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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황정음 (7) 1세대 걸그룹 팬픽




                                   부제 : 13인의 탈북자 이야기






 “ 제가 한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본게 있긴 해요. ”

 13인의 탈북자는 이중 국군포로 가족 3명(* 임산부와 10세 소년 포함) 의 망명신청은 그나마 베트남 대사관에서 받아들여져 현재는 열명이 남은 상태. 하지만 여하튼 이제 이들을 어찌할것인지가 큰일 아닌가. 이들의 대다수도 그저 선교회 관계자들의 말대로 베트남 대사관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만사 형통이 될것으로만 생각했다가 속절없이 쫒겨나버려 그로인한 정신적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현우와 다른 선교회 간사들은 이들 10인의 탈북자들의 충격을 달래는데도 적잖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리고 이들 열명의 문제를 어찌 해야할것인지 이제 그 문제를 의논해야만 했다. 바로 그러한 회의자리에서 총무간사 이신애가 나름 좋은 방안이 있기라도 한듯 이야기를 꺼냈다.

 “ 지금 남한의 교회에는 6.25때 월남한 실향민 어르신들이 많이 계세요. 대개는

  어느덧 연세 70,80이 넘으셔서 어느덧 머리도 희끗희끗해져가고 갈수록 고령이

  되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며 그리고 북에 두고온 가

  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계신 분들이시죠. 제가 이전

  에 활동하던 A선교회를 후원하는 교회에도 그런 연세드신 실향민 장로님,권사

  님들이 많이 계셨고요. ”

 열명의 탈북자 문제를 어찌할것인지를 의논해야 하는데 난데없이 웬 실향민 이야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어 재무간사 최수정이 살짝 옆구리를 찌르며 제지하려하기까지 했는데, 하지만 신애는 그녀대로 자신의 방안이 괜찮을 것이란 생각에서인지 좀 더 들어보라는듯 목소리를 높였다.

 “ 제가 알기로는 미국이나 카나다에서 친척방문을 목적으로 한국의 친척들에게 초

  청장을 보내면 그 대상자는 미국이나 카나다에 갈수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리고

  그건 아마 한국과 중국 사이에도 그건 마찬가지일거에요. ”

 “ ??? ”

 “ 그러니까 제 생각엔...6.25때 월남한 실향민 장로님이나 권사님을 잘 설득...한번

  그분들의 친척인양 신분을 위장시켜 한국으로 들여보내는게 어떻겠느냐는거죠.

  그러니까 제 말은...북한의 친척이 아닌 조선족 친척이 되는것이죠. 그렇게 한번

  실향민 어르신을 잘 설득해봐서... ”

 신애의 말인즉슨 6.25때 월남한 북한에 가족을 두고온 실향민의 친척인 조선족으로 위장해서 한국으로 들여보내자는 것이다. 6.25 이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시대,구한말까지 포함하면 남북한은 물론 간도지역까지 포함해 워낙 복잡한 가정사들이 적지 않으니, 조선족 친척으로 신분을 위장시켜 친척방문 목적으로 한국땅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하자. 그리고 들어와서 남한에서 안기부 (* 아직은 ‘국정원’으로 명칭이 바뀌기 전) 에 연락 탈북자임을 사실대로 밝히면 될것 아니냐는게 이신애의 생각이다. 하지만 말은 그럴듯하게 들려도 실행에 옮기는것은 쉬운일이 아닐것이다. 대체 어떤 실향민을 만나 어떤 설득을 해서 이들 탈북자들을 조선족 친척으로 신분을 위장시켜 들여보낸단 말인가. 게다가 그것도 대뜸 생판 모르는 실향민이라도 찾아가 “ 여보시오 !!! 영감님도 북에 두고온 이산가족이 있지않소 ? 그러니 그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이라도 씻는 뜻에서 이들 탈북자들 친척이라고 해서 들여보내게 해주시오. ” 이렇게라도 말하란 말인가. 현우도 다른 간사들도 신애의 제안이 어찌보면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무슨 동화에나 나올법한 너무 환상적인 이야기로 들려 일단 반응은 좋지 못했다. 현우조차도 퉁명스럽게 이렇게 내뱉었다.

 “ 그럴바엔 차라리 밀항선을 태우는게 낫겠네요. 어차피 조선족으로 신분위장을

  계속 할거면 남한의 실향민 친척으로 위장하든 밀항선을 태워 보내든 다 똑같은

  것 아니에요 ? ”

 실제 밀항선을 타거나 자기네들끼리 소형 목선이라도 만들어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의 입국 사례가 90년대 중반에도 종종 있었던것을 현우가 알고 있었다. 현우도 여하튼 그 이전부터 북한에서 온 귀순자에 관련한 기사는 대체로 관심을 갖고 꼼꼼이 살펴보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밀항선을 태우든 무엇을 하든 결국 중요한 문제는 비용 문제일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들 열명의 탈북자를 보다 안전하게 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한국땅으로 들여보낼수 있단말인가. 지금 나눔선교회 간사들과 정현우가 하고 있는 고민은 바로 그런 문제였다.

 “ 밀항선을 타느니 어쨌든 비행기를 타고 떳떳하게 입국하는게 더 났죠. 어쨌든

  밀항선보단 훨씬 빠르고 안전한 길이잖아요 ? ”

 신애가 거듭 그렇게 다른 간사들을 설득하려 들었다. 하지만 다른 간사들도 신애의 방식이 너무 막연하고 환상적으로 들려서인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고 열명이다. 혹 한두명 많게는 한 서너명 정도의 선이라면 남한의 실향민 친척이라고 하든 밀항선을 태우든 그렇게 신분을 속여서 입국 시키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일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열명이나 되는 탈북자들 - 대체 어떤 실향민이 그것도 연변에 열명이나 되는 조선족 친척을 두고있단 말인가 - 을 그런식으로 한국으로 들여보내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닐것이다.

 “ 밀항선을 태우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재로선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거에요.

 ”

 현우는 사실상 이들을 밀항선을 태우는쪽으로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다. 현우가 생각한 방식은 우선 자신들이 한국으로 가는 여객선 표를 미리 구입한뒤 이 표를 탈북자들에게 일괄 양도해서 그 배에 이들을 태워 들여보내자는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 자리에 있는 한국인은 나눔선교회 간사인 최수정,이신애,이부영. 정현우까지 포함을 시켜도 네명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 억지스럽게 현재 연변에 있는 목사 내외와 운남성 아지트를 제공해준 한국인 사업가의 표까지 산다고 해도 열명과는 숫자가 맞지 않는다. 다만 이런식으로 하다보니 그럭저럭 이들을 한국에 들여보낼수 있는 방식이 두어가지는 나온셈이다. 그러자 이부영 간사가 문득 괜찮은 절충안이 떠올랐다는듯 말했다.

 “ 저기, 그럼 이렇게 해요. 조를 나눠요. 그게 좋겠어요. ”

 “ 웬 조 ? ”

 이건 또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현우는 물론 수정,신애까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던 이 유행어를 거의 동시에 입에 담으며 어리둥절하게 이부영 간사를 바라보았다. 헌데 부영은 그녀대로 괜찮은 방법이라는듯 사뭇 흥분이 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 제가 가만 생각해보니...실향민 어르신의 친척이라고 하는것도...여객선 표를 저

  분들한테 양도해서 배안으로 들여보내는것도 다 괜찮은 방법이에요. 그러니까...

  조를 두세개 정도로 나눠서 비행기조, 여객선조 그렇게 둘셋으로 나눠 들여보내

  면 그것도 괜찮을 방법인것 같아요. ”

 이들을 각기 한국인 여행객이거나 한국인 선교회 간사들의 친척,친지인양 3-4인씩 조를 짜는 방식은 이미 연변교회에서 목욕을 시킬때나 베트남으로 들여보내서 택시를 태울때 다 해봤던 방식이다. 따라서 이들을 가족이나 친지단위로 묵는 방식은 이미 이들에겐 익숙해져 있는 방법이다. 어느덧 이부영이 노트를 가져와 이들을 조별로 묵는 방식을 제안했다.

 “ 일단...이종혁등 이들 네 친구가...같은 청진출신이고 그곳에서부터 친구였다고

  하니까 이들을 한조로 묶어요. 그리고 공은아 3자매를 또다른 한조... ”

 대략 그렇게 세 개의 조가 나뉘어졌더. 한조는 이종혁 4총사, 또 한조는 공은아 3자매 그리고 나머지가 34세 정모와 45세 허모 그리고 일곱 살 아라가 되었다. 이런식으로 조를 나눠 실향민의 친척이라고 해서 초청장 발송 형식으로 한국으로 들여보내든 여객선을 태우든 이렇게 하자는것이 이부영 간사의 생각이었다. 듣고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안이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사 다시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는듯한 생각에 옅은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나머지 열명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들여보낼수 있는 방도가 보이긴 한것이기에 현우와 선교회 간사들도 어느정도는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실향민의 친척인양 신분을 위조하든 아니면 밀항선이나 여객선에 태워보내든 여하튼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굳이 밀항선을 택할양이면 선교회가 굳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설필요가 있기는 한 것인지 그걸 생각해보니 좀 허무개그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실제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된 탈북자들이 종종 밀항선을 타거나 아예 손수 목선을 개조하기도 해서 한국까지 들어오는 사례는 90년대 중반에도 이미 몇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내 한국 대사관은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 탈북자의 망명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베트남에서의 망명신청마저 좌절된 상황인지라 이런 탈법,비법적인 방법을 쓸수밖에 없는 현실이 현우도 선교회 간사들도 그저 착잡하기만 했다. 그나저나 신애의 경우엔 어쩌다 실향민의 친척인양 신분을 위조 초청장을 발송해서 한국으로 들여보내자는 발상을 하게된 것일까. 그 부분에 대한 사연을 신애는 재무간사인 최수정에게 별도로 토로했다.

 “ 실은 공희갑 장로님이라고 저희 아버님이랑 20년 넘게 교류해오신 분이 계세

  요. 연세는 저희 아버님보다 열 살이상 많으신 분이시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저

  희 아버님을 존경해오고 따라주신 그런분이죠. ”

 이신애의 아버지는 목사님이라고 했다. 그런 신분이라면 기독교인이 더욱이 장로쯤 되는 직분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자신보다 어리거나 젊어도 존중해드려야 하는것은 당연한 일. 어쨌든 그런 장로와 20년 넘게 신애 아버지가 교류해 왔다는 이야기인데 그 공희갑 장로라는 사람에 대한 신애의 이야기가 좀 더 이어졌다.

 “ 짐작하셨겠지만 그분도 실향민이세요. 6.25때 공산당 핍박을 피해 홀홀단신 월

  남하신 분이신데...평생을 북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살아

  오신 그런분이시죠. ”

 6.25때 월남한 실향민으로 북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평생을 살아온 노인이 어디 한둘일까. 그야말로 길거리에 지나가는 노인 두세명중 한명꼴로 만나보면 아마 그런 사연이 있는 이북출신일것이다. 90년대 후반 정도면 아직은 실향민의 생존비율이 낮지 않던 무렵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일것이고. 다만 6.25가 있은지 어느덧 40여년 세월 이상이 지난 상태라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고령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문제는 언론과 방송도 이때쯤부터 차츰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한편 신애는 신애대로 그녀의 생각을 좀 더 이야기한다.

 “ 사실은 공은아 3자매를 보다가 이들을 한국땅으로 보내서 공희갑 장로님과 결

  연을 한번 맺어주면 어떨까. 그 생각을 해봤었어요. 사실 공장로님...대개의 실향

  민이 남한에서 살면서 그리고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대개는 여기서 재혼을 해서

  새로 가정을 꾸리거나 하긴 했지만...그분은 지금껏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사신

  그런 퍽이나 드문 그런분이시거든요. ”

 신애의 말인즉슨 그 공희갑 장로라는 사람과 공은아 3자매를 결연을 맺어주고 싶다는 구상을 해봤다는것이다. 아무래도 13인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는 문제와 별개로 그런 구상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전부터 혼자 그런 생각을 해봤다는것인데, 신애의 말인즉슨 그러니 기왕 이렇게 된것 차라리 그 공희갑 장로의 친척인 조선족으로 신분을 위장 그들을 한국으로 들여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것이다. 헌데 듣다보니 좀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수정이 바로 반론을 제기한다.

 “ 아...아니 이것봐요 신애자매. 그러니까 신애자매 이야기는... ”

 “ 왜요 ? 뭐가 잘못되었나요 ? ”

 신애는 대체로 태연자약하게 수정에게 그렇게 물었고 수정은 그런 신애를 기가막히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따져들었다.

 “ 신애자맨 참...사람이 어쩜 그렇게 편파적이에요 ? 여기 탈북자가 어디 공은아

  3자매 뿐이에요 ? 모두 열세명이에요. 뭐 이젠 세명이 줄어 열명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신애자매 이야긴 다른 일곱명은 무시한채 저 공은아 3자매만 그 공희

  갑 장로님이란 분과 결연을 맺어주자는 그 생각만 지금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잖

  아요. ”

 “ 아...아니 수정자매. 제 말뜻은 그런게 아니라... ”

 “ 이봐요...이봐요 또 왜들 그래요 ? ”

 신애와 수정의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이 바로 현우의 눈에 들어와 바로 그가 두 여자의 싸움을 말렸다. 운남성 아지트는 방 두 개와 그리고 그 옆에 부엌과 욕실겸 화장실이 별도로 딸린 그런 구조인데, 두 개의 방 사이야 한발자국도 채 되지 않는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다. 그러니 옆방에서 웬만한 큰소리만 내도 바로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다. 게다가 수정과 신애의 말싸움은 방안도 아닌 옆의 부엌으로 별도로 나와 싸우는것이었으니 그 모습이 화장실이라도 가기위해 방에서 잠시 나온 현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것이다. 한편 운남성 아지트의 두 개의 방은 남자와 여자 두 조로 나누어서 쓰고 있었다. 탈북자야 어쨌든 이제 열명으로 줄어든 상태이지만 대신 현우등 나눔선교회 관계자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정작 사람은 모두 열네명으로 늘어난 상태. 그중 이종혁 4총사와 정모,허모가 함께 한 방을 쓰고 있었고 그 외 나머지 여자들은 다른 방을 역시 함께 쓰고 있었다. 여자방에는 사람이 공은아 3자매와 일곱 살 아라 그리고 나눔선교회 간사인 최수정,이신애,이부영이 함께 있었다. 그렇게 열네명이 함께 이곳에서 생활한지도 어느덧 두어주 정도의 시간이 흐른상태다.

 그나마 연변교회 은신처에서보다 탈북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수가 있었다. 그래도 탈북자 신분이 드러나면 큰일이니 밖으로 함부로 나다닐수는 없었지만 밥도 마음대로 해먹을수 있었고 화장실이며 욕실 사용도 비교적 자유롭고 편하게 할수 있게된 셈이다. 사실 연변교회 은신처에선 식사의 경우 연변교회 목사 내외가 들여보내는 밥과 간단한 찬거리 정도로만 때웠고, 음식냄새가 밖으로 새나거나 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어떨땐 하는수없이 목사 내외가 아예 죽으로 끓여서 음식을 반입해 주기도 했다. 이쯤되면 먹는 풍경 만큼은 북한에서의 그것과 별반 다를바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곳 운남성 아지트에선 달랐다. 대체로 부엌에 다 함께 나와 밥을 해먹었고 식사당번은 나눔선교회 간사들이 돌아가면서 했다. 찬은 보통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부대찌개 따위를 돌아가면서 끓였는데, 특히 현우의 부대찌개 솜씨가 일품이었다. 현우는 사실 한국에서 생활할 때 한번 요리책을 사서 찌개요리를 몇 번 해본적이 있는데 그때 해본게 부대찌개 요리였다. 그 솜씨를 이들 앞에서 발휘해본 셈이었다. 탈북자들 입장에선 생전 처음 맛보게되는 그 희한한 찌개의 맛에 다들 일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정이나 신애등도 대학 MT나 교회 써클 모임 같은데서 가끔 요리같은것을 해본 경험이 있어 다들 솜씨는 제법 있는편이었다. 한편 찬거리는 보통 선교회 간사들이 직접 인근 시장에 가서 구매해왔다. 물론 이때 현우도 가끔씩은 동행했다.

 무엇보다 열명이나 되는 탈북자가 은신해있는 이 아파트를 의심하는 시선이 별로 없는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파트 인심이란것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별반 다를것이 없어서인지 낮에는 대개 이웃 주민들은 일나가고 없는 상태에서 ‘이 집이 대체 뭘 하는 집인가 ?’ 하고 신경쓰거나 관심갖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운남성까지 탈북자가 올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나보다. 중국 공안당국도 조선족 자치구내에서의 탈북자들이나 늘상 단속을 하지 설마 이 머나먼 남쪽인 운남성까지 올 탈북자가 있으랴 싶어서인지 여기서는 적어도 탈북자에 대한 경계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 분위기를 눈치챘음인지 현우와 간사들은 탈북자들과 함께 집안에서 대범하게 하루는 날잡아 근사하게 고기파티까지 가졌다. 어렵게 구해온 중국술까지 다들 한잔씩 하면서. 연변교회 은신처에서라면 꿈도 꿀수 없는 천국같은 생활이 되는 셈이다.

 최수정과 이신애간의 다툼은 그렇게 운남성 아지트에서의 시간이 2-3주 정도 흘러갔을때 벌어진 일이었다. 이곳 탈북자중 몇몇을 실향민의 조선족 친척으로 위장시켜 한국으로 들여보내자는 안이 그런대로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한참 그 일을 추진중이었는데, 막상 그 내막을 알게된 최수정이 기가막힌듯 이신애에게 항의한것이다. 일단 싸움은 현우가 끼어들어 만류하긴 했지만 수정이나 신애나 서로를 편치않은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현우에게 이런 싸움 장면을 연변교회에 이어 두 번째로 보인 모양새 아닌가. 그래서인지 두 사람 다 정현우 앞에서 그런 추태를 보인것을 민망하고 난감해하는 중이었다.

  


 “ 저어...현우형제... ”

 다음날. 시장에 찬거리를 사러가는 당번이 현우와 수정의 차례라서 둘이 함께 아파트(* 열평이 조금 넘는 평수의 그런 규모의 5층짜리 아파트 몇채가 들어서있는 그런 정도 규모의 - 한국으로 치면 요즘은 아파트보다 빌라에 가까울듯 - 아파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충 7,80년대 서민아파트 같은 규모를 생각하면 됨) 를 나와 시장으로 가는길. 수정이 그러다 문득 현우를 불렀다. 어제의 일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 어제 죄송했어요. 저희 어제 너무 추했죠 ? ”

 “ 아...아뇨 뭐...꼭 그렇다기 보담도... ”

 바로 둘이 그런 말다툼을 한 상황에서 뜯어말린 사람이 정현우가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인사치레로 ‘괜찮다’는 식으로 말한들 수정이라고 곧이 들어줄것 같지도 않고, 따라서 현우도 민망하게 말꼬리를 흐리다 이참에 차라리 궁금한것이나 물어봐야겠다는듯 말을 건넨다.

 “ 근데...이신애 자매와는 원래 사이가 안 좋나요 ? ”

 “ 신애자매와요 ? ”

 “ 네, 여하튼...그때 연변교회에서도 두분 좀 말다툼을 하시더니만... ”

 “ 아, 그게 사실은... ”

 원래 최수정이나 이신애나 각기 다른 선교회에서 활동하다 나눔선교회로 유입이 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그런 상황에서 나눔선교회 자체가 약간 격랑의 시간을 겪다가 지금은 그런 북한선교 단체출신인 최수정과 이신애가 각기 재무와 총무 간사를 맡고 있는 상황. 헌데 정작 현우의 눈엔 그런 중책을 맞고있는 두 사람이 이렇게 매사에 부딪히기만 해서야 어디 선교단체가 제대로 흘러가기나 하겠나 그런 걱정이 다 될 지경이었다. 듣기로 이신애 자매의 경우엔 6.25때 무너진 북한 교회들을 재건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선교단체에서 최수정 자매는 북한에 지하교회를 세우기 위해 북한땅에 성경책을 들여보내는 그런 활동을 주로 하는 선교단체 출신이라고 했다.

 “ 신애자매는 아버님이 목사님이라고 하셨던것 같은데... ”

 최수정이 무슨 변명이든 해명이든 말하기가 난감해 그저 말을 묘하게 얼버무리고 있는데 현우가 운을 띄우는 것인지 화제를 돌리려는것인지 그런식으로 말을 꺼냈다. 사실 신애의 아버지가 목사님이란 사실은 앞서 회의에서도 이미 밝혔던 사실. 그리고 아마 굳이 그렇게 밝히지 않았어도 같은 선교회 간사끼리인 최수정이나 이부영 정도는 이미 알고있을 사실이 아니던가. 수정은 여전히 뭔가 민망하거나 무안한 그 무엇이 있는듯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리고만 있는데 그런 수정에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것 같은 생각도 들어 현우는 마음까지 살짝 상한 상태에서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 현우의 성격임을 감안한다면 진짜 이례적인 행동이다.

 “ 신애자매가 그런말을 하더라구요. 신애자매 아버님은 신앙적으로야 매우 복음

  주의적이시지만 정치적으론 오히려 자유주의적이라고요. ”

 “ 신애자매가 그런 말을 했어요, 현우형제에게 ? ”

 순간 수정이 적잖이 놀란듯 별로 크지도 않은 눈이 휘둥그래지며 그와같이 말했고 현우는 해명섞어 설명을 덧붙여준다.

 “ 아...하하...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연변에 있을때 밤에 별로 하는일도 없고 심심

  할때 신애자매가 제게 그런 이야길 좀 해준적이 있어요. 신애자매 아버님에 대해

  서... ”

 현우가 처음 이은화의 안내를 받아 연변교회에 도착했을때 이미 그곳에 있던 최수정과 이신애. 그네들과 함께 처음 13인의 탈북자 한국행 계획을 세울때, 그때도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언쟁이 벌어졌었고, 그날 회의가 끝난후 신애가 미안한 마음에 음료수캔 하나를 사들고 현우의 방에 들어와서는 아까전 싸움에 대한 해명을 겸해서 이런저런 이야길 한적이 있었다. 원래 신애가 활동하던 선교단체가 어떤 선교단체였는지 그 점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그러다 자연스레 신애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나보다.

 “ 그건 무슨소리에요 ? 아버지가 복음주의자지만 정치적으론 자유주의자라는게

  ? ”

 현우도 사춘기때부터 이따금씩 교회에 다니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이긴 하지만 신앙에 그렇게까지 깊이 빠지거나 관심갖고 하던 사람은 아니라서 무슨 신학이라던가 그 무슨 ‘-주의’ 같은데 대한 복잡한 개념에 대한 이해는 별로 없다. 신애가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졌다.

 “ 저희 아버지가...신앙적으로는 그야말로 성경에 쓰여진 말씀 원리원칙 그대로 살

  아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강조하시는 그런분이지만...정치적인 견해는 다

  르세요. 뭐랄까...좀 유연하다고나 할까... ”

 쉽게 말해서 좀 야당 지지성향이 강한 그런 사람이란것이다. 헌데 사실 신애 아버지는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이었다. 신애는 집안에서 3남2녀중 막내라고 했다. 위로 오빠셋에 언니까지 하나 있는 그런 막내. 현우나 신애나 그리고 최수정까지 모두 1972년생 동갑내기인데 ‘둘만낳아 잘기르자’ 시절에 태어난 세대로는 좀 이례적으로 신애의 경우는 형제가 많은 셈이다. 하긴 60년대후반-70년대 초반 정도 태생이면 바로 그때가 산아제한 정책이 시작되던 그런 시대라서 오히려 그때 막내쯤으로 태어난 경우라면 위로 형제가 한마디로 언니나 오빠 혹은 누나나 형이 적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볼수 있긴 하다. 신애의 경우 바로 그런 케이스로 보면 되리라. 게다가 신애 아버지는 결혼도 늦게한 편이라 신애를 낳았을때는 이미 연세가 마흔다섯이었다고 했다.

 “ 히익~~~!!! 아버지 연세가 마흔 다섯이실 때 신애자매를 낳았다구요 ? ”

 “ 네, 그래서 사실 어릴땐 학교에서 애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그땐

  막...아빠한테...아빠 할아버지 같다고 애들이 놀린다고 싫다면서 학교 오지 말라

  고 그렇게 칭얼대기도 했죠. 훗...다 철없는 시절 이야기죠 뭐. 따지고보면 저희

  집에서 가장 아빠,엄마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바로 막내인 저이기도 한데

  ... ”

 뭐 대충 그런 이야기를 연변교회에 있을때 신애와 나누었다. 수정은 공연히 입술을 약간 삐죽이더니 뭔가 냉소적인 말투로 한마디 한다.

 “ 사실 젊은 지체들중엔 그런 사람들 많기는 해요. ”

 “ 네 ? ”

 “ 맞는 이야기에요. 저도 주위에 그런 형제나 자매 많이 보았어요. 가만보면...아

  무래도 대개 젊은 탓인지...성경적으로는 매우 복음주의적인데 정치적으로는 자유

  주의적인 그런 형제나 자매 제 주변에도 많아요. ”

 “ 아, 네...난 또... ”

 하지만 신애 아버지 정도 되는 나이의 사람이 신앙적인 문제와 달리 정치적으론 오히려 야당지지 성향이란것은 좀 이채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수정은 그녀 나름대로 신앙생활도 오래했고 또 이런 선교활동도 하면서 비슷한 연배의 형제,자매들을 많이 만나 봐서인지 그런 경험치를 쌓아 현우에게 이와같이 설명을 해준다.

 “ 제가 볼땐...성경적인 보수와 정치적인 보수는 좀 다른것 같더라구요. 성경적으

  론...가령 주일성수라던가 혼전순결 또는 음주문제 그 외 동성애나 낙태 그런것

  들에 대해 아주 단호한 입장인 반면...정치적으론 그러면서도 오히려 야당지지성

  향인 사람. 실제 젊은 형제,자매들중엔 많이 있어요. 그래서 전 요즘 그런 고민

  을 하고 있기도 해요. 아무래도 신앙적 보수와 정치적 보수는 좀 개념이 다르지

  않나. 그런 생각을요. ”

 “ 그럼 수정자매경우에는요 ? ”

 “ 저요 ? ”

 뭔가 수정의 말투가 차갑고 냉소적으로 들려서 현우의 마음이 실은 좀 편치 못했다. 어차피 여기 중국땅까지 와서 마땅히 입을옷 자체가 별로 없어 다들 불가피한 마찬가지 상황이긴 하지만 수정은 옷차림부터가 티셔츠에 청바지차림. 뭔가 선머슴 같은 느낌이 들게하는 그런 자매이기도 했다. 그런 수정의 냉소적이고 차갑게 들리는 말투. 원래 말투가 그런것인지 아니면 뭔가 수정에게 지금 마땅치 않은 그 무엇이 있어 이런투로 말하는것인지는 지금 현우가 알수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 저는 좀 반대에요. ”

 “ 반대라면요 ? ”

 “ 전 오히려 정치적으론 보수인데 신앙적으론 유연한 편이에요. 사실 요즘 세상

  에 직업도 하는일도 다 가지각색인데 ‘무조건 주일성수 지켜라’ 이런것도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 그럼 가령 백화점이라던가 그런 일요일에 근무해야 하

  는 사람들은 어쩌라구요. 뭐 제가 여기서 주일성수 지키는 문제 갖고 논쟁하자

  는건 아니지만...전 뭐 이 다음에 저랑 결혼할 형제가 술도 좀 한다고 해도 괜찮

  다고 봐요. 오히려 요즘 세상에 술도 한잔 못하는 형제. 사회생활 하는데 여러가

  지로 재미 없지요. ”

 성경적으론 오히려 좀 더 자유주의적이라는게 수정의 신앙관인 셈이다. 헌데 그런 수정이 정치적으론 또 보수라 하지 않던가. 거기에 대한 의문을 담아 현우가 묻는다.

 “ 그런데 원래 수정자매가 있던 선교단체는 북한에 성경책 보내는 그런 단체였다

  면서요. ”

 “ 네, 맞아요. 그런데 그게 왜요 ? ”

 “ 아뇨 전...여하튼...그...북한의 6.25때 무너진 교회 재건한다는 선교단체에서 온

  신애자매의 경우와 수정자매가 여러 가지로 많이 달라서... ”

 “ 아...하하하...오해하지 마세요 현우형제. 어쨌든 우연치곤 좀 묘하게 그렇게 되

  긴 했지만...선교단체를 그렇게 정치적 잣대로만 평가하시면 곤란해요. 선교단체

  는 글자그대로 선교단체죠. ”

 “ 그거야 그렇지만... ”

 “ 다만 뭐...제가 있던 B 선교회가 어느정도 자유주의적인 사람이 많았던것은 사

  실이에요. 하하하...어떨땐 그곳에서 지체들이 저보고,...‘너 하는소리 보면 어떨땐

  안기부 프락치 같더라 ? 바른대로 말해 ? 너 안기부에서 얼마 받았어 ?’ ”

 “ 그런 소릴 한다구요 ? 선교단체 사람들이 ? ”

 “ 아...오해하진 마세요. 그냥 그건 선교단체 지체들끼리 농담삼아 하던 이야기구

  요. 여하튼 제가 거기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으로 보이더라. 대충 그런 이

  야기에요. ”

 신애의 이야기나 수정의 이야기나 어쨌든 요지는 정치적 의미의 보수주의와 성경적 의미의 보수주의는 차이가 있다는 그 정도 의미로 이해하면 되리라. 어쩌면 수정과 신애 사이의 이런식의 갈등이 거듭되는것도 그 뿌리를 따지면 그런 성경적 보수와 정치적 보수의 차이에서 나온 결과로 봐도 그렇게 무리가 가는 해석은 아닐듯하다. 여하튼 어느덧 시장에까지 도착 찬거리를 사갖고 탈북자들이 있는 아지트로 돌아가고 있는 두 사람. 헌데 그때였다.

 “ 어머낫~! 뭐야... ”

 사실 간밤에 비가 좀 내렸는데 그 바람에 빗물 웅덩이가 여기저기 고였다. 운남성이 아열대니 이곳은 지금 우기는 아니고 건기일텐데 그럴때 비가 내렸다는것도 좀 이례적이긴 하다. 여하튼 폭우는 아니고 지나가던 소나기가 좀 내린 그 정도 수준인데도 낙후된 길이나 시설탓인지 여기저기 적잖이 물웅덩이가 고인것이 보였다. 그야말로 70년대 한국거리 풍경같은 그런 느낌이다. 여하튼 그런 물웅덩이 고인곳을 차 한 대가 지나가다 그만 흙탕물이 튀고 만 것이다. 현우나 수정에게 직통으로 튄것은 아니지만 순간 놀라 수정이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놀란 현우가 그런 수정을 일으켜주려 한다.

 “ 수정자매...수정자매...괜찮아요 ? ”

 “ 네...괜찮아요 뭐 조금...아야야...아야야... ”

 “ 다친것 같은데...정말 괜찮겠어요 ? ”

 “ 네...뭐 걸을순 있을것 같은데... ”

 말은 그렇게 하지만 수정은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차에 치인 상황은 분명 아니고, 뒤로 넘어지는 상황에서 발목이 좀 삐끗한것같다. 시장에서 찬거리도 잔뜩 산 상황에서 어디서 응급처치를 하기도 그렇고. 하는수없이 현우가 수정에게 제안한다.

 “ 할수없다. 수정자매. 일단 업혀요. ”

 “ 아...아뇨 뭐 괜찮은데... ”

 “ 일단 업혀요. 당장 이 근처에 병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일단 아파트로

  가요. 가서 거기서 응급처치를 해보던가 어떻게 하죠. ”


- 8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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