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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이지혜 (6)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5. 방송작가의 자살





 준섭과의 일과는 별개로 지혜는 교육방송에서 구성작가로 일을 할수 있게 되었다. 지혜가 들어간 프로는 준섭의 말대로 교육방송에서 새로 기획중인 프로그램으로 간단한 꽁트라던가 춤 또는 어린이들이 알아두면 좋을 간단한 지식,상식 같은것을 퀴즈나 설명 같은 형식으로 가르쳐주기도 하는 일종의 어린이 대상 ‘종합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교육방송의 성격과 한계상 요란한 분위기로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못하고 대체로 단촐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지혜는 그 프로 막내 구성작가로 들어가게 되었고, 해당 프로는 매주 1회씩 방영되며 보통 두주정도 회차를 앞두고 그 해당 회차에 관련한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지혜는 그 프로 1회 기획회의부터 막내작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 그럼 이번주 꽁트는 ‘오즈의 마법사’ 영화를 간략하게 패러디한 내용으로 진행

  해보자 이거지 ? ”

 “ 네, 주인공으론 OOO씨와 OOO씨를 섭외하게 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그 외 출연

  진은 본래 꽁트에 투입되던 고정멤버로 하면 될거구요. ”

 “ 그리고 이번주 상식퀴즈는 역사상식 퀴즈로 하자는 이야기네 ? ”

 “ 네, OOO씨가 역사선생으로 출연하고 아역배우 4-5명 출연시켜서 함께 퀴즈도

  풀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형식으로 진행하면 좋을것 같아요. ”

 대충 이런식으로 기획회의는 진행되고 연출진과 구성작가진이 모두 함께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하지만 지혜는 아무래도 막내작가다보니 자신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지혜는 흥미를 잃은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회의 분위기를 따라잡기에 한계가 느껴진것인지 회의때 혼자 딴생각을 하거나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종종 메인피디의 지적을 받고있다.

 “ 이지혜씨. ”

 “ 네 ? ”

 한참 회의를 진행하던 메인피디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지 지혜를 불러보았다. 회의 내용을 듣고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작스레 자기 이름이 불린 지혜는 화들짝 놀랐다. 그런 지혜를 보며 피디가 물었다.

 “ 지혜씨 지금 내 이야기 듣고 있는거야 ? ”

 “ 네, 아...네. 듣고 있어요. ”

 그렇게 대답했지만 아무래도 정직한 대답이 아닌것 같은 의심이 들어서일까. 피디는 거듭 지혜에게 물었다.

 “ 그럼 방금 내가 무슨 이야기 했어 ? 한번 설명해봐. ”

 “ 아...저...그...그게... ”

 실제로 회의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한것인지 숙지가 안 된 것인지 지혜는 당혹스러워하며 말을 얼버무리고 있었고 그러자 피디가 살짝 지혜를 쏘아보았다.

 “ 지혜씨, 앞으로 좀 집중을 해줬으면 좋겠어. ”

 그런식으로 주의를 들었지만 지혜 입장에선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간이 딴청을 피우거나 딴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지혜는 여하튼 기획회의때 대체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니었다. 가끔 메인피디나 회의에 참석한 다른 제작진들이 지혜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한적도 있긴 한데, 실제 지혜가 잘 모르는 분야여서일까.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아예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적도 종종 있었다.

 “ 지혜씨, 거 아이들한테 율동 가르치는것 좀 해볼수 있겠어 ? OOO 율동 알아,

  몰라 ? ”

 “ 지혜씨가 퀴즈용 판넬 좀 한번 만들어와보지 그래 ? 할수 있겠어 ? ”

 원래 지혜가 바랬던길은 시인이나 동화작가가 아니었던가. 그런 지혜에게 노지연 4총사중 한사람인 강주현은 그보다는 지혜가 가끔 해본다는 슬픈 이야기가 일일연속극 주제로 딱이니 차라리 드라마작가를 해보는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해보기도 했고. 헌데 그런 지혜가 지금 있는곳은 교육방송 프로그램의 막내작가 자리다. 그러다보니 지혜에게 맡겨지는 일들이 대개 그런 지혜의 적성이나 관심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것들이었다. 지혜가 언제 무슨 율동 같은데 관심을 가져본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판넬 작업 같은것을 해본적이 있었던가. 물론 구성원중 막내이니만큼 이런저런 잔심부름도 도맡게 되겠구나 그런 예상까지는 안해본것은 아니었지만 대개 지혜에게 맡겨지는것이 자신이 잘 모르거나 알지 못하는 일들이라서 종종 그렇게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고는 했었다. 무엇보다 회의때 다른 선배 피디나 작가들이 묻는말에 대답도 잘 하지 못하고 적당히 얼버무리기 일쑤고, 그런 지혜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지 하루는 선배 작가가 이렇게 묻기도 했다.

 “ 지혜씨, 말 할줄 몰라 ? ”

 “ 네 ? ”

 이건 또 무슨소린가. 이렇게 멀쩡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보고 ‘말을 할줄 모르냐 ?’니. 지혜는 황당해하며 선배작가한테 되물었는데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선배작가가 말했다.

 “ 아니, 난 보니까 지혜씨가 회의때 말도 제대로 잘 못하는것 같고...그렇다고 무

  슨 딱히 아이템이나 아이디어 개발 같은데 연구나 관심을 갖고 있는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혹시 무슨 언어장애 같은게 있는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혜씨 혹시 그런쪽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니지 ? ”

 “ 아유, 선배님 무슨 그런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언어장애라뇨. 저 멀쩡해요.

 ”

 “ 그럼 앞으로 좀 회의때 성의를 갖고 참석해 주었으면 좋겠어. 가만보면 지혜씨

  는 회의때 참석하는 태도가 영 엉망이야. ”

 영 엉망이라니. 이런 이야기 솔직히 지혜 입장에선 좀 억울한 소리였다. 물론 지혜가 회의때 가끔 흥미를 잃고 딴청을 피우거나 딴생각을 간간히 한적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회의에 열중하지 않거나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석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지혜 입장에선 진짜 억울한 소리다. 무엇보다 그걸 어떻게 일일이 증명해 보인단말인가. 회의때마다 ‘나 회의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어요 !!!’ 하고 소리라도 지를수 있는일도 아니고. 그냥 묵묵히 다른 선배작가들이나 피디들이 다음 프로 아이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것을 듣고만 있었던것을 ‘회의에 열중하지 않는다’느니 ‘기획회의 자체에 관심이 없다’느니 이런 핀잔을 듣거나 지적을 받는것은 진짜 억울한 일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회의에 열중하지 않는것이 아니다라는것을 딱히 증명해 보일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고. 흔히 하는말로 자기속을 있는 그대로 다 들어다 보여줄수도 없는 일이니 지혜 입장에선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지혜가 교육방송 프로그램 구성작가가 된지 한달여쯤 지났을때 지혜에게 프로그램 출연자를 섭외하라는 일이 분담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출연자 섭외는 구성작가들이 하게된다. 다음 회차때 방영될 꽁트 주인공으로 이정길씨를 섭외하라는 이야기였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정길 선생님 ? 여기 EBS에서 하는 신나는 꿈동산 제

  작진인데요. ”

 지혜가 구성작가로 활동하면서 그래도 탤런트 이정길 연락처를 알아둔게 있어 지혜는 바로 그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중후한 이정길의 톤이 수화기 너머로 직접 들려오자 지혜는 순간 가슴까지 뛰었다.

 “ 교육방송이라구요 ? 헌데 무슨일로. ”

 이정길은 대체로 침착하면서도 온화한 저음으로 대답을 했고 지혜는 괜한 호들갑스런 음성으로 말을 건넨다.

 “ 네, 실은 저희가 다음 OO회차 꽁트로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패러디한 연극을

  하려고 하는데요 그 주인공으로 이정길 선생님을 캐스팅하려 하거든요. ”

 “ 날 교육방송에서 그런 프로에 섭외를 한다구요 ? ”

 정길은 대체로 침착한 톤으로 대꾸를 하고 있었고 지혜는 그녀 나름대로 뭐가 그리 신나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 예, 녹화가 다음주 목요일 오후 O시에 있을 예정인데요 그때 나와주실수 있으

  신가요 ? ”

 “ 뭐...알겠습니다. 전화해주셔서 고마워요. 다음주 목요일이라구요 ? 예, 예 알겠

  습니다. ”

 섭외는 무난히 이루어진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혜는 괜시리 그런 유명한 탤런트와 자신이 직접 통화를 했다는 사실에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지 못했다. 지혜같은 소심하고 약한 성격에 이 흥분된 마음이 아마 사흘은 쉬이 가라앉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다음주 목요일 약속대로 이정길이 교육방송 녹화장에 당도했고 프로그램 녹화는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다만 녹화가 다 마무리되었을때는 어두운 밤 시간이었는데, 그래서 제작진은 거의 다 해산이 된 상태고 지혜도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피곤했는지 이미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 뒤다. 헌데 이정길이 프로 메인피디를 조용히 불렀다.

 “ 그...윤성호 피디라고 했나요 ? ”

 “ 예, 제가 신나는 꿈동산 제작을 맡고 있는 윤성호 피디입니다. ”

 윤성호 피디는 대체로 정중하게 이정길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웬지 살짝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이정길은 잠시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아보는듯 하다가 살짝 묘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약간 그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러다 근처에 보이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 거기 걸터앉고 그리고 윤성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실례지만 방송국에서 일한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 ”

 “ 예, 전 교육방송에 공채 피디로 OO기로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쭉

  이곳에서 일해왔구요. ”

 “ 허허...그래요 ? ”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는 이정길. 하지만 10년 경력의 피디 윤성호는 뭔가 계속 안절부절하는 모습. 어찌보면 그 앞에서 죄송해서 몸둘바를 모르는 그런 눈치다. 헛기침을 한번 한 이정길은 살짝 묘한 미소를 지어보인뒤 입을 연다.

 “ 그래요 뭐...10년을 이 바닥에서 일했으니 그건 뭐 그랬으면 된거고...아무튼 앞

  으로는 이런데 나 섭외해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

 “ 예 ? 예...아...알겠습니다. ”
어쨌거나 방송가 짬밥이 10년에 이르는 피디다. 그러면 뭔가 척하면 척인 감이 있는듯 뭔가 죽을죄를 지은듯이 백배 사죄하는듯한 그런 모습이다. 이정길은 예하 그 침착하면서도 온화한 톤으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 내가 어느덧 연기생활을 한지도 30년에 이르고 있어요. 그동안 참 정통멜로를

  주로 하면서 참 많은 역할을 도맡아했었지. 그리고 그러면서 쌓아온 이미지도 있

  고말이야. ”

 때는 가을. 이정길은 나름대로 짙어가는 낙엽색깔만큼이나 오랫동안 묵은 무수한 추억들이라도 회상하는지 살짝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눈을 뜨고는 윤성호 피디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 그렇게 30년 정통연기를 하면서 쌓아온 이미지 그게 결코 간단하고 만만한게

  아니란 말이지. 이미지...그게 참 중요한데...여하튼 앞으로는 이런데 나 섭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말투는 무척이나 정중하고 점잖아보였지만 오히려 저음의 톤이 주는 무게감이 ‘한번만 더 이딴데 캐스팅하면 너 이 XX 절대 가만 안둔다’는 어떤 중압감이나 위협마저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래서일까. 무슨뜻인지 알겠다는듯 윤성호는 백배천배 이정길에게 사과했고 이정길은 그쯤에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을 하는 이지혜를 부르는 손길이 있었다. 지혜와 함께 일하는 선배작가였다.

 “ 이지혜씨. ”

 방송국으로 들어서는 이지혜를 바로 알아보고는 말을 건네는 선배작가.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지금 출근하는 길이야 ? ”

 “ 네, 언니. 언니도 지금 출근하세요 ? ”

 출근길에 흔히 있을수 있는 인사라 생각하고 지혜도 답례를 하고 그녀는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한 소녀마냥 해맑게 웃고 있었다. 선배작가는 역시 미소띤 얼굴로 지혜의 손을 잡아 이끈다.

 “ 지혜씨, 우리 잠깐 커피나 한잔 할까. 잠깐 좀 와볼래 ? ”

 “ 커피요 ? 아...아뇨 언니. 커피야 제가 사야죠. ”

 “ 잠깐만 따라오면 돼. ”

 커피나 한잔 하자는 선배언니의 말에 영문도 모르고 뒤를 따라가는 지혜. 선배작가는 상대적으로 좀 호젓한 복도공간쪽으로 지혜를 데리고 갔다. 마침 그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도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선배언니는 거기에서 뜨거운 블랙커피를 무려 석잔이나 뽑았다. 한잔은 자기꺼, 한잔은 지혜거라 쳐도 나머지 한잔은 또 누구것인가. 지혜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 연유를 물어볼새도 없이 선배는 지혜에게 그 뜨거운 커피 석잔을 연신 지혜의 얼굴에 있는 힘껏 퍼부어댔다.

 “ 앗뜨거~~~!!! 아앗~~~!!! 뜨거뜨거 !!! 어...언니... ”

 같은 프로에서 일하는 선배언니이기도 하고 그냥 잠깐 무슨 할 이야기가 있거나 그야말로 별 뜻없이 커피나 한잔 하며 수다라도 떨고 싶은것인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난데없는 뜨거운 커피 세례를 한잔도 아니고 석잔이아 연거푸 쏟아부으니 지혜는 너무나 놀랍고 기가막혔다. 헌데 이미 성난 얼굴로 변한 선배는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듯 지혜의 뺨을 있는힘껏 후려갈겼다.

 “ 너 정신이 있는 기집애야 !!! 없는 기집애야 !!! ”

 “ 네 ??? ”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자신이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단말인가. 하지만 대체 뭐가 문제될만한 일이 있었는지 지혜로선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그런 지혜에게 결국 선배가 화난 이유를 설명해준다. 

 “ 너 이 미XX아 !!! 너 내가 연극배우 이정길을 섭외하랬지 언제 중견 탤런트 이

  정길 선생님을 섭외하랬어 !!! 이 미XX아 !!! ”

 “ 네 ??? ”

 “ 우리가 섭외할 이정길은 중견탤런트 이정길 선생님이 아니라 연극배우 이정길

  이었단말야. ”

 이게 대체 무슨소린가. 그럼 세상이 다 아는 유명 탤런트 이정길말고 동명이인 이정길이 따로 또 있었단말인가. 선배가 그 부분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준다.

 “ 이정길이란 연극배우 있어. OOO에서 하는 범죄재연 프로에도 몇 번 출연한적

  있고 우리 신나는 꿈동산에도 몇 번 출연한적 있고 교육방송에서 하는 청소년

  드라마에도 나오는 그 연극배우 출신 이정길말이야. 여태 그 이정길도 몰랐어 ?

  이 XX같은 기집애야 !!! ”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지혜에게 화를 내고있는 선배. 지혜도 그제서야 사태파악이 되는듯 했고 하지만 지혜로서도 적잖이 놀라고 충격과 황당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지혜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였더라도 이정길이라면 일반적으로 유명 중견 탤런트 이정길을 생각하지 연극배우 출신 동명의 이정길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헌데 여하튼 선배작가의 말로는 그 중견배우 이정길 말고 무명의 연극배우 출신 재연배우이면서 교육방송의 청소년 드라마나 꽁트물에도 종종 나오는 그 이정길이 또 따로 있다는것 아닌가.

 “ 너 솔직히 말해봐. ”

 “ 뭐...뭐를요 언니 ? ”

 “ 너 혹시 윤성호 선배 일부러 엿먹이려고 그런거 아냐 ? 무슨 의도가 있어서 그

  런거 아니냐구 ? ”

 “ 어...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윤피디님한테 무슨 억화심정이 있다구요.

  그런거 아니에요. 그건 정말 실수라구요. ”

 어디까지나 동명이인 이정길이 또 있는줄 몰라서 저지른 실수인데 심지어 선배작가는 이지혜에게 무슨 다른 저의가 있었는것 아니냐고 그 부분까지 의심하고 있는것이다. 지혜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항변이나 해명도 할수 없는 상황. 선배작가는 거듭 지혜를 다그치고 있다.

 “ 너 때문에 지금 윤성호 선배가 얼마나 곤경에 처했는지 알아 !!! 이 미X 기집애

  야 !!! 가서 윤피디님한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백배 사죄해. 그리고 시말서

  도 쓰고. 대체 기집애가 일을 저질러도 유분수지...아주 그냥 대형사고를 터트렸어

  이 미X 기집애가 !!! ”

 지혜에게 오만 욕설을 퍼부으며 화를 내고있는 선배. 지혜로선 자신의 실수도 실수지만 그것으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까지 겹쳐져 거듭 질책을 당하는것이 억울하기도 해 그 서러움에 울음을 터트렸다. 막내작가로 아직 방송가 실정을 잘 모르는데서 나온 실수. 하지만 그 실수가 생각 이상으로 일이 크게 번진것만 같아 지혜는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저 당혹스럽고 속상해서 터진 울음인것이다. 지혜는 혼자 화장실로 들어가 한바탕 서럽게 울어댔다.





 그런일이 있고나서 지혜는 한동안 ‘신나는 꿈동산’ 제작진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가 되었다. 피디나 다른 선배작가들은 물론 FD 조차도 누구 하나 지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일종의 투명인간 같은 신세가 되었다고나 할까. 지혜는 아무래도 그 실수가 계속 마음에 걸려 윤성호 피디에게 몇 번이고 다시금 사죄의 말을 건네긴 했지만 성호는 그런 지혜의 사과의 말도 받는둥 마는둥한 그런 태도였다.

 그러다 얼마후 지혜는 다른 방송프로그램으로 발령이 났다. 지혜가 새로 맡게된 프로는 교육방송에서 하는 청소년 대상 과외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과외프로그램이야 성격이 대개 그렇듯 그냥 해당 과목 강사를 초빙해서 강의내용만 진행하면 되는것이니 작가가 특별히 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것이다. 따라서 일종의 좌천이 된 꼴이라 봐도 될법한 상황이다.

 다만 지혜는 앞서 ‘신나는 꿈동산’ 제작진에게서 받았던것과 비슷한 지적을 거듭 받게 되었다. 사람이 왜 그리 말이 없느냐느니 회의에 집중을 하지 않는것 같다느니. 지혜 입장에선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다고 항변하기도 난감한 그런 일들이 다시금 반복되었던것이다. 지혜 입장에서야 회의에서 자신이 뭐 특별히 의견개진을 하거나 그럴일도 없으니 그냥 묵묵히 회의 내용을 듣고만 있는것뿐인데 그걸 갖고 회의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느니 관심이 없어보인다느니 이런식으로 나오면 대체 지혜보고 뭘 어쩌란 말인가. 무엇보다 앞서 ‘신나는 꿈동산’에서 지혜가 벌인 사고를 이 프로 제작진들도 대충은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식으로 가다간 지혜 자신이 진짜 구성작가로는 별로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될것만 같아 어떤 불안감마저 일었다. 그래서 하루는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되기전에 갑자기 지혜가 손을 번쩍 들었다.

 “ 저...피디님 !!! ”

 난데없이 큰 소리로 메인피디를 부르며 손까지 번쩍 드는 지혜를 보자 제작진은 혹자는 당혹스러운 눈길로 혹자는 멍한 자세로 지혜를 바라보았다. 또 혹자는 지혜에게 눈치를 주듯 이건 아니라는듯 손을 내젓는 시늉을 보이기까지 하지만 지혜는 아랑곳없이 작심한듯 자기 생각을 발표했다.

 “ 우리 인형극 삼국지 해보는거 어때요 ? ”

 “ 뭐...뭐라구요 ? ”

 그러자 다들 황당하다는듯 지혜를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지금 지혜가 투입되어있는 프로그램은 과외방송 프로가 아닌가. 그런데 난데없이 인형극 삼국지라니. 이 여자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번 단단히 잘못 찾았구나. 그런 눈으로 다들 지혜를 바라보는데 지혜는 마치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듯 열띤 음성으로 자기 하고픈 말을 계속 이어갔다.

 “ 제가 알고 있기로는요 80년대 초반에 공영방송 KBS에서 인형극 삼국지를 한번

  방송한적이 있던걸로 알아요. 하지만 그건 요시가와 삼국지가 기본 텍스트라서

  많이 일본풍이었어요. 게다가 중간중간 잘라먹은 스토리도 많아서 전체적으로 원

  전에 충실하지 못한 삼국지였다는 아쉬움도 있고요. 그러니 우리가 이참에 교육

  방송에서 어린이,청소년 대상으로 한번...이문열 삼국지를 텍스트로 제대로 한번

  ‘인형극 삼국지’를 제작해보자구요. ”

 “ 이봐요 이지혜씨 앉아요 !!! ”

 “ 피디님, 그러지말고 제 이야기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어차피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중국 고전들은 어린이,청소년들에게도 널리 읽히는 교양도서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그걸 바탕으로 교육방송에서 인형극을 만들어보는것 굉장히 의미있는 기

  획이 될거에요. 또 소재가 소재니만큼 시청률 상승 효과도... ”

 “ 지혜씨...그만하고 제발 좀 앉아. ”

 하도 이 모습이 딱한듯 옆에 있던 다른 구성작가가 거듭 눈치를 주며 지혜를 앉게하려고 했지만 지혜는 자신의 ‘인형극 삼국지’ 기획안 구상을 끝까지 다 이야기하고 말았다. 청소년 대상 과외방송 프로그램 제작회의를 하는데 난데없이 ‘인형극 삼국지’라니. 황당해도 이런 황당한 일이 세상에 없을것이다. 결국 그날 회의에서 지혜의 그 돌출행동은 이 프로 제작진들에게도 ‘이지혜란 사람 진짜 뭔가 문제가 많아도 많은 사람이로구나’ 하는 인식을 제대로 박히게 했다. 그래서일까. 그 일을 겪고나서 한동안은 이 프로 제작진들도 지혜를 이대로 떠안고 가는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혜는 나름대로 큰 마음먹고 구상해본 ‘인형극 삼국지’ 기획안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기획안을 작성해서 방송사 간부급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역설하려 들었다.

 “ OO 부장님, 그러지말고 제 제안을 한번만 들어보세요. 인형극 삼국지 진짜 어린

  이,청소년 용으로 진짜 좋은 기획이라니까요. ”

 “ OO 국장님, 이게 얼마나 의미있는 기획인데요. 인형극 삼국지 교육방송에서 한

  반 제작해보는거 결코 나중에 후회할 기획안이 되지 않을거에요. ”

 어쩌면 이건 지혜 나름대로의 생존의 몸부림일수도 있었다. 애초에 ‘신나는 꿈동산’ 제작진에 막내작가로 들어왔다가 말도 별로 하지 않고 회의에 집중도 하지 않는 그런 무성의한 사람으로 몇 번 지적을 받았다가 기껏 떨어진 일감이었던 출연진 캐스팅과 관련 엄청난 실수를 했고, 그러다 좌천이라도 되듯 과외방송 구성작가로 발령이 난 이지혜가 아닌가. 이쯤되면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서 그만두라는 메시지 같아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과외방송 프로에서도 앞서 몸담았던 프로 제작진에게 받은 지적을 거듭 받게되자 ‘이러다 자신이 진짜 짤릴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까지 들었다. 다른것은 몰라도 어떻게 택한 방송작가의 일인데.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도 없이 이대로 짤릴수는 없다는 어떤 절박한 마음이 이지혜를 이렇게 만든것이다. 하지만 부장,국장급 간부들에게까지 기획안을 보여주며 설득해도 별 효과가 없자 이지혜는 결국 교육방송 사장실 문까지 두드리는데 이르렀다.

 “ 예, 누구신가요 ? ”

 느닷없이 사장실로 들어온 한 젊은 여성으로 인해 사장도 적잖은 당혹스러움을 내비치고 있었고, 하지만 아랑곳없이 이지혜는 교육방송 사장에게까지 그 기획안을 보여주었다.

 “ 죄송하지만 저 이것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

 “ 이게 뭡니까 ? ”

 “ 교육방송에서 한번 제작해 보았으면 하는 아이템으로 만들어본 기획안입니다.

  ‘인형극 삼국지’ 아이템이에요. ”

 작심하고 내민 기획안과 지혜를 사장은 번갈아 바라보았고 그러면서 사장은 물어보았다.

 “ 이게 인형극 뭔 기획안이라구 ? 그러는 아가씨는 누군데 ? ”

 “ 네 !!! 저 OO 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지혜라고 합니다. ”

 지혜는 제법 씩씩하게 자신의 소속까지 밝히며 대답했고 그러자 사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야 !!! OOO 국장 !!! ”

 어디론가 대뜸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장. 지혜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뭔가 또 실수한것이 아닌가 싶어 불안해지는데 사장은 전화기로 거듭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 이 미XX 당장 끌어내 !!!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와서 지X이야 !!! 지

  X이 !!! ”

 “ 사...사장님... ”

 그와같은 사장의 반응에 지혜가 사색이 되었고 잠시후 남자 두명이 들어와서는 황급히 지혜를 끌어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은 지혜의 상관격이기도 한 교육방송 제작팀 국장이었다.

 “ 이지혜씨 당장 그만둬요. ”

 지혜가 그간 친 사고와 평판등은 대충 보고를 들어 알고있는 국장인지라 절망적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물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멍하니 국장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국장은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 무슨말인지 모르겠어 !!! 내일부터 당장 회사 나오지 말라구 !!! 이딴짓 때려치우

  고 집에가서 인형놀이를 하든 강아지 놀이를 하든 당신 혼자 실컷 해봐 !!! ”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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