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whaedra.egloos.com

포토로그



88 서울올림픽 VS 18 평창올림픽 - (3) 올림픽과 정치 그리고 남북관계 정치,시사



 88 서울올림픽때는 정작 대회 시기가 다가오자 전문가나 심리학자들 사이에선 막상 그렇게 올림픽을 치루고나선 많은 사람들이 어떤 허탈감이나 공허감 같은 심리에 빠지지 않을까 그런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서울올림픽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리는 올림픽인데다가 그때까진 아직 개발도상국에 속하고 냉전시대의 분단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연다는 것 자체가 꿈같은 일이었던데다 무엇보다 전두환 정권이 그야말로 정권의 사활을 걸고 준비해온 올림픽이었으니까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올림픽과 연관시켜 계몽하고 선도하던 시절이라고나 할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실제 길거리 청소를 하는 사람을 방송에서 인터뷰를 해도 ‘서울올림픽을 위해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고 답하던 시절이 80년대였으니까요. 농담이나 과장이 아닌 그때는 흔히 볼수있던 방송 인터뷰 풍경이었습니다. ‘① 선진국이 되려면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② 그리고 선진국이 되려면(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이러이러한 것을 해야한다’가 논리적으로 통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요즘 젊은이들이 보면 황당해 하겠지만 80년대는 그런 시대였고 그렇게 온 국력을 총 동원하다시피해서 준비했던게 서울올림픽이었습니다.


 그러니 막상 그렇게 7년을 ‘올림픽 세뇌교육’을 시키다시피 하며 보냈으니 그 올림픽을 치르고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허감과 허탈감에 빠지겠느냐는게 올림픽 직전에 심리학자들이 조심스레 내비치기 시작하던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기우였습니다. 막상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난 직후에는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갔던 국내 정국의 소용돌이 때문에 ‘우리가 올림픽을 치르긴 했던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올림픽은 너무 쉽고 간단하게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져갔으니까요.


 보통 서울올림픽을 보고 그때까지 한국이란 나라를 북한의 선전대로 ‘거지가 득시글거리는 나라’로만 인식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놀라 각성 동구 공산권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외국인들 시각으로 봤을 때 ‘서울 올림픽’의 의미가 그랬다는것이고, 외국인의 시선과는 별개로 국내는 국내대로 그야말로 급박하게 소용돌이치는 정국속으로 들어갔었으니까요.


 사실 88년은 전두환 정권이 소위 7년 단임실천을 약속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노태우 대통령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해이기도 했죠. 하지만 막상 그렇게 청와대를 나온 전두환씨는 소용돌이치는 ‘5공청산’의 수렁속으로 빠져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사실상 대통령 임기 후반이나 퇴임후엔 꼭 친인척이나 측근,실세등의 비리로 곤욕을 치르곤 하더라는 그 첫 수순을 밟았던게 전두환씨였으니까요. 하루가 지나면 전두환의 형이 구속되네 또 하루가 지나면 동생이 구속되네 하던게 88년의 봄과 여름이었고, 오죽했으면 노태우 대통령측은 행여 올림픽 개회식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불참해줄 것을 권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행여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전 전 대통령에게 개회식 관중들이 야유라도 퍼붓는 상황을 우려했던것이지요. 그리고 전두환씨는 결국 자신이 유치하고 7년을 기를써서 준비한 올림픽 개회식에 참가하지도 못하는 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기간동안 마치 휴식이라도 치르는듯했던 5공청산 정국은 올림픽 끝나고나서 다시금 긴박하게 돌아갔으니까요. 설성가상 올림픽 직후엔 이른바 ‘유전무죄,무전유죄’란 유명한 말을 남긴 12인 미결수(未決囚)의 탈주(脫走)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이 ‘12인의 미결수 탈주범(脫走犯)’ 사건이 터진게 서울올림픽 직후였고, 11월에는 본격적으로 5공화국때 있었던 각종 비리와 5.18 광주문제 진상규명, 그리고 언론통폐합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벌어졌습니다.


 요즘 젊은세대들이 이해하기 쉽게 날짜순으로 설명을 하자면 서울올림픽은 정확히 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렸고 패럴림픽은 10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렸습니다. 그리고 탈주범 사건이 터진게 올림픽이 폐회하고 불과 엿새만인 10월 8일의 일이고 이들 12인중 대다수는 도주과정에서 붙잡하거나 자수,사살당했지만 끝까지 남은 4인이 한 민가에 침입 경찰과 대치를 벌인게 탈주사건이 벌어진지 8일만인 16일의 일입니다. 12인의 탈주사건 최후의 4인중 두명이 자살하고 우두머리 지강헌이 체포되었으나 병원으로 긴급 이송중 사망하고 한명이 체포되는 것으로 마무리된 이 탈주사건이 올림픽 폐회식이 있은지 불과 엿새만에 터져 패럴림픽을 개최할 무렵에 마무리되었던것입니다.


 한편 정치권에선 5공 청문회가 11월 2일부터 본격 시작되었고, 5.18 광주 청문회는 18일, 언론 통폐합 관련 청문회는 이들보다 다소 늦은 12월 12일에 열렸습니다. 그리고 전두환씨가 5공비리 관련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백담사로 떠난 것은 11월 23일의 일입니다. 무엇보다 청문회 자체가 건국이래 처음으로 벌어진 흥미로운 풍경이었던데다 ‘모릅니다’,‘기억이 안납니다’ 하는식으로 나오는 증인들의 태도가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고, 노무현,이해찬,박찬종,이인제,김광일등 청문회에서 맹활약한 야당의원들 역시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하며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거론되기까지 했던 그야말로 오만가지 화제를 낳았던게 그해 겨울의 청문회였습니다. 그야말로 날이 막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과 12월 그리고 이듬해 초반까지 ‘청문회 정국’으로 뜨거웠던게 그해 겨울이니까요. 그렇게 한바탕 소용돌이라도 치듯 숨가쁘게 돌아갔던게 88년 겨울의 정국과 사회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러고나서 숨돌리고보니 ‘가만 ? 우리가 올림픽 치렀었던거야 ?’ 되려 이런소리가 나올지경이었던 것이 올림픽을 치루고 한두달쯤 지났을때의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심지어 11월 말쯤이었던가 한 일간지 만평엔이런 만화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노부부가 대화를 나누는데 먼저 할아버지가 ‘임자, 우리가 올림픽 언제 치렀나 ? 지난달인가, 지지난달인가 ?’ 하자 옆에 앉아계신 할머니가 ‘아유, 영감 지금 무슨말씀을 하시는거유 ? (치매왔슈 ?) 올림픽은 재작년에 치렀어요’. 서울올림픽이 얼마나 금방 쉽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갔는지를 아주 단편적이고 절묘하게 그려준 4컷만화였습니다.


 88 서울올림픽은 전두환 정권이 유치해서 7년동안 그야말로 정권의 사활을 걸고 준비해왔는데 박수는 정작 개최한 노태우 대통령이 받게되어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자가 벌더라‘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속설을 현실에서 목격하게 해준 한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 원래 90년대 후반경 강원도측에서 처음 발의 2003년엔 2010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 2007년엔 다시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으나 두 번 모두 실패하고 3수 끝에 2011년에 가서 2018년 23회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삼수도전 성공‘이란 사뭇 눈물겨운 스토리를 만들어낸 동계올림픽 유치이기도 했죠. 사실 2010년 대회 유치에 도전했던 2003년만 해도 그리 큰 기대는 안 하는 분위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소치가 개최권을 따낸 2014년 대회의 경우엔 발표순간을 방송사가 직접 생중계까지 하는등 동계올림픽 개최에 대한 기대감이 제법 무르익었던 분위기였습니다. 허나 결과가 ’소치‘로 발표되자 모두들 허망한 표정으로 그 순간을 바라보던게 기억에 생생하네요. 그러다가 2011년에 가서 2018년 대회 유치에 성공.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7년을 준비해온 대회였습니다.


 무엇보다 최순실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란 정국의 돌발이 아니었으면,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끝과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올림픽이 마무리되는 그런 일정이 될 예정이었던 대회였습니다. 올림픽 개막 당시 대통령과 폐회식때 대통령이 다른 세계적으로도 웬만하면 보기 힘든 진풍경 하나가 연출될뻔 했는데, 일단 그건 박대통령 탄핵으로 영원히 무산되어 버리고 말았네요. 다만 최순실 사태와 박대통령 탄핵 그리고 조기대선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이르는 약 반년에 걸친 소용돌이 정국이 지나고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권이 부랴부랴 짧은 시간내에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혼신을 쏟아야만 했던 대회였습니다. 적어도 그런 측면에선 어쨌든 문재인 정부의 노력이 가상했다는 평가를 안할수가 없네요. 그리고 이제와서 진짜 아무 의미없는 불필요한 상상이지만 만약 최순실 사태가 없이 박대통령 임기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면 사회나 정치권 분위기가 어땠을지, 솔직히 그 생각을 안 해볼수도 없었던 대회이기도 했습니다. 


 기왕 말나온김에 덧붙이지만 그런 맥락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사소한 문제들을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비아냥댄 것은 솔직히 유감이라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만약 최순실 사태가 없었다면 평창 동계 올림픽은 오롯이 박근혜 정권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마무리 했어야하는 정권의 피날레를 장식해야할 대형 스포츠 이벤트였습니다. 따지고보면 설사 보수정권이 그냥 이어지는 상황이었더라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을 단지 정권이 바뀐 상황이라고 해서 비아냥대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해 보이더군요. 하긴 만약 박근혜 정권이 정상적으로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치르는 올림픽이었다면 좌파성향의 언론과 시민사회 또는 민주당등 야당은 어떻게 비꼬고 비아냥댔을지 그 그림 또한 충분히 그려지긴 하지만요.


 88 서울올림픽은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며 서방 자유진영 20여개국이 불참하고 84년 LA 올림픽은 그에대한 소련의 보복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주요 스포츠 강국들이 대거 불참하여 ‘반쪽 올림픽’이 치러져야만 했었습니다. 헌데 그런 상황에서 서울올림픽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죠. 그러잖아도 동서 양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냉전시대. 한번은 공산주의 대표국가에서 치러지는 올림픽에 서구 자유진영이 불참하고 그 다음은 자본주의 대표국가에서 치르는 올림픽에 동구 공산권이 불참하고 헌데 그 다음은 정말 공교롭게도 바로 그 냉전시대 최대의 피해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분단국가’인 KOREA가 올림픽 개최 순서를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략 한 90년대 중,후반경 부터였던가요 ? 여자들이 남자들 하는 이야기중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1. 축구 이야기 2. 군대 이야기 3.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설상가상의 상황이 덧붙여지는 우스개가 있었는데, 그리고 변형버전이 몇 개 더 있기도 하죠. 가령 어떤 소재와 어떤 소재 영화는 흥행이 잘 안 되는 판에 어떤 소재가 뭘 하는 영화가 만들어진적이 있다더라는 식의. 저런 설상가상이 덧붙여지는 상황 우스개는 대략 90년대 후반 이후에 만들어진것이었지만, 바로 그 현실버전이 그것도 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발생한것이었습니다. 소련 올림픽때는 자유진영이 불참하고 미국 올림픽땐 공산진영이 불참했는데, 이번엔 아예 바로 그 공산주의 : 자본주의로 남북이 분단된 나라가 올림픽 개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던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때는 88년 24회 올림픽 개최지 이전 내지는 취소 심지어 ‘그리스 영구 개최론’까지도 나오기도 했던게 대략 LA 올림픽 직후의 80년대 중반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88 서울올림픽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북한,쿠바등 6개국이 불참 2퍼센트 모자라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애초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소련과 중공은 물론 동유럽 모든 국가들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의 성대한 올림픽 잔치가 서울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 사실 올림픽 개최 한 두달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새로 출범한 정부에 대한 시위나 테스트라도 되는 듯 무력시위가 계속되었고 북미관계도 심상찮게 돌아가는등,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리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물론 응원단,예술단 파견이 극적 합의를 보면서 일시적으로나마 남북관계는 긴장상황이 풀어지는 시간이 되기도 했었죠. 하지만 반면 김정은의 내연녀로 한때 알려졌던 현송월의 방남때 지나친 환대가 보수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고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발표에 대한 젊은층의 반발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올림픽 개회식때는 북한의 김여정과 미국의 펜스 부통령이 폐회식때는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북한의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한자리에 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우연치고는 또다른 기가막힌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네요. 북한이나 미국이나 그걸 의도하고 그린 그림인 것 같지는 않지만 북한에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을 보넀을 때 미국은 펜스 부통령이 와서 북에대한 시위라도 하듯 천안함 전시관을 살펴보고 탈북자를 면담하고 돌아갔습니다. 반면 폐회식때는 미국에서 이방카가 오고 북한은 강경파라고 할 수 있는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다녀갔으니까요. 무엇보다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이라는 점 때문에 이때 다시 보수층의 반발시위가 있기도 했죠. 


 88년 서울 하계올림픽과 18년 평창 동계올림픽. 30년동안 너무나 많이 변한 국제정세와 사람들의 의식,가치관,정치환경변화등 때문에 이 두 대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동구 공산권 몰락에 어떤 주요한 변수로 작용했던것만은 분명한 서울 올림픽. 남북간,북미간 긴장상황이 잠시나마 휴전(?)이라도 갖는듯한 모양새가 되었던 평창 올림픽.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웬만한 잘사는 나라가 아니고는 치르기가 쉽지않은 올림픽을 유치,성공하는 경이로운 기적을 보여주었던 서울올림픽.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그리 많지않은 하계,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나라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평창 동계 올림픽. 생각해보면 서울올림픽의 그 진정한 역사적 의미도 시간이 좀 지난뒤에 평가가 이루어졌듯이 평창 동계올림픽이 오늘날 이 시점에서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 대회가 되었는지는 시간이 좀 더 흐른뒤에 그 평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하튼 한가지 분명한 것은 서울올림픽이 막상 막을 내리고 나니 정국이 5공청산의 소용돌이로 접어든것처럼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의 우리나라 정치판이나 국제정세도 그렇게 순탄하게 돌아갈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남북간,북미간의 긴장상황은 잠시 ‘휴식’을 취했던 것이지 해결된 것이 아닌 아직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정치권 역시 본격적으로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체제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국내정치상황 역시 그리 순조롭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난뒤 과연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은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게되고 특히 문재인 정권 초반부에 치르게 된 이 대회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어떤 의미로 남게될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기면서 3부작에 걸쳐 연재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종합적 평가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끝   -




덧글

  • 여진족이 된 예맥 2018/03/05 12:33 # 답글

    평창올림픽은 남북대화의 계기가 된 데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에 뒤지지 않는 부산물이죠.
    노벨상을 받으려고 뇌물을 바치고 한 김대중의 남북대화와 달리 순수한 의도가 느껴지고 남북정상이 만나는 쇼가 필요했던 김대중과 달리 조미간의 대화를 우선시하는 데서 실질적인 효과가 기대됩니다. 북핵은 조미간의 문제고 따라서 조미간의 대화로 푸는 게 맞죠.
  • 훼드라 2018/03/05 14:26 #

    댓글 감사합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여진족이 된 예맥 2018/03/05 12:39 # 답글

    광주사태때 경상도 번호판의 차량이 불타고 운전자가 맞아죽는 참극을 보고 전두환은 지역간의 화합을 위해 대구와 광주를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합니다. 88고속도로죠.
    박근혜가 광대고속도로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역사적 의미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지금 벌을 받고 있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