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whaedra.egloos.com

포토로그



1세대 걸그룹 팬픽 - 이지혜 (8)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5. 방송작가의 자살





 그런일이 있은 얼마후에 지혜는 다른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다. 그게 지혜가 준섭의 재소개로 지상파인 OOO에서 구성작가로 일하게 된지 약 반년정도가 지났을때의 일이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2002년 1월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혜가 들어가게된 프로가 OOO 방송사의 일요일 저녁시간대에 방송되는 예능프로인 ‘행복한 일요일’ 프로였다. 하지만 이 팀에서도 지혜는 교육방송에 있을때나 앞서 몸담고 있던 프로그램 팀에서 받던것과 비슷한 지적을 늘상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예능프로 구성작가 일은 자신과는 맡지 않는일 갖고 내가 길을 잘못든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가면 갈수록 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 저기요 피디님... ”

 아이디어 회의때 불현듯 지혜가 손을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한 1-2년 연륜이 쌓여져서인지 잔심부름이나 섭외 같은것을 맡을때 실수를 한다던가 하는일은 많이 줄었는데 하지만 아이디어 회의때는 별다른 아이템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것은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구성작가일은 자신과는 아무래도 맞지 않는 일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거듭 하고 있던때, 그래도 딴에는 무슨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려져서인지 지혜가 손을 든 것이다. 그녀가 아이디어 회의때 손을 들고 뭔가 발표를 하는것은 이전까지는 보지못한 이례적인 모습이라서 다른 제작진들은 놀라기도 하고 어디 한번 들어나보자는 생각으로 그녀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지혜는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저...우리 한번 만수의 비밀카메라를 시도해보는것 어때요 ? ”

 “ 뭐라구 ? ”

 이게 느닷없이 무슨 소리인가. 제작진들은 순간 좀 멍한 표정으로 지혜를 바라보았다. 만수는 80년대 중반에 모 지상파 개그맨으로 데뷔 어느덧 방송 경력은 대략 17-18년 정도에 이르는 중견 개그맨으로 이 무렵에도 이런저런 방송프로 진행을 다수 맡으면서 여전히 잘나가고 있는 그런 개그맨이기도 했다. 헌데 특히 만수가 주목을 받으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던것은 90년대 초반에 그가 주도해서 진행하던 ‘만수의 비밀카메라’ 코너 덕분이었다. ‘만수의 비밀카메라’란 매주 한명씩 연예인이나 방송인 또는 스포츠스타 그 외 사회 저명인사들을 일종의 ‘비밀카메라’란 형식으로 가상상황이나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해당 출연자가 당황하거나 놀라는 모습을 살펴보는 그런식의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그 ‘만수의 비밀카메라’가 90년대 초,중반 무렵 대략 3-4년동안 방송되면서 선풍적인 인기와 화제를 끌어모았고 비밀카메라는 한동안 모든 방송,연예인은 물론 방송 출연이 잦은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에게까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심지어 90년대 후반에는 만수가 한 유력 대선후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자 좀 당혹스러워 한 그 대선후보가 ‘혹시 이것도 당신의 비밀카메라 아니냐 ?’고 사뭇 경계하듯이 물어본적도 있는 그런 에피소드가 있기도 했던 그만큼 유명한 프로가 ‘만수의 비밀카메라’다. 하지만 만수의 비밀카메라는 그 코너가 한참 인기를 구가할 때 ‘박수칠때 떠나라’는 속설을 몸소 증명이라도 해주듯 막을 내렸고, 지금 그 만수는 다른 방송 예능프로를 한참 진행중에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며 한참 바쁜 그런 방송인이자 개그맨이 만수인지라 제작진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 이지혜씨, 만수씨는 워낙 바빠서 저희가 연락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만수씨 ‘비밀카메라’ 다시 시작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다른 방송

  사에서도 몇 번 해보았는데 그때마다 ‘비밀카메라를 재개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

  를 밝힌바 있어요. ”

 지혜의 아이디어가 그 만수란 개그맨을 섭외해서 ‘비밀카메라’를 자신들이 시작해보자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메인피디가 신통찮은 아이디어라는듯 고개를 흔들었고, 하지만 지혜가 그런 메인피디를 바라보며 되려 힘있게 자기 주장을 펴나갔다.

 “ 제 말은 만수의 비밀카메라를 우리가 진행하자는게 아니라 우리가 만수씨를 속

  여보자는거에요. 바로 만수를 대상으로 한 ‘비밀카메라’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

 “ 뭐라구요 ? ”

 순간 좀 황당하고 기가막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다들 어이없다는듯 지혜를 바라보았다. 다른 구성작가 한명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바로 지혜를 나무라듯 말했다.

 “ 지혜씨, 만수씨가 이 방송가 짬밥이 얼마고 얼마나 눈치가 빠른분인데 우리가

  만수씨를 속여요. 그리고 제가 알기론 다른 프로에서도 만수씨 속이는 ‘비밀카메

  라’를 몇 번 시도해봤는데 전부 실패나 무위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

  니 어림도 없는 소리일랑 아예 꺼내지도 말아요. ”

 바로 그 ‘비밀카메라’의 애초 기획자가 만수인데 하물며 그런 만수가 ‘비밀카메라’에 속아 넘어간다는게 당키나 하냐는것이 제작진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혜는 지혜 나름대로 괜찮은 기발한 생각이 있다는듯 자기 생각을 계속 말해나갔다.

 “ 괜찮은 생각이 있어요. 만수씨가 전혀 비밀카메라인걸 눈치 못채게 상황을 만들

  면 되어요. ”

 “ 무슨 상황을 ? 천하의 만수를 무슨 재주로 우리가 그걸 눈치못채는 상황을 만들

  어 ? ”

 제작진은 여전히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예능프로 아이디어 내놓기엔 전혀 재주가 없어보이는 지혜의 아이디어이기에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듯 손을 내저었고 하지만 지혜는 모처럼만에 떠오른 좋은 생각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듯 거듭 말을 이어나갔다.

 “ 제 생각은요 만수씨를 ‘생방송 일요대담’에 출연시키는거에요. 그래서 한번 만

  수씨를 속여보자는거죠. ”

 “ 뭐라구요 ? ”

 순간 제작진들이 다들 황당하게 이지혜를 쳐다보았다. ‘생방송 일요대담’이란 다름아닌 OOO에서 일요일 오전시간대에 방영되는 시사 방담 프로그램이었다. 시청층은 대개 중년층 이상 남자들이고 보통 정치인이나 기업인 그 외 이런저런 사회저명 인사들을 초청 대담이나 방담을 벌이는 그런 형식의 프로였다. 다만 성격이 약간 다른면이 있다면 이 프로는 다수의 패널들이 출연 일종의 청문회 비슷한 형식으로 때론 긴장감있게 때론 진땀빼는 질문이 나오기도 하는 그런면 때문에 종종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딱딱한 시사대담보다는 뭔가 좀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프로그램 형식이 그런 방향으로 나간 것으로 알려져있다. 헌데 지혜의 제안이 아주 엉뚱하다고 볼수는 없는것이 ‘생방송 일요대담’의 지금껏 출연자는 대개 정치인이나 기업인 혹은 교수나 사회원로 이런 사람들이었지만 가끔은 체육스타나 올림픽 메달리스트 혹은 방송,연예가의 원로급 인사들이나 국제 영화제 같은데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배우가 대담 상대로 출연한적이 종종 있기도 했다. 따라서 만수가 ‘생방송 일요대담’에 출연할만한 급이 되는지는 보는눈에 따라 충분히 이론이 있을수 있다. 방송가 경력 17-18년이고 지금은 이런저런 예능프로 출연자로 여전히 명성을 날리고 있는 그런 만수라면 원로급 탤런트라던가 국제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영화배우나 감독 혹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나 스포츠 스타도 출연한적이 있는 ‘생방송 일요대담’에 출연한다고 해서 그렇게 어색할것은 없는 그런 상황이긴 하다. 실제 만수의 경우엔 90년대 중반경에 실제 영화제작에 나선적이 있기도 하는등 연예계에서 활동하면서 이런저런 이채로운 도전이나 이력이 있는 그런 연예인이기도 하다. 그런 만수를 청문회 형식으로 진행되는 ‘생방송 일요대담’에 출연시킨다 ? 전혀 격이 맞지 않는 그런 섭외는 분명 아니다. (* MBN 뉴스와이드나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같은 프로에 이경규가 출연하는 상황쯤으로 생각하면 됨. 다만 이때는 시대배경(2002년)이 종편이 출범하기 훨씬 전 ^^;;)





 이지혜가 구상한 만수의 몰래카메라 시나리오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우선 ‘생방송 일요대담’은 메인MC가 있고 전직 언론인이나 대학교수 그 외 대중문화 전문기자나 경우에 따라선 중견 연예인이나 연극배우등이 돌아가면서 4-5명정도 패널로 출연 일종의 ‘청문회’나 일문일답 형식으로 ‘화제의 인물’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그런 형식이다. 따라서 이 질문에서 만수의 허점을 찌르자는 것이다. 처음엔 제법 진지하면서도 살짝 유머나 위트를 섞어가면서 만수의 그간 작품활동이나 근황 그 외 신변잡기에 관한 일들. 방송인이자 개그맨인 만수의 일반적인 인터뷰나 토크쇼 진행에서 흔히 나올수 있는 질문으로 분위기를 잡아 별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평범한 인터뷰로 생각하게 해 방심시키자는것이다. 그러다 차츰 분위기를 무겁거나 험악하게 끌고나가 처음엔 방송가나 연예계에 종종 있는 이슈나 스캔들 같은것에 대한 만수의 견해를 묻는듯 하다 시사이슈나 정치이슈 같은 만수가 잘 모르거나 대답할수 없는 질문들을 그야말로 청문회 야당의원들의 공세처럼 험악하게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만수를 몰아가 만수의 진땀을 빼게 만들자는것이다. 만수 입장에선 처음엔 그동안 숱하게 겪어봤을 흔한 인터뷰나 토크쇼 자리처럼 생각하게 해서 방심하게 만든뒤 점차 만수가 질문할수 없는 정치이슈나 시사이슈 같은데 대한 만수의 견해를 물어보면서 분위기를 점차 험악하게 만들어 가자는것이다. 그것이 한때 ‘비밀카메라’로 수많은 연예인,방송인은 물론 스포츠스타나 때론 사회 저명인사들까지 골탕먹이면서 악명(?) 높았던 만수의 몰래카메라. 그로인해 쌓인 수많은 방송,연예인들과 저명인사들의 원한(!)을 제대로 한방의 복수로 날려버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혜의 시나리오를 보다 구체적으로 듣고도 제작진은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 헌데 그럼...사실상 ‘일요대담’ 제작진과 사전 협의를 해봐야 하는 문제잖아 ?

 ”

 원래는 ‘행복한 일요일’의 한 코너로 준비하는 것이지만 그 ‘비밀카메라’ 자체를 ‘생방송 일요대담’ 프로그램 형식을 빌어 만수를 속이는것이니 그것을 제작하려면 자연스래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부터가 쉽지 않다는것이 제작진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천하의 만수가 그렇게 허술한 ‘비밀카메라’에 쉽게 넘어가겠느냐는 점이 제작진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그래서 지혜의 나름 기발하게 꺼내어봤다고 할수있는 ‘만수의 비밀카메라’ 아이디어는 끝내 채택되지 않았다.

 자신은 기껏해서 내놓은 아이디어인데 제작진이 기각시키자 나름 어떤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라도 생겨서일까. 지혜는 그 뒤에도 만수를 골탕먹이는 ‘만수의 비밀카메라’ 구상을 두어번 더 내놓아보았다. 허나 어떻게 보면 지혜가 만수의 비밀카메라에 너무 집착하는것처럼 느껴져 메인피디는 결국 지혜에게 이와같은 핀잔을 주었다.

 “ 지혜씨, 만수씨한테 무슨 원한이나 유감같은거 있어 ? ”

 “ 네 ? ”

 갑자기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싶어 지혜가 황당해하며 되물었고, 피디는 그런 지혜를 나무랐다.

 “ 원한이나 유감도 없는데 왜 그리 만수씨 골탕먹이는 일에 그토록 집착하느냔 말

  이지. 원 도대체...그것도 어쩌다 한두번이지 그 X의 만수의 비밀카메라 제안이

  벌써 몇 번째야 ? 식상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 ? 그런거 말고 앞으로 좀 더 참신

  하고 근사한 아이디어좀 내놓아봐요. ”

 “ ...... ”

 “ 그리고 내 이런말 하지 않으려 했는데 기왕 아이디어를 떠올리려면 앞으로 지혜

  씨도 책도 좀 읽고 공부도 좀 하고 사람들도 좀 만나서 이런저런 취재도 해보면

  서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구해보던가 해요. 회의실에서

  맨날 그렇게 멍하니만 앉아있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게 아니야 !!! ”

 피디가 그렇게까지 나오자 지혜는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공부나 사람을 만나는 문제까진 몰라도 ‘책을 안 읽는다’는 지적은 지혜 입장에선 진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렴 지혜가 그런 슬픈 상상같은것을 하는 아이디어나 상상력이 괜히 생겼겠는가. 실제 지혜는 대략 한 초등학고 5,6학년 경부터 종종 시집이나 수필집 같은것도 즐겨읽고 멜로소설 같은것도 즐겨읽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사모은 그런 문학서적이 대략 한 200-300권 정도는 될 것이다. 헌데 그런 지혜보고 ‘책을 안 읽는다’니. 아무리 지혜가 예능프로 구성작가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간 아이디어 같은것을 딱히 내놓아본적이 없기로 이건 진짜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지혜는 또다시 울고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하루는 그렇게 또 피디한테 핀잔을 들은 지혜가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으로 들어선 지혜는 대충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은뒤 침대에 털썩 누웠다. 그런 딸의 모습이 좀 심상찮아 보여서일까. 지혜 어머니가 걱정되는듯 딸의 방으로 들어와 말을 건넨다.

 “ 지혜야, 너 혹시 어디 아프니 ? ”

 “ 응 ? ”

 조금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물음에 어리둥절해 하는 지혜. 어머니는 여전히 딸이 걱정되는듯 묻는다.

 “ 아픈게 아니면 왜 그리 얼굴색이 좋지않아 ? 몸에 힘도 영 없어보이고...혹시 방

  송국에서 무슨일 있었니 ? ”

 “ 아니...무슨일이 있기는...그냥 좀... ”

 변명할 거리가 마땅치 않아 망설이고 있는 지혜. 그러다 손을 내저으며 한마디 한다.

 “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그러니 좀 혼자있게 놔둬. ”

 지혜의 말에 어머니는 말없이 방을 나가지만 그러면서도 딸이 못내 걱정되는지 그런 지혜의 안색을 몇 번이고 살펴본다. 지혜는 방에서 침대에 누운채로 불은 끄지도 안은채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피디님 !!! ”

 그로부터 다시 얼마후. 지혜가 아이디어 회의때 다시금 손을 들었다. 그러자 피디가 살짝 짜증나는듯 한마디 한다.

 “ 지혜씨...그 만수의 비밀카메란가 뭔가는 더 이상 안 되는거야. 그러니 그 이야기

  할려거든 아예 그만둬. ”

 또 그 어느덧 지겨워지기까지 한 만수의 비밀카메라 안을 다시 끄집어내려는 것인가. 그런 지레짐작에 피디가 지혜의 말을 막았고, 하지만 지혜는 이번에는 아니라는듯 모처럼만에 다시 활기띤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이번엔 그런게 아니고요...다른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요. ”

 “ 뭐...어디 한번 그럼 말해봐요. 얼마나 괜찮은 아이디어인지 어디 들어나봅시다.

 ”

 그렇게 크게 기대하는것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밥값이라도 하려는양 안간힘을 쓰는 지혜의 모습이 안쓰럽게라도 느껴지는지 일단 들어나 보자는듯 피디가 말했다. 그러자 지혜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며 호흡을 가다듬은뒤 말을 이어갔다.

 “ 우리, 가면쓰고 노래대결 같은거 하는거 만들어보는건 어때요 ? ”

 “ 엥 ? ”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피디는 물론 구성작가들도 모두 어이없다는듯 지혜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는 다시금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그러니까...보통은 가수가 그냥 나와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거잖아요. 그런데

  꼭 비단 가수뿐만 아니더라도 연예인이든 아이돌이든 또 일반 시청자든 무작위

  로 가면쓰고 나와서 누군지 모르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거에요. 그래서 과연

  가면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출연자와 시청자들이 맞춰보기도 하고 그 가면쓴 출

  연자들중 누가 더 노랠 잘 불렀는지 점수도 매겨보고 그런 프로 한번 만들어보는

  거에요. ”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 발상 자체가 너무 기도 안차고 황당하게 들렸는지 피디가 화를 냈다.

 “ 앉아 !!! ”

 “ 피...피디님... ”

 “ 글쎄 쓸데없는 소리 그만 지껄이고 앉으라고. 원 세상에...가면을 쓰고 어떤 미

  친 X이 노래를 부르나 ? 그리고 그딴 말도 안 되는걸 지금 아이디어라고 ? X소

  리 작작하고 당장 앉지 못해 ? 나 원...저게 도대체 사람 대가리야...돌대가리야...

  아님 닭대가리야... ”

 피디는 짜증을 내며 다시금 지혜를 다그칠 뿐이었다.





 지혜가 ‘행복한 일요일’ 구성작가가 된지 6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날. 하루는 제작진이 함께 간단한 소풍을 가게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는 시기로 지상파의 경우엔 월드컵 개최국인 한국의 전 경기를 모두 중계해야하기 때문에 방송프로 결방이 많이 예정되어있는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드라마,예능 제작진 입장에선 때아닌 휴가를 얻은것이나 다름없는 셈. 다만 방송인이나 개그맨들중엔 개별적으로 월드컵 관련된 프로그램 진행이나 리포터등을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더 바쁜 시기가 되기도 한 때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상파 예능프로인 ‘행복한 일요일’ 제작진의 경우에는 6월 한달중엔 결방이 예상되는 경우가 많아서 대체로 자신들의 프로그램 제작은 당분간 쉬어도 되는 한가한 때가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를 이용 몇몇 제작진의 제안이 있어 피디와 작가진을 비롯한 스텝진들이 모처럼 술이나 한잔씩 하며 좀 즐기자는데 동의하게 되어 서울 근교로 간단한 소풍을 가게 된 이다. 스텝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개그맨이나 방송인들도 다 함께 가기로 약속이 되었다. 다만 출연자들 중에는 각자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소풍 일정 전체엔 참석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시간이 될 때 잠깐 들르거나 하겠다고 한 경우가 많았다. 여하튼 그런식으로 ‘행복한 일요일’ 팀의 회식 겸 야유회 비슷한 자리가 마련이 되었다. 서울에서 좀 떨어진 근교지역에 도시락에 술과 안주까지 잔뜩 싸들고 와서 한바탕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가고 술을 한잔씩 한 제작진들은 저마다 알딸딸하게 취해있는 그 무렵이었다.

 “ 어, 만수씨 ? ”

 짬이나면 회식자리에 들르겠다고 한 프로그램 출연자인 개그맨 한명이 선배 개그맨 두명정도와 함께 그곳에 왔었다. 헌데 함께 온 선배 개그맨중 한 사람이 다름아닌 90년대 초,중반 ‘비밀카메라’로 유명한 만수였다. 메인피디는 원래 만수와 평소 좀 친분이 있던 사이라 그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 어서와요 만수씨. 오랜만에 보네요. 그간 잘 지냈어요 ? ”

 “ 나야 뭐 보다시피 늘 바쁘지 뭐. 근데 홍피디 벌써 많이 취했나보네 ? 얼굴이

  벌개 아주... ”

 “ 그래보여요 ? 하하...아직 몇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

 살짝 흉을 보는 만수로 인해 무안해졌는지 자기 얼굴을 어루만지며 피디는 그와같이 말하고 다른 스텝들에게도 만수를 인사시켰다. 물론 당연히 구성작가들에게도 인사를 시키는데 그중에는 평소 만수와 면식이 있는 작가도 몇몇 있었다. 맨 마지막 순서로 지혜에게 인사를 시키게 되었는데, 다른 스텝들은 벌써 술을 한두잔씩 한 상황이라 그런대로 알딸딸하게 취해있는 상태인데 지혜는 아직 술을 하지 않았는지 대체로 맨정신인 상태였다.

 “ 지혜씨, 어서와요. 이쪽은 우리 막내작가 이지혜. 연초부터 우리팀에서 일하게

  된 막내작가에요. ”

 “ 어, 그래요 ? 만나서 반가와요 이지혜씨. ”

 바로 몇 달전 만수를 골탕먹이는 ‘비밀카메라’를 기획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몇 번 내 보았다가 기각되었던 지혜가 아닌가. 피디 입장에선 바로 그때일이 떠올라 괜시리 묘해진 기분으로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지혜를 소개시켜주었고, 하지만 지혜는 바로 그때 ‘혹시 만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느냐 ?’는 오해까지 받았을 정도로 유난을 떨며 ‘만수 비밀카메라’ 기획에 집착했었던지라 그 때문에 더더욱 바로 그 만수를 직접 보는것이 무안하고 민망해졌다. 그런 속사정을 알리 없는 만수는 괜시리 자신을 어색해하는 것 같은 지혜의 어깨를 한번 툭툭 쳐보고 그러면서 말을 건넨다.

 “ 그런데 이작가는 원래 말이 없어요 ? 아님 어디 아픈가 ? 뭐 그렇게 긴장을 하

  고 있어요 ? ”

 지혜 입장에선 바로 그와같은 전력 때문에 만수와 직접 인사 나누는 자리를 더더욱 무안해하고 있었던것인데 그런 지혜의 태도가 만수 입장에선 더더욱 의아해져 그렇게 말한것이고 다만 피디는 피디대로 적당히 상황을 무마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살짝 끼어든다.

 “ 이작가가 원래 좀 그래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좀 숫기가 없더라고. 말도 별로

  없고. 하지만 심성은 착해요. ”

 ‘착하다’는 말이 이럴때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좋은것인지 아니면 어떤 놀림이나 비아냥의 의미라도 내포되어 있는것인지 지혜는 순간 판단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어질어질해진 머릿속으로 그렇게 만수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다른 동료 작가들이 있는쪽으로 가서 자리에 앉고, 선배 작가언니들이 지혜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직 술을 거의 입에 대지도 않은 지혜. 지혜가 원래 술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던가. 다른 스텝들은 순간 판단이 잘 되지 않아 헷갈릴 지경이었다. 헌데 그때 만수가 살짝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그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어이...마담들... ”

 묘한말을 입에 담으며 다가온 만수. 그 사이 그도 술을 몇잔 했는지 살짝 취한 모습이었다. 술내가 풍기는것에 지혜는 살짝 불편해하기까지 하고, 그런 지혜의 기분이야 만수가 신경쓸일은 아니라서인지 아랑곳없이 다른 여성 작가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 근데 오마담은 아직 남자 없어 ? 시집가야할때도 다 되었는데 아직 그렇게 노

  처녀면 어떻게 해 ? ”

 보통 개그맨들중 악의없는 장난이나 다소 짖궂은 농담을 젊은 동료 여성 방송인이나 제작진에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아무래도 만수도 그런 스타일인듯 했다. 그는 동료 구성작가들을 ‘오마담’이니 ‘공마담’이니 이런식으로 성에다 무슨 ‘마담’ 같은식의 호칭을 붙여 농담을 건네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까 만수와 인사 나눌때 보면 다른 선배작가들은 이전에 만수와 대체로 면식이나 친분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다른 선배작가들은 만수의 그와같은 짖궂은 농담을 살짝 불편해 하면서도 그런대로 받아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지혜는 별다른 반응이나 대꾸없이 조용히 음료수를 한잔 따라서 다른 주전부리와 함께 먹는중이었다.

 “ 어이. 공마담. 그러지말고 물좀 여기 따라봐. 물 말고 술을 따르란말야 !!! 술을

  !!! 에헤...그리 역할분담이 안 되나. 오마담은 물마담 !!! 공마담은 술마담 !!! 오

  마담은 물따르니까 술마담, 공마담은 술따르니까 물마담...에헤...어서 술을 따르

  라니까 !!! 술을 따라야지 술마담이지 !!! 물 따르면 물마담이고 !!! ”

 무슨 의미인지 만수는 그렇게 여성 작가들에게 물마담이니 술마담이니 하면서 ‘물을 따라라’, ‘술을 따라라’ 하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작가들은 그런 만수에게 별다른 불만없이 묵묵히 물을 따라주기도 하고 술을 따라주기도 하고 만수의 짖궂은 장난은 계속 되었다.

 “ 에헤...그게 아니라 물이 아니고 술이라니까. 공마담은 진짜 사람말을 못알아 듣

  네. 물을 따르면 물마담, 술을 따르면 술마담 !!! 그래도 무슨말인지 모르겠어 ?

  오마담은 물마담 하고 싶어 ? 술마담 하고 싶어 ? 에헤...술을 따르라니까...술을

  !!! 술을 따라야지 술마담 이지 !!! ”

 “ 이것봐요 아저씨 !!! ”

 듣자듣자하니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결국 지혜가 발끈하고 말았다. 혹 그녀도 술이라도 한두잔 들어갔다면 그녀 역시 술주정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오해할수도 있을텐데, 하지만 지혜는 오늘 술을 한잔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만수의 성희롱을 나무라려 하는중이다.

 “ 에...뭐야 ? 이마담 ??? 이마담이 나 불렀어 ? ”

 아까 언뜻 지혜를 소개받을때 이름이 ‘이지혜’라고 한것은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이지혜한테까지 이마담이라고 부르고 있는 만수. 이런식으로 가다간 지혜한테까지 물마담을 하겠냐느니 술마담을 하겠느냐니 그런말까지 나올판이다. 보다못한 지혜가 격분한다.

 “ 야 !!! 이 XX야 !!! 여기가 니 성희롱 하는덴줄 알아 ? 그리고 내가 왜 마담이야

  ? 난 엄연히 여기서 작가라고. OOO ‘행복한 일요일’ 구성작가 이지혜 !!! 내가 술

  집 마담인줄 알아 !!! ”

 “ 작가도 작가 나름이지 !!!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순간 그와같은 버럭 소리가 나온 만수. 아무래도 술김에 괜히 한번 내뱉은 소리 같긴한데 지혜는 그녀 나름대로 그간 구성작가로 있으면서 친 작은 사고들이 있었기에 뜨끔하고 만다. 설마 지혜하고는 초면이고 이 프로 메인피디와도 오랜만에 만난듯한 만수가 지혜의 전력에 대해 알 리는 없겠지만 물마담이니 술마담이니 하는 소리를 명백한 ‘성희롱’이라며 따끔하게 지적하려던 지혜는 ‘작가도 작가 나름’이란 만수의 버럭소리에 찔끔하고 만다.

 “ 지혜씨, 지혜씨 무슨일이야 ? ”

 구성작가들이 개그맨 만수와 어울려(?) 있는 쪽에서 버럭소리가 나자 걱정이 된 메인피디가 다가와보았다. 만수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서인지 일단 적당히 얼버무리려 한다.

 “ 어어...홍피디 아냐아냐...그냥...여기 이 작가가 술에 좀 취한 모양이네. ”

 “ 어...그래요 ? 지혜씨 왜 그래 ? 술을 마시려면 좀 곱게 마시지. ”

 지혜는 기가막혔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있는가. 술에 취해 물마담이니 술마담이니 하며 해괴한 성희롱성 언사를 입에 담은것은 다름아닌 만수다. 헌데 술은 정작 한잔도 입에 담지 않은 자신한테 피디가 덤터기를 씌우는것 아닌가. 억울해서 뭐라고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피디는 지혜의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은채 저쪽 다른 스텝들과 출연진들이 어울려있는쪽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 마지막회에 계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