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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프로듀스 101 최유정 (3) 걸그룹 팬픽 (프로듀스 101)



 선애가 유정이가 자기 아들과 사귀는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대충 뭔지 이제 알수 있을것 같아서인지 수미는 약간 씁쓸하고 착잡한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본다. 그리고는 사뭇 안타까운 감정을 담아 선애에게 말을 건넨다.

 “ 선애야... ”

 무표정한 얼굴로 수미의 시선은 살짝 외면한채 음료수를 한모금 마시고 있는 선애. 수미의 말은 계속된다.

 “ 유정이는 영기딸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내 딸이기도 해. 그리고 무엇보다... ”

 “ ...... ”

 “ 조금전에도 말했지만 이제 영기도 더 이상 예전의 영기가 아니야. ”

 뭔가 간곡함을 담아 설득하듯 말하는 수미지만 선애는 그래도 탐탁치 않은듯한 표정이다. 그래도 시선을 외면하던 조금전과는 달리 수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선애의 말은 이어진다.

 “ 그럼 뭐...지금은 어떻다는 이야긴데 ? ”

 “ 후훗... ”

 헌데 선애의 그와같은 말에 대답하기가 좀 난감하기라도 한것일까. 바로 그와같은 선애의 질문에 대답은 못하고 묘한 헛웃음만 입에 담는 수미.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 그리고 너 좀전에...유정이가 딱 영기 닮았더라고 그랬는데... ”

 “ ??? ”

 “ 사실 굳이 따지자면...니 말마따나 외모는 유정이가 영기를 많이 닮은것은 맞아.

  작달막하고 동글동글한 얼굴. 그리고 살짝 살이오른 몸매. 딱 젊은 시절 영기 체

  구지.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실제 애들 키우면서도 주위에서 특히 어른들로부터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 큰딸 세정이는 엄마인 날 많이 닮았고, 둘째 유정이는

  제 아빠를 많이 닮은것 같다고. ”

 선애는 대꾸는 없지만 얕은 한숨이라도 내뱉는것인지 숨소리가 다소 크게 들려오고 그런 선애를 바라보며 수미의 말은 계속된다.

 “ 그리고 성격적인 면은 막내인 소혜가 아빠를 닮은것 같더라. 한마디로 외모는

  유정이가 성격은 소혜가 영기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은듯 하더라구. 실제 막내애

  는 제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좀 엉뚱한 면이 있기는 해. 가끔 돌출행동을 하기도

  하고... ”

 “ 유정이는 어떤데 ? ”

 “ 말했잖아 지금. ”

 글쎄, 생각해보니 이런 상황에서 어떤 답을 해야할지 이 또한 그런대로 난감하다면 난감한 상황인듯 하다.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도 자기자랑이라도 하듯 긍정적으로 대답해야할지 아니면 겸손이나 비하라도 담아 부정적으로 대답을 해야할지 난감하기도 하지만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란 말도 있는것처럼 자기 자녀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너무 쉬이 하는것도 좀 난감한 일인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수미는 유정이가 어떤 아이냐고 묻는 선애의 질문에 더욱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느낌을 받고 다만 어쨌든 선애가 유정이를 거부하는것이 결국 영기를 닮았으면 어쩌나 하는 점 때문이란것을 주지해서 일단 그 점을 유념한듯한 답변의 말을 이어간다.

 “ 유정이는...어릴때부터 좀 차분하고 침착한면도 있었어. 생각도 깊고. ”

 “ ...... ”

 “ 공부는 그리 잘 하는 편은 못 되었지만 애가 나이에 비해 좀 조숙하고 성숙해

  보인다 그런 느낌이 들더라.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어려운 책들을 가끔 읽기도

  해 그런면에서 걱정을 좀 하기도 했고. 애가 역사소설이나 현대사의 비화 같은

  것을 다룬 책들을 대략 초등학교 5,6학년 정도때부터 좋아한것 같기도 하고... ”

 별다른 대꾸없이 선애는 수미의 말을 경청하고만 있고, 그런 선애의 지금 속내를 알기 쉽지않아 답답해진 수미는 일단 차분한 어조로 다시금 설득의 말을 이어간다.

 “ 선애야, 그리고 무엇보다... ”

 “ ...... ”

 “ 결혼문제는 어쨌든 당사자들 문제 아니니. 당사자들이 좋다면 부모가 아무리 결

  사반대해도 그땐 소용없는거야. 그러니까...니가 뭐 유정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든

  어쨌든 그건 니 마음이니까 내가 어쩔수는 없는일이긴 하지만... ”

 말없이 다시금 음료수 한모금을 음미하고 있는 선애. 수미의 말은 계속되고 있다. 긴장을 한 탓인지 너무 힘을주어 말을 한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이마와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기까지 하다.

 “ 행여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그런일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말 무슨말

  인지 알겠지 선애야 ? ”

 “ ...... ”

 “ 너나 나나 이제 어느덧 나이가 60. 이제 진짜 아이들 혼사문제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참 많은 시간을 살아온 인생들이구나. 우리도 한때는 결혼이 어쩌구 연애

  가 어쩌구 그런게 주요 화제거리이던 그런 젊은 시절도 있었는데말야. ”

 수미도 이야기에 너무 집중을 하다보니 지쳐서 목이 말라 오는지 물을 한모금 마신다. 그리고 숨을 좀 돌리고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 그런데 이제 진짜 너도 나도 아이들 시집 장가 보내야하는 나이까지 되었는데...

  우리 이제와서 자식들 혼사 때문에 상처주고 아이들에게 대못박는 그런 몹쓸 부

  모가 되진 말자. 이 나이에 그렇게까지 살아서 뭐 하겠니 ? 안 그래, 선애야 ? ”

 수미의 말에 마음이 조금 움직이긴 하는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탐탁찮은것일까. 대꾸도 없고 표정에도 별로 변화가 없는 선애의 얼굴을 보자 수미도 그만 답답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선애가 이제 30년전 그렇게 ‘하늘빛 72’같은 동아리에서 함께 찢고 까불던 그 시절의 선애가 더 이상 아니라는 생각에 그녀 앞에 어떤 철벽같은 장벽이 가로막혀있는 느낌마저 받는다. 수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듯 살짝 다른 방향으로 말을 돌려본다.

 “ 선애야...그리고 솔직히 나도... ”

 “ ...... ”

 “ 니가 그렇게까지 반대한다면 내 딸을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집안에 시집보내고픈

  그런 생각은 없다. 유정이...비단 유정이뿐만 아니라 세정이,소혜 다 내가 귀하디

  귀하게 키운 딸들이긴 하지만... ”

 이런 말을 입에 담으니 30년 키운 세 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북받쳐져서일까. 수미는 살짝 목이 메이기까지 하다. 다만 이런 감정을 선애에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 애쓰는 중이다. 음료수를 조금 마시며 다시 목을 축이고 스스로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는 수미.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 그런 우리 딸애들을...남자 부모로 인해 상처받고 그리고 그런집에 시집가서 시

  집살이하고 그런 모습을 내가 보고싶지는 않아. ”

 “ 무슨 내가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 ”

 그것만은 수긍하고 싶지 않은지 선애가 결국 발끈하고 만다. 다른건 몰라도 며느리 시집살이나 시키는 그런 못된 시어머니 소리는 자신도 듣고 싶지 않은것일까. 아직 유정이와 진수의 결혼이 결정난일도 아니고, 되려 선애의 반대로 인해 벽에 부딪힌 상황이건만 ‘시집살이’ 운운하는 말에는 선애가 그만 이와같이 발끈한것이다. 그 부분에서 허점을 보았음인지 수미가 그 부분을 파고든다.

 “ 뭐 요즘 세상에...정히 시부모와 사이가 안 좋으면 분가를 시켜 따로 나가 살게

  한다던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 어쨌든 선애야. ”

 “ 아...아니 저 수미야... ”

 수미 하는말이 마치 두 사람 결혼을 기정사실화한것같은 전제하에 하는 말처럼 들려 - 사실 그런 의도가 담긴말은 아니지만 - 당황해서 선애가 손을 내젓는다. 수미가 어디 할말있으면 해보라는듯 선애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나...난 뭐 그냥...여하튼 우리집은 형제도 많고...우리 진수가 4형제중 맏이잖니

  ? 내가 진웅이하고 사이에 아들만 무려 넷이나 낳고 보니까...여하튼 그런데 그

  런 집안에 유정이가 들어와서 감당할수 있을까 그걸 걱정한것 뿐이고... ”

 “ ...... ”

 “ 아무렴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 딸을 그렇게 구박하고 힘들게 만들 리가 있

  겠니 ? 나 적어도 그렇게 남은 인생 살고싶은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 그런 오해

  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유정과 진수의 결혼을 허락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며느리 시집살이나 시키는 그런 시어머니같은 이미지로 비치고 싶진 않아서인지 선애가 거듭 적극적으로 항변하고 있고 어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생각에서일까. 수미는 그런 선애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다.





 수미와 선애의 그와같은 만남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선애의 마음이 바로 바뀌거나 돌아선것은 아니었다. 나이 들어서는 사람 생각 바뀌기가 쉽지 않다더니 아무래도 선애도 그런쪽에 속하는 성격인듯 했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자기 아들 진수가 유정을 계속 만나는것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반대하진 않고 방관하는 정도로 입장이 한발 물러난 정도라고나 할까. 수미의 낯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못하는것이 지금 선애의 마음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지금 유정과 진수는 결혼을 허락받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가 부모가 그렇게 적극적으로까지 반대하는것도 아닌 약간 어정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일이 이런식으로 애매하고 미지근하게 되다보면 유정 입장에서도 아무래도 마음이 흔들릴수밖에 없다. 아무리 진수오빠가 좋아도 아빠 가슴에 대못 박으면서까지 결혼하고픈 생각은 없다는게 유정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유정의 태도도 지금은 많이 어정쩡해져 있는것이 분명하다.

 다만 영기는 그대로 나름 여러 가지 고민에 빠져있다. 하루는 1층 베란다로 나와 혼자 상념에 잠겨있는 영기. 그 모습이 좀 심상찮아 보이기도 하고 다소 걱정도 되어서일까. 수미가 그 곁으로 다가와본다. 날은 그렇게 춥지도 덥지도 않을때다.

 “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계세요 장로님 ? ”

 ‘장로님’. 그것은 수미가 영기를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선애 앞에선 ‘영기’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그때야 행여 선애가 어색해질까봐 그렇게 배려해준것뿐, 수미는 나름대로 교회에서 그만한 지위와 직분까지 있는 남편에 대한 존중이라고나 할까. 늘 영기를 ‘장로님’ 또는 ‘우리 장로님’이라 부르곤 했다. 물론 영기가 젊을때나 초신자였을때부터 교회 장로였을리는 없으니 그때의 호칭은 달랐다. 그때 수미는 영기를 ‘영기형제’ 혹은 ‘우리 형제’ 이런식으로 불렀다. 아마 그것은 영기와 수미의 첫 만남이 아무래도 조금은 어색하게 시작된것과도 연관이 있다.

 하이텔에 하늘빛 72란 크리스찬 동기생 동호회가 생겨난것이 대략 90년대 중반 무렵. 그리고 영기는 하늘빛 72가 생긴지 한 2년쯤 지났을 무렵에 처음 가입하게 된 회원이었다. 수미나 선애등은 하늘빛 72 거의 초창기때부터 친구였기 때문에 그때는 이미 거의 말을 놓으며 절친하게 지내던 그런 시절이었지만 이런 그들보다 다소 늦게 가입한 영기는 호칭이 좀 어색해 ‘선애자매’, ‘수미자매’ 이런식으로 불렀고 그러다보니 수미도 자연스럽게 영기에겐 ‘영기형제’ 이런식의 호칭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정식으로 교제를 나누고 결혼을 약속한 무렵이 되어서도 수미의 그와같은 호칭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가령 “ ‘우리 형제’는 오늘 모임은 못 온다고 하더라. ”, “ ‘우리 영기형제는 단음식을 좀 싫어하는 편이야. ” 이런식이 수미가 영기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결혼을 앞둔 시점까지도 수미의 호칭이 그와같자 다른 하늘빛 72 친구들은 너무 별스러워 보인다며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안 되겠냐고 살짝 주의겸 핀잔겸 한마디씩 하기도 했으나, 수미도 나름대로의 고집인지 소신인지 그런식의 호칭을 계속 밀어붙였다. 그러다보니 영기도 나이가 들고 신앙연륜이 쌓여지면서 교회에서 직분이 올라가자 수미의 호칭도 ’우리형제‘에서 집사가 되었을땐 ‘우리 집사님’, 권사가 되었을땐 ‘우리 권사님’, 그리고 장로가 되자 바야흐로 남편 영기에 대한 호칭이 ‘우리 장로님’에 이르게까지 된 것이다. 여하튼 수미의 ‘우리 장로님’인 남편 한영기. 그가 아내 수미를 바라보며 살짝 야릇한 미소를 한번 지어보고는 말을 건넨다.

 “ 그냥 좀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게 많아요. ”

 “ 아니, 무슨 고민이 또 그리도 많으신데요 장로님 ? ”

 “ 허허... ”

 수미의 물음에 너털웃음을 한번 지어보인 영기. 그런 그의 표정에는 나름대로의 어떤 회한과 착잡함이 서려있는듯 하다. 영기의 말이 이어진다.

 “ 어쨌든 유정이 결혼말이 나오기도 하고 하니까...내 그동안 저 아이들 키우며 지

  내온 30년 세월 그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려. 그러다보니...여러가지로 생

  각하는게 많아요. ”

 “ 괜찮으세요 장로님 ? ”

 지금은 영기도 둘째딸 유정이 어떤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것도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선애가 바로 ‘영기 딸’이라서 유정을 반대했었다는 사실도 알고있는 상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딸이라서 반대한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아비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영기는 영기대로 그래서 여러 가지 착잡한 심정을 진정시키기가 쉽지가 않다.

 “ 여보...수미. ”

 수미는 영기를 늘 ‘우리 장로님’이라 불러왔지만 영기의 수미에 대한 호칭은 일반적인 남편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여보’, ‘당신’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아이들 이름을 따서 ‘유정이 엄마’, ‘세정이 엄마’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또 여하튼 하늘빛 72 동갑내기 커플이라서인지 영기는 수미를 그냥 ‘수미’, ‘수미야...’ 이런식으로 부르는게 더 편하기도 하다. 수미가 좀 영기를 별스럽게 부르는 반면 영기는 대체로 일반적인 남편과 크게 다를것 없이 아내 수미를 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 내 젊은시절...아니 그러니까...우리 처음 만나던때 일 생각이 나오 ? ”

 그 말에 수미는 어찌된 영문인지 바로 대꾸가 없다. 바로 한두마디 말로 대답하기 어려운 어떤 복잡한 사연이 숨어있기라도 한 것일까. 영기의 말이 이어진다.

 “ 내 그때 종종 하던 말이지만...난 20대 시절을 나름 힘들게 보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름 의지처가 필요해서 주님을 영접하게 된것이지만...사실 그리스도의 자

  녀가 된 뒤로 내 나름대로 주님께 맹세했던게 있어요. ”

 “ 어떤 맹세를 하셨었는데요 ? ”

 30년 함께 산 부부고 심지어 그런 크리스찬 동기 모임에서 인연이 닿아 알게된 커플인데 지금껏 수미가 영기의 그런 부분을 모른대서야 말이 되는가. 따라서 수미의 이와같은 질문은 좀 부러 그러는 측면도 있다. 어떤 의도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와같이 물어본 수미. 영기가 그런 수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그 하나는 주님 말씀에 따라 정말 이 사회의 빛과 소금처럼...정말 이 사회의

  어렵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조금이라도 헌신하고 봉사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

 “ 또 하나는요 ? ”

 “ 또 하나는 역시 내가 이루고픈 야망을 이루게 해달라는것이었지. 그 야망이 이

  루어지는날 분명 그 야망을 결국 하나님 영광 돌리는데 쓰이게 할 터이니 제 꿈

  과 비전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지요. ”

 수미는 수미대로 그 시절의 일들이 새삼 떠올라져서일까. 묘한 감회가 이는 표정이 되고, 영기는 영기대로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가 있는듯 그의 고백이 계속되고 있다.

 “ 뭐...모르는 사람들이 볼때는...내가 그냥 아버지 하시던 중소업체 물려받아 지

  금껏 꾸려오고 있는 그런 부모 잘만난 기업인 2세...그쯤으로 보일지 몰라도...솔

  직히 나 학교다닐땐 주위의 친구들이 그런말 하는거 진짜 싫었어요. ‘영기 넌 이

  다음에 그럼 아버지 사업 물려받는거냐 ?’, ‘어우, 영기 넌 좋겠다. 그럼 이 다음

  에 취직걱정 같은거 할것없이 아버지 사업 그냥 물려받는거 아냐 ?’ 허허...모르

  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무슨 대단한 재벌가 외아들이라도 되는줄 알 그런 소리

  더군. 사실은 그냥 대기업에 부품 납품업을 하는 중소업체 사장님이었던게 우리

  아버지였는데말야. ”

 “ ...... ”

 “ 사실 아버지는 그런 중소업체를 하면서 나름 갖고계신 기업관과 사업관이 있어

  서 내가 이 다음에 그런 아버지 뜻을 물려받아 회사를 좀 계속 꾸려갔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어느정도 하셨던것은 맞아요. 하지만 난 친구들이 그런식으로 말하

  는거...‘넌 이 다음에 아버지 사업 물려받으면 되겠다’ 그런식으로 말하는게 날 마

  치 비꼬고 비아냥거리는것처럼 들려서...그래서 난 그런 소리가 더 싫었었거든.

 ”

 하는 이야기로 봐서는 영기도 알게 모르게 10대-20대 시절 적잖은 상처와 방황의 시간이 있었던것 같다. 정말 비꼬는 말이었을지 진담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재벌가 아들도 아니고 부품 납품업을 하는 중소업체 사장에 불과한 사람 아들에 불과한 한영기보고 ‘이 다음에 아버지 사업이나 물려받으라’니. 영기 입장에선 이런식의 학교때 친구들의 말. 아무래도 비꼬거나 비아냥거리는 말로밖에 받아들여질수 없었을것이다.

 “ 뭐 꼭 그런 학교 친구들의 비아냥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나도 뭐 아버지 회사나

  수동적으로 물려받아 그런거나 하는 그렇게 살고싶진 않았어. 난 그저 당당하고

  자유분방하게 내가 하고싶은일 하며 살고 싶은거였거든. 뭐 덕분에...졸지에 20대

  시절을 적잖이 파란만장하게 보낸 셈이긴 하지만말야. ”

 새삼 그 시절의 일이 떠올라져서인지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영기. 수미가 그런 영기를 다소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 대체 20대때 뭘 그렇게 하고 싶으셨던건데요 ? 도대체 뭘 하고싶어서 그렇게

  오래 방황의 시간을 보내셨던건데요 ? ”

 “ 허허...글세... ”

 어찌된 영문인지 수미의 말에 바로 답은 안하고 또다시 묘한 너털웃음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려는듯한 영기. 하지만 30년을 그와 함께 살아온 수미라서일까. 마치 그의 속내를 다 꿰뚫어보고 있다는듯 말한다.

 “ 결국...정치를 하고 싶으셨던거에요 ? ”

 “ 엣 ? ”

 정곡을 찔린것인지 아니면 당혹스럽기라도 한것인지 적잖이 당황하는 영기. 하지만 수미는 그런 영기를 되려 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간다.

 “ 제가 당신을 몰라요 ? 당신 속마음은 이제 알고도 남을만큼의 시간이 지났어요.

  무엇보다 유정이 돌때 있었던 일만 해도...당신의 정치적 야심이 원래 어느정도였

  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지요. ”

 수미와 결혼후 첫 딸 세정을 낳고 그리고 2년지나 태어난것이 바로 둘째 유정이다. 헌데 그 유정의 돌날. 보통 돌잔치때 돌잡이를 하지 않던가. 연필을 집으면 공부를 잘하게 되고 명주실을 집으면 장수하게 된다는 식의 속설이 있기도 한 돌잡이. 헌데 영기는 유정이 돌이 있기 한 2-3주전부터 시내 백화점이며 이런 저런 상점을 거의 이잡듯이 돌아다니며 뭔가를 찾는듯 하더니 다섯명의 정승,판서 복장을 한 인형이 한세트로 되어있는것을 하나 사가지고 돌아왔다. 영기말로는 인사동의 목공예품점까지 직접 찾아가 특별주문을 했다던데 정승,판서 복장을 한 옛날 인형 다섯명이 한세트로 들어있는 그 인형통. 그것을 수미에게 보여주며 영기는 말했었다.

 “ 이걸 돌상위에 올려놓을거야. 그러면서 말해야지. ‘유정아, 이 다음에 커서 5선

  의원이 되거라~~~’ ”

 “ 예에 ? ”

 그날 수미는 어지간히 황당해 했다. 대체 돌상에 연필이나 명주실 혹은 엽전 같은것도 아닌 대체 그런 인형세트를 올려놓으며 ‘이 다음에 커서 5선의원이 되라’느니 하는 그런 사람이 누가 있단말인가. 게다가 가족친지와 주위 친구들이 제법 적잖이 참석한 돌잔치에서 영기는 이제 겨우 사물이나 좀 알아보는 나이인 돌맞이 아기에게 그야말로 뻔한 생쇼를 한 것이다. 돌상에는 다른 물건은 일절 올라와있지 않고 그 5인 인형세트 하나만 달랑 올라와 있던것이다. 그럼 결과는 뻔하지 않는가. 이제 만 한 살된 어린아기 유정이는 그 인형세트가 신기해 보이기라도 한지 재미있어 보이기라도 한지 돌잡이 행사가 본격 시작되기도 전부터 그 인형을 갖고싶다고 칭얼댔다. 그리고 본격 돌잡이가 시작되자 그 인형을 후다다닥 손에 넣은 유정이. 영기는 흐뭇해서 입이 함지박만큼이나 벌어지며 말했다.

 “ 봐라~~~!!! 우리 유정이가 이 다음에 5선 의원이 될 징조 아닌가 !!! ”

 새삼 그때일이 떠올려져서인지 영기도 수미도 살짝 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영기가 수미를 바라보며 정색을 한 얼굴로 말을 이어간다.

 “ 솔직히 말해서... ”

 “ ...... ”

 “ 나 사실 어릴때는 진짜 이해 안 가는 경우가 자기가 못 다 이룬꿈 자식한테 강

  요하려드는 그런 부모였어. 특히 예체능 쪽으론 몰랐는데 그런 사례가 꽤나 된다

  하더군. 가령 피아니스트가 되려다 좌절한 여자가 자기딸에게 어릴때부터 피아노

  과외교습을 시킨다던가 가수가 꿈이었던 사람이 나중에 자기 아들이나 딸이라도

  꼭 가수가 되어달라고 한다던가. 헌데 나 그때는 그런 사람들 진짜 이해 안갔는

  데... ”

 “ 그런데 왜 ? ”

 그러면서 왜 유정이에게 그렇게 했었느냐는 사뭇 이해안간다는듯한 항변조로 수미가 그와같이 묻는다. 영기는 아내 수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하지만 실제...내가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 내 꿈을 접게 되면서...그런 사람들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갈것 같더군. ”

 “ ...... ”

 “ 당신...하늘빛 72에 내가 가입하고 얼마 안되었을때 그때 내가 하던 이야기 기억

  할거야. ”

 “ 기억 나죠. 왜 안나겠어요. ‘난 장가갈 생각 없다’, ‘여자엔 진짜 관심없고 연애

  도 별 흥미 없다.’ 툭하면 그런 말 입에 담던게 장로님이셨잖아요. ”

 “ ...... ”

 “ 그래서 그땐 살짝 좀 시샘도 나고 약이 오르기도 했어요. ‘도대체 얼마나 잘난

  형제길래 저런 소리를 다 입에 담나’ 그렇게 말이죠. 그래서 더 약이 올라서 한

  번 장로님께 관심을 갖고 그렇게 다가가 보았던거구요. ”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첫 인연과 연애시절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회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두 사람. 영기는 새삼 그 시절 당시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이와같이 고백한다.

 “ 난 오히려 그때...20대 초,중반 시절에...사랑으로 인해 상처입은 일이 두 번이나

  었어서 그래서 결혼이나 연애 같은건 이제 진짜 안한다는...사랑으로 인해 또 상

  처받고 싶진 않아서...그래서 나름 그런 결심을 했던거고 그런 결심을 자매들 앞

  에서 토로했던건데...당신눈엔 그때 그런 내 모습이 무슨 왕자병 환자쯤으로 비쳐

  졌나보군. ”

 “ 그때야 제가 장로님의 상처를 모르던 시절이니까...그냥 ‘거 되게 잘난체 하는

  형제로구나’ 그렇게 생각했던거죠. ”

 실제 영기는 20대 초,중반 시절에 두 번정도 섣불리 다가섰던 감정으로 인해 상처받은적이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공교로운 인연으로. 영기는 뭐 그렇게 엄격하거나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고 볼수는 없어도 여하튼 영기 아버지는 타인에 대한 예의범절이나 배려심 같은 교육은 대체로 많이 시키시던 그런 아버지였다. 그래서일까. 영기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화생활을 하면서도 특히 여학생들 앞에서는 가급적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대하곤 했었던건데 오히려 그게 역효과를 본 것일까. 20대 초반인가 진짜 맘에 들어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너무 조심스러워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었는데 정작 그 여자는 자신하고는 영 딴판인 소위 말하는 ‘터프한 성격의 남자’에게 가고 말았다. 그런 실패의 경험이 있어서 영기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되려 어떤 짝사랑 하던 여자에게 자신도 한번 저돌적으로 다가가보려 했었다. 헌데 이번엔 그 여자가 그런 성격의 남자를 질색하는 그런 여자였다. 그리고 그 여자는 법대를 나온 굉장히 자상하고 예의바른 그런 남자에게 가버렸던거다. 자신이 정중하게 다가가려 했을때는 여자가 거친 성격의 남자에게 가버리고, 그래서 그 다음엔 반대로 자신이 한번 저돌적으로 돌격해봤는데 그땐 또 그 여자가 정중하고 예의바른 남자에게 가버렸다. 한번은 너무 예의를 차리다 실패했고, 한번은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실패했고. 그랬으니 이제 어쩌란 말인가. 영기가 이제 두 번다시 연애고 사랑이고 그런것은 안한다는 나름의 결심을 한것는 그런 두 번의 아이러니한 사랑의 실패 사연이 있는것이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하늘빛 72에서 자매들과 어울릴때는 그야말로 ‘나 결혼 안한다, 여자에 관심없다, 연애 같은것 할 생각 없다.’ 그야말로 노래부르다시피 하던 한영기.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한영기는 이수미와 ‘하늘빛 72 1호 커플’이 되어버린것이다.

 “ 솔직히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

 “ ...... ”

 “ 내가 그 무렵에 결혼이나 연애 같은것을 하지 않으려 한것은 물론 그런 사랑의

  상처가 있었던것도 이유가 되긴 했지만... ”

 둘째딸 유정의 결혼문제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그야말로 영기와 수미 부부가 졸지에 자신들의 결혼할 무렵에 대한 총체적 회상을 하게된 모양새다. 영기는 다시금 그 시절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수미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간다.

 “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땐 내가 좀 자유분방하게 내가 하고싶은 일을 좀 하고싶

  다. 그런 생각을 할때였어. 하지만 막상 결혼이란걸 하게되면 여하튼 가장노릇도

  해야하고 아이들도 키워야하고...그러면 내가 하고싶은것, 내가 이루고 싶은것을

  이루지 못할수도 있겠구나. 20대 초,중반때가지만 해도 그런 생각까진 안 했는데

  20대 후반쯤으로 접어들 무렵부터는 ‘결혼은 현실’이란 자각과 함께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더라구. 그래서 ‘아 ! 내가...지금 내가 이루고 싶은것을 이루려면 결

  혼은 해선 안 되는거구나.’ 자연스레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구. ”

 “ 장로님... ”

 헌데 막상 영기의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와서 새삼 수미와의 결혼을 후회하는것은 아닌지 그런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그래서 수미가 살짝 마음도 상하고 불안해지기까지 해서 영기를 그와같이 부르는데, 영기가 그런 수미를 안심시키려는듯 한번 다독여주면서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 뭐...내가 결혼을 그래서 지금와서 후회한다는건 아니야. 하지만 여하튼 수미 당

  신이랑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나서는 허황된 꿈보단 현실을 생각해야겠다

  그 결심을 하게 되었어. 그래서 군소리없이 아버지가 하시는 중소기업 물려받아

  서 그것을 운영하면서 가정을 꾸려가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은거지. 정치

  를 하든...아니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엄청난 비전을 세우려고 하든 그런 허황

  하고 허망한 꿈은... ”

 그러니 따지고보면 영기가 그런 꿈을 접은것은 수미로 인해서라 보는게 거의 정확할것이다. 하지만 여하튼 그렇게 수미와 결혼 어엿한 가장이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그야말로 평범하면서도 모범적인 가장이자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해온게 지난 30년 영기의 삶이었다. 그런 영기라서일까. 수미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이제와서 하고있다.

 “ 그러다보니...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내 꿈을 포기한것은 순전히 이

  아이들 때문이로구나. 내가 당신을 먹여살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그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려거든 내 꿈은 결국 접어야 하는것이로구나. 그리고 그러다보니...

 ”

 “ ...... ”

 “ 알게 모르게...아이들한테 그러고싶어 지더라고. 이 애비의 못 다한 꿈을 너희라

  도 이뤄줬으면 한다는. 애비가 너희들 키우느라 내 꿈을 포기했으니, 정히 너희들

  이 애비를 위하고 걱정한다면 너희가 내 대신 내 못 다한 꿈은 대신 이뤄줄수 없

  겠니 ? 유정이의 돌잔치날 ‘이 다음에 커서 5선의원이 되거라’는 주문을 하며 그

  런 이벤트를 벌인데는 그런 속내가 담겨 있었던걸로 이해하면 될거야. ”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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