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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제3후보 유효기간 정치,시사



 신년벽두에 각 언론,방송매체들이 금년 대선과 관련한 가상대결 여론조사를 쏟아내었다. 대선이 있는해 연초에는 흔히 있어온 일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번 대선은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가 극에 달했고, 현재 탄핵재판이 진행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헌재판결이 어찌 나오느냐에 따라 조기대선 가능성도 높아져 있는만큼 이런 시점에서 살펴보는 연초 여론조사는 여러 가지 감회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우선 첫 번째 눈길이 가는것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양자,3자 가상대결에서 대다수 여론조사 결과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최순실 사태를 거치면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이 한층 커지면서 그것이 다수당인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문재인에게로의 표 결집현상으로 나타나는것 같다. 3자대결 구도에서조차 문재인이 1위니 어찌보면 국민들이 이와같은 여론조사를 통해 자연스레 ‘후보 단일화’에 준하는 효과를 만들어주고 있는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한편 이에비해 또 하나 눈에 띄는것은 역시 안철수 후보의 저조한 지지율이다. 사실 최순실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안철수 후보는 3자대결 구도에서 종종 20퍼센트를 넘는 지지율이 나온적도 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안철수 후보는 다자구도(지지도 조사)에서도 중위권으로 처진지 이미 오래며 3자구도 가상대결에서도 기껏 10퍼센트를 조금 상회하는 지지율만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어찌보면 아직 안철수 후보에게도 평균 10퍼센트 정도의 열성,고정 지지층은 남아있는것 아닌가 하는 분석도 가능할것 같다. 하지만 그 10퍼센트의 안철수 열성,고정 지지층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제3후보로서의 안철수 유통기한은 이미 시효를 지난것 같은 느낌이다.


 매 대선때마다 제3후보 현상이 있어왔던것은 아무래도 기성 정치권에 식상한 대다수 국민들의 새로운 후보에 대한 ‘백마타고 오는 초인’ 같은 막연한 기대심리로 봐야 할것이다. 하지만 제3후보는 바로 그러한 막연한 신기루 같은 인물을 바라다보니 그 제3후보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기루가 사라지게 된다. 대개 현실정치에 실제 몸담거나 선거에 뛰어들면서 이런저런 검증과정을 거치거나 정치권에 몸담게 되면서 부딪히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좌충우돌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면 그 제3후보에게 막연한 기대를 걸었던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은 자연스레 떠나게 되는것이다.


 그 제3후보의 유통기한이 지금까지 쭉 살펴보면 평균 5년 정도였다. 대체로 제3후보에겐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임박한 대선을 앞두고 제3후보로 한동안 부각되면서 언론과 여론이 호의적 태도를 보이며, 해당 대선에서는 실패했더라도 차세대 주자로 보통 상위권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막상 현실정치에 몸담고 신당창당을 한다던가 다른 전국단위선거(가령 서울시장이라던가)에 나선다던가 하는식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애초에 가졌던 제3후보의 신선한 이미지는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5년후에 한번정도는 대선도전의 기회가 더 주어졌으나, 그때는 이미 첫 제3후보로 부각되었을때와 같은 신선한 이미지를 더 이상 안겨주지 못하고 몇 번의 선거출마 실패나 당적변경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 첫 번째 사례가 바로 92년의 박찬종이다. 박찬종 전 의원은 양김은 물론 정주영 현대회장까지 나선 14대 대선에서 6퍼센트의 득표를 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사실 92년의 제3후보는 정주영 후보도 있었지만 우리사회의 재벌회장 이미지가 그리 좋은것이 아닌데다가 나이로는 정회장은 그때 이미 칠순을 넘긴 고령이었기 때문에 차세대 정치 지도자로의 기대감까지 갖게 만든 제3후보는 역시 박찬종이었다.


 그러나 박찬종 후보는 이후 95년 무소속으로 서울시장에 출마 아깝게 민주당 조순 후보에게 패하고 이후 신한국당에 입당 김영삼 정권 후반기에 치러지는 15대 총선 여당 승리를 돕기위해 직접 지원유세에도 나서는등 차세대 지도자의 새로운 기회를 잡는듯 했으나, 정작 97년 대선후보 경선에선 ‘이회창 대세론’이 팽배했던 보수여당의 분위기속에서 한계를 느끼고 후보직을 중도 사퇴해야만 했다. 이후 이인제 후보와 함께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하기도 했으나 이후 몇차례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하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지고 말았다.


 두 번째는 바로 97년의 이인제.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과 맞붙어 아깝게 2위로 낙선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인제 경기지사는 차세대 지도자감으로서의 신선한 이미지를 확실히 주었다. 그리고 박찬종 전 의원과 함께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 그해 대선에서 15퍼센트를 득표한다. 하지만 이인제의 출마가 여권표를 어느정도 잠식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도운 결과가 되기도 했다.


 바로 그러한 보수진영의 눈총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이인제는 국민신당과 당시 김대중의 ‘새정치 국민회의’와 전격 합당을 선언했고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선에 도전한다. 이인제 후보로선 두 번째 대선후보 경선 도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의 장인 사상전력등 이른바 ‘색깔론’을 내세웠던게 민주당 지지층에게선 별로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해서인지 노무현의 ‘그럼 날더러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 ?’란 한마디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이인제는 총 13차례의 당적변경을 하는 풍파를 거친 끝에 현재는 새누리당에서 쓸쓸한 정치인생 말년을 보내고 있다.


 정몽준은 박찬종,이인제와는 좀 달리 특별한 사례라 볼수있다. 정몽준은 2002년 대선 당시 제3후보 변수로 떠올랐으나 이후 노무현과의 단일화를 선언 하지만 정작 선거과정에선 노무현을 그리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것 같더니 정작 선거 전날 후보단일화 약속을 파기해버린다. 하지만 노무현이 대선에서 당선됨으로써 대선전날 후보 단일화를 선언한 정몽준 후보의 꼴만 우스워졌다. 그러한 구겨진 스타일과 정치행보 덕분인지 정몽준 후보는 노무현의 5년동안은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정작 그 정몽준의 재기 기회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면서였다. 덕분에 정몽준은 2008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 당선됨으로써 한동안 보수여당의 당대표를 지내기도 했고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함으로써 정몽준 대표는 또다시 정치위기를 맞았다. 그후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4년 지방선거때 서울시장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거듭 받은 끝에 출마를 결심하지만 공교롭게도 세월호 사태와 함께 아들이 친구들과 카톡에서 나눈 부적절한 발언이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제대로 망신을 당하고 추락해버렸다. 박찬종,이인제 후보가 보통 제3후보 유효기간이 5년간이었던 반면, 정몽준은 노무현 5년동안 잊혀진 사람이었다가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듯 했으나 실패한 다소 특이한 사례다.


 2007년에는 대략 고건,정운찬,문국현 같은 제3후보 변수들이 거론되었다. DJ-노무현 10년의 실정탓에 보수정권으로의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던 시절이라서일까. 당시 노무현 정권은 전세를 한번 뒤집어보려고 여러 가지 궁리와 구상을 하던 탓인지 그 어느때보다도 제3후보 풍년(?)이었다. 하지만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경우엔 중도에 대선도전을 포기했고, 문국현은 모두 12명이나 출마한 2007년 대선에서 5.8%라는 그런대로 의미있는 득표를 하긴 했지만 그 이후 역시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렸다.


 안철수의 경우엔 제3후보 유효기간이 5년이었던 박찬종,이인제의 전철을 밟는것 같다. 안철수 역시 5년전 제3후보로 급부상 했을때는 한때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박빙승부 예상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등 적어도 박근혜 대세론에 제대로 브레이크를 걸었던 후보였다. 그러나 서울시장 출마포기, 대선후보 사퇴, 신당창당 중도포기후 민주당과 합당 새정련 창당, 지방선거 기초의회 무공천 공약 취소등 거듭되는 ‘철수’를 거듭한 끝에 ‘철수형’이란 굴욕적인 별명까지 얻으며 역시 제3후보로서의 신선한 이미지가 퇴색되어갔다.


 다만 최순실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안철수 후보의 대선 재도전 전망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적어도 반기문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다는 가정하의 3자대결에서 안철수 후보의 야당표 잠식효과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진보,중도층 유권자의 여망이 사실상 단일화 효과를 주는 여론조사 결과를 만들어주는 것일까. 그래도 유력정당의 유력대선후보인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지지가 쏠리면서 아무래도 안철수의 제3후보 유효기간 역시 여기가 끝인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은 5년전 안철수가 누렸던 제3후보 효과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누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반기문 전 총장 역시 이전같은 지지율 고공행진은 보이고 있지 못하고 있다. 반기문 역시 또다른 5년 유효기간 제3후보인 것일까 ? 사실 반기문은 아직 공식으로 대선출마 선언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대략 이 정권 초창기 무렵부터 이른바 야권 빅3인 안철수,문재인,박원순 3인방의 지지율이 여당후보를 압도하는 기현상이 한 1,2년 넘게 계속되자 이때부터 오피니언 리더 일각에서 반기문 총장을 여권의 새로운 변수로 내세우자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알게모르게 반기문 전 총장도 대선후보 여론조사군에 포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반기문 전 총장의 경우 제3후보로 부각된게 언제부터인지 기준을 정하기가 좀 애매하긴 하다. 다만 2014년 가을에던가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반기문 현상’을 연구,분석하는 토론회를 한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를 불러 가진때부터를 시기로 잡아보아도 어느덧 반 전 총장이 제3후보 변수로 떠오른지는 이미 2년 이상이 지났다. 다만 반 전 총장은 너무 일찌감치 여권변수에 친박변수로 떠오른것이 독이 되었음인지 초창기 같은 지지율 고공행진 현상은 보이지 못하고 있고,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근래 들어서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문재인 후보에게조차 밀리는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어쩌면 안철수는 물론 그래서 반기문 전 총장도 제3후보의 유효기간이 거의 지난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하는것이다. 앞서 언급한 90년대 박찬종,이인제의 경우를 보아도 제3후보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5년을 넘지 못했다. 안철수는 사실상 그 5년 유통기간이 다 지난듯 하고 반 전 총장 역시 만약 이번 대선에서 실패하면 이미 70대 중반의 고령임을 감안하면 다음을 기약하는것은 불가능하고 어쩌면 금년 대선 이후로는 이미 여권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리더를 세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직 10퍼센트 정도 남아있는 안철수 열성 지지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제3후보로서의 안철수 유통기한은 이제 다 지났다는 말을 하는것이다. 제3후보는 일반적으로 기성정치권에 식상한 일반국민 대다수가 새로운 리더를 바라는 열망속에 탄생하곤 했다. 하지만 보통은 직접 현실정치에 부딪히면서 이런저런 한계를 느끼게 되기도 하고 검증과정을 거치면서 제3후보의 신기루에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마음도 떠나면서 제3후보 현상은 그렇게 사그라들곤 했었다. 이미 안철수 현상도 그 소멸의 과정에 접어든것 같다.




덧글

  • 지나가던과객 2017/01/07 21:43 # 삭제 답글

    박찬종씨는 그래도 이미지가 좋았던지 우유광고 모델로 나온 적이 있습죠. 그것도 tv광고였음.
  • 훼드라 2017/01/07 22:21 #

    그게 아직 제3후보 유효기간 5년이 안 지났을때라니까요 그게 딱 14대 대선 끝나고
    얼마되지 않았을때 일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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