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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이지혜 (5)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5. 방송작가의 자살



 준섭으로부터 상처가 될수있는 말을 들은 지혜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지혜의 정곡을 제대로 찔렀음일까. 실제 준섭의 말처럼 지혜는 설사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어도 차마 그만둘수는 없는 상태로 방송작가 교육원 비드라마반 과정을 계속 수강하고 있었다. 어쨌든 자신도 스스로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인데 지금와서 물러선다는것도 쉽게 결정할수 있는일이 아니었다. 준섭의 말처럼 방송대본 그것도 비드라마 대본은 그냥 방송의 한 요소일뿐. 소설이나 시 드라마 같은 문학이나 문예창작 장르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제와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쉽게 포기하거나 물러날수도 없는 일이라 지혜는 계속 비드라마반 나머지 1년 과정은 계속 듣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1년 과정도 대략 마무리되어가는 어느날. 하루는 준섭이 지혜를 불렀다. 비드라마반 과정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았을때 비록 지혜에게 상처가 될수 있는 말을 그와같이 줄줄 입에담은 준섭이긴 했지만 또 한편으론 지혜가 걱정이 되기라도 했는지 가끔 이런저런 조언이나 충고같은것을 해주기도 하거나 지혜를 챙겨주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 준섭이다. 그리고 그런 준섭에게 지혜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호감을 느껴가기도 하는때였다.

 “ 지혜씨 여기한번 찾아가볼래요 ? ”

 “ 예 ? ”

 그러면서 준섭이 지혜에게 내민것은 한 장의 이력서 용지와 작은 안내문 같은것이었다. 이게 뭔가싶어 의아하게 준섭을 바라보는 지혜에게 그는 설명을 덧붙여준다.

 “ 사실 교육방송에서 새로 시작하는 어린이 대상 프로 보조작가를 모집한다 하더

  라구요. 그 공지를 제가 봤어요. 그래서 혹시 지혜씨한테 제대로 좋은 기회가 되

  지 않을까 싶어 이런 추천을 하는거에요. ”

 “ 저한테요. ”

 사실 교육원에서 수강을 하다보면 드라마든 비드라마든 그런식으로 사람이 필요해서 교육원 수강생들에게 그런 제안이나 추천이 들어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헌데 지혜 입장에선 준섭은 그런면으로 좀 이해 안가는 면이 있기도 했다. 사실 일전에도 준섭이 그런식으로 수강생들에게 무슨 추천같은것을 해주며 ‘여기 한번 가보라’는 말을 하는것을 지혜가 몇 번 목격한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준섭이 그저 자신과 같은 교육원 수강생이려니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런 방면의 무슨 브로커인가 슬몃 의심까지 될 지경이었다. 여하튼 준섭의 그런 추천은 지혜로서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마다할 이유는 없어 받긴 했지만, 지혜는 지혜대로 날을 잡아 그 의아함을 준섭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 근데 준섭씨는 방송가에 아시는 분들이 참 많은가봐요 ? ”

 “ 예 ? ”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며 뜬금없다는 투로 나오는 준섭. 하지만 지혜는 지금껏 지켜본 준섭에게 아무래도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궁금함을 한번 풀어보고픈 심정이었다. 생각해보면 작년에 준섭이 지혜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때에도 마치 방송가 사정이나 실상을 매우 잘 아는 사람인양 이야기하던 그런 차준섭 아닌가. 그런 정황을 볼때 준섭의 진정한 정체가 뭔지 지혜 입장에선 궁금해서 견딜수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엔 빙빙 말을 돌리는듯 하던 준섭은 지혜의 사뭇 노련한 추궁에 더 견딜수 없다 싶었는지 결국 자백을 하고 말았다.

 “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지혜씨가 제게 무슨 오해를 하고 이런 질문을 자

  꾸 하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사실 지혜씨가 상상하는 그런건 절대 아니고요. ”

 “ 그럼...대체 뭐에요 ? ”

 “ 사실 저희 부모님도 두분 다 방송가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세요. 일종의 방송

  가 집안쯤 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아버지,어머니로부터 어릴때부터 쭉 들어온

  이야기들이 있어 그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편일뿐이에요. 그리고 아버지,어머니

  두분 다 아무래도 그렇다보니 주위 동료,지인들이 대개 방송쪽과 관련된 일을 하

  시는 분들이고...그래서 그런식으로 아는 분들이 저도 좀 많을뿐이에요. ”

 “ 아니, 대체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시길래요 ? ”

 부모님이 모두 방송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니 지혜 입장에선 진짜 궁금해지지 않을수 없는 노릇이었다. 준섭은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대답해준다.

 “ 사실 아버지께선 젊은시절엔 방송사 음악프로 피디로 오랫동안 종사해오신 분이

  고요 지금은 기획사에서 매니저로 활동하고 계세요. 그리고 어머니는 방송사 성

  우로 30년 넘게 재직해오신 분이시구요. 지금도 어머닌 성우활동을 하고 계시고

  요. ”

 “ 어머, 그래요 ? ”

 아버지는 피디출신의 기획사 매니저고 어머니는 30년 성우일을 해 온 사람이라니. 그쯤되면 방송가 사정에도 밝고 인맥도 제법 되는 준섭이 그런대로 이해가 갈만했다. 그런걸보면 작년에 준섭이 지혜에게 했던 말 비록 자신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현실을 제대로 깨닫게 해준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또한 무엇보다 준섭의 그런 추천으로 교육방송에서 새로 시작하는 프로 보조작가 면접까지 보게 되었으니 지혜 입장에선 준섭은 은인이나 다름없는 존재 아닌가. 지혜는 괜시리 감격해 마지않고, 준섭은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좀 더 설명을 덧붙여준다.

 “ 그리고 사실 저희 할아버지도 원래 방송가에서 활동하신 분이셨대요. 대략 그

  때가 1940-50년대쯤인데...그땐 아직 우리나라에 TV 방송은 없고 라디오 방송

  만 있던 시절인데...아무래도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방송제작 환경도 많이 열

  악하고 무엇보다 일제에서 해방,6.25로 이어지는 한참 복잡하던 시기였기 때문

  에 지금처럼 피디다 작가다 엔지니어다 여러 가지로 세분화되어 있다기 보단

  피디도 하시고 직접 대본도 쓰시고 경우에 따라선 엔지니어 역할까지 도맡아하

  신...뭐 하여튼 할아버지께서도 방송쪽 일로는 모르는게 거의 없으신 잡학다식한

  분이셨죠.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아무래도 제 DNA도 방송가 일에

  적성이 맞게 특화되었나봐요.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되었죠. ”

 할아버지는 40-50년대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활동하신 분이고 아버지는 음악프로 피디출신 매니저 거기다 어머니는 성우. 그런 집안의 손자라면 자연스레 그런일에 관심을 가질만한 가정환경이기도 했을것이고 그의 말마따나 준섭의 관심이나 취향,적성도 그런쪽에 제법 맞는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다만 이렇게 방송작가 교육원 수강생으로 있는 차준섭의 지난 일년동안 지켜본 모습은 수강생이라기 보단 이렇게 수강생들을 방송사 구성작가 일로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브로커나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혜 역시 그런 준섭과의 인연으로 교육방송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어린이 프로 보조작가 모집에 면접까지 보러 가게된 것이다.





 면접을 보러 간 결과는 다행히 좋았다. 다음주부터 나오라는 방송 관계자들의 말에 뛸듯이 기뻤다. 이렇게 어쨌든 방송국에 취직을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지혜는 들뜬 기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준섭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에게 작은 보답으로 성의를 표하고 싶었다. 처음 준섭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을때는 그에게서 그야말로 모진 이야기를 들은 셈이었지만, 그 뒤에 지켜본 준섭은 생각보다 그런대로 자상한면까지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챙겨준것에 대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에 그냥 넘어갈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물론 준섭은 마치 무슨 브로커라도 되는양 지혜외의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이런저런 방송프로 구성작가나 보조작가 자리를 연결시켜 주는 모습을 종종 보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지혜 입장에선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 마치 준섭이 특별히 자신에게만 신경을 써서 그런것을 해주기라도 한 것 처럼 그에대한 남다른 생각을 갖게되기까지 했다.

 그러고보니 지혜는 지금껏 딱히 남자 경험은 없었다. 물론 지혜의 나이 어느덧 20대 후반이고 비록 중,고등학교는 여중과 여고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시절이나 이후 대학 사회교육원 문예창작 강좌 같은데서 알고 지내게 된 남자도 있을것이고 남자와의 인연이 지금껏 전혀 없었다고 말할수는 없었겠지만 딱히 그렇게 이성으로 생각하거나 특별히 어떤 감정을 품은 남자는 없었다고 보는것이 맞다. 더 정확히는 지혜가 남자나 결혼 또는 연애 같은데 그때까진 별 관심이 없다고 보는것이 맞을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특이한 면 때문에 행여 상대방 남자가 자신의 그런면을 알고 이상한 여자로 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이 되려 남자의 다가옴을 꺼려하거나 불편해한적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까진 어쨌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기에 연애나 결혼 같은것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것이다.

 무엇보다 지혜 나이도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 후반에 이르렀고 지혜 부모님은 대략 20대 중,후반의 그 시절로선 그런대로 결혼적령기를 지났다고 볼수도 있는 상대적으로 약간 늦은나이에 결혼해서 지혜를 본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늦둥이까진 아닌 그런대로 적절한 나이에 결혼 지혜를 본 사람들. 지금 나이 아직 50대 중반 정도이니 아직 사회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나이기도 하다. 다만 어쨌든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 지혜니만큼 이 아이도 적당한 나이되면 좋은사람 만나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는 그저 평범한 부모님중 한분이시다. 여하튼 그런 부모하의 귀하디 귀한 외동딸. 그런 지혜에게도 이제 한번 정식으로 남자와 진지하게 교제같은것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본 남자가 준섭이었다. 처음 준섭의 이야기엔 상처도 받고 자존심도 상한 그런 지혜이긴 했지만 막상 그후 쭉 이 남자를 겪어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남자 같아 보이기도 하고 호감도 갔다. 무엇보다 방송가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나 지식이 많은 사람 같은데, 물론 그것은 준섭이 부모님은 물론 할아버지도 방송가에서 일한 전력이 있는 그런 대대로 내려오는 방송가 집안인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지혜입장에선 방송작가가 되고자 하는 자신 입장에서 이런 남자와 인연을 좀 더 각별히 이어가면 자신에게 분명 손해날일은 없겠구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정략적 의도로 준섭을 생각한것은 아니고 기왕 지혜도 이렇게 방송작가일에 관심을 갖고 교육원에 등록까지 하게 된 이상 기왕이면 엇비슷한 직종에서 일을 하면서 자신의 꿈이나 일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도 해주는 그런 동료나 친구같은 남자를 만나 사귀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혜는 그렇게 한번 준섭에게 진지하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고픈 마음도 담아 그에게 작은 선물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일단 방송국 보조작가로 발탁이 된 이상 교육원에서 더 강의를 듣는것은 의미가 없다. 지혜는 그래서 준섭은 물론 다른 동기생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그동안 고마웠다는 작별인사도 겸사겸사 하기위해 교육원을 찾았다. 무엇보다 준섭에겐 고마운 성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에 인근 백화점에 들러 선물까지 샀다. 준섭의 취향이나 기호가 어떨지 몰라 일단 자신이 틈틈이 모은 돈으로 넥타이와 양말 정도를 준비해보았다. 포장은 자신이 직접 예쁘게 신경써서 해보기까지 했다. 그 선물을 들고 교육원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때 저만치서 누가 자신을 불렀다.

 “ 저기...죄송하지만요... ”

 자신한테 하는 소린가 싶어 지혜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런 지혜의 앞엔 말쑥한 정장 차림의 젊은 여성 하나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옷차림 덕분인지 여인은 제법 미인으로 느껴졌다. 자신이야 교육원에 강의 들으러 올때야 뭐 특별히 옷을 차려입거나 할 이유는 없으니 보통은 간편한 캐쥬얼 차림이나 수수한 복장을 하고 오는데, 그래서인지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대여성에 비해 자신의 옷차림이 괜시리 초라해보인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지금 지혜가 그런걸 따질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고, 일단 자신에게 뭐 물어보고 싶은게 있냐고 여인에게 말을 건네보는데 여인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지혜에게 말을 건넸다.

 “ 방송작가 교육원을 찾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 ”

 방송작가 교육원 ? 바로 자신이 교육원 수강생이고 지금 그리로 가는일 아닌가. 지혜는 따라서 특별히 설명이고 뭐고 할 필요도 없다는듯 손가락으로 방송작가 교육원이 소재한 금산빌딩을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켜보이고 ‘그곳 4층’이란 답까지 친절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냥 따라오시라고 여인에게 말했다. 여인은 지혜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헌데 대체 무슨일로 교육원을 찾는것인지. 무엇보다 제법 신경써서 옷을 차려입은듯한 여인의 차림새 때문에 그 의도가 더 의아하게 느껴졌다. 일단 지금은 교육원에 새로 등록을 한다거나 그러는 때는 아니다. 무엇보다 교육원이야 강의를 들으러 가는곳이니 그런곳에 가면서 일부러 이렇게까지 신경써서 차려입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자 수강생들도 대개는 지혜처럼 간편한 캐쥬얼 복장 정도만 하고 강의를 들으러 오곤 하니까.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의 경우는 각자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그런대로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분들도 있고 수강생들과 별반 다를것없는 수수한 차림새로 오는분도 있다. 만약 교육원 사무실 직원이라면 지혜도 어느덧 교육원에서 1년반째 수강중인데 그 얼굴을 모르진 않을터이고. 여하튼 그래서 이 대낮에 교육원을 찾는 이 젊은 여성의 정체가 더더욱 궁금하고 의아해졌다. 하지만 그 연유를 묻는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일단 자신이 직접 친절하게 자기를 따라오라며 교육원이 있는 금산빌딩 건물까지 안내해주었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했다. 헌데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 내리는 순간 지혜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 달리잉~~~!!! ”

 우연치곤 묘하게도 하필 차준섭이 지혜와 의문의 여성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내릴때 그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 여인이 바로 준섭을 바라보고는 그에게 안겨드는것이다. 준섭도 그런 여성이 무척이나 반갑고 놀라워 하는듯 그녀를 와락 안아본다.

 “ 윤경아, 오랜만이야. ”

 “ 우웅...달링...나 달링과 이제 헤어지기 싫어. ”

 “ 바보...그러게 왜 쓸데없이 유학은 간다 어쩐다 그 난리는 치고 그러냐. 그러지

  말고 그냥 내 곁에 쭉 있었으면 좋았잖아. ”

 “ 우웅...미안해 달링. 나 달링과 이젠 안 헤어질래. 죽는 순간까지 자기랑 함께할

  거야. ”

 순간 지혜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휘둥그래진 정도가 아니라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바로 지혜는 자신을 교육방송 보조작가로까지 추천해주고 그렇게까지 신경써준 준섭에 대한 고마움에 작은 성의라도 표시하고픈 마음으로 이렇게 선물까지 준비해온것 아닌가. 무엇보다 혹 준섭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면 한번 그와 진지한 교제를 해볼까 하는 그런 생각까지 머릿속으로 하던 중이었다. 헌데 그런 지혜의 바램과 기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그런 순간이 그것도 다른곳도 아닌 방송작가 교육원이 소재한 금산빌딩 4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벌어진것이다. 순간 온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이 부르르 떨리는 기분이 든 지혜는 그야말로 그 자리에서 현기증을 일으킬것만 같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슨 바보같은 생각을 했던것인가. 저렇게 서로 와락 끌어안으며 대충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로 봐선 아주 오래된 연인이 분명하지 않는가. 유학을 갔대느니 어쨌느니 - 진짜 유학을 다녀온 여성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진짜 오랜만의 재회인듯한 대화를 그렇게 주고받는 두 사람. 준섭은 지혜도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것을 인지했는지 못했는지 그런 여인과 함께 한껏 다정한 표정으로 강의실쪽을 향해가고 있었다. 한편 지혜는 애써 신경써서 산 선물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대체 자신이 무슨 바보같은 짓을 한 것인가.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준섭에 대한 감사의 표시 어쩌구 하며 선물을 전했다간 모양새만 더 이상해질것이다. 지혜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남몰래 손에 들고있는 몇 년동안 틈틈이 모은 돈을 다 허비해가며 산 넥타이와 양말이 든 선물을 쓰레기통에 내다버렸다. 너무나 황당하고 참담하고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준섭이 애인이 있는 남자란 사실을 까맣게 모른채 그야말로 혼자 너무나 어리석고 바보같은 짓을 한것이 아닌가. 행여 진짜 누가 자신의 이런 속내를 눈치채기라도 할까봐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픈 심정이었다. 화장실에라도 가서 볼일을 보면서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지혜. 강의실에 들어섰을때는 그곳에서 터져나오는 한바탕 수다를 지켜볼수가 있었다.





 “ 어머, 그럼 이분이 정말 준섭씨 약혼자인거에요 ? ”

 “ 미인이시다 진짜. 그리고 두분이 진짜 잘 어울려보여요. ”

 “ 하하 뭐...약혼까지 한건 아니지만...뭐 그런 사이나 다름없다고 봐야죠. 여하튼

  그래서 한번 수강생 여러분들게 인사드려보고파서 데리고 온 겁니다. ”

 강의실에선 자신보다 먼저 들어온 준섭과 조금전 그 여자가 한참 수강생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는 준섭과 그 약혼자나 다름없다는 윤경이란 여자가 수강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상황이라고 보는게 맞을터. 그러니 지혜로선 지금껏 혼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짓을 했던것이란 말인가. 지혜는 그래도 이 차준섭이란 남자와의 그간 교육원에서의 인연을 상기하며 그래도 제법 남다른 인연이었다고 생각하고 한번 그와 진지하게 사귀어보는것을 고민하면서 이렇게 보답이라면서 작은 선물까지 마련하였다. 헌데 그런 애써 준비한 선물까지 가져온 상황인데 준섭이란 남자는 자신의 약혼자란 여자를 교육원 강의실까지 데려와 수강생들에게 인사시키고 있는것이다. 너무나 어이가없고 보통아닌 충격을 받아 그야말로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질 지경이었다.

 “ 어머, 지혜씨. ”

 한참 준섭과 그 애인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신없던 수강생중 한명이 그제서야 지혜가 강의실에 들어선것을 보았다. 지혜의 속마음을 알리없는 수강생들은 태연하게 그런 지혜에게도 손짓을 하며 준섭과 그 애인이 있는곳으로 그녀를 이끌기까지 했다.

 “ 지혜씨, 어서 와 봐요. 준섭씨가 자기 약혼자라고 그런분을 이렇게 강의실에까

  지 데리고 왔지 뭐에요. 지혜씨도 와서 인사해요 어서. ”

 “ 아, 이분 아까 봤어요. ”

 근데 지혜를 수강생 두어명이 이쪽으로 잡아이끄는것을 본 준섭의 여인이 바로 지혜를 알아보고는 그와같이 말했다. 불과 몇분전에 자신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지혜를 못알아보진 않을터. 그래서 윤경은 지혜를 아까 봤다며 그 경위를 살짝 설명해준다.

 “ 아까 저 교육원 위치 설명해주시면서 데려온 사람이 이분이에요. 그러고보니 이

  여자분도 수강생이셨나보네. 고마워요 어쨌든 덕분에 길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올

  수 있어서. ”

 “ 어머, 그래요 ? 지혜씨가 안내해왔던거에요 ? 근데 왜 같이 들어오지 않고 이제

  서 ? 화장실에라도 다녀왔던거에요 ? ”

 윤경을 여기까지 안내해왔다는데 함께 들어오지 않고 뒤늦게야 강의실에 들어선것이 약간 의아하긴 하지만 그거야 뭐 잠시 다른 볼일이라도 봤겠거니 하며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고, 윤경이야 마찬가지로 지혜의 지금 속내를 알리없으니 그저 태연자약하게 다시한번 조금전에 고마웠다는 말을 건넬뿐이다. 그리고 다시금 자신과 준섭이 어떤 사이임을 친절히 입에 담으며 설명까지 해주며. 윤경과 수강생들의 말에 의하면 준섭과 윤경은 대학 졸업할 무렵부터 쭉 사귀어온 사이인데 중간에 윤경이 마음이 변한것인지 다른 생각이 있었던것인지 잠시 유학을 가네뭐네 하면서 한 1,2년 준섭의 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유학생활이 싫었었는지 준섭이 다시 그리워져 견딜수가 없었던건지 윤경은 한 2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고 그리고 준섭과도 이와같이 재회한것이다. 두 사람이 그리고 약혼이나 결혼까지 확실히 결심한 상태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 준섭은 수강생들에게 윤경을 인사시키며 한껏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것이다. 잠시 한 며칠동안이나마 그런 준섭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그와 진지하게 사귀어 보는것을 고민하고 있었던 지혜는 그야말로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은 망상을 했던것이나 다름없기에 그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어쩔줄을 모르고 있다. 무엇보다 그런 자신의 속내를 수강생들이나 준섭과 윤경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터. 준섭은 윤경과 그런식으로 인사를 나눈뒤 자신들은 자신들대로 따로 볼일이 있다며 훗날 다시 보겠다며 인사를 나눈뒤 강의실을 떠났고 지혜는 쓰러질것만 같은 몸 상태를 겨우겨우 버텨내며 가까스로 강의실 한구석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날 강의조차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은채 혼자 교육원 화장실에 남몰래 들어가 한참을 슬피 울었다. 잠시나마 준섭과 진지한 교제를 해보는것을 고민해 봤던 자신이 너무나 수치스럽고 창피해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던것이다.

 “ 으흐흐흑~~~!!! 엉엉엉~~~!!!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지혜는 집 근처 조금 떨어진곳에 있는 공원 벤치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 있었다. 오늘 교육원에서 겪은 그 수모,모멸감,수치스러움이 도저히 지혜를 견디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던것이다. 생각해보니 너무 어처구니없고 기가막히지 않은가. 어찌보면 너무 재수없고 운이 없는 일이라고나 할까. 자신은 그래도 진지하게 준섭과 교제를 고민해보다가 그 생각을 밝혀보기로 하고 정성스레 준섭에게 선물까지 준비한 날인데. 그런 지혜의 속마음과는 별개로 준섭은 하필 그런날에 자신의 애인을 교육원으로 불러 그것도 수강생들에게 인사까지 시킨것이다. 역시 지혜의 속마음을 알길없는 다른 수강생들은 지혜에게도 준섭의 애인을 인사시키기까지 하고. 정말이지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과 같은 수모를 겪어본 여자도 천하에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나는 진지하게 고백이라도 하고싶어 그런 고민을 며칠동안 수도없이 했는데, 정작 그 당사자는 자신의 애인을 그런날 교육원 강의실에 데리고 왔다. 이런 기가막힌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수가 있단 말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고팠던 진지한 고백이고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진지한 이성교제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무슨 첫사랑이나 첫경험도 아니고 처음 해보려는 그런 고백이나 고민이 이렇게 무참하게 짓밟힌 경우도 세상에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 지혜 아니니 ? ”

 얼마나 한참을 혼자 발악을 하듯 울부짓기도 하고 서럽게 울어댔을까. 그렇게 한참을 있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의아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놀랍게도 자신의 곁에 다가와있던것은 중,고등학교때 동창인 노지연 4인방중 하나인 강주현이었다. 지혜의 가족은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그 뒤엔 노지연 4총사와 지혜는 학창시절처럼 그렇게까지 자주 연락은 하지 못했는데, 헌데 그 4총사중 한 사람인 강주현을 하필 이날 이런곳에서 만날수가 있단 말인가. 하긴 지혜가 이사를 간 동네가 그전 살던 동네에서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진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찾아오려거든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니다. 요즘 서울 웬만한 지역은 대개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하니 그걸 이용한다면 시간이 그리 얼마 걸리지 않을수도 있고. 실제 지혜와 노지연 4총사는 중,고등학교때처럼 그렇게까지 자주 만나진 못해도 가끔 전화통화 정도로 안부전화는 주고받는 사이였기 때문에 노지연 4총사는 지혜가 요즘은 방송작가 교육원이 다닌다는 소식 까진 지혜로부터 직접 들어서 알고는 있는 정도였다. 주현이 그냥 이 근방에 개인 볼일이 있어 왔다가 지혜를 우연히 본 것으로 생각할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여하튼 지혜 입장에선 뜻밖이고도 당혹스러운 일이라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너 뭐 또 아침드라마 줄거리라도 상상하고 있었던거냐 ? ”

 지혜가 혼자 슬픈 상상을 하다가 가끔씩 울고 그러는 버릇이 있는 아이인것은 노지연 4총사야 이제 익히 알고도 남음이 있는부분 아닌가. 그러니 주현 입장에선 애가 또 무슨 드라마 스토리 같은것이라도 혼자 상상했나보다 그렇게 짐작하고 물어본것이다. 지혜 입장에서 자신이 그런 습관이 있는것을 오늘처럼 난감해한적도 일찍이 없었을것이다. 오늘만큼은 무슨 그런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 상상을 한것도 아니고 진짜 너무 분하고 서러운일이 있어 운 것인데, 그러고보면 지혜 입장에선 이런 답답한 속내를 하소연할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것 아닌가. 그냥 평범한 여성 같으면 ‘오늘 진짜 너무 서럽고 분한일을 겪었다’며 차라리 친구라도 붙잡고 한바탕 하소연을 해대기라도 했을것이다. 하지만 지혜의 경우는 친구조차도 오히려 ‘혼자 또 무슨 슬픈 드라마나 소설같은 이야기라도 상상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것 아닌가. 지혜의 진짜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현은 씨익한번 웃어보이며 곁에 앉는다.

 “ 왜에 ? ”

 하필 이런때 주현에게 이런모습을 들킨것이라 더더욱 불편하기라도 한지 지혜는 뾰루퉁해져서 그와같이 내뱉고, 하지만 주현은 뭔가 다 알겠다는듯한 투로 괜한 미소까지 흘리며 지혜에게 말을 건넨다.

 “ 그러지말고 이야기나 좀 해주라. 오늘은 또 무슨 스토리를 구상한거야 ? ”

 “ 뭐...뭐라구 ? ”

 황당한 표정으로 주현을 바라보는 지혜. 그런게 아니라 오늘은 진짜 슬프고 너무 억울하고 분한일이 있어서 운 것인데, 그걸 주현은 지혜의 원래 버릇대로 무슨 슬픈 상상을 하다가 울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것 아닌가. 이건 무슨 걸핏하면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 하다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원래 슬픈 상상을 하다 우는 버릇이 있는 여자애가 이번엔 그런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너무 억울하고 분한일을 겪어 운 것인데. 그것도 자신을 알만한 친구조차도 그렇게 알고 있는 상황이니 지혜 입장에선 너무나 기가막힌것이다.

 “ 아니, 너 어차피 드라마 작가라도 되고파서 방송작가 교육원에까지 등록한거

  아냐. 그러니 미리 이야기라도 좀 들려달라고.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야 ? 불치

  병에 걸린 가난한 집 소녀 이야기 ? 아니면 어린 동생들을 혼자 키우는 소녀가

  장 ? ”

 “ 아니라니까 !!! ”

 결국 지혜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다. 실제로 운것을 그게 아닌 상상을 하다 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친구. 그걸 생각해보니 더 기가막혀 화가 안 날수가 없었다. 지혜는 여전히 자신이 무슨 그런 슬픈 이야기 상상이라도 하다 혼자 감정이 북받쳐 운걸로만 생각하고 ‘무슨 이야긴지 들려나 달라’고 보채기까지 하는 주현을 너무 기가막혀서 밀쳐내기까지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 그런 지혜의 모습에 황당해진 주현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본다.



-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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