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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의 남한 정착사례 정치,시사



                            부제 : 전철우부터 신 모까지, 이애란에서 임지현까지


 재입북 탈북자 임지현(본명 전혜성)씨가 또다시 ‘우리민족끼리’란 북한의 대외 선전용 방송에 나와 남한 종편의 탈북자 대상 토크쇼 프로와 여기 자주 출연하는 탈북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방송을 했다. 임지현씨의 정확한 입북경위(납치인지 자진입북인지 여부)는 아직도 수수께끼이지만 그 진상이야 어찌되었든 임지현씨는 남한사회 적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탈북자 사례로 이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처음 임씨의 재입북 사건이 터졌을때도 그녀의 과거 성인방송 출연설이나 남자관계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루머가 있기도 했지만 여하튼 전체적으로 봐도 임씨는 확실히 우리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다 북으로 돌아가게된 경우로 봐야할 것 같다. 한편 종편에 자주 출연하는 또다른 탈북자는 ‘탈북자가 방송출연과 안보강연,간증집회만으로도 월수입 200만원 이상도 올릴수가 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여전히 임씨를 이해할수 없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번 이쯤에서 탈북자의 정착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를 한번 되짚어보기로 했다. 필자는 일찍이 탈북유형을 냉전시대 휴전선 인근의 북한군이나 민간인이 간혹 귀순해오던 ‘귀순자 시대(53년-80년대 까지)’ 동구권 붕괴와 함께 북한 유학생,엘리트 출신 귀순자가 잇달았던 90년대 초,중반 그리고 그 이후 북한의 식량난으로 대량 탈북난민 사태가 벌어진후 국내입국 탈북자가 급증한 90년대 후반 이후로 시기별로 나눠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바 있다. 사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귀순자 사건이 한번 터지면 떠들썩하게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영웅대접’하다시피 하던 그런 분위기였다.


 헌데 그런 90년대 중반에 한번은 귀순자의 강력범죄사건이 터져 충격을 준 일이 있다. 90년도에 휴전선을 넘은 신 모라는 북한군 출신 귀순자로 그는 술,도박으로 있는 돈을 모두 탕진하고 돈이 필요해 공기총을 이용 젊은 데이트족을 납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구속된 바 있다. 당시 막상 범인을 잡고보니 ‘귀순자’ 출신이란 점이 사회에 적잖은 충격과 파장을 안겼다. 신씨는 당시 범행동기를 ‘돈이 필요했다’고 밝혔지만 그러기 위해 저지른 범죄치고는 너무 강력사건이었기 때문에 이건 아무래도 신 모씨의 개인 성정과도 관계가 있는 부분으로 판단해야할 것 같다.


 반면 90년대 귀순자중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을만한 사람은 동구권 유학생 출신 귀순자인 전철우씨다. 전철우씨는 한때 방송출연에서 재치있는 입담과 예능감으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고 냉면가게를 운영하며 사업에도 제법 수완을 보여주는등 그야말로 무난하게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에 속한다. 사실 동구권 유학생 출신 귀순자들은 어쨌거나 유럽유학(동유럽)까지 갔던 엘리트라는 점 때문인지 각자의 전공을 살리거나 또는 그무렵만해도 웬만한 기업체들도 소런이나 동유럽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그런점 때문에 동유럽을 아는 인재가 더더욱 필요했던 시기라서인지 이래저래 동구권 유학생 출신 귀순자들은 대체로 ‘무난하고 성공적인 정착’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외 90년대 초,중반에 있었던 고위층 출신 귀순자의 경우에도 역시 대체로 그만한 지식이나 전공분야가 있다는 점 또는 고위층이란 점 때문에 갖고있는 북한에 대한 정보가치 덕분에 대체로 실패한 정착사례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한편 7,80년대 인민군 출신 귀순자들의 상당수는 처음 한두달 정도는 귀순용사랍시고 잔뜩 언론과 정부당국이 띄워주고 전국 돌며 환영대회 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진짜 대단한 일이라도 한 ‘영웅’이라도 되는양 들뜨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다보니 그런 환영기간이 끝나고 (보통 정부의 배려로) 직장을 배치받아 평범한 일상인으로 살게되다보면 그때부터 느끼는 정신적 공허감이나 박탈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사실 7,80년대는 아무래도 체제경쟁을 하던 시대이다보니 귀순자들의 범죄사건이 있어도 쉬쉬하며 넘어갔을 것 같은데 막상 기사를 찾아보니 폭행이나 절도같은 경범죄로 구속된 사례도 있고 사기 같은데 연루되어 실형을 산 귀순자도 있다. 반면 이웅평,신중철씨처럼 유명했던 귀순자의 경우엔 대체로 여기서 1계급 특진을 한뒤 군생활을 좀 더 하고 예편한뒤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갔고, 안찬일씨처럼 좀 특별하게 북한에 대한 연구를 전문으로 해서 해당분야 박사학위를 받고 근래들어 다양한 방송활동,대외활동으로 유명해진 경우도 있다. 사실 남한사회 대다수 일반인들에겐 이웅평,신중철,김만철씨 같은 귀순 당시 사회가 떠들썩했던 귀순사건이 강렬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는 반면 요즘 들어오는 탈북자들에겐 안찬일씨가 마치 탈북자의 대표격이자 대선배같은 인상을 주는 모양인데, 사실 정작 안찬일씨는 남한사람들 입장에선 이따금씩 있었던 휴전선을 통한 인민군 출신 귀순자중 한 사람 정도의 의미일뿐 정작 귀순 당시엔 그 이상의 의미는 없던 사람이다. 대체로 안씨같은 인민군 출신 귀순자 상당수는 일정한 기간 조사과정과 환영대회를 거친뒤엔 평범한 소시민이자 일상인으로 살아가며 사람들 기억속에선 잊혀져갔다.


 한편 탈북3기(북한의 식량난 이후 국내입국 탈북자가 급증한 90년대 중반 이후)의 탈북자중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꼽자면 아무래도 생각나는 사람이 이용운씨의 장녀 이애란씨다. 원래 이애란씨 가족은 재미교포 실향민의 가족으로 97년 연말 한 방송사의 취재와 도움을 받아 재미교포 실향민 백 모씨의 북에 남겨놓은 아들 이용운씨 부부를 비롯 그의 네명의 자녀와 며느리 그리고 두명의 손자까지 일가족 9명이 탈북한 사례로 유명한 그 가족중 한명이다. 당시 연말특집으로 SBS가 이용운씨 일가의 탈북과정과 북의 친척과 연락이 닿게된 경위를 특집다큐로 세세하게 다루어 방송으로 내보낸바 있다. 이애란씨는 바로 그 이용운씨의 장녀로 당시 두 살난 아들이 있던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애란씨가 ‘대표적인 성공적 정착사례’로 언론과 방송이 자주 다루게 됨으로써 그 부친 이용운씨보다 이애란씨가 더 유명해졌다.


 사실 이애란씨가 애초에 알려진 것은 모 대기업에 ‘보험설계사’로 취직하면서 여러차례 보험왕에 뽑일정도로 우수한 실적을 올리며 화제가 된 탓이었다. 사실 보험 자체가 북한사회에 없는 탈북자들에게 생소한 직업이었을텐데 그것도 ‘보험설계사’로 젊은(당시 30대 초반) 여성탈북자가 성공했다는 것은 화제가 되고도 남을일이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씨가 남한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고자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을일이다. 한편 이후에 이씨는 YMB 시사영어사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고, 그후엔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을 나온뒤 주로 북한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쪽으로 일을 해왔다. 이애란씨가 실제 북한에서도 신의주 경공업대학 식료공학부를 졸업하고 국가 과학기술원 식품품질 감독원으로 13년 일했던 것을 생각하면 뒤늦게나마 북한에서의 전공을 살린셈이다.


 사실 탈북자의 성공적 정착사례는 탈북자 관련 사이트나 북한인권 단체 사이트의 자료들을 살펴보다보면 대충 20-30건이 넘는 성공사례를 수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개중에는 북한에서의 전공을 이곳에서도 살려(의사,한의사,요리사 등) 성공한 케이스도 있고, 나름대로 창업에 도전 CEO로 성공 이젠 오히려 남한의 백수들을 고용시켜 일하는 ‘사장님’이 된 분들도 있고, 북한에서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길로 성공한 사람도 있는등 사례 유형은 제법 다양하다. 다만 이 사람들에게 성공적인 정착비결을 물으면 한결같이 답하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 북한에서 어떤 지위나 직책에 있었든 거기에 연연하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 둘쨰, 처음부터 떼돈을 벌 생각을 하지 말고 밑에서부터 쉬운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 갓 입국한 초창기 탈북자 특히 젊은 여성들은 탈북과정에서 브로커 비용도 갚아야 하고, 또 가능하다면 북에 있는 가족들도 마저 데려오거나 돈이라도 보내주어 도와주고 싶고, 또 자신 스스로도 하루빨리 일확천금이라도 얻듯 번듯하게 성공하고 싶은 마음까지 있어 처음부터 ‘빨리 돈벌어야지’ 하는 강박관념이 커지는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들어둘만한 값어치 있는 충고가 분명하다.


 결국 세상이치가 다 그러하듯이 탈북자의 성공적 정착도 결국 자기 하기 나름에 달린 문제 같다. 과거 귀순자의 사례를 봐도 평범한 소시민으로 조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부터 범죄의 유혹에 빠져든 사람까지 그리고 근래의 탈북자들도 사업이나 전문직으로 성공한 사람부터 북으로 돌아간 사람까지 그렇게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것이 탈북자 사회인 것 같다. 물론 젊은 여성 탈북자들이 취업이 잘 안되는 문제라든가 우리사회가 좀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도 남아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누가 더 열심히 성실하게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 노력했느냐에 따라 정착의 실패와 셩공여부도 판가름 나는 것 같다.


 끝으로 한가지만 더 하나원 정착교육에 대해 좀 한마디 하고자 한다. 솔직히 하나원의 정착교육에서 대체 무엇을 가르치는것인가 회의와 의문이 들때가 많다. 정작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겪을 일상이나 생활적 불편 같은것보다는 추상적인 사상이나 역사교육 이런문제에 더 신경쓰는 것은 아닌지. 성공한 탈북자들의 수기에서 조차도 처음 하나원에서 나와 주택을 배정받고 살아가던 초창기엔 가령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던가 전자렌지에 유리제품을 넣으면 안되는 것을 모르고 넣었다가 터졌다던가 하는식의 실수담이 여전히 나오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추상적인 사상이나 이념같은 문제보단 탈북자들이 일상에서 살아갸면서 벌어질수 있는 사소한 실수나 착오같은것에 대한 문제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 아닌지. 하나원 정착교육이 정작 이런 부분은 소홀히 하는 것 아닌가 우려되어 하는 이야기다. 보다많은 탈북자들이 평범한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게 되길 바란다.







 








 



 


덧글

  • asdf 2017/09/03 08:45 # 삭제 답글

    한국에서 태어나 경쟁에 익숙한 사람들한테도 고단한 세상인데 막장또라이국가에서 최소 십몇년간 세뇌되어온 사람들은 개인기가 남한인 평균보다 뛰어나지 않는 이상 적응 못할 수 밖에 없겠죠.
  • 훼드라 2017/09/03 13:52 #

    그나저나 오늘도 또 북한이 핵실험을 한것 같다는 속보가 있고
    언제까지 저런 X들을 곁에두고 살아야 하는건지
    진짜 북한관련 소식만 나오면 답답한 심정을 어찌할 도리가 없네요
    (그러면서 또 관심은 안 가질수가 없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 -.-)
  • 채널 2nd™ 2017/09/03 10:08 # 답글

    >> 솔직히 하나원의 정착교육에서 대체 무엇을 가르치는것인가 회의와 의문이 들때가 많다

    대체 학교에서는 뭘 가르치는지 기업의 입장에서는 속 터지고 답답한... -- 안기부 개새기들, 일 똑바로 하라우~

    >>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지하철을 탈 때 '패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가르쳐 주는지,,, RTFM의 현실화가 시급합니다.
  • 훼드라 2017/09/03 13:51 #

    옳은 지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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