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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이지혜 (7)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5. 방송작가의 자살





 교육방송에서 해고된것이나 다름없게된 지혜는 준섭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 이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지혜가 매달릴만한 사람은 준섭밖에 없었다. 한편 그 사이 준섭은 윤경과 결혼 한참 신혼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혜가 교육방송에서 일하게 된지는 1년이 조금 넘은 무렵의 일이다.

 “ 어머, 지혜씨 아니세요 ? ”

 원래 교육원 수강생시절 준섭과는 주고받은 집 주소가 있어 지혜는 준섭의 집을 알고 있었다. 헌데 준섭의 집을 찾아갔을때 문을 열고 맞이하는것은 다름아닌 이제 준섭의 아내가 된 윤경이었다. 다른사람도 아니고 하필 그녀와 이런 상황에서 마주치게 되다니. 간편한 실내복 차림의 윤경은 지혜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를 그저 반가이 맞이할뿐이었다.

 “ 들어오세요 지혜씨. 그런데 어쩐일이세요 ? ”

 그때 교육원을 찾으러갈 때 지혜에게 도움을 받았던 터라 윤경이야 여전히 그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있을 뿐이고, 그래서인지 지혜는 지금 이 순간 오히려 더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질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과연 이 상황에서 무슨말을 어떻게 꺼내야할까. 윤경이 커피 한잔을 내오는데 그녀의 집안 거실 소파에 가까스로 앉은 지혜는 커피 한모금을 겨우 마신뒤 겨우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켜가며 입을 열었다.

 “ 저어...근데 준섭씨는요 ? ”

 “ 오빠는 출근했죠. 근데 오빠한테 볼일이 있어 오신거에요 ? ”

 “ 네...뭐...어...근데 준섭씨가 지금 일하는 직장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

 작년까지야 준섭과 지혜 모두 교육원 낮반 강의를 듣는 수강생 신분이었고, 헌데 준섭은 교육생이라기 보단 수강생들을 방송국와 연결시켜주는 어떤 브로커(중개인)같은 역할을 주로 도맡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에 준섭이 그 아버지도 방송사 피디출신으로 지금은 음반 기획사를 운영중이라 하고 그 할아버지도 40-50년대에 방송국에서 일한적이 있는 방송가 집안이라고 하니 준섭의 진정한 정체를 더더욱 궁금해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지난 1년은 그렇게 준섭이 소개해준 교육방송 구성작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때라 사사로이 준섭과 연락하거나 할 일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새삼 구체적인 준섭의 하는일이 궁금해서 겸사겸사 윤경에게 물었다.

 “ 어, 난 또 지혜씨가 아시는줄 알았는데 모르셨구나. 저희 오빠 OO 기획에서 매

  니저로 일해요. ”

 “ OO기획 매니저요 ? ”

 “ 네. 실은 저희 시아버님이 음반기획사 사장님이세요. 그래서 오빠가 그 일을 도

  와드리고 계시죠. ”

 “ 아...그렇군요. ”

 윤경에게 시아버님이면 다름아닌 준섭의 아버지 아닌가. 대충 이렇게 되니 지혜도 준섭의 구체적인 정체를 알만할것 같았다. 여하튼 지금은 준섭이라도 좀 만나고파서 이렇게 찾아온것인데 준섭이 지금 없다니 낭패아닌가. 뭘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판인데, 윤경이 그러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혜를 도와주려했다.

 “ 기다려보세요 그럼. 제가 오빠한테 한번 연락해볼께요. ”

 “ 연락이요 ? ”

 아무리 그래도 낮에 근무시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이 집에 올수 있다는 소리인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 회사 사장이라는걸 생각한다면 그 정도 양해가 가능한가보다 그 정도의 짐작도 들고. 여하튼 윤경이 어디론가 통화하는듯 하더니 약 30여분 정도가 지났을때 바로 준섭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 어, 지혜씨 ? ”

 “ 준섭씨, 오랜만이에요. ”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대체 어찌 꺼내야할지.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해 윤경이 차려준 점심으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지혜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 하하... ”

 막상 지혜의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묘한 웃음소리를 내는 준섭. 그것은 그와 처음 단둘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때, 그가 방송국 구성작가 일은 지혜와는 맞지 않을것이라고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해줄때 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해 지혜는 살짝 불쾌해지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준섭은 지금 혼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것인지. 잠시 말이 없이 뭔가 생각에 잠긴듯한 준섭이 한참만에 입을연다.

 “ 그럼 여기한번 가보시겠어요 지혜씨 ? ”

 뭔가 자신의 다이어리 같은데서 한참을 뒤적거리는듯 하던 준섭이 지혜에게 내민것은 한 장의 명함이었다. 그걸 내보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 지상파 OOO 예능국이에요. 제가 그곳 국장님과 잘 아는 사이니 한번 거기로 가

  보세요. 어쩌면 거기엔 지혜씨와 좀 맞을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요. ”

 “ OOO 예능국이라고요 ? ”

 대한민국에 지상파 방송이래봤자 KBS,MBC,SBS 세곳이니 결국 그중 한곳인게 뻔한일이겠지만 여하튼 그 예능국 국장이 준섭과 잘 아는 사이라는것이다. 확실히 준섭은 집안 배경도 그러하고 방송가에 이런저런 발이 넓은 그런 사람인가보다. 그런 짐작이 들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헌데 그럼 준섭의 진짜 정체는 그런식으로 인맥을 이용해서 방송국에 구성작가 일 같은것을 꽂아주는 그런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조금전 윤경의 말로는 준섭은 그 아버지가 하는 음반기획사에서 밑에서 매니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 근데 지혜씨. ”

 준섭의 진정한 정체는 지혜 입장에선 참 여러 가지고 궁금하기 짝이 없긴 했지만, 지금 지혜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니 그런것을 따질 상황은 아니고. 일단 그렇게 건네받은 명함으로 거기라도 찾아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터. 헌데 준섭이 다시금 그런 지혜의 이름을 불러본다.

 “ 근데 제가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

 이런식으로 운을 떼는것을 보니 준섭이 무슨말을 하고 싶은것인지는 대충 알것 같았다. 시인이나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던 지혜의 꿈. 하지만 그런 지혜가 슬픈 상상을 하면서 우는 버릇이 있는것을 보며 그녀의 고등학교 동창인 강주현이란 아이는 ‘그보다는 연속극 작가 같은것을 해보는게 어떻겠느냐 ?’는 권유를 하기도 했었고, 그래서 택한 방송작가의 길. 하지만 어쩌면 지금 지혜는 준섭의 말처럼 자신이 길을 잘못 든게 아닌게 하는 생각은 하는중이다. 그러나 지금와서 여기서 물러설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어있는것이 지혜인것이다.

 “ 방송작가...특히 예능이나 교양프로 구성작가는 소설이나 드라마 이런것하곤 많

  이 달라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방송대본은 그냥 방송의 한 구성요소일뿐이에요.

  문학이 아니란 말입니다. ”

 이미 준섭으로부터 여러차례 주워들었던 충고. 지혜는 말없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본다. 그래서 지금 자신보고 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이런 명함까지 기껏 건네주고 나서는 거듭 이런말을 하는 준섭의 태도를 지혜는 진짜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런 지혜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준섭의 충고는 거듭된다.

 “ 지혜씨가 과연 어떤 마음에서 방송작가를 하고 싶다고 나선것인지는 모르겠지

  만, 지혜씨가 지금 하고있는 착각을 빨리 거두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드리는 말씀

  이에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방송대본은 문학이 아니에요. ”





 그렇게해서 지혜는 지상파 OOO에서 구성작가로 일하게 된것이지만 그곳에서도 상황은 딱히 나아진것이 없었다. 처음 지혜가 투입된 예능프로는 평일 심야시간대에 하는 예능프로였다. 이 프로 역시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스텝들이 모두모여 기획회의를 하게되는데, 지혜는 이곳에서도 교육방송에서 일할때와 비슷한 지적을 받게 되었다.

 “ 지혜씨, 그렇게 멍하니 쳐다만 보지말고 말을 좀 해봐요 말을 좀 !!! ”

 “ 지혜씨, 지금 회의내용 듣고 있는거에요 ? 회의에 집중하고 있는거 맞냐구 ? ”

 사실 이런 지적을 받을때마다 지혜는 늘 답답해졌다. 사실 막내작가인 자신이 묵묵히 회의내용을 듣는것외에 뭘 할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조용히 회의내용을 경청하고 있는건데 그런 자신을 ‘회의에 집중을 안한다’느니 ‘왜 말이 없느냐 ?’느니 이런식으로 지적을 하면 대체 어쩌란말인가. 조용히 회의내용을 듣기만 하는것도 죄란말인가. 그렇다고 막내작가 입장에서 딱히 무슨 발언을 할 위치에 있는것도 아니고 그럴 기회나 계기가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가끔 어떤 잔심부름 같은것을 시키면.

 “ 지혜씨, 나오면서 회의실 정리좀 해줘요. ”

 “ 지혜씨, 이것 좀 OO국의 OOO피디에게 전해주고 올래요 ? ”

 그러면 ‘네 ? 아...네에’하고 대답하는게 지혜가 할수있는 ‘말’의 전부일뿐이다. 그런 자신에게 헌데 늘상 회의에 집중을 안 한다느니 말이 없다느니 이런 지적을 하면 도대체 뭘 어쩌란말인가. 그렇다고 지혜가 갖고있는 어떤 아이디어 같은것을 들어주는것도 아니면서. 바로 교육방송에서도 ‘인형극 삼국지’를 한번 제작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떠벌거리고 다니다가 결국 쫒겨난것 아닌가. 그러니 그런 지혜로선 대체 방송국 예능프로의 막내 구성작가로서 무슨 처신을 어떻게 해야하는것인지 제대로 판단히 서지않아 속상하고 억울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식으로 가다간 방송국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역량을 보여줄 기회는 제대로 잡아보지도 못한채 자신의 방송가에서의 시간이 마무리 되겠구나 하는 어떤 불안감까지 엄습해오고 있었다. 사춘기때부터 혼자 슬픈 이야기 같은것을 상상하다 스스로 거기에 몰입되어 슬피 우는것이 버릇이었던 지혜. 그러다 나중엔 그런 혼자 상상한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데까지 발전하게 되고 또 표현력이 남다르거나 특이하다는 말도 종종 들었던 그런 지혜였다. 바로 그런 지혜가 시인이나 동화작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보게 된 것이고 ‘드라마 작가가 되는건 어떻겠느냐 ?’는 권유를 친구로부터 받아보기도 했던것인데. 하지만 비정규직인 드라마 작가 보다는 고정수입이 보장된 구성작가를 택했던것이건만 막상 이 바닥에 들어와보니 자신의 뜻대로 되는것이 하나도 없어 지혜의 고민의 나날이 깊어가고만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지혜가 야근을 할 일이 있었다. 야근이지만 예능국 사무실을 지키는것 외엔 딱히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혼자 무료하게 밤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헌데 그러다 지혜가 모처럼만에 사춘기 시절 하던 버릇이 발동하였다. 자신의 연습장을 하나 꺼내서는 자신이 상상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석, 어쩌면 우리의 사랑이 이대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이런 편지를

  쓰고있어.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란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너를 향해 가고있는

  이 마음. 사랑의 감정은 어떨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럭비공 같다

  는 생각이 들어. 이러면 안 되는데...이러면 안 되는데...생각은 하면서도 그 의지

  와는 상관없이 너에 대한 내 타는 열정만은 갈수록 커져가는 이 시간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않아.

   새벽 하늘빛에 스러져가는 별빛을 바라보는 아쉬움처럼 너를 향한 내 안타까움

  도 이토록 날 아프게 만드는데, 아랫도리가 흥건히 적셔질때까지 북받쳐오는 이

  슬픔을 어찌하면 좋을까. 석, 널 정녕 놓치고 싶지 않아. 석, 너는 아니 ? 내가

  지난밤을 얼마나 고통스러운 눈물로 지샜었는지를. 널 향한 내 마음, 너에 대한

  나의 그리움. 그것이 마치 칡넝쿨처럼 날 휘휘감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채

  깊은 미로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간밤을 너무나 깊고 어두운 복잡한 미로를 헤매

  다녀야만 했어. 이 슬픈 미로...이 아프도록 깊은 수렁...널 향한 내 마음은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 ’

 “ 저...실례합니다. ”

 한참을 몰입되어 그와같은 어떤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을 하고있는 여인마냥 묘한 글귀를 써내려가고 있던 지혜. 글의 분위기는 정말 어떤 금단의 사랑을 하고있는 라디오 드라마나 아침 연속극 여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면서 또다시 감정이 북받쳐올라 눈물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그런 지혜를 누군가 꿈에서라도 깨어나게 하듯 불렀다.

 “ 저...김민석 피디님 지금 어디 계신가요 ? ”

 “ 예 ? 어...뭐...뭐라구요 ? ”

 화들짝놀란 지혜는 바로 글을 쓰던 다이어리를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앞에는 대충 한 30대 중,후반 정도로 추정되는 여인이 한명 있었고 손에 작은 도시락통 같은것을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김민석 피디님 어디 계시냐 ?’고 묻는 여인. 지혜는 눈물콧물로 어느새 범벅이 된 얼굴을 닦을 생각도 못한채 멍한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 예능국의 김민석 피디님...어디계신지 모르세요 ? ”

 “ 네 ? 아...저...전 잘 몰라요. 전 여기 발령온지 얼마 안 되어서. ”

 실제 여인의 입에서 언급된 피디는 지혜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고, 실제 아직 지혜는 OOO 방송사 예능국에서 일하게 된지 아직 얼마 안된때라서 그 많은 피디며 구성작가들의 이름조차 아직 제대로 파악하고있지 못한때였다. 일단 자기가 하고있는 프로그램 피디 이름은 확실히 아니고. 그래서 잘 모르겠다며 미안하다고 한뒤 바로 허겁지겁 자리를 피했다. 마치 무슨 해서는 안될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마냥. 지혜의 그런 모습에 여인도 살짝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지혜는 소설같은 상상으로 써내려간 편지글로 인해 감정이 북받쳐올라 그만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버렸기에 그 얼굴을 바로 세수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바로 자리를 피한것인데 여인은 여인대로 지혜의 그 당혹스러워하는 태도에 의문을 품었다. 무엇보다 눈물콧물 범벅이 된 지혜의 모습은 여인으로 하여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하기 충분했다. 지혜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간것이지만 여인은 지혜의 저와같은 석연치 않은 행동을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혜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며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내고 있었고 그러면서 북받쳐올랐던 감정도 겨우 추슬르고 있었다. 그렇게 겨우 평상심을 되찾은 지혜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그쪽에서 무슨 소란이 일고 있었다.

 “ 바른대로 대지 못해 ? 아까 그 X과 대체 무슨 관계야 ? ”

 “ 아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 내가 대체 뭘 어쨌다구 ? ”

 “ 이 남자가 정말 !!! 증거가 이렇게 뻔히 나왔는데도 시치미 뗄꺼야 ? ”

 대체 무슨 소란인가 의아해하며 자기자리로 와보았는데 다름아닌 조금전이 김...누구란 피디를 찾던 여성과 또 다른 지혜 입장에선 낯선 40 전후로 추정되는 남자가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혜 입장에선 어쨌든 자신의 자리 옆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는 남녀에 살짝 불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항의라도 하기위해 그쪽으로 다가가며 말을 걸려고 했다.

 “ 저...대체 무슨일인가요 ? ”

 무엇보다 무슨 연유로 싸우는것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리 옆에서 이러지 말아달라는 말을 하려는 차였다. 그런데 조금전 그 여자가 바로 지혜를 보더니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 너 이 X 잘만났다 !!! 너 오늘 아주 내 손에 딱 걸린줄 알아 !!! 너 이 X 오늘

  아주 내 손에 죽었어 !!! ”

 “ 아악~~~!!! 아악~~~!!! 왜 그래서요 ? ”

 “ 왜 그러세요 ? 이 X이...바로 증거가 현장에서 발견되었는데 시치미를 떼려고

  해 ? 이 천하의 뻔뻔스러운 것 !!! 이 천하의 사악한 요물같은 계집. 그래, 어디서

  감히 새파랗게 어린것이 유부남한테 꼬리를 치려고 해 ? ”

 “ 네에 ? ”

 “ 여보...여보...그러지말고 제발 진정좀 해. 진정좀 하라구 !!! ”

 대체 이게 무슨소리인가. 증거는 뭐고 대체 누가 유부남한테 꼬리를 쳤다는 소린가. 지혜 입장에선 너무 황당한 소리라 기가막히기만 할 뿐이고 남자는 남자대로 역시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지 지혜의 머리채를 잡은 여자를 만류하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가 여자를 ‘여보’라고 부르고 있었다.





 “ 이 뻔뻔스러운 계집 !!! 증거가 이렇게 멀쩡히 있는데 이래도 시치미를 뗄거야

  ? ”

 여인은 그러면서 바로 지혜의 다이어리를 손으로 집어 조금전까지 그녀가 낙서를 끄적거리던 바로 그 부분을 펼쳐 보여주었다. ‘석...우리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 어쩌구 저쩌구 한 내용.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여인의 남편인듯한 피디의 이름이 김민석이었다. 그러니 오해를 받아도 참으로 이렇게 절묘한 오해를 받는일이 세상에 있을수가 있을까 싶은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처음 여인이 지혜를 불렀을때 황급히 뭔가 감추기라도 하듯 다이어리를 덮는것 하며, 눈물콧물이 범벅이 된 심상찮은 모습, 그리고 ‘김민석 피디 어디있는지 모르느냐 ?’는 질문에 대답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달아나버리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아마 김민석 피디의 아내란 여인이 아무래도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그리고 펼쳐본 다이어리엔 ‘석...이룰수 없는 사랑’ 어쩌구 저쩌구 하며 진짜 무슨 금단의 사랑이라도 나누고 있는듯한 여인의 구구절절한 가슴아픈 일기나 낙서같은 글귀가 깨알같이 적혀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수 있으랴. 아마 그리고 지혜가 세수를 하러 간 사이 실제 여인의 남편인 김민석 피디가 아내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온 모양인데 그런 남편에게 바로 여인인 다이어리를 보여주며 ‘당신이 바람을 피는 증거’라며 닦달을 해댔나보다. 그러니 지혜는 물론 김민석 피디란 입장에서도 그야말로 황당한 날벼락을 맞은 셈. 지혜 입장에서도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할지 참 난감하기만 한 일일 따름이다.

 “ 아...아니에요. 뭔가 오해하신것 같은데...정말 그런거 아니라구요 ? ”

 “ 아니긴 뭐가 아냐 ? 여기 니 손으로 직접 쓴 글이 이렇게 있구만. 우리 남편

  을 석이 어쩌구 하고 부르며 사랑한다느니 그립다느니 가슴아프다느니...아주그

  냥 별의별 청승을 다 떨었구만. ”

 “ 아니, 당신 정말 지금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거야 ? 난 정말 이 여자가 누군지

  도 모른다구 !!! ”

 실제 김민석 피디는 예능국에 막내작가로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는 이지혜를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그건 지혜 입장에서도 아직 김민석 피디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것은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다이어리를 마치 ‘증거물’인양 현장에서 잡아낸(?) 여인은 여전히 의기양양하게 두 사람을 그야말로 불륜현장이라도 포착해낸듯 연신 닦달을 해대고 있고, 그러니 민석은 민석대로 지혜는 지혜대로 각기 이 황당한 상황을 어찌 해명해야할지 몰라 난감하기 짝이없는 모양새가 되어있었다.

 “ 야, 너 도대체 뭐야 ? 너 도대체 뭐하는 X인데 사람을 이렇게 황당한 꼴을 당

  하게 만들어 ? ”

 김민석 피디는 하도 어이가 없어 지혜에게 그렇게 따져들었고 하지만 민석의 아내 눈에는 그 조차 쇼로 보이기라도 하는지 여전히 이런 두 사람의 태도를 믿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혜 입장에선 다이어리에 써놓은 그 글귀에 대한 해명을 하기가 참 난감해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원래 중학교때부터 슬픈 상상 같은것을 하면서 울던가 글로 적는 버릇이나 습관 같은것이 있었고...조금전까지도 그런 이룰수 없는 사랑을 하고있는 여인의 가슴아픈 심경을 글로 한번 써본 것뿐이다.’ 이걸 사실 그대로 해명한들 믿어줄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되려 지혜가 정신이 좀 이상한 여자가 아닌가. 그런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일것이다. 그러니 지혜는 지혜대로 해명을 하기도 변명을 하기도 난감해 그저 어쩔줄을 모르는 상태고, 여자는 여전히 민석과 지혜를 무슨 같은 직장에서 야근을 핑계로 한밤에 불륜이라도 나누는 그런 사이로 확신하고 있는듯 두 사람을 연신 노려보고 있었다.

 “ 난 그래도...야근하는 당신 고생할까봐 간단하게 야식이라도 챙겨 먹으라고 이렇

  게 준비해온거야. 그런데 당신은 방송국에서 고작 이따위 짓이나 벌이고 있었어

  ? 애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아 ? ”

 아마 두 사람 사이에 아이도 있는듯 했고, 김민석 피디 내외의 나이를 대략 40 전후로 추정한다면 아이 정도는 충분히 있을법한 나이. 그래서 민석의 아내는 거듭 그런식으로 남편 민석을 책망하고 있었고, 민석은 민석대로 이 어처구니없고 황망한 상황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답답해 미칠지경이 되어있었다.

 “ 여보...진짜 오해하지 마. 나 진짜 이 여자 누군지도 몰라. 하...참 미치겠네 진짜

  . 야...너 도대체 뭐야 ? 뭐하는 기집애야 !!! 대체 뭐하는 앤데 무슨 뒈먹잖은 낙

  서는 해서 사람을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어. ”

 일의 발단이 결국 지혜가 다이어리에 쓴 의문의 낙서 때문인것은 이미 대충 파악한듯 이번엔 민석이 지혜에게 따져들고 지혜는 지혜대로 이 상황에서 해명을 어찌 해야할지 몰라 그저 난감해할 따름이다. 급기야 진짜로 울음까지 터트리는 지혜. 슬픈 상상을 하다 감정이 북받쳐 우는게 아니라 진짜 이 너무 어처구니없이 받은 오해의 상황을 어찌 대처해야할지 몰라 난감해서 터트린 울음이다. 한편 여인은 여인대로 공연히 방송국 안에서 소란스럽게 해봐야 좋을것 없다는 판단을 했는지 이쯤에서 물러나려한다.

 “ 니들...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이쯤에서 물러나는데 앞으로 조심해. 내가 계속 지

  켜볼거야. ”

 어디까지나 여기서 오래 이런식으로 있자니 지치기도 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의 자백(?)을 받아낼수도 없을것 같아 이쯤에서 그냥 제풀에 물러나는것일뿐, 적어도 민석과 지혜의 관계(?)에 대한 의심은 아직 풀지 않은듯. 아니 이제 두 사람을 진짜 무슨 불륜관계라도 되는양 단정해버리고 경고성 엄포를 놓고 떠나가려는 여인. 민석이 아내를 쫒아가며 무슨 변명이라도 해보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변명은 듣고싶지도 않은듯 힘껏 그의 손을 뿌리치기까지 하면서 성큼성큼 저만치 가버린다. 민석은 민석대로 기가막혀서 지혜에게로 돌아와서 따진다.

 “ 야 !!! 너 도대체 뭐야 !!! 뭐하는 앤데 날 이런식으로 엿 먹여 !!! ”

 하도 기가막혀 민석의 입장에선 아직 누구인지도 모르는 지혜에게 와서는 욕설과 손가락질까지 하며 따져든다. 사실 민석 입장에선 지혜가 오늘 초면이고 심지어 그녀가 새로 들어온 막내 구성작가인지조차 모르는 상태다. 다만 여하튼 야근을 하는 방송사 스텝중 한명이려니 그런 짐작은 하지만, 구체적인 그녀의 하는일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무슨 날도깨비나 허깨비도 아닌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여자와 불륜관계라도 되는양 아내로부터 그런 당치도 않은 오해까지 받았으니 민석의 기가막힘도 이만저만이 아닐것이다.

 “ 도대체 뭐야 ? 대체 다이어리에 뭔 뒈먹잖은건 써놓았길래 이 난리가 벌어진거

  냐구 !!! ”

 도대체 뭘 써놓았는지나 알고싶어져 지혜가 제지도 하기전에 그녀의 다이어리를 나꿔채버린다. 그리고 문제의 내용을 살펴본 민석이 지혜에게 묻는다.

 “ 석이가 누구야 대체 ? 니 남자친구야 ? ”

 “ 아...아니에요 그런거. ”

 바로 그렇게 부인했지만 지혜는 바로 그걸 후회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냥 ‘석’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친구가 있노라 둘러대버릴걸. ‘그럼 대체 석이가 누구냐 ?’고 따져물으면 그건 또 어찌 대답하란 말인가. 남자이름에 ‘석’자가 들어가는 경우야 흔하디 흔하겠지만 그것도 하필이면 ‘민석’이란 이름의 피디가 그것도 야근을 하는 피디중에 있을게 뭐람. 지혜 입장에선 그야말로 운이 나빠도 이렇게까지 나쁠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일것이다. 지혜 입장에선 그냥 혼자 그런 슬픈 상상을 하다 내키는대로 지어낸 이름인 ‘석이’. 그 가상의 상대를 대상으로 금단의 사랑에 빠진 여인의 심정을 적어내려간글이 이런 오해를 받게 만들어버렸으니. 이 상황을 진짜 어떻게 해명해야할지 지혜 역시 한없이 난감한 수렁의 한가운데 빠진 기분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앞으로 이딴 쓸데없는 낙서 하지마 !!! 도대체 사람 엿먹이는것도 유분수지. 도

  대체 아닌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날벼락도 유분수지...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 ”

 김민석 피디란 사람으로부터 혼이 나는것도 그렇거니와 ‘앞으로 이따위 쓸데없는 낙서 하지 말라’는 그의 말이 순간 지혜의 가슴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어쨌든 대략 중학교때부터 생긴 버릇이고, 지혜가 앞으로 진짜 유명한 소설가나 연속극 작가가 될수 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것도 나름대로 지혜의 재능이라면 재능이라고 할수있는 부분 아닌가. 헌데 그걸 앞으로 하지 말라니. 차라리 자살이라도 해버리거나 나가죽으란 소리를 들었어도 지혜가 이렇게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혜 나름대로 어떤 재능이라고 할수도 있는 무슨 소설이나 이야기 같은것을 끄적거리는 그걸 하지 말라니. 지혜 입장에선 민석에게 무슨 항변도 해명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픈 가슴을 혼자 움켜진채 억울함과 서러운 마음을 혼자 삭이고 있었다.

 “ 으이구 !!! 으이구 !!! 너 진짜 사고를 쳐도 아주 다양하게 치는구나 ? ”
얼마후 지혜가 맡고있는 프로그램의 메인피디에게도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갔는지 바로 그녀를 불러 또 한바탕 야단을 쳐댔다. 같은 방송사 예능국에서 일하는 피디들끼리니 아마 지혜의 프로그램 메인피디와 김민석 피디도 그 정도의 친분은 있을것이란게 충분히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민석 입장에선 대체 그날 야근을 하던 정체불명(?)의 여자애 정체가 누구인지 대체 뭐하는 애인데 사람을 이렇게 날벼락을 맞게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서라도 알아보려 했을것이고 그러다 어느프로그램 구성작가인지 알아내는지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날밤에 있었던 일을 지혜 프로그램의 메인피디에게 말했을것이고, 그래서 피디가 이번엔 지혜를 불러 있는대로 닦달을 해대는것이다.

 “ 넌 도대체 제대로 할수있는게 뭐냐 ? 도대체 심부름을 똑바로 하길 해 ? 사람

  말귀를 제대로 알아먹길 해 ? 아니면 하다못해 회의때 제대로 아이템이나 하나

  신통하게 내놓은게 있길 해 ? 도대체 니가 할수있는일이 뭐냐구 !!! ”

 그런 말까지 듣자 지혜는 다시금 울음이라도 터트리고픈 심정이 되어버렸다. 구성작가란게 소설가나 드라마작가 같은 일과는 확실히 다른것이구나. 그것은 이미 실감하고도 남은 단계. 차라리 준섭이 처음에 충고했을때 진작에 때려치울걸 그런 후회까지 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기왕 선택한 직업. 사실 지혜가 그런것 이외에는 딱히 무슨 재주나 재능이 있는것도 아니기에 여기서 그만두면 다른것을 자신이 할만한 마땅한 일이 있을지도 불투명한 처지다. 그러니 지혜 입장에선 작가일까지 그만두라는건 진짜 죽으라는것이나 다름없는 소리다. 따라서 메인피디로부터 이런 구박까지 들으니 지혜는 정말 죽고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피디로부터 한바탕 욕설을 듣고난 지혜는 방송국 휴게실 안에서 한참을 혼자 슬피 울어댔다.



-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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