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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팬픽 - 프로듀스 101 최유정 (1) 걸그룹 팬픽 (프로듀스 101)



 서기 2032년 여름.

 화창한 주말오후. 유정은 시내의 한 커피숍에 특유의 그 생글생글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들어서고 있다. 그녀가 자신보다 세 살많은 남자친구 김진수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가 여기다. 유정은 혹 진수오빠가 자신보다 먼저 와 있나싶어 우선 커피숍안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저쪽 창측좌석에 앉아있는 진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그쪽으로 다가간다.

 “ 오빠 ! ”

 부르는 소리에 그쪽을 돌아본 진수. 유정이 이쪽으로 오고있음을 발견하고는 그의 표정 역시 밝아진다. 손을 흔들어보이며 유정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진수. 유정은 어느덧 성큼성큼 걸어서 진수가 있는 코앞까지 다가와있다.

 “ 오래기다렸어, 오빠 ? ”

 “ 아니, 나도 방금왔어. ”

 “ 그렇구나. 날도 덥다. 뭐 시원한거부터 시키자. ”

 그렇게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마주앉은 두 사람. 주문한 음료수가 나오고 그것을 들며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 유정아... ”

 진수는 뭔가 감회어린 눈빛으로 유정을 바라보고 있고, 그러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운을 뗀다. 무슨말을 하려나 궁금함에 빨대로 윰료를 빨던 유정이 진수를 바라본다. 표정이 사뭇 귀엽다.

 “ 세월이란게 참 빠르긴 빠른것 같다. ”

 “ 무슨소리야 그건 갑자기 ? ”

 좀 뜬금없는 이야기라 어리둥절한 것일까. 사람에 따라 개인차이가 있긴 하지만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면 아직 세월의 빠름을 운운하기는 좀 이른 시기이긴 하다. 아직은 한참 젊음을 만끽하고 싶은 시절일 두 사람. 그래도 28살의 유정에 비해 어느덧 나이 서른을 넘긴 진수에겐 이제 슬슬 그런것이 실감되는것일까. 여하튼 진수는 진수대로 새삼 유정과 마주하고 있는 이런 자리가 나름대로 어떤 감회가 일게 만드는것 같다. 결혼 적령기로 치더라도 이제 진수는 나이 서른을 넘겼으니 확실히 그런 문제도 한참 진지하게 고민할법한 나이. 그런 진수는 유정과의 그간 인연을 새삼 회상하며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것이다.

 “ 기억나니 유정아 ? 우리 처음 만났을때 일이 ? 그게 벌써 그러고보니 2년전의

  일인데. ”

 유정은 대학은 사학과를 나왔고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뒤엔 일반기업에 취직 지금껏 쭉 직장생활을 해왔다. 진수는 그리고 그 직장생활을 하던도중 알게된 인연. 일종의 사내커플쯤 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진수는 직장생활을 좀 늦게 시작한 편이기도 하다. 남자라서 군대도 다녀와야했고, 복학후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시기까진 약간 방황의 시간도 좀 있었다. 그러다보니 학교를 졸업한뒤에도 한동안 바로 취직은 하지 못한채 좀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진수. 그래서일까. 지금은 어쨌든 어엿한 직장인으로 무난하게 사회생활도 잘 해 나가고 있고 그런대로 든든하다고 할 수 있는 여자친구도 이렇게 생겼으니 진수로선 이제 세상을 다 얻은듯한 그런 부러울것 없는 그런 기분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어엿한 직장에, 이제 사실상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다고 봐야할 여자친구까지. 남자로서 이쯤되면 젊은시절 자신이 갖춰야 할것은 두루 다 갖췄다고 할수도 있는 모습. 그래서인가. 진수는 진수대로 나름 자신의 지난 시간에 대한 감회에 어리며 그래도 지금의 자신의 이런 모습에 어떤 대견함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나르시즘 같은것이라기보단 힘든 청춘을 보냈으나 이제 어느정도 정상적인 인생궤도에 오른 남자가 자신을 그렇게 위안하고 있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여하튼 진수는 지금 자신의 이 모습에 그런대로 만족함을 느끼는 평범한 30대 초반의 남자다. 진수는 진수대로 유정과의 직장에서의 첫 인연을 떠올려보며 그때의 일을 좀 입에 담은뒤 조금은 진지한 주제로 말을 이어가려 한다. 유정과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2년이고 그렇다면 정식으로 교제를 한 시간은 대충 어림잡아 1년이 좀 넘는다고 친다면 확실히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꺼낼만한 시기가 되긴 했다. 진수는 그래서 유정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어간다.

 “ 유정아...나 사실은말야 솔직히... ”

 “ ??? ”

 “ 차라리 이 참에 우리 양가 부모님 상견례를 이대로 진행했으면 하는데 넌 어

  떻게 생각하니 ? ”

 “ 상견례를 갖자구 ? ”

 두 사람의 나누는 대화를 보면 확실히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남녀관계임은 분명하다. 그것도 상견례가 언급되는 정도라면 양쪽 집안에서도 어느정도 두 사람의 사이를 알고있고 진지하게 만나는 중이라는것도 알고 있다는 그것이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진수가 꺼낸 그와같은 이야기에 유정이 살짝 당혹해하는 반응을 보인다.

 “ 괜찮을까 ? ”

 물어보는 유정에게선 약간의 두려움과 뭔가 걱정스러워 하는 눈빛이 서려있다. 근심스러운 얼굴로 상견례 자리를 갖자는 진수의 제안에 바로 긍정적인 답을 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유정. 잠시 고민하는듯 하다 조심스레 입을 연다.

 “ 오빠...나 사실... ”

 “ ??? ”

 “ 조금 걱정돼. ”

 그런말을 하는 유정을 보니 진수도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과정이 차일피일 미루고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망설이거나 후퇴하진 않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대로 그대로 일을 추진하고 싶다는듯 다시 말을 꺼낸다.

 “ 뭐 그리 걱정하는게 많니 넌 ? 그리고...아닌말로 요즘 세상에 뭐 우리가 시부모

  님이라도 모시고 살거나 할것도 아니고...유정이 너도 참...가만보면 생각보다 너

  무 고민이 많은것 같다. ”

 “ 오빠아아... ”

 하지만 유정은 일이 그렇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할게 아니라고 보는지, 진수의 태도가 사뭇 답답하게 느껴지기라도 하는듯 그와같이 말하고 그리고 유정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 나 솔직히... ”

 “ ...... ”

 “ 오빠네 어머님 다시 볼 자신 없어. ”

 “ 유정아. ”

 ‘결국 그 문제인가’ 싶은 얼굴로 진수가 유정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고 그리고 유정을 설득하려는듯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진수의 말투엔 어떤 간곡함마저 묻어나있다.

 “ 결혼은 어차피 우리 당사자들 문제야. 그런데 부모님들 생각이 뭐가 중요해 ?

  결국 우리 의사만 맞으면 그만인것 아냐 ? 뭐 그렇게 고민하고 생각하는게 많아

  ? 유정이 넌 그게 문제야. 늘상 그렇게 고민만 하고 망설이고 걱정만 하면 이룰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어. 때론 지금이 기회다 하고 결단해서 확실하게 밀어

  붙이는 그런 용단도 필요한거라구 사람이. ”

 힘주어 거듭 유정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는 진수. 하지만 유정은 뭔가 단단히 마음에 걸리는게 있는지 여전히 진수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이나 화답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공연히 컵 안에 든 음료수만 벌컥벌컥 마신뒤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고 말을 이어간다.

 “ 난 그리고 무엇보다... ”

 “ ...... ”

 “ 우리 아빠한테까지 상처주면서 이 결혼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추진하고 싶진 않

  아. 그게 내 마음이야. 미안해 오빠. ”





 사실 진수는 이미 한달여전에 자신의 어머니 백선애 여사와 유정의 인사자리를 만든적이 있었다. 유정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거나 정식 상견례 자리 같은것을 갖기전에 먼저 엄마한테 선을 보이고 싶었던것이 진수의 마음이었다. 아들이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엄마한테 인사시켜 드리고 싶다’며 성화인 모습을 보자 선애는 아들이 여자가 생겼다는 점에 대한 대견함과 함께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저렇게까지 자랑을 아끼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과 기대를 갖고 약속장소에 나왔다. 올해 나이 만 60세로 환갑을 맞은 백선애 여사는 하지만 나이답지 않게 우아하고 지적인 풍모를 지닌 귀부인 같은 그런 여성이었다. 깔끔한 정장으로 차려입고 진수의 안내를 받으며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는 선애. 아들이 사귄다는 여자가 대체 어떤 여자일까 하는 궁금함과 기대가 한몸에 가득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다. 약속장소에는 유정이 먼저 도착해서 진수가 어머니와 함께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다.

 “ 안녕하세요 어머님. 진수오빠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유정이라고 합니

  다. ”

 “ 편히 앉아요. 우리 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어떤 아가씨일까 많이 궁금해 했

  지요. 그리고 이렇게보니 참 청초한 매력을 가진 그런 아가씨네요. ”

 평소 옷차림이 좀 수수한 편이라서일까. 선애는 유정의 첫 인상을 ‘청초하다’는 표현으로 그 느낌을 말했다. 그리고 정식으로 유정에 대해 궁금한것을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 그래, 부모님은 뭘 하시구 ? ”

 “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구요, 어머님도 원래 직장생활을 쭉 하셨던 분인데 요즘

  은 직장은 그만두시고 선교단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

 “ 그래요. ”

 유정의 집안도 그렇고 진수의 집안도 그렇고 대체로 독실한 크리스찬 집안이다. 그러니 적어도 종교문제에서만큼은 딱히 문제나 걸림돌이 될 것은 없는것 같고 다만 선애는 유정의 이름을 좀 곱씹어보면서 뭔가 걸리는게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묻는다.

 “ 그런데...가만 아가씨 이름이 뭐라고 했지 ? ”

 “ 한유정이요. ”

 어머니가 기억을 제대로 못하시나보다 하는 생각에 또렷하게 힘주어 유정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러자 선애가 여전히 미심쩍다는듯한 반응을 보인다. 선애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 설마...아니겠지...동명이인이야 뭐 세상에 흔한데... ’

 그렇게 뭔가 가슴 한켠에서 미심쩍은 의문을 쉬이 떨치지 못하는 가운데 약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유정을 바라보는 선애. 그러면서 말을 이어간다.

 “ 그래, 뭐 부모님은 사업을 하신다니 그렇다치구...그럼 형제관계는 어떻게 되나

  ? ”

 “ 위로 언니 하나 그리고 밑으로 여동생이 한명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3자매중

  둘째죠. 결혼은 언니도 동생도 아직 안 했어요. 그러니 만약 제가 오빠랑 결혼

  하게 되면 언니보다 먼저 새치기를 하게 되는 셈이네요. ”

 그게 좀 겸연쩍기라도 한 것일까. 혀를 살짝 낼름 내보이며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유정. 헌데 선애는 유정의 인상을 다시금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을 건넨다.

 “ 그 뭐...형제관계야 그렇다치고 부모님 함자는 ? ”

 “ 아버님은 ‘영’자 ‘기’자를 쓰십니다. ”

 “ 아니...그럼 ? ”

 순간 선애의 눈빛이 흔들린다. 눈빛은 흔들리는 정도였지만 그녀의 가슴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다만 그 속마음을 유정이나 진수야 알아차릴수 없는 가운데, 선애는 유정을 다시금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뭔가 곤혹스러운 얼굴이 된다. 유정에 대해 뭔가 못마땅한 점을 단단히 발견한듯한 그런 눈치다.

 하지만 선애가 적어도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정면으로 면박을 주거나 할만큼 몰지각하거나 그런 여자는 아닌지라 그쯤에서 대화는 가벼운 사담 수준의 이야기를 몇마디 더 주고받고 그러고는 다른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다는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나왔다. 진수에게는 ‘그냥 둘이서 더 재미있게 놀다 오려무나’는 말까지 덧붙여 그때까진 진수도 유정도 선애의 이상기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진수가 집으로 돌아왔을때 선애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들을 불렀다.

 “ 진수야, 엄마랑 잠깐 이야기좀 하자. ”

 “ 네, 어머니. ”

 뭐 설마 대수로운 일이야 있으랴 싶은 표정으로 진수는 선애앞에 마주 앉았다. 오늘 유정이를 처음 만나본 구체적인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지만 선애의 입에선 조금 뜻밖의 말이 나온다.

 “ 진수야...내 생각엔 말이다. ”

 “ ...... ”

 “ 그 유정이란 아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된 아이라고 했었냐 ? ”

 “ 네, 사내커플인 셈이죠 뭐. ”

 담담한 표정으로 그와같이 답하는 진수. 하지만 선애는 그런 아들 진수를 약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답답한듯 장탄식을 내뱉는다. 한참 뭔가 고민하는듯한 얼굴을 하더니 선애의 입이 열린다.

 “ 진수야...엄마 생각은 말이다. ”

 “ ??? ”

 “ 물론...네 나이도 어느덧 서른 한 살이니 결혼이 이르다고 할수도 없는 나이고...

  뭐 늦었다면 늦은 나이지 결코 이른 나인 분명 아니지. 하지만 네가 우리집 장남

  이기도 하고... ”

 무슨말을 하고 싶은것인지 운을 떼는 어머니의 말이 뭔가 심상찮음을 느끼게 된 진수도 살짝 긴장이 된다. 선애의 말이 이어진다.

 “ 그 유정이란 아이만은 좀 안 되겠구나. 어떻게 정리좀 하면 안 되겠니 ? 네게

  어울리는 신부감은 내가 주위에 알아봐서라도 중신을 서든가 어떻게든 할테니

  그 유정이만큼은 좀 정리했으면 좋겠구나. ”

 “ 어...어머니 ? ”

 아까 유정과 인사를 나누던 자리에서는 대체로 별다른 이견도 이의도 없던 어머니인지라 적어도 유정이를 마음에 들어하고 계시다는것만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진수인데 그녀의 반응이 이와같자 진수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 된다. 무엇보다 지금 진수가 어머니가 헤어지라고 한다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순종할만큼 유정과의 사이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그래서 더더욱 반발심이 생겨 선애에게 항의한다.

 “ 어머니, 지금와서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유정이가 대체 어디가 어때서

  요 ? 그리고 유정이와 저 이미 알고지낸지가 2년이고 사귄지 1년 넘어요. 그런

  데 이제와서 헤어지라니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 ”

 “ 오래사귄 연인이라도 나중에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 헤어지는 경우는 많아. 1년

  을 사귀었든 2년을 사귀었든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냐. 어쨌든 다른건 몰라도 유

  정이 그 아이만은 안 된다. 그러니 좋은말로 할때 두 사람 사이 정리했으면 좋겠

  다. ”

 “ 어머니... ”

 “ 뭐 나도 그렇게 몰지각한 모습으로 그 유정이란 아이한테 상처를 주거나 할 그

  럴 생각은 없다. 그러니 니가 알아서 적당히 핑계를 대면서 그 아일 멀리 하도록

  해. 뭐...마음이 안 맞는다던가 성격이 안 맞는다던가...핑계거리를 대자면 뭐 그럴

  듣한 핑계거리 댈만한게 그리 없지는 않을게야. 그러니 니가 마음이 변한것처럼

  하고 유정이와는 정리했으면 좋겠다. ”

 “ 어머니,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제가 왜 유정이한테 그런 말도 안되는 트

  집을 잡아야 하는건데요. 도대체가 전 어머니 지금 이러시는 태도가 이해가 안

  되네요. 납득이 가는 이유를 대시지 않으면 전 어머니 그 말씀 수용할수 없어요.

 ”

 진수도 진수대로 단호한 태도가 되어 이 일이 쉽게 온전히 마무리 될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다. 하지만 선애는 화가나는 심정을 침착하게 억누르며 가급적 차분한 어조로 다시금 아들을 타일러보려 한다. 그녀의 말이 평온한 어조로 이어진다.

 “ 내가...아들을 너뿐만 아니라 민수,영수,성수까지 그렇게 넷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진로문제가 되었든 학업문제가 되었든 가급적 너희들 하고픈대로 너희들 의견을

  존중하며 살아왔다. 적어도 자식들한테 이것저것 강요하는 그런 에미가 되고 싶

  진 않았기에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어. 그리고 웬만하면 결혼문제도 너희들 뜻을

  존중하고 싶었는데, 이번만큼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 어머니... ”

 “ 내가 지금까지 31년 너 키우면서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억압하거나 한적이 있

  었더냐 ? 없지를 않니 ?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안 되겠구나. 결혼문제만큼은

  내가 딱 한번은 간섭을 해야겠어. 딱 한번만인데 그게 그렇게 안 되겠니 ? 너 낳

  고 키우며 30년 너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생각 너한테 강요해

  보는거다. 그러니 이번 한번만은 네가 에미한테 져주면 안 되겠냐 그 말이다. ”

 “ ...... ”

 “ 글쎄 다른건 몰라도 유정이 그 아이만큼은 안 돼. 다른건 몰라도 내가 이 결혼

  문제만큼은 간섭을 해야할것 같구나. 나도 정말 이런 에미가 되고싶진 않았는데

  ...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유정이 그 아이만큼은 안 돼. 그러니 좋은말로 할때 유

  정이 그 아이하곤 헤어졌으면 좋겠다. 네게 마땅한 혼처는 내 주위 인맥을 동원

  해서라도 어울릴만한 배필감을 찾아보도록 할 터이니 유정이 그 아이만은 단념

  하려무나. ”





 유정과의 결혼이 뜻하지 않은 어머니 선애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진수는 아버지 김진웅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아버지한테 말씀을 좀 잘 드려보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설득해 본다던가 뭔가 통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에서일까. 여하튼 그래서 아버지 진웅도 큰아들 진수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에 대한 궁금함이라도 묻고자 하루는 잠자리에서 아내 선애에게 물었다.

 “ 그...진수녀석 여자 생겼다는게 사실이야 ? ”

 “ 누가 그런말을 해요 ? ”

 남편의 갑작스러운 물음이 좀 당혹스럽기라도 한 것일까. 굳이 부인하고픈 생각까진 없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로 흡족하지 못 한 상황이라서인지 사뭇 곤혹스럽게 그와같이 되묻는 선애. 한편 진웅은 진웅대로 이런 아내의 모습은 이전까지는 본 적이 없어서인지 좀 낯설게 느껴진다는듯 한마디 한다.

 “ 허허...누가 그러긴. 진수 그 녀석이 말해줘서 알았겠지 아니면 내가 그런 사실

  을 어떻게 알수 있겠는가 ? 헌데 당신은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거야 ? 당신 진수

  사귀는 여자 반대하고 있다면서 ? ”

 “ 진수가 그런말까지 했어요 ? ”

 아버지한테 이런식으로 말해서 자신을 곤혹스럽게 만든 아들녀석이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살짝 들면서 선애는 불쾌한 기색이 얼굴에서 쉬이 떠나지 않는다. 진웅도 진웅대로 생각이 좀 복잡한지 어색한 자세로 앉아 말을 쉽게 꺼내지 않는 가운데  침묵이 한참 흐르다 진웅이 결국 다시 입을 연다.

 “ 그러지말고 당신 생각이나 솔직하게 말해보지 그래. 아니, 대체 진수녀석 사귀

  는 여자가 어디가 그렇게 못마땅한건데 ?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거야 ? ”

 진수 앞에서도 한 말 처럼 선애는 지금까지 동갑내기 남편 진웅과의 사이에 아들 넷을 낳고 살면서 지금까지 가급적 진로문제든 학업문제든 아이들이 하고싶은대로 아이들 의견을 존중하고 따라주던 그런 여자였다. 무엇보다 나름대로 경우도 있고 개념도 있는 여자로 주위에 정평이 나있는 여자가 바로 백선애란 여자다. 헌데 그런 선애가 이례적으로 그것도 아들 결혼 문제에 이렇게 반대하고 나오는것은 그렇게 평상시의 선애란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남편이나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뭔가 좀 낯설게 느껴질것 같은 그런 일임에 분명하다. 여하튼 이전같지 않은 그런 선애의 모습에 진웅조차도 30년 한 이불 덮고 잔 아내가 낯설게 느껴질 지경인데, 선애는 고민하다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보고는 조심스레 입을 연다.

 “ 당신...한영기 형제 기억나지요 ? ”

 “ 한...영기 ? ”

 선애는 아는 사람이지만 진웅의 기억에는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던 이름이라서일까. 바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자 선애가 일깨워주려는듯 설명을 덧붙인다.

 “ 그...그 옛날 하이텔 pc통신 ‘하늘빛 72’에서 한영기 기억 안 나요 ? 한영기-이

  수미. 바로 하늘빛 72 1호 커플이었지요. ”

 “ 아...아...기억나네. 그 한영기 나도 기억나. 헌데 그게 대체 어쨌다는거요 ? ”

 ‘하늘빛 72’란 90년대 중,후반 pc통신 하이텔 시절에 존재했던 1972년생 동기생 크리스찬 모임이었던 동호회였다. 그리고 한영기-이수미는 그 모임을 통해 알게되어 결혼까지 이르게 된 하늘빛72에선 최초의 커플이기도 한 이른바 ‘1호커플’이었고 백선애 역시 그 하늘빛 72 회원이었다. 한편 김진웅의 경우엔 하늘빛 72 회원인적이 잠시 있긴 했지만 영기나 선애등과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대개의 pc통신 동호회들이 그랬고 그 후신격인 인터넷 카페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그 동아리 회원이 가령 100명 된다면 그 100명이 그 동아리에서 전부 열성적으로 활동하거나 하는것은 아니다. 대개 한 몇백명 정도 규모가 되는 동호회나 소모임이라면 그중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사람은 20-30명 정도. 그리고 김진웅의 경우엔 사실 하늘빛 72 이전부터 백선애와는 개인적인 인연으로 알게된 사이로 결혼까지 이르게 된 커플이라 ‘하늘빛 72’ 커플로 치기엔 좀 애매한 면이 있다. 무엇보다 선애와 달리 진웅은 ‘하늘빛 72’에 뭐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활동하거나 한 회원은 아니었고, 다만 여하튼 친구 선애가 가입해 활동하는 동아리라기에 잠시 호기심이 생겨 가입했던것뿐, 하늘빛 72란 모임 자체를 뭐 그리 큰 의미나 비중을 두던 사람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 모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회원들이 있었는지를 일일이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진웅은 한영기니 이수미니 하는 그런 회원들에 대한 기억은 자세하지 못하다. 그러니 영기나 수미는 엄밀히 따지면 ‘선애 친구’의 범주에는 포함된다 할 수 있어도 ‘진웅이 친구’라고 말하기엔 분명 애매한면이 있다. 어쩌면 영기나 수미의 경우엔 김진웅과는 정작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 볼수도 있으니 그냥 생판 모르는 남남이라 쳐도 과언이 아니다. 여하튼 그래서인지 진웅은 지금 선애의 이러한 태도를 더더욱 이해할수 없어 의아하기만 하다. 대체 한영기니 이수미니 하는 사람들이 아들 진수의 결혼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또 진수의 결혼에 반대하는것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선애는 이내 곧 그런 진웅의 의아함을 풀어준다.

 “ 영기 딸이더라구요 알고봤더니. 바로 진수가 사귀는 여자애가. ”

 “ 아니, 뭐라구 ? ”

 하이텔이나 나우누리 같은 pc통신 동호회들은 대개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자연스레 해체수순을 밟거나 쇠퇴하면서 사라져갔다. ‘하늘빛 72’라고 예외는 아니라서 역시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소멸되어 갔으며 다만 하늘빛 72 시절 사귀던 사람들끼리 이후 아쉬움 때문에 개인홈피나 블로그등을 통해 연락 정도를 주고받고 하던 사람들은 몇몇 있었다. 선애의 경우도 한 2천년대 중반경까지는 그런 개인홈피를 통해 소식이나 주고 받던 ‘하늘빛 72’ 회원들이 몇몇 있기는 했으며 영기나 수미의 경우도 대개 그 시절까지는 가끔 그렇게 연락이나 소식정도가 전해지긴 했다. 하지만 ‘하늘빛 72’ 자체는 그 시절 회원들에겐 이미 30년전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일. 헌데 그때 회원의 딸이 자기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있다면 이게 어찌 놀라운일이 아닐수 있겠는가. 헌데 선애는 오히려 그래서 더더욱 못마땅하다는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영기 딸이라면 안 돼요. 내가 그래서 반대하는거에요. ”

 “ 아니, 그게 무슨소리야 ? 대체 그 한영기란 친구 뭐가 문제라는건데 ? 그 사람

  과 뭐 원수진일이라도 있어 ? ”

 “ 원수는요 무슨...차라리 그런일이라면 모를까... ”

 선애는 나름대로 착잡한 회한에 사로잡히며 미묘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간다.

 “ 차라리 그런 악연같은게 있던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펄쩍뛰진 않아요. 악

  연이 있었던건 아니고...내가 그 한영기란 사람을 좀 알기 때문에 안된다는거에요.

  거 참...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한영기 그 친구와는 이런식으로 얽히는

  일만은 없었으면 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공교롭게 되다니. ”

 “ 허허 참...아니 대체 뭐가 문제라는건데 ? ”

 “ 사실 한영기 그 친구...성격도 좀 괴팍하고 좌충우돌하는 면이 있어서 동호회에

  서 몇 번 물의를 빚은적이 있어요. 그거야 뭐 그 사람 성정이 본래 그러하니 그

  렇다쳐도... ”

 “ ...... ”

 “ 어쨌든 다 30년이 지난 일이고 잊고 살았었는데...하필 그 친구 딸과 내 아들이

  이어지다니 이건 진짜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반대하는거에요. ”

 “ 허허 참...들으면 들을수록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구먼. 아니, 대체 그 한

  영기란 친구 성품이 뭐가 그리 문제였다는건지 모르겠지만...그렇다고 그게 그 사

  람 자녀들의 문제로까지 이어져야할일인가. 나 진짜 이해가 안 가는구먼 그래. ”

 “ 당신은 참... ”

 남편의 태평한 모습에 어떤 답답함이라도 느낀것일까. 선애가 눈을 흘기며 진웅을 바라본다. 살짝 그 눈빛에 진웅은 섬뜩함이 느껴져 움찔하기까지 하고. 선애가 진웅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예부터 부모는 자식을 닮는다는 말이 있지요. 유전이란 말이 괜히 있어요 ? 그

  래서 싫다는거에요. 영기 딸이라면 당연히 제 아버지를 많이 닮았을텐데 그런 사

  람의 성정을 빼닮은 그런 여자라면...그런 사람이 제 며느리가 되는거 진짜 싫어

  요. ”

 “ 허허 거 참...진짜 당신답지 않은 소린가. 아닌말로 부모 문제가 자식들 일에까

  지 장애로 작용해야 하는건가 ? 대체 그 한영기란 친구 성정이 뭐가 그렇게까지

  문제였다는건진 모르겠지만...그렇다고 꼭 그 딸이 그 아버지를 닮았을거란 보장

  은 뭐가 있어 ? 아닌말로 그 영기 딸이란 아가씨가 제 아버지를 닮았다는 증거

  라도 있나 ? ”

 “ 보였어요. ”

 “ 뭐라구 ? ”

 “ 그 유정이란 아이를 마주친 순간 딱 느껴졌던것이 영기 그 아이였어요. 그 야

  릇한미소하며 말투...외모도 그러고보니 작달막한키에 동글동글한 얼굴 그리고

  약간 살이 오른 몸매가 웬지 젊은시절 영기를 빼다박은것 같기도 하고...유정이

  란 아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 느껴진것이 작은 영기, 여자 영기였어요. 어쩜 저렇

  게 제 아버지를 빼다박았을까. 사실 처음엔 이름이 유정이란것을 알고는 그냥 이

  름이 낯이익다 그 정도의 생각만 했지...뭐 동명이인이야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그 아이 입에서 제 아버지 이름이 나오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다 느껴지더라구요. ”

 “ 허허...참...들으면 들을수록 알수없는 소리로구만. 그래 뭐...아닌말로...그...뭐 유

  정이라 했던가 ? 그러고보니 그 아이 이름이 유정인가 보구먼. 그 아이가 제 아

  버지를 빼다박은게 그게 당신이 이렇게까지 그 아이를 반대하는 이유란 말인가.

 ”

 “ 진수에겐 조만간 그 아이 정리하라고 하고 내 인맥을 총 동원해서라도 큰아이

  (진수) 혼처는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어요. 저 주변에 발이 넓은건 당신도 아시잖

  아요. 그러고보니 제가 어느덧 서른을 남긴 큰애 결혼문제에 너무 무심했네요.

  내일부터라도 진수에게 알맞을만한 배필감은 제가 직접 찾아 나설테니 당신은 그

  저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세요. ”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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