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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EXID 솔지 (3) 걸그룹 팬픽 7 (마마무,EXID)




                                   부제 : 프랑스 작가가 쓴 탈북자 수기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날이 그렇게 춥지 않은때 한국을 방문한게 다행이라 해야하는걸까요. 그러나 한때 20년 가까이 서른번도 넘게 한국땅을 드나들었고, 서울 중심가를 눈감고도 활보할수 있을정도로 지리에 익숙하다고 큰 소리 뻥뻥쳤던 이 여인은 지금 이 시간 세종로 한복판에서 ‘갈곳없는 여인’ 신세가 되어 우두커니 앉아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대체 뭘 어찌해야하나, 어디로 도움을 청해야하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프라자호텔로 가보긴 했지만 ‘예약을 하셔야 한다’는 그리고 ‘소피 윌슨이란 이름은 VIP 명단에 없다’는 이제 짜증이나 귀찮음의 단계를 넘어서 쌀쌀맞고도 차가와진 호텔 직원의 반복되는 대답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덕분에 이 60대 후반의 프랑스 노인은 세종로에서 프라자호텔까지 결코 만만찮은 거리를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서너번이나 더 왕복했을 따름입니다.

 세종문화회관까지 다시 와서 그쪽 돌계단에 우두커니 앉았습니다. 이제 어느덧 어두워진 세종로 밤거리. 그리고 그 밤거리 한가운데 도움을 청할곳이 마땅치 않은 프랑스 노인은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있을 따름입니다. 이 상황에서 다른곳 도움을 청할때가 어떤 마땅한곳이 있을까요. 정연태 교수는 연락이 되지않고 은현숙 피디나 한영준 보좌관은 20년만에 찾아와서 이런 도움을 청하기가 다소 난감합니다. 그나마 도움을 청할곳이 있다면 제게 탈북자 수기 집필의뢰를 해왔던 선교단체 관계자 그리고 주한 프랑스 대사관이 전부일것입니다. 허나 한국땅을 서른번도 넘게 소싯적에 다녀갔고 심지어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까지 두 번이나 프랑스에서 써낸 그야말로 ‘자타공인 한국 전문가이자 권위자’쯤 되는 것으로 알고있을 그 사람들에게 사실은 지리도 모르고 숙박시설을 어찌 이용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허풍선이 노인이었던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그럼 대사관에 전화를 한다면요 ? 설마 대사관에서 절 일주일씩이나 재워주진 않을터이고 아마 프랑스로 돌아가는 항공권이라도 딴에는 신경써서 구입해서 제가 사는곳으로 돌려보내주는 것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일것입니다. 따라서 그 어느것 하나 지금 제 상황에선 도움되지 않는 일이라 전 여전히 그래도 어두워지니까 추운정도는 아니라도 살짝 쌀쌀해지고 있는 세종로 밤공기를 느끼며 세종문화회관으로 오르는 돌계단 한쪽에 난감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쭈그리고 앉아있을 따름입니다.

 생각해보면 20년동안 한국도 서울도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것을 이제 진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국제공항이 이제 김포공항이 아닌 ‘인천 국제공항’이 되어있다는것도 서울 지하철 노선이 어느덧 4호선까지가 아닌 그 두배 이상이나 되는 많은 노선량으로 수많은 수도권의 한국인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적잖이 애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무엇보다 교통카드 중심의 첨단 디지털 시스템으로 이용되고 있다는것도 제가 이번에야 처음 알게된 20년 사이 한국과 서울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프라자호텔에서 제가 더 이상 VIP 회원이 아닌 것은 어떤 사무착오나 오류 그 외에 제가 모르는 다른 속사정이 있는것일수도 있겠지만, 새삼 말이 나온김에 하는 말이지만 그 20년 세월동안 있은 변화중 가장 못마땅하게 여겨진 것은 바로 이 세종로 거리의 변화입니다.

 기억에 이 거리는 원래 10차선으로 되어있는 엄청나게 넓찍한 차도였습니다. 20-30년전에 수도없이 한국땅을 밟고 이 일대를 누볐던 저는 그 시원하게 넓게 뻗은 도로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헌데 지금은 여기가 ‘광화문광장’이라는 이름조차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그 넓찍하던 차도는 비좁아터진 길목으로 바뀌어버렸더군요. 대체 어떤이의 머리에서 이런 머저리같은 ‘관광상품 아이디어’를 개발했는지 그 담당자나 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이 한국인들이 역사속에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양대 위인임은 그 시절에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두분을 기린답시고 그 넓찍한 10차선 도로를 절반 이상을 없애버리고 그 한가운데에 저런 터무니없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 이런 터무니없는 정도를 넘어서 허무맹랑해 보이기까지 한 관광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이가 누군지 혹시 안다면 저부터라도 나서서 이 나라 국정 최고지도자에게 그 담당자부터 당장 문책하라는 건의부터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세종로 넓은 10차선 도로를 반이나 줄이고 저따위 터무니없는 광장을 만들어놓은것이 그게 왜 바보짓인지 그것을 조금만 설명해드릴까 합니다. 적어도 그 시절 한국을 처음 방문한 VIP급 고객들에겐 도시 한복판에 저렇게 넓찍한 차도는 꿈에도 상상못할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워낙 역사가 오래되어 낡아빠질 지경인 유럽의 도시들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LA나 뉴욕 도심을 혹시라도 자료영상 같은데서 보신분들이라면 아실것입니다. 네, 웬만한 선진국 도심 한복판에 그런 넓찍한 차도 웬만해선 잘 없습니다. 그러니 세종로 그 넓찍한 10차선 도로만큼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고두고 자손만대 세계널리 자랑해도 될만한 한국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헌데 그 공간을 절반 이상을 잘라내어 저런 터무니없는 광장인지 공간인지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하다니요. 기왕 말이 나왔으니 더 덧붙이지만 세종대왕이 계실곳도 저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광화문을 상징하는 동상은 이순신 장군 한분만으로도 그 위용과 위엄은 차고도 넘침이 있었습니다. 기왕이면 이곳에 세종대왕님도 같이 모시고 싶은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왕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전 그 장소를 경복궁이나 창경궁 같은곳으로 추천했을것입니다.

 듣기로 한국은 90년대에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며 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그 자리에 조선시대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일. ‘과연 한국인 답다’며 저 역시 찬사와 지지를 보내 마지않던 일이었습니다. 허니, 기왕 세종대왕 동상을 모시려거든 그 자리가 어땠을까요 ? 창경궁도 원래는 조선의 궁궐이었던곳을 일제가 창경원이란 ‘동물원’을 만들어놓아 격하시키고 조선인과 왕실의 품위와 자존심을 훼손시킨 그 상징적인 공간 아닙니까. 창경원도 아마 그래서 80년대 들어 창경궁으로 복원시킨 한국인들이 90년대엔 조선 총독부 건물까지 들어내는 과감함까지 보여준 한국인들이 왜 세종대왕 동상을 그곳에 모실 생각은 하지 않고 저렇게 광화문 한복판에 떡하니 만들어놓는 터무니없는 짓을 벌였는지, 미관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결코 보기좋은 그림이 아닙니다. - 조선왕조 500년을 상징하는 임금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분을 궁궐에 모시지 않고 세종로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게 만든 것 자체가 너무나 무엄한 짓 아닙니까 ?

 생각해보니 지금 제가 광화문 광장이 어쩌구 세종대왕 동상이 어쩌구 한가하게 그것 탓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군요. 이러는 동안에도 밤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정말 이대로 세종로 한복판의 이 갈곳없는 프랑스 노파는 여기서 밤을 지새기라도 해야하는것인지, 무엇보다 앞으로 일주일 원래 탈북자 수기를 소재로 소설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 모델이 될 탈북자 면담을 위해 찾은 한국에서의 일주일 일정을 어찌 소화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한 이 여인은 그 생각을 다시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지경이었습니다. 무심한 행인들은 서울 한복판에 이 밤늦은 시간에 푸른눈에 금발의 나이도 제법 들어보이는 서양인이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좀처럼 보기 힘든 신기한 풍경으로 느껴지기라도 하는지 흘끔흘끔 거리며 자신들끼리 수군거리며 지나가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 다 버리고 정말 선교회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야하는것일까. 사실 알고보니 서울 지리도 숙박시설 이용법도 잘 모르는 ‘허풍선이 노인’임을 솔직하게 자백하는것이나 다름없음에도 그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는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순간 가장 합리적이고 쉬운 도움요청 방법은 절 이곳으로 부른 이들에게 직접 연락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아 옷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스마트폰으로 손이 갈 무렵이었습니다.

 “ 혹시 뭐 도움이 필요하신게 있나요 ? ”





 순간 어떤 구원의 손길이라도 받은듯한 느낌이 든것일까요. 단지 ‘도움이 필요하냐 ?’는 질문을 받았을 뿐인데도 저는 순간 눈이 번쩍 뜨여지는 듯 그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라보니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선한 눈빛을 가진듯한 20대 정도의 한국 청년 하나가 다가오며 제게 말을 건네는것이었습니다. - 전 저 자신이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여자라는 사실조차도 그 막막하고 답답했던 긴 시간동안 잊고 있었나봅니다. 여하튼 다가오면서 말을 건네온 청년은 다시금 이와같이 말했습니다.

 “ 아까부터 여기 계속 앉아계신걸 봤어요. 처음엔 그냥 무심히 지나쳤는데...아무래

  도 뭔가 심상찮아 보여서요. ”

 60대 후반의 푸른눈의 외국 여성이 무거운 짐가방까지 옆에 있는채로 긴시간 세종문화회관 옆 돌계단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은 분명 한국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을것입니다. 누가봐도 분명 ‘심상찮아 보였을’ 그 광경에 그때까지 왜 누구하나 말 걸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것인지 그에대한 원망감까지 생기면서 전 일단 저의 상황을 간략하게 청년에게 설명했습니다

 “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인데...문제가 생겨서 원래 묵어야할 호텔에 투숙할수 없게

  생겼어요. ”

 “ 그럼 지금 숙박을 할곳이 없어 이러고 계시다는 말씀이신건가요 ? ”

 남자는 자신이 통역사가 되고자 준비하는 학생임을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제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여성임을 확인한 이상 외국어로 굳이 대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대화는 그때부터는 한국말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오늘 이 근방에 저녁약속이 있어서 찾은것인데, 아까 한두시간전에 이쪽에서 뭔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아있는 제 모습을 봤다는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 이미 많은 한국인 행인들이 그리했던것처럼 – 헌데 자신이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기까지 왔을때도 아까전의 그 의문의 외국여성(바로 저)이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다가왔다는 청년. 제가 지금 당장 잘곳이 없는 처지임을 거듭 호소하자 자신이 숙박할만한 시설로 안내를 해주겠다며 이내 곧 택시 한 대를 잡아 그쪽으로 저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 OO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가주세요. ”

 게스트 하우스 ? 택시기사에게 청년은 그와같이 말하고 잠시후 택시는 ‘OO동 말이냐 ?’면서 아마 자신이 가야할 지역을 확인하듯 그와같이 묻고 택시는 이내 곧 출발하였습니다. 헌데 ‘게스트 하우스’라는 말에 순간 마치 그런곳을 처음 들어본 사람인양 순간적으로나마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나 ‘렌트 하우스’ 같은 시설은 프랑스에도 물론 있고 한국으로 치면 여관이나 모텔 정도에 해당될법한 소규모 숙박시설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전 왜 그때까지 그런 소규모 숙박시설에라도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것일까요 ? 아니 그보다는 여관이 되었든 게스트 하우스가 되었든 전 그러한 한국의 소규모 숙박시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대개는 학술대회 참석차 또는 유관단체 행사에 초청되어 참석했을때는 늘 ‘프라자 호텔’이나 ‘OO 호텔’쯤 되는 무궁화 다섯 개짜리 일류 고급 호텔에만 묶었던 탓인걸까요. 솔직히 전 청년에게 안내를 받아 ‘게스트 하우스’라는 곳까지 택시가 달리고 있는 그 순간까지도 한국의 숙박시설은 모두 ‘프라자호텔’쯤 되는 고급호텔만 있는것인줄 알았습니다. 이 멍청한 프랑스 노인이 알고보니 얼마나 한국 물정에 대해 까막눈이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여하튼 ‘게스트 하우스’란 곳으로 절 안내해 주겠다는 청년의 말과 함께 탄 택시안에서 전 마치 낯선 시골 노역장으로 강제납치라도 되어가는듯한 묘한 기분과 불안감으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 한국 택시가 많이 작아진 모양이네요 ? ”

 “ 예 ? ”

 청년이 안내해준다는 게스트하우스까지는 거리가 좀 되는지 시간이 다소 걸렸습니다. 생각보다 길도 좀 막히는 느낌이었고요. 그래서 다소 지루한 생각이 들어 그런식으로 통역사가 되려고 준비중이라는 청년에게 그와같이 말을 건넸습니다. 전 ‘이전에도 한국을 와본적이 있다’며 그 시절에 탔던 ‘호텔택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런 질문을 건넨것입니다.

 “ 예전에 탔던 택시는 이것보다 좀 컸거든요. 좌석도 아늑한 느낌이었고요... ”

 호텔택시란게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경까지 주로 외국인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고급 승용차’였다는 사실을 솔직히 전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잘 몰랐습니다. 또 한국을 방문하던 시절에는 – 지하철은 몇 번 이용한 경험은 있지만 –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한 경험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한국의 일반 서민들이 이용하는 택시와 7,80년대 존재했던 ‘호텔택시’가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는 것.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새롭게 알게된 흥미롭고 새로운 정보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한국의 택시란게 제가 ‘프라자호탤’등을 이용할 때 타던 유럽에서도 어느정도 사는 사람이 자가용으로나 쓸법한 그런 차종의 승용차로만 알고 있었던 저는 ‘옛날에 비해 한국 택시가 많이 작고 불편해졌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던것입니다. 그런 저의 속사정을 모르는 청년은 제게 이렇게 짤막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 그땐 아마 ‘포니’가 주로 이용되었던걸로 알고 있어요. ”

 ‘포니’라면 저도 들어본적이 있는 차종입니다. ‘현대’라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 7,80년대에는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던 그 회사가 대표적으로 제조해낸 승용차명 아닙니까. 허나 그 ‘포니’도 아마 그 순간까지 제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아있는 7,80년대의 ‘호텔택시’와는 분명 다른 차종이었을것입니다. 여하튼 그런 구체적인 속사정까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 잘 몰랐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7,80년대의 한국 사회상을 구체적으로는 알지못할 이 20대 청년과는 뭔가 겉도는듯한 대화가 두어마디 오갔을 뿐입니다. 여하튼 제 느낌으론 ‘왜 한국 택시가 20년전에 비해 훨씬 작고 불편해졌는가 ?’ 하는 느낌과 의문을 가진채, 그러고보니 저로선 생전 처음 타본 셈인 한국의 대다수 서민들이 자주 애용하는 일반택시는 – 7,80년대 호텔택시가 아닌 – 그런대로 부드러운 속도로 청년이 말한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는 ‘OO동’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한 20-30분 정도 소요되었을까요 ? 한시간까진 아니었던 것 같고 대략 그 시간이 지나서 택시는 거기서부터는 청년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지 약간의 설명이 덧붙여지는것과 함께 다소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대충 보니 주택가 같은 느낌이고 상가건물 같은것도 간간이 보이는데 이런곳에 ‘숙박시설’이 있단 말인가.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택시비까지 대신 지불해준 청년은 ‘이제 다 왔으니 내리셔도 된다’는 말을 제게 건넸고 저는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 고맙습니다. ”

 저도 또렷하게 할 수 있는 이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을 청년과 거의 동시에 택시기사에게 건넸고 다만 아직은 이 청년에게 ‘감사할’ 단계까진 아닌 것 같아 그에게까진 인사말은 건네지 않은채 계속 청년이 안내해주는 대로 뒤를 따랐습니다. 건물을 한 서너개쯤 지나서였을까요. 대충 보니 2층정도 건물 규모인 빛깔은 그런대로 깔끔해보이고 겉보기에는 숙박시설이라기보단 무슨 잡화라도 파는 가게같은 느낌의 그곳으로 청년은 절 안내했습니다.

 “ 여기가 게스트하우스에요. ”

 “ 아...네에. ”

 그제서야 영문오로 ‘guest house’라고 쓰여져있는 푯발을 확인하고 저는 그런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다시금 불안스러움과 불만도 다시금 밀려들었습니다. - 아무래도 서른번도 넘었던 한국방문 시절에는 늘 무궁화 다섯 개짜리 고급호텔에만 묶었던 프랑스 손님의 몸에 밴 관성 탓이겠죠 ? - 숙박시설에 들른다기 보단 마치 무슨 가난한 소녀가장 집안에 자원봉사라도 하러 들어가는듯한 야릇한 느낌으로 전 일단 게스트하우스 건물안으로 들어섰습니다.

 “ 며칠동안 체류하실 예정인가요 ? ”

 안으로 들어가니 카운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청년이 여직원인듯한 사람과 몇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제게 그와같이 묻는 것을 보고는 여기가 ‘숙박시설’이 맞긴 한가보구나 하는 안도감이 그제서야 밀려들었습니다. - 넓찍하고 근사한 무궁화 다섯 개짜리 고급호텔만 늘 익숙했던 여인에겐 건물 색깔만 좀 깔끔해보일뿐 작고 초라한 느낌만은 어쩔수 없는 이 소규모 숙박시설에 들어서는 기분 분명히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 일주일요. ”

 실제 제가 한국에 일주일 묵을 예정으로 왔기에 청년과 카운터직원의 질문에 연신 그와같이 답했습니다. 어차피 지금와서 다시 무슨 고급호텔 방이라도 새로 잡을수 있는 처지가 아닌이상 이제 꼼짝없이 이 ‘게스트하우스’라는 소규모 숙박시설에서 앞으로 일주일을 지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어떤 답답함과 암울한 기분까지 밀려들었습니다. ‘하마터면 낯선 한국땅 한복판에서 노숙하다 얼어죽기라도 할뻔했던 여자가 거 까다롭게 이것저것 따지는것도 많네.’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할련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생각지도 못하게 ‘게스트 하우스’란 이 소규모 숙박시설에 생전처음 일주일을 체류하게 된 제 느낌은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일주일 숙박일정의 체크인 작업이 끝나고, 청년은 혹시 나중에 다른 도움이필요하거나 불편한게 있으시면 연락 주시라고 자신의 연락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떠났고, 저는 친절한 청년에게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건넸습니다. 카운터 직원은 열쇠를 손에 쥔채 제게 ‘따라오시라’고 말했고 그리고 전 직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2층으로 올라오니 방 두 개가 바로 눈에 띄었는데 그중 왼쪽방이 제가 묵을 방이라고 하면서 직원이 직접 열여주었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작은 감옥에라도 갇히는 기분’이라도 들었다면 너무 실례가 되는 표현일까요 ? 프라자호텔의 그 고급스러운 방이 늘상 익숙해있던 저로선 ‘게스트 하우스’란 소규모 숙박시설임을 감안하고 그런 큰 기대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것인데, 막상 방안으로 들어서니 넓찍한 침대외엔 딱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작은방에 마치 ‘피고 아무개는 이제부터 이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는 선고라도 받은 죄수마냥 다시한번 아찔한 감정이 밀려들었습니다. 한 몇초정도 그렇게 방안으로 들어서진 않고 현관에 멍하니 서있는 제가 의아하게 느껴졌던것일까요. ‘신발을 벗고 들어오시면 된다’고 직원은 다시금 친절하게 제게 설명해주었고 전 그 말에 방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처음엔 방 한가운데 크고 넓찍한 침대 외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는데. 허나 그 침대가 사실상 그 좁은 방 면적의 70퍼센트 이상은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라서 답답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금 살펴보니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쪽에는 낮에 깨어있을 때 쓰라는것인지 작은 사각형 소파가 하나 놓여있기도 했고 한쪽에는 화장대 대용쯤 되는것인지 거울 하나가 딸린 아주 작은 테이블 하나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그 큰 침대 외에는 다른 시설이나 도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하는 작은 방. TV도 냉장고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자 직원은 다시금 손짓을 했습니다. 몰랐는데 침대 윗머리쯤에 또다른 방문 같은 것이 하나 보이더군요. 그리고 그 안이 ‘욕실’이라고 직원이 설명하면서 ‘씻을 때’ 이곳을 사용하시면 된다고 역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직원이 아무리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하더라도 무궁화 다섯 개짜리 고급호텔만을 20년동안 사용해온 저같은 사람에게 성에 찰리는 없을텐데 말입니다.

 그나마 욕실의 깔끔함이 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소규모 숙박시설에 비치되어 있는것이라곤 믿겨지지 않을만큼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있는 비누,샴푸,치솔,치약등의 세면도구. 그 외 찬물,더운물 사용법등, 마치 직원은 제가 샤워기로 찬물,더운물을 돌려가며 사용하는 법도 모르는 머나먼 아프리카 미개국쯤에서 온 손님이라도 되는양 아주 세심하고 친절하게 일일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전 대체로 덤덤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을 건넸고, 욕실 사용법 설명을 다 마친 직원은 편히 쉬시라고 하고는 그쯤에서 방을 나갔습니다.

 어쨌든 ‘묵을수 있는 방’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그제서야 밀려와 일단 아무런 생각없이 털썩 침대위에 누웠습니다. 적어도 불과 몇십분전까지만 해도 도움을 요청할만한 곳도 마땅찮고 딱히 뾰족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던 이 프랑스 여인은 그제서야 ‘잘 방’이 생겼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안심이 된 것입니다. 무궁화 다섯 개짜리 고급 호텔에만 익숙해있던 여인에게 이런 소규모 숙박시설이 그렇게 마음에 드는 숙박시설은 아닌것만은 분명하지만 하마터면 진짜 이대로 한국땅에서 노숙이라도 하다 돌아가야 하는것인가 하는 아찔함까지 밀려들었던 제게 이젠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한 시름 놓은 감정이 든 것입니다.

 잠시 그렇게 누워서 지친몸을 좀 쉬다가 조금뒤 씻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갈아입을 옷을 일단 두어벌 가방에서 꺼낸뒤 욕실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욕실만큼은 ‘소규모 숙박시설’이라곤 믿겨지지 않을만큼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기분만이라도 다시금 무궁화 다섯 개 고급호텔에 투숙한 투숙객의 느낌이라도 가져보면서 목욕을 다 마친 저. 그리고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침대에 다시 누웠습니다.

 피곤함 때문에라도 금방 잠이 들줄 알았는데 시차적응 문제 때문인지 잠이 바로 오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잠깐 방에서 나와봤습니다. 아까 처음 2층으로 올라올때는 방이 두 개밖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다른쪽에도 방이나 다른 투숙객이 있나 하는 궁금함이 잠시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소규모 숙박시설이라도 방 두 개만으로는 수익이 맞지 않을텐데 하는 궁금함과 걱정까지 들었고요. 그러고보니 뒤쪽에 다른 복도가 보였고 그쪽으로 가보니 또 다른 방이 두 개정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서 그쪽에도 방이 있나 해서 올라가보니 그곳은 방은 아니고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었습니다. 그렇게 방 네 개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규모는 작은 ‘게스트 하우스’ 그게 오늘부터 제가 일주일을 묵게될 숙소가 된 것입니다.

 옥상까지 잠깐 올라가보고 내려올때쯤 뭔가 왁자지껄 수다소리가 들리더군요. 언뜻 보니 20대 정도로 추정되는 서양여성 서너명 정도가 2층으로 올라오는게 보였습니다. 얼핏 들으니 영어나 불어를 쓰는 것 같지는 않고, 여하튼 자신들만의 언어로 뭔가 수다를 떠는듯한것만은 분명한 여성. 나이많은 제가 이쪽에 있는 것을 보자 순간 무안해졌는지 괜한 인사까지 저한테 살짝 건네고는 그녀들이 향한곳은 제가 쓰는 방의 옆방. 그러고보니 제 방 바로 옆에 투숙해 있는듯한 서양 여성들이었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뭔가 손에 비닐봉지안에 하나가득 사들고 들어오는 그런 분위기였는데, ‘대체 뭐하는 여성들이고 이 시간에 대체 뭘 사갖고 오는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습니다. 혹여 유학생이라면 이런 숙박시설에 묵지는 않을테고 관광객인가. 아니면 제가 한때 학술대회나 행사 참여차 한국에 들르곤 했던것처럼 그런것과 관련되어 한국을 방문한 여성들인가. 저는 한국학을 전공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고유한 역사에 흠뻑 빠져들었던 그런 사람이긴 합니다만, 냉정하게 따져서 솔직히 한국이라는 나라는 서양의 젊은 여성들이 굳이 ‘관광’까지 올만한 그런 매력적인 나라는 아닙니다. 거리상으로도 멀고, 유학을 목적으로 오는 학생도 ‘설마 그렇게까지 많을까’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질만한 솔직히 그런 나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더 제 옆방에 투숙해있는 젊은 여성들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적어도 20년전까지 서른번도 넘게 한국을 자주 드나들었던 저의 상식에 한국은 유럽의 젊은 여성들이 관광을 올만한 그렇게까지 매력적이고 가까운 나라도 아니고, 또 유학을 올만한 이유가 있는 여성이 그리 많지도 않은 그런 나라입니다. 방금 그 여성들이 자신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사용하던 언어는 확실히 불어나 영어는 아닌듯했지만, 설사 독일이나 스페인 혹은 이태리 여성이라도 마찬가지일것입니다. 혹시 그럼 프랑스에 있을 때 최근 소문으로 들었던것처럼 요즘 케이팝인가 뭔가에 빠진 젊은 유럽 여성들이 제법 된다더니 그럼 그것 때문에 그 무슨 공연이라도 보러 이 먼 한국까지 오기라도 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 하지만 단지 케이팝 공연까지 보겠다며 스무살 전후한 어린 여성들이 유럽에서 이 먼 한국까지 온다면 부모 입장에선 정말 그 고민이라도 서로 상담하고 주고받는 사이트나 카페라도 하나 개설하고도 남을 일일것입니다.

 하지만 초면이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뜸 ‘대체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냐 ?’고 물을수도 없는 일이기에, 그것도 이 밤늦은 시간에 밖에서 뭔가를 잔뜩 사갖고 들어오기까지 한 서너명 규모의 젊은 여성들의 정체에 대한 궁금함을 거듭 간직한채 전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국땅에서 늦은 오후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숙소문제로 인한 차질로 세종로 한복판에서 긴 시간을 허비하고 배회했기에 그 피곤함과 지친몸 때문에라도 금방 잠이들줄 알았는데, 그보다 시차적응 문제가 더 크게 작용을 한것일까요. 어찌된 일인지 바로 잠을 이루진 못하겠더군요. 하지만 그 문제보다 결정적으로 제 수면을 방해하는 문제가 곧이어 생겼습니다. 실은 아무래도 조금전 그 젊은 서양여성 투숙객 일행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수다소리가 곧바로 들려왔습니다. 자신들끼리 뭐 그리 이 밤늦은 시간에 주고받을 이야기가 많은지 아무래도 방음장치는 되어있을 리가 없는 이 소규모 숙박시설의 벽을 타고 아주 사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들려왔습니다. 다만 제가 알아들을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것만은 분명했고, 제법 장시간 그녀들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 뭐 저러다 말겠지 ’ 하는 생각으로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방의 형광등불까지 끄고 말입니다. 새삼 TV도 없는 방이라는데 대한 답답함이 밀려들더군요. 처음 이 방에 들어섰을때는 그저 TV도 냉장고도 없는 방이라는데서 ‘소규모 숙박시설’임을 실감한 정도였는데 막상 이렇게 잠도 안오는데 소일거리도 마땅찮다보니 TV가 없는 방에 대한 답답함이 그렇게 밀려들었던것입니다.

 과거 한국을 방문하던 시절 호텔에 투숙했을 때 한국 TV를 몇 번 시청한 경험이 있습니다. 학술대회나 행사 참여차 와서 그 바쁜일정 소화하기도 피곤할텐데 한국 TV까지 시청할 시간이 있었겠나 싶긴 하겠지만, 솔직히 많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밤늦은 시간에 잠이 안와서 별 생각없이 TV를 켜면서 채널을 돌리며 시청한적이 몇 번 있기는 합니다. 당시엔 한국의 방송사가 두 개의 공영방송사만 있던 시절인데 –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이 있던걸로 알고있긴 합니다만 그 방송사 역시 당시엔 공영방송에 예속되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저야 어쨌든 한국말을 어느정도 알아든는 사람이고 그러다보니 한국 방송이라고 해서 내용을 아주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한국 사극을 몇편 그때 보았던걸로 기억이 납니다. 그때 한국 체류일정이어야 보통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였으니 그때 무슨 연속극 보듯이 사극을 즐겨봤다고 할순 없겠지만 여하튼 우연히 본 사극이 몇편 됩니다. 사극이다보니 대체로 고어를 써서 저의 그 드라마속 대화내용의 이해도는 – 한국말을 어느정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 5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만 대충 그 내용만큼은 파악이 될 것 같았습니다. 대체로 그 시절 한국 사극은 임금을 둘러싼 왕비나 후궁들간의 암투라든가 임금이 죽고 새 임금이 즉위해야하는데 그 문제를 놓고 여러 왕자나 그 왕자들을 따르는 세력간의 갈등들. 그런 것을 사극 소재로 자주 삼는구나 하는것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 무엇보다 한국 사극이 주는 그 팽팽한 긴장감과 분위기만큼은 제가 실제로 한국 역사를 배우면서 특히 조선시대 왕실 이야기는 그야말로 ‘세익스피어 비극’을 방불케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는데, 한국 사극에서 받는 느낌도 그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 제가 그래서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역사를 유럽인들에게 알리는 방식은 아무래도 그런 드라마틱한 사극을 통해서가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조선시대 왕실비극을 소재로 한 소설도 한번 썼던것이고 이후에도 기회가 있으면 그런류의 소설을 몇편 더 써보겠노라는 생각까지 했던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국에 체류하던 며칠의 일정중 잠 안오던날 우연히 몇 번 보게되었던 사극은 무궁화 다섯 개짜리 고급호텔에 투숙했을때의 일이고 TV도 냉장고도 없는 이 소규모 숙박시설(게스트 하우스)에선 잠 안올 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과 한두시간전만 해도 하마터면 세종로 한복판에서 노숙을 할지도 모를 처지였던 그런 답답함과 아득함으로 가득했던 여인은, 이제 묵을 숙소가 생겨서 다행이란 감정도 그 사이 잊은채 또 다른 답답함(잠 안오는데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여하튼 이럴 때 할수있는 것은 잠을 청하는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시금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기로 했습니다. 없는 TV를 제가 어디서 갑자기 나오라고 할수있는것도 아니고 방법은 그 길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생각해보니 이 게스트하우스는 간단한 취사시설도 없습니다. 욕실은 딸려있어 몸을 씻을수는 있지만 적어도 이 방안에서 끼니를 때울수는 없게 되어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아침에 룸서비스는 되려나 ?’ 이 바보같은 아줌마는 순간 그 걱정까지 잠깐 해봤습니다. 아까 그 카운터 직원한테 아침식사와 룸서비스 문제를 문의하러 내려가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바로 ‘아줌마, 정신차려요 !!! 여기가 무궁화 다섯 개짜리 프라자호텔인줄 알아요 ?’ 이런 핀잔이라도 들을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잠이 오겠지, 시차적응 문제도 차츰 풀리겠지 하며 그렇게 누운 자세로 계속 있었는데, 아무래도 제 수면을 방해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옆방소녀들의 수다였습니다. 아무래도 방음장치는 되어있을리 없는 그 벽을 통해 그야말로 사실주의적으로 들려오는 그녀들의 수다는 그녀들의 언어는 제가 알아들을수 없는 것이 분명하나 제 수면만큼은 확실하게 방해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말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차츰 사라져가고 있었고 좀처럼 끝날줄을 모르는 그녀들의 수다는 이제 나중에는 자기네들끼리 무슨 가벼운 장난이라도 치는지 깔깔대며 벽이나 바닥을 쿵쿵 치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도대체 지금이 몇신데 저러나. 도저히 참을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 저것들이 미쳤나... ”

 왕년에 한국을 서른번도 넘게 드나들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의심되지 않을만큼 아주 사실적인 한국 욕설이 제 입에서 드디어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참을수가 없는지 결국 옆방문을 두드려보기로 하였습니다.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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