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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이지혜 (4) 1세대 걸그룹 팬픽




                                   교육원에서 생긴일 - 5. 방송작가의 자살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도 노지연 4총사와 이지혜는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특히 중학교 3학년때와 고등학교 1학년때는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노지연 4총사와 이지혜까지 모두 다섯명이 같은반이 되는 참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2때는 다시 각기 다른반으로 배치가 되기도 했지만 그런식으로 노지연 4총사와 이지혜와의 친분은 계속 이어져갔던 것이다. 한편 지혜는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혼자 슬픈 이야기같은 상상을 하다가 울거나 하는 그런 버릇은 없어졌지만 대신 노트에 이런저런 낙서(?) 같은것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대개는 시나 소설,또는 꽁트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시는 대개 서정시 느낌이었으며 소설은 분량은 길지 않았지만 내용이 대체로 범상치않고 슬픈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지혜가 중학교때부터 무슨 불치병을 앓는 연인의 사랑이야기라던가 결손가정이나 부모없이 혼자사는 소년,소녀 가장의 이야기등 대체로 슬픈 사연이 있는 연인이나 가족의 이야기를 상상하곤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고등학교 들어서는 직접 글로 노트 같은데 적어보는 그런 습관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 이지혜가 고3 어느덧 대학입시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무렵에 노지연 4총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꿈을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 시인이 되고싶어 사실은. ”

 “ 시인 ? ”

 이때는 대학입시를 한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으로 특히 ‘선 지원, 후 시험’ 제도일때라 대학에 진학할 희망이 있는 학생들은 해당학교의 학과에 이미 입시원서를 다 제출한 뒤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입 학력고사를 치를날만을 기다리며 한참 준비하고 공부할 때이기도 한데, 친구들끼리 모여 특히 어느학교 무슨과를 지원했는지를 궁금해서 서로 물어보며 그런 이야기를 간혹 나누기도 할 무렵이다. 그때 지혜는 자신이 국문과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 이유를 그와같이 밝혔던것이다.

 “ 허허 참... ”

 국문과에 지원을 했고, 그리고 시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한 이지혜. 그런 지혜의 장래희망이 노지연 4총사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중학교때부터 간혹 혼자 슬픈 상상을 하며 그 상상한 이야기의 감정에 북받쳐 울던가, 때론 사물이나 사람의 움직임 같은것을 보며 특이한 표현을 하기도 하던 지혜. 그런 지혜가 언제부터인가는 자신이 상상해본 이야기를 글로 써보기까지 하더니 급기야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그런 희망을 밝히기까지 한 것이다.

 “ 얘, 지혜야. ”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강주현이 말을 건넸다. 지혜를 처음 알게되었을때 말수도 적고 웬지 그늘져보이는 그 느낌에 초등학교때 자기반에도 지혜와 비슷한 성격의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경우는 알고보니 부모님이 이혼을 한 아이더라며 혹시 그래서 지혜 너도 그런 사연이 있는거냐고 묻기도 했던. 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닌지라 지혜한테 실례인것 같아 다른 친구들이 지혜에게 사과하란 말을 하기도 했고 주현도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바로 그런 인연이 있기도 한 강주현은 평상시 성격이 좀 냉철하고 판단력이나 분석력이 뛰어난 그런 아이란 평가를 받던 그런 아이였다. 헌데 그런 강주현이 시인이 되고 싶다는 지혜를 바라보며 한마디 한 것이다.

 “ 내가 볼땐 넌 시인보다는 연속극 작가가 더 어울리겠더라 ? ”

 “ 연속극 ? ”

 지혜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의아하다는듯 그와같이 되묻기도 했지만 지혜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의 경우엔 주현의 그 말도 좀 일리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너 가끔 그 니가 혼자 상상해본 이야기라며 노트에 적곤 하는 그런거. 보니까

  딱 소설이나...아니 소설이라기 보단 완전 일일연속극 같은데서 볼법한 그런 이

  야기들이구먼. ”

 “ 야... ”

 주현의 말이 좀 비꼬는것처럼 들려서일까. 옆에 있던 김민정이 팔을 한번 툭 치면서 주의를 주기도 했는데, 하지만 주현은 되려 자기말이 더 일리있는 이야기라며 오히려 더 한껏 톤을 높였다.

 “ 놀리는게 아니라...지혜 얘 그 노트에 쓰는 이야기들 봐라. 툭하면 그냥 불치병

  걸린 애인 간호하는 이야기 아니면...뭔가 좀 이루어질수 없는 그런 특별한 관계

  의 남녀. 아니면 소년,소녀 가장이나 결손가정 이야기. 맨날 그런 이야기잖아. 그

  러니 딱 일일연속극 소재로 좋은거지 뭐. ”

 “ 지혜 얜 시인이 되겠다잖아. ”

 노지연과 안은경이 그와같이 끼어들긴 했지만 주현은 자기가 더 지혜를 바로 본것 같다는양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름 열변조가 되어서일까.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것도 아닌데 괜시리 주현의 눈빛이 초롱초롱 강렬히 빛나기까지 했다.

 “ 뭐...시도 소설도 다 문학 장르고 그러다보면 연극 극본도 쓰고 드라마 대본도

  쓰고 그렇게 되는거지. 안 그래, 지혜야. ”

 “ 맞아, 사실 그건 주현이 니 말이 맞아. ”

 “ 거봐라. ”

 자신이 결국 맞는 이야기를 했는데 뭐하러 나무랐냐는듯이 주현이 그와같이 한마디 툭 던졌고 어쨌든 그런대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들이 고마워져서인지 지혜는 살짝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기까지 한다.

 “ 사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어. 나도 사실 한땐...혼자 그런 이상한 이야기

  상상하다 울고...이러는게 정신병 아닌가 고민도 해보고...진짜 병원에 상담이라도

  가볼까 고민도 해 봤는데...어쩌면 이게 내 길일수도 있겠다 그 생각도 가끔 해

  보았어. 주현이 니 말마따나 드라마 작가 그것도 생각 안 해본것은 아닌데...

  여하튼 지금은...시인이 되고싶다는 그 생각이 드라마작가보단 좀 앞서있다는

  이야기야. ”

 “ 그래 뭐, 니 적성과 취향이 그쪽으로 맞는것 같다 판단하면 그 길을 택하는

  거지 뭐. 내가 봐도 잘 판단하고 선택한것 같다. 우리도 너 잘 되길 빌어줄게.

 ”

 그러면서 지혜를 격려라도 하듯 노지연 4총사는 한번씩 그녀를 안아주기까지 했다. 대학입시가 어느덧 한달도 채 안 남은 무렵이니 날도 많이 추워져있을때쯤. 하지만 이지혜와 노지연 사총사는 서로간의 훈훈한 우정을 느끼는 시간이라서인지 그 추위조차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듯 했다.





 지혜는 재수 끝에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국문과에 진학했고, 한편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딱히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이 떠올라지지 않아서였는지 백조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를 몇군데 하기도 했고, 한 대학교 사회교육원의 문예창작 1년 과정을 밟기도 했는데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나이 20대 중반이던 90년대 중반은 특별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방송작가가 한번 되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을 한게 98년 봄의 일이다.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시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자 노지연 4총사중 한 사람인 강주현이 어찌보면 사뭇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어찌보면 나름 예리한 눈빛으로 ‘너 그보다는 연속극 작가가 되어보는것 어떻겠느냐 ?’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주현이 했던 이야기도 지혜의 선택에 어떤 의미에선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친 셈이다.

 하지만 지혜는 교육원 과정 1학기 기초반을 마친뒤엔 드라마반이 아닌 비드라마 부분 전공을 택했다. 그때만해도 지혜 나이도 어느덧 20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접어들때고 그러니 막연히 환상적인 꿈보다는 그래도 현실적인 길을 택한 것이라고나 할까. 드라마 작가의 경우엔 자유업인 반면 그래도 비드라마 작가는 방송사에 예속되어 그래도 꾸준히 급여가 나오는 직업인점을 감안 그쪽의 길을 택한것이다. 그렇게 지혜가 기초반 6개월 과정을 마치고 비드라마 전공을 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강의를 마치고 교육원을 나서는데 뒤에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 이지혜씨 ! ”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자신을 부른것은 교육원 동기생이기도 하고 기초반때부터 함께 수강해온 차준섭이란 수강생이었다. 나이는 아마 지혜보다 두 살정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 준섭이 무슨 이유로 지혜를 부른것인지. 지혜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준섭이 다시 말을 건넨다.

 “ 어디...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세요 ? ”

 “ 뭐...그래야죠. ”

 방송작가 교육원은 낮반과 저녁반 수업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낮반의 경우엔 오후 두시에 강의가 시작 네시를 조금 넘겨 끝나기 때문에 시간이 저녁을 먹거나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엔 좀 애매한 시간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강생들은 강의를 마치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노닥거리거나 차를 마시거나 그러기도 하는데, 그래서일까 준섭이 지혜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넨다.

 “ 별일 없으시면 저랑 차나 한잔 하실래요 ? 오늘 제가 살께요. ”

 “ 저한테요 ? ”

 왜 하필 자신한테 이런 제안을 하는것인지. 지혜 입장에선 의아하기도 하고 다소 당혹스럽기도 한 일이기도 한데, 그런 지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섭의 말은 이어진다.

 “ 뭐 꼭 무슨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요...이렇게 차나 한잔 하며 이야기라도 나

  누면서 친해지기도 하고 그러면 좋은거죠 뭐. 따라오세요. 제가 살께요. ”

 어차피 지혜도 지금 이 시간에 집으로 그냥 들어가긴 뭣해서 딱히 거절할만한 핑계도 없고해서 준섭의 제안에 응했다. 그래서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게 된 두 사람. 준섭은 온화한 눈빛으로 지혜를 바라본다. 살짝 미소띤 얼굴로 말을 건네보는 준섭.

 “ 제 기억엔 아마... ”

 “ ??? ”

 “ 지혜씨 원래 장래희망이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셨던것 같은데...맞나요 ? ”

 “ 네 ? 마...맞아요. 근데 그걸 어떻게. ”

 사실 그 정도의 자기소개는 아마 교육원 수강을 처음 시작할 때 자기소개 시간에 했을법하다. 하지만 그런 자기소개는 아마 기초반때 했을터이고, 그러니 벌써 6개월도 더 지난 일인데다가 기초반의 경우엔 드라마,비드라마로 딱히 전공을 나누지 않고 함께 강의를 듣게되니 수강생만 대략 한 50-60명 정도는 되었을때인데 그 많은 수강생중 한 사람에 불과했을 지혜의 그 말을 어찌 여태까지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좀 이례적인 일이기도 해 지혜가 놀란 눈망울로 말했다.

 “ 하하...뭐 놀라실것은 없어요. 그냥 처음 지혜씨를 보았을때부터 뭔가 창백해 보

  이기도 하고 핏기잃은 인상. 그런면이 좀 눈길이 갔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지혜

  씨가 한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지요. ”

 창백하고 핏기잃은 인상 ? 이런 말은 지혜로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다. 학교 다닐때 말수도 적고 걸핏하면 우는 좀 이상한 아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고 표현력이 특이한 그녀를 국어선생님이 ‘시적 상상력을 가진 아이 같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좀 어두워보이는 면이 있을지언정 창백하고 핏기잃은 인상이란 말은 들어본적이 없는데. 남자인 준섭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좀 황당하고 어이없어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뭇 항변조로 말한다.

 “ 저 건강해요. 이래뵈도 달리기도 제법 하는편이고. ”

 진짜 화가 난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기까지 한 지혜. 살짝 무안해져서 몸을 움츠리기도 하는데 무슨 오해를 했나 싶은지 준섭이 바로 손을 내젓는다.

 “ 하하...오해마세요. 지혜씨를 놀릴 의도는 없었는데...뭔가 오해하신 모양이네

  요. ”

 그 사이 주문한 차가 나오기도 해 지혜는 그것을 한모금 음미해보기도 했고, 그나저나 대체 이 남자가 왜 자신과 이런 자리에서 차나 한잔 하자고 한 것인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려거든 그만 자리를 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헌데 그런 지혜를 준섭은 말없이 바라보는듯 하다 천천히 입을 연다.

 “ 사실...그래서 지혜씨가 좀 걱정이 되어서 보자고 한 거에요. ”

 “ 네 ? ”

 이건 또 무슨소리인가. 아깐 자신이 창백하고 핏기잃은 모습이 처음 교육원 자기소개때부터 인상적이라고 하더니, 그런 자신보고 걱정이 된다니. 생각해보니 지혜가 이전에 슬픈 이야기 같은것을 자주 상상하던 사춘기시절 불치병 걸린 애인이 있는 그런 커플의 이야기를 자주 그려보긴 했었다. 하지만 지혜가 지금 그런 불치병 여주인공은 분명 아닐터. 대체 뭐가 걱정이 된다는 것인지. 지혜는 이 준섭이란 남자가 이제 살짝 불쾌하지기까지 한다.

 “ 이건 비단 지혜씨의 경우만을 두고 하는말은 아니지만요. 교육원에 수강하러 온

  학생들중 그걸 오해하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

 “ 오해...라니요 ? ”

 “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셨죠, 지혜씨 ? ”

 “ 네...뭐 그거야... ”

 그런 생각은 지혜가 대략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본 생각이기도 하고 그래서 대학도 국문과에 지망했던것 아닌가. 다만 고등학교때 ‘그보다 연속극 작가가 되어보는것 어떠냐 ?’는 권유를 하던 친구도 있었고, 실제 대학을 졸업한뒤엔 무엇을 할지 갈피를 못잡고 한 3,4년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권유를 떠올려 방송작가 교육원에 등록하게 되기까지 한 그런 지혜가 아닌가. 하지만 기왕 이렇게 방송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이제 지혜의 나이도 있고 하니 좀 더 현실적인 방도로 드라마 작가보단 비드라마 쪽이 나을것 같다는 생각에 이쪽을 택했던 이지혜. 헌데 그런 자신이 대체 뭘 오해하고 있다는 것인지. 준섭은 무슨 의도인지 좀 기묘한 미소를 머금더니 고개를 잠시 좌우로 흔들어본다. 그리고 말을 이어본다.

 “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런 오해를 하고 있더라구요. 지혜씨도 아마

  그렇게 오해하고 있나본데 방송작가는...문학이 아니에요. ”

 “ 네 ? ”

 순간 이건 또 무슨소리인가 지혜는 당황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해 하기도 하는데 지혜는 마치 친절한 국어선생님이라도 된 양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 지혜씨도 학교 다닐때 국어시간에 문학의 네장르에 대해 들어보셨잖아요. 하지

  만 영화 시나리오나 방송대본 같은것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아요. 방송대본은

  그야말로 방송제작을 위해 필요한 도구거든요. 방송작가 교육원은 그렇게 방송

  제작에 필요한 일꾼을 뽑는것이지 문학지망생들의 새로운 탈출구가 아닌거에요.

 ”

 “ 그래서 지금 뭐...절더러 어쩌란 말인가요. ”

 방송대본은 문학이 아니다. 어쩌면 지혜가 지금껏 깨닫지 못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줘서인지. 순간 지혜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기까지 했다. 자신이 그럼 길을 잘못 택했단 말인가. 어떤 불안감까지 엄습해오기까지 하는데 다만 지혜는 그런 속마음을 내색하고 싶지 않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쓴다. 교육원 가을학기가 시작된지 이미 한달 이상이 지났으니 날씨도 어느덧 쌀쌀해진 11월인데 그래도 식은땀이 날 지경인 지혜. 그런 지혜를 바라보며 준섭의 말이 이어진다.

 “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방송대본을 작성하는데 문학작품을 쓰는데 필요한 그

  런 요소들은 별로 필요가 없어요. 소설이든 수필이든 그건 어쨌든 글로 표현하기

  때문에 문장기법이라던가 문장요소 같은것을 가장 중시하지요. 하지만 드라마 대

  본이나 방송대본은 막말로 그런 문법 같은것은 무시해도돼요. 말씀드렸잖아요. 방

  송대본은 문학이 아니라고. 방송대본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방송제작을 위해 필요

  한 하나의 요소일뿐이에요. ”

 “ ...... ”

 “ 하지만 진짜 오해하지 말아야 할것은 방송대본은 그런 치밀한 문장훈련 없이도

  쓸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그건 방송

  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것이죠. ”

 “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인가요 ? ”

 지혜는 여전히 준섭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무엇보다 불안해진 가슴 한켠을 여전히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채 어찌보면 정말 울기라도 할것같은 그런 얼굴이 되어 그와같이 묻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좀 난감하다는 생각이라도 든것일까. 준섭은 조금전과 엇비슷한 기묘한 미소를 지어보인되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인다. ‘참 세상에 이렇게 딱하고 세상 모르는 아가씨가 있을수가 있나. 준섭의 몸짓과 표정은 마치 그런말을 하는듯 했다.

 “ 한번 이렇게 물어볼께요 지혜씨. ”

 방송대본은 문학과 다르다. 준섭의 이와같은 말은 지혜가 이전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준 느낌이라 살짝 충격이기도 했고 또 한켠으론 불안해지게 만드는 그런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붙잡아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준섭의 그 진정한 의도를 알수가 없어 지혜는 한편으로는 불쾌해지기도 하고 또 그의 의도가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다. 준섭의 말은 계속된다.

 “ 요즘 이른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은거 있죠 ? 예능프로 같은데서 많이 하는

  ...그러니까 개그맨이라던가 MC,방송인 그런 다수의 진행자들이 나와 프로그램

  진행하고 이런저런 코너를 진행하기도 하는 그런 프로그램 말이에요. ”

 요즘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버라이어티 예능. 그런식의 프로가 예능프로의 하나의 트렌드이자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한게 대략 90년대 중반부터다. 그러니 90년대 후반인 지금은 그런류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한창 예능프로의 새로운 대세를 구축하며 붐을 이룰 시절. 그래서 바로 그 점을 염두에두며 준섭이 말을 건넨다.

 “ 만약 지혜씨가 그런 예능프로 진행을 맡게되었는데, 예능피디가 다음에 할 우리

  프로그램 아이디어 한 열 개씩만 짜와봐요. 그런다면 지혜씨 그런일을 할 수 있

  겠어요 ? ”

 준섭의 질문을 언뜻 잘못 알아들은것 같기도 하고 예능프로 아이디어 같은것을 지혜가 짤수있겠느냐는식의 물음은 실제 지혜는 이전까진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의 일이기 때문에 순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혜의 그 속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준섭은 사뭇 자상하게 타이르는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 그것봐요. 지혜씨는 그런쪽으로의 아이디어나 아이템을 짜낸다던가 그런쪽의

  재능은 없는 사람이잖아요. 안 그래요 ? ”

 “ ...... ”

 “ 또 가령 신예작가...방송가에선 보통 막내작가라고도 불리지만 그런 입장이 되

  었을때...그런 막내작가들은 보통 섭외전화도 해야하고 또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잔심부름도 해야하고 그러는데...지혜씨가 그런일 할 수 있겠냐구요 ? ”

 이전까진 잘 몰랐던 방송프로그램 구성작가(비 드라마)와 관련된 새로운 세상을 알게되는 셈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지혜로선 적잖이 당황스러워지는데, 준섭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진짜 비드라마 구성작가가 해야하는 그런일인지는 바로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막상 이런말을 들으니 ‘내가 길을 잘못 들은것인가 ?’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준섭의 말은 계속된다.

 “ 한마디로 비드라마 구성작가는 드라마 작가...이런일과는 또 달라요. 그렇게 출

  연자 섭외나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해야하고...또 무엇보다 비드라마 구성작가에

  겐 번득이는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짜낼수 있는 재주가 필요해요. 그런데 지혜씨

  는 과연 그런것을 해낼수 있는 재능이 있냐 이거죠. ”

 지혜는 할말을 잃고 있었다. 대략 중학교때부터 혼자 슬픈 이야기 같은것을 상상하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올라 혼자 장시간을 울기도 하고, 또는 사람이나 사물을 보며 특이한 표현을 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 때문에 주변에선 혹시 ‘정신에 좀 문제가 있는 아이 아닌가 ?’ 하는 수근거림이나 놀림을 받기도 했고, 하지만 노지연 4총사처럼 그런 지혜를 따스히 감싸준 그런 고마운 친구들이 있기도 하다. 또한 중학교때 국어선생님 같은분은 ‘지혜는 시적 상상력을 타고난 아이인것 같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고, 자신도 실제 가끔 혼자 상상한 이야기들을 글로 적기까지 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시인이나 작가같은 것이 되어볼까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대략 고 2-3학년 무렵부턴 구체적으로 ‘시인이 되고싶다’는 꿈을 꾸기도 해 국문과에 지원하기도 했던 그런 지혜. 그리고 그런 지혜를 노지연 4총사중 강주현이란 친구는 ‘그러지말고 일일연속극 작가 같은것을 해보면 어떻겠느냐 ?’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름 큰 마음먹고 들어온 ‘방송작가 교육원’이건만 비드라마 구성작가는 지혜가 지금껏 생각해온 그런 일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라는 준섭의 설명을 듣고나니 눈앞이 컴컴해져오기까지 한다. 그럼 대체 자신보고 뭘 어쩌라는것인지. 이대로 방송작가 되는것을 포기라도 하라는것인지. 지혜는 나름 평정심을 되찾은 모습으로 준섭에게 말을 건넨다.

 “ 그럼 저보고 지금 대체 뭘 어쩌라는건가요 ? ”

 준섭은 대꾸가 없는 가운데 지혜의 말이 이어진다.

 “ 저보고 교육원을 그만 두기라도 하라는 말씀이신거에요 ? ”

 “ 하하... ”

 지혜의 말에 답은 없이 다시금 묘한 미소와 함께 실소같은 웃음소리를 흘리기까지 하는 준섭. 그 질문에 시인하는것인지 아닌것인지. 준섭이 가타부타 말이 없어 지혜의 머릿속을 어지럽게까지 만들고 있는데, 한참만에 준섭이 여전히 묘하게 지혜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연다.

 “ 제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두실건가요 ? ”

 “ 예 ? ”

 “ 제가 관두라고 한다고 관둘 용기도 없을것 아니에요. ”

 “ 뭐라구요 ? ”

 지혜와 준섭의 인연은 굳이 말하자면 교육원 동기생이니 교육원 기초반때부터 어느덧 6개월 인연이다. 하지만 교육원 기초반땐 그래도 수강생이 수십명이나 되고 비드라마 전문반이 되어서는 수강생이 대략 한 20명 정도 되긴 했지만, 여하튼 준섭과는 그간 특별한 친분을 맺어온것도 없고 별다른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도 없다. 헌데 그런 준섭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고 있는듯 이런말을 자꾸 입에 담자 지혜는 진짜 기분이 나빠진다. 이 남자 성격에 좀 문제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평상시 별로 친하지도 않던 자신에게 이런말을 하는것은 실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지혜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준섭이 다시 입을 연다.

 “ 전 지혜씨에게 그만두라 마라 그런말을 한적이 없어요. 또 지혜씨 같은분은 주

  위에서 누가 이런거 진작에 포기하라고 해서 포기할 그럴 사람이 아니란것도 알

  고요. ”

 “ 뭐라구요 ? ”

 “ 다만 지혜씨에게 현실을 누군가가 깨우쳐주고 바로보게 해줄 사람이 필요한것

  같아서 그걸 일깨워주고 싶었던것 뿐이에요. 아무리봐도 지혜씨에게 그걸 일깨워

  줄만한 사람이 없는것 같아서요. ”

 지혜는 말없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다. 비드라마 구성작가는 지혜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시나 소설 같은 소위 문학장르의 일과는 성격이 다른것이다. 또 드라마 작가와 비드라마 구성작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그런 충고를 해주는 준섭의 말이 지혜의 머릿속을 여간 어지럽게 하고 있는것이 아니다. 사실 지혜 나름대로는 여하튼 자유업인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드라마 작가 따위로는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긴 힘들것이니 그래도 나름 자기 나이도 어느정도 들었고 (20대 후반) 하니 현실을 생각해서 방송사에 적(籍)을 두고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을수 있는 그런 일을 하자는 생각에 비드라마반을 택했던것인데 그 일은 지혜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일과는 완전히 다른것이라니. 지혜는 지혜 나름대로 현실을 생각하며 한 선택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자신이 더 길을 잘못든것 같다는 준섭의 그야말로 현실을 깨닫게 하는말. 다만 그래서 지금 그만두라는 소리냐는 지혜의 물음에 준섭은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긴 준섭의 말처럼 지혜가 지금 포기하란다고 물러설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한 직장도 잡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했던게 대략 3년이 좀 넘는 시간이 아닌가. 그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두드린곳이 방송작가 교육원이다. 그런데 이대로 여기서 물러난다면 ? 그 다음에 자신이 할수있는 일이 대체 무엇이 있단말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되려 눈앞이 캄캄해지기만 하고 준섭의 말마따나 누가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해서 쉽게 포기할수도 있는 그런 처지에 놓인것이 지금 지혜인것이다. 한참만에 지혜가 다시 준섭에게 묻는다.

 “ 저...그럼 차선생님. ”

 준섭의 나이가 지혜보다 두 살정도 위인것은 알고 있는데, 하지만 이 상황에서 ‘준섭씨’라던가 이런 호칭도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만 ‘차선생님’이라며 극존칭을 써보기까지 했다. 여전히 야릇한 미소로 지혜를 바라보는 준섭에게 지혜는 다시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 그럼 저...작사가를 해보는건 어때요 ? ”

 “ 작사가요 ? ”

 지혜의 말이 좀 엉뚱하게 들리기라도 했던것인지 준섭이 약간 당혹스러워서 그녀에게 되물었다. 지혜가 그런 준섭에게 사뭇 안타까우면서도 절박한 어조로 말한다.

 “ 저...어쨌든...어릴때부터 시 같은것도 많이 써봤고...국어선생님한테 시적 상상력

  이 있는 아이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러니...노래가사 같은거...노랫말 같은거 지어

  볼수도 있지 않을까요 ? 노랫말도 결국 시와 같은거잖아요. 그러니 차라리 작사

  가 같은걸 해보는건. ”

 “ 하하하하 !!! ”

 그러자 갑자기 준섭이 박장대소를 한다. 그 호쾌한 웃음소리에 그만 그리 크지않은 커피숍안이 온통 떠나갈것 같은 느낌마저 들고 안의 다른 손님이며 종업원들이 순간 놀라 웃음소리가 터져나온쪽을 쳐다보기까지 한다. 한편 지혜는 지혜대로 절박한 마음에 다시금 준섭에게 말한다.

 “ 저 어쨌든 시쓰는 재주는 있으니까...그 재주 이용해서 한번 작사가 같은거라도

  해보려고요. 노랫말 짓는일 그 정도는 해볼수 있지 않아요 ? 그럼 작사가 해보는

  건 어때요 선생님 ? 차라리 그거라도 해보려구요. ”

 “ 하하하...작사가라...아하하하...작사가... ”

 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렇게 연신 떠나가라 호쾌한 웃음소리만 연신 터트리며 ‘작사가’라는 말만 입에 담고있는 준섭. 아무래도 지혜를 비웃는 느낌이라 그녀는 더더욱 자존심도 상하고 더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어쨌든 시 정도는 쓰는 재주가 있으니 그걸 바탕으로 노래가사 같은걸 짓는 작사가는 해볼수도 있지 않겠느냐 ?’ 고 물은 지혜에게 준섭은 아무런 대꾸없이 그렇게 연신 해괴한 웃음소리만 터트리고 지혜는 그야말로 울상이 되어버린다.



-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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