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엄마가 되어줄게
하니가 유튜브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의 정확한 명칭은 ‘예쁜사과(하니의 인터넷 아이디)의 역사산책’이다. 애초 삼국지,초한지등의 중국 고전과 그 시대적 배경이 되는 중국사에 대한 분석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이 차츰 중국사 전반은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의 역사까지 동양사는 물론 서양사와 관련된 이야기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하니가 역사 팟캐스트를 시작한지는 어느덧 1년 가까이가 되어가는데, 평균 1주일에 한번꼴로 영상을 올리다보니 그 숫자는 어느덧 60편 가까이에 이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하니의 팟캐스트 팬은 갈수록 점점 많아져 하니가 새 영상을 올리면 들르는 유튜버의 숫자가 어느덧 10만명선에 이르는 경우까지 있었고 댓글도 무수히 달렸다.
또 하나 이채로운 현상은 하니 나름대로의 독특한 역사 분석과 이야기가 점차 관심과 인기를 모아가자 유튜버들 사이에서 ‘이런이런 주제를 다뤄달라’는 요청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같은 요청주제에 대해서는 보통 별소년 유준상이 체크를 해 나가며 관리하고 있었다. 애초 준상은 하니의 팟캐스트 편집일을 돕는것부터 시작했는데 그것이 차츰 댓글관리는 물론 그러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네티즌들의 요청주제까지 살피며 관리하는 역할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자연스레 준상의 하니를 돕는 작업량도 갈수록 늘어만 갔다.
네티즌들의 요청주제는 준상이 체크를 해보니 어느덧 300여건에 달해 만약 앞으로 하니가 이를 일주일에 한 주제씩만 다뤄도 최소한 6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판이었다. 따라서 준상은 이중 어느 한두 네티즌이 일시적으로 요청한 주제이거나 너무 애매모호한 주제 또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주제등은 거르고 많은 네티즌들이 요청하는 주제와 관심도 위주로 한번 추려나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요청한 네티즌의 수가 많은 역사주제만도 대략 50-60여건 정도에 달했다.
또 한가지 특징은 하니에게 유튜브 영상말고 다른 이벤트도 좀 벌여달라는 요구도 생기기 시작했다. 가령 ‘오프라인 번개모임’을 갖자는 인터넷에서 흔히 팬카페 같은게 생기고 추종자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생길 수밖에 없는 요구에서부터 심지어 편집 담당자에 대한 ‘몰래카메라’를 한번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하니에게 영상편집을 도와주는 협력자가 생겼다는 사실은 애초 하니가 처음 그런 공지를 올렸을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사실이었고, 또 실제 하니는 준상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저희 편집 담당자가 만든 자막 깔끔하고 읽기 좋죠 ?’ 또는 ‘이건 저희 편집 담당자가 진짜 어렵게 구한 사진이에요’ 이런식으로 편집을 맡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종종 언급하기도 헀기 때문에 하니의 실제 외모 외에도 편집 담당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도 갈수록 늘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하니나 준상 입장에선 공개하기가 좀 난감한 일이기도 했다.
“ 몰래카메라를 해달라는 요구까지 있던데요 ? ”
준상이 팟캐스트에 올라오는 댓글들을 체크하다 하루는 하니에게 이와같이 말해다. 사실 이쯤되면 ‘몰래카메라’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라고 봐야하는것일까. 몰래카메라라는게 근본적으로 상대에게 사전 양해나 언질없이 깜짝스럽거나 충격적인 상황을 만들어 상대방을 놀리는게 주된 내용 아닌가. 헌데 그 당사자인 편집 담당자가 댓글을 체크해오고 있었으니 ‘편집담당자 상대 몰래카메라를 한번 해달라’는 요청 자체가 근본적으로 실수였던 셈이다. 사실 하니는 그러잖아도 고민은 하고있던 중이었다. 비단 그 문제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오프라인 모임을 한번 갖자던가 그게 어려우면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예쁜사과’ 본인의 얼굴이나 편집자의 얼굴이라도 공개해달라, 그게 어려우면 신체 일부라도 심지어 ‘발이라도 보여달라’는 요청까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얼굴공개 그 자체보다는 하니 자신과 팟캐스트 편집자의 관계를 어떻게 공개하고 밝혀야할지 그 시기는 또 언제가 적절할지 그 자체가 하니나 준상에겐 고민거리였기 때문이다.
“ 아무래도 아직은...시기상조겠죠 ? ”
자신과 준상의 사이를 정확히 밝히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점이 무엇보다 하니에겐 가장 큰 고민이었다. 게다가 얼굴을 공개하든 뭘 공개하든 여하튼 자신이 새엄마의 처지임을 자연스레 밝히기까지 해야하는것인데 그 역시 고민되고 부담스러운 문제임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따라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든 몰래카메라를 하거나 얼굴을 공개하던가 하는 문제는 준상이나 하니 입장에선 아직 쉽게 결정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고민이 거듭되던 어느날이었다.
“ 준상아... ”
하루는 팟캐스트 영상 작업을 마치고 하니가 너무 피곤한지 작업실 방바닥에 그냥 누워버렸다. 사실 이런일은 지금까지 종종 있어왔고 준상도 때론 너무 피곤하면 불과 두어발자욱만 걸어가면 있는 건너편 자기방까지 가지 않고 그냥 작업실에서 뒹굴다 잠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니가 피곤한 듯 자리에 눕자 준상이 곧 자기방에 가서 이불 하나를 가져와 하니를 덮어준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잠든줄 알았던 하니가 눈을 뜨더니 준상의 잠옷 바지자락을 붙잡았다.
“ 가지마 준상아. ”
“ 네 ? ”
이게 갑자기 무슨소리인가. 준상이 어리둥절해서 하니를 보는데 뭔가 야릇하면서도 그윽한 눈빛으로 하니가 준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 우리 같이자자. ”
“ 네 ? ”
“ 그냥...혼자 자기가 좀 무서워서 그래. 그러니 준상아 같이 있어줘.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니가 어디 혼자 사는 여자라면 모를까. 여하튼 남편도 있는 몸이고, 그런데 대체 이런 집에서 살면서 난데없이 뭐가 무섭다는 것일까.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것이라는게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말일까. 정 무서우면 그냥 1층으로 내려가 침실에서 남편과 함께 자면 될 것을 느닷없이 그것도 2층 작업실에 그냥 누워버렸으면서 갑자기 준상보고 곁에 있어달라니. 준상이 난감해하는데 하니가 거듭 그런 준상을 재촉한다.
“ 그러지말고 이리와. 나랑 같이자자 준상아. ”
“ 아...아니 저... ”
준상과 하니가 사용하는 2층 작업실은 비좁은 방이다. 한쪽에 놓인 책장과 그 반대편에 놓인 컴퓨터 책상 그 공간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공간은 일반 평범한 이불 하나를 온전히 펼지기도 쉽지 않은 그 정도로 좁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충 이불을 절반 조금 넘게나 겨우 펼 수 있는 그 정도 공간이라고나 할까. 성인 두명이 이 방에서 그냥 무슨 작업 같은 것을 하거나 둘이서 술이나 안주라도 들면서 노닥거린다거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그럴만한 공간은 될 지언정 성인 두명이 나란히 눕기에는 버거운 공간이 분명하다. 가령 두 사람이 나란히 누울 경우 가까스로 바짝 붙어서 누울수는 있을련지 몰라도 그렇게되면 팔을 뻗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다. 그때문에라도 준상은 더더욱 난감해하는데 하니가 거듭 재촉하고 결국 준상은 하니의 바로 옆에 바로 눕는다. 헌데 그러자 하니가 준상을 양팔로 와락 끌어안는다. 공간의 비좁음도 원인이 되겠지만 여하튼 그러니 두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공간이 확보되는 방. 하니가 준상을 꼭 안은채로 그리고 준상은 다소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는데 하니는 준상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춰본뒤 그대로 잠이든다.
깔끔한 분위기로 잘 정돈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여성 한명이 있다. 단지 건너편에도 다른 아파트 단지가 얼핏 보이는 이런식의 아파트단지가 여러곳 쭉 늘어선 그런 아파트촌 같은 분위기의 지역이다. 그곳으로 들어서고 있는 여성은 다름아닌 하니. 헌데 그녀는 단지안으로 들어서면서 뭔가 회한에라도 잠기는 듯 한숨을 한번 내쉰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리는 모습에선 확실히 뭔가 착잡한 감회에 젖고 있음이 느껴진다.
하니는 사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길이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열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젊은 새엄마가 생긴게 싫어서 한 1년정도 반항을 하다 중3때 가출을 했다는 하니. 헌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정작 자신도 스물여섯살이나 많은 남자와 재혼 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않는 의붓아들이 생긴 새엄마의 처지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그 의붓아들이 원래 역사카페와 팟캐스트 인연으로 게다가 자신의 팟캐스트 편집을 도와주곘다고 나선 준상이라서 그렇지, 사실 하니도 막상 그렇게 애딸린 이혼남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 뒤로 나름 고민을 많이 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이미 새엄마가 싫어서 가출한 전력이 있는 여인이기에 그런 자신이 똑같은 새엄마의 처지가 된다는것에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히기도 했는데, 허나 그러고보니 막상 그렇게 스물여섯살 많은 재용과 결혼하고는 자신의 과거가 후회되기도 했다고 고백한바 있는 하니. 생각해보면 새엄마가 자신을 구박하거나 특별히 못되게 군 일도 없는데 공연히 철없는 자신의 반항심에 그렇게 나왔던 것 같다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 한번은 자신도 아빠와 새엄마를 한번 다시 찾아뵈고 싶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기도 했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 하니가 드디어 날을 잡아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그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불과 수년전인 중학생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살던 동네 아닌가. 20대 초반의 나이면 추억에 잠기기엔 다소 이른 나이일수도 있는데, 하지만 따지고보면 하니로선 대충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보낸 대충 ‘고향’ 정도 되는 의미의 동네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지금 하니가 사는곳도 그리고 지금 하니가 들르는곳도 똑같은 서울시내이니 ‘고향’ 어쩌구 하는 의미가 다소 우습고 어찌보면 부적절할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지금 하니는 그렇게 자신의 학창시절을 보낸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감회와 회상에 젖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그러고보면 그렇게 새엄마가 싫어 가출을 한뒤 무려 7년만에 중학교때까지 자신이 살던 동네에 다시 와본 것 아닌가. 하니로서도 여러 가지 착잡한 감회에 젖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한 아파트 건물 앞까지 다가오자 하니는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더해간다. 그래서인지 공연히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기까지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 심호흡을 여러차례 해보는데도 자신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순간적으로나마 차라리 인근 편의점에서 술이라도 한잔 해서 긴장된 가슴을 달래기라도 해볼까 그 생각까지 해봤다. 하지만 7년만에 다시 아빠와 새엄마를 만나러 가는 몸으로 그럴수야 없는법.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아파트 건물안으로 들어간다.
‘ 지이이이~~~!!! ’
한 집 안에서 앞에서 벨을 눌렀다. 요즘 이만한 아파트는 다 웬만해선 자동응답 시스템 문으로 되어있으니 비밀번호를 알아야 들어갈수 있는 법. 당연히 7년만의 방문이니만큼 그 사이 비밀번호는 바뀌어있었다. 하니는 긴장했다. 과연 벨을 눌렀을 때 저쪽에서 인터폰 모니터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는 하니 자신을 알아보기는 할지. 일단 인터폰을 누군가가 받기는 했는지 ‘찰카닥~!’ 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허나 바로 상대방의 반응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 저...죄송하지만 저 하니라고 하는데요. 안하니. 여기 안승윤 선생님댁 아닌가요 ?
저 실은 안승윤 선생님 딸이에요. ”
안승윤은 다름아닌 하니 아버지의 이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스피커에 대고 그와같이 말한 하니. 안에선 인터폰 저쪽으로 작은 소란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소리가 들렸다.
“ 들어오세요 일단... ”
‘들어오세요’ 라니. 순간 하니는 머릿속이 좀 혼란스러워졌다. 일단 아버지라면 하니에게 이런식의 말을 하진 않을테고, 벌써 7년의 세월이 흘러서인지 하니는 새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열 살 차이나는 젊은 새엄마 역시 예전에 하니에게 존대말을 쓰거나 하진 않았다. 일단 새엄마가 하니에게 어찌 대했던 하니는 대체로 그녀에게 반항으로 일관했던 하니. 그런 사이임을 감안하면 피차간의 감정은 그리 좋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것을 생각하며 하니는 천천히 아파트 건물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 하니...야 ??? ”
아니나 다를까. 집앞에 당도하니 문을 열어준 사람은 다름아닌 새엄마 이유영이었다. 하니와는 열 살차이니 지금 나이는 30대 초반. 그 이유영은 하니의 이러한 갑작스러운 그리고 7년만의 방문에 퍽이나 놀라는 모습이었다.
“ 너...대체 ??? ”
“ 그간...안녕하셨어요 ? ”
일단 인사부터 드리자는 생각에 정중한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네는 하니. 유영은 일단 하니를 들어오라고 하고는 여전히 놀라고 긴장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눈치다. 하긴 7년만의 이런 갑작스러운 의붓딸의 방문이니 만큼 누군들 이런 상황에서 놀라지 않을수 있으랴. 무엇보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인들 어떻게 건넬수가 있을까. 그건 하니 입장에서도 피차 비슷한 심정이겠지만, 일단 새엄마 유영은 간단한 마실거라도 내줘야겠다는 듯 냉장고에서 쥬스 하나를 꺼내 컵에 따라 가져온다. 하니가 그것을 받아 마시며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 헌데...대체 어떻게 ? ”
존대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애매한 말투를 유영은 건네고 있었다. 7년만에 만나는 열 살차이의 의붓딸인데다가 어느새 20대 성인이 되어있는 몸이니만큼 말을 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사실 아까 인터폰을 받았을 때 유영은 하니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진 못했었다. 남편 안승윤의 이름을 대고 하니라고 이름을 밝히자 그제서야 벨을 누른 상대의 신분을 확인한 것이다. 흐릿한 인터폰 모니터 화면으로 바로 모르는 사람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7년전 중학생 나이라면 아직 한참 성장하고 있을 나이라 봐야할 것 아닌가. 따라서 하니는 7년전에 비해 외양도 어느정도 달라져 있었고 키도 자라있었다. 유영의 기억에 하니는 그때는 자신보다 많이 작은 그런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하니의 키는 이미 어느새 그녀와 맞먹는 키가 되어 있었다. 유영이 여성으로선 대체로 중간키에 속하는 그런 여성인데 하니도 어느덧 그녀와 엇비슷한 키가 되어있는 것이다.
“ 진작 연락이라도...아니 그보다...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 아니 저...지내...셨어요
? ”
유영은 확실히 아직 하니에게 반말을 해야하나 존대말을 해야하나 많이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7년전의 그 하니와는 이미 확연히 달라져 있는 완연한 성인이란 모습에 그때에 비해 그녀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어떤 부담감까지 생긴것일까. 여하튼 유영의 그런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니 하니는 우습기라도 한지 잠시 ‘피식~!’ 헛웃음을 터트리기까지 하더니 일단 그런 유영을 안심시켜주긴 해야겠다는 듯 말을 건넨다.
“ 편하게 말씀 낮추세요. 어쨌든 제가...어린 사람인데... ”
그래도 ‘딸’이란 말을 스스로 언급하진 않고 다만 편하게 대해달라는 말을 건네고 있는 하니. 헌데 그제서야 하니의 눈에 웬 꼬마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집안에 들어섰을 때 이미 눈에 띄었고 그런 광경 역시 하니를 순간이나마 당황하게 만든 모습이긴 했지만 막상 집안에 들어섰을땐 이미 7년전과 많이 달라져있는 집안 분위기 자체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그리고 7년만에 재회하는 젊은 새엄마에 대한 어색함 때문에 거기까진 신경이 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꼬마는 하니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유영에게 묻는다.
“ 엄마...누구야 ? ”
순간 하니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고보니 아버지는 이미 새엄마 유영과의 사이에 아이까지 생긴 모양이다. 허나 하니가 가출을 한 뒤에 생긴 아이라면 당연히 아이는 자신의 얼굴을 모를 터. 유영도 그녀 나름대로 아이한테 설명을 해주기가 난감해서일까. 아이와 하니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진땀을 흘리며 가까스로 대답한다.
“ 응...누...누나야... ”
“ 누나 ??? ”
가까스로 그와같이 대답하고는 하니의 눈치를 잠시 보는 유영. 아이는 대충 대여섯살 정도 되어보이는 느낌인데, 그 정도 나이라면 ‘누나’라는 단어를 아주 모르지는 않을터. 허나 자신에게 ‘누나가 있었다는 말인가’ 하는 의아함이라도 순간 가졌음일까.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는 듯 유영은 아이와 하니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는데, 그러자 하니가 아이를 안심시켜주려는 듯 이와같이 말한다
“ 선생님과 그 사이 아이가 생기셨나보네요 ? ”
“ 네 ? 아...아 네에... ”
하니의 물음에 얼떨결에 그와같이 대답한 유영.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아이들은 방안으로 들여보낸다. 그래야만 하니와 좀 더 편하게 부담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헌데 조금전 하니가 보았던 5살 남짓으로 추정되는 사내아이 외에 그 뒤를 따라 쪼르르 방에서 나오는듯한 아이가 한명 더 있었다. 그러니 유영은 그 사이 하니의 아버지 안승윤과의 사이에 아들 둘을 낳은 것이다. 유영은 아이들을 일단 방으로 들여보낸뒤 하니를 보며 말한다.
“ 미안해요. ”
“ 네 ??? ”
“ 제가 아이를 갖는걸 어떻게 생각할지...그걸 생각했어야 하는건데... ”
어쨌거나 전실자녀가 있는집에 재취로 들어와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쉽게 결정할수 있는 문제가 아닌것만은 분명하다. 헌데 설상가상 유영은 하니가 집을 나간 그 7년사이에 남편과 사이에 아들 둘을 낳은 것 아닌가. 그때문에라도 미안한 마음에 사과의 말을 건넨것인데, 의외로 하니는 덤덤하다.
“ 괜찮아요 뭐.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나저나 말씀은 낮추
셔도 된다니까요. ”
원래 이전에 하니와 함께 살때는 그래도 어린 학생이란 만만함 때문에 대체로 유영도 반말투로 하니를 대했었다. 헌데 지금은 7년만의 재회인데다 이미 어른까지 되어있는 몸이라서 여전히 쉽게 말을 놓지 못하는 상태. 방금전 자신이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 두명 때문에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된 하니에 대한 미안함 떄문에라도 다시 존대말로 말투를 바꾸기까지 한 유영. 하니와 유영의 사이는 그렇게 어색한 기류가 쉬이 가시지를 않는다.
“ 하니야... ”
저녁때가 되어 귀가한 승윤이 딸 하니를 보고는 역시 매우 놀랐다. 7년만에 그것도 아무런 사전 통보도 언질도 없는 갑작스러운 방문이 아닌가. 일단 식사시간이니 승윤은 아내에게 하니에게 저녁 대접이라도 좀 해달라는 당부를 하고 유영은 일단 별다른 거부반응은 없이 저녁을 차려준다. 그 식사자리에서 하니가 승윤을 보며 말한다.
“ 죄송했어요 아빠. ”
승윤이 그런 하니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무슨말을 대체 어찌해야할지. 한편 유영은 유영대로 부녀간에 모처럼 대화라도 허심탄회하게 할수 있도록 자기 아이들은 방에서 별도로 저녁을 차려주어 그곳에서 먹도록 조치했다. 그러는 동안 7년만에 재회한 부녀간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실은 저...새엄마랑 화해하고 싶어 찾아온거에요. 그리고 아빠하고도요. ”
“ 화해를 하고 싶다고 ? ”
막상 자신도 새엄마의 처지가 되고보니 자신의 새엄마 마음을 이해할수 있을 것 같다고 남편 재용에게 고백했던 하니. 그 솔직한 마음을 아버지 승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승윤은 승윤대로 막상 그와같은 말을 딸에게서 들으니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 연락이라도 간간이 주지 그랬니 ? 아빠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걱정했는
지 알아 ? ”
“ 그렇다고 저 찾으실 생각 하신것도 아니잖아요. ”
하긴 그렇다. 아무리 새엄마가 싫어 가출을 했기로 그 뒤 한 1년은 친구집에서 그 뒤 고등학교 시절 3년은 청소년 보호센터에서 그렇게 보내며 아빠한테든 새엄마한테든 일절 연락할 생각조차 안 한 하니도 나름 독하다면 독한면이 있지만, 정히 작심하고 딸의 행방을 찾을 생각을 했다면 찾을 방도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사실 하니가 친구집에 머물러있던 1년여동안은 그래도 아빠인 승윤에게 간간이 연락정도는 취했었다. 하지만 그때도 ‘전 걱정하지 말라’는 안부인사 정도만 전했지 긴 이야기는 한일이 거의 없었다. - 따라서 그때가 하니 새엄마가 임신중이었을때인데도 하니는 그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여하튼 아무리 그런 불화 끝에 가출을 한 딸이었기로 하니도 하니대로 승윤도 승윤대로 생각보다 서로의 행방이나 소식에 대해 무성의한 부분이 없었다고는 말할수 없을 것 같다. 허나 어쨌든 아빠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하니가 아닌가. 가급적 승윤의 마음이 상할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조심스레 말을 이어간다.
“ 동생이 근데...졸지에 두명이 생겼네요. ”
“ 뭐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너도 그렇게 집을 나가고...무엇보다 저 사람이 아이를
간절히 원해서... ”
“ 알았어요.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 진심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맙구나. 그나저나 넌 그동
안 어찌 지냈니 ? 학교는 제대로 다녔던거야 ? ”
“ 지금 대학교 4학년이에요. ”
그제서야 딸의 근황을 묻는 아버지의 물음에 하니는 순간 뜨끔한 마음에 멈칫하긴 했지만 일단 가급적 차분하게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어간다.
“ 학비는 간간히 알바를 해서 벌었고요...그리고 실은 팟캐스트를 좀 하고 있는데 그
걸로도 수입이 좀 돼요. 그래서 그걸로 살아왔어요. ”
“ 팟캐스트를 한다구 ? 니가 ? ”
그건 좀 뜻밖의 사실인지라 승윤이 다소 놀랐다는 듯 말한다. 여하튼 아버지로서 딸에 대해 가장 궁금한 부분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밥은 생계는 어찌 이어갔는지 그런 부분일테니 하니가 그점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그와같이 말한것이고, 승윤은 딸이 팟캐스트까지 한다니 다소 놀란 눈치면서도 여하튼 자기 밥벌이는 하면서 살아왔다니 그런대로 안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 그럼 지금까지 쭉 그렇게 하면서 혼자 살아왔던거냐 ? ”
“ 네. ”
사실 이와같은 대답은 정직한 대답이 아니다. 하니는 지금 스물여섯살 연상의 이혼남과 결혼 자신과 다섯 살 차이나는 의붓아들까지 있는 그런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승윤에게 일절 하지 않았다. 따지고보면 7년만에 찾아온 아버지 집 아닌가. 헌데 그런 상황에서 그 모든 사실을 말해버리면 아버지가 충격을 받으실게 뻔하니 하니는 사실 여기까지 찾아오면서도 자신의 근황을 어찌 전해야할지 그것을 많은시간 고민했었다. 하지만 일단 아직은 그런 부분은 아버지에게든 새엄마에게든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고, 앞으로 이런식으로 가끔 연락이라도 드리고 안부라도 드리면서 차근차근 지금의 근황을 말씀드리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하튼 그러니 지금 대학 4학년이고 알바나 팟캐스트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으로 알게된 아버지 승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딸이 걱정되어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 정히 니가 새엄마와 화해하고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럼 지금이라도
집으로 들어오는건 어떻겠니 ? 차라리 그게 낫지 않겠어 ? 혼자 힘들게 사는것보
다. ”
아버지로선 진심으로 딸이 걱정되고 그녀를 위하는 길이 그것일 것 같아 하는 이야기다. 허나 하니는 그 제안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는 처지. 차라리 지금 어떻게 살고있는지를 사실대로 다 말해야하는가. 그 고민까지 잠시 해보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 하니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 아니에요. 전 지금 그냥 이렇게 혼자 사는게 편하고...물론 제가 새엄마와 화해하
고 싶은 마음에 찾아온 것은 맞지만... ”
“ ??? ”
“ 그대신 제가 자주 연락드릴께요. 새엄마한테도 자주 안부전화 하구요. 하지만 제가
다시 들어와 사는건 동생들까지 생긴 마당에 오히려 그게 피차 불편해질 것 같네
요. 그냥 지금처럼 제가 나가서 편하게 혼자 살면서 간간이 전화 드리던가 할게
요, ”
“ 동생들도 자기들한테 배다른 누나가 하나 더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 것 아
니겠니. ”
“ 에이 아빠두...어린애들한테 그게 무슨...아니에요. 그건 좀 애들이 더 큰 다음에
차근차근 이야기해도 되는거죠. 아니면 제가 가끔...새엄마한테 혹시 아이들 돌보
는데 일손이 딸리면 대신 저한테 연락하라고 하세요. 그 정도는 제가 도와드릴
용의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
하니는 마치 언제부터인가 아이 돌보는 전문가라도 된 양, 어떤 이유도 없고 근거도 없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와같이 말하고 있다. - 고등학생 의붓아들과 남매처럼 친구처럼 지낸 시간은 그동안 있었어도 어린 아이들을 돌본 경험은 하니에게도 지금까지 분명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 허나 승윤은 어쨌든 하니의 이런 태도 자체가 새엄마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대로 흡족한 마음이 든다. 승윤의 권유가 있어 하니는 그날 집에서 하룻밤 묵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7년전까지 자신이 살던 집인데 이제 새엄마와 아빠 사이에 배다른 어린 동생까지 두명이나 생긴 집에서 마치 객식구처럼 하루를 묵어가게 된 셈이다. 허나 유영은 그런 하니가 행여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름 세심하게 배려까지 해 주었다. 유영은 여전히 하니의 정체를 궁금해하는듯한 자신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친척누나뻘’ 된다고 일단 설명해주고 이 다음에 좀 더 크면 차근차근 설명해주겠다는 그런식의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졸지에 유영의 아이들에게 친척누나가 되어버린 하니는 그런대로 그날 밤 어린 아기들과 잘 어울려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같은 아버지에서 나온 핏줄이라고 끌리는 그 무엇이라도 있는것인지. 하니는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빠와 새엄마는 물론 아직 어린 이복동생들에게도 ‘자주 놀러올게’ 하는 인사까지 건네고 집으로 돌아갔다.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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