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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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EXID LE (3) 걸그룹 팬픽 7 (마마무,EXID)



 병하는 지금 아내 지현과 잠깐 해외에 나와있다. 임시국회는 끝나고 나서 하게된 여행이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행은 아닌 아내와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어 주변 눈을 피해 나온 여행인 셈이다. 사실 임시국회가 끝나긴 했지만 국회의원 임기 중반의 5월이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고 게다가 최병하는 이미 여름에 있을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출마도 예정에 두고 있는 몸이니만큼 아내와 한가하게 해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처지나 상황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아내와 시급하게 대화로 해결을 할 문제가 있어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위해 이웃나라에 잠깐 나와있는 것이다.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닌 아내와의 시간을 위해 마련한 여행이니만큼 고급호텔방에서 와인 한잔을 하며 차분한 마음으로 병하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내가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한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말야... ”

 “ ...... ”

 “ 내가 지금까지 인생을 6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었던 세 여

  인이 있어. 그 첫 번째 여인은 아무래도 내 전처 김순주...하지만 지금은 내 아이

  셋을 고아원에 버리고 도망간...그야말로 미안함과 배신감이 교차하는 애증의 존재

  가 순주 그 여자라면... ”

 지현은 와인 한잔을 들며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일단 남편의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고깝게 들리거나 못마땅하진 않은지 대체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남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것이다.

 “ 안희현 보좌관은 그야말로 내가 지난 15년 정치를 하면서 내게 없어서는 안될 정

  치적 동반자였고... ”

 “ ...... ”

 “ 하지만 당신은... ”

 막상 이런 고백을 하자니 괜시리 떨리기라도 하는것일까. 늘 보면서 어느덧 10년을 조금 넘게 살아온 아내이긴 하지만 이런식의 고백은 정말 지금껏 해본적 없나보다. 하긴 늘 하던 이야기였다면 지현 입장에서도 식상해 감동으로 다가오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병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어간다.

 “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을 함께 해줘야할 내 남은 여생의 동반자야. 그래도 무슨말

  인지 모르겠나 ? 당신이 내게 있어 어떤 존재인지를 ? ”

 “ 모르겠어요 솔직히 잘... ”

 진심으로 남편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것인지 지현은 퉁명스러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분명 편치는 않아보이는듯한 그런 말투로 병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병하가 그런 지현을 바라보며 다시금 말을 건넨다.

 “ 그리고 여보...솔직히 이제와서 하는말이지만... ”

 “ ??? ”

 “ 안 보좌관이 저렇게까지 안하무인...심지어 때론 당신까지 깔보거나 무시할 정도

  가 된건 당신 책임도 일정부분 있어. ”

 “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이야기에요 ? ”

 뭔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거나 뜬금없는 이야기로 느껴져서일까. 지현은 살짝 반발심까지 일어 그와같이 말하고 있고 병하는 그런 지현을 바라보며 나름 진정성을 담아 말을 이어가고 있다.

 “ 말하지 않았나. 안보좌관은 내게 정치적 동료이지만 당신에겐 어쨌든 남편 일을

  도와주는 그냥 아랫사람일뿐이야. 그러니...당신이 좀 안보좌관에게 가령 좀 권위

  있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던가...어쨌든 안 보좌관이 당신을 함부로 무시할수 없게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안 보좌관도 지금처럼 정도가 넘치게 행동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그래서 하는말이지. ”

 “ 절더러 안보좌관에게 갑질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 ”

 “ 하하...이런 그렇게 들렸나. 행여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이건 정말 유감이로군.

  여하튼 내 말의 요지는 안 보좌관이 함부로...그래 아닌말로 함부로 당신자리까지

  넘보려 한다던가 그런 생각이 안 나도록 뭔가 확실하게 선을 긋거나 따끔하게 나오

  던가 했었어야 한다는 말이지. 그래도 내 말이 무슨말인지 모르겠소 ? ”

 “ 안 보좌관이 제 자리를 넘보기라도 한다는 말씀이세요 ? ”

 “ 허허 참...그 사람이...뭘 그렇게 계속 매사에 삐딱하게 해석을 하나. 나야 안 보좌

  관의 인격을 믿어요. 어쨌든 안보좌관은 내게 정치적으로 없어선 안 될 존재이니

  그런 안보좌관의 사람됨을 믿지만...당신 입장에서 정 꺼림칙하다면 당신선에서라도

  안보좌관 앞에서 나름 권위를 내세울 필요가 있었단말이지. 솔직히 내가봐도 당신

  은 좀 순한면이 있어. 그래서 안보좌관이 당신을 만만하게 봤던게 아닌가 그 생각

  도 들고... ”

 병하의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것일까. 지현은 잠시 말이없이 혼자 팔짱을 낀채 뭔가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잠시 흐르다 병하가 다시 할 이야기가 있는 듯 입을 연다.

 “ 그리고 여보...내가 지난 15년 정치를 해오면서말야...아니 보수우파 운동을 하던때

  까지 정치의 시간에 포함시킨다면 훨씬 더 긴 시간이 되겠지만... ”

 “ ??? ”

 “ 정치란게 결국 일종의 교통정리같다 그 생각이 들때가 많았어.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수많은 계층,직종,단체 그들의 갈등을 타협하고 조정시키며 대

  화로 합의를 이끌어내가는...일종의 복잡한 도로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경찰 같

  은 역할...그게 정치 아닐까 그 생각을 해본적이 많은데... ”

 “ 갑자기 무슨 정치 이야기에요 ? ”

 아내와 화해의 시간을 갖기위해 나온 여행이지 정치 이야기를 하자고 마련한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지현이 살짝 다시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병하가 그런 지현을 달래듯 말을 건넨다.

 “ 내 말은 그런 정치를 십수년 하다보니 가정사의 문제에서도 그런식의 교통정리를

  하는 노하우가 생기더라 그 말이지. ”

 “ 뭐라구요 ? 교통정리 ? ”

 정치에서 교통정리 역할을 맡다보니 가정사의 문제에서도 교통정리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더라. 그게 병하의 말뜻인 셈인데. - 사실 가정사 문제도 제대로 정리 못하고 정치하는 사람이 더 많긴 하지만 – 따라서 오히려 지현 입장에선 어이가 없어져서 그와같이 말하고 병하는 그런 지현을 바라보며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 하하 참...이거...이런식이 되면 시험에서 정답을 미리 말해버리는것이나 다름없어

  그렇긴 한데...당신이 정 이해 못한다면 그냥 알려주는수밖에 도리가 없겠군. 그래

  도 당신 정말 모르겠어 ? 당신이 이 최병하의 아내로 내 집안에 있으면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방도가 정말 뭔지를 ? ”

 “ 몰라요. 그러니 당신이 가르쳐주세요. ”

 마치 정말 시험답안이라도 미리 가르쳐달라고 선생님한테 칭얼거리는 초등학생 같은 말투로 지현이 그와같이 말하고 있고 하는수없이 병하는 다시금 설명을 이어간다.

 “ 이건 지금껏 당신에게 여러번 해온 이야기지만...난 그렇게 첫 결혼에 실패하고

  무엇보다 전처에 대한 미안한 마음 – 그보다 지금은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렸다는

  점을 나중에 알고 느낀 배신감이 더 크지만 말야 – 때문에라도 재혼은 하지말고

  남은 여생은 혼자 살 그런 생각이었어. 하지만 막상 이렇게 정치권에 발탁되어 들

  어오고나니 내조의 역할을 해야할 사람이 정말 필요하더군. 그래서 주위 권유로 결

  국 재혼까지 하게된 셈이긴 하지만말야... ”

 “ ...... ”

 “ 하지만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그게 항상 내게 남아있다는걸 늘

  말해왔을거야. ”

 “ 그래서...뭐 절더러 그 아이들을 찾아주기라도 해달라는 말이에요 ? ”

 “ 허허 참...그래,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구만...10년동안 준 이 쉬운 힌트를 이제

  서야 알아챘다면...이건 진짜 보통 머리나쁜 여자가 아니고는 있을수 없는 일인데

  말야. 그래 뭐...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그 아이들을 찾아준다면 그 아이들에

  겐 당신은 혈육을 찾아준 은인같은 존재가 되겠지. 그리고... ”

 “ 그리고 뭐요 ? ”

 “ 당신은 내 아이는 낳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나와 결혼한 사람이기도 하지만말야...

  그런 당신이 앞으로 이 집안에서 어른대접 받으며 살아갈수 있는 방도가 뭘지 그

  걸 생각해보란 말이지. 혹시 당신이 나하고 더 살 생각없이 정말 이혼이라도 하고

  차라리 혼자 살거나 다른 인연을 찾아 떠날 생각이라면 그땐 다른 이야기가 되겠

  지만... ”

 “ 누가 뭐 언제 이혼이라도 한 대요 ? ”

 “ 허허...거 당신이 이혼할 생각이 없는것만은 분명하구만. 그럼 잘 생각해보란말야

  당신이 이 집안에서 최병하의 아내로 살면서 앞으로 어른대접 받으며 살아갈수 있

  는 길이 뭐가 있을지 그걸 잘 생각해보란말이지. ”

지현은 병하의 이와같은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말없이 와인을 들고만 있는 지현의 모습. 사실 이미 술을 여러잔 한 상태라 취기가 제법 올라있어 더 마시는건 무리이긴 하다. 그래서 대충 물이라도 찾으며 속을 달래려고도 하는데 병하가 그런 아내에게 손수 물까자 따라줘 바치면서 말을 이어간다.

 “ 거듭 말하지만 안희현 보좌관은 내게 정치를 하면서 없어서는 안 되었을 그런 존

  재였을뿐이야. 하지만 당신은 내 남은 인생을...그 아직은 한 몇십년 남았다고 봐야

  할 그 인생을 같이 가줘야할 그런 존재라고. 그래도 내 말이 무슨말인지 모르겠나

  ? ”
 





 “ 사랑해요, 의원님. ”

 “ 이러지마...희현이... ”

 ‘희현이’란 표현은 사실 최병하가 평상시 쓰는 표현이 아니다. 병하는 안희현 보좌관을 보통 ‘안보좌관’ 혹은 ‘안희현 보좌관’ 이런식으로 부르곤 한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병하가 희현을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희현은 뭔가 절실함과 간곡함을 담아 적극적으로 병하에게 파고들고 있다. 허나 병하가 뿌리친다.

 “ 글쎄 이러지 말라니까. 우리 이러면 안 되는 사이라고 몇 번을 말했나 ? ”

 “ 의원님 제 마음을 몰라주시나요. 의원님...가지마세요. 사랑해요 의원님...아니 병

  하씨... ”

 “ 허허 참...이제보니 희현이 정말 못쓰겠구만. 희현이 이런 여자였나 ? 난 유부남

  이야. 근데 그런 날더러 어쩌라구... ”

 “ 하지만 의원님은 이미 이혼하신 전력도 있잖아요. ”

 “ 아니, 근데 점점... ”

 “ 의원님...가지 마세요 !!! 의원님 !!! 의원님 !!! 의원님 !!! ”

 깜짝놀라 눈을떴다. 희현은 순간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실은 꿈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희현이 혼자 지내는 원룸이다. ‘휴우~!’ 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그녀. 혹 곁에 누가 있었더라면 술내를 대번에 한껏 느꼈을지도 모른다. 굳이 그렇게까지 아니더라도 희현의 곁에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독한 술병이 두 개 보인다. 간밤에 과음을 하고 잠이 든 모양이다.

 의학적으로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것’은 수면상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희현은 어쨌든 밤새 술을 마시고 그와같이 잠이 든 것이고, 꿈을 꾸긴 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게 수면상태인지 어쩐지는 그것은 의학계에서 알아서 규명해내야 할 문제일테고, 여하튼 꿈은 꾸게된다. 정신이라도 좀 차려야겠는지 희현은 욕실로 가서 간단하게 세수라도 하고 나오긴 하는데, 하지만 술기운은 아직 제대로 가시지가 않았는지 몸을 가누기가 아직 쉽지 않다. 결국 다시 거실 한쪽 소파로 가서 털썩 그 자리에 앉는다.

 ‘휴우~!’ 하고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 희현. 사실 희현이 좀 술이 센 편이긴 했지만 아무런 이유없이 이렇게 과음을 하거나 술주정뱅이인 그런 경우는 아니다. 그럼 정말 뭔가 지금 괴롭고 힘들다는 심리상태의 반영인것일까. 희현은 아직도 정신이 완전히 수습된 상태는 아닌것인지 여전히 소파에 주저앉은 상태로 한숨만을 내쉬고 있을뿐 그러고보면 서서히 날이 밝고 있음인데도 출근을 할 준비를 하든 무엇을 하든 그럴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아직 채 떨궈지지 않은 술기운 때문이 아닌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뭔가 힘들어 견딜수 없는 그 무엇이 분명히 있는듯하다.

 “ 최병하... ”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헛소리처럼 그 이름을 되뇌고 있는 희현. 그 지껄임이 조금은 더 이어진다.

 “ 최병하...나 너 절대 이대로 안 보내. 나 너 절대로 이대로 안 보내...만약 니가 나

  버리는날엔... ”

 뭔가 슬프고 아프기라도 한지 흐느끼기까지 하는 모습. 그러고보면 최병하 의원의 15년 보좌관이었다는 안희현. 병하의 경우는 자신과 희현의 관계를 의심하는 아내 지현 앞에서 희현은 자신과 ‘정치적 동지’ 그 이상의 관계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잘라 말하긴 했지만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은 확실하게 그렇게 구분지어 정리할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분명히 아니다. 일단 마음이나 감정은 형상을 갖춘 물체가 아니지 않는가. 심지어 물체의 형상도 조명이나 각도 또는 거리감에 따라 착오나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하물며 그 형상조차 제대로 갖춘 것이 아닌 아니 어쩌면 인류가 탄생한 이래 그 형상을 제대로 확인해본 사람이 없었을것만은 분명한 사랑이니 마음이니 감정이니 하는 개념들을 누가 확실하게 구분지어 말할수 있을까. 오죽하면 한때 ‘친구이상 연인이하’라는 말까지 다 생겨났었겠는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또는 존경심인지 사랑인지 또는 동료나 동지로써의 단순한 애정이나 끈끈한 관계인지 아니면 역시 단순히 그것만이 아닌 그 무엇이 존재하는 관계인지 애매한 경우가 얼마나 이 세상에 많은가. 최병하와 안희현의 관계도 확실히 그런 사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최병하는 자신을 의심하는 아내앞에서 ‘그런 관계가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거듭 자기 입장을 정리하고 있고, 오히려 안희현 앞에서는 얼마전 국회의원은 4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란 말까지 했던 그런 최병하다. 병하가 국회의원 생활을 그만두려 하는 것이 꼭 안희현 때문에 하게된 결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 게다가 국회의원이 아니다 하더라도 단지 의원과 보좌관 사이가 아닌 다른 형태로라도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든지 지속될수 있는 것이니까 – 오히려 불출마 의사를 가장 먼저 안희현 앞에서 밝힌 것은 단순히 그녀가 자신의 최측근이고 믿을만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닌 그 어떤 의미도 함축되어 있는것만은 분명해보인다. 그런 병하의 마음을 대충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까. 희현도 지금 어떤 좌절감과 허탈감 그리고 원망감속에 잠겨있는 것이다.

 “ 최병하 !!! ”

 갑자기 막장드라마의 악녀 서브 여주인공처럼 소리를 버럭 지르는 희현. 그러더니 진짜 어느 유명했던 출생의 비밀 다룬 막장 일일극의 어느 악녀 캐릭터처럼 있는대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혹여 지나가다 누가 봤거나 또는 저 소리가 옆집이나 위,아랫집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실성한 여인이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할수도 있는 딱 그런 안성마춤인 상황. 하지만 희현은 여기야 어차피 자기 혼자밖에 없는 자신만의 원룸이고 거처라는 생각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정말 실성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최병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 최병하 !!! 넌 절대 나 두고 이대론 못 떠나. 아니 그 전에 내가 너 절대 안 놔둬

  내가 너한테 지금까지 어떻게 했는데...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껏 여기까지 달려왔

  는데...날더러 이대로 물러나라고 !!! 절대 그렇게 안해 !!! 나 절대 너 안 놔줘 !!!

  나 절대 너 못보내 !!! 최병하 너 만약 진짜 나 그렇게 배신하고 떠나는날엔 나 절

  대 너 가만 안둘거야. 두고봐 최병하 !!! 최병하 !!! 최병하 !!! 최병하... ”

 실성한 여인같은 안희현의 발악이 계속되고 있다.

 “ 최병하...만약 너 그러면 내가 내손으로 직접 너 죽여버릴 거야 !!! 죽여버릴거야

  최병하 !!! 최병하 !!! 최병하 !!! 최병하 !!! ”

 

 이런것도 인연의 범주에 속하다고 볼수 있는것인지 미령과 은영은 그런 일을 계기로 친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은영이 이사온지 얼마 안되는 동네에서 그것도 으슥한 밤길을 걸어가야 있는 곳에 거처인 빌라가 있어서 마침 이웃에 사는 주민인 미령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에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고, 미령이 거기 응해줘서 그 고마움에 간단한 먹거리라도 사들고 가 나중에 고맙다는 사례를 했던것인데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서로 자신과 비슷한 고아출신으로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단지 엇비슷한 나이의 20대 중반의 여성이란 것 외에도 그렇게 엇비슷한 출생,생활환경의 공통점 때문인지 두 사람은 의외로 마음이 잘 통했다. 다만 가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미령은 보통 일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를 하고, 은영은 재연배우라 촬영을 마치면 집에 돌아오고 했기 때문에 귀가시간이 일정치는 못해서 지난번처럼 밤늦은 시간 골목길을 함께 오거나 하는일은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았고 어쩌다 휴일같은때 심심하면 은영이 미령네 집으로 간단한 먹거리라도 싸들고 놀러가거나 아니면 반대로 미령이 은영한테 놀러오거나 그런식으로 두 사람의 교류가 이어져갔다. 어차피 바로 옆집사는 사이라서 그런식의 친목파티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가 원하고 쉬는날이면 얼마든지 이루어질수 있었다. 하루는 그렇게 또 은영이 간단한 간식거리라도 싸들고 미령의 집을 찾아와 그것을 먹으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은영이 미령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 언니, 그런데 언니는 아버지 얼굴을 기억 한다구요 ? ”

 “ 그렇다니까요. ”

 바로 처음 그렇게 고아란 사실을 알고나서 미령이 은영에게 들려준 고백. 세 살정도 나이때이니 정확치는 않지만 어렴풋이 마치 영화의 하이라이트 한두장면처럼 기억나는 그런게 있다고 있다. 무엇보다 ‘아버지 얼굴’을 확실하게 기억한다는게 미령의 말이다. 마침 말이 나온김에 미령은 뭔가를 하나 꺼내 가져와서 은영에게 보여준다.

 “ 뭐에요 이게 ? ”

 미령이 보여준 것은 일단 겉보기에는 평범한 연습장인데 펼쳐보니 거기엔 그림인지 낙서인지 알 수 없는 형상이 여러곳에 반복적으로 그려져있었다. 어찌보면 그리다 만 것 같기도 하고. 미령이 원래 그림실력은 없는편인지 그림인지 낙서인지 분간 안가는게 형상 자체는 사람얼굴 같다는 것을 빼놓고는 판단할수 있는게 없었다. 의아해하는 은영에게 미령이 설명을 덧붙여준다. 묘한 한숨소리와 함께.

 “ 실은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한번 떠올려보려구...제대로 한번 기억해보려구 이렇게

  여러번 그림으로 그려보려 했어요. 그런데...하아 참...난 아무래도 그림에 소질이

  없는것인지... ”

 “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 그리고 아버지 얼굴이 생각날때마다 그려본거라면 그

  림소질 같은 것은 그렇게 문제삼을일은 아닐 것 같은데... ”

 “ 그림소질이 문제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여하튼 답답해요. ”

 “ 아니, 대체 뭐가 답답하다는건데요 ? ”

 뭔가 거듭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입에담는 미령의 모습에 되려 은영이 지금은 답답해질 지경이다. 미령은 은영이 사와서 따라준 술 한모금을 음미하고는 말을 이어간다.

 “ 아빠얼굴이...분명히 말했죠 ? 기억은 난다고. 보면 알수있을 얼굴같은데...보면

  알 수 있는 얼굴일 것 같은데...그런데 그림으로 그려지지가 않아. 어릴때라 아빠

  얼굴이 제대로 기억 안나는것인지...아니면 내가 그림실력이 없는것인지...모르겠

  어. 그게 속상해 미칠 것 같단말야. ”

 “ 아니, 대체 그게 무슨말이에요. 그러니까 언니 이야긴...아빠 얼굴이 기억은 나

  는데...뭐 그림으론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인거에요 ? ”

 어릴 때 기억이니 정확치는 않지만 아빠얼굴이 기억은 난다는게 분명한 미령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 아빠얼굴을 막상 그림으로 그리려하니 그려지지가 않더라는 것. 너무 어릴때라 기억이 정확치 못한게 문제인걸까. 아니면 미령의 말처럼 그녀의 그림실력이 한계가 있어 제대로 그려지지가 않는것일까. 미령은 답답함을 은영앞에서 이와같이 토로한다.

 “ 다른 사람들은 나같은 경험 혹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그래요. 제 심정

  은...보면 알 것 같아요. 그 얼굴을...확실하게 기억에 있는 얼굴이니...머리속에 분

  명히 기억으로 있는 얼굴...머리속에 기억으론 남은 그림인데 만약 손으로 직접 그

  리면 그림으론 그려지지 않으니 그게 속상하고 답답하단말야. 정말 차라리 그림실

  력이 있는 화가라면 그게 가능할까. 아니면 차라리 유명한 화가나 디자이너 하다못

  해 웹툰작가나 만화가라도 찾아가 부탁이나 의뢰라도 해볼까. 기억속에 분명히 있

  는 얼굴이 있는데 그림으론 그려지지 않는 그런 얼굴이 있다고. 그걸 좀 그릴수 있

  게 해달라고... ”

 미령의 다소 횡설수설같은 이야기를 듣고나서 은영은 그녀의 연습장을 다시한번 쭉 살펴보았다. 한 100여장이나 될까 싶은 연습장 종이중 한 3분의2 정도는 그와같은 그림이 빼곡이 그려져 있었다. 대체 미령은 언제부터 이렇게 아빠얼굴(?)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것일까. 다만 미령의 그 답답한 심경과는 별개로 확실히 그녀가 그림소질이 없는 것은 분명한지 그 수많은 얼굴형상들은 이목구비가 대충 그려져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낙서수준의 그림이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얼핏 봤다면 뉘집 꼬마애가 심심할 때 해놓은 낙서따위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딱 좋을법한 그런 수준의 조잡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미령으로서는 나름 절실함과 절박한 그리움을 담아 그린 그림일 것이다. 머릿속엔 분명 남아있는 세 살무렵까지 보았던 아빠의 얼굴. 하지만 그림으로는 그려지지 않는 아빠의 얼굴. 어릴 때 본 얼굴이라 기억이 정확치 않아서 흐릿하고 희미한 기억이라서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말처럼 정말 기억에는 있는데 그림실력 자체의 한계라 제대로 그림으로 표현이나 묘사가 안 되는 것인지. 혹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가능할까.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얼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형상. 미령이야 원래 그림실력이 없어서 머릿속 어릴적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빠의 얼굴’ 형상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혹 제대로 실력을 갖춘 화가나 미술계통 종사자라면 그것이 가능할까. 그게 미령의 답답함 끝에 나온 생각이면서 의문인 것이다. 정말 그녀 말대로 차라리 어디 실력있는 화가나 만화가라도 찾아가 아빠얼굴을 자신이 설명을 해줄테니 그려달라고 부탁하면 화가나 만화가는 미령의 기억속 아빠얼굴을 제대로 그려줄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도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령의 머릿속 아빠얼굴은 어디까지나 미령의 기억속에만 남아있는 형상일뿐, 설사 말과 글로 설명이나 표현을 한다해도 말과 글로 머릿속의 떠오른 그림을 표현하고 묘사하는것도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아무리 전문성을 갖춘 미술가를 찾아간다 하더라도 미령의 머릿속 기억에 있다는 아빠얼굴을 제대로 그려준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 차라리 미령이 그림실력을 키워 아빠얼굴을 그린다면 머릿속 기억의 아빠얼굴을 제대로 그려낼수 있을까. 허나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래서 뭘 어쩔것인가 하는 문제에선 의문과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 그림을 들고 (설사 그게 아무리 실력을 갖춰 그린 그림이나 또는 실력을 갖춘 미술가를 찾아가 그려달라고 부탁을 해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대체 뭘 어떻게 할 것인가 ? 그 단지 미령의 세 살때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아빠얼굴을 그린 그림을 갖고 지구 끝까지 세상 모든 남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버지를 찾아보기라도 하겠단말인가. 미령이야 오죽 답답했으면 실력없는 그림으로라도 수도없이 그려보려 노력했겠냐만 설사 실력이 있어 그 그림을 그릴수 있다 치더라도 그 다음에 무엇을 어찌할것인가 하는 문제에선 다시금 난감함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령 입장에서의 그 답답한 심경만은 당사자가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때 – 적어도 미령의 말대로라면 – 대체로 서너살 무렵에 고아원에 맡겨졌고 그래도 어린 나이때 기억이 좀 있고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서인지 흐릿한 영화 하이라이트 화면 같은 모습으로라도 아빠얼굴이나 아빠,엄마 이외에도 언니와 동생이 하나씩 더 있었다는 기억을 하고있는 그녀. 그래서 지금껏 비록 고아로 자랐지만 적어도 고아원에 맡겨지기 전까지는 가족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간직한채로 살아왔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미령은 그 답답한 심경을 같은 고아처지라는 은영앞에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 언니, 이제 그만 진정해요. ”

 헌데 그러고보니 미령은 술 한두잔이 입에 들어가면 이런식의 넋두리를 입에 담곤 했다. 속이 너무 상하고 답답하다보니 그것을 술로 달래려하다보니 그만 술만 들어가면 ‘아빠의 얼굴’ 이야기가 넋두리처럼 나오는것인지, 아니면 술에 취하다보니 그 취중에 그런 횡설수설 헛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빠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그 그리움과 답답한 심경을 술로 달래다보니 술만 입에 들어가면 그 어렴풋이 기억으로 있다는 아빠얼굴에 대한 그리움, 아빠얼굴이 기억으로는 있는데 그림으로는 그려지지 않는 답답함. 그것을 토로하는게 일종의 술주정 코스처럼 굳어져버린 것인지. 그러고보니 미령과 은영의 인연이 있은지도 어느덧 두어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두 사람은 그동안 그런대로 마음이 맞는 좋은 이웃사촌이자 친구처럼 지낼수 있었지만 이와같은 술버릇이자 술주정은 은영을 살짝 짜증나게 만들고도 있었다. 설사 미령의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한다치더라도 술만 마시면 일과처럼 반복되는 이러한 넋두리는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쯤에서 미령의 술주정이 더 이어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은영이 그녀를 만류하고 나선 것이다.

 “ 언니...이제 술은 그만 마시고 좀 쉬어요. 오늘 너무 마신거 같네. ”

 그렇게 미령을 달래고는 자신이 술과 안주거리를 옆으로 취한다. 미령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인게 미안해졌는지 바로 사과를 한다. 그리고 취기때문인지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버린다. 은영이 그런 미령을 옆에서 토닥토닥 달래주고 있다.

 “ 그래도 언니는 저보다 처지가 났네요. 그래도 그리워할수 있는...기억으로라도 남

  아있는 아빠의 얼굴. 가족의 기억이라도 있으니... ”

 미령은 어느새 곯아떨어져 버렸는지 그새 코까지 드르렁 골고 있는데 이번엔 은영이 그녀대로의 회한이 피어오르는지 이번엔 그녀의 혼잣말이 이어지고 있다. 두 살위의 언니인 미령을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재우듯 품에 안은채로.

 “ 언니는 그렇게 아빠나 가족에 대한 기억이라도 있지만...전 아예 가족에 대한 기억

  이 없어요. 아주 갓태어난 어린아기였을 때 누군가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다는 그

  말 외엔 전...정말 가족이 있기는 한건지...아니 그런식으로 버려졌다면 심지어 난

  혹시 이 세상에 태어나선 안 되는 그런 존재였기에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야멸차게

  고아원에 버려졌던건 아닌지 – 가령 부적절한 관계 사이에서 태어났다거나. - 내가

  과연 갓난아기때 그렇게 버려진 이유가 뭘까. 그걸 생각해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긍

  정적인 상상은 안되더라구요. ”

 어느덧 곯아 떨어진 미령이 지금 은영의 말을 들어주지는 못할텐데, 하지만 은영도 미령의 이야기를 듣자니 같은 고아처지인 자신의 감정이 북받쳐서인지, 아니면 어떤 의미에선 차라리 가족이나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있는 그녀의 처지가 자신보다 낫다는 부러움이라도 생긴것인지 갓난아기때 맡겨져 아예 가족에 대한 기억 자체가 존재할수조차 없는 자신의 신세를 새삼 그렇게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 참 웃기죠 그러고보면 ? 언니와 제 처지중 누가 나은걸까요 ? 언니는 매일같이

  저렇게 아빠 얼굴을 그리면서...머리속 기억으로는 분명히 남아있는 아빠얼굴이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며 한탄해왔지만...전 아예 그런 기억으로조차 남아있

  을수 있는 가족 얼굴조차 없으니. 안 그래요 언니 ? 언니랑 나중에 대체 누구 처

  지가 더 나은걸까요. 언니처럼 가족과 함께 살았던 기억이라도 있어 그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탄식으로 간직해온 그 처지가 나은걸까요. 아니면 저처럼 갓난아기때

  맡겨져 아예 가족에 대한 기억 자체가 있을수 없어서 그냥 ‘세상에 나 혼자뿐인

  거구나.’ 그렇게 체념하고 살아온 제 처지가 나은걸까요. 네 ? 언니 ? 언니랑 저

  중에 대체 누구 처지가 나은거에요 ? ”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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