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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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EXID 솔지 (4) 걸그룹 팬픽 7 (마마무,EXID)




                                    부제 : 프랑스 작가가 쓴 탈북자 수기





 “ 이봐요, 좀 조용히 할수 없어요 ? ”

 ‘똑똑’ 문을 노크한뒤 방문이 열리자 전 바로 그와같이 항의하였습니다. 처음엔 불어로 말했는데 문을 연 첫 번째 여성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게 확실해 보였습니다. 한국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일수 있겠다는 짐작에 일단 불어로 말해본것이었는데, 아무래도 못알아 듣는 눈치라 다음엔 영어로 말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못알아듣는 눈치는 마찬가지였습니다.

 “ 어디서 오셨어요 ? ”

 헌데 그때쯤 반갑게도(?) 한국말이 들려왔습니다. - 프랑스 여자가 다른 외국여성이 한국말을 쓰는 것을 반가와 할수도 있다니. 참 희한한 광경인것만은 틀림없습니다. - 아까 이들이 뭔가를 사들고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갈 때 떠들던 수다에서도 제 방까지 들려오던 수다에서도 이들이 확실히 불어나 영어를 쓰는 서양여성은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항의는 고사하고 피차간에 아예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막상 항의를 하기위해 방문을 두드리던 순간에도 그 걱정을 잠깐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언어로 해야 제대로 의사소통이 될지, 아마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번쯤 해봤을법한 고민을 저 역시 그 짧은 순간 했던것입니다. 헌데 다행히도 이 한국땅에서 그나마 소통과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대화. 한국어가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불어나 영어를 모두 알아듣지 못하는 듯 했던 첫 번째 여성과는 달리 두 번째 다가온 마른 체구의 여성은 확실히 한국말을 쓸줄 아는 여성이었습니다.

 “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인데...미안하지만 좀 조용히 해줄래요. 옆방까지 소리가 다

  들린단 말이에요. 저도 내일 소화해야하는 스케줄이 있는데...잠도 못자게 이러면

  어떻게 하나요 ? ”

 정중한 항의의 말에 한국말을 쓰는 서양여성은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제서야 저 역시 대체 이들이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온 사람들인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기에 똑같은 질문을 그들에게 건넸습니다.

 “ 헌데 어디서 왔나요 ? 프랑스는 아닌 것 같고..독일 ? 이탈리아 ? ”

 “ 러시아에서 온 유학생이에요. 그리고 얘네들은 제 친구들이고요. ”

 한국말을 쓰는 여성이 일단 그와같은 설명을 덧붙여주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러시아’에서 왔다는 소린데, 이 여성의 짧은 해명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자신은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대학생이고 이 방에 함께 있는 세명은 자신이 어릴때부터 고향에서 어울리던 친구들이다. 헌데 자신이 한국으로 유학오고나서 2년동안 통 만나보지 못해, 이번에 어떤 계기가 되어 자신이 직접 친구들을 한국으로 초대한것이라고. 그리고 2년만의 재회다보니 너무 반가움에 그동안의 회포를 푸느라 시간가는줄 몰랐고, 옆방에 다른 투숙객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노라며 거듭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 아줌마...소주 드셔보셨어요 ? ”

 대충 그 정도에서 피차 사정에 대한 양해가 구해지고 그쯤에서 방을 나올까 했는데, 그때 침대에 앉아있던 다른 러시아 소녀 하나가 제게 그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좀 결례인 것 같아 보였는지 옆의 다른 친구가 살짝 말리며 제지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고보니 러시아 소녀 모두 네명이 함께있는 이 방엔 제 방의 침대만큼이나 넓찍한 침대가 중앙에 놓여있는것만은 확실히 똑같았고, 다만 다른 것은 그 넓은 침대가 무색해질만큼 하나가득 널려져있는것들이었습니다. 얼핏봐서 과자부스러기 같아 보이는것들 그리고 낯설어보이는 병 몇 개가 침대에 뒹굴고 있는게 눈에 띄었는데, 뭔가 술에 알딸딸 취한 느낌이라도 드는 방금전 그 소녀가 다시금 제게 이렇게 말하는것이었습니다.

 “ 아줌마도 소주 한잔 드셔보세요. ”

 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하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아까전 이 방안의 상황설명을 하던 유학생도 사과하는 의미에서라도 저희가 한잔 대접할테나 한잔 드셔보시라고 옆에서 거드는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여러차례 언급된 ‘소주’란 말이 그만 내 방으로 돌아갈까 하던 제 발걸음을 역시 멈칫거리게 만들었습니다.

 “ 이게...‘소주’라고요 ? ”

 그러고보니 전 그때까지 침대위에 뒹굴던 초록병속의 내용물 정체는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게 ‘소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한잔 종이컵에 따라 건네준 한 소녀의 술잔을 받아 마시면서 다시금 그 초록색 병을 뚫어져라 살펴본 저는 그러다 살짝 설명을 덧붙여주었습니다.

 “ 이건...진짜 ‘한국소주’가 아니에요,. ”

 “ 네 ? ”

 갑자기 이 아줌마가 무슨소리를 하는건가. 네명의 러시아 여성이 모두 어리둥절해하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씨익 웃으면서 설명을 덧붙여주었습니다.

 “ 제가 알기론 이런식의 소주는 아마 일반 서민들이 마시는 화학식 소주로 알고있어

  요. 하지만 원래 한국의 ‘전통소주’는 이것과는 달라요. 한국은 원래 예부터 대대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제사나 차례때 조상께 올려야할

  ‘전통술’이 지역마다 집집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발달해왔죠.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이런 전통소주는 거의 사라지고 그 무렵부

  터 새로 생긴게 화학식 소주에요. 그 소주가 아마 일반 서민들이 먹는 술인걸로 알

  고 있는데, 아무래도 당신들이 먹는 술은 그 진짜 ‘전통소주’가 아닌 일제 강점기

  때부터 서민들이 먹던 그 화학식 소주 같군요. (* 사실관계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만약 80년대에 한국에 와본적 있는 외국인이라면 그때는 소주에 대한 설명을 이와같이

  들었을것임)

 실제 전 한국을 자주 방문하던 시절 저를 접대하는 한국인 친구,동료들로부터 한국의 전통주를 여러차례 대접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제 한국 친구,지인들은 한국의 전통술의 유래에 대해 대체로 그와같이 설명을 해줬었고요. 그때 한국 친구,지인들로부터 들은 ‘전통술’에 대해 전 이 러시아 여성들에게 기억나는대로 대략 설명을 해준 셈입니다. 젊은 러시아 여성들은 아직 제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 막걸리는 혹시 드셔보신적 있어요 ? ”

 그 물음에 다른 세명의 러시아 여성들은 거의 동시에 ‘없다’고 답했고, 다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사용하는 러시아 유학생만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몇 번’ 마셔본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저 역시 한국의 막걸리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던 시절 몇차례 대접을 받아 마셔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소주가 각 지역마다 집집마다 전해내려오는 ‘전통술’이라면 막걸리는 오래전부터 서민들이 즐겨먹던 전통술이라는게 그 친구,동료들의 설명이었습니다. 파전이니 도토리묵이니 하는 안주와 함께 대접을 받던 경험이 새삼 새록새록 피어올랐습니다. 그나저나 요즘은 그런 ‘전통소주’가 아닌 일반 서민형 소주를 이런식으로 만들어 팔다니. 20여년만에 한국땅을 밟은 제겐 역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었습니다. 적어도 제 기억에 제가 자주 한국을 밟던 시절 한국땅엔 이렇게 생긴 소주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그럼 나머지 세분은 모두 한국엔 처음 와보시는건가요 ? ”

 유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러시아 여성은 나머지 세명을 고향에서 어릴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라고 했고 그 친구들을 자신이 직접 한국으로 초대한것이라 했는데, 아까 얼핏 보니 그중 한 사람은 한국말을 좀 하는 것 같기도 해서 겸사겸사 의아함도 생기고 해서 그와같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조금전 ‘아줌마 소주 드셔보셨어요 ? ’라고 물었던 한국말을 조금 할줄 아는 듯 하던 러시아 여성이 설명을 덧붙여주었습니다.

 “ 전 할머니,할아버지께서 사할린 교포출신이세요. 그래서 어릴때는 할머니가 김치

  나 된장을 직접 담그시는 것을 본적도 있죠. ”

 “ 아, 그래요 ? ”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 청년들이 일본이나 사할린,동남아 등지로 끌려갔다는 사실 역시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헌데 바로 그렇게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사할린에서 살게된 조선인의 손녀뻘 된다니. 한국학 전공자인 저로서도 이래저래 남다른 감회가 일지 않을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할아버지,할머니한테 들은 한국 인사말이나 단어 몇 개를 아는게 좀 있다는 것이 사할린교포 3세라는 그 러시아 소녀의 설명이었습니다. 다만 이 소녀의 경우엔 부모님대에서 러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했고, 러시아 유학생인 친구와는 바로 그곳에서 알게되어 함께 자란 친구라고 하네요.

 “ OOO은 그리고 케이팝 팬이고요 OOOO은 한국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는 진짜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게된 그런 친구에요. ”

 러시아 유학생이 나머지 두 친구에 대해서도 그와같은 설명을 덧붙여주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한사람은 사할린 교포 3세, 또 한사람은 이른바 케이팝 팬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한국과의 인연이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고 나머지 한명은 한국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고 그야말로 생전 처음 한국땅을 밟아본 그런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여하튼 제 입장에서도 묘한 인연이라면 인연일수 있어서 원래는 너무 시끄럽게 수다를 떠는 옆방 투숙객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항의를 하러 온것이란 사실조차도 깜빡 잊은채 잠시 그녀들과의 대화에 빨려들게 되었습니다.

 “ 헌데 아까 이 분은 케이팝 팬이라고 했던가요 ? ”

 “ 네, 전 OOOOO하고 OOOO 좋아해요. ”

 저로선 이름조차 생소한 – 그게 한국의 유명한 아이돌 그룹명인지조차 알리없는 – 이상한 이름 두 개를 연달아 입에 담으며 답한 여성. 저도 프랑스에 케이팝 팬이 있고 그런 아이들 때문에 고민이라는 부모들끼리 무슨 상담 사이트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진 들은바 있지만, 솔직히 그때만해도 그 머나먼 유럽땅에 그것도 젊은 사람들중 한국의 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 반신반의 하였습니다. 솔직히 그런 이야기 자체가 좀 잘못 알려진 소문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눈앞에서 소위 그런 ‘케이팝 팬’이라는 20대 초반의 러시아 여성을 만나고 나니 기분이 다시 묘해졌습니다.

 “ 케이팝이란게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 ”

 솔직히 전 ‘케이팝’이란 단어를 입에 담는 이 순간까지도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 한국의 전통음악 하면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거문고, 가야금 타는 국악 아니면 심청전,춘향전 같은 판소리,창극일 60대 후반의 한국학 전공 여성 아닙니까. - 그래서 전 기왕 말이 나온 것 대체 그 케이팝이란게 뭐고 그게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빠져들었고, 이 먼 한국땅까지 굳이 올 생각을 하게 만든것인지 – 물론 이 여성은 그전에 한국으로 유학온 친구가 있어 그 초대로 오게된 것이기도 하지만 – 그 이유나 좀 알고싶어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 이 소녀는 제법 긴 시간 사뭇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는 듯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 가수에 대한 예찬론을  장시간 늘어놓더군요. 러시아어로 긴시간 일장연설이라도 하듯 하는 이야기를 한국말을 하는 러시아 유학생이 통역을 해줘 알아들을수 있는 말이긴 했지만 여하튼 케이팝이란게 소위 ‘중독성’이란게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이해하고 들을수 있었습니다. - 생각해보면 저 역시 막상 한국을 알아가게 되면서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역사에 어떤 ‘중독성’에 매려되어 지난 수십년 그에대한 연구까지 하게된 그런 여성인데, 그런 것을 보면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든 아니면 소위 ‘케이팝’ 같은 현대적 음악이든 한국의 문화 자체가 일단 한번 빠져들면 ‘중독성’있게 빨려드는 그 무엇이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한 듯 합니다.

 한편 한국행이 처음이라는 또 다른 러시아 여성은 이런 이야기들에 별로 흥미가 없는 듯 친구들이 따라주는 소주만 연신 받아마시고 있었습니다. 좀 너무 마신 것 아닌가 제가 더 걱정이 되어 ‘괜찮으냐 ?’고 묻기까지 했는데, 하지만 이 여성은 되려 넉살스럽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 보드카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닌데요 뭐. 그냥 물이나 쥬스같아요. ”

 옛 소련을 포함해서 러시아 사람들이 술이 세다는 이야기는 저도 오래전부터 들어왔고 보드카에 대해서도 익히 들어온 사람이긴 하지만 이렇게 넉살좋게 답하면서 그야말로 한국의 ‘서민형 소주’를 물마시듯 꿀꺽꿀꺽 마셔대는 이 여성에 순간 놀라고 감탄까지 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생전 처음 대보는 한국 술이 낯설거니 입에 안 맞을수도 있을텐데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이 여성은 이미 여러잔 꿀꺽꿀꺽 마셔댄 듯 하더군요. 얼굴이 이미 벌개져 있었습니다.

 한편 이런 것은 문화의 차이라기 보단 세대차이라고 해야하는걸까요. 러시아 여성들이 침대에 하나가득 늘어놓은 것은 인근 편의점에서 샀다는 그 ‘초록병 소주’ 외에 역시 한국산 과자류들인데 러시아 여성들은 그 초록병하며 한국의 과자봉지며 속의 내용물 빛깔과 모양새를 하나같이 ‘예쁘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저도 그 과자를 두어개 집어서 먹어보긴 했지만 딱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예쁘다’, ‘달고 맛있다’ 한국 과자 – 그보다는 스넥이라 불러야 더 적절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를 들며 연신 그런 표현을 하는 러시아 여성들과는 달리 전 그 과자들이 딱히 입에 맞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역시 과거 한국을 자주 드나들었을 때, 한국인 동료,친구들로부터 접대를 받았던 유과니 강정이니 하는 한국의 전통 ‘과자’들이 생각이 나더군요. 그 과자들은 확실히 한국의 전통미와 함께 그 느낌 자체에서도 확실히 ‘한국것’이란 생각을 들게해주는 그런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러시아 여성들이 들고있는 과자는 – 솔직히 유럽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것들이 맞긴 합니다만 – 제 머릿속에 들어있는 (약과니 강정이니 하는) 전통 한국과자 이미지와는 천만리 멀리 떨어져있는것들이라 ‘낯설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더군요. 여하튼 침대위에 이미 하나가득 늘어놓은 과자들을 ‘드셔보시라’는 러시아 투숙객들의 권유에 저도 마지못해 몇조각 먹어보긴 했지만 솔직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 그래요, 좋은 여행들 되기 바래요. 너무 늦게까지 수다떨지 말고 일찍들 자기 바

  래요. ”

 어쨌든 덕분에 수다떠는 옆방 투숙객들에게 항의를 하러 들어갔다가 되려 그네들이 권하는 한국의 ‘서민형 소주’ 몇잔과 한국의 ‘신식과자’쯤 된다고 봐야할 그 스넥류들을 들고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로 전 제 방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취중에도 원래 목적이었던 옆방 손님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려고 했던 그것만은 잊지 않았는지 ‘내일을 위해서라도 수다떨지말고 일찍들 자라’는 당부의 말은 끝끝내 입에 담았습니다. 저 스스로의 느낌에도 이미 소주 몇잔에 취해 있는게 분명하고, 러시아 여성들이 보기에도 ‘이 아줌마 이미 많이 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저를 부축하듯 달래듯 하면서 제법 친절하게 제가 쓰는 옆방까지 데려다주기도 하였습니다. 러시아 여성들은 자기방으로 들어갔고. 알딸딸하게 취한 저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쿨쿨 잠이 들었습니다.

 ‘ 어머...여기가 어디지 ? ’

 낯선곳에서 눈을떴을때의 본능적인 느낌일까요. 얼마의 시간이 지난것인지 또 지금이 과연 몇시쯤이나 되는것인지 아니면 한국식 표현대로 하자면 ‘필름이 끊기기’라도 한 것인지 눈을 뜬 순간 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일단 제가 대략 40대 시절부터 20년 넘게 살아온 프랑스의 제 집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눈을 뜨자마자 순간적으로나마 너무나 놀랐던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아, 참 여긴 한국이지...’ 하면서 겨우겨우 간밤의 일의 기억을 더듬어냈습니다.

 창밖을 보니 날은 이미 환해져있네요. 그럼 지금 대체 시간은 몇시인지 그보다는 속이 쓰림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그러고보니 간밤에 빈속에 술을 마신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원래 이용할 생각이었던 프라자호텔은 뜻밖에 호텔 이용권 자체를 아예 가져오지 않았고 호텔 관계자는 VIP 회원 명단에 아예 제가 없다는 사실까지 알려줘 그 갑작스러운 돌발상황에 막막하기 그지없었고, 그야말로 이 머나먼 한국땅에서 어떻게 이 밤을 보내야하나 막막할 때 그나마 고마운 도움의 손길이 있어 그 안내를 받아 게스트하우스까지 와서 이곳을 숙소로 잡을수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나마 잠을 좀 청할까 했는데 잠은 오지 않고, 설상가상 옆방 투숙객들의 수다소리에 아예 잠을 이룰수가 없는 상황까지 되어 그 항의를 하러 갔는데, 되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러시아 유학생과 그 친구들이라는 20대 초반의 소녀(내지는 젊은 성인여성)들로부터 자신들이 한국에 오게된 목적과 동기를 들으며 그들이 권하는 소주와 과자안주까지 받아먹었습니다. 헌데 그나마 러시아 여성들은 ‘달고 맛있어서’ 잘만 먹던 그 ‘신식과자’들은 되려 제 입에 맞지않아 몇 개 먹지 못했고, 정작 제가 한국에 자주 드나들던 시절에는 입에 대본 경험이 거의 없는 ‘서민형 소주’를 생전처음 입에 대보고 알딸딸하게 취해서는 러시아 여성들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돌아와 바로 곯아떨어진것입니다. 그야말로 전날 오후시간대부터 저녁과 밤을 지나 아침이 될 때까지 먹은 것은 거의 없는 상태로 그나마 간밤에 러시아 여성들이 권하는 한국의 ‘서민형 소주’만을 몇잔 입에 댔던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과연 제 속이 어떨 것 같나요 ?





 여기가 룸 서비스가 제공되는 무궁화 다섯 개짜리 고급호텔이 아닌 ‘게스트 하우스’라는 소규모 숙박시설이란 것은 이제 능히 판단하고 깨달을만한 여성이고, 따라서 아침식사와 이 쓰린 속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할지 그게 다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끈지끈 아픈 머리를 잠시 매만져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어제 갔던 옆방문을 다시 두드려보았습니다. 하지만 안에선 반응이 없고 문도 잠겨있었습니다.

 “ 이봐요...아직들 자나요 ? ”

 아무래도 제가 제 방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도 계속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셨을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여성들이 아직까지 잠들어있을것이라 막연히 추정해 보았는데, ‘아직 자느냐 ?’는 물음에도 그리고 몇 번이나 방문을 두드려 보았음에도 안에선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셔대더니 아직까지 단단히들 곯아 떨어졌나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1층 카운터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 안녕히 주무셨어요 ? ”

 어제 제 체크인 접수를 받은 카운터 여직원이 저를 보며 밝게 인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소규모 숙박시설에 묵게되니 가장 큰 잇점이 직원이 투숙객 얼굴을 웬만하면 거의 다 알아본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방이 몇 개 되지도 않는 작은 여관에서 전날 투숙한 몇 안되는 손님을 기억 못한다면 그건 진짜 기억력에 큰 문제가 있는것이겠죠. 하지만 손님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 방이 수십개나 되고 손님도 많을 대형 고급호텔에선 생각하거나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니 처음으로 이런 ‘소규모 숙박시설’에 묵게된 이점을 느껴보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그나저나 아직 출근을 하긴 이른 시간일 것 같은데 벌써 카운터에 나와있다니, 참 부지런한 청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저어...제 옆방에 손님들은 ? ”

 아침식사 문제를 도움을 청하기 전에 우선 그에 대한 궁금증이 앞섰습니다. 아무래도 식사는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같으니 무엇보다 어제 그 일행중엔 2년째 한국에서 유학중인 사람도 있다고 하니 그녀가 한국의 최신 정보나 지리는 저보다는 확실히 잘 알 것 같아서 그 유학생에게라도 아침식사 문제 도움을 청해볼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카운터 직원은 다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 그 러시아 손님들은 조금전에 다 같이 이미 나가셨는데요 ? ”

 벌써 어디 관광이라도 하러 외출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밤늦게까지 마셔대고 놀고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관광일정을 소화할 생각을 하다니 확실히 체력 왕성한 젊은 여성들이로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젊은 시절엔 독한 북유럽 와인을 몇잔 마시고도 다음날 멀쩡한 정신으로 출근할수 있었던 기억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걸 생각해보면 지금은 확실히 – 어제 낮부터 쫄쫄 굶은탓도 있지만 – 저도 어쩔수 없는 나이든 노인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실감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러시아 여성들의 혈기왕성함만을 감탄하고 있을수는 없는 상황, 결국 카운터 직원에게 제가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 이 근처에...아침식사를 할만한곳이 없나요 ? ”

 “ 아침식사요 ? ”

 카운터 직원은 잠시 멈칫하는 듯 하더니 일단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 밖으로 나가려는 듯 했는데, 의아해하는 제게 그녀는 ‘어서 따라오라’고 재촉했고 하는수없이 저는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카운터를 비워도 되는것인지 좀 의아해서 다시금 직원에게 말을 건네봤지만 ‘그걸 아시는 분이면 다른말씀 마시고 어서 따라오기나 하시라’는 듯 어서 제게 발걸음만을 재촉하는 직원. 결국 묵묵히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골목길 몇군데를 쭉 지나 뜻밖에도 프랑스 전문 빵집이 하나 나왔습니다. 대체로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의 상가건물과 주택가 몇군데를 지나서 그녀가 안내해준곳이 그곳이었습니다. 직원은 ‘어서 들어오시라’고 거듭 절 재촉했고, 저야 더 망설일 이유는 없어서 일단 그녀를 따라 프랑스빵 전문점에까지 들어갔습니다.

 “ 이분 아침식사를 좀... ”

 빵집 직원에게 카운터 직원이 직접 그렇게 이야기까지 하고, 여기서부턴 그냥 제가 이야기해도 될 것 같아서 ‘제가 주문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전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입니다. - 카운터직원은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바로 연락주시라 하고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고 전 빵집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에 앉는데 순간 좀 후회가 되더군요.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 빵집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괜히 이 분위기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간밤에 빈속에 마신 술 때문에 쓰린 속 탓일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딱딱한 빵조각을 우적우적 씹어먹을 생각을 하니 고향의 맛(?)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다시금 막막한 느낌이 들었던것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프랑스식 해장스프를 팔 것 같지는 않고, 일단 주문한대로 아침식사용 빵이 나오길 기다려 그것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좀 엉뚱하게도 이 순간 생각난 것이 ‘국물’이었습니다. 한국을 자주 드나들던 시절 저는 식사는 주로 호텔에서 해결했고, 세미나나 행사에 참석할때는 대개 그곳에서 제공되는 식사 아니면 행사 주최측이 초대한곳에서 고급 한정식으로 ‘거하게’ 한끼 식사를 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물’이란 것을 처음 접해본 것은 그런곳은 아니고 한국인 친구나 동료의 집에 식사초대를 했을때였습니다. 아마 ‘콩나물국’과 ‘육개장’이란 것을 그때 대접받은 기억이 있는데, 솔직히 그때는 무슨 맛인지도 몰랐지만 웬지 ‘해장용’으로는 스프보다 국물이 더 어울리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술 때문에 속이 쓰려 뭐든 들어가도 바로 토할 것 같은 순간에는 우적우적 씹는 음식물보다는 그런 액체류가 더 낫지 않을까 그게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적어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문화이기도 한 ‘국물’은 서양의 ‘스프’보다는 확실히 머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 국물 자체가 가난하던 시절 먹을것이 없을 때 고기나 채소같은 식재료를 넣고 끓여 맛이라도 우러나게 하기 위해 만든것이라지만, 적어도 술 때문에 속이 안 좋을때는 ‘스프’보다는 ‘국물’이 나을 것 같다는게 한국학 전공자인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와서 친절하게 프랑스 빵집에까지 안내해준 카운터 직원에게 투정을 부릴수도 없는일이고 여기서 그렇게 어제 낮부터 쫄쫄굶어 주린 배를 간신히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니 카운터 직원은 웃는 얼굴로 ‘식사 잘 하셨냐 ?’고 인사하더군요. 괜시리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픈 심정을 자제하고 전 제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꾸물거릴 시간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 탈북자 수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프랑스에서 내줄수 없겠느냐는 탈북자를 돕는 단체(기독교 선교단체)의 제안을 받고 일주일 일정으로 그것도 실로 20년만에 한국땅을 밟게된 사람. 원래 약속대로라면 오늘 그 선교단체 사무실로 가서 제가 만나야 할 인터뷰 대상인 탈북자를 만나야 합니다. 원래 제가 한국에 들어오면 마중도 나가주고 숙소도 자기네들이 직접 잡아주는 환대까지 약속했던 관계자들. 하지만 전 그때 그럴필요 없다고 숙소는 제가 알아서 충분히 잡을수 있으니 한국에 귀국해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큰소리를 뻥뻥쳤고, 덕분에 전 어제 하루종일 그 고생을 해야했던것입니다.

 원래 한국 도착 예정 날짜와 시간은 미리 선교회 관계자에게 알려주었고, 한국에 도착한뒤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었습니다. 사무실 위치도 그때 관계자가 알려주긴 했는데, 그때 사무실 주소와 위치를 알았다고 해서 가는 방법까진 알수있는게 아니고 다시 사무실이나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봐야 합니다. 헌데 그걸 전날에 이미 상의를 했었어야 하는데 어제 그 경황에서 사무실에 몇시에 도착하고 그곳까지 가는 교통편이 어떻고 그걸 상의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어쨌든 오전중엔 사무실에 도착해야할테니 전 일단 그곳으로 전화를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 나눔 선교회입니다. ”

 “ 저 프랑스에서 온 소피윌즈입니다. OOO 선생님과 지금 통화가 가능한가요 ? ”

 “ 잠시만요. ”

 잠시후 전화를 받은 상대가 제가 찾고자 하는 관계자에게 연결을 시켜주었고 관계자는 저와의 오랜만의 통화에 반가와하면서도 어제 저의 그 고생을 혹시 어떻게 알기라도 하는것인지 ‘저희가 숙소를 잡아드렸어야 하는건데...’ 하며 미안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여하튼 그 문제를 제가 지금 길게 이야기하고 싶진 않고 오전중 사무실로 찾아 뵙고 싶으니 위치와 가는 교통편을 알려달라고 했고 관계자는 친절하게 그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전 잠시후 숙소를 나섰습니다.



-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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