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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프로듀스 101 강시라 (6) 걸그룹 팬픽 (프로듀스 101)



 정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새로 이사를 오는 가구가 있었다. 하지만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에 주민들이 입주하는 모습은 그렇게 낯선 풍경은 아니다. 정확히 작년 10-11월 경부터 주민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 단지에 정태네가 이사를 온 것은 금년 1월의 일. 그리고 새봄이 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속속들이 이사를 오는 주민들이 부쩍 늘어나 하루에 평균 두세건 어떨때는 다섯집도 넘게 입주를 하는 새 입주민들의 풍경을 볼수가 있었다. 모두 십여채정도의 아파트가 세워져있는 새 아파트단지엔 그렇게 봄이 되면서 물밀 듯이 입주민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새 아파트단지에 입주민들이 이사를 오는 풍경 자체는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고 다만 하루는 시라가 그러다 이삿짐을 옮기는 새 입주민 풍경에 살짝 눈길이 갔다. 아니, 눈길이 갔다기보단 정확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행이 다소 불편해져서 약간 거슬리듯 쳐다보았다는게 맞다고 해야할까. 어차피 새봄들어서 매일같이 있는 입주민들이니만큼 그렇게 낯설지 않은 풍경임을 시라도 모르진 않을텐데 따라서 알아서 그 이삿짐들을 피하거나 하지 못한 시라에게도 책임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뭐 불편하거나 신경이 거슬린게 있다고까진 할수 없는데 공연히 그 한 이삿짐 풍경에 잠시 눈길이 갔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시라는 오전에 딱히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산책삼아 집을 나선 것이다. 사실 시라 정도 나이의 젊은 여성이면 결혼후에도 직장생활이나 여타 자기일을 찾아 해보려고 하는게 이 시대에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긴 한데, 하지만 시라는 학창시절에 딱히 공부에 흥미가 있었던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쭉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의 스무살 많은 애딸린 이혼남을 만나 결혼한것이기에, 결혼후에 딱히 하고싶거나 할수있는일이 있진 않았다. 그래서 결혼후에는 대체로 전업주부로 재혼남이기도 한 성희의 아들 정태를 돌보는 일에만 전념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라이다보니 중학생이 된 정태까지 학교에 가고나면 오전에 딱히 하는일이 별로 없는 그런 무료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직 27세의 젊은 시라는 동네의 다른 30-40대 전업주부와 어울릴만한 그런 나이도 못 되어서 그렇게 가끔 혼자 산책삼아 나와서 아파트 단지내나 주변을 산책하는 그런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곤 했던 것이다.

 헌데 그러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선 두동 정도 떨어진 아파트쪽을 지나가게 된 시라. 그 건너편에 상가건물이 하나 있긴 하지만 상가쪽에도 지금 시라가 뭐 딱히 살게 있거나 한 것은 아니고 굳이 아이쇼핑같은 것을 즐기려면 단지내 작은 상가건물보다는 버스로 두세정거장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 대형 백화점을 가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굳이 가기도 귀찮아서인지 상가건물쪽으로 향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백화점을 가기위해 버스정류장이 있는 큰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인근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침 그 시간에 한참 분주하게 이삿짐을 옮기고 있는 한 입주민 가구에 괜시리 쓸데없이 눈길이 갔던 것이다.

 대충 보니 4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남이 집주인인 듯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뭔가 한참 지시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보다 나이가 많아보이는 대충 느낌에 40대남의 아버지뻘 되어보이는 칠순정도의 노인이 그 남자와 함께 있었다. 노인의 경우엔 작은 허드렛짐 옮기는것이라도 거들어주고픈 마음인지 딱히 일손에 도움이 되어보일 것 같지도 않은데 중년남과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계속 함께 있었다. 헌데 그러다 중년남과 칠순노인의 눈에도 공연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젊은 여성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는지 결국 그렇게 눈이 두어번 마주치기까지 했다. 다만 그럴때마다 피차 민망하기 때문이라서인지 시라는 그럴 때 살짝 시선을 피하거나 일부러 자리를 옮기는듯한 모습을 보였고 중년남과 칠순노인은 자기네들대로 이삿짐 옮기는 작업에 거듭 집중을 하고 있었다. 허나 딱히 어느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것도 아니면서 자기네들 근처를 자꾸 공연히 배회하는 시라가 두 사람에게도 계속 신경이 쓰이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시라가 자신도 모르게 이삿짐 옮기는 쪽과 거리가 다소 가까워져있는 상태였는데 그러다 다시 칠순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헌데 노인이 잠시 시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라는 당혹감에 몸을 움츠리며 노인의 시선을 피했고 그리고 성큼성큼 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공연히 신경이라도 쓰이는것일까.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노인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러다간 무안하고 민망한 상황이 계속될 것 같아서 시라는 하는수없이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 뒷문이 있는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그 노인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사실 시라가 보기에 얼핏 좀 낯익은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자신이 괜시리 근처를 배회하고 있으니까 노인이나 중년남이나 신경이 가서 자신을 쳐다본걸로 생각했는데, 어째 느낌이 두 사람도 자신을 알아본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시라는 ‘에이...아니겠지’ 하면서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연히 신경이 가다보니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게된것이려니 하면서 자신은 자신대로 큰길쪽으로 발걸음을 계속 옮기고 있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신을 알아볼만한 사람이 이 드넓은 서울바닥에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던 회사의 동료나 선배언니들 정도가 아닌 다음에는 없을 것 아닌가. 하물며 그렇게 나이많은 중년남이나 칠순노인이 자신을 알아볼 이유가 뭐가 있단말인가. 사실 중년남까진 몰라도 칠순노인의 경우엔 이상하게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쪽과 거리가 가까워질때까지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지만 괜히 신경을 쓴 탓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거리가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리일뿐 노인이 다시금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을때도 시라와 노인의 거리는 걸음걸이로 대충 열발자욱은 넘는 거리였다. 그 정도 거리라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거나 오히려 잘못볼 가능성이 더 높은 그런 거리일 것이다. 따라서 시라는 괜한 신경을 쓴 탓이려니 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새 아파트단지의 한 입주민 가구 풍경중 하나에 불과할 그 집에 대해서는 바로 잊어버리기로 했다.

 헌데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때의 일이다. 상가건물에 간단한 생필품 살일이 좀 있어 시라가 들렀다. 헌데 그때 바로 그 며칠전 노인이 다시 시라와 그곳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불과 며칠전 이사를 온 노인임은 시라도 바로 알아볼수 있었고, 그래서 그 역시 뭔가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이 많은지 구멍가게에서 이런저런 것을 제법 많이 구입해가는 그런 모습이었다. 일단 시라는 신경이 쓰이는지 노인을 피해가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이 사러온 생필품이 지금 그렇게 당장 급한물건은 아니고 하루이틀 늦게 산다고 해도 그렇게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기에 내일이나 하다못해 이따가 늦은 오후에라도 다시 사러오면 되겠지 하고 발걸음을 옮겨 상가건물을 빠져나가려 했다. 헌데 그때였다.

 “ 아니...저기 이봐요... ”

 혹시나 했는데 바로 그 노인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라는 흠칫해서 도망이라도 쳐야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헌데 이미 어느새 노인이 시라를 따라잡아 그 앞을 가로막았다. 대충봐도 70이 넘어보이는 노인이 아직까지 기력이 그리 쇠하진 않은것인지. ‘왜 이러느냐 ?’고 시라가 항변이라도 할 사이 없이 이미 노인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 이봐요 ? 혹시 우리 어디서 본적있지 않아요 ? ”

 “ 네 ? 아...아니 저...모...모르는데요... ”

 당혹감에 바로 그와같이 답하고는 노인을 다시 피해가려 하는데 노인이 다시금 그런 시라를 막아서며 더 놀라운 질문을 건넨다. 노인의 쇳소리엔 어떤 다급함마저 느껴진다.

 “ 이봐요, 혹시 순천에 살았던적 없어요 ? ”

 “ 예 ? 뭐...뭐라구요 ? ”

 당황한 시라는 순간 그만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마는데 하지만 곧바로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완강히 부인한다.

 “ 아...아니에요. 무슨소리를 하는거에요. 저 그쪽 몰라요. ”

 “ 아니, 모르고 알고 그걸 묻는게 아니라 혹시 순천에 산적 없느냐고요. ”

 “ 무슨말을 하는거에요 ? 순...뭐라고요 ? 저 그런거 몰라요. 전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서울에서 살았어요. ”

 시라는 마치 순천이란 도시를 아예 알지도 못하거나 그런게 세상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기라도 한 양 완강히 잡아떼지만 노인은 노인대로 아무래도 뭔가 짚이는데가 있는지 시라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으며 거듭 그녀에게 질문을 건넨다.

 “ 그럼 왜 지난번엔...저번에 우리집 요기 OOO동에 이사를 왔을 때 나랑 내 아들

  한참 쳐다보다 가지 않았었나요 ? 그건 왜 그랬나 ? 혹시 나나 우리아들 알아보고

  그런거 아니었어요 ? ”

 “ 무슨말을 하는거에요. 저 그런적 없어요. ”

 “ 에이 무슨...바로 코앞에서 나랑 내 아들이 다 분명히 봤건만...증인이 둘씩이나

  있는데...아니면 그날 이삿짐 날라준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물어볼까 ? 그 사람들

  도 그날 그쪽 얼굴은 목격을 했을테니말야. ”

 “ 이봐요 대체 무슨말을 하는거에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리 비켜요. 자꾸

  이러면 치한으로 고소하겠어요. ”

 “ 그거 하나만 대답해줘요. 저번에 우리 이사온날 쳐다본거 우리 알아보고 그런거

  아니었냐구 ? ”

 “ 대체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에요. 저 그런적 없어요. 그리고 그날은...그날 아는

  사람과 모임 약속이 있어 가는길이었는데 중간에 잠깐 다리가 아파 쉬다간거에요.

  알아보긴 대체 누가 누굴 알아봤다는거에요 !!! ”

 시라는 거듭 그 부분을 부인하며 노인을 이제 아예 힘껏 밀쳐내기까지 하며 저쪽으로 도망쳐간다. 노인은 대체로 나이에 비해 정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힘만은 어쩔수가 없는지 시라의 떠밈에 그대로 넘어질뻔하기까지 한다. 겨우 정신을 수습했을때는 시라는 이미 저만치 달아나고 있을때다.

 그로부터 얼마후 시라가 이번에 또 시장을 좀 볼 일이 있어 상가건물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공교롭게도 또 그 문제의 노인과 마주치게 되었다. 시라는 난감한 듯 하늘을 한번 쳐다보기까지 했다. 앞으로 저 노인과 마주치지 않으려면 반대쪽의 다른 마트나 가게를 이용하거나 조금 거리가 멀어도 다른 시장까지 가야하나 그 생각까지 순간 드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노인이 이사온 아파트는 바로 상가건물 건너편에 있는 동이었으나 시라가 사는 아파트는 그보다 두동 뒤에 위치해 있었으니 시라가 그쪽 상가를 이용하려면 아무래도 앞으로도 노인과 종종 마주칠 가능성은 제법 많아 보인다. 한편 노인은 노인대로 시라의 그 틈을 보았는지 놓치지 않고 어느덧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라가 흠칫하며 피해가려 하지만 노인은 이번에는 정말 쉬이 놓아주지 않을 기세다.

 “ 이봐요. 왜 또 그래요 ? 누가 그쪽한테 뭐 어쩌기라도 했나 ? 그러지말고 분명히

  이야기 하지. 그쪽 나 누군지 알죠 ? ”

 “ 무슨말을 하는거에요 ? 내가 그쪽을 대체 어떻게 알아요 ? 이러지말고 저리 비켜

  요. ”

 “ 허허 거 참...내가 분명 기억이 있는 얼굴인데...그럼 지난번엔 왜 그렇게 놀랐고,

  또 그날 내가 우리 아들네랑 이 집에 이사온날은 왜 그렇게 한참을 빤히 쳐다보고

  갔었나 ? 분명 우리 알아봤던 것 아니었나 ? ”

 “ 아니, 근데 정말 이상한 할아버지네. 모른다니까 왜 자꾸 이상한 소리 하는거에요.

  대체 무슨...대체 순천은 뭐고...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한테 무

  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어요 ?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어서 저리 비켜요.

 ”

 “ 허허 참...거 좋은말로 타이를까 했는데 진짜 안되겠구만. 그럼 내가 진짜 그쪽 순

  천 고향집에 전화를 해볼까 ? 강OO이한테 전화해서 그쪽 막내딸...고등학교 졸업하

  고 집 나갔다는 그 딸 찾았다고 지금 바로 전화해봐 ? ”

 “ 뭐...뭐라구요 ? 이...이 할아버지가 이제보니 망령까지 났나. 대체 무슨 헛소리야.

  아악~~~!!! 아악~~~!!!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 치한이에요 치한 !!! ”

 시라는 안되겠다 싶은지 마치 이상한 사람 혹은 치한이라도 자신에게 해꼬지를 가하려 하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상황이라도 되는양 그렇게 소리를 마구 질러댔고, 그렇게 앞뒤 재보지도 않고 무작정 나오는 시라를 보자 순간 당황하고 겁이라도 났는지 노인도 흠칫해서 뒤로 물러난다. - 만약 그래서 경비원이든 다른 이웃주민이든 달려오는날엔 설사 노인이 시라를 안다고 주장을 해도 시라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자신을 괴롭히려 든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그만인 것 아닌가. 그게 걱정되어서라도 노인도 더 이상 시라에게 무슨말을 건네지 못하고 그만 물러서고 만다. 그리고 시라는 바로 도망이라도 치듯 자신이 왔던길, 자기네집이 있는쪽으로 달아나버린다. 하는걸로 봐선 앞으로 진짜 시간이나 거리가 다소 걸리더라도 시장을 보거나 생필품 구입을 할 일이 있거든 반대편 시장이나 가게를 이용하려 할것만 같은 그런 태도다.

 그렇게 노인에게서 도망이라도 치듯 빠져나오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도 시라는 한동안 불안함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뭔가 복잡한 심경이나 고민같은 것이 드는지 편치못한 얼굴로 하루를 보냈다. 한편 남편 성희는 그런 시라에게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시라가 그런일을 설마 남편이나 아들 정태에게 말할리는 없지만, 비록 시치미를 뚝 떼고 태연자약하게 있었어도 뭔가 그녀의 모습이 이전같지 않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남편 성희에게 바로 느껴졌던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전 그래서 성희가 걱정까지 되는듯한 말투로 아내 시라에게 말을 건넸다.

 “ 당신 어디 아파 ?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는겐가 ? ”

 “ 아...아니에요. 무슨일은요. 별로...그런거 없어요. ”

 시라는 일단 부인하지만 생각보다 시라가 그렇게까지 철면피거나 뻔뻔스러운 성격하곤 거리가 있는 여자라서인지 그 불안한 심리가 완전히 숨겨지진 못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바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시라. 새로 이사를 온 집은 이전에 비해 평수도 넓고 그래서 침실도 전에 살던 동네 아파트보다 넓이가 제법 넓어서 그 사이 침대까지 집에 들여놓아 부부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그 침대에 누워서도 한동안 몸을 뒤척이며 잠을 쉬이 이루지못하는 시라. 남편 성희가 그 뒤척임에 성가시고 신경이 쓰여서 그 조차도 쉬이 잠을 못 이룰 것 같은 지경까지 되는데, 시라는 아무래도 남편에게 방해도 되고 행여 그러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세라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난다. 성희는 그런 아내의 태도가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피곤해서인지 더는 뭐라고 하지않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다. 하지만 그때 시라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한참동안 흐느끼고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공교롭게도 오후 늦은시간 무렵부터 날이 흐리더니만 저녁때쯤부터는 비까지 내리는 그런 날이었다. 그런날 시라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의아해하는 남편에겐 급히 좀 연락이 와서 만날 친구가 있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고 나왔는데 그 시라가 간곳은 바로 그 문제의 노인이 사는 아파트였다. 지금 시라가 노인이 사는 아파트의 정확한 호수를 알수는 없었지만 일단 경비원에게 얼마전 40대 정도 되는 중년남과 칠순노인이 함께 이사온 그런집이 있지 않느냐고 해서 호수를 확인해보려 하였다. 사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거의 늘 새로 이사오는 입주민이 있는 그런 새 아파트 단지이긴 했지만, 그래도 경비원이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었는지 40대 중년남과 칠순노인 – 시라는 좀 더 구체적인 신상을 말할까 하기위해 ‘아마도 순천에서 올라왔을 것’ 이라 하려 했지만 이미 그보다 앞서 경비원이 그 부자를 기억해냈다. - 의 집으로 인터폰을 연결시켜주었다. 일단 인터폰은 아들로 추정되는 40대 중년남이 받은 듯 한데 시라는 조심스레 그리고 가급적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 저...밤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뭐 좀 확인하고픈게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혹시 어

  르신과 지금 좀 통화할수 있을까요 ? ”

 “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 ”

 칠순노인과 달리 40대 중년남은 시라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듯, 혹은 한밤중에 찾아온 여인에 대한 경계심까지 담아 둔탁한 저음으로 물었고, 시라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사실대로 모든 것을 밝히기로 했다.

 “ 순천에서 온 강시라라고 하면 아실거에요. 강OO 선생님댁 막내딸, 아니 그보단

  강태규씨 막내동생이라고 하면 더 잘 아실지도 모르겠는데...여하튼 순천에서 온 사

  람이라고 전해주시면 되니다. ”

 인터폰으로 연락을 받은 노인은 한 몇분후쯤 엘리베이터를 통해 1층 경비실로 내려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시라를 보자 매우 뜻밖이고 놀라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노인은 일단 시라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여긴 어떻게...날 만나야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 ”

 “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

 허나 전혀 뜻밖에 정중하게 노인에게 사죄인사까지 건네는 시라. 다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주위를 좀 두리번거린뒤 그에게 다시금 말을 건넨다.

 “ 여기선 좀 그러니까 다른곳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 나눴으면 하네요. 저도 드릴

  말씀이 없지는 않고요. ”

 그런 시라 마음을 대충은 이해하는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마침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던지라 우산을 쓰고 이 아파트까지 온 시라는 사뭇 예의바르게 노인에게 직접 그 우산을 씌워드리기까지 하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거리가 좀 떨어진곳에 위치한 한 선술집으로 그를 안내헀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주를 시킨뒤 부침개 안주를 곁들여 노인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꺼낸다.

 “ 내가 그쪽 얼굴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야. 분명히 내가 그 얼굴을

  기억해. 강OO 그 친구네 막내딸 시라...그 시라가 맞지 ? ”

 “ 저 불효막심한거 알아요 아저씨. ”

 그러는 노인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시라. 그러는 시라의 태도에 노인은 다소 뜻밖이라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사실 노인도 시라가 부모님이 너무 나이가 많아 싫다며 큰오빠에게 대신 아빠 행세를 하게하고 있다는 것을 그 시절에 대충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OO’의 막내딸이 맞냐는 물음에 사실상 시인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게다가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른 것 역시 자신의 아버지와 동년배의 사람임을 인정하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수 있지 않은가. 하긴 시라도 이제 더 이상 철부지 어린아이는 아닌 20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성인이다. 어쨌든 노인은 그대로 시라의 그동안의 일과 근황이 궁금했는지 다시금 말을 건넨다.

 “ 그래, 그럼 지금까지 여기서 쭉 살아왔던겨 ? 대충 보니까 그쪽도 이 아파트에서

  사는 것 같구먼. ”

 “ 서울에서 쭉 살아온 것은 맞지만 이 동네로 이사온지는 얼마 안 돼요.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잖아요. 금년초에 이사를 왔어요. ”

 “ 아아...그렇구먼. ”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사실 노인은 시라의 아버지와는 대략 고향 선후배 사이쯤 된다고 할수 있는 시라 아버지가 젊은시절부터 ‘형님’이라고 부르며 왕래가 있어온 그런 노인이었다. 시라 아버지의 경우는 젊은시절엔 대대로 농사를 지어오던곳에서 농사를 지어오긴 했지만 그러다 언제부터인가는 장사를 시작했는데 – 일자무식이라도 돈 계산만 할줄 안다면 장사를 못하는 것은 아니니 무리가 가는 설정은 아니다 – 바로 대략 그 시절부터의 인연으로 ‘형님,동생’ 하면서 제법 오랫동안 왕래가 있어온 그런 사이다. 그렇다고 아주 절친한 사이까지는 아니고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고향 선후배쯤 될 수 있는 그런 사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시라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까지도 이따금 시라 아버지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며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누기까지 했으니 그 집 철부지 막내딸 시라를 기억 못할 리가 없다. 시라 입장에서도 확실히 이미 70을 넘긴 노인이긴 했지만 웬지 낯이 익고 마음에 걸려 얼마전 그렇게 한참동안 노인을 바라봤던것이고, 하지만 그 며칠후 상가에 시장을 보러 갔다가 노인이 되려 자신을 알아보는 듯 하자 흠칫 놀라며 당황해서 완강히 부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외면을 해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라서인지 시라는 비교적 담담하게 그러나 착잡한 감회를 담아서 노인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 다들 잘 계신가요 ? 오빠들이나 부모님도... ”

 시라도 이젠 확실히 철이 든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녀를 40대 후반에 낳은 그녀 아버지 연세도 어느덧 칠순이 넘었을것이란 것 그녀도 인식하고 있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상경 가족들과 완전 연을끊고 혼자 직장생활을 하다 이렇게까지 온 시라이긴 했지만, 이따금씩 가족 소식이 궁금하진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오히려 더더욱 가족과 연락을 하는일등은 삼가며 그러고 살아왔던 시라. 그렇게 머릿속 기억에서 잊혀져가던 가족의 존재이건만 이렇게 고향 어른을 만나뵙고나니 다시금 그 부분에 대한 착잡한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노인이 시라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건넨다.

 “ 자네 오빠들은 다 지금 순천이나 광주등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아버님은 내가 순천을 떠나오기전에 잠깐 보긴 했는데 기력이 많이 쇠해지

  신 것 같더군. 허허...그 친구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나도 아직 정정한데 벌써 가려

  는겐가 하고 한번 나무라기까지 했는데...허허....참 아무튼 세월이 그만큼 많이 흐

  른게야. ”

 시라는 말없이 노인에게 소주를 한잔 따라주고, 아직 과음을 해도 괜찮을만큼 정말 정정함을 유지하고 있는것인지 노인은 시라가 따라준 소주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꿀꺽꿀꺽 단숨에 비운다. 시라가 바로 다시 새로 빈잔에 술을 따라드려야할 만큼. 그리고나서 노인은 시라를 보며 다시금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 그럼 그후로 가족들하고 일절 연락은 하지 않고 산게야 ? 자네 부모님도...뭐 그

  렇게 자주 내색은 하지 않으셨네만...그래도 자네 걱정을 많이 하긴 하는 것 같던

  데... ”

 “ ...... ”

 “ 난 그리고 보다시피...큰 아들놈이 젊을 때 서울에 올라와서 쭉 직장생활을 했는

  데, 그러다 서울에서 이제 완전 자리를 잡은 모양이더라구. 그래서 기왕이면 날 서

  울에서 직접 모시며 살고 싶다면서 고향에서 그만 고생하시고 올라오라 하더군. 그

  래서 그렇게 서울에 올라오게 된거야. 허허...난 기왕이면 그냥 고향땅에서 묻히고

  싶다며 이 나이에 서울 올라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냐며 한사코 손을 내저

  었지만 아들녀석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더란말이지. 그렇게 아들녀석이 직접 순천

  까지 내려와 함께 짐을싸서 그렇게 서울에서 새 보금자리를 며칠전 꾸리게 된거고

  말이야. ”

 노인은 시라 아버지와는 ‘형님.동생’ 하면서 젊은시절부터 쭉 지내왔기 때문에 그럭저럭 친분이 있었지만 두 집안의 자녀들까지 왕래나 친분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 다만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듣는 정도로 그 집에 자녀가 몇이라더라 그 정도 이야기는 들을수 있는 그 정도의 사이였다. 시라도 얼핏 이 노인에게도 슬하에 자녀가 셋인가 넷쯤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중 서울에 올라가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적은 있다. 그러니 노인의 말은 바로 그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는 아들이 이곳에서 그런대로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자리도 잡히고 했으니 아버지를 직접 서울에서 모시며 살고 싶다고해서 올라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인셈인데, 이래저래 자신의 경우와는 많이 대조가 되어서일까. 시라는 순칸 울컥하는 마음에 바로 눈물까지 쏟을것만 같은 그런 심리가 된다. 다만 노인앞에서는 여러 가지로 난감해 살짝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기까지 하는 시라. 가까스로 그 마음을 진정시킨뒤 노인에게는 다시금 술을 한잔 따라주고 노인도 시라에게 술을 따라주니 그것을 감사히 받아 마시기까지 하면서 다시금 입을 연다.

 “ 죄송해요 아저씨. 어쨌든... ”

 “ ...... ”

 “ 지금의 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다 사실대로 말씀드릴수 없는 제 처지를 이해해주

  셨으면 해요. ”

 노인은 마치 시라의 심정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대략 60년대부터 70년대를 지나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무작정 상경 처녀’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따라서 그런식으로 올라온 여자들이 대개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만한 사람은 알 수 있는 그런 시절이기도 하고. 다만 시라는 혹시 노인이 뭔가 오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일단 손을 내저으며 그건 아니라는 듯 설명을 덧붙여준다.

 “ 아...아니에요 아저씨. 저 그런길로 빠지거나 한건 아니에요. 저 이래봬도 자존심

  강한애에요. 절대 그런건 아니고 평범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건 진실

  이니 믿어주세요. ”

 이렇게 말한다고 노인이 그 진실을 액면 그대로 다 받아줄지조차 미지수긴 하지만 여하튼 노인은 고개를 거듭 끄덕이고 있다. 시라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여 다시금 노인에게 뭔가 확실하게 말해둘건 말해둬야겠다는 듯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시라도 어느덧 술은 몇잔 들어간 상태다.

 “ 지금 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수 없다는건...그...그냥 그만한 사정이 있어

  요.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가 부모님이나 오빠들에게 모든걸 다 떳떳하게

  말씀드릴께요. 하지만 지금은...하지만 지금은... ”

 “ ...... ”

 “ 죄송하지만 저 그냥 당분간만 이 동네에선 모른체해주시고 그냥 넘어가주세요. 혹

  우리 단둘이서만 마주치게 되거나 그런 경우엔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만...당분

  간은 좀...죄송해요 아저씨. 나중에 다 말씀드릴께요. ”

 시라가 난감해 하는 부분은 자신보다 스무살 많은 애딸린 이혼남과 결혼 어느덧 중학생까지 된 전처소생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자신의 현실이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물론 아버지에겐 고향 선배이기도 한 이 노인에게도 알려지는 것은 웬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오빠들이 충격을 받는것도 문제지만 이 노인 또한 지금 자신의 이런 모습을 어찌 받아들일지 확실하게 알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에 혹여 노인이 자신이 유흥업소같은데라도 빠져 그렇게 살아온 것 아닌가 그렇게 오해하진 않을까 그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시라는 어느덧 술기운이 제법 오른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그냥 가끔...제 부모님이나 오빠들 소식 들려오는게 있으면 제게 전해주시기나 하

  셨으면 해요. 아무튼 지금은 제가 여러 가지로 부모님이나 오빠들 앞에 직접 나서

  기가 난감해서 그래요.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뒤 술잔을 기울이는 노인을 불편하게 바라보며 시라의 말은 계속 되고 있다.

 “ 죄송해요 아저씨. 지금 당장은 말씀드리기 곤란한 부분이 있어서 그래요. 하지만

  그것도 떳떳하게 말할수 있는 시점이 오면 그때 말씀드리도록 할께요. 그대신 아저

  씨는 부모님이나 오빠들 소식 그저 가끔 전해지는게 있으면 그 소식이나 전해주셨

  으면 해요. 그리고 우리 단둘이서 보거나 할때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동네주민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을때는 피차 모르는 사이인걸로 해주셨으면 해요. 부탁이에요 아

  저씨. 꼭 그렇게 해주실수 있으시죠 ? ”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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