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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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과 여자핸드볼 이야기 방송,연예



 이전에 비해 떨어진 올림픽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 선수단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였는지 어쨌든 예전에 비해 대체로 관심이나 열기가 그리 크거나 높지 않았던 리우올림픽이 막을 내린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생각해보니 예전같으면 그래도 올림픽에 출전 화제를 모았던 메달리스트들이나 선수들이 이런저런 인터뷰에도 나오고 방송 예능프로에도 나오고 그러면서 한 2-3주 정도는 올림픽 이후의 여운을 조금은 느꼈던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는것 같네요. 하지만 그래도 리우올림픽의 결과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더 잊혀지기 전에 아직은 올림픽 폐회식이 있은지 일주일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여운을 곱씹기에 그리 늦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는 시점에서 딱 한가지 하고픈 이야기만 좀 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다름아닌 이번 올림픽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여준 한국 ‘여자핸드볼’의 몰락에 관해서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84년 LA 올림픽의 은메달과 88 서울, 92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 2연패 그리고 95년 국제선수권대회 우승과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로 이어지면서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여자핸드볼.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사실 90년대 에 주로 활약했던 선수들을 재복귀 시켜 ‘30대 아줌마’들의 맹활약을 보여주며 덴마크와의 접전 끝에 아쉬운 은메달에 그치며 다시금 온 국민의 관심과 화제에 올랐던 여자핸드볼. 그리고 그 여파를 이어가듯 한 여자 영화감독에 의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약칭 ‘우생순’)’이란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여자핸드볼. 하지만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 여자핸드볼은 예선전 1승1무3패로 여자핸드볼 올림픽 출전사상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사실 이와같은 몰락은 핸드볼을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던 저같은 사람의 입장에선 예견된 몰락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2004년 아테네 대회 ‘우생순’ 신화를 보여주었던 30대 아줌마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텐데, 바로 그 아테네 대회때 맹활약했던 30대 아줌마 선수들을 모델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가 만들어져 언제부터인가 바로 2004년 아테네 대회때 맹활약한 주부선수들 또는 여자핸드볼 자체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그 영화 제목의 약칭인 ‘우생순’이 되어버리기도 했는데, 하지만 ‘우생순 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상당수는 사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육성한 ‘올림픽 꿈나무 세대’라고 부르는게 더 정확할것입니다.


 분단국가에 아직 저개발 국가인 나라에서 올림픽을 치르는게 가당키나 하느냐, 혹시 5.18 참극으로 인해 빗발치는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정권의 무리수 아니었느냐 그러한 정치적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여하튼 ‘88 서울올림픽’은 유치에 성공하였고, 그러다보니 그 올림픽을 준비해야하는 7년의 시간동안 한국 특히 한국 체육계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습니다. 막상 그렇게 올림픽 개최해놓고 우리나라 선수단 성적이 부진하면 어쩌나. 기껏 돈들여 올림픽 개최해서 다른나라들 잔치만 시켜주는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잖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그때까지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은 일제시대 손기정의 경우를 제외하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양정모의 금메달이 유일한 것이었으니 그와같은 걱정과 우려가 생기는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때부터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올림픽 꿈나무 육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입니다. 오늘날 엘리트 스포츠 정책이었다고 많은 비난을 받는 그 정책의 뿌리가 따지고보면 ‘올림픽 꿈나무 육성’이었던것입니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올림픽 꿈나무 육성’은 어느정도 효과를 보았습니다. 유도,복싱,레슬링등의 그 이전 메달 유망종목들의 경우 눈부신 성장세를 보여주었고, 양궁도 70년대 후반 혜성같이 나타난 신궁(神宮) 김진호의 대를 잇는 실력자들이 계속 탄생해주었고 핸드볼이니 하키니 하는 그 당시까지만해도 국내에선 비인기종목이었고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던 종목들이 국제대회에서 종종 우수한 성적을 보여주어 국민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만들기도 했던게 이런 종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대개 80년대에 성장기,사춘기를 보낸 대체로 70년대 초,중반 태생들이라고 봐야할 이 ‘올림픽 꿈나무 세대’ 선수들이 초절정 기량을 보여준것이 이들이 어느덧 20대로 성장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이었습니다. 여자핸드볼 역시 이들 70년대 초,중반 태생들이 맹활약한 그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과 95년 국제 선수권대회 우승 그리고 96년 애틀란타 대회에선 덴마크와의 접전끝의 은메달이라는 그야말로 초절정 기량을 보여주며 전성기를 구가했던것입니다. 임오경,오성옥,홍정호,김미심,박정림,김랑,오영란,문향자...등등이 바로 이 무렵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선수들입니다.


 헌데 문제는 이들 ‘올림픽 꿈나무 세대’ 이후의 세대교체가 실패한것. 그것이 사실상 한국 ‘여자핸드볼’의 몰락을 가져온 주요인이었습니다. 따지고보면 90년대 초,중반에 활약했던 선수들을 나이 서른을 넘긴 아줌마가 되어서 다시 코트로 부른 이유 자체가 새로운 젊은 선수들은 도저히 유럽의 강호들을 만나 상대할만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던게 주된 원인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그나마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이라도 보여야 언론과 국민이 관심을 가져다주는 핸드볼 같은 비인기 종목 입장에선 어쩔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던것입니다.


 사실 95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로 이어지는 그 무렵은 우리나라 여자핸드볼이 가장 전성기로 초절정 기량을 보여주었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그런대로 국내에도 어느정도 핸드볼 붐이 싹틀 조짐이 보이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국제대회에서의 연거푸 우승에 고무된 분위기탓인지 한때 ‘여자핸드볼’의 경우 국내 실업팀이 무려 9개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9팀중 대다수가 IMF 된서리를 맞습니다. 종근당,동성제약,금강고려,청주시청 그리고 도시가스공사까지 무려 다섯팀이 96-97년을 거치면서 줄줄이 해체됩니다. 아니, 따지고보면 사실상 여섯팀이 해체된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천을 연고로한 ‘진주햄’이란 팀이 있었는데 이 팀도 사실상 해체를 눈앞에 둔 상태였는데 ‘제일생명’이 이 진주햄 팀을 인수할 의사를 보여 진주햄 선수 대다수는 제일생명으로 옮겨갈수 있었으니까요. 여하튼 이렇게 IMF를 거치면서 9개 실업팀중 다섯팀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던 여자핸드볼은 그래서 4개의 실업팀으로 겨우 90년대 후반 그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그나마 제일화재란 신생팀과 진주햄을 인수받은 제일생명이 해체된 다른 팀의 우수선수를 영입했길래 망정이니 그야말로 여자핸드볼 명맥이 아예 끊길뻔한 위기에까지 몰렸던 시절입니다.


 사실 이 시절이 더더욱 아쉽고 안타까운게 앞서 말한 90년대 초,중반 맹활약을 보여준 국가대표 선수들이 애틀란타 올림픽을 기점으로 대다수가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성옥,임오경,김미심,김랑,허순영,박정림 등등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활약한 선수들중 상당수가 애틀란타 대회를 끝으로 줄줄이 은퇴를 선언했고 은퇴하진 않았지만 홍정호 선수처럼 해외진출을 선언한 선수도 있었죠. 문제는 이들 이후의 세대가 선배들의 기량과 기술을 제대로 전수받아야 했었는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것입니다. 실업팀 9개중 6개팀이 줄줄이 해체되던 한마디로 정신없던 시간이니 선배들의 기술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한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국 여자핸드볼의 주 특기는 빠른 속공 플레이와 상대 수비의 허점을 이용한 아주 정교하고 절묘한 슈팅기술이었습니다. 대략 90년대 중,후반경 까지만 해도 유럽팀들 대다수가 바로 한국팀의 이런 빠른 속공 플레이와 정교한 기술슛을 제대로 당해내지 못해 늘상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것이니까요. 저만해도 그때 한국 핸드볼 선수들이 그야말로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정도로 홍길동처럼 번쩍번쩍 신출귀몰 하며 슛을 날리는 것 같은’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에 ‘우리 여자 핸드볼 선수들 귀신이로구나 !!!’하고 감탄하곤 했었으니까요.


 헌데 이번 리우올림픽을 지켜보니까 바로 그런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흔하게 볼수 있었던 한국선수단의 주특기인 속공과 상대수비의 허점을 노린 절묘하고 정교한 슈팅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더군요. 오히려 유럽팀 대다수는 이제 마치 ‘너희들의 작전과 공격루트를 다 예측하고 있다’는 듯이 철벽방어를 하고 있고 우리쪽 젊은 선수들은 대개 당황하며 뭔가 많이 서두르며 허둥대는 느낌이 들어 20년전 이들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현란한 플레이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그 차이를 한눈에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2004년 소위 ‘우생순’ 신화가 가능했던것도 따지고보면 바로 그 ‘올림픽 꿈나무 세대’이면서 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은퇴 어느덧 서른이 넘은 ‘어제의 스타’들을 다시 불러와서 그들이 전성기 시절 보여준 그런 속공과 현란한 슛기술을 다시한번 보여주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헌데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플레이와 슛기술을 후배들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것은 아무래도 기술 전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밖에 분석할 수가 없네요.


 우린 올림픽때마다 그저 비인기종목이면서도 세계 강호들과 당당히 겨뤄 메달권 다툼을 벌이는 우리 선수들을 칭찬만 했지 평상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언론도 그저 ‘우생순 신화 다시 재현할까 ?’ 이런식의 설레발 보도만 했지 그동안 한국 핸드볼에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떤일들이 있었는지 제대로 관심 가져준 언론은 아무래도 거의 없었던것 같네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은 운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앞서 몇 번 언급했지만 사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과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사이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95년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남녀 핸드볼을 통털어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은 이때가 유일합니다. 사실상 핸드볼판 ‘월드컵’ 이라고 해도 다름없는 대회인데 1995년에 바로 그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던것입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당시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심지어 유력언론에서조차도 이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란 소식을 기사한줄 실어주거나 소개한곳이 없더군요. 월드컵 축구는 지역예선 한일전만 이겨도 무슨 세계제패라도 한듯 나라 전체가 들썩이던 시절인데 아무리 비인기종목이기로 그래도 ‘세계 선수권 대회 첫 우승’을 한 여자핸드볼 팀에 대해 기사 한줄 실어준 언론이 없었다는것은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다만 언론이 그때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것은 그 무렵 정치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던걸로 분석할수밖에 없을것입니다. 정확히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은 12회 대회때로 1995년 12월 5일부터 17일까지 열렸습니다. 헌데 95년 하반기면 그러고보니 이땐 전직 대통령의 수천억 비자금 사건과 5.18 특별법으로 어느어느 전직대통령이 오늘 구속되네 내일 구속되네 하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그 무렵이었습니다. 한가하게(!) 고작 여자핸드볼 국제대회 우승소식 실어줄만한 언론이 있을 리가 없던 그런 사회분위기였을 때네요 그러고보니.


 기왕 이렇게 된거 좀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그 무렵(95년 11월-12월)에 있었던 일들을 기사검색으로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5.18 특별법 제정’ 의지를 천명한게 95년 11월 24일, 검찰이 전두환에게 출두요구를 한것이 12월 1일의 일이고 그 다음날인 2일 전두환은 그 유명한 ‘골목성명’을 발표하며 검찰출두를 거부하고 다음날인 3일에 검찰은 합천까지 내려가 전두환을 안양교도소로 끌고가서 전격 구속시킵니다. 그렇게 시작된 5.18과 12.12 관련 수사가 그달 말까지 쭉 이어졌고, 이른바 5.18과 12.12 당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발의한것이나 마찬가지인 5.18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게 12월 19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지상파 3사는 전두환,노태우의 조사와 기소,검찰수사,구속등의 일련의 과정들을 매일같이 생중계하던 그런 때입니다. 신문지면도 늘 전두환,노태우와 12.12와 5.18 관련자 수사,구속 과정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니 하필 그 무렵인 12월 5일부터 17일까지 12일간 열렸던 ‘제12회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한국팀 소식은 신문지상이든 방송뉴스든 비집고 들어갈 틈 자체가 아예 없었던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수밖에 없었네요. 생각해보니 저도 그 무렵 당시에는 여자핸드볼 국제대회 우승 소식을 몰랐고 한 1,2주쯤 지나서 지하철 가판대에서 파는 어느 주간지가 아마 그래도 우리 여자핸드볼 팀이 너무 딱해 보였는지 주간지 반페이지 정도의 지면을 할애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 소식을 그나마 상세하게 다루어주어 저도 그 주간지를 통해 그 사실을 처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면 흔히 있을법한 포상이나 축하,환영대회 한번 치르지 못하고 초라하게 입국한 여자핸드볼 선수단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여자핸드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 시작한게 대략 그 무렵 부터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로부터 2년뒤인 97년엔 98년에 있을 프랑스 월드컵을 준비하는 월드컵 축구 아시아 지역예선이 벌어졌습니다. 그 ‘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B조’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는 이른바 ‘한일전’이 벌어졌는데, 그때 한일전 승리에 온 나라가 그야말로 세계제패라도 한양 들썩거리며 주요정당들도 한일전을 승리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을 축하하는 성명까지 발표하는 그 정도의 사회분위기였던게 생각이 나네요. 2년전 ‘여자핸드볼 세계선수권대회 우승’때는 기사한줄, 단신 한꼭지 실어주는 신문이나 방송이 없었던때와 비교하면 너무 천양지차라 그 두 모습이 너무나 절묘하게 제 가슴에 오버랩 되었습니다.


 물론 축구와 핸드볼의 국내 관심도와 인기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이땐 2002 한일 월드컵 유치 성공으로 월드컵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던 시절이고 무엇보다 ‘붉은악마’란 축구응원 열기도 이때부터가 시작되던 때이니 비록 월드컵 지역예선 한일전일지언정 언론과 방송 그리고 대중의 관심과 열기가 뜨거워진것은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축구는 겨우 월드겁 지역예선(아시아 지역 B조예선 일본전) 한경기 이긴걸로도 마치 세계재패라도 한양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주요정당들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 축하하고 격려하는 성명까지 발표할 정도로 그야말로 경사가 난듯 했는데, 불과 2년전 여자핸드볼은 사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고도 그 소식을 기사로 실어주는 언론,방송매체 하나 없고 관심갖는 일반인도 거의 없어 그야말로 초라하고 쓸쓸하게 귀국했던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비교되는 두 장면이라 가슴 한켠에 씁쓸한 감정이 이는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 실제 그때(95년 핸드볼 국제선수권대회 우승 직후) 협회차원에서라도 조촐하게나마 마련될법한 환영행사나 격려회식도 없었다는 후문을 당시 핸드볼 협회 관계자로부터 훗날 들은바가 있습니다.)


 문득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직후의 pc통신 하이텔 게시판이 생각납니다. 그땐 아마 남자농구가 특히 프로농구의 출범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인데, 올림픽에는 그래서 그때의 농구 톱스타들이 총 출동해서 한국 대표팀이 구성되어 올림픽에 출전했었죠. 하지만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특히 한몸에 모았던 남자농구 대표팀은 연패를 기록하며 졸전을 면치 못했고, 그래서 남자농구에 기대와 성원을 보냈던 많은 젊은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에비해 세계 강호들과 겨루며 선전한 여자핸드볼,여자하키등의 종목과 비교되며 pc통신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96년 이 대회에서 여자핸드볼과 여자하키가 모두 은메달을 땄었군요.


 그때 기억나는 글중 하나가 한 pc통신인이 하이텔 스포츠 게시판에 올렸던 ‘땀냄새 나는 여자하키, 향수냄새 나는 남자농구’란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요지는 국내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인기를 누리는 남자농구는 국제대회에서 졸전을 면치 못한반면 여자하키는 세계 강호들과 겨루어 은메달을 따는 선전을 보였다며 남자농구의 졸전과 그에 대비되는 비인기종목으로 관심도 성원도 받지 못하던 여자하키 선수들의 선전을 격려하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대로 개념글이란 평가를 받아 한동안 하이텔 베스트란에도 올랐던 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직후의 하이텔 스포츠 게시판은 한동안은 여전히 올림픽에서 졸전을 보여준 남자농구 선수단 일부 선수와 심지어 임원진에 대한 인책론까지 나오며 게시판이 들끓고 있었고 여자핸드볼이니 여자하키니 그야말로 올림픽에서 반짝 관심을 보여준 비인기 종목들은 바로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와서 그때 하이텔 게시판 분위기를 생각하면 남자농구 선수단에 대한 pc통신인들의 비난이 좀 과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개중에는 좀 과장되고 부풀려져 하이텔에 전해진 소식도 있는데 바로 일부 농구선수단의 ‘음주추태’ 논란입니다. 그러잖아도 졸전을 보여준 농구선수단에 대한 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는데 제대로 기름을 부은격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 논란은 좀 과장되었던 것으로 훗날 알려진 진상에 의하면 그냥 연패를 겪고있는 농구 선수단끼리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차원에서 인근에서 술한잔 나누고 있었는데 그게 한국 기자단 눈에 뜨였었나봅니다. 아마 한국 기자들 눈에도 다른 비인기 종목들은 세계 강호들과 겨루며 선전을 하는데 남자농구 선수단은 연패하면서 겨우 술이나 마시고 있는게 꼴사납게 보였는지 그 일을 기사로 다룬게 좀 과장해서 알려졌던것 같네요. 하지만 요즘식으로 말하면 ‘악플도 관심’이란 말처럼 그런 논란자체가 불거지고 과장되는것 자체가 그 당시 남자농구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인기와 관심이 그만큼 뜨거웠었다는 방증입니다. 비인기종목 선수들이라면 어디서 술을 마시던 춤을 추든 그런걸 기사로 다뤄주는 기자도 없었겠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땀냄새 나는 여자하키, 향수냄새 나는 남자농구’란 그 글을 썼던 통신인도 그 방점은 결국 평소 자신이 관심을 보였던 남자농구 선수단이 뜻밖에 졸전을 보인것을 질타하는것에 방점이 찍혀 거기에 대비해서 96 애틀란타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하키 선수단을 끌어들여 비교했던것일뿐, 아마 그 이후로는 다른이들과 별반 다를것 없는 평범한 농구팬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런 추측이 충분히 되네요. - 어쩌면 그 글 쓴 당사자조차도 자신이 그런글을 쓴적 있다는 사실조차 지금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20년전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여자하키는 - 심지어 졸전을 보이는 남자농구와 비교하는 글까지 종종 올라올 정도로 - 사실 그때가 초절정 기량을 보여준때였고, 이후 여자하키는 뒤를 받쳐줄만한 후배 선수들이 없자 서서히 몰락해갔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몇 년후엔 ‘씨랜드 참사사건’때 아이를 잃은 전직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였던 하키선수 출신 30대 주부가 ‘이 나라에 회의를 느낀다’며 자신이 아시안게임때 땄던 메달을 반납하고 해외로 이민을 떠나는 일마저 있었습니다.


 헌데 생각해보니 여자축구도 아마 상황이 여자핸드볼이나 여자하키의 몰락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것 같네요. 그러고보니 그 일도 벌써 한 6-7년전 일인데 국제 청소년 여자축구 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자축구 선수단이 깜짝 우승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 여자축구의 미래에 대한 공연한 기대감과 설레발 같은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축구 역시 여민지,지소연,심서연 대략 이런 선수들이 활약하던 그때가 반짝 인기였을뿐 지금은 대략 아시아에서도 겨우 중위권 정도인 그저그런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네요.


 그러고보면 여자핸드볼이나 여자하키나 여자축구나 올림픽이든 국제대회든 그런데서 반짝 우승이나 메달을 따면 그때 잠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쏠리지만 그 이후엔 여전한 무관심이나 지속적인 성원과 육성의 부재 혹은 후진양성의 실패등으로 몰락해간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여자하키나 여자축구 이야기까지 하면 너무 길고 장황해질것 같으니 일단 여기선 여자핸드볼에만 좀 더 집중해서 이야기를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한마디로 다시말해 우리나라 여자핸드볼이 초절정 기량을 보여주었던것은 90년대 초,중반이었고 적어도 95년 국제선수권대회 우승과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로 이어지던 그때는 국내 실업팀도 9개나 되는등 여자핸드볼 붐이 일던 계기가 분명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IMF를 거치면서 그 많은 실업팀들이 해체되어갔고 많은 선수들이 그로인해 미래와 진로를 불안해해야만 했습니다. 실제 그 무렵에 ‘여자핸드볼’에 관심을 갖기 시작 국내대회를 종종 지켜본 제 눈엔 충분히 임오경,오성옥,오영란등의 ‘올림픽 세대’의 뒤를 받쳐줄만한 유망주들이 꽤 있었어요. 바로 이들이 선배들의 기량을 제대로 물려받아 성장해갔어야 하는건데 그 중요한 시기에 정작 여자핸드볼팀 대량해체라는 비운을 맞으며 몰락해버린 셈입니다.


 결국 2004년 아테네 올림픽때 은퇴했던 ‘올림픽 세대’를 다시 불러들여 30대 아줌마들이 주축이 되어 소위 ‘우생순 신화’를 이뤘던데는 그 불가피한 속사정이 있습니다. 올림픽 세대 이후를 받쳐줄만한 유망주가 더 이상 없는 상황에서 어제의 스타들을 다시 불러들일수밖에 없었던거죠. 사실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은메달을 소재로 만들었던 ‘우생순’ 역시 제작을 맡은 영화감독이 지나치게 여성주의 시각에만 입각 핸드볼과 육아를 동시에 해야만 하는 30대 여성 선수들의 애환에만 중점을 맞춘 나머지 정작 핸드볼계의 이 피치못한 뒷사정등은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네요.


 사실 우리나란 인구가 수억이 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이 넓은것도 아니니 그 많은 스포츠종목들을 골고루 지원하고 육성하며 성원을 보내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경쟁력’을 갖춘 단체구기 한두종목 정도에 관심과 성원을 조금만 더 쏟아부어주었다면 그 경쟁력을 충분히 이어갈수 있었던 종목들이 분명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에 이와같은 장황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해 축구나 농구에 갖는 일반 대중들의 평상시 관심의 절반 정도라도 가령 ‘여자핸드볼’ 같은 종목에 쏟아부어주었더라면 과연 이렇게 형편없이 몰락해갔을까.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솔직히 수십수백번도 더 토로하고픈 심정입니다. - 그리고 실제 제 경험상 프로야구든 축구든 농구든 그런 스포츠에 갖는 관심의 절반을 다른 종목에 돌리는것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일 아니더군요. 까놓고 말해서 저 프로야구에서 LG 트윈스 계속 깨지는것에 화딱지나서 여자핸드볼로 관심을 돌렸던겁니다. -.-;;


 여자핸드볼에만 주제를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음에도 작심하고 하고픈 이야기를 전부 쏟아붓다 보니 어느덧 분량이 A4용지 열장에 이르고 있군요. 솔직히 이제 언론이 소위 ‘우생순’ 어쩌구 하며 여자핸드볼의 대명사인양 사용하고 있는것도 불편해지려 합니다. 무엇보다 ‘우생순’이란 영화 자체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은메달을 소재로 한 것이고 그 2004년 은메달이 은퇴한 ‘서울올림픽 세대’를 다시 복귀시켜 어느덧 30대가 된 그들 아줌마부대의 맹활약으로 이루어진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우생순 그 다음세대가 선배들의 기량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지 못하는 문제를 논해야 할 시점에서 그 ‘우생순’만을 자꾸 부각시키는것은 매우 적절치 못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제 90년대 보여주었던 그 화려한 기술과 역량을 두 번다시 보여주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우리나라 ‘여자핸드볼’의 현실을 보면서 무엇보다 20년전과 비해 기량과 기술이 현저히 떨어진것이 느껴지던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대표선수단의 졸전을 보면서, 그래서 더더욱 20년전부터 여자핸드볼에 관심을 갖고 지켜본 저같은 사람의 입장에선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거듭 드는것입니다. 적어도 언론과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조금만 더 집중되었더라면 충분히 그 개선할수 있는 문제가 있었고 선배들의 기량과 역량을 제대로 전수받아 명성을 이어갈수 있었던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절의 시간이 있었기에 너무 형편없이 몰락해버린 여자핸드볼의 현실이 그래서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와 한번 작심하고 필부의 장광설이 될 지언정 한번 장황하게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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