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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황정음 (6) 1세대 걸그룹 팬픽




                                    부제 : 13인의 탈북자 이야기





 은신처의 13인의 탈북자와 면담 인터뷰를 하면서 현우는 문득 ‘안네의 일기’가 떠올려졌다. 2차대전때 히틀러의 유태인에 대한 핍박을 피해 한 은신처에 2년을 숨어 생활했다는 안네의 가족들. 정확히 그 은신처에는 모두 두가족 여덟명이 숨어있었던것이고,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준 귀인이 있었기에 이들은 잠시나마 나찌의 핍박을 피해 몸을 숨길수가 있었지만, 여하튼 2년을 숨어 지내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은신처에 숨어살던 사람중 유일한 생존자인 안네의 아버지에 의해 안네의 일기장이 발견되어 세상에 나올수가 있었다. 현우는 유태인에 대한 나치의 핍박을 피해 2년을 숨어 살아야했던 그들의 경우와 연변교회 목사가 은신처를 제공해주어 어느덧 1년 넘게 이곳에 숨어살고 있는 이들 13인의 탈북자의 경우가 무엇이 다른가 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네의 일기에 소개된 은신처의 유태인들은 그러나 2년만에 은신처가 발각되어 모두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가고 말았고 안네를 비롯한 은신처의 사람들은 이후 모두 수용소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엇보다 그 일기속의 은신처 유태인들에겐 자신들의 은신 생활이 언제 끝날 수 있을지 그것을 기약할 수가 없었다. 나찌가 망하던가 아니면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던가. 그런날이 오기전에 그들의 은신생활은 끝날수가 없다. 하지만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아니면 4-5년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기나긴 시간을 오찍 나찌가 망하기만을 기다리며 그곳에 숨어 있어야하는 그들의 고통과 압박감은 어느정도였을까. 14세 소녀의 일기를 통해 그들의 그 고통과 불안함,두려움,압박감은 일정부분 세상에 알려지게도 되었지만 여하튼 이들 13인의 탈북자 처지 역시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은신처의 유태인들과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다만 그들과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그래도 이들 13인의 탈북자에겐 희망이 있다. 안네의 일기 등장인물들은 결과적으로 2년만에 은신처가 발각되어 모두 수용소에 끌려가고 말았고 14세 소녀 안네를 비롯한 대다수 가족들은 그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나마 그중 유일한 생존자인 안네의 아버지에 의해 훗날 딸의 일기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진것이 ‘안네의 일기’라고 하지 않던가.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그저 나찌가 망하기만을 막연히 기다리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하지만 13인의 탈북자에겐 한가지 확실한 희망이 있다. 바로 그것은 한국으로 가는것. 비록 중국내 한국 대사관은 중국당국과의 마찰을 우려 탈북자의 망명신청을 받아주지 않고 있었지만(90년대 후반 상황) 베트남 대사관은 상황이 중국과 다를것이라 막연히 기대했기에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주는 연변교회 목사나 이들을 지원하는 나눔선교회 관계자들에겐 이들에게 희망과 생명의 빛을 생명줄을 제공해줄수 있는 한가지 방도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것. 만약 그것이 성사되기만 한다면 안네와 피터(* 안네의 일기에 등장하는 또다른 유태인 가족 집안 아들. 보통 피터를 안네 ‘남자친구’라는 식으로 책이나 영화에선 소개하곤 함) 의 경우와는 달리 13인의 탈북자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수가 있다.

 현우는 만약 이들 13인의 탈북자 이야기를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 르뽀소설로 세상에 낼 경우 ‘안네의 일기’와 비교해가며 발표하는 방식을 한번 채택해볼것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었다. ‘안네의 일기’에선 로맨스가 있었다. 바로 14세 소녀 안네가 함께 은신하게된 또 다른 가족 집안 아들인 비슷한 연배의 피터란 소년에게 연모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실제 ‘안네의 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에선 은신처가 발각되고 나찌군이 들이닥치는 상황에서 안네와 피터가 ‘마지막 키스’를 나누고 그리고 안네의 대사 ‘나는 인간이 선하다는것을 믿는다’는것을 끝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13인의 탈북자중에는 안네와 피터같은 로맨스를 만들만한 상황설정이 될수있는 사람이 없었다.

 우선 이종혁 4총사와 공은아 3자매가 있긴 한데 이종혁 4총사는 남한으로 치면 고3 내지 재수생 정도 될 19세 소년들이고 공은아 3자매는 이미 20대 중,후반 나이라 이종혁등과는 이미 열 살 가까이 차이나는 큰누나뻘 되는 여자들이었다. 실제 은신처에서 공은아 3자매는 이종혁등을 막내동생 대하듯 대하고 있었고 종혁등도 은아 3자매를 ‘누나’라고 불렀다. 국군포로 2세 부부의 경우에야 글자그대로 유부남,유부녀의 신분이니 이들이 다른 은신처 탈북자와 로맨스가 생긴다면 그건 큰일날 소리고 34세의 정모와 45세의 허모는 각기 식량난과 탈북 과정에서 잃어버린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이 아직도 적잖이 남아있어서인지 한가하게 여기서 다른 여자애들과 연애를 한다던가 그걸 생각할수 있는 마음상태가 아니었다.

 다만 흥미로운 점 한가지가 있다면 13인의 탈북자는 그새 한 식구가 더 늘어나 있었다. 은신처에 새로운 탈북자가 추가로 들어온것은 아니고, 실은 국군포로 2세 부인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것이다. 몸 상태가 좀 이상하다는 호소를 여러차례 한 국군포로 2세 부인을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한 연변교회 목사 사모가 하루는 그를 조선족으로 위장시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중임을 확인했다. 3개월째라는 것이다.

 헌데 막상 국군포로 2세 부인의 임신소식을 알게된 교회나 선교회쪽 사람들은 기분이 괜시리 묘해졌다. 사실 아무래도 은신처에 여러명의 남녀가 함께 생활하게 된 공간이니만큼 행여 무슨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선 연변교회 목사 부부가 각별히 유의하는 편이었다. 신앙교육이나 성경공부 같은것을 통해 그런것을 하지 말라는것을 각별히 주의시켰다. 은신처 자체도 밥먹는 공간만 별도로 한쪽에 하나로 마련해 놓았을뿐 남자들이 쓰는방과 여자들이 쓰는 방은 칸막이를 쳐 각별히 구분을 시켜놓아 행여 발생할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사건만큼은 철저히 방지해놓고 있었다. 헌데 그 와중에 국군포로 2세 부인은 임신을 한 것이다.

 현우를 비롯한 나눔선교회 간사들이 와서 한참 이들의 남한행 계획을 꾸미고 있을때가 97년 11월이었는데, 그때 국군포로 2세 부인은 임신 3개월이었다. 그러니 대략 한 8월쯤에 그런일(!)이 발생했다는 소린데, 대체 어느틈에 눈을 피해 이들 부부가 그런일을 했는지 생각만해도 기분이 묘해지는 일이었다. 임신소식을 알게 된 여인도 괜시리 부끄러운듯 살포시 고개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렇게 탈북자 신세가 되어 앞날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 남편과 열 살난 아들도 있는 상황에서 아이 하나를 더 가졌다는것은 당사자 입장에선 마냥 좋거나 즐거울수만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여인은 자기집안 식구가 한명 더 늘어났다는 점을 살짝 뿌듯해하면서도 살포시 부끄러워하고 있는 중이었던것이다.





 13인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는 작전은 대략 이와같이 세워졌다. 이들을 한국인 관광객으로 위장 일단 중국-베트남 접경지역인 운남성까지 기차를 타고, 운남성에선 현지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선 베트남으로 돈을 벌기위해 가는 몽골족인 것으로 신분을 재 위장 베트남 안으로 들여보내자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국인 관광객으로 위장 베트남 주재 대사관으로 들여보내자는게 나눔선교회 전략간사 이부영이 짠 13인의 탈북자 한국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중국과는 달리 베트남은 한국과의 사이도 좋고 사정이 훨씬 나을것이니 베트남 한국대사관으로만 이들을 들여보내기만 하면 무조건 망명신청이 이루어질것으로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니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는 참으로 순진난만한 구상이기 이를데 없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여하튼 나중의 일이고 일단 중요한건 이들을 한국인 관광객으로 위장시켜 기차를 타고 운남성까지 가게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들을 깔끔하게 목욕부터 시켜야했다. 무려 13인의 탈북자를 한꺼번에 데리고 공중목욕탕으로 갈수야 없으니 3-4명 정도씩 조를 짜서 나눔선교회 관계자들이 각기 한조씩 맡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일단 이종혁 4총사는 현우가 데리고 가고, 34세,45세 탈북자와 국군포로 2세등 성인 남성 세명은 연변교회 목사가 그리고 공은아 3자매는 최수정 간사가 그 외 나머지 여성인 국군포로 2세 부인과 7살 아라는 이신애가 데리고 가기로 했다. 현우의 경우 이종혁 4총사보고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고 목사의 경우 성인 남성 세명을 목회활동을 하면서 알게된 조선족 동료들로 하기로 했다. 최수정은 공은아 3자매를 평소 절친하게 지내는 언니-동생사이인 것으로 이신애는 국군포로 2세 부인과 7살 아라를 이모와 조카인 것으로 하기로 했다. 여하튼 중요한것은 이들의 탈북자 신분이 들키지 않게하도록 하는것이니 목욕탕에서 가급적 필요한말 이외엔 삼가기로 했다.

 하루정도의 시차를 두고 이렇게 이들을 목욕탕으로 가서 깨끗이 목욕시킨뒤 다음엔 이부영 간사가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한국 옷과 물품등으로 완벽하게 한국인 관광객으로 위장시켰다. 이들중에 대다수는 한국옷이나 물건을 사실상 처음 입어보거는 만져보는 사람들이라 막상 그것들을 입고 만지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같은 행동도 연변교회 내에서만 가능한 일일뿐 밖으로 나가선 그러한 행동도 가급적 삼갈것을 철저히 주의를 주었다.

 현우가 이들 13인의 탈북자와 동행 함께 기차를 타고 운남성까지 가기로 했다. 연변에서 북경까지 기차를 타고 다시 거기서 기차를 타고 운남성까지 가야한다. 현우는 새삼 중국땅이 넓다는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말이 연변에서 운남까지지 중국의 가장 북쪽 지역에서 가장 남쪽까지 가는것이나 다름없다. 기차 이동 소요시간에 갈아타는 시간까지를 감안하면 최소한 60시간이 넘는 기차여행만으로도 사흘이 걸리는 시간이었다. - 그나마 이것도 양호한 편이다. 현우는 훗날 도보로 중국땅을 걸어서 베트남까지 갔다는 탈북자의 사연을 알게되었는데 그 사람의 경우엔 무려 거기까지 가는데 1년이 걸렸다고 했다. 혼자 몸으로 그것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은신해가면서 가야했던것을 감안해야 하는 사례이긴 했지만, 그에비해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60시간이 걸리는 여행은 매우 양호하며 그나마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한편 막상 이들을 베트남까지 무사히 데려간다해도 현우의 이후 신변을 또 어찌 할것인지가 문제였다. 현우가 연변교회까지 갈데 챙겨온 짐보따리가 있지만 현우가 그것을 갖고 베트남까지 갈수는 없는일이다. 간단한 필기구와 지갑만을 챙겨 13인의 탈북자와 동행하기로 한 현우. 나눔선교회 간사들은 현우에게 일단 탈북자들을 베트남으로 들여보낸뒤 들어갔던 길로 다시 운남성으로 오라고 했다. 운남성에 나눔선교회 후원회원으로 있는 그리고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이 또 한사람 있다고 했다. 이부영 간사가 이미 그쪽까지 알아두어 임시 아지트를 만들어놓았으니 현우는 그리로 오면 된다는것이 이부영 간사의 말이었다. 이부영이 직접 현우의 짐은 그 아지트에 가져다 놓을테니, 현우는 자기짐은 거기서 챙겨받아 운남성에서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온뒤 현우는 한국으로 들어가면 그만인것이다. 무엇보다 탈북자들을 베트남으로 들여보낼땐 불가피하게 기차를 이용해야 했지만 올때는 혼자몸으로 비행기 이용이 가능하니 그렇게 하면 된다는것이 이간사의 말이었다. 현우는 그 말을 듣고 안심하고 13인의 탈북자와 함께 연길 기차역으로 향했다.

 현우는 운남성이 열대지방이란것을 깜빡 하고 있었다. 사실 현우는 원래 처음 연변으로 떠날 때 연변이 당연히 북한보다 북쪽이니 훨씬 추운곳이라 생각하고 겨울옷을 잔뜩 챙겨왔었다. 아는게 병이라고 현우는 고등학교때 어떤 다큐프로에서 만주지역이 벼농사가 가능한 가장 북쪽지역이라고 말한것까지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은화 간사와 함께 중국으로 올때가 이미 10월로 한국도 한참 추워질때의 일이니 연변에서의 일 자체가 추운 겨울중에 진행될것으로만 생각하고 겨울옷만 잔뜩 챙겨왔던것이다. 그러니 기차를 타고 점점 남쪽으로 가면서 계속 날씨가 더워지는것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버텨보자.’ 현우야 이들을 베트남 대사관까지만 데려다주면 되는것이니 그 며칠간만 참기로 하고 일단 갑갑한 웃옷 정도만 벗고 있었다. 무엇보다 13인의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돕는것이 가장 막중한 임무인 자신의 처지로 자신의 옷 타령을 할수야 없는일. 여하튼 운남성까지 이들과 함께 무사히 도착하고 여기서 다시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 중국-베트남 국경을 넘는일까지 성공할수 있었다. 브로커가 그런대로 착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어린아이와 여성도 다수 포함되어 있음을 배려한것인지 비교적 쉬운길을 안내해주었다.

 여하튼 그렇게 베트남으로 들어간 13인과 현우. 이제 여기서 택시를 잡아타고 하노이의 한국 대사관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다만 현우까지 포함 14명이 한꺼번에 택시를 탈수는 없는 일이니 여기서도 조를 셋으로 나누기로 했다. 모두 한국인 관광객인 것으로 하기로 한 이들 일행. 현우와 이종혁 4인방이 한 차에, 그리고 국군포로 2세 부자(父子) 34세.45세 탈북자가 또 다른 한차에, 현재 임신중이기도 한 국군포로 2세 부인과 공은아 3자매 그리고 일곱 살난 아라까지 이들 다섯명은 또다른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리고 각기 1호차,2호차,3호차로 부르기로 했다.

 무엇보다 현우는 70년대에 있었던 유명한 납북사건을 학창시절 반공교육 시간에 익히 들어 기억하고 있다. 북유럽을 유행중이던 어떤 고등학교 선생이 길을 잃고 한국 대사관을 찾기위해 택시를 잡아탔는데 남한과 북한을 구분할줄 모르는 택시기사가 그만 그 학교선생을 북한 대사관으로 데려다주었고 그래서 졸지에 그 학교선생이 납북되었다지 않는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현우는 자신들이 ‘NORTH KOREA(북한)’ 사람이 아닌 ‘SOUTH KOREA(남한)’ 사람임을 여러차례 택시기사에게 강조했고 태극기를 직접 그려주고 서울 한국 대통령 이름까지 대가며 한사코 ‘남한 사람’임을 택시기사에게 강조하고 주지시켰다. 자신이 탈 택시 외에 2호택시와 3호택시의 리더를 맡은 국군포로 2세 부부에게도 역시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거듭 강조해주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아버지가 국군포로였기 때문에 ‘한국’이란 이름과 태극기를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적어도 택시기사가 북한과 남한 대사관을 혼동해서 북한 대사관으로 데려다줄 가능성은 거의 없을것이라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의 하나 정말 북한 대사관으로 잘못 찾아가게 되면 그땐 어찌되는가. 한두사람도 아닌 무려 13인나 되는 탈북자를 데리고 북한 대사관으로 잘못 들어갔을 경우 ?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상상만해도 끔찍해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다.

 여하튼 택시는 현우가 수차례 강조를 한 덕분에 무사히 하노이 한국 대사관 앞까지 도착할수 있었다. 다만 도착하는데 시차가 있어 이종혁 4인방과 함께 탔던 1호차 택시의 뒤를 이어야할 2호차와 3호차는 한두시간 정도 시차를 두고 베트남 대사관 건너편까지 도착을 하였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다들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까지 무사히 도착. 현우는 ‘13인의 탈북자 한국행’ 추진의 90퍼센트 이상은 성공한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하고 한숨을 돌리며 기쁨의 미소까지 지었다. 현우는 제법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대사관에 나부끼는 펄럭이는 태극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13인의 탈북자에게 말해주기까지 했다.

 “ 저걸 보세요. 저게 바로 태극기입니다. 대한민국 국기...우리나라 국기입니다. 여

  러분 이제 모두 살았어요. 다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여러분들은 곧 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

 “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

 13인의 탈북자는 자신들을 여기까지 데려다준 현우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사실 현우야 이들을 베트남 대사관까지만 데려다 준것뿐 사실 진짜 감사 인사야 이들을 1년 넘게 무사히 은신시켜주었던 연변교회 목사에게 해야할일 아닌가. ‘안네의 일기’로 치면 바로 미프히스(* ‘안네의 일기’에서 바로 안네등 유태인 두 가족을 2년간 은신시켜준 사람) 나 다름없는 역할을 해준사람. 바로 그가 이들 13인의 탈북자 한국행 사업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는것을 가능하게 해준 숨은 공로자, 아니 실질적 공로자인것이다.

 여하튼 베트남 대사관까지 다 온 현우는 이제 일은 마무리된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 자신은 굳이 대사관 안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탈북자 13명만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쯤에서 이들과 작별을 고했다. 13인의 탈북자가 대사관 안으로 들어가면 한국 대사관은 그들의 망명을 흔쾌히 받아줄것이라 생각했던것이다. 그리고 현우는 애초에 이부영 간사등과 이야기가 되었던것처럼 자신의 짐을 돌려받기 위한 운남성 모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눔선교회 후원회원이기도 한 사업가가 그곳에 임시 아지트를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여하튼 그곳으로 이부영 간사가 현우의 짐가방을 가져오고 현우는 그 가방만 건네받고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간뒤 북경에서 한국행 비행기만 갈아타면 되는것이다. 그야말로 무거운 짐이자 진짜 어려운 숙제를 다 마친것과 같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현우는 애초에 넘어왔던 중국-베트남 국경지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운남성의 아지트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공간은 아니고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이 필요로 해서 사둔 별도의 작은 평수의 아파트였다. 여하튼 이부영간사가 그곳으로 현우의 옷가방을 가져온다니 현우는 그것만 건네받아 한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헌데 운남성의 아파트에 도착했을때 이미 와 있던 이부영 간사는 사색이 된 얼굴로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 현우형제...현우형제 도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 ”

 “ 네 ? 어떻게 되다뇨 ? 뭐가요 ? ”

 베트남 대사관으로 13인의 탈북자가 들어가는 모습까지야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까지 한 일이니 그 일은 문제없이 마무리 되었을것으로 현우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헌데 운남성 아지트에 와 있는 이부영이 받은 연락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 다들 나왔대요. 베트남 대사관에서도 탈북자 망명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해서

  그나마 몇 명만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져 그분들만 한국으로 들어오고 그 외 나머

  지는 도로 대사관에서 쫒겨나고 말았대요 !!! ”

 “ 뭐...뭐라구요 ? ”

 순간 현우도 무척이나 놀랐지만 이부영도 기가막히고 황당한 감정은 현우보다 더했다. 심지어 부영은 현우가 일처리를 똑바로 못한 것으로 의심하는것인지 분명히 탈북자들을 베트남 대사관으로 들여보내긴 한거냐고 몇 번이고 확인을 해보기까지 했다. 현우는 부영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으로 생각 나중에는 불쾌한 기색마저 드러내었다. 하지만 문제는 중요한게 그게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해서 베트남 대사관에서마저도 쫒겨난 탈북자들. 이들을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헌데 이부영등은 어떻게 탈북자들이 한국 대사관에서 쫒겨난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97년 정도면 아직 휴대폰이 보편화되기 이전이다. 실제 최수정이나 이신애 정도는 호출기를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현우는 거추장스럽게 여겨져 호출기 자체를 아예 평상시 지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긴 나눔선교회에서 이 일에 가담하게 되기전까지는 군에서 제대한후 1년 넘게 백수로 있다가 기껏 문예창작대학에나 지원했던 그런 사람이 특별히 호출기를 필요로 할 일이 무엇이 있었으랴. 어찌되었거나 휴대폰은 아직 보편화되기 전이고 호출기 정도나 사용되던 시절에 벌어진 일. 무엇보다 호출기고 휴대폰이고 그런게 있는지조차 알리없는 탈북자들은 그렇게 한국 대사관에서조차 쫒겨난뒤 연변교회로 다시 전화를 걸어 그 딱한 사정을 알렸다.

 여하튼 베트남이 중국보다 탈북자들에게 사정이 좀 나은곳인것만은 분명했다. 중국에서야 탈북자란 신원이 대번에 드러나기만 해도 바로 중국 공안에 붙들려 북한으로의 송환 위기에 직면하게 되지만 그래도 베트남 정도는 탈북자 신분이 어느정도 드러나도 그런대로 안전한 곳이기 때문에 이들이 연변교회로 전화를 거는것이 가능했던것이다. 충격을 받은 연변교회 목사는 일단 운남성 아지트로 돌아오라고 그들에게 방법을 일러주었다. 원래 운남성 아지트는 현우가 이부영에게서 짐가방을 건네받기 위해 만나기로 한 장소이건만 그곳이 뜻밖에 이들 탈북자들의 제2의 은신처가 되어야할판이다. 이부영은 그리고 운남성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연변교회의 긴급 호출기 연락을 받아 전화를 해본뒤 그 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 현우형제, 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 베트남 대사관에 분명히 들여보내긴 한거에

  요 ? ”

 “ 허허 참...사람을 어떻게 보고 진짜...벌써 똑같은 설명을 열 번도 더 했어요. 베

  트남 대사관...하노이 OO에 있는곳. 태극기 펄럭이는것까지 내 눈으로 똑똑히 확

  인했다니까요 !!! ”

 “ 그럼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야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냐구요. ”

 이부영은 너무나 눈앞이 캄캄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보단 차라리 베트남 대사관으로 가서 망명신청을 하자는 그 첫 계책을 내놓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던가.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참으로 신묘한 계책을 내놓은것으로만 생각하던 이부영 간사였건만, 지금은 그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너무 세상물정 모르는 천진난만한 짓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이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다 무너지는 심정으로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

 일단 탈북자들을 다시 운남성으로 돌아오라고 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들어오기로 한 지역으로 현우와 부영이 직접 가서 탈북자들을 다시만나 운남성 아지트로 데리고 왔다. 헌데 이때는 이미 13명이 아니라 열명이었다. 그 자초지종이 다음과 같다.

 “ 그...국군포로 가족 있지 않습니까. 최OO 동무 가족이라고...그 가족들만 그래도

  국군포로 가족이라 남조선도 예우는 해 주는지 그 사람들 망명만은 받아주더란

  말입니다. 실제 거기서 남조선의 친척들과 통화도 이루어졌고요. ”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니 국군포로 최상기의 아들인 최 모는 자신이 국군포로 아들임을 강력 주장하고 남한에 친척까지 있음을 거듭 주장. 결국 그와 한국의 친척과 전화연락이 되어 국군포로 2세임이 확인이 되었고, 따라서 베트남 대사관은 이들 세 가족의 망명신청만 받아주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임신한 젊은 부인에 열 살난 어린 아들까지 포함된 가족이다 보니 이들의 망명신청조차 야멸차게 거절할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그런쪽으로는 한국 대사관이 개념이 조금 잡혀있는 사람들로 봐야하는걸까. 하지만 그 외에 일곱 살난 어린아이 아라의 망명까지만이라도 받아달라고 다른 탈북자들이 애원했건만 거기까진 곤란하다며 대사관 직원들이 끝끝내 거부 결국 나머지 열명은 모두 베트남 대사관에서 나올수밖에 없었다는게 그들이 전해준 자초지종이었다.

 “ 이런 바보들...그렇다고 그냥 무기력하게 나와버리면 어떻게 해요 !!! ”

 “ 그럼 뭐 다른 뾰족한 수가 있단 말입니까 ? ”

 “ 차라리 거기서...이대로 물러설순 없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우린 모두 죽는다. 차

  라리 그 자리에 전부 누워 연좌농성이라도 벌이던가 그랬어야지...그렇다고 바보

  같이...대사관에서 나가란다고 전부 무기력하게 나와버려요 ? 나 원...이런 바보같

  고 딱한 사람들을 봤나. ”

 “ 현우형제... ”

 너무 흥분해서 언성까지 높이는 현우를 부영이 살짝 말렸다. 연좌농성이니 뭐니 좀 도가 지나친 말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사실 데모니 시위니 이런 개념 자체가 없는 북한 사람들 아닌가. 헌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연좌농성이 어쩌구 이런말을 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현우도 결국 이 너무나 기가막힌 상황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만다.

 “ 이런일이...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어 ? ”

 현우는 그들과 함께 베트남 대사관으로 들어가지 않은것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현우 성격에 만약 그들과 함께 대사관안으로 들어갔다면 탈북자들이 그대로 무기력하게 쫒겨나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차라리 나를 이 사람들과 함께 죽이던가 하라며 거기서 무슨 사생결단을 내도 냈을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히 현우는 베트남에 있을때 조금은 겁이 났었다. 중국에서야 현우는 어디까지나 떳떳한 한국인 여행객 신분이지만 베트남으로 그와같은 과정을 통해 들어간 이상 그곳에선 현우도 어쩔수없는 불법입국자 신분 아닌가. 바로 그와같은 신분이 드러나는것이 무섭고 겁이나서라도 빨리 베트남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차있었다. 그래서 탈북자들만 한국 대사관안으로 들여보낸뒤 자신은 빨리 운남성 아지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운남성 아지트로 돌아가 이부영으로부터 자기 짐가방을 건네받은뒤 비행기타고 한국으로 빨리 돌아갈 생각만 가득했던 정현우. 하지만 바로 그런 생각만이 앞서 탈북자들이 무기력하게 베트남 대사관에서 쫒겨날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것을 그제서야 한없이 자책하고 있었다.

 “ 현우형제.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운남성 아지트는 이제 졸지에 열명의 탈북자에게 새로운 제2의 임시 거처이자 은신처가 되어버린것이다. 원래는 현우가 부영에게 가방만 건네받고 돌아가기로 되어있던곳. 집주인인 사업가도 처음엔 그렇게 선교회 관계자들끼리 중간에 만나는 약속장소로 사용될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졸지에 열명이나 되는 탈북자를 받아들이게 되자 적잖이 놀라고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부영이 사업가를 거듭 설득 이들이 한국땅으로 들어갈수 있는 다른 방도가 생길때까지만이라도 봐달라고 해서 사업가의 마음은 겨우 돌려놓을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리 넓지 않은 평수의 아파트에 열명의 탈북자에 현우와 부영까지 무려 열두명이 한 집에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부영은 그녀대로 최수정 간사와 이신애간사를 다시 호출했다. 사실 수정과 신애는 그렇게 현우가 13인의 탈북자와 함께 연변을 떠난뒤 자신들이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하는수없이 그들도 다시 운남성으로 불러 새로운 대책을 논의할수밖에 없었다. 며칠후 수정과 신애까지 도착해서 아지트의 식구는 졸지에 열네명으로 불어나고 말았다. 이래서야 운남성의 한국인 사업가가 집주인인 좁은 평수의 아파트에 열명의 탈북자와 네명의 한국인 선교단체 관계자까지 포함 어찌보면 연변교회의 13인의 탈북자가 은신해있던 그 공간보다도 협소한곳에 열네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 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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