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whaedra.egloos.com

포토로그



운동선수 팬픽 - 성지현 (5) 운동선수 팬픽




                                     부제 : 2016 신(新) 오셀로





 지현과 현우가 결혼식을 올린것이 그때로부터 3년뒤의 일이다. 이때는 수진이나 성호는 모두 대학을 졸업한 뒤고, 지현 역시 대학을 막 졸업하고 얼마되지 않을때의 일이다. 한편 지현과 현우의 관계는 그녀의 대학시절부터 소문이 이미 날만큼 난 것이었지만, 그녀의 갑작스런 결혼은 특히 배드민턴계를 좀 놀라고 아쉽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지현은 대학 2학년때 이미 국가대표로 발탁된 바가 있을만큼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였고 이후 국제대회에 출전 한두차례 입상까지 했을 정도의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현은 4학년으로 접어들무렵 국가대표를 그만두기로 결심했고, 그 1년뒤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현우와 결혼식을 올린것이다.

 한편 성호는 나름대로 지현을 이제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현과 현우의 관계를 그것도 두 사람의 락커룸 성관계와 그리고 지현이 현우와 관계를 가질때 느낌이 어땠는지를 천연덕스럽게 고백하는 이야기를 직접 엿들었을때 받은 충격과 참담함도 그랬었지만,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라도 지현을 자신이 놓아주는게 좋겠다며 나름대로 마음의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지현이 국가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유망주였던 반면 성호는 선수로서 실력이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B급 선수였다. 그런 성호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 실업팀배드민턴부에 입단하긴 했으나 그 실업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성호는 다행히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하긴 했지만 그 팀 역시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해체위기를 맞았다. 이런식으로 비인기종목의 3류선수로 앞날이 불확실한 성호 입장에선 그런 자신이 무리하게 지현을 선택하는것 보단 그래도 어느정도 재력도 있고 나이도 있는 그런 유력 언론사 기자인 현우가 지현을 맡는게 그녀를 위해 더 좋은 일일거라 스스로 판단 그와같이 단념한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게 마음먹는다고해서 그렇게 쉽게 다져지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막상 지현의 결혼식이 다가오자 성호는 쓰린 속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편 지현의 결혼식때는 그녀의 대학시절 동료,친구들이 적잖이 참석 그녀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었다. 지현의 아버지 또한 이름있는 대학 교수로 대내외적으로 활동하면서 알게된 주변지인이 많이 있었기에 그러한 지현 아버지의 친구,동료들도 많이 식장을 찾아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지현을 시집보내게 된 그 아버지를 축하하고 또 한편으론 위로하러 많이 참석해주었다. 따라서 지현의 결혼식은 대체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 축하해 지현아. ”

 “ 이쁘구나 어쩌면. ”

 배드민턴 시합장에서 늘 땀내젖은 유니폼으로 마주하던 동료 선수들도 그런 평상시와는 다른 말쑥한 정장으로 결혼식장을 찾아 신부대기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며 한참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눈부신 웨딩드레스 차림의 지현은 그 어느때보다도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다. 헌데 그때쯤 식이 벌어지는 결혼식장으로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수진이었다. 다른 배드민턴 동료들이 결혼식에 어울리는 정장 차림으로 예식에 참석한것과는 달리 수진은 헐렁한 츄리닝 바람이었다. 그렇다고 평상시 운동할 때 입는 유니폼이나 트레이닝복도 아닌, 뭔가 의도적인 복장의 느낌이 들었다. 수진이 지현의 결혼식이 올리는 예식홀로 다가올때는 이제 막 식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신부 대기실에 있던 지현이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예식장으로 옮겨지려 할 때였다. 수진은 자판기에서 미리 준비해 가져온 컵에 커피를 하나가득 따랐다. 그리고는 뭔가 작정한듯한 표정으로 지현이 있는곳으로 다가갔다.

 “ 성지현 !!! ”

 사실 아까 친구,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찍을때에도 수진이 오지않아 의아해 하면서도 뭔가 다른 바쁜일이 있으려니 하고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는데 그런 수진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니 지현도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그 놀라움과 당혹스러움도 잠시. 지현이 수진에게 무슨 말을 건네기도 전에 갑자기 수진이 들고있는 뜨거운 커피를 지현에게 확 뿌렸다.

 “ 엄마얏~~~!!! 앗 뜨거워~~~!!! ”

 갑작스러운 수진의 그와같은 행동에 지현은 물론 그녀의 예식장 입장을 돕는 도우미들도 적잖이 당황하였다. 하지만 수진은 아랑곳없이 작정한듯 지현을 바라보며 퍼부어댔다.

 “ 성지현, 넌 좀 맞아야 해. ”

 “ 어...언니... ”

 사실 지현은 아직 그때까지 성호와 수진 사이에서 있었던일을 모르고 있다. 수진이야 지현과 현우의 관계를 알고는 처신을 좀 조심해 주었으면 한다는 주의 정도나 가끔 주는 것으로 생각했었지, 3년전 그날 수진과 지현의 대화를 성호가 엿들은것은 물론 락커룸의 정사를 성호가 목격한 사실, 아니 그보다 근본적으로 성호의 지현에 대한 감정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지현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그것도 성호도 아닌 성호를 한때나마 짝사랑했던 수진이 갑자기 나타나 이러는 것을 지현은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 지현이 넌 성호선배한테 모욕감을 주었어. ”

 “ 언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 ”

 지현은 여전히 수진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해 더더욱 놀랍고 당혹스러워 그와같이 묻고 안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지현을 돕는 예식장 도우미들이 수진을 막으려 했다.

 “ 이것봐요, 여기와서 지금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 신성한 예식장에서 이렇게까

  지 하시는건 아니죠. 자꾸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

 그리고 도우미들은 진짜 경찰이라도 부르려는듯 스마트폰으로 어디론가 연락하려는 자세까지 취하고 있었다. 수진도 일을 너무 크게 벌이고 싶진 않은지 지현에게 경고성 멘트를 한마디만 더 날린뒤 그쯤에서 물러나려 했다.

 “ 성지현 너 이것 하나만은 똑똑히 알아둬. 넌 신성호 선배한테 돌이킬수 없는

  상처를 안겨다 준 애야. 니가 성호선배한테...얼마나 모멸감과 참담함을 안겨다

  준건지 알기나 해 ? 무엇보다 내가 그걸 알기 때문에 너 절대 가만안둬. 니가

  성호선배한테 상처준 사실만큼은 내가 절대 그냥 안 넘어간다구 !!! ”

 “ 이것보세요 !!! 대체 지금 여기서 뭐하자는 거에요 ? ”

 수진에게서 나오는 말들이 점점 심상찮아지자 도우미들이 결국 적극적으로 수진을 더더욱 막아서려 했다. 수진도 일을 너무 크게 벌이거나 지현의 결혼식 자체를 아예 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그 정도의 엄포만 놓고 빠른 속도로 도망치듯이 결혼식장을 빠져나갔다. 신부대기실에서 예식장까지 거리가 다소 있어서 다행히 대기실 앞에서 벌어진 이와같은 잠깐의 소동을 눈치챈 하객은 거의 없었다. 수진이 끼얹은 커피도 약간 빗맞았기 때문에 웨딩드레스 어깨 부분과 가슴 부분에만 좀 얼룩이 졌을 뿐이다. 지현의 웨딩드레스에 묻은 얼룩은 이내 곧 결혼식의 흥겹고 밝은 분위기 속에 바로 묻혀지고 말았다. 비록 수진으로 인해 신부 대기실 앞에서 그것도 신부 입장 직전에 약 몇초 정도의 아찔한 순간은 있었을지언정 지현과 현우의 결혼식만큼은 많은 하객들의 축복속에서 흥겹게 치러졌었다.





 수진이 지현의 집을 찾아간것이 그로부터 반년만의 일이다. 현재 남편 도균과 현우-지현 부부를 엿먹이기 위한 무시무시한 흉계를 꾸미고 있는 수진. 하지만 그러한 속내를 숨긴채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집 주소야 현우의 직장 동료이면서 후배이기도 한 도균이 알고있고, 다만 불쑥 찾아가는것은 예의가 아닌지라 수진이 먼저 지현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고보면 그날 결혼식장에 나타나 커피를 끼얹고 사라진뒤 처음으로 취해보는 연락 아닌가. 수진은 일단 그날일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며 약속날짜를 정했고 그날 지현의 집으로 찾아갔다.

 “ 에잇~! ”

 수진을 보자마자 지현은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듯말듯한 야릇한 모습으로 뜨거운 물이라도 한바가지 퍼부을듯한 기세를 보였다. 순간 당황한 수진이지만 지현은 진짜 그럴 의도는 없는지 들고있던 물바가지는 일단 내려놓았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서는 수진에게 그날일의 연유나 알고싶다는 생각에 질문을 건넸다.

 “ 어서 들어오기나 해요. 그리고 그날은 진짜 왜 그랬어요 ? 나 그날 얼마나 황

  당했는지 알아요 ? 그리고 별안간 성호선배 이야기는 또 왜 나오고... ”

 그러고보면 지현은 자신을 놓친게 아쉽다는 성호의 이야기는 그 뒤에 만나서 알게된 사실이다. 따라서 결혼식 당일까지도 성호의 자신에 대한 감정은 물론 지현으로 인해 얼마나 충격과 상처를 받았었는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그녀. 바로 그 일로 인해 수진이 지현에게 앙심을 품게 된것이긴 하지만, 오늘은 발톱을 감추어야하기에 일단 지현을 안아보며 마치 진짜 한때 친했던 선후배 사이라도 되는양 아양을 떨어댄다.

 “ 아유, 지현아. 왜 그래 ? 화 풀어. 미안해 그리고 그날은...정말 진심으로 미안

  하게 생각해.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 ”

 “ 몰라요. ”

 그날일은 확실히 지현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나보다. 게다가 이후 성호에게서 들은 이야기도 있어서인지 더더욱 그때일이 마음에 걸려 지현은 거실 소파에 그녀와 나란히 앉은채 그날일에 대한 이야길 다시금 꺼낸다. 수진으로선 일단 변명이든 해명이든 해야겠기에 적당히 둘러대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 미안해. 난 그냥 그날...실은...성호선배가 너 좋아했었다 하더라구. 그런데...니

  가 그렇게 갑자기 결혼발표를 하는바람에. ”

 “ 성호선배가 언니한테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요 ? ”

 “ 응 ? 으...응...어쩌다 조금 그렇게 되었어. ”

 “ 허허 참... ”

 여하튼 성호가 자신을 좋아했었단 이야긴 지현으로선 뒤늦게서야 알게된 사실이고 무엇보다 지현이야 이미 결혼까지 한 마당에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라서인지 그냥 조금 착잡한 심경을 담아 수진에게 말을 건넨다.

 “ 나 그날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요 ? 나 진짜...이제 막 식장안으로 들

  어가려는데 갑자기 언니가 나타나서 그래서...저 진짜 그날 무슨일 나는줄만 알았

  단 말이에요. 얼마나 아찔했는지 진짜... ”

 “ 미안해 지현아. 그날일은 내가 경솔했나봐. 사실 그리고 따지고보면...성호선배

  혼자서 그냥 짝사랑한것에 불과했는데...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일으켰나봐. 어쨌

  든 그날일은 진짜 거듭 사과할게. ”

 진짜로 지현에게 싹싹 빌기까지 하면서 수진은 사과의 말을 거듭 건네고, 지현으로서도 그날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싶지 않은지 그쯤에서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편 수진은 수진대로 이런식으로 지현에게 접근하는 의도가 사실은 따로 있는지라 이쯤에서 화제를 살짝 돌린다.

 “ 저기 그리고 지현아...아, 아니다 참. 내 정신 좀 봐라. 이젠 더 이상 지현이가

  아니지. 저어...사모니임... ”

 “ 네에 ? ”

 순간 교태스런 말투로까지 바뀌면서 지현을 ‘사모님’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수진. 지현은 아직 수진이 이러는 이유를 알지못해 더더욱 어리둥절해한다. 수진이 지금 남편 도균과 결혼한것은 지현의 결혼보다 1년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수진은 대학은 졸업한지 이제 1년정도 지난 상태. 배드민턴 선수생활은 계속하고 싶었지만 집안에서의 바램이 있어서 수진은 결혼을 좀 서두른 편이다.

 사실 수진은 집에서 위로 오빠가 넷이나 되는 5남매중 막내로 부모님이 나이 40을 넘겨 낳은 늦둥이 막내딸이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대체로 귀하게 자라온 편이고, 게다가 수진 부모님은 그분들 연세가 연세인지라 늦게 본 막내딸 수진을 가급적 빨리 시집을 보내길 원했다. 그래서 주위에 수소문을 해서 유력언론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수진보다 나이는 아홉 살 많은 김도균 기자와 선을 보게 한 것이다. 수진의 부모님의 경우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해온 평범한 중산층 부부로 지금은 둘 다 퇴직한 상태. 그래서인지 더 늦기전에 수진을 빨리 시집보내고 싶었던것이다. 그래서 기왕이면 나이차이도 좀 나서 철없는 어린 막내딸을 너그럽게 잘 품어줄수 있을것 같고 직업도 그만하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으니 바로 그런 유력 언론사의 30대 중반 정치부 기자인 김도균과 서둘러결혼시킨 것이다. 다만 수진이 결혼후에도 선수생활은 계속하길 원했기 때문에 지금은 한 실업팀의 여자 배드민턴부 선수로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결혼후 완전 전업주부가 된 성지현과는 대조적이다.

 “ 실은 사모님께 저희 남편 좀 잘 부탁드리려고 그 말씀좀 드리고 싶어 찾아 뵙고

  싶다고 했던거에요. 저희 남편...그러니까 사모님 남편분께 아랫사람이 되는거잖

  아요. ”

 정확히는 현재 A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는 정현우는 복리후생국으로 밀려난 김도균에게 직속상관은 아니다. 다만 어쨌든 정치부 기자생활을 하면서 선후배 관계인 두 사람이 이런저런 악연으로 계속 얽혀있었고, 그러다 5년만에 정치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정현우에 비해 좌천이라도 되듯 밀려난 김도균이 아닌가. 그러니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속에서 수진은 일단 외형적으로는 남편좀 잘 봐달라고 남편 직장상사의 부인한테 아첨을 떠는 그런 부하직원의 아내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것이다. 한편 지현으로선 이제야 수진 남편이 바로 자기 남편 회사의 그것도 아랫사람이란것을 알게된 것이라 새삼 더 기가막히다는듯 한마디 톡 쏜다.

 “ 아니, 그러면...그걸 다 알면서 그래 남편 상사의 부인될 사람한테 그것도 결혼

  식날 찾아와 커피까지 끼얹은거에요 ? 아니,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 ”

 지현도 수진 결혼식때 참석은 했었고, 그날 얼핏 남편 직업이 기자라는 이야기도 듣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도 다름아닌 남편과 같은 언론사에 일하는 후배이자 부하직원이라니 지현 입장에서도 이런 묘한 인연이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더욱 묘해진다. 그래서인지 그날 그렇게 커피세례를 끼얹은 수진이 더더욱 괘씸해지기까지 하고. 수진은 그런 지현에게 거듭 코맹맹이 소리로 아양을 떨어대며 사과의 말을 거듭 입에 담는다.

 “ 사모님...그러시지 마시고. 그날은 제가 진짜...너무 속좁게 행동한거였어요. 아

  휴...아무튼 사모님...그러니 성호선배든 뭐든 그쪽일은 말끔히 잊어버리시고 저

  희 남편좀 잘 좀 봐주세요. 네, 사모님 ? ”

 지현 입장에선 수진에게서 ‘사모님’이란 소리를 듣자 더 어색하고 이상하기까지 하다. 여하튼 대학 시절엔 수진이 배드민턴부 선배이지 않았던가. 헌데 그런 수진이 갑자기 자신을 ‘사모님’이라 부르며 아랫사람 행세를 하려드니 더 기분이 이상한것이다. 지현은 일단 굳이 그럴것까진 없다며 손을 내젓는다.

 “ 아휴, 이러지 마세요. 선배도 참...그렇다고 갑자기 무슨 사모님까지...선배한테

  이런 소리 들으면 저만 더 어색해요. 그냥 편하게 대해주세요. ”

 “ 저희 남편 잘 좀 봐주시라구요. 네에 ? 아셨죠 사모님 ? ”

 “ 거 참...아니, 제가 대체...아니 그래요 뭐...제가 대체 선배를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는건데요 ? ”

 “ 사모님께서 제게 시키실일 있으시면 뭐든지 하세요. 사모님 부탁이라면 사소한

  심부름이건 뭐건 뭐든지 할테니까요. 예 ? 사모니임... ”

 “ 아휴...되었어요. 되었어. 우리집이 무슨 재벌가도 아니고 그냥 이 정도 집에서

  사는데 무슨 파출부나 가정부 둘 일 있는것도 아니고...아무렴 제가 뭐 그렇게

  선배한테 이것저것 시키고 할 일이 있겠어요.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진 안 하셔도

  돼요. ”

 “ 사모니임...제발 저희 남편좀 잘 봐주세요. 네에 ? 사모니임...그날일은 제가 정

  말 잘못했으니까...진심으로 무릎꿇고 사죄드리니까...그날일은 제발 더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주시구요. 그저 저희 남편 좀...저희 남편 좀 잘 봐주세요. 네에 ?

  사모니임~~~!!! ”

 수진이 이렇게까지 아양을 잘 떠는 여자였었나. 이런 모습은 그러고보면 지현 기억에 본적이 거의 없어서 수진의 태도는 더더욱 낯설기만 하다. 수진은 대학시절 뭐 그렇게까지 엄한 선배는 아니었지만, 여하튼 성호문제로 얽힌 인연 때문인지 자신보고 처신좀 조심하라며 잔소리를 종종 하던 그런 선배이기도 했고, 가끔은 사소한 심부름을 시키거나 훈련 파트너가 좀 되어달라는 부탁도 하던 아랫사람 부리는 윗사람 노릇은 할만큼 하던 그런 선배였다. 헌데 그런 수진이 이렇게까지 아첨을 떨며 심지어 자신이 시키는건 무슨일이든 다 하겠다는 소리까지 입에 담으니 지현은 기가막힐 뿐이다. 또 한편으로는 여하튼 대학시절 수진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나름 재미있게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수진의 아부가 지현으로 하여금 살짝 묘한 회심의 미소를 짓게 만드는것이다.





 수진과 지현의 재회가 그와같이 이루어진 얼마후, 수진은 지현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헌데 지현은 말투부터가 달라진 모습으로 뜻밖의 요구를 해왔다.

 “ 수진씨. ”

 “ 옛 ? ”

 순간 얼떨떨한 기분이 된 수진. 자신을 대놓고 ‘수진씨’라 부르는 지현이 아닌가. 아무리 현우가 자신의 남편 도균에게 직장에서 윗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현우가 도균의 직속상관도 아닌 마당에 그것도 엄연한 대학 선배인 자신에게 대뜸 이와같이 나오는 지현으로 인해 수진은 기분이 멍해질 지경이었다. 헌데 그런 수진이 무슨 말을 건넬 겨를도 없이 지현의 말이 이어졌다.

 “ 수진씨 지난번에 내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하겠다고 했었지 ? ”

 ‘어머...어머...얘 봐라 ?’ 하고픈 심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수진은 입술을 악 물었다. 사실 수진이 지현에게 접근을 시도한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것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은 더더욱 그 속내를 숨겨야 하는 상황 아닌가. 바로 그 지현을 찾아가서 ‘우리 남편 좀 잘 봐달라’며 그야말로 오만 아양을 다 떨어댔던 수진. 그것이 진심인줄 아는것인지 지현은 그야말로 수진을 아랫사람 대하는듯 하고 있는것이다. 기가막혔지만 수진은 일단 참으며 지현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 그럼 수진씨가 한 일주일 우리집좀 봐주면 안될까 ? ”

 “ 예 ? ”

 ‘미안하지만’ 같은 형식적 수식어조차 하나 붙이지 않은채 대뜸 이러고 나오는 지현의 모습에 더더욱 수진은 기가막혔지만 일단 겨우겨우 스스로를 억누르며 그녀에게 아부를 떠는 태도를 보인다.

 “ 어...어...아유...사모님. 네 그럼요...어느분 부탁이라고 제가 거절하겠습니까요 ?

  헌데 일주일씩이나 대충 무슨일로... ”

 “ 실은 친정에 좀 일주일 가 있어야 해서 그동안 내가 집을 비워야 하거든. 그러

  니 그동안 우리 그이 밥해줄사람도 없고...낮엔 여하튼 빈집이 되잖아. 그러니까

  수진씨가 그동안 우리 집좀 봐 달라고. 그러면서 우리 그이 식사도 좀 챙겨주고

  ... ”

 “ 일주일이나 친정에 가 계신다구요 ? 아니, 왜요 ? 대체 무슨일로 ? ”

 사실 현우와의 사이에 잠자리 문제로 불화가 있는 상태인 지현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이야길 수진에게 한적은 없으니 그걸 그녀가 알리는 없고, 지현은 일단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계속 이어간다.

 “ 실은 아버님 논문 쓰시는걸 내가 곁에서 좀 도와드려야 하거든. 그래서 한 일

  주일 정도는 좀 내가 아버님 곁에 있으려고 해. 우리 아버지 교수님인건 수진씨

  도 알지 ? ”

 ‘근데 이게 꼬박꼬박 수진씨라고 하네 ?’ 하며 뭐라 한마디 하고픈 심정을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는 수진. 하지만 그보다 더 납득 안가는 일이 있어서 수진은 일단 그에대한 궁금증부터 묻는다.

 “ 논문 쓰는걸 도와드린다구요 ? 그런건 보통 조교가 하지 않나요 ? ”

 “ 그렇기도 하지만 책이나 자료 찾고 하는것은 이전에도 가끔 내가 아버님 도와

  드리고 했었어. 그래서 이번에도 좀 그런 작업을 내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

  서. 그러니 한 일주일만 부탁해 수진씨. ”

 지현이 말한것처럼 그녀의 아버지가 대학교수란 사실은 수진도 학교때부터 들어 알고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논문 쓰는데 자료 찾고 하는 문제를 조교가 거들어주지 않고 딸한테 부탁하는것은 일반적이진 않은 상황이라 수진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여하튼 지현의 설명에 의하면 책을 찾아본다던가 또는 인터넷에서 자료 검색 같은것을 하는 작업 정도는 자신이 아버질 도와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 지현 아버지가 컴맹인듯 ^^;; - 여하튼 수진 입장에선 그걸 너무 꼬치꼬치 따질 상황은 아닌지라 그쯤에서 다시금 아부의 말을 입에 담는다.

 “ 아유, 그럼은입쇼. 제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사모님 부탁을 거절하겠나요. 그

  럼 제가 일주일동안 사모님 댁 잘 봐드릴테니 아무걱정 마시고 사모님께선 아버

  님 일 도와드리도록 하세요. ”

 그렇게 아양을 떨어대며 통화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수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뒤엔 애꿎은 그것만 한 대 칠듯한 기세가 되어버린다. 그야말로 속터질노릇 아닌가. 그야말로 성지현 이 기집애가 지금 눈앞에 있다면 귀쌰대기라도 한 대 갈겨버리며 이러고픈게 수진의 진짜 속마음인것이다.

 “ 야 !!! 이 X이 근데...어따대고 꼬박꼬박 수진씨래 ? 야, 이 X아...시집가면 이

  젠 선배고 뭐고 뵈는게 없냐 ? 이게 어디서 조그만게 하늘같은 선배 머리 끝에

  기어오르고 있어. 너 성지현 당장 내 앞에 무릎꿇어 !!! ”

 사실 실제 키는 지현이 수진보다 10센티 정도 더 크니 수진이 지현보고 ‘조그맣다’고 한다면 그건 딱 우스꽝스런 모양새가 벌어질수 있는 그런 장면이긴 하다. 하지만 여하튼 수진은 자신이 선배고 윗사람이란걸 상기시키기 위해 그와같은 표현을 하는것이고, 여하튼 지금은 애꿎은 끊어버린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서 한바탕 욕설만 퍼부어댄다.

 “ 수진씨라니...수진씨라니 !!! 내가 니 하인인줄 아냐 !!! 이 정신빠진 기집애야

  !!! 이게 그냥...아부좀 한번 떨어줬더니 아주...무슨...어휴 이걸 진짜 그냥 한 대

  확 !!! ”

 속에서야 천불이 나지만 일단 지현의 부탁대로 하기로 한 수진. 지현이 친정으로 가기로 한날 교대라도 하듯 지현이 집을 나올 시간쯤 되어 그녀의 집을 방문한 수진. 일단 친정으로 떠나는 지현을 배웅하고는 수진은 빈집이된 그녀의 집 거실 한가운데 털썩 앉아본다.

 “ 하아... ”

 여하튼 이런 빈 집에 자신 혼자 있다보니 기분이 괜시리 묘해지기까지 하는 그녀. 어쨌거나 대학 후배이기도 한 그녀의 신혼집에 혼자 있으니 그녀가 대체 어떻게 사는지 그 사는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현의 집을 한바퀴 빙 돌아본다.

 “ 그럭저럭...잘 해놓고는 사네 뭐. ”

 사실 35평의 수진의 집보다도 다소 작은 30평짜리 지현과 현우부부 집이니 수진 입장에서 뭐 그리 집이 크다던가 잘산다는 느낌을 받진 못할것이다. 다만 여하튼 지금은 집에 혼자 있고, 게다가 어쨌든 남편 직장 상사의 집이라는 생각에서 괜시리 드는 주눅감 때문일까. 집이 작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그런대로 괜찮게 잘 꾸며놓고 산다는 그 정도의 느낌 정도는 받는다. 거실과 부엌 그리고 그 양 옆으로 방이 하나씩 있고 오른쪽의 방이 현우와 지현부부 침실이다. 그리고 그 방 건너편으로도 작은방이 또 하나 딸려있다. 아직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으니 - 그건 수진과 도균 부부도 마찬가지지만 - 침실 이외의 나머지 두 방은 다 빈방이고, 그 하나는 이런저런 허드렛짐을 쌓아놓은 창고 비슷한 용도로 쓰고있는 중이다. 현우의 직업이 기자이니 만큼 그래서 읽어봐야할 책이나 자료 같은것은 또 다른 빈방에 모아놓았다. 그러니 그 방은 현우의 서재겸 작업실인 셈이다. 하지만 요즘은 현우가 작업실도 아니고 침실 건너편의 다소 작은 창고용 방에서 지내고 있는중. 그러나 그 구체적인 두 사람 사이의 내막까진 알 수 없는 수진인지라 별다른 느낌없이 그 세 개의 방을 다 돌아보고 있는중이다.

 “ 청소라도 좀 해줄까. ”

 근데 바로 현우가 요즘 쓰고있기도 한 창고용 방이 그래서인지 웬지 좀 지저분해보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어쨌든 지현에게 아양을 떨어야할 그녀 입장에선 점수를 따기위해 뭐래도 해야할 터였다. 그래서 곧 청소도구를 찾아서는 집안 청소를 시작한다.

 ‘ 위이이잉~~~!!! ’

 돌아가는 자동 청소기 소리와 함께 한참 진땀을 흘리며 청소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수진. 거실과 두 개의 빈방. 그리고 마지막 현우와 지현 부부의 방까지 청소를 하러 들어갔는데 그러다 잠시 현우와 지현 부부의 침대를 바라본다.

 침대는 지금은 대체로 잘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다. 조금전 매우 지저분해보였던 창고용 방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헌데 베개 두 개가 나란히 있는데 그중 하나가 좀 낡아보이는 느낌이다.

 “ 이게...정현우 그 사람 베개인가 ? ”

 기왕 청소를 시작한거 아주 깔끔한 주부마냥 이불빨래 베개 청소까지 다 해줄 기세인 수진. 베갯잇을 빨아주기 위해 그 겉을 벗긴다. 헌데 그러다 뭔가가 ‘툭~!’ 하고 떨어진다.

 “ 어 ? 이게 뭐야 ? ”

 매우 낡아보이는 헝겊조가리가 현우의 베개에서 떨어졌다. 뭔가 궁금해서 펼쳐보긴 했는데,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리고 무척 낡고 여기저기 헤진 자욱까지 있는 그런 헝겊이었다. 게다가 냄새도 장난이 아니었다.

 “ 아휴, 냄새. 이게 뭐야 대체 ? 뭐 이런것을 베개 속에 넣어두고 있어. ”

 현우란 사람 좀 별난 사람인가보다 생각도 되고, 이런게 왜 이 속에 있어야하나 이해도 가지않아 그 낡은 헝겊을 내다버리기로 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 낡은 헝겊이 베갯속에 있다는것도 좀 꺼림칙해 보이기도 했고, 이런게 없다고 뭐 설마 큰일이나 나랴 싶은 생각에 그러기로 한것이다. 그래서 베갯잇과 이불등은 빨래를 하기위해 내놓으면서 그 낡은 헝겊은 내다버렸다. 아마 쓰레기봉투 정리작업을 할때 그 버린 헝겊도 함께 내다버려지게 될 것이다. 수진은 아직 다 하지 않은 청소작업을 마무리하기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 6회에 계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