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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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팬픽 - 류화영 (3) 기타 팬픽 (연예인, 그외)



 성훈은 집 마당 한쪽에서 야구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앞에는 타이어 하나가 나무 받침대 위에 올려져있고, 그런대로 마치 타격연습이라도 하는듯한 전형적인 야구훈련 모습을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 얼핏보면 정성훈이 무슨 야구선수라도 되나 착각하기 딱 좋은 그림. 성훈이 그런 야구훈련용 도구를 갖다놓은 위치는 그리 넓지 않은 집 마당에서 가운데 테이블에서 10여발자욱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런 구석에 야구배트와 타이어를 가져다놓고 이따금씩 이런 행동을 운동삼아 하는것을 보면 이런 풍경을 남들눈에 그리 뜨이게 하고 싶지 않은듯한 심리도 엿보인다. 그 곁으로 다가오는 여인이 있다. 다름아닌 지금 현재 정성훈의 아내인 스물한살의 류화영이다.

 “ 아저씨... ”

 아저씨...검사님...여보...화영은 대체로 성훈에 대한 호칭을 이렇게 혼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같이 산지 한 1년 되고보니 화영이 생각보다 넉살이 좋은것인지 ‘여보’란 호칭도 어떨땐 제법 익숙하게 입에 담기도 하는데 그래도 아직은 ‘여보’라기 보다는 스무살 많은 아저씨이기도 한 성훈에게 그러한 호칭이 더 익숙한듯 했다. 야구배트를 내려놓고 어린 아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성훈을 보며 화영이 말을 건넨다.

 “ 야구...좋아하시나봐요 ? ”

 화영이 이 집에 산지가 그러고보면 어느덧 1년 가까이가 되어가는데 그러면서 저렇게 화영이 집 마당 한쪽구석에서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다. 가끔 취미삼아 운동삼아 저런걸 하는 것으로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집에 일부러 그런 도구까지 들여다놓고 야구배트 휘두르는 훈련을 하는것을 보면 성훈도 어지간한 야구팬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기 딱 좋은 풍경인것만은 분명하다. 성훈이 씨익 웃으며 화영의 물음에 답한다.

 “ 뭐 그냥 가끔 이렇게 운동삼아 하는거지 뭐. ”

 여하튼 이런 모습이 화영에게 자꾸 보이는것이 무안하기라도 한지 성훈은 머리를 한번 긁적여보이기까지 한다. 어린 아내를 한번 다독여주기라도 하려는듯 어깨를 한번 톡톡 쳐보기까지 하는 성훈. 그러면서 말을 이어간다.

 “ 사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검사로 있지만... ”

 “ ...... ”

 “ 어릴땐 한때 야구선수가 되는게 꿈이기도 했어. ”

 “ 야구선수요 ? 아저씨가요 ? ”

 뜻밖의 사실이기라도 해서일까. 화영의 큰 눈이 더 휘둥그래질 지경이다. 현직 검사인 정성훈이 어릴때 꿈이 야구선수였다는것.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라도 든 것일까. 헌데 성훈은 나름대로 어떤 회한이라도 있는지 한숨을 내쉬고는 발걸음을 테이블 의자가 있는쪽으로 옮긴뒤 그곳에 걸터앉아 화영을 바라보며 회상삼아 말을 이어간다. 화영은 성훈을 뒤따라 테이블에 이미 다가와 있는 상태다.

 “ 실제 한 초등학교 5,6학년때는 야구선수가 되어보려고 리틀야구단 같은데 가입

  해보려고 설치기도 했었어. 하지만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선수 모으는데 몇 번

  가보긴 했지만 떨어지기도 했었고. 그리고 중학교 들어갈 무렵엔 야구부 있는

  학교에 보내달라구 아버지한테 떼를 쓰기도 했었지. ”

 일반적으로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학생들은 교육청에서 주소에 따라 일괄적으로 배치하기 때문에 예,체능 특기생 같은 경우가 아니면 성훈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간다거나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개 대기업 간부에 불과한 성훈의 아버지가 무슨 빽이 있어서 성훈의 바램을 들어줄수 있는것도 아니고. 하지만 성훈 아버지 정국현은 그런 문제보다도 보다 현실적이며 나름 절박한 이유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된 아들을 불러앉혀놓고 타일렀다.

 “ 성훈아... ”

 “ 네, 아버지. ”

 “ 너...추석때 시골에 할아버지 뵈러 간적이 있었지 ? ”

 그렇게 운을 뗀 국현은 집안 내력을 제법 길고 장황하게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대충 성훈의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그 윗대에도 쭉 그렇게 살아온 집안이란 이야기부터 하지만 국현의 경우엔 그런대로 공부를 잘 하는 편이어서 서울에서 명문대에 진학한뒤 이름있는 대기업에 취직 지금 이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국현도 그 아버지도 모두 독자이니 성훈은 이 집의 3대독자라는 이야기까지. 그 제법 길고 장황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나서 국현은 아들에게 그의 진정한 바램을 입에 담았다.

 “ 이 애비가 뭐 그리 큰 욕심은 없다. 우리 주제에 무슨 대단한 재벌가나 그런게

  되는것은 불가능하고...다만... ”

 “ ...... ”

 “ 우리집안이 그래도 이 사회에서 남들에게 꿀리지 않는 아니 주위에서 그런대

  로 존경받고 우러름을 받을만한 그런 명문가로 키우고 싶다는 그런 꿈은 있단

  다. ”

 명문가라. 개념이 모호하긴 하지만 여하튼 그런대로 이 사회에서 어느정도 지위와 명성이 있는 그런 집안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단 성훈의 아버지는 대기업 간부고 그 할아버지나 윗대는 쭉 시골에서 농사를 지은 집이었다고 하니 성훈 아버지대에 그나마 팔자가 좀 펴 중산층 정도의 살림규모를 유지하며 살게 된 그런 집안 정도로 봐야할판이다. 하지만 국현의 진정한 바램은 이 집안을 명문가로 일구고 싶다는것. 그러니 한마디로 그 바램이 이루어지려면 성훈이 그런 사회적 지위를 가질만한 직업을 갖기 위해선 ‘정신차리고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다못해 흔히 생각할수 있는 판,검사나 의사같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라도.

 “ 꼭 그런 아버지의 강요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난 뭐 공부가 학교다닐때부터 이

  공계보다는 인문계 과목에 더 관심이나 흥미가 가더군. 그래서 고등학교때도 문

  과를 지원했고...그리고 대학에 진학할 무렵엔 법대를 택한거야. 꼭 뭐 아버지가

  판검사나 의사같은 잘 나가는 직업군을 가져야한다 그런 바램을 가지셨기 때문

  이 아니더라도 대충 그 무렵...그러니까 대학입시를 앞둔 어느 무렵에 우리집

  이웃에...나보다 한 열 살많은...‘옆집 아저씨’라고 해야하나 ‘옆집 형’이라고 해

  야하나 어쨌든 그정도 터울지는 분이 한분 계셨는데...그분이 대학 조교라고 하

  더군. 그러면서 하루는 나한테 그런 충고를 하는거야. 그래도 취직전망이 좋은

  편인게 법대라고. 꼭 무슨 법조인 같은 길이 아니더라도 가령 기자가 된다던가

  또는 정치를 한다던가 그런쪽으로 뛰어든다 하더라도 법대출신이면 어느정도

  프리미엄이 붙는다며 법대를 권하더라구. 그래서 나도 법대를 택한것이고. ”

 한마디로 자신의 적성과 그리고 현실을 생각하는 주위의 충고까지 덧붙여져 성훈이 결심한것이 법대 진학이었던것이다. 헌데 그런 성훈이 정작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고시공부를 한다던가 또는 언론이나 정치판 같은곳에 뛰어든다던가 그런 미래설계를 하기는 커녕 부모 반대까지 무릎쓰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비정규직 알바를 하며 불치병을 앓는 은영과 단칸방 동거생활에 들어갔던것이니 애초 사춘기시절 성훈 부모의 바램과는 딴판인 엉뚱한 일탈을 했던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20대 시절 그렇게 비극으로 끝나버린 사랑. 불치병을 앓다가 아이 하나만을 낳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첫사랑 은영에 대한 회한도 남다르기까지 한 정성훈. 그런 성훈이 슬픈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화영을 바라보며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 생각해보면 은영이의 죽음이 되려 날 각성시켜준 것이라고나 할까 ? ”

 “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 ”

 성훈의 말이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인지 화영이 의아해서 묻고 그런 화영을 바라보며 성훈의 말은 계속된다.

 “ 은영이에게 한참 그렇게 빠졌을때는 진짜 세상 그 누가 뭐라고 해도...아무리

  아버지,어머니가 ‘집안 대를 이어야하는데...그러면 안된다’고 만류해도 그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오직 은영이만을 위해서 은영이만을 옆에서 지켜주며 오직

  은영이를 위해 이 인생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는데... ”

 하지만 은영이 죽고나서 의외로 성훈은 금방 평정심으로 되돌아왔다. 한때 불같은 사랑에 눈멀었던 성훈이 정신을 차린것이라고 봐야하는것일까. 고시공부고 뭐고 전부 포기하고 식당 아르바이트등을 하며 돈을 벌면서 은영이의 병간호를 하며 그렇게 1년여를 살았던 성훈. 하지만 은영이 그렇게 떠나버리고나서 다시 사법고시에 도전 그리고 검사가 된것이다. 따라서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남들보다 좀 늦은 나이에 검사 임용고시에 붙은것이라 봐야할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하튼 성훈도 어느덧 경력 10여년에 그리고 나름대로 검찰에서 인정도 받는 그런 검사로 성장해 있다. 그런 성훈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 무엇보다 내가 20대때에는 진짜 가족이고 주위고 내 미래고 모두 팽개치고 오

  직 사랑만을 위해서 은영이만을 위해서 내 인생 모든 것을 던지고 싶은 그런 마

  음뿐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은영이가 떠나고 시간이 흐르고...나이가 들면서...조

  금씩 철이 들었던 것이라고나 할까... ”

 “ ...... ”

 “ 시간이 흐르면서 그렇게 무모하게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던 불같은 사랑

  보다는 앞으로 내가 이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것인가 그 고민을 차츰 하게 되

  더군. 또는 나 자신보다는 내 부모...우리 집안 그런것들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걱정하는 그런 자아로 변화해갔고 말이야. ”

 지나간 시간 무엇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은영과 시작했던 그 무모했던 동거가 지금와서 새삼 어떤 후회감으로 다가오는것인지 성훈의 회한잠긴 목소리는 다시 이어진다. 한두마디로 표현하기 참으로 힘든 40대 초반 중년남자의 복잡한 감정이다.

 “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와서 그때 그 은영이와 했던 사랑을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야. 다만...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그저 단순한...젊은 시절 그렇게 무모

  하게 저질렀던 불같은 사랑이 아닌 다른것들을 좀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그런 시

  간이 많아졌다 이 말이지. ”

 대체 무슨 말이 하고싶은것일까. 화영은 아직 성훈의 마음을 알수 없어 혼란스러워질 지경이기까지 한데 성훈이 그런 화영을 살짝 묘하게 바라보다 말을 건넨다.

 “ 화영아. ”

 “ 네, 아저씨. ”

 “ 내 아이 한 열명쯤만 낳아줄수 없겠니 ? ”
“ 네에 ? ”

 순간 화영이 황당해질 지경이다. 요즘 세상에 아이를 두세명도 아니고 열명씩이나 낳아달라는것도 상식밖의 일이지만, - 뭐 그래도 요즘 젊은 여자애들중에도 결혼해서 아이 많이 낳고 싶다는말 농반진반으로 하는 사람도 종종 있긴 하다. -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것에 당혹스럽고 기가막힌다. 도대체 아이 열명을 무슨 수로 어느 세월에 다 낳으라고. 순간 현기증이 나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긴 한데, 그런 화영의 마음을 대충 알겠는지 성훈이 일단 그녀를 달래보려 한다.

 “ 하하...농담이야 농담...열명이란 말은 아무래도 좀 심했던것 같군. 하지만...하지

  만 말이다 화영아. ”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것인지 화영은 여전히 성훈의 의도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하고 성훈은 그런 화영을 보면서 말을 계속 이어간다.

 “ 앞서 말했지만...여하튼 우리 집안은 손이 귀한 집안이야. 아버지,할아버지가 다

  무녀독남 외동아들 독자였으니...내가 이 집안의 3대독자고 그리고...그러고보니

  현우 저 아이가 우리집안의 4대독자가 되는군. ”

 “ ...... ”

 “ 무엇보다 이제와서 새삼 아버지의 그 말씀이 가슴을 울려. 아무리 그래도 손

  귀한 우리 집안인데...니가 최소한 아이를 온전하게 낳을수 있는 그런 건강한 여

  자를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충고. 그땐 그저 철없는 마음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나이 40이 넘으니 그때 아버지,어머니의 충고와 우려 그리고 고민이 이해가 조

  금씩 가더군. ”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는 성훈. 화영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간다.

 “ 그러니 꼭 열명까진 아니더라도...화영이 니가 좀...우리집안 자손을 좀 번창하게

  해주는 그런 역할을 해줄수는 없냐 그 말을 하고싶은거야. 그래줄수 있지, 화영

  아 ? ”

 화영은 말없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어쨌든 지금 성훈과 화영은 정식으로 혼인신고까지 마친 부부사이다. 결혼식 같은것을 올려서 주위에 결혼사실을 공표하지만 않은것일뿐 두 사람은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엄연한 부부이니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것은 문제될것은 없다. 다만 다산(多産)을 바라는 성훈의 소망이 화영을 적잖이 부담스럽게 만드는것 같다. 어쨌든 화영은 이제 성훈의 아내이니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는것은 부부사이의 결속을 그만큼 더 다지는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만 이쯤되면 성훈의 태도도 좀 이해할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다. 가령 어쨌든 손귀한 집안이니 자신의 다음대부터라도 자손이 번창하는 모습을 보고싶은 바램, 또는 이 집안을 명문가로 일구고 싶다는 성훈 아버지의 바램을 지금 성훈도 어쩌면 어느정도 갖고 있을련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훈은 현재 사춘기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애딸린 홀아비란 점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이혼을 했든 사별을 했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남자라면 재혼을 할 경우 혹시 새 아내가 전처자녀에게 소홀해질까봐 아이가 생기는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헌데 성훈은 마치 그런 고민은 하지 않는 사람인양 화영에게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아이 열명만 낳아달라’는 당부까지 하고있는것 아닌가. 농담이나 과장법이 어느정도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성훈의 다산에 대한 바램이 그만큼 담겨있음은 부인하기 힘들것이다. 거기다 한층더해 만약 국현의 바램이었던 이 집안을 어느정도로 사회적 지위를 갖춘 그런 명문가로 만들고 싶다던 그 소망을 지금 성훈도 갖고 있다면 성훈의 첫 아내의 아들인 현우의 처지는 더더욱 복잡해질수도 있다. 그런 문제를 아직 나이어린 화영은 고민하고 있진 않은것 같고, 성훈은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것인지. 일단 그의 말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 사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현우 저 아인 내게 참으로 아픈 손가락이기도 해

  . ”

 “ ??? ”

 “ 어쨌든 그 아팠던 은영이 그 사람이...이 세상에 남기고 간 일점혈육 아닌가.

  게다가 저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 세상을 떠나버렸으니...현우 저

  아인 엄마손길 한번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지금껏 자라온 아이기도 하지. ”

 비록 가문을 명문가로 일구고 싶은 바램, 그리고 자손을 번창하게 만들고 싶은 바램 그런것이 있을지언정 확실히 성훈 역시 애딸린 사별남의 처지로 엄마없이 자란 그리고 어느덧 사춘기 소년으로 성장해있는 아들 현우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어느정도 있는 그런 보통 아버지다. 그런 성훈의 솔직한 고백이 좀 더 이어진다.

 “ 무엇보다...난 거듭 말하지만 집안에서 3대독자라서 현우 저 아이에겐 이모든

  고모든 엄마 역할을 대신 해줄만한 친척도 없이...그렇게 외롭게 자란 아이야.

  그러니... ”

 화영은 묵묵히 성훈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지금 과연 화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성훈으로선 알길이 없고, 다만 그런 화영을 바라보며 성훈은 사뭇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 화영이 너하고 사이에 아이는 진심으로 가급적 많이 낳고 싶다. 그게 내 바램

  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론 현우 저 아이에게도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줘.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 그 대신 혹 현우로 인해 불편하거나 힘든일이 있

  거든 숨기거나 혼자서 속앓이 하지말고 그냥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내게 말해주

  고. 내 말 무슨말인지 알겠지 ? ”

 “ 현우를... ”

 한참만에 성훈의 아들 현우 이름을 입에 담으며 운을 뗀 화영.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훌륭하게 키우고 싶으신건가요 ? ”

 성훈이 직접 입에 담은말은 아니지만 화영이 그런대로 눈치가 좀 있는 성격이라 ‘가문을 명문가로 일구고 싶다’던 성훈 아버지의 말을 여러차례 성훈이 애써 입에 담은데서 그런 느낌을 받았기에 물어본 질문이다. 그 말에 살짝 뜨끔해지기라도 했는지 성훈의 눈빛이 좀 흔들리고 그러나 이내 곧 너털웃음을 지어보인뒤 성훈의 말은 계속된다.

 “ 하하하...뭐 꼭 그렇다기 보담도... ”

 “ 그럼 뭐 어떻게 하고 싶으신건데요 ? ”

 “ 내 그런 바램도 있지만 그건 은영이와의 약속이기도 해. 어쨌든 죽은 은영이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일점혈육인 현우. 그 현우를 품에 안고 은영의 유골함 앞

  에서 약속했거든. 현우를 정말 이 세상에서 남부끄럽지 않은아이...정말 훌륭한

  아이...세상을 사랑할줄 아는 아이...더 큰 마음으로 세상을 사랑으로 품을줄 아

  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그 은영이와의 약속을 지키고픈게 내 또 한가지

  바램이기도 해. ”

 남부럽지 않은 훌륭한 아이, 그리고 세상을 사랑할줄 아는 마음을 가진 아이. 사실 바로 가슴에 와닿지는 않는 추상적인 표현이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현우를 제대로 잘 키우고 싶다는 성훈의 바램은 그 단어들 안에 있는 그대로 반영되어있는것 아닌가. 화영은 웬지 부담감이 느껴져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보고 그런 화영을 바라보며 성훈의 말은 조금 더 이어진다.

 “ 그러니...그 두가지만 좀 화영이가 이룰수 있게 날 도와주었으면 해. 이 집안을

  자손이 번창하는 그런 집안으로 만들고픈 바램. 그리고 현우를 진짜 남부럽지 않

  은 훌륭한 그런 아이로 키우고픈 바램. 그 두가지 바램을 내가 이룰수 있도록 화

  영이가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내게 그 이상 더 바라는것은 없어. ”





 한밤중.

 남녀간의 뜨거운 격렬한 정사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껏 자신의 열정을 발산해내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뭔가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신음소리도 뭔가 희열이나 절정을 맛보는 그런 여인의 신음소리라기 보단 아픔을 참지못해 내는 그런 소리에 가깝다. 여하튼 그런 두 사람의 정사가 끝나고 남자가 여자를 한번 사랑스러운듯 꼭 품에 한번 안아본다. 여자가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기라도 한지 한번 볼과 이마에 입을 맞춰보기도 하고. 남자는 다름아닌 정성훈이고 여자는 류화영이다.

 40을 넘긴 정성훈이지만 십여년 넘게 참아온 그것에 대한 욕망과 갈망이 오히려 더 절실했던것일까. 하긴 전처 은영의 경우엔 어쨌든 아픈 몸이었으니 - 비록 두사람 사이에 아들 하나가 태어나긴 했지만 - 정상적인 성생활을 이루는것은 그리 쉽지는 않았을것 같다. 그러니 사별로 막을내린 첫 결혼생활에서조차도 성생활은 비교적 만족스럽지 못하게 지냈던 것이라고 봐야할 성훈. 그래서인지 40이 넘어서 맞이한 어린아내 화영에게는 더더욱 지금껏 분출해내지 못한 열정을 더 한껏 절정으로 치달아오르게해 원없이 분출해내고 있는것 같다. 하지만 그런 성훈이 어린 화영으로선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 남편 성훈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따금 그렇게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것이다. 여하튼 마무리된 두 사람의 성관계. 화영은 힘들고 지친듯 살짝 몸을 일으켜 앉은뒤 한숨을 토해낸다.

 “ 왜... ? ”

 아내의 행동이 좀 마음에 걸리기라도 하는것일까. 묻고있는 성훈. 화영은 나지막하게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 아...아니에요 그냥... ”

 ‘아프고 힘들어요...살살 해주세요...’ 이런말 조차도 아직 차마 꺼내지 못할정도로 화영은 그만큼 순박하고 수줍어하는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되려 더 걱정이 되는듯 성훈이 다가가 화영에게 손을 얹으며 말한다.

 “ 뭐...불만족스러운것이라도 있어 ? ”

 “ 아...아니에요 그런거... ”

 하지만 성훈의 그 말에 되려 기겁한듯 나오는 화영의 반응. 하지만 화영의 이런 태도가 성훈을 더더욱 신경쓰이게 만든다. 아무래도 뭔가 불만족스러운것인가 하는 우려에 성훈이 다가가 뭔가 말을 걸어보려 하지만 화영이 황급히 그런 성훈의 손길을 뿌리친다. 그리고 말한다.

 “ 저...저 씻고 올께요. ”

 아랫도리라도 씻어야겠는듯 그렇게 말하고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가는 화영. 급했는지 그만 팬티와 브래지어조차 제대로 챙겨입지 못한 상태다. 이제 막 정사를 마친 직후의 모습이 아닌가. 별일이야 있으랴 싶어 성훈은 일단 몸을 다시 침대에 누이고 황급히 욕실로 들어간 화영은 몸을 씻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고 그리고는 나온다.

 “ 헉~~~!!! ”

 팬티를 챙겨오지 않은것을 그제서야 알아챈 화영이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그때 누군가와 마주쳤다. 그건 다름아닌 성훈의 아들 정현우다. 2층 자기방에 있을줄 알았던 현우가 언제부터인지 1층에 내려와있는것이다. 팬티도 입지 않은 몸상태인 화영이 순간 화들짝놀라고 일단 황급히 다시 방으로 들어가 팬티와 브래지어를 챙겨입는다. 하지만 신경이 쓰여서인지 다시 거실로 나와본 화영. 그때까지도 엉거주춤 거실 한가운데 서있는 현우에게 말을 건넨다.

 “ 현우야... ”

 조심스레 말을 건네지만 당황한것인지 아니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뭘 어찌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것인지 2층으로 도로 올라가지 않고 그렇다고 1층에서 달리 무슨 행동을 하는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있는 현우. 그러자 화영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결국 말을 건넨다.

 “ 뭐하는거야 ? 대체 거기서 ? ”

 “ 아...아뇨 전 그냥... ”

 “ 언제부터 거기 서있었던건데 ? ”

 현우의 행동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인지 화영이 거듭 말을 건네지만 현우는 여전히 무슨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 화영도 그녀 나름대로 이 상황에서의 대처가 쉽지 않아 피차 얼떨떨하게 서 있긴 마찬가지인데 그러다 무슨 생각이라도 들었음인지 화영이 다시 현우에게 말을 건넨다.

 “ 현우야... ”

 “ 네 ? 네... ”

 아직 화영에 대한 호칭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우라서인지 ‘네 ? 네...’ 하는식의 말만 거듭 반복하고 있고 화영이 안되겠다 싶은지 현우를 잡아이끈다.

 “ 안되겠다 현우야. ”

 “ 네 ? ”

 “ 우리 잠깐 이야기좀 할까 ? ”

 그리고는 현우를 부엌쪽으로 데리고 간다. 부엌이야 거실과 바로 붙어있고 특별히 무슨 칸막이 같은게 있는것도 아니니 바로 들어가면 된다. 다만 화영은 여전히 팬티와 브래지어차림으로 잠옷조차 걸치지 않은 상태다. 그런 모습으로 부엌의 불을 켜고 부엌 식탁의자에 앉은 화영. 현우를 불러 앉힌다.

 “ 왜 그랬던거야 ? ”

 “ 네 ? ”

 여전히 뭔가 화들짝 놀라는듯 현우는 이와같은 반응을 계속 내보이고 있고. 화영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은지 현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 혹시 엿봤던거니 ? 아니면 엿들었거나 ? ”

 “ 예 ? ”

 화들짝 놀라는 모습으로 ‘예 ? 네 ?’ 하는식의 되물음만 벌써 몇 번째 반복하는것인지 모르겠다. 할줄아는말이 그것밖에 없는가 그런 의심까지 들 지경인 현우의 반응. 안되겠다 싶은지 화영은 다시금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보고는 말을 건넨다.

 “ 내 말은...혹시...아빠랑 내가 하는거...엿봤던거냐구 ? ”

 “ 네에 ? 아...아니에요. 무...무슨말씀을 그렇게...절대 그런것 아니에요 !!! ”

 고등학교 1학년인 정현우니 화영의 이와같은 질문의 의미를 모르진 않을터이고 그래서 더더욱 펄쩍뛰면서 손을 내젓는다. 하지만 화영은 여전히 현우의 이런 태도가 계속 마음에 걸리고 신경이 쓰이는지 다시금 현우에게 말을 건넨다.

 “ 그럼 대체 왜 거기 서있었던건데 ? 그 시간에 대체 뭘 하고 있었던거야 ? ”

 그리고 시계를 살짝보니 아직 자정도 되지 않은 시간이긴 하다. 한밤중이긴 하지만 고등학생 정도 되는 청소년이 아직 잠은 이루지 않은채 그 시간에 1층 거실에 나와있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할것은 없을만한 시간대다. 현우는 변명인지 진담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말투로 대꾸한다.

 “ 그냥 심심해서 잠깐...물이나 마실까 해서 나와있던거에요. ”

 진담인지 아니면 변명거리가 마땅치않아 일부러 그렇게 말한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와같이 대답한 현우. 만약 물을 마시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온것이라면 방과 부엌은 정 반대방향이니 그것도 방과 욕실 사이쯤에 엉거주춤 서 있던 현우의 모습은 더더욱 이해할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화영이 방에서 처음 몸을 씻기위해 나와 욕실로 가고 팬티를 챙겨오지 않은것을 깜빡해서 다시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고 팬티를 챙겨입은채 다시 나온것이니 그렇게 두차례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현우를 발견하지 못한것도 좀 의아하긴 하지만 황급히 움직일때고 불이 다 꺼져있는 어두운 상태이니 현우를 두 번째 방에서 나올때야 본것은 뭐 그런대로 이해할수 있는 상황이긴 하다. 여하튼 현우의 그 말에 손수 화영은 현우에게 컵에 물을 따라주려고까지 한다. 그럴 수고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듯 황급히 현우가 일어나서 정수기쪽으로 다가가려는데 그러다 그만 두 사람이 부딪히기까지 한다.

 “ 어엇...앗 차거 !!! ”

 그 바람에 화영이 손에 들고있던 물컵을 떨어뜨리고 현우가 황급이 수건을 가져와서 화영의 물묻은 발과 다리 아랫부분을 닦아준다.

 “ 아니, 거기서 뭐하는거요 대체 ? ”

 팬티를 챙겨입고는 다시 방에서 나간 화영이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걸리는것 같아 의아하게 생각한 성훈이 그 사이에 방에서 나와보았다. 그리고 부엌에 불이 켜져있는것을 보고서는 그제서야 그쪽으로 와본것이다. 현우가 정수기 물을 따르다 컵을 엎지른 화영에 당황해서 수건으로 발과 다리를 닦아주던 바로 그때였다.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뿐인 화영을 현우가 닦아주는 모습이 좀 기묘하게 느껴지긴 했을것이다. 갑작스런 성훈의 등장에 현우와 화영도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긴 한데, 일단 화영이 해명을 한다.

 “ 여보...그게 현우가 물을 먹고 싶다고 해서. ”

 “ 이 시간에 물을 ? 나 원...그리고 그게 뭐 대단한일이라고 수고스럽게...일부러

  이 시간에 거기서 그러고 있었단말이요 ? 그러지말고 이리와요. 현우 물은 내

  가 따라주리다. 원 고등학생이나 된 녀석이 손발이 없는것도 아니고... ”

 해명이 석연찮게 들렸는지 성훈이 현우에게로 다가오면서 거듭 그와같이 말하고 현우가 그러자 더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젓는다. 그리고 말한다.

 “ 아...아니에요 아빠. 새엄마가 따라줘서 방금 마셨어요. 저...저 이만 올라갈게

  요. 안녕히 주무세요. ”

 그리고는 무슨 부적절한 행동이라도 하다 걸린 사람처럼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가버린 현우. 성훈은 아직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인 화영을 약간 어이없게 바라보다 일단 그녀를 타이르기라도 하는듯한 말투로 말한다.

 “ 그...들어갑시다 방으로. 나 원...아니 그런차림으로 밖에서 무슨시간을 이렇게

  보내. 어서 들어갑시다. ”

 성훈의 재촉에 화영은 그를 따라 침실로 들어간다.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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