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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황정음 (10) 1세대 걸그룹 팬픽




                                   부제 : 13인의 탈북자 이야기





 북경 기차역에서 최수정을 만나 현우는 이종혁 4총사와 함께 천진항으로 향했다. 수정이 구한 한국 인천항으로 가는 여객선 표 네장을 이종혁등 네명에게 양도하는 형식으로 해서 이들을 배에 태우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타야할 배가 도착한 시간. 이종혁 4총사와는 이제 잠시나마 작별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현우는 묘하게 아랫도리가 저려왔다. 어떤 성적흥분 같은것을 의미하는것은 아니고 현우가 어릴때부터 어떤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용솟음칠때, 또는 어떤이와의 이별같은 기약없는 약속을 할때 종종 느끼던 미묘한 감정이다. 바로 그런 감정을 이제 이종혁 4총사를 배에 태워야 하는 상황에서 현우는 다시금 느끼고 있는것이다.

 “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하면 바로 인천항쪽 관계자들에게 너희들이 탈북자라

  고 사실대로 밝혀라. 그럼 아마 그곳에서 너희를 관계당국에 인계해줄거야. ”

 공은아 3자매의 경우처럼 이종혁등도 일단 한국에 도착하게 되면 ‘탈북자’란 신분을 밝혀 정보기관에 인계될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것이다. 적어도 탈북자가 한국땅에 입국해 들어왔을 경우 그런식의 신병처리 매뉴얼 정도는 있을것이란게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현우나 수정 정도면 능히 짐작할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현우는 가슴한켠의 불안함을 떨쳐낼수가 없었다. 이미 베트남에서 국군포로 2세 가족 세명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열명은 모두 쫒아낸 그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닌가. 혹여 그런 경우처럼 인천항에서도 혹 탈북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쫒아내는 일이 벌어지면 그땐 어찌하는가. 그것을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절대 그런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이 순간만큼은 정말 내 조국 대한민국 정부의 양심을 믿는수밖에 없었다. 정말 만의하나 그런일이 벌어져서는 안되겠지만 현우는 아무래도 한가닥 불안감을 떨칠수가 없어 이종혁등에게 자신의 집 연락처를 가르쳐주며 이와같이 말했다.

 “ 한국땅에 도착해서 아마 정보기관에 인계되면...거기서 아마 일정한 조사기간을

  거치게 될거야. (* 아직 ‘하나원’은 만들어지기 전임) 그럼 아마...설마 그 시설에서

  외부에 전화할수 있는 방법은 있겠지. 아무렴 그런곳에 전화기 한 대가 없을까.

  공중전화가 있을수도 있고 여의치않거든 사무실 전화라도 몰래 사용해서 우리

  집으로 전화해. 그래서... ”

 “ ...... ”

 “ 우리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실것 같은데 그럼 이렇게 말해라. ‘정현우 동무에게

  전해주십시오. 그해 남조선의 겨울은 그 어느해보다 따뜻했다‘고요. 그럼 그것을

  너희 네명이 무사히 한국땅에 도착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마. ”

 일종의 암호인 셈이었다. 현우는 중국에 와서도 혹 한국의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전화는 이따금씩 하는중이니, 만약 이종혁등이 한국에 도착했다는 의미를 그렇게 자신의 한국 집에 전화로 알리면 현우가 전화해서 현우의 부모님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받을수 있을터이니 그렇게 암호를 정하기로 한것이다. 꽤 오래전 봤던 어떤 영화였던가. 이산가족을 소재로 만든 영화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영화 제목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였다. 그 영화제목에서 착안 이종혁 4총사가 무사히 한국땅에 도착했다는 암호를 이렇게 정한것이다. ‘정현우 동무에게 전해주십시오. 그해 남조선의 겨울은 그 어느해보다 따뜻했다.’고.

 “ 자유대한이 너희들을 환영해줄것이다. ”

 현우는 두 팔을 번쩍 치켜올린뒤 그 양팔로 이종혁 4총사를 돌아가며 한번씩 안아보았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역시 70년대던가 80년대에 만들어진 어떤 반공영화인가 반공 드라마 한 장면일것이다. 내용은 6.25때 북에 두고온 딸이 있는 실향민이 어느 제3국에서 우연히 그 딸을 만나게 되는것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 딸에게 남한으로의 귀순을 설득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유대한이 너를 따뜻이 환영해줄것’이라고. 현우는 바로 그 장면을 이렇게 이종혁 4총사를 한번씩 안아보며 패러디하고 있는것이다. ‘자유대한이 너희들을 환영해줄것이다’라고.

 이제 곧 배를 타야함으로 너무 시간을 지체해선 안된다. 이종혁 4총사 역시 신분을 위장한채 배를 타야하는것이기 때문에 너무 일찍타도 곤란하지만 너무 늦어도 역시 곤란해질수 있는 일이 생기는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들이 타야할 여객선의 승객들이 하나하나 배를 타기 시작할 때 이종혁 4총사도 함께 배안으로 들여보냈다. 이들 넷이 무사히 배를 타는것과 그리고 이종혁 4총사가 탄 배가 항구를 서서히 떠나는것까지를 끝까지 지켜본뒤 정현우와 최수정은 발걸음을 돌렸다.

 “ 최수정 간사. ”

 이제 천진항에 단 둘만 남게 된 이들. 혹시나 모를 돌발상황이 있을수도 있기에 현우와 수정은 항구 근처에서 좀 더 시간을 지체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찌되었거나 이제 공은아 3자매를 비행기로 들여보낸데 이어 이종혁 4총사까지 모두 배에 태웠으니 애초에 연변에 은신해있던 13인의 탈북자중 베트남에서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진 세명과 운남성 아지트에서 도주한 두명을 제외한 나며지 여덟명중 일곱명을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와 배에 실려 보낸것이다. 공은아 3자매는 이미 무사히 한국에 들어갔음을 이신애 간사가 소식을 전해왔고, 이제 이종혁 4총사가 무사히 인천항에 도착 이들을 정보기관이 받아들여주기만 하면 연변교회 은신처의 13인 탈북자 한국행 추진계획의 대다수는 이제 마무리된것이나 다름없다. 아직 운남성 아지트에 전략간사 이부영과 함께 있는 일곱 살난 아라가 남아있긴 하지만, 아라의 경우도 현우가 따로 생각해둔 방도가 있다고 했다. 다만 그것을 떠나기전에 이부영 간사에겐 귀띰해주고 왔지만, 아직 그것을 최수정은 모르는 상태다. 다만 지금 그런 이야기까지 나눌만한 생각은 하고 있지 못한듯 약간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두사람 사이에 오가고 있다.

 “ 사실 이번에 13인의 탈북자 한국행을 도우면서 여러 가지로 느낀게 많아요. ”

 “ 어떤걸 느끼셨는데요 현우형제 ? ”

 사실 현우는 원래 자신이 문예창작 강의를 듣던 ‘한겨레 문예대학’ 소설반 강의를 맡고있는 공현주 작가의 추천을 받아 나눔선교회를 찾은것이 아닌가. 그리고 뜻밖에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연변에 은신중인 13인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하니 그 르뽀동행기 작가가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그 임무를 부여받고 연변까지 와서 탈북자들과 함께하게 되었던 정현우. 처음 이부영 간사의 계책대로 베트남 한국 대사관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일이 일사천리로 잘 해결될줄만 알았는데, 베트남 대사관에서 뜻밖에도 국군포로 2세 가족 세명만 망명신청을 받아주고 나머지는 전부 내보내버리는 사태에 직면 이렇게 먼길을 돌아서 나머지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들여보내게된 이들. 현우는 현우 나름대로 이 일련의 과정을 함께하게 되면서 생각한게 많은듯 했다. 다만 현우의 경우 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할수 있는것은 현우는 어쨌든 원래 탈북자와 북한문제에 관심이 좀 많은 사람이었다. 이현철 간사도 처음에 말하지 않았던가. ‘혹시 북한선교나 탈북자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개념인 사람이 왔으면 어쩌나 ?’ 하는 생각에 처음 정현우를 보았을때는 막막한 느낌이었다고. 하지만 뜻밖에 탈북자 문제에 대해선 원래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라고 하니 이현철 간사는 거기에서 희망의 빛을 본듯했다. 그리고 그 정현우가 지난 석달간 이와같이 13인의 탈북자와 함께 동행해 왔던것이다.





 이종혁 4총사가 타고 출발한 인천항행 한국 여객선에서 특별한 돌발상황이 발생한것 같지는 않자 현우와 수정은 사실상 천진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하고 이쯤에서 천진항에선 완전히 철수했다. 그리고 시내의 한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이야 다 엄연한 한국인 신분이니 다른 탈북자들처럼 움직이거나 활동하는데 제약을 받을일이 없다. 혹 식당이나 찻집 종업원들이 ‘어떻게해서 오신 분이냐 ?’고 물으면 중국에 공부하러온 한국학생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이제 공은아 3자매에 이어 이종혁 4총사까지 모두 한국땅으로 들여보내는 일을 마무리 지은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현우와 수정은 많이 홀가분해져 있는 마음상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것이다.

 “ 수정자매...사실 전 말이에요. ”

 아까전에 그러잖아도 이번 13인의 탈북자를 동행취재하면서 느낀게 많다고 말한바 있는 현우. 그 부분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 저도 물론 탈북자 문제에 몇 년전부터 관심을 갖고 언론이나 방송을 지켜본 그

  런 사람이지만 전 탈북자나 귀순자가 망명신청을 하면 대개 한국정부의 도움을

  받거나 안기부(* 아직 ‘국정원’으로 명칭이 바뀌기 전. 98년 1월) 의 도움을 받아 한

  국땅으로 들어오게 되는줄만 알았어요. 근데 막상 이렇게 중국으로 와보니 탈북

  자 문제가 한국에서 뉴스를 통해 보는것보다 훨씬 심각하구나, 그리고 이들을 한

  국땅으로 들여보내는 일도 쉽지 않구나 하는점을 몸소 피부로 느끼게 되었어요.

 ”

  “ 근본적으로 중국정부가 탈북자를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탈북자를 불법 월경자

  로 보는게 중국의 공식 입장이거든요. 그러니 우리 정부로선 공연히 중국정부와

  마찰을 빚느니 가급적 침묵하거나 외면하려 드는거죠. ”

 하지만 이른바 고위층 출신의 망명이나 귀순사건은 90년대 중반에 여러차례 있어 그때마다 언론은 마치 북한이 붕괴직전의 위기에라도 몰린양 떠들썩하게 보도하곤 했었고 또 재미교포 친척의 도움을 받은 가족단위 탈북 사건도 몇 번 있었다. 그러다보니 일반인 입장에선 체감적으로 90년대 중반에 굉장히 많은 귀순사건이 있는것처럼 여겨졌지만 실제 현우가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90년대 중반에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 대략 연평균 수십명 정도. 94-97년) 이미 중국땅을 떠도는 탈북자가 수십만으로 추정되는때가 이때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도 안 되는 숫자인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그렇다쳐도 베트남은 사정이 다를줄 알았는데 베트남 대사관조차 단 몇 명의 탈북자 망명신청만 받아주고 나머지는 쫒아냈다는 사실을 알게된 현우의 정신적 충격도 만만치 않았다. 어떻게 탈북자 문제에 한국 정부가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는지. 그것은 현우를 충분히 분개하게 만들고도 남을일이었다.

 “ 그리고 현우형제도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만... ”

 “ ...... ”

 “ 중국땅으로 나온 탈북자들도 실제 한국행을 원하거나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요. 대개는 북한의 식량난 때문에 중국에라도 가서 돈을벌자 이런 목적하에

  탈북한 사람들이거든요. ”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아직(90년대 후반 상황) 대다수의 북한주민들은 남한에 대해서 여전히 북한의 선전대로 ‘헐벗고 굶주린 사회’로만 인식하고 있던 시절이다. 북한주민들이 남한이 더 잘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건 남한 물자라던가 TV영상물등이 북한 장마당에 대량으로 유입되던 2천년대 중반 이후에의 일로 아직은 그때보다는 훨씬 이전의 시점이다. 따라서 이때는 탈북자는 탈북자대로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고, 남한정부는 남한정부대로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 특별히 정보가치가 있는 고위층 망명자나 가족단위 탈북사건이 아닌다음에는 대체로 외면하는 상태고. 그런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그야말로 애매한 처지의 인권 사각지대에 몰린 그런 상태다. 무엇보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겪게된 정현우. 그로인해 생긴 또다른 궁금증이 생겨 그 점을 수정에게 묻는다.

 “ 그래서 선교단체에선 차라리 성경책을 북한으로 들여보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

  게하자.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건가요 ? 탈북자들이 한국행을 원하지 않기 때

  문에 ? ”

 바로 수정이 나눔선교회 이전에 활동하던 B 선교단체가 그런 목적으로 활동하던 단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기 때문에 그와같은 노선차이 때문에 6.25때 무너진 북한교회들을 재건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A 선교단체 출신인 이신애와 여러차례 노선충돌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최수정. 바로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이 다투는 모습도 현우도 이미 몇차례 목격했던바다. 수정은 정곡을 찔린듯한 그런 질문에 순간 당황한듯 하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넨다.

 “ 그럼 현우형제도 북한에 성경책을 들여보내는 방식은 반대한다는 말씀이신건가

  요 ? ”

 “ 아뇨...전 꼭 그렇다기 보담은... ”

 현우는 말없이 중국차 한모금을 음미한뒤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한두마디 말로는 간단하게 표현하기 힘든 어떤 복잡한 심경이 현우의 가슴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지금의 이런 문제들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좋을지, 원래 말주변이 좋은 성격이 아니기도 한 현우로선 보통 고역의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 솔직히 제 생각을 그대로 말씀드리자면...6.25때 무너진 북한교회들을 재건하자

  는 A선교회의 비전도, 북한에 성경책을 들여보내 지하교회를 세우자는 B 선교회

  의 비전도 공허하게 들리긴 마찬가지에요. 저는 그보다... ”

 “ ...... ”

 “ 지금 이곳의 위기에 빠진 탈북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수있는 그런 방도

  가 더 낫지 않을까. 그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요. ”

 “ 현실적인 방법이라면 ? ”

 대체 무슨 생각을 현우가 하고 있는것인지 그에대한 궁금함이 일어 수정이 그와같이 물었다. 하지만 현우도 그러한 구상을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가 않아서인지 바로 대답은 못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그래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 수정자매...전 어쨌든...정히 북한선교에 비전을 품고 기도히고 있는 그런 사람들

  이라면... ”

 “ ...... ”

 “ 여기 중국땅에서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탈북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더 많은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뻗칠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일을 연구하고 추진하

  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겠느냐.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에요. ”

 수정은 별다른 말이 없다. 현우의 생각에 동의하는것인지 아닌지 현우가 남의 마음을 꿰뚫어볼수 있는 독심술이라도 가진 존재가 아닌이상 지금 그녀의 속마음을 가늠한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금 묘한 침묵이 흐르는 두 사람의 사이. 그러다 수정이 화들짝 놀라며 문득 잊어버린것이 있다는듯 현우에게 말한다.

 “ 아,참 그리고 아라. 아라는 이제 어떻게하죠 ? ”

 그렇다. 아직 13인의 탈북자 한국행이 아직 100퍼센트 상황종료가 된 것이 아니다. 13명의 탈북자중 그래도 국군포로 2세 가족 세명은 베트남 한국 대사관에서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졌고, 두명의 성인남성은 운남성 아지트에서 도주해버렸고, 나머지 여덟명중 공은아 3자매는 한국땅의 실향민인 노 장로의 조선족 친척인 것으로 신분을 가장 한국으로 들여보냈고 이종혁 4총사는 한국사람인 최수정이 구매한 여객선 표를 이종혁 4총사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인천항으로 보냈다. 하지만 아직 한 사람 남은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일곱 살 아니 이제 그 아이 역시 그 사이 한 살 더 먹은 그러나 아직은 여덟살 어린아이 김아라다.

 “ 그 아인 지금 이부영 자매와 운남성 아지트에 있을것 아니에요 ? ”

 그렇다. 다만 이종혁 4총사도 모두 이제 한국행 배를 탔고 이종혁과 최수정까지 천진으로 온 상태에서 운남성 아지트엔 나눔선교회 전략간사 이부영과 여덟살 아라 단 둘만이 남아있는 상태일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그 아이도 한국땅으로 들여보내긴 해야할일. 아무리 어린아이기로 매몰차게 그곳에 버려두고 올수야 없는일 아닌가. 하지만 현우는 그 점에 대해 염려말라는듯 수정을 안심시킨다.

 “ 걱정마세요. 그 점은 이미 이부영 자매에게 별도로 부탁한게 있어요. ”

 “ 부탁을 하다니요 ? 어떤 ? ”

 “ 아라는 아라대로 한국땅으로 들여보낼수 있는 다른 계책을 짜낸게 있다구요. 그

  걸 이부영 간사에게 이미 지시해뒀으니 이간사가 제가 지시한대로 일만 잘 처리

  해주면 돼요. ”





 사실 탈북자들의 한국행 조를 짜면서 가장 난항을 겪었던게 아라의 문제였다. 공은아 3자매의 경우엔 원래 자매간이고 이종혁 4총사 역시 북한 청진에서부터 함께 자라며 공부한 친구지간이라니 이들은 그렇게 묶으면 그만인것이었다. 헌데 아라의 경우 어느쪽 조에 신분위장이 무난할지 그게 참 난감한 일이었다. 원래 34세 정모와 45세 허모가 도주하기 전에는 아라를 이 둘중 한 사람의 딸이나 조카로 위장 이 셋을 한조로 묶어 한국으로 들여보낼 생각이었다. 헌데 이 둘이 아지트에서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아라 문제 처리가 더 꼬여진 상황이었다.

 일단 공은아 3자매의 경우 이미 이들을 공희갑 장로의 연변에 정착해있는 사촌동생의 손녀로 신분위장을 한판에 이들보다 스무살이나 어린 아라를 또 다른 가족으로 신분위장을 한다는것이 너무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어느덧 스무살 성인이 된 이종혁 4총사의 경우도 7-8세 정도의 나이어린 여자를 갖다 붙이기엔 아무래도 어색한 조합이 될수밖에 없었다. 한국사람의 조선족 친척으로 신분위장을 해 들여보내든 배를 통해 들여보내든 일단 그 안에서 신분이 탄로나지 않게하기 위해선 이들을 한조로 묶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는 무난한 조합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래야 남들의 의심을 사지 않을것 아닌가. 따라서 여덟살난 아라는 공은아 3자매에게 붙이기도 이종혁 4총사에게 붙이기도 애매한 그런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또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다름아닌 정현우였다. 현우가 아직 운남성 아지트에 머물러 있을때 이부영 간사를 하루는 은밀히 불렀다. 이때는 이미 공은아 3자매는 이신애의 안내를 받아 함께 출발한 상황이었고 최수정은 천진항에 배표를 구하러 나가있는 상태. 만약 이종혁 사총사마저 현우와 함께 이곳을 떠나면 이부영과 아라 두 사람만 남게될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정현우가 한가지 꾀를 낸것이다.

 “ 이부영자매, 제 생각에는 말이에요. ”

 “ 무슨 좋은 방도가 있나요, 현우형제 ? ”

 “ 아라를 부영자매 딸로 하는거 어때요 ? ”

 “ 예 ? ”

 순간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어 당황하는 부영에게 현우는 환한 미소를 띠어보이며 안심하라는듯 말했다.

 “ 제 말은...이부영자매와 아라를 여권을 잃어버린 한국 관광객으로 신분을 위장하

  자는거죠. 그러니까 부영자매가 여덟살난 딸 아라와 함께 중국관광을 왔다가 여

  권을 분실한거에요. 그렇게 상황위장을 해서 부영자매가 아라와 함게 한국 대사

  관으로 들어가보는게 어떻겠느냐는거죠. ”

 “ 가능...할까요 ? ”

 “ 설마 불가능하지야 않겠죠. 탈북자라면 모를까 여권을 잃어버린 한국사람이라

  는데 설마 대사관에서 모른체 하겠어요. 그러니 부영자매가 아라를 데리고 그렇

  게 신분위장을 해서 북경 대사관으로 들어가보라는거죠. 딸과 함께 중국관광을

  왔는데 여권을 분실했다. 그렇게해서 도움을 청해보자는거죠. ”

 듣고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아이디어인것 같아서 부영이 바로 수긍을 했다. 졸지에 아직 나이 20대 중반의 미혼의 부영이 여덟살난 아이가 있는 애엄마 노릇을 해야할 판이다. 하지만 한명의 탈북자라도 그것도 아직 나이어린 여덟살난 아라를 구해야 하는 일이기에 부영은 바로 그 일을 감수하기로 했다. 무슨 부영보고 앞으로 계속 애엄마 노릇을 하라는 소리도 아니고, 일단 한국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아라 역시 탈북자임을 밝히고 정보당국에 인계만 하면 그만인일이다. 결국 아라문제는 그와같이 해결을 보기로 하고 현우는 일단 이종혁 4총사와 함께 먼저 북경으로 출발했던것이다.

 “ 이곳 상황이 완료되면 그 다음에 부영자매보고 아라와 함께 북경으로 오라고

  했어요. 조만간 운남성으로 다시 전화하면 부영자매가 아라를 데리고 이리로 오

  게될거에요. ”

 “ 그러니까 부영자매가 아라와 함께 북경대사관으로 들어가서 여권을 잃어버린

  한국사람이라고 하고 함께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한다 그 말씀이신가죠 ?

 ”

 “ 네, 맞아요. ”

 근데 이런식으로 하다보니 정현우가 진짜 언제부터인가 사실상 이들의 리더역할을 하고 있는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열명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들여보내는 일중 공은아 3자매의 문제는 이신애가 낸 아이디어였지만 나머지 이종혁 4총사라던가 아라 처리 문제 그리고 조를 짜는 문제까지 모두 정현우가 진두지휘해서 이루어진일 아닌가. 베트남에서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진 국군포로 2세 가족 세명을 제외한 나머지 열명의 2차 은신처가 된 운남성 아지트에서 허모와 정모 2인의 탈북자가 도주하고 난뒤 여덟명의 탈북자만 남은 상황에선 사실상 정현우가 이들의 한국행 문제를 진두지휘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던것이다. 한편 그래서인지 몰라도 현우는 수정을 먼저 한국으로 들여보내고 자신은 며칠 더 이곳에 남기로 했다. 이종혁 4총사가 무사히 한국땅에 들어갔는지도 확인을 해야하고 - 현우는 종혁등이 무사히 한국을 들어가 관계당국으로 넘겨졌을시 자신의 집으로 전화해서 그 사실을 암호로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암호가 ‘그 해 남조선의 겨울은 그 어느해보다 따뜻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현우가 다시 집으로 전화해 가족들에게 그와같은 전화가 왔었는지를 확인하면 되는것이니까. 그리고 부영과 아라가 운남성에서 무사히 북경까지 와서 아라와 함께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가 여권을 분실한 한국인이라고 도움을 호소하는것까지 보고 현우는 귀국할 예정이다. - 실제 탈북자들이 10-20명씩 조를 이루어 중국내 한국대사관이라던가 외국 공관으로 진입하는 작전이 추진된게 2001-02년부터의 일이니 98년 1월의 상황에서 이와같은 일은 결코 무리가 가는 설정이 아니다.

 “ 현우형제, 그간 고생 많았어요. ”

 며칠후, 어떤 묘한 아쉬운 감정을 간직한채 수정은 북경공항을 떠났다. 현우는 이종혁등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는지와 아라문제가 해결되었는지까지를 확인하기 위해 좀 더 북경에 머물러있을 예정이다. 사실 원래 계획은 이종혁 4총사를 배에태워 보낸뒤 수정과 현우는 함께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그 일정이 이와같이 변경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정이 살짝 아쉬운 감정을 이와같이 내비치는것이다.

 “ 우리 참 남다른 인연이었던것 같아요. ”

 애초에 현우가 중국에 오게된것은 나눔선교회가 추진하려한 연변교회에 은신중인 13인의 탈북자 르뽀동행 작가 역할을 맡게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와같은 르뽀동행기를 한국에서 세상에 발표하면서 탈북자 문제의 심각성과 한국당국이나 중국이 모두 탈북자 문제를 외면하고 있음을 세상에 고발하고 호소하기 위한 그와같은 목적이었다. 헌데 여하튼 생각보다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더 어려운 난항에 부딪히면서 현우는 이신애,최수정등 나눔선교회 간사들과 좀 더 오랜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던것이다. 그동안의 희노애락이 여러 가지 감정으로 교차되어서인지 수정은 눈에 눈물까지 고이고 있다.

 “ 우리...한국에 들어가서 다시 만날 수 있는거죠 ? ”

 공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느냐는 의미인지 사적인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정이 그렇게 물었고 현우가 거기에 이와같이 화답했다.

 “ 어차피 나눔선교회 사무실은 저도 한번 다시 찾아가봐야 할것 같으니 그때 다

  시 만나게 되겠죠 뭐. 그러니 그때 다시봐요 수정자매. 그간 참...의미있는 시간

  어었던것 같아요 제게도. ”

 ‘즐거웠다’던가 ‘좋은 시간이었다’던가 하는식의 의미의 말은 이 상황에서 맞지 않는것 같고 그래서 현우는 수정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이 순간에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수정이 살짝 그 의미를 곱씹으면서 이제 두 사람은 북경공항에서 작별을 고했다.

 “ 한국에서 다시봐요 정현우 형제 !!! ”

 수정이 그렇게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그 한 사흘후쯤 현우는 자기집으로 전화를 해서 ‘정현우에게 그해 남조선의 겨울은 어느해 겨울보다 따뜻했다’고 전해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는 소식을 전해받았다. 이것으로 이종혁 4총사가 무사히 한국땅에 도착한것도 확인을 한 것이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대성공사’엔 공중전화가 없었고, 외부로 연락할 길이 쉽지 않아서 이종혁이 밤에 몰래 사무실로 들어가 현우네 집으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여하튼 그렇게 네 사람의 한국행도 무사히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며칠후엔 이부영이 아라를 데리고 북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아라를 데리고 한국 대사관으로 들어왔다. ‘한국인 관광객인데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말을하자 경비병은 아무런 의심없이 부영과 아라를 들여보내주었다.

 “ 아니, 아가씨...아니 아주머니 어쩌다가 여권을 잃어버리셨는데요 ? ”

 여덟살난 어린아이를 ‘자기 딸’이라고 하니 일단 ‘아가씨’는 아닌듯 하고 하지만 대충 봐도 한 20대 중반 정도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여성에게 그만한 딸이 있다는게 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사관 직원이 그렇게 물었다.

 “ 그게 그냥...중국관광지에서...호기심삼아 중국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아휴

  저 중국술이 그렇게 독한건줄 진짜 몰랐어요. 그래서 그걸 두어잔 먹고 관광은

  관광대로 하고싶어 취한 상태로 돌아다니다 그만 곯아떨어졌어요. 그런데 정신

  을 차리고보니 여권이 든 가방이고 뭐고 전부 없어지고...다 도난당하고 없지뭐

  에요. ”

 “ 저런...아주머니 조심하셔야죠. 중국은 한국하고 달라서 치안상황이 많이 불안해

  요. 그런데 그렇게 허술하게 다니시다니. 아주머니 중국 처음 와보시는거에요 ?

  그리고 중국술 굉장히 독해요. 그런데 사전 그런 정보 하나 알아보지도 않고 저

  런 어린딸과 중국관광을 오시다니. ”

 “ 근데...대체 어디서 잃어버린거에요 ? OO 지역이에요 ? ”

 무슨 유도심문이라도 되는지 대사관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그렇게 물어보았고, 부영은 덕분에 행여 들통나지 않을까싶어 진땀을 흘렸다. 사실 부영도 그동안 중국은 여러번 와봤지만 북경에서 관광을 해본 경험은 없다. 대개는 연변교회 상황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의 방문 아니었던가. 그래서 여권을 잃어버린 경위와 정확한 장소를 거듭 묻는 대사관 직원의 물음에 한동안 진땀을 뺐다. 여하튼 한국인임이 확인이 되었고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거듭 주장하는 부영과 그녀의 딸이라는 두 사람을 위한 여행증이 일시적으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부영의 주민등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거듭 의심이 간다는듯 대사관 직원이 이와같이 묻기도 했다.

 “ 아니, 근데 대체 몇 살때 애를 낳았길래 애가 벌써 여덟살인거에요 ? ”

 이부영 간사가 1973년생이란것은 주민등록번호 확인 과정에서 바로 알게 되었을것이고 98년 현재 만으로 25세인 그녀에게 여덟살 난 딸이 있다는게 좀 납득이 안 가는 상황 아닌가. 부영은 순간 아라의 나이를 한두살 정도 낮출것을 공연히 사실대로 말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었다. 여하튼 부영이 거듭 아라를 자기 딸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대사관은 결국 딸(?) 아라까지 여행허가증을 발급해주었고 그 두 개의 여행증으로 부영은 아라와 함께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올수 있게된 것이다.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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