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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팬픽 - 성지현 (3) 운동선수 팬픽




                                    부제 : 2016 신(新) 오셀로

 



 성호는 호젓한 술집에서 혼자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만한 돈은 되는지 그런대로 분위기 있는 바(bar)에서 비싼 양주를 하나 시킨뒤 그것을 냉수마냥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성호. 하지만 그가 단순히 술주정꾼이거나 해서 그런것은 아니고, 이렇게 해서라도 몹시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속을 달래고픈것이 지금 성호의 심정인것이다. 오늘 낮에 있었던 지현과의 일도 그렇거니와 그녀와 있었던 지나간 시간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해보니 그의 가슴이 새삼 한없이 쥐어짜는듯한 고통과 아픔을 느끼고 있는것이다. 차라리 아까 지현에게 직접 이빨로 가슴을 물어뜯겼을때도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던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호는 지금 한없는 고통스러움의 수렁속으로 빨려들고 있는것이다.

 “ 지현아...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척이나 고통스런 음성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은 성호. 어느새 잔이 다 비워져있자 거기에 양주를 한잔 더 가득 따른다. 그리고 또다시 그것을 벌컥벌컥 마셔대는 성호. 술병에 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알자 큰 소리로 종업원을 불러 한병을 더 시키는 성호. 정말 이 비싼양주를 마구 주문해도 될만한 그만한 돈이 있긴 한건지 그게 더 걱정이 될 지경이다. 하지만 이미 잔뜩취한 성호는 그런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듯 술만 거듭 마셔대고 있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흐느끼며 다시 혼잣말을 주절거린다.

 “ 지현아...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니. ”

 단순히 지현이 지금 다른 사람의 남편이라는 점, 그것도 남자로서 그다지 매력도 없고 잘생기지도 않고 나이도 많은 그런 사람의 아내라는 점. 그것때문만이 아닌 그 이상으로 성호를 괴롭게 만드는 그 무엇이 그에게 있는것만 같다. 그 고통스러운 속내를 성호는 다시금 혼잣말처럼 슬픈 목소리로 내뱉는다.

 “ 지현아...너 그거 아니 ? 내가 너한테 진짜로 실망한게...진짜로 실망한게 언제

  였는지를... ”

 지현이 한국체대에 갓 입학했을때 성호는 3학년이었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와 복학한 3학년인지라 지현과는 다섯 살 나이차이가 났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같은 배드민턴부에 들어온 1학년 신입생과 첫 상견례자리.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 답게 지현은 청순한 헤어스타일에 뽀얗고 앳되어보이는 피부. 그런 청순한 느낌이 어디 지현에게서만 느껴지겠냐마는 성호는 지현과 함께 들어온 1학년 배드민턴부 신입 여학생 세명중 지현에게 더더욱 눈길이 갔다.

 그랬기에 이후 이따금씩 지현에게 관심을 보이며 밥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공세도 하며 그런대로 친절하게 대해주던것이 성호 선배다. 다만 지현은 그때까지만 해도 성호를 그저 자신에게 잘해주는 고마운 선배쯤으로만 여길뿐 그 이상의 의미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한편 고등학교때부터 배드민턴계에서 새로이 떠오르는 샛별이란 소리를 듣던 지현은 대학에 들어온 뒤 더더욱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어 조만간 국가대표 발탁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떠오르는 국가대표 유망주’로 언론과 인터뷰도 몇 번 가졌고, 실제 국가대표가 되어 국제대회에 출전 입상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런 지현에 비해 상대적으로 배드민턴 실력은 좋은편이 안 되는 성호는 그런점 때문에 지현에게 약간의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현은 여하튼 만약 국가대표로 발탁되면 꼭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그런저런 국제대회에 출전 입상이라도 몇 번하면 그 앞날이 훤히 트일수도 있는 처지. 하지만 성호는 국제대회는 커녕 국내대회에서도 대체로 신통찮은 실력을 보이는 B급 선수였다. 이대로 대학을 졸업하면 그나마 운이 좋아 실업팀에라도 들어가 선수로서 활동을 계속할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처지가 신성호였다. 무엇보다 이제 곧 3학년을 지나 4학년이 되는 성호임을 생각해본다면 차라리 배드민턴보단 다른쪽으로 진로를 빨리 바꿔봐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고민도 할법한 그런 단계에 있는것이 성호였다.

 그래서 지현에게 마음이 있건만 쉽사리 고백은 하지 않은채 그저 지현에게 유독 관심과 호의를 표하는 ‘좋은선배’ 그 정도의 의미로밖에 남을수 없었던 성호.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성호는 4학년 지현은 2학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는 락커룸에 급히 좀 들를일이 있어 허겁지겁 그곳을 찾았다. 락커룸은 선수들에게 경기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거나 휴식을 취하는 단순한 그런 공간이 아닌 어쩌면 그 이상의 신성한 의미가 될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다. 경기에 임하기 직전의 선수이든 경기를 마친 선수이든 여하튼 머물러 있어야하는 그런 공간 아닌가. 따라서 때론 경기에 임하기전의 각오와 결의를 다지기도 하고 시합이 끝난뒤엔 이긴 선수는 선수대로 진 사람은 진 사람대로 그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을 토해내거나 곱씹기도 하는 그런 공간. 운동선수들에게 그런대로 심오한 철학과 사색의 시간이 될수도 있는 그런 공간일 것이다.

 여하튼 그 락커룸에 급한 볼일이 있어 들르려는데, 그 안에서 뭔가 묘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녀간의 정분을 나누는 소리. 혹 성호가 무슨 성인영화 같은걸 보다가 그런 장면과 신음소리를 보거나 들은적은 있을지 몰라도 100퍼센트 리얼한 그 현장을 목격한 경험은 아직까지 없을것이다. 헌데 락커룸안에서 들리는 이 기묘한 소리는 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설마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적잖이 화가났다. 혹 어떤 철딱서니 없는 캠퍼스 커플이 한때의 젊은 혈기를 못 참고 신성한 락커룸에서 저런짓을 벌이고 있는것은 아닌가.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도 선배로서 그냥 보아넘길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봐서 만약 특히 자신과 똑같은 배드민턴부 후배거나 할 시에는 단단히 기합을 주리라 생각하고 일단 락커룸 입구에서 그 안을 살펴보았다.

 저만치 휴게용 큰 테이블 의자 그 뒤쪽에서 나는 소리가 틀림없다. 그리고 여인의 다리로 보이는 분명한 그것이 요동치듯 흔들거리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 리얼한 장면을 보니 더더욱 기가막혔다. 남자는 그 위에서 한없이 자신의 여자에게 그 뜨거운 정열을 발산해내는 중이신가본데 여하튼 여자위에 올라탄 남자는 입구에서 바라보는 성호가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만 여인의 것으로 보이는 운동화가 저만치 벗겨져있는게 눈에 들어와 성호는 더 기가막혔다. 보니까 저렇게 정신없이 신발까지 벗어던지고 제 남자친구와 백주대낮에 저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있나본데, 어디 그래 실컷 즐겨봐라. 그래도 니들끼리의 이 한참 즐거운 기분을 깨진 않겠다. 하지만 끝나고 보자. 단단히 혼을 내줄터이니. 하고 잔뜩이나 벼르면서 그 아직은 실체를 알수없는 남녀 한쌍의 휴게용 테이블 의자 뒤편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정사를 먼 발치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 하아...아저씨이... ”

 헌데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대충 작업이 마무리되어 가는지 요동치던 여인의 다리는 서서히 잦아지면서 락커룸 바닥에 내려앉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여인의 숨결도 이제 절정까지 한껏 치솟았다 가라앉으며 차츰 숨을 고르는듯한 그런 느낌이고. 대체 락커룸에서 이런짓을 벌이는 저 대담한 커플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 제대로 확인할 순간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성호는 한껏 긴장까지 되었다. 헌데 ‘아저씨’ 라니. 여인은 분명 자신과 정사를 나눈 남자를 ‘아저씨’라 불렀다. 성호는 이런곳에서 관계를 가질정도면 남들 시선을 피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락커룸까지 숨어든것을 보면 체육대학 커플이 100퍼센트 분명할것이라 짐작했다. 헌데 상식적으로 여대생이 같은 대학의 남자 상급학년 학생을 ‘오빠’나 ‘선배’라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아저씨’라 부르는 경우는 없다. 그럼 상대남이 학생이 아니고 조교나 교수쯤이라도 된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선생님’이란 호칭이 더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울것이다. 헌데 여자는 선배도 오빠도 선생님도 아니고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내 곧 그 여자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서는듯 하는데 그 모습에 성호는 결국 경악하고 말았다.

 “ 아저씨... ”

 남자를 아저씨라 부르며 다시금 그의 품에 안기는 여자는 다름아닌 성지현이었던 것이다. 락커룸 출입구에서 두 사람이 있는 의자까지 거리가 약간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1년 넘게 아끼고 총애하던 후배였던 그 지현을 성호가 몰라볼 리가 없었다. 사실 지현에게 남자가 생긴것 같다는 소문은 근래에 학생들 사이에 좀 나도는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호는 딴에는 지현을 위하고 지켜준답시고 그런 근거없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녀석들을 몇 번 주의를 주기도 하고 혼쭐을 내주기도 했었다. 다른건 몰라도 지현이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것은 - 혹시 자신과의 사이에 그런 스캔들이 난다면 모를까 - 성호의 생각엔 틀림없이 사실이 아니며 잘못 나온 헛소문일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기에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찔한 현기증과 떨려오는 가슴으로 인해 성호는 이미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 되어 있었다. 대체 자신이 지금 어떻게 이 자리에서 힘을 제대로 지탱하고 서 있는지 그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성호는 제정신이 아니었던것이다. 바로 두 눈앞에서 목격한 지현과 정체를 알수없는 수수께끼의 남자. 무엇보다 방금전까지 락커룸 벤치 뒤쪽에서 그 뜨거운 정사를 나누던 사람이 다름아닌 지현임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로인해 받은 정신적 충격이 성호를 도저히 정신을 제대로 주체할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가고 있던것이다. 도대체 정신이 어질어질하기만 해 대체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것인지 그 판단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조금 수습된 정신으로 그쪽을 바라보았을때 지현은 그 남자의 품에 다시금 안겨있었다. 어찌보면 제법 다정해보이기까지 한 그 한쌍의 남녀. 다만 여하튼 락커룸 입구에서 그곳까진 거리가 다소 있기 때문에 성호가 지금 지현의 표정이라던가 그런것을 세세하게 확인해볼수는 없었다. 다만 남자가 거듭 지현의 어깨며 등을 토닥이면서 뭔가를 속삭이는듯한 그런 모습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성호는 그때 몰랐지만 사실 그때 지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져본 것이다. 그것도 바로 당시엔 A일보 정치부 기자에서 일시적으로 스포츠신문 기자로 좌천이 된 상태인 정현우란 남자와. 현우는 비인기 종목 메달 유망주들을 연달아 취재하다 배드민턴 협회와 한국체대측의 추천으로 당시 떠오르는 유망주 성지현과 인터뷰를 할 기회를 몇 번 갖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 사이가 차츰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그땐 이미 지현과 현우의 관계는 사뭇 대담해져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한국체대 한복판인 체육관 락커룸에서 그것도 그런 뜨거운 정사를 가질 정도라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것이다. 다만 그때 지현은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현우와 그런 관계까지 가졌는지, 흔히 하는말로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던 것’이라고나 할까. 어떤 공감되는 감정속에 서로의 마음을 나누다가 결국 서로의 육체관계로까지 이어진 대충 그런 분위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지현의 입장에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처음으로 가져본 남자와의 관계였기에 막상 그 관계를 마치고 나서 온몸을 휘감는 생전 느껴보지 못한 그 첫 느낌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단순한 성정에 표현력도 부족한편인 지현은 이 순간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렇게 현우의 품에 안겨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우의 느낌에도 아무래도 지현이 이 아이가 첫 경험이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바로 들어 그녀를 다독이며 마음을 가라앉힐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락커룸 입구에서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위치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성호 입장에선 여전히 다정하게 정분을 나누는 한쌍의 남녀로 보일수밖에 없는것 아닌가. 바로 그런 광경을 목도한것이기에 성호는 그날의 충격에 도저히 스스로를 주체할수 없는 지경. 그야말로 현기증에 그 자리에서 쓰러지지 않은것만도 다행인 그런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던것이다.

 여하튼 행여 두 사람에게 들킬세라 출입문 옆 벽쪽으로 간신히 자신의 몸을 옮겼다. 두발자욱도 채 안되는 거리이건만 그것이 성호에겐 마치 천만리 강행군이라도 한듯한 고통과 무게감이 들게 했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어떻게 가까스로 그곳까지 옮겨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을 지경이다. 그리고 벽쪽으로 락커룸 안에 있는 남녀의 시선에선 도저히 자신이 발견될 수가 없는 그런 위치로까지 가까스로 자신을 옮겨놓은후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야 말았다. 너무나 기가막힌 현장을 보고난 직후라 성호는 도저히 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망연자실하게 그 자리에 있었을까.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성호는 그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떨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은 여전히 그대로인지라 발걸음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겨우겨우 옮겼다. 마침 저만치에 비상계단쪽으로 가는 출입문이 있기에 그쪽으로 가까스로 가서는 출입문을 혼신을 다해 열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그곳에 몸을 숨겼다. 아니, 몸을 숨겼다기 보다는 비상계단쪽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다시 쓰러지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현우와 지현이 락커룸에서 나온것은 그보다 시간이 조금 지난뒤의 일인데 성호가 가까이에 있는 비상계단쪽으로 가까스로 몸을 옮겼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고 다른쪽의 거리가 먼 정상적인 계단쪽으로 가려 했다면 그 광경을 두 사람에게 들켰을지도 모르는일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적어도 두 사람의 성관계 장면을 성호가 목격했다는 사실만큼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우도 지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지현아, 성지현. ”

 한편 지현은 지현대로 학교생활은 평상시처럼 무난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하루는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다름아닌 성호와는 당시 대학 4학년 동급생이기도 한 이수진 선배였다. 다만 수진이 성호보다는 나이가 한 살 어리기에 수진 역시 성호를 ‘선배’라고 부르고 있었다. 수진이 1학년을 마칠때쯤 성호는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던 것이다.

 “ 지현아, 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

 “ 네 ? 뭐가요 언니 ? ”

 수진 역시 배드민턴 선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도 그런대로 친한 편이었고 대체로 언니,동생 하며 지내던 그런 사이였다. 그렇다고 아주 가까이 지내는 그 정도는 아니고 배드민턴부의 같은 여선수들끼리 뭉치거나 몰려다니고 할때 모이곤 하는 그 정도 되는 사이였다. 여하튼 하루는 그 수진이 지현을 불러냈는데 지현은 그녀대로 수진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지 의아해하는 투로 수진에게 물었다. 하지만 수진은 수진대로 뭔가 잔뜩 불안해하고 기가막혀 하는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 너 요즘 너에 대해 소문 도는건 알고 있어 ? ”

 “ 소문...이요 ? ”

 이때 지현은 한참 현우와 열애에 빠져 있을때다. 근데 지현이 순진한것일까. 아니면 눈치가 없는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의외로 대담한 면이 있는것일까. 사실 캠퍼스 커플이든 사내커플이든 또는 어떤 동아리나 동호회내 커플이 되었든간에 어느정도는 주위 사람들에게 들킬세라 조심하는 면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다. 헌데 지현은 가끔씩 취재차 한국체대 캠퍼스를 찾는 정현우 기자와 때론 대담하게 애정행각을 벌이곤 했고 그게 다른 학생들은 물론 배드민턴부 동료들에게조차 들키곤 했던것이 이미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떨땐 그 정현우란 남자와 다정히 팔짱을 끼고 학교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고, 학교내 그런대로 분위기 좋은곳에서 대담한 애정행각을 보이는 모습도 눈에 뜨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아무렴 같은 배드민턴부 선배인 수진의 귀에도 왜 그런 소문이 들어가지 않을까. 그래서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지현을 직접 불러 사실여부를 확인해보려 한 것이다.

 “ 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 너 사귀는 사람 있다는거 정말 사실인거야 ? ”

 “ 맞아요. ”

 헌데 지현은 조금의 망설임이나 거리낌도 없이 어찌보면 사뭇 뿌듯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주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 주었다. 지현이 완강히 부인하고 잡아뗄것이라 예상했던 수진으로선 이런 세상물정 모르는 지현의 태도가 더 답답하고 기가막힐 지경이었다.

 “ 도대체 어떤 남자야 ? 들리는 이야기가 우리학교 학생은 아니라던데... ”

 아마 지현의 데이트 현장을 목격한 다른 학생들 눈에도 그 상대 남자가 한국체대 학생이 아니란것 만큼은 분명히 확인이 가능했나보다. 당시 30대 후반으로 이제 40줄로 접어드는 정현우이긴 했지만 은근히 동안인 얼굴이라 30대가 아니라 20대 혹은 심지어 대학생이라 속여도 믿을만한 그 정도의 외모이긴 했다. 허나 여하튼 지현의 상대남자가 같은학교 학생이 아니란것만큼은 확인해보자면 충분히 확인이 가능한 일이기에 - 그리고 꼭 캠퍼스 커플일 필요도 없는것이고 - 소문이 이미 그 정도로 구체적으로 나버렸나보다. 따라서 지현 역시 그 부분 역시 굳이 부인하거나 숨길필요는 없다는듯 역시 떳떳하게 대답한다.

 “ 네, 맞아요. 학생은 아니고요 가끔 여기 취재오는 기자에요. ”

 신문사 기자라는 남자의 직업까지 아예 작심한듯 밝혀버린 지현. 그런 지현의 모습을 보자 수진은 더더욱 기가막히고 이건 아니라는듯 고개를 잠시 흔들어본다. 어쨌든 배드민턴부 선배로서 이런 후배를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는 나름대로의 어떤 책무감과 사명감에라도 사로잡혀 그녀에게 한마디 한다.

 “ 지현이 너 아무래도 내가 좀 가르쳐야겠다. ”

 “ 네 ? 그게 무슨말씀이세요 ? ”

 난데없는 그와같은 말에 살짝 거부감이라도 오는듯 지현은 그와같이 물었다. 물론 요즘도 학교나 직장 같은데서 군대시절에나 볼수있는 스파르타식 선후배 문화가 적잖이 존재하는듯 하고, 더욱이 운동선수들이라면 그런 규율은 더 엄할수도 있으니 선배 입장에서 후배를 단속하겠다는 말을 하는게 그리 무리가 가는말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지현은 이미 살짝 거부감이 들고있다. ‘언니가 뭔데 내 사생활까지 간섭하려 드느냐 ?’고 사뭇 따지고픈 태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수진은 이런 후배를 더 두고봐선 안 되겠다는듯 결국 한마디 한다.

 “ 처신 조심하란말야. 그것도 여자애가...그렇게 대놓고 헤프게 다니면 못 써 !!!

 ”

 “ 뭐라구요 ? ”

 수진의 표현이 더욱 반발심을 사게 만든것인지 지현은 진심으로 불쾌해서 그와같이 묻고 수진은 그녀 나름대로 지현의 이런 모습 절대 그냥 보고만 넘어가지 않겠다는듯 자신이 책임지고 이 아이를 단속하겠다는 나름 결기라도 선듯한 태도로 잔소리를 계속 이어간다.

 “ 나이도 어린애가 벌써부터 그러고 다니면 나중에 어쩔려구 그러니 ? 아무리 세

  상이 많이 변했어도 여자가 그것도 어린나이에 벌써부터 남자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 나고 그러면 못쓰는거야. 아무튼 성지현 너 앞으로 처신 조심해. 내가 앞으

  로 두고 볼거야 !!! ”





 그런일이 있은 얼마후, 수진은 성호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원래 두 사람이 이런 자리를 자주 가졌거나 그랬던것은 아니고 어느 한쪽의 제안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된것은 아니다. 사실 수진은 신입생 시절부터 성호 선배에게 관심을 좀 갖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호가 바로 군대에 입대해버렸기 때문에 그땐 수진이 성호에게 딱히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고백하거나 다가갈만한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성호가 제대한 뒤엔 두 사람이 동급생이 되긴 했으나, 이때도 성호는 수진을 그저 좀 친하게 지내는 대학후배 그 이상의 의미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지현에 대해 갖고있는 성호의 마음이나 성호에 대한 수진의 마음이나 닮은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성호는 지현을 특별하게 생각해왔으나 지현이 그런 성호를 그저 자신에게 잘해주는 학교 선배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것이나 수진의 경우도 성호가 그저 좀 친하게 지내는 후배이자 동급생 그 이상으로 생각않는것이나 따지고보면 매한가지다. 이날의 경우에는 수진이 배드민턴부 일로 볼일이 있어 성호를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중 어떻게 하다보니 지현의 일이 좀 언급되었고 그러다 그 문제에 대해 좀 더 하고픈 말이 있는듯 그런대로 그날만큼은 서로 마음이 통해 이렇게 함께 식사겸 술자리에서 지현의 문제에 대한 이야길 나누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성호는 이미 얼마전 락커룸에서 지현이 웬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그 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제대로 가시지 않은 상태. 그런 상황에서 지현의 이야기를 나누자니 다시금 정신이 어질어질해질 지경이다. 아직도 성호에겐 그날 ‘아저씨...’라고 하며 지현이 웬 남자와 함께 정사를 마치고 락커룸 의자 뒤쪽에서 일어나던 그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것만 같다.

 “ 수진아. ”

 “ 네, 선배. ”

 수진도 성호의 지현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다는것은 대충 알고 있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수진은 성호에 대한 자기감정은 그런대로 정리한 편이라고 봐도 되는 그런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지현의 일이 언급된 만큼 성호선배의 심경도 복잡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성호에게서 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는 것인지 걱정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안해지기까지 한다. 헌데 성호는 좀 엉뚱한 이야기를 수진에게 건넨다.

 “ 니가볼땐...나 어떠냐 ? ”

 “ 네 ? ”

 순간 미묘하게 눈빛이 흔들리는 수진. 지현의 이야기가 당연히 언급될줄 알았는데 이게 웬 뜬금없는 소린가. 이 상황에서 무슨 대답을 하기도 애매해 수진은 잠시 얼떨떨하게 성호를 바라만 보는 가운데 그의 말은 다시 이어진다.

 “ 니가 볼때 나...남자로서 매력이 있느냐구. 그걸 묻고 싶은거야. ”

 “ 서...선배 그건... ”

 수진 입장에선 참 뭐라고 답하기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찬스다 싶어 ‘선배, 그럼 차라리 지현이 단념하고 저랑 사귀어요’ 이럴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자신의 묘하게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수진도 평정심을 찾기 어려워진다. 당혹스러운 심정이라도 진정시키고 싶은지 소주 한잔을 홀짝홀짝 비우고 난뒤 자작으로 그 잔에 술을 다시 가득 담기까지 한다. 성호는 그런 수진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간다.

 “ 나...나 말이다 도대체 지금도 이해가 안 가. ”

 “ 이해가 안 간다니. 대체 뭐가요 ? ”

 “ 넌 모를거다. 내가 지현이를 처음 봤을때...대학에 갓 입학했을때...그 새내기였

  던 지현이. 그때의 지현이는 정말 세상물정 모르고 남자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것 같은 마냥 순박하고 순진한 어린아이 그런 느낌이었어. 그래서 사실

  나 지현이를 이성으로 느끼면서도 혹 나이많은 내가 - 다섯 살차이가 그리 많

  은 나이차이라고도 할수 없건만 - 섣불리 다가서서 어린 지현이에게 행여 생채

  기라도 내지 않을까. 그래서 늘 조심스럽게 대하곤 하던...마치 유리그릇이라도

  옮기는 짐꾼처럼 늘 조심스럽고 긴장된 마음으로 그렇게 대하곤 했던 그게 지

  현이야. ”

 “ 선배... ”

 “ 근데...근데 그런 지현이가 어떻게...그런 지현이가 어떻게...크흑... ”

 세상 모든 남자들에겐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는 정말 백옥같이 순결한 천사일것이라 생각하는 막연한 환상이 있다. 헌데 그 환상이 그것도 아주 무참하고 경악스럽게 깨진 성호 아닌가. 지현이 그저 다른 남자와 단순히 데이트를 한다던가 그런것만 봤어도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을텐데, 성호는 그 정도가 아니라 지현이 그 신성한 락커룸에서 웬 남자와 뜨거운 관계를 갖는 모습을 그리고 그 뒤의 감정을 추스르는 그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정신이 돌아버리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할 판인 성호의 심리상태. 하지만 아직 그 일까지는 모르고 있는 수진으로선 성호를 안심시켜줘야 겠는듯 위로삼아 한마디 건넨다.

 “ 선배...애들이 수군거리는것 너무 마음쓰지 말아요. ”

 “ ??? ”

 “ 사람 소문이란게 원래 다 그렇잖아요. 대개 과정되거나 왜곡되고...또 사실이

  아닌게 마치 사실처럼 번져나가기도 하고... ”

 수진은 성호가 괴로워 하는것이 단순히 학교내에 퍼질대로 퍼진 지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거라 생각하고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해준 말이지만, 이미 현장을 목격한 뒤인 성호에게 그 말이 위로가 될 리가 없다. 아니, 위로는 커녕 성호 자신이 더 비참하게 느껴질것이다. 마치 남들이 다 아는것을 자신만 모르는양 바보취급 당하는 처지가 되는것 아닌가. 그래서인지 성호는 순간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런 소리일랑 치우라고까지 한다. 수진도 성호의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은 전에 없던 모습인지라 적잖이 당황하면서 대체 이런 성호를 어떻게 달랠수 있을까 고심하기 시작한다. 한참 고민하는듯하던 수진이 성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 선배...그러지말고요. ”

 “ ??? ”

 “ 제가 지현이 마음을 한번 떠볼께요. 그러는건 어때요 ? ”

 “ 마음을 떠본다니 ? 대체 뭘 어떻게 ? ”

 이미 지현이 웬 남자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본 성호 입장에서야 그 무슨 ‘희망고문’ 같은것도 당할일이 없다. 이미 자신의 두 눈으로 그런 모습까지 확인한바에야 무슨 마음을 더 떠보고 자시고 한단말인가. 하지만 수진은 나름대로 괜찮은 작전이라도 되는듯 거듭 간곡하게 성호를 설득해본다.

 “ 제가 한번 지현일 만나서 뭐...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라던가...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면서 지현이 마음을 알아볼게요. 그러니... ”

 “ 됐다. 치워라. ”

 굳이 그러고싶지가 않은지 성호는 손을 내젓는데 하지만 수진은 다시금 그런 성호를 간곡히 설득해보려 한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선배도 결국 궁금한것은 지금 지현이의 마음일것 아니에요. 지현이의 마음이 과

  연 누굴 향해 있는지...선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결국 그게 궁금한것

  아니에요 ? ”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호는 별다른 말이 없다. 그래도 어떤 한가닥 희망의 빛이라도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그건 성호에게도 분명 궁금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꺼낸 화두가 그와같긴 했지만 성호 입장에선 진짜 그건 궁금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지현이를 아껴주고 예뻐했는데, 그런 자신을 지현은 그간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 또는 자신이 정말 남자로서 그렇게 매력이 없어 자신에겐 마음을 주지 않고 다른 남자와 그러고 있는것인지. - 적어도 그것만은 성호도 알고 싶었기에 결국 수진의 제안에 응하고 만다.

 “ 선배 그럼 제가 조만간 날을 잡아볼께요. 제가 어디 강의실이든 휴게실이든 어

  디 빈공간에서 지현이와 대화 나누는 자리 마련해볼테니까 그때 선배는 그 안에

  들어오지 말고 저만치서 엿듣던가 해봐요. 그렇게 선배가 직접 지현이의 마음을

  지현이의 선배에 대한 솔직한 속내와 마음을 확인할수만 있다면 그게 더 좋지

  않겠어요 ? 지현이도 어쩌면 선배든 다른 어떤 남자든 선배에겐 차마 하지 못

  했던 이야기 저한텐 솔직하게 털어놓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우리 그렇게 해보

  기로해요 선배. ”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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