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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우연히 8,90년대 사극을 다시 보고나서 든 생각 X-FILE



우연찮게도 새해들어 80,90년대 사극을 각기 한편씩 접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태조왕건 – 엄밀히 따져서 2천년대 들어 시작한 사극이긴 하지만 편의상 90년대 사극에 포함시키겠습니다’ 이고 또 다른 하나는...뜻밖에도 80년대 유명했던 ‘조선왕조 오백년 – 설중매’ 편 영상을 하나 접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태조왕건은 지금도 종종 드라마나 사극전문 케이블에서 재방을 하기 때문에 다시 보기가 그리 어려운일은 아닙니다. 요즘도 한 드라마 전문 케이블에서 재방을 해주더군요. - 다만 새삼 200회짜리 대작임을 실감하는게...가령 한 16부작 미니시리즈라면 케이블 재방때 놓친 회차 다시 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200회짜리다 보니...놓친 회차를 다시 보려면...200회가 다 방송되고 처음부터 다시 재방해줄때를 기다려야 되더군요 -.- 200회...케이블에서 매일 한회씩 내보낸다 해도 6개월하고 20일 분량입니다. 그러니 6개월을 더 기다렸다가...놓친 회차를 다시 보려고 하는데...그때 또 놓치면...무려 1년을 더 기다려야한다는...-.-;;


여하튼 새삼 ‘태조왕건’이 진짜 대작이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별로 생각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어떤 카페에 ‘조선왕조 오백년 – 설중매’편 영상이 하나 올라온게 있더라구요. 사실 인터넷 자료란게 거의가 다 90년대 후반 이후의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도 80년대에 한 사극 영상을 인터넷에서 다시 접할수 있는 기회가 있을거라곤...진짜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적잖은 충격이었고 감사하기까지 했습니다. ^^;;


여하튼 그건 20년전,30년전 사극을 다시 보게된 소감이 그랬다는거고... - 헌데 그러고보니 90년대를 흔히 ‘세기말’이라고 표현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그 1990년대가 어느덧 20년전 과거라니 진짜 실감이 안 나네요


여하튼 80년대,90년대 사극을 접해보고 나서 요즘 사극과 비교해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역시 그 시절 사극은 적어도 사극으로서의 ‘무게감’이 느껴지고 적어도 그 시절 사극은 대체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가며 다루려 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 사극에서 역사왜곡 논란은 늘 끊이지 않아왔지만...사실 사극의 역사왜곡 논란 80년대의 논란과 지금의 그것은 성격이나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 시절 사극들은 가령 역사속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평가 – 가령 세조를 너무 미화했다던가, 정도전을 실제보다 너무 영웅화 시켰다던가 하는식의 또는 문중에서 자신들의 조상을 나쁘게 그리고 있다며 항의를 하기도 하는 그런일도 있긴 했지만 – 적어도 요즘의 막장 사극들과는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다르다는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연출기법이라던가 영상,디테일한 부분들에선 요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촌스러움’이 느껴집니다. 또 그때만 해도 배우들 나이나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은 의외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금방 드러나요. 가령 사전촬영 같은 개념도 없었고, 요즘처럼 컴퓨터 그래픽 처리 기술도 없던 시절인지라...가령 여름에 일어나는 사건임에도 화면엔 눈쌓인 거리나 지붕이 뻔히 보인다던가...또 등장인물이 실제 나이와 맞지 않는 배우가 하고있어 어색함이 느껴지거나 하는...그런식의 문제들은 있습니다.


가령 ‘설중매’에서 저도 몰랐었는데 이때 ‘양녕대군’ 역을 맡은분이 송기윤씨더군요. 한번 위키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분이 50년대 초반 태생...그러니 80년대 설중매 할시엔 30대 초반이었을것입니다. 헌데 극중에서 ‘수양대군’으로 나오는분이 당시 이미 중견 성우였던 남성우란 배우인데 이분이 35년생으로 송기윤씨보다 스무살 가까이 많은 분입니다. 헌데 30대 초반의 배우가 50대 초반의 배우가 하는 ‘수양대군’의 큰아버지 ‘양녕대군’을 한다는 것...수염만 대충 붙이고 나와서 하는 연기가 솔직히 어색함이 느껴졌습니다. - 게다가 덧붙이자면 송기윤씨가 아마 그 시절 흔히 맡았던 역할이 일일극이나 가족극 같은데서 약간 푼수끼 있거나 맘씨좋은 동네 아저씨 혹은 주인공의 친구나 직장동료였기 때문에 ‘수양대군’을 다그치면서 왕실 어른행세를 하고싶어하는 양녕대군 역을 맡는다는 것...아마 그 당시 이미지로도 쉽게 와닿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왜 저렇게 되었나 봤더니...짐작했지만...설중매의 앞선 작품이 ‘뿌리깊은 나무’였는데 사실 거기서 송기윤씨가 양녕역을 했더군요. 그래서 이어서 ‘설중매’ 편에서도 양녕대군을 계속 맡은 듯 합니다. 조선왕조 오백년 드라마가 기억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연작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되던것이었죠. 추동궁마마부터 시작 뿌리깊은 나무-설중매-풍란 이런식으로 대원군 편까지. 이때 아마 이병훈 피디가 인터뷰에서 ‘최소한 조선시대 27명 임금은 중복시키지 말아야겠다’ 고 하는등 캐스팅에 어느정도 원칙은 있었던걸로 압니다. 하지만 연작형식이기 때문에 전작에 출연했던 인물은 영속성을 위해 그 다음편에도 계속 등장하는 그런 방식을 취했던걸로 아는데...그러다보니 ‘뿌리깊은 나무’에선 젊은 양녕대군 역을 했을 송기윤씨가 ‘설중매’에선 수양,안평등에게 ‘큰아버지’가 되는 ‘나이든 양녕대군’을 한다는 것...지금 다시보니 어색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네요.


태조왕건에서도 그런 어색한 설정이 있었는데요, 왕건 어머니(죽 왕융 부인)로 나온 배우 역시 90년대 후반에 이미 50을 넘긴 분입니다. 헌데 이분이 젊은시절 왕건을 출산하고 갓 태어난 아기인 왕건을 품에안고 행복해 하는모습까지 연기하는 것은 영 어색해 보이더군요. - 아마 요즘 같으면 이런 정도의 역할은 단역급의 젊은 배우를 출연시키던가 했을것입니다. - 왕건의 어머니가 나중에 성인 최수종이 나올때까지 계속 살아있는 것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왕건 출산 직후의 장면 정도는 젊은 배우가 나와서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당시 이미 50이 넘긴 배우가 마치 이제 막 첫 아이를 출산한 젊은 주부인양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은 되려 늦둥이라도 낳은 노산의 산모같은 느낌마저 줘 어색함이 이만저만 아니더군요. - 더욱이 요즘처럼 화질이 좋은 시절도 아닐때의 화면이건만 대놓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배우가 20대의 젊은 산모 연기를 한다는 것은 – 실제 왕건 어머니는 더 어린 나이에 출산을 했을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대체로 8,90년대 사극들은 등장인물이나 세월의 흐름 같은 것은 별 신경을 안 쓰던때라서인지 등장인물의 극중 나이라던가 또는 사전촬영 미비로 여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서 눈쌓인 장면이 버젓이 화면에 나온다던가 하는 그런식의 자잘한 연출오류는 제법 있습니다. - 대체로 연출기법도 지금에 비해 훨씬 촌스러워 보이는것도 분명하구요. - 사실 이때는 비단 사극이나 시대극뿐만 아니라 일반 현대극에도 여배우의 경우엔 적당한 나이에 맞는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을때라서 그게 종종 기사에 오르내리기도 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가령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가 시어머니-며느리 역을 한다던가, 극중 모자간으로 나오는 인물중 실제로는 아들로 나오는 배우가 나이가 더 많다던가 하는식의 이야기가 종종 스포츠,연예기사나 주간지 같은데 가십거리로 이야기되기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사극에서 느낄수 있는 무게감,중후감 한마디로 ‘옛스러운 맛’은 요즘 사극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히 나이많은 기성세대라서 옛날 드라마에서 느끼는 향수만은 아닐것입니다. 요즘은 사극조차도 마치 재벌2세와 가난한 여성의 사랑놀음을 옷만 옛날옷으로 바꿔입은것일뿐 그냥 재벌2세와의 사랑놀음의 또다른 버전밖에 안되는 드라마...근본적으로 사극마저 단순히 ‘여성용 환타지’로 전락해버린것에 대한 아쉬움과 씁쓸함을 8,90년대 사극 영상을 잠시 지켜보다 그런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궁중사극 말고 사모곡이니 꼬치미니 하는 민중들의 삶을 다룬 사극도 종종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극들도 대체로 조선이나 고려시대 살던 민초들의 삶을 조명한다던가 이런데 주안점을 두었지 요즘 볼 수 있는 그 소위 ‘퓨전사극’들과는 분명 성격도 분위기도 많이 달랐거든요,.


문득 사극의 진정한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초창기 사극작가들에겐 ‘옛날을 돌이켜보며 오늘날의 일을 다시 생각해본다’는 ‘온고지신’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물론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관점은 있을수 있습니다. 가령 역사속 사건이나 인물을 민중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 한다던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본다던가 하는 식의 시도는 충분히 있을수 있습니다. - 하지만 설사 역사를 페미니즘적 사고로 재해석한다할지언정 적어도 분명히 남녀간의 차별이 존재하던 시대에 마치 대단한 ‘전문직 여성’이나 ‘여성 CEO’가 수두룩하게 존재하기라도 헀던것인양 그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 물론 특히 조선시대에는 의녀라던가 다모같은 남녀가 유별하던 시대에 불가피하게 여성을 쓸 수밖에 없었던 그런 직종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성들을 대개 천민이나 관비출신중 뽑았다는것만 봐도 그런 직종에 대한 그 시절 일반적인 의식이 어땠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해볼수 있습니다. - 하지만 다모같은 경우엔 실제 조선시대에도 형수를 모함하는 양반을 ‘뺨을 후려쳤다’는 다모의 이야기가 ‘소설’로 전해져 내려오는것만 봐도 적어도 다모 같은 직업은 일반적인 천민에 대한 인식이나 위상과는 좀 달랐다는 것을 유추해볼수 있네요. - 최소한 조선시대에도 ‘못된 양반보다는 개념 다모가 낫다’ 그 정도 사회적 인식은 있었던 것 아닐까요 ?


신봉승 선생님의 ‘조선왕조 5백년’을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보통 ‘설중매’편이 특히 한명회에 대한 재평가로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사실 설중매에 앞서 1화 ‘추동궁마마’에서는 태종 이방원의 측근인 이숙번이란 인물을 재평가하기도 했었습니다. 흔히 이숙번이 부각된게 90년대 중반에 KBS에서 방영한 ‘용의눈물’을 통해서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숙번에 대한 재평가 시도는 ‘용의눈물’보다 80년대에 방영된 ‘추동궁마마’가 먼저였어요. 어쩌면 이환경의 ‘용의눈물’이 ‘추동궁마마’의 영향을 받아 이숙번을 여기서도 부각시켰던것일수도 있구요.


‘추동궁마마’에서 이숙번, ‘설중매’에서의 한명회 이 두 인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그 콤플렉스를 딛고 주군을 잘 만나 그 측근이 되어 출세하게 되는...어쩌면 신봉승표 영웅담의 전형이라고나 할까요. 이 신봉승표 영웅담이 ‘추동궁마마’에선 이숙번, ‘설중매’에선 한명회였고 4탄 ‘풍란’에선 ‘갖바치’가 그 계보를 잇습니다. 하지만 풍란은 그 전작 설중매가 워낙 레전드급 화제를 뿌린 탓인지 그 만큼의 빛을 보진 못했죠. 풍란이 설중매만큼 주목받지 못한건 전작 설중매가 워낙 인기작이었던 탔도 있지만 ‘풍란’의 중심스토리를 이끌어가야하는 ‘갖바치’가 이숙번이나 한명회에 비해 한계가 있던탓으로도 봐야할겁니다. 어쨌든 이숙번이나 한명회는 둘 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주인을 잘 만나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그 밑에서 발휘 출세하게 되는 전형적인 ‘신봉승표 영웅담’의 주인공입니다. 갖바치의 경우도 완전 허구의 인물은 아닌 모델이 되었던 인물이 있다고는 하지만...보통 그 인물이 조광조에게 정신적 스승 역할을 해준 사람이라고 하지만...일단 근본적으로 신분제 사회란 한계에서 ‘갖바치’란 인물은 설정에 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근본적으로 조광조가 기묘사화때 화를 입는 인물이고, 설사 조광조가 출세를 한다해도 그 시절에 천한 갖바치한데 벼슬자리라도 줄수도 없는 일이니...이숙번이나 한명화 같은 ‘주군을 잘 만나서(그 밑에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출세하게 되는’ 그 영웅스토리 창조엔 한계가 있었다고 봐야할겁니다.


어쨌든 조선왕조 오백년은 궁중사극이기도 하면서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영웅형’ 중심인물이 늘 있었습니다. 그게 ‘추동궁마마’에선 이숙번, ‘설중매’에선 한명회‘ 풍란에선 ’갖바치‘ 임진왜란편에선 그리고 일본에게 포로로 끌려가지만 그곳에서 유학을 전수해주는 ’강항‘이란 인물이 스토리 중심축이 되지요. 하지만 강항의 경우 이숙번,한명회 같은 인물과 달리 임진왜란때 조선 선비들의 수난을 그리기 위한 대표적인 인물이라 설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후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에선 한윤과 유운이란 가공인물이 나오는데 이 역시 병자호란 당시 일반백성의 수난을 그리기 위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장희빈에선 장희재 ???) 그리고 마지막 대원군편은 사실상 대원군 스토리 자체가 ’신봉승형 영웅담‘에 딱 맞아떨어지는 인물이기 때문에(세도정치 때문에 숨죽여 살아야하는 종친이라서 목숨을 부치하기 위해 파락호 행세를 했지만 결국 아들을 왕위에 올려 대원군이 되고 개혁정책을 추진하지만 끝에가선 몰락하게되는) 그래서 조선왕조 오백년 마지막 시리즈에선 ’대원군‘이 그대로 주인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신봉승형 영웅담은 대체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주군을 잘 만나서 그 밑에서 무사로든 책사로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 한 시대를 이끌어간‘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 같네요.


이환경의 사극은 가장 많이 비판받았던게 등장인물들의 ‘반복형 대사’였죠. 헌데 태조왕건을 거의 20년만에 다시 보게되니 정작 ‘태조왕건’의 경우 워낙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드라마였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반복형 대사’는 그리 많지 않더군요. 그 전작 ‘용의눈물’도 반복형 대사는 그렇게 많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작 반복형 대사가 말이 많았던건 2002년에 방영된 ‘야인시대’ 그리고 정치적 논란으로 중단되었던 ‘영웅시대’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사실 반복형 대사라기 보단 이환경 사극이나 시대극도 가만보면 어떤 전형이 있어요. 왕실이든 조폭집단이든 회사의 이사,간부진이든 여럿이 모여 어떤 대책회의를 하고, 그 보스가 회의를 주재하고. 거슬러 올라가면 80년대 후반 방영되었던 ‘무풍지대’에서부터 용의눈물,태조왕건,제국의아침,야인시대,영웅시대등 여러 인물들이 쭉 나와서 보스를 중심으로 모여 회의를 벌이는...어떤 보스중심으로 돌아가는 집단의 이야기. 이환경이 선호했던 스토리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것이 임금이 되었든 재벌회장이 되었든 장수나 깡패두목이되었든 말입니다. - 정작 ‘연개소문’에선 오히려 그와같은 반복형 대사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되려 그 연개소문은 이환경의 환빠스런 역사관을 그대로 드러내 비판의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지만요. 사실 이환경 사극 역사관 논란은 이환경의 사극들이 특히 야인시대나 영웅시대같은 근현대사물에서 보여준 역사관이 전형적인 ‘반공우파’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게 진보성향 지식인,네티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게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 이런판이니 난 영원히 사극작가로 데뷔하긴 글렀군 (뭔소리야 ?)


7,80년대 사극 제작진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역사속 인물을 어찌어찌 묘사하느냐에 따라 문중에서 항의가 들어오거나 심지어 소송까지 들어갔던 일들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가 사극의 주된 소재이던 시절이라서인지 아무래도 실제 자신들의 조상이 어찌 묘사되는지 하는 문제에 그 후손들이 신경을 쓰지 않을수 없었겠죠. 사실 ‘태조왕건’의 경우에도 주요 인물들이 우리나라 성씨의 시조격이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각 문중에서 예의주시했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신경이 쓰여서인지 요즘의 퓨전형 사극들은 왕실인물들 정도를 제외한 주변 신하들인가 이런 사람들은 실제 역사와 상관없는 100% 가공인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또는 아예 왕실 이야기도 실제 역사속에 등장했던 임금이나 이런 인물과는 상관없거나 모티브만 딴 가공인물로 하는 경우도 있고요. - 가령 기황후에서도 충혜왕을 미화하려 한다는 문제 때문에 논란이 일자 아예 ‘왕유’라는 실제 역사와는 상관없는 가공인물로 바꿔버렸죠. - 하지만 그래도 기어이 기황후와 왕유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는 엽기 설정까지 만들어 버렸었더군요. 하지만 막상 두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자 그 이후 스토리가 처치곤란이 되어버려서인지 아이를 그냥 어린나이에 병들어 죽게하는걸로 처리하기도 했지만 (이럴거면 차라리 태어나질 말게 하던가 -.-)


8,90년대의 사극을 보면서 적어도 역사의 기본 사실이나 고증에는 충실했고 최소한의 사극의 품격과 무게감은 느낄수 있었던 그 시절의 사극과 요즘의 사극들이 너무 비교되어서 주절주절 긴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나이 어느덧 40을 넘긴 중년의 꼰대 아저씨의 향수어린 푸념일수도 있지만, 사실상 재벌2세와의 사랑이야기를 옛날 버전으로 바꿔버린것이나 다름없는(왕자와 사랑을 하거나 양반집 도령과 사랑을 하거나) 사극 조차도 이런식의 스토리 아니면 이야기가 안 되는 요즘의 사극들을 보니 대체 ‘사극의 진정한 기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회의감까지 생기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 그리고 어차피 방송사 고위 관계자들은 시청률이나 자기네 방송사 프로그램이 행여 정치권 눈밖에 나는일이 없을까 그런 문제나 신경쓰지 사극의 역사왜곡 문제나 작품성,주제의식 이러거 신경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 -.-








덧글

  • bullgorm 2018/01/28 11:58 # 답글

    크게 나누자면 역사를 '주제'로 삼느냐 '소재'로 삼느냐의 차이같습니다..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 훼드라 2018/01/28 19:41 #

    그렇게 볼수도 있겠네요.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궁굼이 2018/01/28 21:53 # 답글

    개인적으로는 여인천하를 기점으로 사극에 여주인공 비중이 높아지고, 여성 시청자가 유입되면서 사극이란 장르 자체가 여성용으로 바뀐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여성시청자들이 기분 나쁘지않게 고대, 중세 시대에서도 여성 인권은 챙겨주고...
    그러다가 뭐, 부녀자용 꽃미남 사극나오고 역사는 뒷전에 케릭터들만 따와서 적당히 야사섞어서 역사도 아니고 완전 판타지도 아니고 요상한거 나오고 그러는거 같아요.
  • 훼드라 2018/01/29 04:50 #

    맞아요, 그렇게 된거 같네요
  • 남중생 2018/01/29 23:53 #

    우선 사극이 여성향 판타지만으로 제작/소비되는 것에는 저도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주 소비자가 누구인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훼드라 님께서 언급하신 "불우한 환경을 딛고 주군을 잘 만나서 출세하는 영웅담"이나 "회의를 열어서 한 마디 씩 하면 보스가 결단을 내리는" 전형은 남성중심적인 서사가 아니었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 하니와 2018/01/29 07:22 # 삭제 답글

    실제로 이숙번의 재조명은 70년대 사극 "옥녀" 에서 시작되었죠.
    조선왕조오백년은 그냥 리메이크...
  • 훼드라 2018/01/29 14:23 #

    70년대에 그런 작품이 또 있었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 터프한 얼음대마왕 2018/02/02 12:52 # 답글

    세삼 뭘 그래요... 성균관 스캔들을 보고 조선시대가 낭만적이라 믿는 사람들도 많은걸요. 인문학도는 고개를 푹 숙입니다. 부끄러워...서..요.
  • 훼드라 2018/02/02 15:49 #

    그냥 응답하라 80,90년대 사극...하는식의 푸념정도로 이해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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