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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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라 신화'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고찰 X-FILE



 그리스 신화 ‘페드라’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의 아내 페드라가 그의 전처소생 아들인 히폴리토스에게 한눈에 반해 그를 짝사랑하게 되지만 히폴토스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오히려 그가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고 남편에게 모함하고 그로인해 히폴리토스는 죽음에 이르게 되고 페드라도 결국 자살하는것으로 끝나는 비극적 신화다. 그리고 이 페드라 신화는 그리스 작가 유리피데스에 의해 ‘히폴리토스’란 제목의 그리스 비극으로 재창조되고 16세기의 작가 라신 역시 ‘페드라’란 제목의 희곡을 남기게 된다. 계모와 의붓아들간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야릇한 소재가 제법 많은 작가에게 상상력을 북돋아준 덕분일까. 이 페드라 신화이자 비극은 20세기에도 동명의 영화로 60년대에 제작된바 있고 역시 유사한 스토리 구조의 소설이나 영화가 종종 나온적이 있다. 유진오닐의 희곡 ‘느릅나무 밑의 욕망’도 따지고보면 저 비극을 착상동기로 삼아 만들어진 셈이다.


 헌데 동양권에도 저 페드라 신화와 유사한 스토리구조를 갖춘 이야기가 몇 개 있다. 우선 호동왕자의 이야기로 고구려 3대왕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왕자는 적국의 공주인 낙랑공주와 자명고에 얽힌 비극적 사랑으로도 유명하지만 대무신왕의 원비(元妃 : 정실부인)로부터 모함을 받은 이야기로도 알려져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호동왕자는 갈사왕(曷思王)의 손녀인 대무신왕 차비(次妃)의 소생으로 대무신왕의 원비는 ‘호동이 자신에게 음란한 짓을 하려한다’하고 모함한다. 허나 왕이 처음엔 믿지않자 원비는 거듭 간하고 비로소 왕이 격분하자 호동은 ‘어머니의 악함들 드러낼순 없다’며 자결하기에 이른다.


 다만 다른 것은 페드라 신화는 어디까지나 ‘그리스 신화’속에 나오는 이야기일뿐이지만 호동왕자 이야기는 삼국사기란 역사서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물론 저 호동왕자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었을 가능성에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일단 대무신왕의 즉위당시 나이(15세)를 감안하고 호동왕자의 기록이 나오는 때(대무신왕 15년)로 미루어 호동의 나이를 추정하면 최대한으로 나이를 잡아도 10대 중반을 넘을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페드라는 어쨌든 젊은 후처인 반면 호동의 경우 그를 모함하는 원비가 대무신왕의 첫 번째 부인이다. 당연히 호동의 어머니인 차비보다 나이가 많았을것으로 추정되며 그를 감안하면 결국 원비는 호동에게 실제 나이차이로도 ‘어머니뻘’이 된다. 만약 원비의 나이를 30대 중반 정도로 추정한다면 10대 중반의 사춘기 소년을 3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음란한짓을 하려든다’는 식으로 모함했다는것도 상식에 맞지않고 이를 곧이든는다는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물론 이런식의 비슷한 스토리구조 이야기는 중국사서 사기(史記)에도 등장한다.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제환공의 딸 제강이 진나라 임금에게 시집을 갔는데, 그 제강을 아들인 진헌공이 차지하게 되어 두 사람 사이에 ‘신생(新生)’이란 아들이 태어난다. 헌데 이후 진헌공도 융족을 정복할 때 ‘여희’라는 여인을 얻게된다. 헌데 이 여희가 진헌공과의 사이에 해제라는 아들을 낳게되자 이 아이를 태자에 올리기 위해 진헌공의 아들 신생을 ‘자신을 유혹하려 든다’고 모함하여 신생을 자살에 이르게 한다.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가 전혀 극과극인 동서양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비슷한 일이 고대에 많이 발생했다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신화와 역사가 뒤죽박죽이되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구전,전승되어가는 과정에서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가 만들어진것인지 지금으로선 확인하기 힘들다. 다만 ‘페드라’신화는 그야말로 ‘신화(神話)’일 뿐이지만 호동왕자나 진헌공-신생의 일은 엄연히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다만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의 차이일까. 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차이가 난다. 일단 서양의 경우 저 페드라 신화를 인간의 욕망과 욕정과 관련된 ‘비극적 사랑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래서 페드라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으로 중세유럽의 희곡으로 재탄생되게 된다. 하지만 동양의 경우 저와같은 이야기를 효(孝)의 관점에서 받아들인 듯 하다. 일단 호동왕자가 어머니(?)의 불의가 알려지지 않게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것부터 그러하나 김부식의 사론또한 대략 이런 취지다. ‘(원비의 모함에 넘어가) 아버지가 불의를 저지른것도 잘못이지만, 그 아버지가 불의를 저지른 원인제공을 한것이나 다름없는 호동에게도 문제가 있다’며 신생의 경우와 비교하며 탓한다. - 만약 호동이 멀리 달아나던가 했더라면 원비의 불의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고, 아버지 또한 불의에 빠지지 않았을것이며 호동의 목숨또한 부지할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정도의 탄식으로 이해된다.


 헌데 좀 뜻밖의 사실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실제 아버지의 첩이나 후처와 부적절한 관계에 빠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무려 십여건이나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이 당사자들은 대개 사형 등 엄벌에 처해진다. 윤리를 중요시한 조선으로선 당연한 조치이겠으나, 정작 눈길이 가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록에까지 기록된 그와같은일이 십여건에 달한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고려사에도 그런 엇비슷한 기록이 이따금 보이니 생각보다 아버지의 후처나 첩을 건드린 사례가 옛날에 꽤 있었다는 방증도 될듯하다.


 또 흉노등 북방 유목민에겐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소위 ‘형사취수제’와 함께 계모가 죽었을시 역시 장남이 계모를 취하는 ‘수계혼(收繼婚)’ 풍습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여기저기 이동생활을 하는 유목민의 특성상 아버지나 형이 죽었을시 계모나 형수가 개가를 하면 그 자손과 재산이 흩어지게 되기 때문에 집안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도 하지만 여하튼 이와같은 ‘수계혼’ 풍습은 흉노 외에도 몽골,거란,여진등 대다수 북방유목민에게 존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만 보다 구체적으로 그 근거가 될만한 기록이나 그 풍습의 잔재라고 볼만한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아 아쉽다. 중국 사서에 나오는 흉노로 시집간 왕소군의 일화라던가 간간이 근거가 될만한 기록이 있긴 하지만 여하튼 보다 구체적으로 그와같은 풍습이나 문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또는 그런식의 풍습이 존재하는 유목민들의 가족문화는 어떠하였을지 보다 자세하는 알 수 없어 아쉬운면이 있다.


 페드라 신화는 나이많은 남편의 젊은 아들을 짝사랑하게 된 이야기이며, 고구려의 호동왕자나 중국 여희의 일은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올리기 위해 다른 여자의 아들을 모함한 이야기다. 한편 흉노,몽골등 북방 유목민에게는 아버지가 죽으면 계모를 아들이 취해 계모가 재가해서 집안 재산이 흩어지는 일을 막기위한 방편이 있었다는 것이고, 정작 조선왕조실록엔 아버지의 첩이나 후처를 아들이 건드렸다 처벌당한 사례가 십여건에 이르러 옛날에 생각보다 그런일이 제법 있었다는 방증을 보여준다. - 실제 적발되어 심지어 본보기삼아 실록에까지 기록한 경우가 10여건이나 된다면 굳이 실록에까지 기록하지 않은 사례도 제법 있었다고 봐야할것이고, 적발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그런경우가 실록에 기록된 10여건의 그 수십수백건이 있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론해볼수 있다.


 실제 조선 예종때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적누명을 쓴 남이장군에게도 ‘어머니와 간통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일단 이 부분은 ‘모함’일 가능성으로 보는게 지금까지 학계의 중론이었으며 친어머니였다기 보다는 정황상 역시 아버지의 젊은 첩 즉 서모(庶母)와 그런일이 있었을 가능성을 추론하는 분석도 있다. - 남이장군 아버지의 어린첩이 젊고 늠름한 남이장군에게 끌렸을 가능성 역시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일은 아니다.


 한편 현대에 들어서는 장성했거나 사춘기 정도의 나이인 의붓아들이 젊은 새엄마와 이상한 관계가 되는 그런류의 야설,야동이 제법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남자들이 제법 좋아한다. -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를 즐기는 소비층이 있으니까 그런 창작물도 만들어져 팔려나가는 것 아닌가. - 생각해보면 ‘새엄마’는 아무래도 근친이지만 혈연관계는 아니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덜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쪽으로 야릇한 상상력을 자극시키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제법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우선 근본적으로 사춘기 소년이든 장성한 청년이든 젊은 새엄마와 그런 야릇한 관계가 되려거든 이전에 두 사람 사이에 일정부분 호감도나 친밀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전제가 깔리는데, 우선 근래에 있어서 이혼가정의 경우 양육권 분쟁시 친어머니쪽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아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혼이나 사별가넝에서 사는 경우가 그리 많지가 않다. 또 일반적으로도 사춘기 소년이나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의 재혼을 반기는 경우가 그리 많지도 않다. 이런 상황이라면 장성한 청년이나 사춘기 소년이 아버재의 재혼상대인 ‘새어머니’와 그저 새어머니와 아들사이 자체로만 잘 지내는 경우를 사례로 찾아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서 두 사람 사이에 야릇한 감정선이나 심지어 그 이상의 관계까지 되는 경우 ? 적어도 20-21세기 현대에선 그런 경우를 찾아보는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신화야 어디까지나 허구일 뿐이지만, 그런 신화속 스토리 구조는 종종 인간의 본질이나 심리를 엿보게 해주는 요소도 분명 지니고 있다. 허나 남편의 전처소생 아들에게 반해 파국에 이르게 된다는 ‘페드라 신화’는 뭔가 좀 비현실적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방 유목민족에게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계모를 취하는 풍습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와같은 풍습이나 문화의 잔재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 하고, 재혼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갈등구도나 관계를 볼 때 새엄마와 전처소생 자녀간 어떤 친근함이나 친밀감 그 이상의 관계가 되는 경우를 찾아보는것도 쉽지 않다. 그나마 야설이나 야동에서 흔히 나오는 새엄마와 의붓아들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다룬 이야기가 종종 남성들의 야릇한 성적 상상력을 자극시켜 소비되는 경우 정도가 그나마 페드라 신화와 연관성이 있는 사회현상으로 봐야하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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