은 아니라니까요. ”

 “ 알았어, 알았어. 듣고보니 니 입장에선 정말 억울한 일이겠구나. 헌데...가출을 했

  다구 ? ”

 “ 네. ”

 세은의 물음에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있는 장덕상. 헌데 ‘가출’을 했다는 말에 세은도 공연히 뜨끔해졌다. 따지고보면 세은도 가출소녀의 처지 아닌가. 허나 그게 벌써 수년전의 일이고 여하튼 세은도 엠파스라는 대부호의 그런 막내딸로 태어나 다만 더 이상 이복오빠들의 눈치를 보는 천덕꾸러기로 살기싫어 집을 나온 처지.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가출이 세은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이다. 헌데 그런 세은앞에 이 10대 중반 정도나 되었을까 추정되는 이 소년도 스스로를 ‘가출을 했다’고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어찌보면 자신과도 처지가 비슷하다고 말할수 있는 소년. 세은은 웬지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장덕상이란 소년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 헌데 그럼 대체 왜 집을 나온거야 ? 부모님과 무슨 문제라도 있었니 ? ”

 허나 그 물음엔 어찌된 영문인지 소년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헌데 생각해보면 세은 역시 누군가가 ‘왜 집을 나왔느냐 ?’고 물었을 때 그 사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할 처지가 못된다. 따라서 소년에게도 뭔가 가정사에 말못할 다른 속사정이 있나보구나 그렇게 짐작하고 그 물음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소년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다.

 “ 왜...왜 이러세요 ? ”

 “ 아니...난 혹시 어디 아픈데는 없나 해서... ”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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