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whaedra.egloos.com

포토로그



걸그룹 팬픽 - 프로듀스 101 최유정 (6) 걸그룹 팬픽 (프로듀스 101)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정과 세정은 이미 그보다 9년전에 ‘카나다 이모할머니’를 만나본적이 있다. 바로 유정과 세정의 아버지인 영기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때 카나다로 이민간지 3년정도가 지난 무렵인 지숙은 마침 한국에 들어와 있을때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볼수가 있었고 당연히 상을 치를때도 다른 식구들과 함께 있었다. 그때 이제 겨우 세 살난 큰딸 세정과 돌지난 유정을 데리고 와 함께 빈소를 지켰던 영기. 아이들은 영기의 이종사촌들이 돌아가면서 맡아보고 있을때, ‘카나다 이모할머니’인 지숙도 애들을 본적이 있긴하다.

 저녁 식사때 무렵. 이때도 문상객들은 계속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지연,지숙등 5자매와 그 가족들은 식사는 교대로 돌아가면서 하면서 문상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연 5자매가 모두 생전에 사회활동을 대체로 활발히 한 편이며 그 남편들도 저마다 사회에서 어느정도의 지위나 위상을 갖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인연들로 알고있는 친구,지인,동료들이 모친상 혹은 빙모상을 당한 동료,지인의 빈소를 많이 들렀던것이다. 그래사 사흘장을 치른 영기 외할머니의 빈소에는 특히 이틀째 되는날엔 수많은 문상객들로 인해 유가족들은 그야말로 눈코뜰새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하루가 가고있는 저녁무렵. 세정이는 방글이와 은희등의 고모의 손에 이끌려 그네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돌지난 유정이는 윤선이가 간단한 이유식을 즉석에서 만들어 먹여주고 있었고, 그렇게 영기의 아이들 돌보는 일까지 졸지에 보통일이 아니게 된 셈인 영기의 이종사촌들. 한편 그때 지숙도 저녁을 먹기위해 그 옆에 착석을 했다. 세정이 잠시 그런 지숙을 빤히 쳐다보았고. 영기 아이들하고의 인사야 빈소에 도착했을때 간단히 나누었고 다만 이틀을 정신없이 보낸터라 지숙은 그때까진 영기의 아이들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돌보거나 할 시간은 없었다. - 어차피 아이들 돌보는 일이야 영기 이종사촌들에게 맡겨진 임무이기도 하고. - 여하튼 영기의 큰딸 세정이를 그제서야 처음 가까이서 보게된 셈인 지숙. 살짝 짖궂게 장난기가 발동 세정이에게 물었다.

 “ 아가, 여기 이 아줌마 누구야 ? ”

 자신을 스스로 ‘아줌마’라 지칭하며, 아마 영기네 아이가 자신을 아는지 궁금해지기도 해서 그렇게 물은것이다. 세정은 아마 실제로 제대로 모르는지 키도 제법 커보이고 낯설기도 한 이 50대 후반의 여인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숙이 거듭 장난스레 물었다.

 “ 이모야, 이모할머니야 ? 대답해봐 아가. ”

 아직 애기의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지 지숙이 그와같이 물었고 세정인 좀 헷갈리는듯 싶더니 그러다 약간 얼버무리는듯한 말투로 이와같이 답한다.

 “ 이모...할머니... ”

 “ 응 ? 뭐라고 ? ”

 “ 이모 할머니... ”

 “ 허...뭐라구 ? 내가 이모할머니야 ? 할머니라구 ? ”

 지연의 동생들인 지숙이나 지선,지혜,지희등 아직은 50대 정도의 나이이니 ‘할머니’ 소리를 아직은 별로 듣고싶지 않은 좀 애매한 나이긴 하다. 물론 지혜,지희등도 어느덧 결혼적령기의 딸들을 둔 사람이긴 하지만 여하튼 아직은 그렇게 늙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은지 큰조카 영기의 딸이기도 한 애들한테 ‘이모할머니’란 소리 듣는것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드나보다. 특히 지숙은 그 감정이 좀 더하기라도 한듯 재차 확인이라도 받고픈듯 아이에게 묻는다.

 “ 아가 ? 뭐라구 ? 다시한번 말해봐 ? 내가 누구야 ? 이모야 ? 이모할머니야 ?

 ”

 “ 이모...할머니... ”

 어른이 계속 그와같이 묻자 애기 입장에서 과연 이 여인이 ‘이모’인지 ‘이모할머니’인지 정말 헷갈리기라도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게 맞는지 몰라 난감해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러자 좀 안되었다 싶기도 한지 그때 마침 밥을 먹으러 온 승희가 놀리듯이 지숙에게 말했다.

 “ 이모, 포기해요. 우리 이미 세정이한테 ‘고모 인증’ 받았어. 근데 세정이한테 우

  리가 고모인데 어떻게 이모가 이모에요. 이모 할머니지. 안 그래요 ? ”

 “ 아니...뭐...뭐라구 ? 아니, 근데 요게 정말 ? ”

 어쨌거나 ‘할머니’소리 듣는것 별로 기분 안 좋은것은 분명한가보다. 그러나 더더욱 발끈하는 지숙을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세정이를 밥을 먹여주고 있던 은희가 한마디 덧붙인다.

 “ 세정이가요 아까 저보곤 ‘눈 큰 고모’라 부르고 은희한테는 ‘이쁜이 고모’라 부

  르더라구요. 눈큰고모, 이쁜이고모 졸지에 세정이한테 이렇게 별명까지 붙었지

  뭐에요 ? ”

 “ 얘가 다 안다는 이야기야. 누가 고모고 누가 할머닌지...그러니 이제 이모가 포

  기해요. ”

 유정이에게 이유식을 먹여주던 윤선이까지 그렇게 한마디 하자 지숙도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기가 쉽지 않은지 자리에서 일어서선 씁슬한듯 혼자 손부채질을 한다. 윤선,방글,은희,승희등 다른 조카들은 그런 이모의 모습이 우습기라도 한듯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이기까지 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세정은 그저 주위를 멀뚱멀뚱 돌아보기도 하고, 유정이가 다시 칭얼대자 그런 아이를 윤선이와 방글이가 달래주고 있다.

 자정무렵이 되어서야 이제 문상객은 거의 뜸해졌고, 유가족들만 남아 대체로 한가로운 분위기의 빈소가 되었다. 하지만 고인의 딸만 다섯이고 그 밑으로 손자가 하나(영기) 그리고 손녀가 여섯이니 그렇게 직계 유가족만 대략 꼽아도 20명 가까운 숫자이니 분위기 자체는 좀 여유로울 지언정 한산한 분위기라곤 볼수없다. 실제 다른 식구들은 다른 문상객들 또 오시는 분이 없나 싶어 영안실 입구와 휴게실쪽을 좀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몇몇은 지치기라도 한듯 저쪽에서 팔다리를 주무르며 그러다 그대로 잠이들기도 한다. 한편 지숙은 지숙대로 동생들과 가벼이 술 한잔을 나누고 있었다. 큰딸 지연은 아직 빈소를 지키는 중이다.

 “ 에이고 참...진짜 세월도 빠르다. 영기 애까지 벌써 저렇게 크고...야, 나 진짜

  아까 ‘이모할머니’ 소리 듣는게 기분 되게 이상해지더라. ”

 아직도 영기 딸인 세정이로부터 ‘이모할머니’ 소리를 들은 느낌이 기묘하기도 하고 남다르기도 한지 그렇게 말하고 있는 지숙. 지혜,지희등 다른 동생들도 영기 딸 세정이에 대해 한마디씩 입에 담는다.

 “ 세정이 아까 우리보고도 이모할머니라 하던데 뭐. 애가 벌써 알건 다 아는 눈치

  더라. ”

 “ 허허...그래 ? ”

 “ 아까 은희 하는 이야기 못들었어요 ? 은희보곤 눈큰고모, 승희보곤 이쁜이 고모

  라 한다잖아. 애가 그러니 우리 누군지 벌써 다 안다는 소리에요. 지 아빠가 옆에

  서 우리한테 ‘이모’라고 부르는거 보고 그렇게 느꼈나보지. 지 아빠한테는 이모고

  지한테는 이모할머니라는거... ”

 “ 아이구 그래. 고녀석 참 누굴 닮았는지 똑똑하기도 하다. ”

 영기의 딸 세정이를 겪어본 하루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그렇게 저마다 토로하면서 어머니의 발인을 하루 앞둔 둘째날 빈소의 밤을 딸들은 그렇게 보내고 있었던것이다.





 여하튼 그것이 벌써 10년전(2005년)의 일이고, 1년전에 지숙이 한국에 들어왔을때도 세정,유정,소혜 3자매의 절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전화통화까지 하게 되다보니 작년 모습보단 10년전 모친상(지숙에겐 어머니, 영기에겐 외할머니)을 치를때 보았던 어린 세정이나 유정이의 모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어서일까. 지숙은 도무지 영기 딸과 자신이 지금 통화를 하고 있다는게 좀체 실감이 나지 않아 얼떨떨해지기까지 한 느낌으로 유정과의 통화를 이어가고 있다.

 “ 어이구 그래. 카나다 이모할머니까지 기억하는걸 보니...유정이가 이제 정말 많

  이 큰 모양이구나. 그럼, 언니는 지금 모하는데 ? ”

 유정이 위로 언니 세정이 있다는걸 알고있지 않은가. 그것도 10년전 ‘이모야, 이모할머니야 ?’ 하고 지숙이 물었을때 제법 또렷하고 당차게 ‘이모할머니’라고 거듭 말해 지숙을 충격받게 만들었던 그 꼬맹이. 어찌보면 유정이보다 그 세정이가 더 궁금해져서 물어본 질문이기도 한데 여하튼 그 질문에 유정은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답한다.

 “ 언니는...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다른 볼일이 있는지 좀 늦네요. 아

  마 곧 올거에요. ”

 “ 어, 그래 ? 언니는 지금 몇학년인데 ? ”

 “ 언니는 지금 중학생이죠. 중학교 1학년요. ”

 “ 어유 그래 ? 언니가 벌써 중학생이야 ? 유정이 넌 그럼 ? ”

 “ 전 초등학교 5학년이고요. ”

 “ 어이구 그렇구나. 세정이,유정이가 벌써 그렇게 컸구나. 헌데 너희들 밑에 동

  생도 있지 않니 ? ”

 “ 소혜요 ? ”

 작년에 한국에 들어왔을때 인사 나눈적이 있으니 지숙은 물론 영기가 세정,유정이 밑으로 딸 하나를 더 낳은것은 알고있다. 그게 궁금해서 물은것이고 유정의 말소리를 바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이와같이 묻는다.

 “ 소...뭐라구 ? ”

 “ 제 동생 이름이 소혜에요. 소혜도 한번 바꿔드려요. ”

 “ 아니 뭐...기왕이면 소혜 목소리도 들으면 좋기야 한데...근데 왜 걔만 소혜야.

  세정이,유정이 너흰 ‘정’자 돌림이잖아. ”

 “ 저랑 언니 이름은 아빠가 지어주셨구요. 소혜 이름은 엄마가 지어주셨어요. ”

 “ 아니 뭐...요즘은 아빠가 지어주고 엄마가 지어줬으면 돌림자도 따로 있는거야

  ? 뭐 그건 그렇다치고...소혜도 그럼 좀 바꿔다오. 어디 소혜 목소리도 좀 들어

  보게. ”

 지숙의 말해 유정이 소혜를 불러서 동생도 이모할머니와 전화통화를 해보게 했고,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소혜는 ‘이모할머니’시라는 둘째언니 유정의 말에 ‘이모할머니 안녕하세요 ?’ 하고 또렷하게 말한다. 그 목소리에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하는 지숙. 이제 자신도 영락없는 할머니로구나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기라도 한 것일까. 한편 전화를 건 용무는 따로 있으니만큼 그에대한 궁금함을 유정이에게 묻는다.

 “ 그나저니 할아버지는 지금 뭐하시니 ? 댁에 안 계셔 ? ”

 “ 할아버지 가끔 아르바이트 하러 나가세요. 그래서 오후 늦게쯤 들어오세요. ”

 “ 할아버지가 아르바이트를 나가신다구 ? ”

 영기의 아버지 한우택도 지금은 나이가 어느덧 70대 중반을 지나 후반에 접어들고 있다. 그만한 고령에도 무슨 일을 한다는게 좀 이해가 안가서인지 지숙이 의아해서 묻고 그 물음에 유정이 답해준다.

 “ 할아버지는 그래도 가끔 일은 하시고 싶으신가봐요. 집에만 있으시면 심심하시

  다나요. 그러면서 사회에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봉사하고 기여하고 싶으시다면서

  ...뭐 여하튼 가끔 아르바이트 나가세요. ”

 “ 허허 참...니 할아버지도 여전하시구나. 할머니는 그럼 모하셔 ? ”

 “ 할머니는 가끔 나가시는데...어디 가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 모른다구 ? ”

 “ 네, 뭐 가끔 친구도 만나러 나가시고 모임도 나가시고 그러시나본데 여하튼 정

  확히 어디 가시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

 “ 나 원...니네 할머니는 젊었을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

 “ 예 ? ”

 “ 니네 할머니...젊을때도 그랬어. 그때도 집에 전화걸면 그땐 니 아빠가 딱 지금

  너처럼 대답하곤 그랬다. 무슨 계모임에 나간다느니 무슨 초청모임에 나간다느

  니...뭐 여하튼 바쁘다면서...니네 할머니는 어쩜 그렇게 젊을때나 다 늙어서나 달

  라진게 하나도 없니 ? 그러고보니 너 딱 전화받는 모습도 니 아빠 어릴때 모습

  그대로다. ”

 “ 제가요 ? ”

 이런 소린 유정도 처음 들어봐서일까.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지 얼굴이 살짝 빨개지면서 머리를 한번 긁적인다. 지숙의 말이 이어진다.

 “ 니 아빠도 너만할 때 이모할머니가 전화하면 늘 그런식으로 말했어. ‘친구 만나

  러 가신건 맞는것 같은데 몇시에 들어오실련지는 모르겠다‘구. 어쩜 너도 딱 니

  아빠랑 똑같냐 ? ”

 “ 죄송해요 할머니. ”

 “ 아니, 뭐 죄송할것 까진 없구. 그럼 아빠는 지금 뭐하시니 ? ”

 “ 아빠야 회사 가셨죠. ”

 영기는 아버지가 하던 중소기업을 물려받아 지금껏 운영중이다. 그러니 지금은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에 있을시간. 따라서 유정이 이와같이 물은것이다. 지숙의 물음은 계속된다.

 “ 엄마는 ? ”

 “ 엄마도 직장다니세요. ”

 “ 엄마도 직장다니셔 ? ”

 이 무렵(2010년대 중반)의 3,40대 주부들이야 웬만하면 다 맞벌이를 하는 시대. 따라서 수미도 중소기업을 2대째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영기와는 별개로 그녀도 자기 일을 하고 있다. 수미는 대학은 법대를 나왔고 그후엔 주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해왔는데, 지금은 그 시절 인연으로 알게된 변호사출신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는 중이다. 다만 유정이는 엄마의 구체적인 직업까진 몰라서인지 그냥 ‘직장 다니신다’고만 짤막하고 막연히 대답한것이다. 여하튼 졸지에 유정이네 식구들 현재 상황을 모두 파악하게 된 카나다의 지숙. 여러 가지 감회에 젖어 말을 이어간다.

 “ 어이구 그렇구나. 그나저나 우리 세정이,유정이 그리고 소혜 다들 진짜 많이컸

  네. 아이구...이 이모할머니가 생전에 너희들 또 볼날이 있기나 할련지 모르겠다

 ”

 어느덧 나이 70을 바라보는 노파의 청승을 그와같이 늘어놓고, 유정은 나름 카나다 이모할머니를 위로해 드리고픈 마음에서 이와같이 말한다.

 “ 오래오래 사세요 할머니, 건강하시고요. ”

 “ 어이구, 그래. 고맙다 유정아. 근데...언니는 아직 학교에서 안 돌아왔다고. ”

 “ 네, 올시간 다 되긴 했어요. ”

 “ 그래, 중학생 되더니 이제 공부하느라 늦는 모양이구다. 이모할머니가 기왕이면

  우리 세정이하고도 좀 통화하고픈데, 언니 들어오면 그렇게 좀 전해줘라. 아, 그

  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시면 카나다 이모할머니한테서 전화왔었다고 꼭 좀 전

  해 드리고. 알겠지 ? ”

 “ 네, 할머니. ”

 “ 어이구 그래. 유정이가 진짜 똘돌하고 많이 컸구나. 할머닌 그럼 이제 전화 끊

  는다. ”

 “ 네, 할머니.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

 


 며칠후 카나다 이모할머니 지숙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이번에 전화를 받은것은 첫째 세정이었다. 지숙이야 10년전 모친상때 그때 당시 네 살난 세정이가 ‘이모야, 이모할머니야 ?’ 하고 물었을때 ‘이모 할머니’라고 또박또박 대답하던 고 깜찍한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서너살때의 일을 기억할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다만 세정도 유정으로부터 ‘카나다 이모할머니’란 분한테서 전화가 왔었고 세정 역시 아빠랑 동생들이랑 1년전에 그 카나다 이모할머니란 분께 인사를 드리러 간적도 있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 어이구 그래. 세정이가 벌써 중학생인가 보구나. 이젠 진짜 숙녀가 다 되어 있

  겠네 ? ”

 뭐라고 대꾸하기엔 쑥스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해서 별다른 말은 없이 부끄러운 미소만 지어보이고 있는 세정. 지숙이 그런 세정에게 말을 건넨다.

 “ 그래, 동생들은 어찌 지내니 ? 동생들도 다 잘 있어 ? ”

 “ 유정이하고 소혜도 다 잘 지내죠 뭐... ”

 유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격이 좀 무뚝뚝해진걸까. 아니면 이제 자기만의 세계, 자신만의 생각을 갖기에 충분한 사춘기로 접어드는 소녀라서일까. 유정이 그런대로 카나다 이모할머니의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을 잘 한 반면 세정은 웬지 시큰둥한 분위기로 지숙의 말에 대꾸하고 있다. 아마 지난번 유정과 통화한 이후 언니 지연이나 형부 한우택과의 통화까진 이루어지지 못한듯 다시한번 지숙은 할머니,할아버지 지금 어디 계시고 언제 들어오시는지를 묻는다. 세정은 두분 다 외출하셨고 아마 늦게 들어오실거라는 대답을 했으며 그런 세정에게 지숙은 사뭇 간곡하게 말한다.

 “ 그래, 할머니 들어오시거든 카나다 이모할머니 한테서 전화왔다고 말씀드리렴.

  꼭 좀 부탁한다. ”

 세정이 할머니 지연이 귀가했을때 그 말을 전해서 그 다음날에 지연이 직접 동생 지숙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카나다와의 시차는 맞추어야겠기에 일부러 다음날 오전 시간을 택한것이다.

 “ 뭐 그냥 언니 보고싶기도 하고 소식도 궁금하고 해서 전화한거지 뭐. 어머, 언

  니. 근데...유정이 걔는 어쩜 영기를 똑 닮았어 ? ”

 “ 누구 ? 유정이가 ? ”

 “ 응, 나 처음엔 전화했을때 웬 어린 여자가 전화를 받아서 처음엔 누군가 하고

  깜짝놀랐어. ”

 “ 왜 ? 형부가 나이 70에 나이어린 새여자라도 들인줄 알았냐 ? ”

 “ 언니도 참...농담을 해도...아니 난 처음엔 그래서 웬 어린여자가 전화를 받나 싶

  기도 하고 그래서 아무래도 내가 전화를 잘못걸었나보다 하고 바로 끊었거든. 근

  데 다시 두 번세번 전화해보니까...‘한우택 선생님 댁 아니냐 ?’고 물어봤더니 걔

  가 그렇게 대답하더라고. ‘우리 할아버지’라고. ”

 “ 그래, 유정이한테 형부가 할아버지지 뭐. 그게 뭐 ? ”

 뭐 그런 당연한것을 묻느냐는듯 사뭇 놀리듯이 대꾸하고 있는 지연. 지숙은 지숙대로 그녀의 말을 이어간다.

 “ 아니, 근데 그러면서 유정이 걔랑 쭉 통화하다 보니 말투가 보니까 딱 영기 그

  대로인거 있지. 말투하며 그 분위기가...아유...옛날에 내가 언니네 집 전화하면

  영기가 전화 받았을때 딱 그 모습 그대로지 뭐야. 어마, 어쩜. ”

 흔히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지만 영기 딸에게서 영기의 모습을 그대로 느낀 지숙은 그 자체가 신기하면서도 바로 그와같은 속설을 실감한듯 해서 그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의 느낌을 그와같이 말하고 있는것이다.

 하긴 10년전 영기 외할머니 상때도 지숙은 그런 느낌을 받긴 했었다. 당시 이미 한참 말이 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한 네 살난 세정은 제법 이제 뭘 아는지 제 아빠 영기의 이모인 지숙에게 꼬박꼬박 ‘이모할머니’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와 반면 이제 돌지난 둘째 유정이는 이런 상가(喪家) 분위기를 알리는 없을테고, 딴에는 저희를 돌봐주는 고모(5촌고모-영기의 이종사촌들)들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그 아이의 모습을 한번 지켜보며 지숙은 지숙대로 그와같이 감탄한다.

 “ 어머, 어쩜 얘는...자는것 하며 모습이 어떻게 영기 어릴때랑 똑같니. 그냥 영기

  애기때 그대로야. ”

 “ 어머, 그래요 이모 ? ”

 유정이를 번갈아가며 교대로 재우기도 하고 얼르기도 하던 윤선이,방글이,은희,승희등 영기의 사촌들이 그와같이 물었고 그런 조카들에게 지숙은 이와같이 말했었다.

 “ 그래, 딱 예전에 내 품에 안겨 잠들었던 그 영기모습 그대로다. 이모가 옛날에

  영기오빠 기저귀도 갈아주고 우유도 먹여주고 다 했었는데 ? 야 ? 어디 영기 기

  저귀만 갈아줬냐. 정혜,단비,윤선이,방글이 다 내가 한번씩 안아주기도 하고 재워

  주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주고...니들한테 할건 한번씩 다 해줬다 이것들아. ”

 여하튼 그런 지숙의 말에 조카들은 신기한듯 그런 유정과 영기의 모습을 한번 바교라도 하듯 번갈아 바라보기도 했고, 지숙은 지숙대로 그런 조카들에게 한마디 했다.

 “ 그러니 나중에라도 갚어 이것들아 ! 알았어 ? 니들 기저귀 한번씩 갈아준것 여

  기 이 이모님이시니까 말야 !!! ”

 “ 푸훗~! 네에...알았어요 큰 이모. ”

 지숙이 5자매중 둘째니까 동생인 지혜,지희,지선이의 아이들한테야 당연히 큰이모가 될테고 다만 영기의 경우엔 지숙도 엄마의 동생이 되는것이니까 어떨땐 큰이모로 어떨땐 작은이모로 번갈아 부르기도 했다. 여하튼 큰이모가 되었든 작은 이모가 되었든 여하튼 영기의 어린시절과 똑 닮았다는 소리를 그때부터 들었던 유정이. 막상 그런 조카손주들하고의 통화까지 해보니 다시금 어떤 북받치는 무엇이 있기라도 한지 지숙은 지연과 통화하며 살짝 눈물젖은 목소리로 말한다.

 “ 언니... ”

 “ 왜, 지숙아 ? ”

 결혼후 20년동안 아이가 없다가 90년대 중반에 이혼하고 그것도 어느덧 20년전 일이 되고 카나다로 이민을 간다고 떠난지가 어느덧 십여년이 지난 그런 동생이 아닌가. 나름 박복하다면 박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수있는 기구한 동생에 대한 언니로서의 어떤 애틋함이 느껴져서인지 순간 지연도 짠해진 말투로 동생을 불러본다. 지숙은 한숨을 내쉬며 언니에게 말한다.

 “ 나 진짜 이제 조만간...카나다 생활 정리하고 진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

  이들고 늙으니까...이제 진짜 죽은뒤 고향땅에 묻히고 싶다 그 생각이 다 나지 뭐

  야. ”

 “ 그래, 뭐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어와. 그건 언니도 지난번에 이야기 했잖

  아. ”

 “ 언니... ”

 “ 왜 또 지숙아 ? ”

 무슨 또 할 이야기가 있는것인지 나이들어 늙었음인지 갈수록 청승이 늘어지는 동생이 좀 딱해보이기도 하는 지연은 그런 감정을 담아 다시금 동생을 불러보고 지숙은 여전히 눈물젖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 나 그리고 광식이,하식이,형식이...얘네들도 한번 보고싶다. 죽기전에 한번 꼭 좀

  말야. ”

 “ 광식이...하식이...보고싶다구 ? ”

 “ 응, 형식이까지...걔네들 다... ”

 지숙이 언급한 광식이,하식이,형식이는 다름아닌 이들 지연,지숙자매의 외사촌 동생들이다. 문지연 5자매의 어머니는 고향은 강원도 화천이지만 20대 중반의 당시로선 늦었다고 할수 있는 나이에 서울로 시집을 와서 지연,지숙,지혜,지희,지선 이렇게 5자매를 낳고 키우며 살아온 것이다. 그 시절 여인들이 대개 그렇듯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해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그런 여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사뭇 억척스럽게 5자매를 대학까지 보내며 제법 훌륭하게 키웠다. 한편 그런 지연 5자매의 어머니는 사실 집안에서 큰딸이고 밑으로 남동생이 여러명 있어 지연 오자매에겐 나이터울이 좀 지는 외사촌 동생들이 있었다. 그러니 지연 5자매에게 외사촌들이니 지연의 아들 영기한테야 뭐 친척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보다도 먼 사람들이고 - 따라서 영기야 굳이 신경쓸 필요까진 없는 사람들이고 - 지숙은 지숙대로 그냥 자기 언니 지연한테 어린시절 어울리던 그 외사촌 동생들이 보고싶다는 말을 입에 담고 있었던것이다.

 “ 우리 옛날에 광식이,하식이,형식이 방학때 되면 서울로 초청해서 부르곤 했었

  잖아. 그래서 언니랑 내가 애들 서울구경도 시켜주고. ”

 지연과 지숙에겐 대략 열 살정도 터울이 지는 외사촌 동생들. 그 시절 기준으로 그야말로 강원도 촌아이라고 할수있는 그 아이들을 지연 5자매의 어머니가 가끔 방학때가 되면 서울로 초청하곤 했고 그러면 사촌누나가 되는 이들 지숙,지연등이 아이들을 창경원이다 덕수궁이다 남산이다 하는곳으로 데려가 서울구경을 시켜주곤 했던것이다. 요즘에야 강원도 지역에서 서울 오는게 뭐 그리 힘들고 어려운일은 아니겠지만 아직 고속도로도 생기기 전이고 국도도 시원찮아 오직 기차외에는 다른지역으로 이동할만한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1960년대) 그 시절에 화천쯤 되는 강원도 시골에서 서울에 친척이 있어 방학때 가끔 올라올수 있는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굉장한 특혜를 누릴수 있었던 그런 아이들이었을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50년전의 일. 여하튼 지연,지숙 자매의 외사촌인 광식이니 하식이니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어린시절 서울살던 열 살 터울지는 사촌누나들 덕에 가끔 방학때 서울와선 그렇게 서울구경 실컷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나본데 지숙은 새삼 그때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나보다.

 “ 이제 걔네들도 다 늙었겠지 ? ”

 “ 그렇지 뭐. 우리랑 열 살이상 차이 나는 애들이니까 걔들도 벌써 한 50대 중,후

  반 그쯤되지 않았겠냐 ? 그러고보니 이제 걔네들도 아들,딸 시집,장가보낼 나이

  벌써 되었겠다. ”

 “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네 ? 이야, 그건 진짜 실감 안난다. 광식이,하식이,형식이

  그 꼬맹이들이 벌써 자라서 그것도 아들,딸 시집 장가 갈 나이 될 정도로 늙었

  다는건...언니 나 지금 그 생각을 하니 정말 실감이 안나. ”

 “ 녀석... ”

 이런 옛날 이야기를 자꾸 입에 담는걸보면 지숙이 이 아이가 진짜 이제 늙긴 늙었구나 그리고 향수병을 심하게 타는가보다 하는 생각에 지연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름대로 박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수있는 동생, 그리고 그 동생의 살아온 지난 시간을 그래도 제법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할수있는 언니인지라 그 마음이 이해가는지 지연도 돌연 울컥해진다. 지숙이 다시 어린애마냥 언니를 불러본다.

 “ 언니... ”

 “ 왜 또 지숙아 ? ”

 “ 나 그리고 이 다음에말야... ”

 “ 뭐, 죽으면 마포나루에 묻어달라구 ? ”

 1년전 바로 언니와 동생들 있는 자리에서 그런말을 유언처럼 하던 지숙이 아닌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언니 지연이기에 그렇게 물은것이다. 다만 요즘은 화장한 유골을 강이나 바다에 뿌리는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그 방법은 좀 생각을 해 봐야할것이다. 여하튼 마포나루에 뿌리든 묻어주든 벌써 죽을생각까지 하고 있는 동생을 보니 슬퍼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자신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 벌써 죽은뒤의 일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 역시 갈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인것 또한 분명한 사실 아닌가. 그걸 생각해보니 지연 역시 가슴아파지고. 그렇게 칠순을 바라보는 두 노파의 슬픈 청승이 잠시 넋두리처럼 이어졌다.

 “ 그래, 지숙아. 아무걱정 말고 카나다 생활 정리하고 한국 들어와. 아무렴 우리가

  너 하나쯤 건사해줄만한 능력이 안 되겠니 ? ”

 “ 나 진짜 한국 돌아가면...그렇게 옛날 어릴때 어울리던 사촌들이나 만나고...그리

  고 조카들이나 보고 조카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그러고나 살고싶어. 그래도 되

  겠지 언니 ? ”

 “ 그래그래. 뭐 나이 70에 이제와서 떼돈을 벌겠니 그렇다고 새 남자를 만나겠니

  ? 아무걱정 하지말고 카나다 생활 정 청산하고 싶으면 깨끗이 정리하고 한국 들

  어와. 언니도 있고 지혜,지희,지선이 다들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데 뭐가 걱정이

  니 ? ”

 “ 애들이 나 늙었다고 구박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언니 ? ”

 생각해보면 남편도 자식도 없는 처지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것도 아닌 60대 후반의 지숙. 이런몸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면 딱히 어디 의탁할데도 없고 그러니 언니나 동생네 집들 경우에 따라선 조카들 집들까지도 순례라도 하듯 전전하며 그러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아마 지숙의 눈에도 어린시절엔 그런 오갈데없이 아는 친척집이나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런 무일푼의 친척노인의 모습이 가장 꼴보기 싫은 모습이었을것이다. 헌데 이제 나이 70에 이른 자신이 영락없이 딱 그 신세가 될것을 생각하니 걱정도 되고 설움까지 북받쳐오르는것이다. 자신이 이리될줄 알았으면 어린시절이나 젊은시절 오갈데 없이 가끔 집에 들러 신세지거나 자기 엄마,아빠한테 아쉬운 용돈 타령이나 하던 그런 백수건달 친척 할아버지한테 조금이라도 잘해드릴걸 그런 후회까지 든다. 한국으로 들어가면 과연 언니나 지혜,지희,지선이야 그래도 피붙이니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만 이제 다들 시집가고 장가가서 자기 아내나 남편도 있고 자식들까지 있는 조카들이 자신을 어찌 대할까. 그걸 생각하니 벌써 걱정이 태산인것이다.

 “ 그래, 걱정마. 행여 영기나 며늘아이(수미)나 또는 세정이,유정이,소혜나 만약

  이모나 이모할머니 오갈데 없는 노인이라고 구박하거나 타박하면 내가 엄마로

  써 시어머니로써 할머니로써 아주 따끔하게 혼줄 내줄테니까 걱정말고 들어와

  알겠지 ? ”

 “ 고마워 언니, 흑~! ”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지숙. 그녀의 말은 계속된다.

 “ 지혜네 애들 정혜와 단비, 지희내 애들 윤선이,방글이 그리고 지숙이네 애들

  은희와 승희 걔네들도 나 구박 안 하겠지 ? ”

 정혜고 단비고 윤선이고 방글이고 은희고 승희고 간에 그네들도 다 이제 시집가 아들,딸 하나씩은 둔 그런 처지 아닌가. 그런 상태에서 과연 그런 조카들이나 언니,동생들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야하는 지숙을 어찌 볼것인지 그저 걱정만 앞설뿐인 그녀. 천덕꾸러기 이모, 천덕꾸러기 이모할머니. 딱 그런 모습이 되는것은 아닐지 하는것이 지금 지숙을 한없이 슬프고 아프게 만들고 있는것이다.



- 7회에 계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