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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이지혜 (9.마지막회)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5. 방송작가의 자살





 어느덧 저녁시간. 1박2일 일정이나 이런식으로 온 야유회는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이 늦어지자 집으로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고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계속 어울리는 완전히 파장 분위기는 아닌 아직 다수의 스텝들과 출연진 그리고 함께 온 개그맨이나 방송인등. 몇명정도가 아직 남아서 자기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거나 음식을 나눠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는등 그런 분위기로 있을때였다. 지혜는 볼일이 급해서 근처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가보았다. 헌데 화장실에서 나올때쯤 만수가 이쪽으로 걸어오는것이 보였다. 만수도 화장실에 가려나보다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는데 뜻밖에 만수가 지혜의 앞을 막아섰다.

 “ 이봐요 이지혜씨. ”

 만수는 그때는 이미 술에 많이 취해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혹 술주정인가 싶어 별다른 대꾸없이 지나치려하는데 만수는 손까지 뻗어 그런 지혜를 잡아세웠고, 순간 지혜는 괜시리 겁까지 났다. 아까 ‘성희롱 하지말라’ 운운하며 한마디 한 것으로 혹 감정이 상한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만수가 그런 지혜를 보며 말을 건넸다.

 “ 지혜씨 나한테 아까 유감있어요 ? ”

 “ 예 ? ”

 사실 만수의 비밀카메라를 그것도 적극적으로 몇 번이나 기획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던 전력이 있는 그런 지혜 아닌가. 그래서 혹여 다른 제작진을 통해 그 이야기가 만수의 귀에 들어가지는 않았나 싶어 공연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던 그런 지혜다. 헌데 만수가 그런 지혜를 잡아세우며 이런식으로 따지니 지혜 입장에선 공연히 가슴까지 철렁 내려앉을 지경이다. 혹시 그런 문제를 자신에게 따지려는것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일단 다행히도(?) 만수는 다른 용건을 끄집어냈다.

 “ 근데 아까 나한테 왜 그랬어요 ? 왜 싸가지 없이 굴었냐고 ? ”

 “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 ”

 “ 그런적 없다구 ? 나한테 싸가지없이 굴지 않았다고 이 X아 ? ”

 욕설까지 입에 담는 만수가 아무래도 취한듯 여겨져 지혜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다시금 비켜나려 했다. 하지만 만수는 다시 그런 지혜를 잡아세우고 웬만해선 그녀를 순순히 놓아보내지 않을 기세다. 지혜는 겁이나서 소리를 지른다.

 “ 악 !!! 악 !!! 왜 이러세요 ? ”

 하지만 만수는 소리지르는 지혜를 끌어안은뒤 갑자기 약간 해괴한 행동을 해댄다. 주먹으로 지혜의 꿀밤을 몇 대고 때리는 것이다.

 “ 이리와 봐 이 X아 !!! 너 같이 싸가지 없는 어린 X은 어른한테 혼좀 나봐야 돼

  !!! 이리 안 와 !!! ”

 ‘뻐버버벅~~~!!!’ 소리까지 내며 만수는 지혜의 머리에 꿀밤을 여러대 가격하고, 지혜는 아프기도 하고 이런 만수에게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그를 밀쳐내려고까지 한다. 하지만 만수는 여전히 그녀에게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녀를 안은채로 계속 뭐라고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 그러다 급기야 지혜의 유방을 움켜쥐고 만지작거린다.

 “ 악 !!! 악 !!! 왜 이러세요 ? ”

 “ 이리와 봐 !!! 너같이 싸가지 없는 X은 이 아저씨한테 혼이 좀 나봐야 한다니까

  그러네 ? 이리와봐 !!! 싸가지없는 X...이 아저씨가 오늘 버르장머리를 확실하게

  고쳐놓으마. ”

 혹 싸움이나 시비가 붙다 실랑이나 시비가 벌어지다 우연찮게 특정부위에 손길이 스치거나 했다면 그건 실수로 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만수의 행동은 이미 누가봐도 고의가 명백해보인다. 지혜의 두 유방을 손으로 움켜쥔채 한참을 주물럭거리는 만수. 지혜는 충격에 어쩔줄을 모르며 어떻게 해서든 만수에게서 벗어나려한다. 있는힘껏 만수를 저리 밀쳐내는 지혜. 그런대로 힘이 좀 있는편인지 만수가 순간 저만치 나동그라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지혜도 너무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그만 만수를 내동댕이치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헌데 그때 저쪽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 이봐...왜 그래 ? 무슨일이야 ? 아니...지혜씨 ? 무슨일이야 ? 무슨일 있었어 ?

 ”

 다가오며 말을 건넨 사람은 다름아닌 지혜의 프로그램 메인피디인 홍피디였다. 화장실 인근이 조명은 어두운 편이라 사람얼굴을 바로 알아보긴 쉽지 않은데 홍피디는 무슨 비명소리 같은게 나자 놀라서 무슨일인가 싶어 이쪽으로 달려와본것이다. 그리고 저쪽에 화장실 안 조명 하나가 밖으로 새어나오는게 있어서 지혜의 얼굴을 그런대로 알아볼수 있었다. 헌데 잽싸게 만수가 그 옆으로 다가온다.

 “ 이지혜 작가, 안 다쳤어요 ? 에잉...이거 길이 왜 이리 미끄러워 ? ”

 “ 아니, 만수씨 무슨일이에요 ? ”

 만수도 그곳에 있었음을 그제서야 알아본 홍피디가 말을 건네는데 만수는 그런 홍피디를 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여기 물이 얼었나...아마 화장실에서 새나온 물이 좀 얼었는지...길이 좀 미끄러

  웠네. 그 바람에 지혜씨가 넘어졌나봐. 그래서 부축해주려 했지. ”

 “ 아, 그래요 ? 난 또 무슨일이라고. 지혜씨 그 여자가 좀 조심하지 않구. 만수씨

  한테 고맙다고 하세요. ”

 지혜는 순간 기가막혔다. 방금전 만수가 자신의 유방을 움켜쥐며 성추행까지 했는데, 홍피디는 그런 상황을 알지도 못한채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는것이다. 지혜는 기가막히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무슨 항변을 하기도 참 난감해서 그냥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 뭐해요 !!! 어서 만수씨에게 고맙다고 하라니까 !!! ”

 아까 만수와 지혜 사이에서 벌어졌던 작은 실랑이도 있고 해서 홍피디 입장에선 지혜가 거듭 만수에게 실례를 범하고 있는걸로만 생각하고 있는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진 못한채 지혜만 거듭 나무라며 되려 만수에게 고맙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대체 지금 지혜가 만수에게 고마워해야할 일이 뭐가 있는지. 홍피디는 일전에 지혜가 그 무슨 만수 비밀카메라를 기획하자며 그런 주장을 강력히 펼쳤던 일도 있고 해서 이래저래 지혜가 자꾸 만수에게 결례를 범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나보다. 결국 어이없게도 만수가 지혜를 성추행한 상황은 알고있는 사람 자체가 없고 그나마 뒤늦게 현장에 온 홍피디는 만수가 미끄러은곳에서 넘어질뻔한 지혜를 부축해준것으로만 생각하고 거듭 고맙다는 인사 그리고 이런저런 만수에 대한 작은 결례도 겸사겸사 사과하라는 요구를 하는중이다. 지혜 입장에선 기가막힌 상황이 거듭 계속되고 있을뿐이다.

 “ 지혜씨, 지혜씨 왜 그래요 ? ”

 밤늦은 시간이기도 해서 여성 구성작가들은 자기네들끼리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봉고차를 몰고온 여성 작가가 한명이 있어서 그 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길에 각자 집 근처에서 내려주기로 하고 그렇게 돌아가는중. 헌데 그런 봉고차안에서 지혜가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구성작가들이 의아해서 물었다. 하지만 지혜는 이 상황은 또 어찌 해명해야할지 그게 더 난감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료 구성작가들은 지혜가 중학교때부터 슬픈 상상 같은것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혼자 울거나 하는 그런 버릇이 있었다는것은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혜의 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니 그녀한테 무슨일이 있나보다 싶어 걱정되어 묻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더 해명하기가 난감해진 일이라 지혜는 자신의 답답한 속을 동료작가들한테 하소연도 못한채 서럽게 울기만 할 뿐이다. 차라리 이럴때는 자신이 슬픈상상을 하다 우는 습관이 있는 아이란것을 알고있는 노지연 4총사가 곁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럼 적어도 그네들은 지혜가 또 무슨 슬픈 연속극이나 소설 같은 이야기라도 상상하다 감정이 북받쳐 우는 것으로 생각할것 아닌가.





 그런일이 있은 얼마후, 홍피디가 지혜를 조용히 불렀다. 무슨일인가 의아해하는 지혜에게 홍피디는 좀 뜻밖의 말을 꺼냈다.

 “ 지혜씨, 그날 야유회 갔던날 무슨일 있었어요 ? ”

 “ 예 ? ”

 갑자기 무슨일인가 싶어 멍하니 서있는 지혜. 홍피디는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 그날 혹시 만수씨가 지혜씨한테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했던거냐구 ? ”

 “ 아 ? 아...저 그게... ”

 그날일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어서 이러는것인가 하는 생각에 지혜는 살짝 긴장이 되면서도 그런대로 용기를 내어 만수가 했던 일을 입에 담으려했다. 헌데 홍피디는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 그날일 지혜씨가 없었던일로 하고 입좀 다물어줘요. ”

 “ 네 ? 뭐라고요 ? ”

 “ 아마 만수씨가 술김에 좀 이상한 짓을 했던 모양인데,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

  지말고 그냥 지혜씨가 입 좀 다물어달라고. 지혜씨가 입을 다물어야 조용히 넘

  어갈수 있는 일이라서 그래요. ”

 지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그날일 지혜 입장에서도 너무 충격적인 일인지라 그로인해 놀란 가슴을 한동안 제대로 추슬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침 한일 월드컵이 한창인때라 방송사 예능프로가 반 휴가인 상태이길래 망정이지 평상적으로 방송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면 지혜는 한 며칠동안 결근을 했어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수가 지혜에게 범한 성추행 때문에 그 충격으로 집에서 한동안 정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겨우 충격을 가다듬고 다시 직장에 출근을 한 것인데, 그 직장의 상사격이라 할수있는 홍피디는 너무 어이없는 말을 지금 지혜앞에서 하고있는것이다.

 “ 만수씨는 지혜씨도 알다시피 지금 한참 이런저런 예능프로나 방송 진행자로 왕

  성하게 활동중이고, 무엇보다 당장 우리 방송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있는것도

  두 개나 되어요. 무엇보다 20년 가까이 연예계에서 활동하면서 방송인은 물론

  피디나 작가등 여기저기 인맥도 넓은 그런분인데. 그런 만수씨 방송활동에 행여

  지장을 줄수도 있는일이 벌어지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 행여 만수씨에 대해 안

  좋은 말이라도 나와서 만수씨 방송활동에 걸림돌이 되면 그건 우리 방송사도 피

  해를 입는 일이고 우리 프로그램도 어떤 의미에선 손해를 보는 일이라고. 그러니

  지혜씨가 입 좀 다물어 달란 소리에요. 지혜씨 혼자만 입 다물고 있으면 시끄럽

  지 않게 다들 편안하게 넘어갈수 있는 일이니까 지혜씨가 없었던 일로 하고 잊어

  버려달라는 말입니다. 무슨말인지 알겠어요 ? ”

 “ 아...아니 저... ”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에 지혜는 그 자리에서 현기증이라도 일으키며 쓰러질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솔직히 지금 지혜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 만수란 작자가 어떤 사람인지 만천하에 고발이라도 하고싶은 그런 심정이다. 헌데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하고있는 프로그램의 총 책임을 맡고있는 피디가 그 방송프로 제작 구성원중의 한사람인 막내작가 이지혜를 감싸거나 다독여주진 못할망정 오히려 그날일을 입을 다물것을 요구하는것이다. 방송가가 결국 이런곳이었단 말인가. 지혜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정신을 잃고 쓰러질것만 같은 그런 마음상태가 되어있었다.

 지혜는 방송사 한쪽 후미진 공간의 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일었다. 사춘기가 시작된 중학교 무렵부터 가끔 혼자 슬픈 이야기 같은것을 상상해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울거나 하는 그런 습관이나 버릇이 있던 이지혜. 가끔 특이하거나 엉뚱한 표현을 하기도 해 주위 사람을 당혹케 만들기도 하던 이지혜. 전자인 지혜의 습관의 경우 그래도 친구인 노지연,안은경,강주현,김민정 4총사는 그런 지혜를 이해해주고 감싸주기도 했고, 후자의 버릇의 경우에는 국어 선생님이 지혜를 가리켜 ‘시적 상상력을 가진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지혜의 그런 습관은 언제부터인가는 혼자 그런 상상했던 이야기를 글로 직접 적어보기도 하는 습관으로까지 이어져 가끔 그녀가 노트나 연습장에 적은 그런 글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오해를 하기도 하는 그런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일로 사람들에게 종종 오해도 받고 놀림도 받으며 사춘기를 보낸 지혜였지만 나름 그게 어쩌면 자신의 재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번 시인이나 동화작가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한게 고등학교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노지연 4총사중 한명인 강주현은 그보다는 ‘일일연속극’ 작가가 되어보는것은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대개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라던가 불치병을 앓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가슴아픈 사랑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혹은 열악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사는 소년가장이나 소녀가장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상상하는것이 일일연속극 소재로는 딱 좋을것 같다는 생각에 주현이 그런 권유를 하기도 했었고, 그것을 마음에 두고 나이 20대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에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하기도 한 그런 이지혜다. 다만 고정수입이나 확실하게 작가로 데뷔 일을 할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드라마 작가’ 보다는 방송사에 소속을 두고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할수 있는 비드라마 작가의 길을 택한것인데 그런 지혜에게 비드라마반 초창기에 만난 차준섭은 그런 충고를 했었다. ‘구성작가 일은 지혜씨가 생각하는 그런것과 다르다’고 어찌보면 지금이라도 포기하는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하기도 했던 그런 차준섭. 교육원 수강생이라기 보단 방송가와 수강생들을 연결시켜주는 브로커일을 주로 하는것 같았던 그런 차준섭. 그런 준섭에게서 들은 충고가 구성작가 일은 지혜씨가 생각하는 그런것과 완전히 다른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제 방송국에 발을 들여놓아보니 준섭이 충고한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 구성작가는 글자그대로 방송프로그램 제작의 한 요소인 방송대본을 만드는 일을 하는것이다. 따라서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동화작가 같은것과는 완전 동떨어지는 일이 될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지혜는 본래 성격탓인지 구성작가 일을 하면서 회의시간에 이런저런 지적을 자주 받곤 했었다. 회의에 집중을 안한다느니 말이 없다느니 지혜 입장에선 참 억울하기 짝이없는 일들이었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항변을 할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그런 오해들이 지혜의 가슴 한켠엔 이미 깊은 상처로 패여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 회의 같은것은 지혜와는 그리 맞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지혜가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은것은 아닌데 그 내놓은 아이디어란게 교육방송에서 일할 때 ‘인형극 삼국지’를 제작해보자고 한 것이나 지상파 예능프로 구성작가로 일하게 되면서 ‘비밀카메라’로 유명해진 만수라는 개그맨을 역으로 골탕먹이는 ‘만수를 대상으로 한 비밀카메라’를 기획해보자는 대략 그런것들이었다. 하지만 인형극 삼국지는 교육방송 고위간부까지 찾아다니며 강력히 주장해보았지만 되려 지혜가 여러 방송사 고위간부들을 불편하게 만든일이 되어 되려 짤리는 일이 되어버렸고, 지상파 예능프로 구성작가가 되어 제안해본 ‘만수에 대한 비밀카메라’ 역시 좀 비현실적이란 생각들을 해서인지 기각되었다. 아무래도 이 일이 자신에게 맡지 않는 일인가보다. 지혜는 차츰 그런 회의감이 깊이 들었다.

 다만 그렇다고 이렇게 애써 택한 구성작가일을 지금와서 차마 그만두기도 뭣했다. 사실 지혜는 이런쪽을 제외하면 딱히 어떤 재능이나 재주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학교성적은 그래도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까지 들어갔으면 대략 중위권 이상은 했다고 봐야할것이지만, 운동은 잘 못하는 편이었고 음악이나 미술 같은것도 소질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일반 직장에 취직하면 숫기도 없고 말도 잘 못하는 편인 지혜가 그런곳에서 제대로 적응할수 있을련지도 미지수였다.

 그래서 그나마 어쩌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택한것이 방송작가 일인데, 그것마저 이렇게 좌절되어버리니 지혜는 눈앞이 컴컴하고 막막해져버린것이다. 원래 시인이나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던 지혜. 그런 지혜에게 준섭은 몇 번이고 충고했었다. ‘방송대본은 문학이 아니다’라고. 방송대본은 어디까지나 방송을 만들기 위한 한 구성요소일뿐 그걸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장르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그럼 정말 자신이 길을 잘못 들은것이란 말인가. 사실 지혜는 애초의 생각은 드라마 작가를 해볼 생각이었지만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 고정직장이 있게되는 그런쪽을 택하는게 현실적일것이란 판단하에 비드라마반을 택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택한 구성작가의 길이 만든 결과가 이와 같았다.

 무엇보다 혼자 야근할 때 또 소설 비슷한 이야기를 낙서처럼 끄적거리다 오해받은일 게다가 불과 얼마전 월드컵 개최때라 예능프로그램이 휴가철이나 마찬가지인 때가 되어 한가치에 마련한 야유회 자리에서 만수에게 당한 성추행. 그것이 그러잖아도 구성작가일에 갈수록 회의를 느끼고 있던 지혜에게 결정적인 절망감과 충격을 안겨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입에 담지 말라는 홍피디의 주문은 그런 지혜에게 어떤 결심까지 하게 만든것이다.

 지금 지혜의 좌절감과 절망감을 과연 어찌 한두단어로 간단하게 표현할수 있을까. 무엇보다 지혜는 자신의 막막함과 답답함을 하소연할곳이 마땅치 않아 가슴이 터질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있었다. 이까짓 구성작가일 때려치우면 된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이 일마저 그만두면 딱히 다른 일 할만한게 마땅치 않은 지혜로선 여기서 물러나는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지혜는 마지막 결심을 하기에 이른것이다.

 “ 저어... ”

 그리고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난 일이다. 한달동안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2002 월드컵도 서서히 끝나가고 무엇보다 한달동안 쉰 예능프로 제작진들은 다음달부터 방송프로를 새로 제작해야하기 때문에 그 준비로 다시 슬슬 바빠질 무렵의 일이다. ‘행복한 일요일’ 제작진도 다음달부터 새로 시작할 방송 아이템과 관련한 회의를 하기위해 모인 날이었다.

 밀린 회의를 한꺼번에 하기 때문일까. 밤늦게까지 기획회의가 이어졌고 그 회의가 마무리되었을때쯤 다른 제작진들은 집으로 가는 발길을 서두르려 하는데 지혜가 메인피디에게 물었다.

 “ 저...여기서 좀 자면 안 돼요 ? 피곤해서 그러는데. ”

 “ 많이 피곤한가보네 ? 그럼 저기 휴게실로 가서 쉬던가. ”

 야근을 하는 스탭들을 위해 간단하게 잠을 청하거나 휴식을 취할수 있는 공간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지혜는 그쪽으로 가서 잠을 청하는듯 했다. 하지만 쉬이 잠이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자기위한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던것이다. 다른 스텝들이 다 퇴근을 한 뒤 지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갈때까지 기다려야했기에 그 사이에 실제로 깜빡 잠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깨어난 지혜는 서서히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것을 끝내버릴 생각으로 방송국 옥상에 올랐다. 많은 시간 고민과 결심 끝에 들어선 방송작가의 길이건만 여기서 느낀 좌절과 굴욕 그리고 허탈감. 무엇보다 그동안 받은 상처들로 지혜는 더 이상 버틸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른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그만두자니 자기가 할만한 마땅한 다른일도 없는 처지. 그래서 지혜 입장에선 이제 더 이상 다른 선택을 하는것도 쉽지가 않았다.

 다만 좀 무서웠기에 살짝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용케 옥상까지 오른 지혜는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내려와서는 방송국 밖으로 나가서 인근 편의점에서 소주 몇병을 샀다. 그리고 다시 옥상위로 올랐다. 지혜가 지금까지 술을 그리 즐기거나 자주 하는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막상 죽을 결심을 하니 술이 꿀꺽꿀꺽 잘도 넘어갔다.

 다시 옥상 난간위에 올라섰다. 신발은 저쪽으로 벗어던지고 맨발로 오른 지혜. 그 사이 어느덧 새벽때가 다가오는지 하늘빛이 조금은 옅어져가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날이 밝기까진 시간이 한참 남은 대충 그 무렵이었다. 술에 만취된 지혜는 이제 자신이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 제대로 구분도 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않고 아무런 망설임도 갖지 않은채 그대로 옥상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3일장을 지낸뒤 지혜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다. 화장장에는 바로 전날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문상을 온 바로 지혜의 중,고등학교 시절 동창이면서 지혜의 중학교때부터 있던 특이한 버릇을 알고 있기도 한 노지연 4총사가 끝까지 따라와주었다. 문상객도 그리 많지 않은 썰렁한 장례식장에 친구도 별로 없었던 지혜의 마지막 가는길을 자신들이라도 지켜주고 싶어 이심전심으로 한 일이었다. 화장터에서 어느덧 한줌 재가 된 지혜의 유골. 납골함에 담긴 지혜의 유골을 착잡하게 바라보며 노지연 4총사는 대화를 나누었다.

 “ 지혜가...그래도...참 아까운 아이였는데. ”

 그렇게 먼저 무겁게 입을 연 사람은 노지연. 어떤 의미에서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아직 서른두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안타깝고 아까운 죽음인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아직 지혜의 구체적인 자살이유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있었던 지혜의 그 수많은 사연. 무엇보다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지혜가 2년간 겪었던 일. 거슬러 올라가 방송작가 교육원 시절까지를 포함하면 대략 4년 정도의 시간동안 지혜가 했던 고민과 고뇌.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을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 따라서 방송국에서 지혜의 자살한 시신을 발견한 방송사 관계자들은 여전히 지혜의 구체적인 자살 동기를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분위기였고, 바로 그때문인지 그나마 지혜의 친구인 노지연 4총사는 친구의 죽음을 더더욱 안타깝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 지혜가 참...너무 허망하게 가버린것 같아. ”

 살짝 눈물까지 지으며 그렇게 입을 연 사람은 강주현. 바로 고등학교 시절 지혜에게 한번 일일연속극 작가가 되어보라고 권유하기까지 하던 그 친구가 아니던가. 지혜가 이따금 슬픈 상상을 하며 우는 버릇이 있는 그것을 알고나서 특히 지혜가 상상하는 이야기가 슬픈 사랑의 이야기라던가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사는 소년,소녀 가장의 이야기. 대략 그런것들이라 연속극 소재로 딱 좋을것 같다며 드라마 작가가 되길 권유하기도 했던 강주현. 그녀가 착잡하게 지혜의 유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 지혜야... ”

 사실 지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에 주현은 지혜와 단둘이 만난적이 있다. 그때 지혜가 잠깐 주현에게 털어놓은 고민이 있다.

 “ 주현아 근데말야... ”

 “ 나한테 무슨 할말이라도 있어 ? ”

 “ 넌 솔직히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 ”

 “ 뜬금없이 그게 무슨소리야 ? 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다니 ? ”

 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그 의도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하던 주현을 바라보며 지혜가 말을 이어갔다.

 “ 내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우는 버릇.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

 지혜의 말에 주현이 살짝 웃어보였다. 차라리 그런 ‘상상력’도 재능이라면 재능일수 있으니 연속극 작가가 되어보는것은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던 바로 그 친구가 강주현 아닌가. 헌데 막상 이런 질문을 지혜로부터 들으니 대답하기 난감하기라도 한 것일까. 주현은 바로 어떤 답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 솔직히 나...이런 내가 정신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도 안

  해본것은 아니야. ”

 “ 지혜야... ”

 살짝 걱정스러운 투로 주현이 지혜를 그렇게 불러보는데 지혜는 그녀 나름대로 애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주현은 묵묵히 그런 지혜의 고민을 듣고 있었다.

 “ 정말...이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가끔씩 혼자 울고 있는

  나. 정말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아이인걸까. 아니면 정말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 같은걸로 어떤 재능이 있는걸로 봐야하는걸까. ”

 “ 글쎄... ”

 주현이라고 무슨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 같은것을 전공해본 사람은 아니고 무엇보다 이땐 아직 두 사람 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다. 그러니 아직 만 20세도 되지 않은 성인이 아닌 처지인 그 정도의 어린 나이에 주현인들 지혜의 이런 고민에 무슨 뾰족한 대답을 해줄수가 있을까. 다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지혜도 자신의 그런 버릇, 그런 습관에 대해 남몰래 고민을 해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말 이것을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 쪽으로 어떤 재능이 있는 ‘상상력’으로 봐야하는것일지. 아니면 그냥 진짜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 아이로 봐야하는것일지. 지혜의 고민에 주현도 답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살짝 그녀 스스로도 답답해질 지경이다. 아무래도 그 자리에서 어떤 확실한 답은 해주기 어려워서인지 화제를 돌려 다른 이런저런 잡담을 주고받다가 두 사람이 헤어질때쯤 주현이 한마디 했다.

 “ 근데 지혜야. ”

 “ 응, 주현아. ”

 “ 내 생각엔 차라리 그냥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는게 어떨까 ? ”

 “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라구 ? ”

 “ 응, 니가...물론 니 말마따나...아니 솔직히 우리도 너 처음에 그런 모습 진짜 좀

  이상하거나 어떤 문제가 있는 아이는 아닐까. 그런 생각 해본적도 있었어. 하지

  만 막상 이렇게 중,고등학교 한 5년 세월을 어울리고 나니 넌 뭐 그렇게 특별하

  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도 않은 그냥 보통 평범한 아이였어. ”

 “ 정말 ? ”

 “ 그래, 그러니 차라리 그런 상상력을 너만의 재능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승화

  시키는게 어떨까 ?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

 그때 그런말을 했던 주현은 공연한 자책을 하는중이다. 어떻게보면 방송작가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지혜가 하게 된데는 주현의 그와같은 말이 어느정도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셈인데 만약 자신이 그런말을 하지 않았다면 지혜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또는 지혜의 그런 버릇은 나중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을까. 지금 지혜의 유골함 앞에 있는 주현으로선 그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로 지혜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혼자 조용히 흐느끼고 있다.

 그리고 얼마후. 지혜의 장례를 치른지 한 2-3주 정도가 지났을때다. 바로 그 강주현이 뜻밖에 지혜의 집으로 찾아왔다. 이제 지혜는 없고 지혜 부모님만이 사는 그 집으로. 주현은 원래 지혜의 집 주소를 알고 있기에 찾아오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아니...어쩐일로 ? ”

 “ 지혜...보고싶어서요. 지혜 쓰던 짐 혹시 벌써 다 치우셨나요 ? ”

 “ 아니...뭐 그러진 않았지만. ”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 애통함과 애석함 때문인지 자식이 쓰던 물건등을 쉬이 내다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혜의 부모님 역시 지혜의 방 물건을 차마 아직 치우지 못한채 그대로 둔 상태다. 그러자 주현은 다행이라는 생각이라도 드는지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며 지혜의 방으로 들어가보았다.

 지혜의 침대와 옷장 그리고 그녀가 쓰는 물품과 어쨌든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필요했을터이니 놓여있는 컴퓨터와 프린터. 그 외 이런저런 집기들이 아직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주현은 잠시 지혜에 대한 추억과 상념에 잠기며 지혜가 쓰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만져본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찾으려는듯 지혜의 방에서 한참을 뒤적인다.

 “ 아아...여기 있었구나. ”

 지혜의 책상서랍 한 구석에 몇권의 연습장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지혜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써온 그런 낙서들이다. 그러니 대개는 소설이나 시 같은 형태로 적혀있을터인데 그게 연습장 분량으로 대략 한 5-6권 정도나 되었다. 소설형식의 낙서글은 어림잡아도 백편은 넘었지만 다만 안타깝게도 완성작은 없었다. 지혜의 상상이란게 보통은 즉흥적으로 나온것이고 이후 스토리 구상 같은것을 깊이있거나 치밀하게 한것은 거의 없는지라 연습장으로 한두장 정도 끄적거리다 만 대개는 그렇게 서두부분만 시작하거나 중간의 어느 한 장면만을 잘라먹은것 같은 그런식의 글들이다. 다만 그렇게 쓰여진 소설형식의 글이 대충 살펴보니 100편이 넘었다. 시도 대충 편수로는 얼추 그 정도가 되는것 같았다.

 “ 지혜야... ”

 주현이 의미심장하게 그 지혜의 연습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혜 부모님께는 양해를 구해 자신이 그 연습장을 챙겨 집에서 나왔다. 의미심장하게 지혜의 연습장을 품에 안은 강주현.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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