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whaedra.egloos.com

포토로그



걸그룹 팬픽 - 여자친구 유주 (4) 걸그룹 팬픽 8 (트와,여친)




                                평행우주 이야기 – 1. 솔파행성의 세은공주





 고아남매와 다 죽어가는 독거노인이 있던 마을을 떠난 세은은 그후 이틀만에 또다른 마을에 당도했다. 이번엔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은 아니었고 대체로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다. 잘사는 동네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는 아닌 평야지대다보니 대체로 지역도 넓직해 보이고 가구수도 다소 많아보이는 그런 그야말로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고보니 저만치 한참 농사일에 바쁜 일손이 보이기도 하는, 그러나 세은의 입장에선 그런 농사짓는 풍경조차 생전 처음보는 낯설고 신기한 구경거리라서인지 한참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농사를 지어 수확되는 곡식이나 채소등 먹거리로 우리가 먹고사는것인가.’ 한참 그렇게 상념에 잠겨있는데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 엄마얏~~~!!! ”

 처음엔 얼핏 인기척이 느껴지기도 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팔을 뻗는 모습도 보이는 듯 해 의아해 옆을 바라보았는데 그러다 세은은 바로 기겁하고 말았다. 괴물. 미안한 표현이지만 세은 입장에서 자신에게 팔을 뻗은 이상한 남자를 처음 본 그 순간의 느낌은 그러하였다. - 마치 가난한 촌락 고아남매중 불치병에 걸렸다는 꼬마 여자아이를 처음 본 순간 ‘시커멓다’는 느낌을 받았던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무슨 정말 괴물이나 자신을 해꼬지하려는 어떤 이상한 존재가 아닌가 덜컥 겁이나 뒷걸음질쳐 도망치려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상한 괴물(?)이 ‘헤에~~~ 헤에~~~’ 거리며 자신을 쫒아오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 요한슨, 요한슨 왜 그래 ? 데끼 !!! 그럼 못써 !!! ”

 그렇게 자신을 계속 쫒아오는 괴물을 누군가 만류하며 붙잡았다. 한편 그 괴물은 자신을 붙잡은 그 자에게 꼼짝을 못하는지 그 남자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고보니 말은 대충 할줄 아는 모양인데, 하지만 목소리도 발음도 영 정상이 아닌 그런 존재였다. 한편 괴물같이 생긴자를 만류한 남자는 세은에게 다가와 사과의 말을 건넨다.

 “ 미안해요 아가씨. 많이 놀랐죠 ? ”

 “ 아...아뇨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저씨는 ? ”

 “ 아, 전 이 마을의 촌장 상병이우스라고 합니다. ”

 촌장 ‘상병이우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 그러고보면 이 농촌마을의 촌장이라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어쨌든 조금전 그 이상하게 생긴 사람과 아는 사이기라도 한단 말인가. 의아해하는 세은에게 상병이우스 촌장은 일단 대충 그 이상하게 생긴 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 저 아인 보다시피 세 살때 크게 다쳐 그때부터 몸과 정신이 좀 성치 못하게 된 그

  런 아이라오. 한마디로 장애인이지. 보다시피 몸이고 상태고 저러니 온전히 사람구

  실을 못하고 제 부모가 저 아이를 그나마 돌봐주며 살고 있다오. 딴엔 가끔 심심한

  지 낮에 동네를 놀러다니듯 나오곤 하는데, 낯선 사람을 보면 가끔 신기해서 저

  렇게 다가오다 사고를 친다오. 하지만 심성은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니 안심하

  도록 해요. ”

“ 장애...인이라구요 ? ”

 세은은 ‘장애인’이란 단어조차 처음 듣는 듯 생소해하는 반응이었다. 상병이우스가 장애인이란 뜻을 세은에게 대충 설명을 해줘야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세은에 엠파스의 집에서 자랄때에도 가끔 하인이나 직원중에 다리나 팔이 약간 불편한 그런 사람이 있긴 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중노동 같은 것을 맡지는 못하고 엠파스의 집에서 간단한 수작업 정도를 도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편 엠파스의 집과 기업 하인들이나 직원들은 그런 약간의 장애가 있는 동료를 어떤이들은 좀 더 배려해주거나 위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반면 또 어떤이들은 그런 직원이나 동료와 그렇게 가까이 하고싶진 않은지 다소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엠파스는 그런 장애가 있는 직원이나 동료를 더 아끼고 위해주는 이를 더 칭찬하고 격려했고 회피하는 이는 간혹 나무라거나 꾸짖기도 했었다.

 그러나 팔이나 다리가 약간 불편한 그 정도의 가벼운 장애인은 적어도 세은도 그 부잣집에 살면서 봐온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렇게까지 중증의 장애인을 보는 것은 오늘이 사실상 첫 경험인 듯 했다. 한편 상병이우스는 나름대로 이 마을을 처음 들른 낯선 아가씨가 그 ‘요한슨’이란 이름을 가진 중증장애인에 대해 오해하는일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좀 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 사실 저 아이도 태어날때부터 아주 저 모양은 아니었다오. 오히려 그땐 아주 축복

  받던 아이였지. 이 마을에서 가장 신망이 두터운 그런 집안에 3대독자 외아들로 태

  어난 그런 아이였거든. 나도 저 아이 태어났을때는 대충 기억을 한다오. 얼마나 깜

  찍하고 귀여운 아이였는데...세살 때 그 사고만 당하지 않았어도... ”

 상병이우스는 그 요한슨이란 청년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그와같이 토로하고 있었다. 헌데 ‘신망이 두터운 집안’이라니. 대체 무엇으로 얼만큼 신망이 두터운 집안이란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잘사는 집’이란 의미는 아닌 듯 했다. 무슨 평소 동네 경조사나 봉사활동 같은 것을 잘 챙긴다던가 아니면 이웃과 화목하게 잘 지낸다든가 뭐 그런 특별한 무엇이 있기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는 표현을 한것이겠지만, 다만 초면의 세은에게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들려줄만한 상황은 아니라서인지 상병이우스의 설명은 그 정도에서 그치고만다. 여하튼 잘사는 집은 아닌 그저그런 평범한 집안의 부모가 저런 중증의 장애인 – 헌데 하필이면 그 집안의 3대독자이기도 한 – 을 키우고 있다는 그런 의미의 이야기다. 상병이우스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좀 더 이어간다.

 “ 하지만 지금은 몸과 마음이 모두 온전치 못한채 저리 살아가고 있으니...저 아이

  태어날 때 동네 분위기가 어땠는지 그걸 생각하면 나도 이렇게 억장이 무너진다오.

  - 어쨌든 마을에서 그만큼 신망이 두텁다는 집안에 3대독자가 태어나는 축복같은

  일이 아니었겠는가. - 그리고 지금은 어느덧 저 아이 부모도 나이 50을 (* 솔파행

  성 고대사회(2천년전) 지성체의 평균수명이 50세 안팎) 넘었으니, 언제까지 저

  아이만 건사하며 살아갈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소 ? 사실 나도 가끔 저 아이

  부모를 만나 저 아이 부모가 죽고나면 요한슨을 대체 어찌할지 그 문제를 상의

  하곤 하는데 딱히 뾰족한 대책이 나오는것도 아니라 늘 안타깝기만 하다오. 그

  냥 지금껏 그래왔듯이 저 아이 그렇게 삼시세끼 밥이나 챙겨주며 낮에 가끔 심

  심풀이로 동네 여기저기 놀러나 다니며 그렇게 살다가게 해줘야하는것인지...후

  우~~~ 나도 요한슨 저 아이 부모만큼이나 걱정이 태산같다오. ”

 듣고보니 정말 딱한 노릇이긴 했다. 여하튼 그만큼 손이 귀한 집이었던 셈인 그런 집안에서 3대독자로 태어난 귀한 아이였는데 어릴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몸과 마음이 온통 저 지경이 되어버렸다니. 온전히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몸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그나마 지금은 저 아이를 돌봐주는 부모라도 있으니 다행이건만 그 뒤에는 저 아이 문제를 어찌 처리해야할지 딱히 방도가 있는것도 아니지 않는가. 무엇보다 이 마을의 모든일을 책임지는 촌장이란 사람이 요한슨 문제에 저토록 골치가 아프니 하물며 그 부모 심정은 또 어떻겠는가. 그걸 생각하니 세은의 마음 역시 답답해지는 것 같다. 헌데 그렇게 탄식을 한뒤 혼자 상념에 잠기는 듯 하던 상병이우스는 그러다 뭔가 깜빡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 아, 참 내 정신좀 봐라.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때가 아닌데... ”

 “ 왜요 ? 무슨일이 있으세요 ? ”

 “ 내가 실은 급히 어디 좀 가봐야할데가 있어요. 미안하오 아가씨. 보아하니 대충

  여행객인 듯 한데 그럼 대충 그렇게 좀 돌아다녀보다 가시던가...미안해요 아가씨.

  난 좀 급한일이 있어서 이만... ”

 그러고는 황급히 어다론가 달려가는 상병이우스. 그러고보니 이전의 가난한 마을 촌장이었던 태수니우스란 사람도 항상 그렇게 바쁜 것 같더니 이 마을 촌장도 그 못지않게 바쁜 듯 했다. 헌데 문득 호기심이라도 발동한것일까. 세은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저만치 바삐 달려가고있는 상병이우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이봐, 에리카. 괜찮아 ? ”

 상병이우스가 달려간곳은 마을 다소 외딴곳에 있는 한 작은 집이었다. 그때 집안에서는 만삭의 산모의 진통소리가 찢어질 듯 들려오고 있었다. 산파 두명이 어디서 왔는지 산모의 출산을 돕고 있었는데, 현재 분만이 진행중이니 남자의 출입을 금한다고 해서 상병이우스는 안으로 들어가진 않은채 방안의 여인이 걱정되는 듯 계속 불안초조하게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한편 안에서 출산의 진통을 겪는 여인은 다소 마른체구의 허약해보이는 느낌의 그런 여성이었다. 한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여인의 얼굴형태는 물론 나이는 더더욱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산파들이 대충 산모를 독려하며 하는말로 봐서는 아직 나이어린 여인인 듯 했다. 한편 잠시후 산모의 진통소리는 거의 멈추고 아기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이봐, 좀 어때. ”

 “ 좀 어떤가요 ? ”

 출산 작업이 모두 끝나자 산모는 물론 밖에있는 상병이우스도 걱정되는 듯 거의 동시에 그와같이 물었다. 헌데 다소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아기에게서 울음소리는 나오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갓 태어난 아기울음소리 치곤 그리 크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명의 산파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산모와 아기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산파의 입에서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자 에리카는 더더욱 궁금하고 이제 불안해지기까지 하는지 그녀 역시 이제 막 출산작업을 마친지라 힘이 온통 빠져있을터인데도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서 묻는다.

 “ 아주머니...어때요 ? 아기는요 ?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

 그게 진짜 궁금한것인지 아이의 건강상태라든가 그런것보다는 ‘아들이냐, 딸이냐’부터 묻고있는 산모. 헌데 곤혹스러운 산파 두명은 서로와 아기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결국 조심스레 ‘에리카’란 이름의 산모에게 말을 건넨다.

 “ 저기말야...에리카...이를 어쩌지 ? ”

 “ 왜요 ?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 ”

 “ 어차피 알아야할 일일테니 직접봐. ”

 그리고는 아기를 보여주는 산파. 순간 에리카 역시 기겁하고 만다. 그리고는 벌러덩 그 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뭔가 절망스럽고 한탄스러운 듯 한바탕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어찌보면 에리카의 울음소리가 아기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질 지경이다.

 “ 아이가 귀가 없어. 이를 어쩌면 좋아. ”

 “ 이...이봐...뭐가 어찌되었다구 ? ”

 출산작업이 다 완료되었다면 이제 촌장인 상병이우스보고 들어오라고 해도 될텐데 안에서 가타부타 말이 없자 그 역시 궁금해서라도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밀고 들어가보려 했는데 산파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들려온게 거의 동시였다. 상병이우스도 그래서 더더욱 놀라서 벌컥 바로 방으로 들어와버린다.

 “ 촌장님...직접 보세요. 이를 어쩌면 좋죠. ”

 아기를 육안으로 확인한 상병이우스도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 역시 안타까이 에리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에리카는 다시금 더더욱 답답해진 심정으로 말을 건넨다.

 “ 촌장님...왜 그러세요 ? 대체 우리애기 뭐가 어떻게 된거에요 ? ”

 “ 방금 직접 봤으면서 뭘 또 물어봐. 보다시피 귀가 없는 아이야. 기형아라구. ”

 ‘이젠 어찌해야하나.’ 에리카는 물론 방안의 촌장이나 산파들도 이 노릇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표정이었다. 답답해 미칠지경인 촌장이 잠깐 바람이나 쏘일겸 밖으로 나와보는데 헌데 거기서 다시 뜻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사실 세은이 어느틈에 거기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 아니, 난 간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

 “ 그냥...궁금해서요. ”

 이쯤되면 세은의 호기심과 오지랖도 어지간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아무리 세은 입장에서는 처음 해보는 세상구경이기로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마을에서 이전까진 그 어떤 인연이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일이 뭐 그리 궁금하다고 또 여기까지 쫒아왔다는 말인가. 어찌어찌하다보니 그곳에서 촌장이 대접하는 저녁식사까지 들며 그 마을에 머물게 된 세은은 이번엔 촌장 상병이우스로부터 방금 ‘귀없는 기형아’를 출산한 산모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 그...이제 열일곱살된 아이인데말야 에리카는... ”

 솔파행성의 이 무렵 지성체들 결혼 적령기가 스무살 안팎이었으니 열일곱살의 출산은 다소 이른편이라고 할수 있어도 그렇게까지 상식선을 넘어선 나이는 아니라고 봐야한다. 일단 에리카의 사연을 들려주는 상병이우스의 말이 좀 더 이어진다.

 “ 사실 얼마전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이인데...그러다 한 2년전쯤에 사고로

  그녀 역시 부모님을 잃었지. 그리고나서 혼자몸으로든 어떻게 살아봐야 할 것 아

  닌가.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테니 걱정말라고 했는데도 에리카는 한사코 자기

  손으로 뭐든 해보겠다며 그때부터 혼자 몸으로 아직 어리고 서툰 손길일망정 그 손

  으로 손수 산나물이라도 뜯고 산짐승이라도 잡아 그것을 장에 내다팔며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더군. ”

 “ 그랬는데요 ? ”

 “ 하루는 그날도 자신이 파는 산나물과 산짐승을 내다팔기 위해 장에 갔다 오는데

  그만 일이 좀 늦어진 모양이야. 헌데 밤늦은 시간에 산을 넘다가 몹쓸 사내들에게

  봉변을 당한 모양이더군. ”

 “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그런일이. ”

 몹쓸사내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세은도 어쨌든 나이 열아홉이니 아무리 부잣집 막내딸로 세상물정 모르며 자랐기로 그 의미를 모를 나이는 분명히 아니다. 여하튼 상병이우스로부터 막상 사연을 듣고보니 적잖은 충격을 받은듯한 세은. 상병이우스는 탄식어린 목소리로 에리카의 사연을 좀 더 들려준다.

 “ 설사 그런 봉변을 당했더라도 적당히 좀 위로해주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면서 시

  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잊혀지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헌데 뜻하지않은 일

  이 발생한거야. 에리카가 그만 임신을 한게지. ”

 “ 가...가만 근데...그러니까 촌장님 말씀은 저 에리카란 여자가 그런 봉변을 당한뒤

  에 임신을 하게되었다...그 말씀이신거죠 ? ”

 “ 이를테면 그런셈이지. ”

 깊은 탄식을 내세우는 상병이우스. 한편 세은은 ‘원레 압독국의 법도대로라면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면 그 원인제공자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 ?’고 물으려다 이전 촌락에서 태수니우스에게 이미 한번 면박을 당한일을 상기하며 그 질문은 접었다. 또다시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가씨란 핀잔을 들을까봐서였다. 부자들이 1년에 한번씩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불우한 환경의 백성들을 구휼한다는 압독국 초대황제 유피아가 세운 법도, 어찌보면 지금까지 압독국이란 나라를 지탱해올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국가운영 원리일수도 있었던 그것마저 그 정치적 혼란기를 겪으며 이미 다 무너져내리고 사실상 폐기처분된 상태가 지금의 압독국이라지 않는가. 압독국 국가운영원리중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였을 그것마저도 20년 정치혼란기를 겪으며 무너져내렸다는데, 하물며 남녀 혼인이나 연애등과 관련한 그런 자질구레한 제도따위야 더 거론해서 무엇하겠는가. 따라서 처녀몸인 에리카를 임신시킨 상대가 누구든 지금 ‘처녀가 아이를 가졌을 경우 원인제공자가 책임진다’는 압독국 초창기 결혼제도를 거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리라. - 게다가 자신을 겁탈한 상대와의 결혼은 외계인 여성도 원치 않으리라. - 따라서 지금 저 에리카란 여성의 처지는 더할나위없이 딱한 처지가 되어있는 것이다. 부모없는 몸으로 혼자 생계를 꾸려가다 봉변을 당해 생긴 원치않는 임신.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또 ‘기형아’라는 것 아닌가. 그러니 이런 경우엔 또 어찌해야하는가. 에리카의 출산을 맡은 산파나 촌장 상병이우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전 초면인 세은이 생각해도 참으로 기가막히고 딱한 사연이 분명해보였다.





 세은은 충격을 받았다. 원래 세은이 집을 떠난 것은 아버지 엠파스도 안 계신 상황에서 이미 자신의 출생의 비밀까지 알고있는이상 열두명의 이복오빠들한테 더 이상 냉대받으며 눈치보는 천덕꾸러기로 사느니 그냥 혼자 따로나가 사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허나 비록 이복오빠들에게는 냉대받았을지언정 대부호인 아버지 엠파스의 사랑만큼은 듬뿍받는 늦둥이 막내딸이며 적어도 경제적은 어려움은 모르고 살았던 그런 부잣집 막내딸 세은. 허나 차츰 자라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고 연로하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하면서 더 이상 이복오빠들의 눈치를 보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살기싫어 그래서 감행한 가출이었다. 그리고 처음 세은이 그렇게 집을 떠날때는 어디 취직을 하든 장사를 하든 그래서 최소한의 자신의 먹고살거리는 마련해서 생계는 스스로 유지하며 살아가겠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또 어떻게보면 나름의 젊은 패기로 어디 이 한몸 빌붙으며 생계수단 하나 삼을 그만한 거리 하나 없으랴 하는 어떤 자신만만함과 낙관주의적인 그런 생각도 있었다. 허나 막상 그렇게 집을 나와서 한 며칠간 자신이 살던 고장을 떠나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본 것은 이전까지 세은이 모르던 그런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곳에는 부모잃고 불치병에 걸린 어린 동생을 혼자 돌보며 사는 고아남매도 있었고, 자식한테조차 버림받은채 이제 고령인데다 워낙 병약해져서 하루하루를 시름시름 앓으며 죽을날만 기다리는 그런 독거노인도 있었다. 또 비록 태어났을때는 나름 괜찮은 집안의 귀한 3대독자로 축복받으며 태어났으나 어린시절 불의의 사고로 반신불수가 평생을 남들에게 빌붙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중증장애인도 만나보았고, 가난하고 나이어린 미혼모에게서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양쪽귀가 없는 그런 기형아로 태어난 그런 아이도 보았다. 적어도 대부호 엠파스의 막내딸로 살면서 집을 떠나기전까진 최소한 세상사람들이 다 자기네 집처럼 떵떵거리며 부러울것없는 부자로 살거나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먹고살 걱정은 없는 그런 사람들만 세상에 가득한줄 알았는데, 집을 떠난지 단 며칠만에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은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세은이 지금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 처음 들렀던 가난한 촌락마을의 촌장은 ‘쓸데없는짓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남기기도 했지만 애초부터 더 이상 아버지도 안 계신 집에서 이복오빠들의 눈치보며 살기싫어서 그래서 감행한 가출이니만큼 지금이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다만 어느덧 집을 떠난지 여러날이 지나고보니 집을 떠날 때 가지고 나왔던 소량의 여비도 거의다 떨어진 상태이기도 하다. 이제 진짜 어디 작은 업소나 점포같은데 취직이라도 해서 돈을 벌기라도 해야할 상황일텐데 헌데 세은은 그보다 남다른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집을떠나 며칠동안 본 그전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상으로 인하여.

 세은은 한 며칠정도를 더 걸어 몇 개의 마을을 더 지나 있는 중규모 정도의 산 중턱에 올랐다. 산 중턱중 제법 평평한곳이 있고 저만치 동굴 비슷한곳도 보여 그런대로 하룻밤 자거나 쉬기엔 알맞은 그런 공간이기도 한데, 허나 동굴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평평한곳 한쪽에 누워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달이 세 개 떠 있었다. (* 솔파행성을 공전하는 위성이 세 개다.)

 솔파행성의 지성체들은 오래전부터 저 ‘세개의 달’이 자신들이 사는 행성 또는 이 세상을 지켜주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 세 개의 달은 어떨때는 셋이 동시에 뜨기도 하고 어떨때는 한 개 또는 두 개만 뜨기도 하고 어떨때는 마치 밤교대라도 하듯 하룻밤사이 하나가 지켜 뜨고 또 하나가 지고 뜨고 그러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게 적어도 솔파행성(지구의 2.5배 정도 크기)에 사는 생명체라면 이곳 어디에서든 볼수있게 되어있는 그 세 개의 달.(셋중 하나가 되었든 둘이 되었든 세 개 모두가 되었든) 또한 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있다. 아직 고대사회인 이 무렵 솔파행성의 지성체들은 이 우주의 생성원리에 대해선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다만 어떤이들은 막연히 저 수많은 달과 별이 이 세상을 지켜주는 존재들이라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이들은 저 머나먼 어느별에도 우리와 비슷한 지성체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그중 어느것이 진실이 되었든 아직 고대 솔파의 지성체들이 그 별과달 우주의 이치를 알만한 그런 문명단계에까지 이르려면 한참 남았기에 하물며 그 수많은 지성체중 하나에 불과할 세은은 그저 막연히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달을 바라보며 그저 복잡한 생각에 잠길뿐이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아~~~!!! ”

 헌데 뭔가 한참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듯 하던 세은이 갑자기 실성이라도 한 여인인양 온 몸을 쥐어짜며 마구 비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바닥에서 한참을 버둥거리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난 세은. 허공을 향해 소리친다,

 “ 하늘 너야 !!! ”

 밑도 끝도없이 이렇게 내뱉은 세은. 그 외침은 한번 더 이어진다.

 “ 아니면 땅 너야 ??? ”

 그렇게 알 수 없는 소리를 연거푸 내뱉은 세은. 그리고는 마치 대자연을 향해 허공을 향해 따지기라도 하듯 항변이라도 하듯 그녀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 누구야 !!! 도대체 누구냐고 !!! ”

 막막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렇데 다시한번 목청 드높인 세은. 다시금 외침이 이어진다.

 “ 세상을 만든 존재가 대체 누구냔말야 ? ”

 그렇게 묻는들 밤하늘이 대답해줄까, 땅이 대답해줄까. 아니면 저 멀리 있는 별과달인들 대답해줄까. 대답해줄이 아무도 없을 그 허공을 향해 세은은 계속 외치고 있는 것이다.

 “ 도대체 세상을 왜 이렇게 만들어놓은거야 ? 난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솔파의 모

  든 지성체들이 다 우리집처럼 먹고사는 어려움없이 다들 행복하게 잘사는줄만 알았

  어. 헌데 나와보니 그게 아니었단말야. 어떤 아이들은 부모도없이 아프고 병든 동

  생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딱하게 바라만봐야하고, 또 어떤 노인은 돌보는 사람없이

  병약하게 하루하루 아프다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야만 하고 또 어떤이들은 혹은 어

  떤 불의의 사고로 또는 태어날때부터 기형적인 몸으로 태어나거나 그런 신세가 되

  어 자기 몸 하나 건사할수조차 없는 그런 몸이 되어 남들 놀림이나 받으며 살아가

  야 하고...어떤이는 부모없는 가난한 어린여자아이가 미혼모가 되어 힘들고 막막하

  게 살아가야 하기도 하고...어떤이들은 그래도 먹고살걱정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반면 어떤이들은 찢어지게 가난해 하루하루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하고 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거냔말야 !!! ”

 “ ...... ” <-- (말없는 우주 -.-)

 “ 또 정치란건 뭐고 권력이란건 뭐고 국가란건 또 뭔데 ? 왕은 또 뭐하는건데 ? 이

  야기를 들으니 그래도 압독국이 세워졌을 때 유피아 황제때는 다들 행복하게 태평

  성대로 살았었대. 하지만 그 태평성대가 끝난뒤엔 어떤이는 자기가 황제가 되려고

  어린 조카를 몰아내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서로 황제가 되겠다며 형제끼리 죽고 죽

  이는 끔찍한 골육상쟁을 벌이고...그런 끔찍한 혼란상이 벌어졌었대. 대체 권력은

  뭐고 왕위는 뭐고 재물과 권세는 뭔데 때론 거기에 욕심을 부려 피를나눈 형제끼

  리도 서로 죽고죽이는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그래야하는건데. 누구야 대체 !!! 세상

  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존재가 대체 누구냔말야 !!! ”

 흔히 종교의 시작은 인간의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원시시대 대자연이나 또는 자신들보다 우월한 재주가 있는 동식물들을 보고 그에대한 경외감이나 두려움에 이 세상을 지배하거나 만든 어떤 ‘대단한 존재’가 어딘가에 있을것이라는 그런 막연한 믿음하에 시작된 것이 종교라고 한다. 그렇게 어떤 동물을 숭배하는 토템신앙, 풀꽃에 신이 들어있다고 믿는 소위 ‘정령신앙’이라는 애니미즘. 그런것들이 종교의 시작인 원시종교의 형태였다고 한다.

 또 때로는 그런 종교들은 자신의 민족이나 부족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 때론 정치권력으로 통제하기에 한계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을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 따라서 소위 ‘민족종교’란 것은 종교형태에서도 가장 초창기 단계에 해당되는것이라 봐야할 것이다.

 허나 과학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간은 차츰 그 종교나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가령 천둥이나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불고 해나달이 뜨고지는 이치 꽃이피고 열매가 열리는 이치 그런 자연현상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면 그전까지 자신들이 믿었던 정령이니 수호신이니 하는것들은 대개 ‘미신’으로 치부되어버린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오히려 인간은 정말 이 세상을 만든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하기힘든 어떤 절대자가 정말 저 대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믿음’이 생기게도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못고치는 병이 생각보다 많고 불치병,난치병 환자들도 여전히 많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한들 우주의 생성원리는커녕 자신들이 사는 행성의 형성원리나 내부구조조차(심지어 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현상이 대체 언제 어떻게 왜 일어나는것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그게 ‘지적생명체’가 가진 능력의 한계인 셈이다. 따라서 지성체는 한때는 불신했던 신이나 종교의 존재여부에 대해 ‘다시금’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모순된 상황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우주에 (만약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모든 지적생명체들의 능력이면서 또는 그 능력의 한계일수도 있다.

 하물며 지금 여기 솔파행성은 아직 고대사회. 그 고대문명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솔파행성 지성체중의 하나에 불과한 열아홉살 소녀 세은이 그 우주 생성원리를 어찌 깨달을수 있을까. 다만 불과 얼마전까지 압독국의 대부호 엠파스가 나이 칠순을 넘겨 얻은 늦둥이 막내딸, 그래서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남부러움없이 자란 그 부잣집 막내딸 세은이 막상 집을 떠나 나와보고는 이전까지 몰랐던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는 이렇게 충격을 받아 대답해줄리 없는 저 하늘과 땅을 향해 허공을 향해 마치 부모에게 항의라도 하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마구 외치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세은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한동안 산등성이에서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산나물을 캐거나 과일열매 따위를 따먹으며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갖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러다 잠이오면 동굴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제법 오랜시간을 그곳에서 지낸 것이다.

 무엇보다 세은은 생명과 삶 그리고 이 세상의 존재이유에 대한 엄청나고 깊은 회의와 의문에 빠져있었다. 이전까지는 압독국 대부호 엠파스의 막내딸로 적어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모르고 자라다가 막상 세상으로 나와 민중의 비참한 삶을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게다가 촌장들로부터 전해들은 지난 20년 압독국 정치의 혼란상. 그런것들을 알게되고 나서 세은은 이 세상의 존재이유와 생명과 삶에 대한 깊은 의문과 회의에 빠진 것이다.

 솔파행성의 2천년전 고대사회를 기준으로 이곳 지성체들의 평균수명은 대략 50년 안팎이다. 그러나 50년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긴 70년이 되었건 90년이나 100년이 되었건 장황한 우주의 역사는 물론 솔파행성 자체의 수명에 비해도 턱없이 짧은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리라. 아니 설사 앞으로 솔파행성 지성체의 문명사가 한 몇천년 더 이어져 내려간다 하더라도 그 역시 우주의 수명이나 솔파행성 혹은 이 항성계의 역사에 비해 턱없이 짧은 그런 시간일 것이다. 헌데 대체 그 짧은 시간에 과연 이런 지성체는 왜 생겨나는것이며 이런 문명을 이루게 되는것이란 말인가. 아니 근본적으로 생명은 왜 생겨났다 스러지는것이며 지성과 자의식을 가진 생명체는 왜 생겨나는것이란 말인가.

 세은은 부모잃고 불치병 환자인 어린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고아남매를 보았다, 이미 병약하고 노쇠한데다 자녀들한테조차 버림받아 홀몸이 되어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독거노인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 흉측하게 생긴 장애인이나 기형아도 만나보았다. 그런 존재들을 직접 만나보니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을 떠나는날을 기다리는 것’ 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 그네들의 삶을 생각하니 삶과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이 생기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대체 이 세상에 생명은 왜 생겨나는것이며 자신들과 같은 지성체는 왜 생겨나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 그보다 근본적으로 세은 자신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살아가는것이란 말인가. 생명이라는 것이 혹은 지성체라는 것이 생겨나게 만드는 정말 저 하늘 어디 끝없는곳에 존재할지도 모를 절대자의 깊은 숨은뜻이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세은은 참으로 많은 날을 그 문제에 대한 고민과 회의의 시간을 보냈다. 낮에도 고민하고 밤에도 번민했다. 때로는 서서도 고민하고 때로는 앉아서도 번민했다. 그러다보니 자세가 자신도 모르게 마치 무슨 참선이나 수도라도 하는듯한 자세가 되기도 했다. (* 압독국엔 아직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형태나 기원의식 같은 것은 없다.) 압독국이 생기기 이전의 소수부족 시대에는 일종의 원시종교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병을 치유해주겠다며 돌아다니는 무당이나 보살같은 존재들이 있긴 했다. 허나 유피아는 압독국을 세우면서 그런 행위들을 모두 ‘요사스러운 행위’라고 하며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러나 유피아의 40년 태평성대가 끝나고 정치혼란기가 시작되면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병든자들이 많아지면서 또다시 그런 가난한자들에게 다가가 병을 치유해주겠다고 하며 돈을 뜯어가는 무당과 보살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 세은이 처음 도착했던 촌락에서 그곳 촌장에게 ‘무당이냐 ? 보살이냐 ? 우린 그런 것 필요없으니 썩 꺼지라 !’는 봉변을 당한것도 따라서 그렇게 변해버린 압독국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한다.

 세은이 무슨 그런 세상의 병을 치유하는 주술사라도 되겠다고 집을 떠난것도 아닌데 본의아니게 이곳 압독국의 어느 산등성이 한곳에서 혼자 참선 비슷한 행위를 하며 낮과 밤을 보내기 시작한지도 벌써 여러날이 지났다. 아니 대략 한두달 정도의 시간도 더 지났다고 봐야할 것이다. 세은이라고 해서 무슨 참선이나 수도행위 같은 것을 배워본적도 없고 – 또 그런 것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고 애초에 세은이 그런 것을 배울 생각도 없었고 – 따라서 그냥 대충 적당히 앉아서 팔이나 다리 같은 것을 정중하거나 기원 비슷한 행위를 하는 그런 자세를 하고 앉아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했을 따름이다. 다만 그렇게 마냥 앉아만 있자니 피곤하고 힘들어서 가끔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때였다.

 ‘내(네 ?) 백성을 구원하라... ’

 깜짝놀라 세은이 눈을 떴다. 환청인가. 아니면 뭘 잘못들은것일까. 분명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긴 한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어느덧 그날도 하루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뭔가 아무래도 자신이 잠결에 뭘 잘못들은 것 같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적당히 근처에 있는 열매를 따먹는 것으로 저녁요기를 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네(내 ?) 백성을 구원하라... ’

 세은은 동굴 한쪽에 어디서 풀이나 나뭇잎 같은 것을 구해와 잘때가 되면 그것을 덮고 깔고 자곤 했는데, 그날도 밤이 깊어 그곳에 자리를 하고 잠이 들려 하는데 헌데 깜빡 잠이 들었을 때 또다시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놀란 세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아무도 없긴 마찬가지였다. 헌데 그와같은 기현상이 세은이 잠을 청할때나 수도행위 비슷한 것을 할 때 비슷한 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그 뒤에도 두어차례 더 했다.

 세은은 혹시 동굴안에 누가 있나 해서 하루는 작정하고 횃불을 하나 준비해 동굴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세은이 이 동굴에 기거한지도 어느덧 두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건만 입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자신이 잘만한 장소만 마련해놓았을뿐 그 안으로 들어가본 경험은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세은은 어쨌든 아직 나이어린 여자이니 너무 동굴 깊은 어두운곳까지 들어가는 것은 무서워서라도 그럴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근본적으로 자신이 잘만한 곳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장소이니만큼 일부러 너무 깊은곳까지 들어갈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꾸 이상한 음성을 듣는 경험을 몇 번 하고나서 아무래도 이상해 동굴 깊숙한곳을 탐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동굴안이라고 해봤자 생각했던것보다 그리 깊은 동굴이 아니라는것만 새삼 알게 되었을뿐 그 안에도 특별한 무엇은 보이지 않았다.

 ‘ 네(내) 백성을 구원하라... ’

 세은은 그뒤에도 잠결이나 수도행위를 할 때 그 이상한 음성을 몇 번이나 들었고 결국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는지 밖으로 뛰쳐나와서는 허공을 향해 하늘을 향해 마치 누군가를 향해 따지기라도 하듯 외쳐댔다. 어떤 원망과 부담감 그리고 답답함이 담긴 그런 하소연과 항변이었다.

 “ 누구에요 !!! 누군데 대체 나한테 이러는거에요 ? ”

 “ ...... ”

 “ 대체 누구냐구요 ? 누군데 이러는거에요 ? 대체 날더러 뭘 구원하라는거에요 ? ”

 몇 번 들었던 음성은 정확히 ‘백성을 구원하라’는 그 의미였다. 헌데 그 앞의 단어가 좀 애매하기도 했다. 세은은 그 소리가 ‘네 백성’인지 ‘내 백성’인지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잠결이나 수도행위를 할 때 얼핏 들은것이니 그것이 ‘네’인지 ‘내’인지 정확히 확인해볼 방도도 없다.

 “ 대체 날더러 뭘 구원하라는거에요 ? 그리고...내 백성이든 네 백성이든 대체 누굴

  구원하라는거죠 ? 이 압독국의 백성들을 구하라는건가요 ? 아니면 이 압독국을 포

  함한 주변 다른 이웃나라들도 포함되는건가요 ? 아니면 이 세상에 사는 이 모든 생

  령들을 저혼자 다 구원하기라도 하라는건가요 ? 대체 제게 뭘 원하는거죠 ? ”

 “ ...... ”

 “ 대체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백성을 구원하라는거에요. 그리고 그게 네 백성이든

  내 백성이든...그건 또 뭘 말하는거죠 ? 뭐 설사 당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나

  절대자라고 칩시다. 그럼 ‘내 백성’이라고 할진대는 당신의 백성이 맞긴 해요. 헌데

  네 백성이라뇨. 전 그냥 하나 보잘 것 없는 세은이란 작은 여자아이일뿐인데 누가

  ‘제 백성(네 백성)’이라는거에요 ? 누가 도대체 제 백성이란거에요 ? 도대체 당신

  은 누구에요 ? 그리고 제게 왜 이러는건데요 ? 이 작은 저한테 대체 뭘 원하고 있

  는건가요 ? ”



- 5회에 계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