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벌받는 여자 1
민경은 방안에서 망연자실하게 있었다. 해리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저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었다. 해리는 그래도 민경이 임산부인데 영양보충이라도 하라고 곰탕 한그릇을 손수 끓여주기까지 했다. 민경은 차마 다른 사람도 아닌 해리가 끓여준 음식을 자신이 먹을수는 없어서 몇 번이고 사양을 하다 겨우 몇숟갈 먹는둥 마는둥했다. 그리고 다시 자기방으로 들어왔다.
“ 민경아... ”
해리는 민경의 이런 상태를 더 두고만 볼수는 없는듯 함께 대책이나 의논해 보자는 생각에 그녀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 말을 걸어보았다. 해리는 민경이 임신 사실을 이렇게 고민하는것을 보면 상대 남자가 유부남이거나(그건 맞는 말이지만) 아니면 아이 문제로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아하는 카사노바나 바람둥이거나 또는 집안이 너무 잘 나가는 집안이라 민경을 며느리로 들이는것을 반대하는것 아닌가 그런 짐작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민경의 가정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해리이기에 만약 세 번째 경우라면 정말 큰일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있다. 민경을 누구보다 친동생처럼 아껴왔던 해리였기에 처녀몸으로 임신을 한 민경에 대해 이렇게 자기일처럼 걱정해주고 있는것이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이러지말고 우리 대책을 좀 의논해보자. 언니가 한번 그 남자를 직접 만나볼까
? ”
“ 아...아냐 언니. ”
다른건 몰라도 그건 진짜 안 될 일이기에 민경이 바로 기겁을 하며 펄쩍뛰었다. 자신의 반응이 너무 과했다고 생각한 민경은 바로 실수임을 깨닫고 다시금 적당히 얼버무려보려 한다.
“ 그냥...나 혼자 조용히 해결할게. 그럼 되는건데...언니가 이런일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돼. ”
“ 신경쓰지 않아도 되긴... ”
민경을 책망하듯 그녀의 팔을 한번 손으로 툭 쳐보기까지 하며 나무라는 해리. 그러면서 말을 이어간다.
“ 벌써 한 며칠째...아니 며칠이 뭐야 ? 너 이런모습 보였던게 벌써 한 2-3주 한
달은 돼가는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너 요즘 동태를 알아
보려 하다 너 이렇게 된걸 알게된건데. 근데 한달동안 혼자만 끙끙앓던애가 해결
할 방법이 있다구 ?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소리야 ? ”
“ 언니...흑흑흑흑~~~!!! ”
민경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지금 자신이 해리 앞에서 대체 무슨말을 어찌 한단 말인가. 그저 자신에게 잘해줬던 언니에게 죽을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엎드려 울수밖에 없는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는 해리는 그런 민경을 일으켜주며 달랜다. 민경은 그 앞에 쓰러져 다시금 대성통곡을 하고, 해리는 그런 민경을 거듭 달래며 그녀를 잡아 이끈다.
“ 이러지말고 언니방으로 올라가자. 언니 방에서 이야기해. ”
민경의 방은 1층 구석에 위치해 있고, 해리가 남편과 함께 쓰는 방이 2층에 있다. 1층에서 의논하든 2층에서 의논하든 뭐 크게 달라질일이 있겠냐마는 해리로선 그렇게 민경에게 신경써주고 싶은것이다. 함께 둘이 한방에서 나란히 자며 이야기라도 나누고픈건지 민경을 거듭 잡아 이끄는 해리. 마침 이때 남편 정태는 중국에 한달정도 일정으로 출장을 가 있는 상태라 집에 없기도 하다. 그러니 더욱 잘되었다는듯 해리는 민경을 2층으로 데리고간다.
“ 뭐해 어서. 어서 올라와. 언니 방에서 함께 이야기 하자니까. ”
“ 아흑~~~!!! 언니 제발...언니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언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
“ 뭐라구 ? ”
해리의 이와같은 태도에 거듭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치는 민경. 다른것은 몰라도 차마 자신이 언니와 형부방에서 잘수는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는것이다. 헌데 이쯤되자 해리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민경은 거듭 울며불며 손사래를 친다.
“ 언니...나한테 제발 이러지 마.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면 안 돼. 나 언니한테 이런
사랑 받을자격 없어 !!! ”
“ 뭐...뭐라구 ? ”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설마 싶으면서도 이쯤되니 해리도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결국 그 부분을 추궁하게 된다.
“ 너 지금 대체 그게 무슨말이야 ? 너 도대체 지금 그게 무슨소리냐구 ? 나한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니 ? ”
“ 나 언니한테 사랑받을 자격 없어. 그러니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지 마. 차라리 언
니가 죽으라면 죽던가 아니면 어디 멀리 조용히 사라져 버릴게. 그러니 제발 이
러지마 언니 !!! 엉엉엉엉~~~!!! 흑흑흑흑~~~!!! ”
“ 너...대체 이게 무슨소리야 ? 지금 대체 무슨말을 하고 있는거야 ? ”
“ 언니...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정말 언니한테 죽을죄를 지었어. ”
민경의 이와같은 말들. 아무래도 불길해서 결국 해리가 묻고 만다.
“ 너 그게 대체 무슨소리야...너 설마...설마 형부랑 ??? ”
설마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 그와같이 묻는 해리. 민경은 해리의 입에서 기어이 이와같은 질문이 나오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해리는 경악하고 만다.
“ 야 !!! 너 대체 이게 무슨소리야 ? 대체 이게 무슨일이냐구 ? ”
“ 언니...미안해. 차라리 나 죽여줘. 엉엉엉엉~~~!!! 그래도 언니 원망 안 할테니
차라리 언니 손으로 날 죽여줘. 엉엉엉엉~~~!!! ”
“ 너 무슨 소릴 지금 하는거야 ? 설마...아니지 ? 니가 형부랑 했다구 ? 그 아이가
형부 아이라고 !!! ”
“ 엉엉~~~!!! 미안해 언니. 내가 언니한테 죽울죄를 지었어. 정말 잘못했어 언니.
그러니 차라리 날 죽여줘 !!! ”
“ 야 !!! 이 나쁜 기집애야 !!! ”
결국 지금까지 민경한테 뼈나 살이라도 내줄것만 같았던 해리의 태도가 돌변하고 만다. 결국 민경이 자신의 남편 정태의 아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 눈에서 불꽃이 튀며 민경의 멱살을 잡아선 저만치 밀쳐버린다. 그 바람에 저쪽 벽에 부딪힌 민경.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 대체 무슨말이야 !!! 니가 형부 아일 가졌다구 ? 정말 사실이야 ? 니가 내 남편
과 그런 관계였다구 ? 똑바로 말해.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나 정말 너 죽여버릴
지도 몰라 !!! ”
“ 언니...미안해. 다 사실이야. 그러니 차라리 나 죽여달라구. 내가 언니한테 정말
죽을죄를 지었어. 엉엉엉엉~~~!!! ”
“ 야 !!! 이 천하의 벼락맞을 기집애야 !!! ”
민경을 다시 1층으로 끌고 내려온 해리는 한참을 그곳에서 민경을 때리고 꼬집고 할퀴고 발로 밟고 온갖 폭행을 가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민경에게 제대로 뒷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니 그녀에게 무슨짓을 가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지경이다. 민경은 코피까지 터지고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그렇게까지 심하게 해리에게 두들겨 맞았는데 유산까지 되지 않은게 신기할 지경이다. 얼마를 그렇게 민경을 때렸을까. 이제 좀 분이 풀리는지 아니면 제풀에 지쳤음인지 한숨을 내쉬던 해리는 아픈 다리를 두들기며 거실 소파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도 몇 번을 한숨을 내쉬는 그녀. 그렇게 조금이나마 감정을 가라앉히고 있는듯하다. 민경은 저쪽에 쓰러져서 한참을 몸둘바를 몰라 하다가 해리의 눈치를 살짝 보며 그녀가 있는 옆쪽 소파로 와서 앉는다. 해리는 그런 민경을 한 몇 대 더 때리기라도 할 기세로 달려들고, 하지만 이러다 진짜 무슨 큰 사달이라도 날까 겁이라도 났는지 그녀를 더 때리진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매섭게 민경을 흘겨보고 있는 그녀. 민경은 고개를 숙인채 한참을 말이 없다.
“ 언제부터니 ? ”
그러다 얼마만에 겨우 입을 연 해리. 민경은 해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살짝 그녀의 눈치를 보듯 바라보고, 해리는 그런 민경을 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어간다.
“ 설마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둘이 그런 관계였을리는 없을테고...대체 둘이 언
제부터 그런 관계였던거야 ? ”
민경의 전력이나 정태의 이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해리. 그러니 그런 정황으로 비추어봤을때 민경이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두 사람이 그런 관계였을리는 만무하고, 어쨌든 둘이 언제부터 그런 관계로 발전한건지나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그와같이 물은것이다. 민경은 가까스로 대답한다.
“ 한...몇달 되었어 ? ”
“ 몇 달 ? ”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그와같이 물은 해리. 민경이 해리 집에 들어와 산지가 1년 반 정도가 지났으니 몇 달이라면 두 사람 관계가 진전한지는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듯 하다. 하지만 단 몇 달이라도 두 사람이 자신 모르게 그런 밀회를 즐기며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을 하니 해리는 다시금 분통이 터진다. 기왕 이렇게 된것 민경은 해리에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이어간다.
“ 처음엔...형부가 전화로 몇 번 불러냈어. 그러면서 밥도 사주고 옷이나 선물도
사주고...난 그래서 형부가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그래도 잘 해 주시는것에 고맙
게 생각했는데... ”
애초에 민경이든 누구든 다른 객식구를 집안에 들이는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정태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해리다. 그래서 해리는 민경과 정태 사이가 좋아지도록 나름대로 중간에서 노력도 했다. 헌데 뜻하지도 않게 그저 한식구로서 잘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런 사이가 되어버렸다니. 어느 유행가 가사였던가. ‘난 너를 믿었던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난 자연스럽게 내 친구를 네게 소개시켜주었을뿐인데...’ 딱 그짝이 되어버린 상황 아닌가. 그 노래가 나온것이 20년전이니 지금 30대 중반인 해리야 그 노래를 충분히 기억할 나이다. 여하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막힌 두 사람의 사이인지라 해리는 답답한듯 몇 번이고 가슴을 쳐댄다. 민경은 다시금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담지만 그런 사죄의 말 조차도 해리의 부아만 더 치밀게 만들뿐이다. 하긴 지금와서 죄송하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은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를 돌이킬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 아닌가. 정태의 아이를 가진 민경이다. 그럼 이 상황을 대체 어찌 대처해야 옳은지. 해리는 좀처럼 답을 찾을수가 없어 그녀 역시 불과 얼마전까지의 민경 못지않게 눈앞이 캄캄해진 심정이 되어 한숨만을 내쉴뿐이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형부가 그런 호의를 베풀면...그럼 호의는 호의대로 받기
만 하던가...아니면...사실 그런 선물공세 자꾸 무작정 받기만 하는것 예의가 아니
란것쯤은 알만한 애잖아. 그런 니가 형부의 선물공세, 식사대접 받는것만으로도
모자라 그런짓까지 하고 다녀 ? 그것도 미장원엔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까지 대
면서 빠지구 ? ”
생각해보면 직장에까지 핑계를 대고 연애질을 할 정도라면 얼만큼 그 남자한테 빠져있다는 소린가. 물론 민경 입장에선 여하튼 한 집에 사는 형부인 정태이니 그의 제안을 마냥 거절만 할 수 없어 하는수 없이 나간 것으로 볼수도 있지만, 일까지 빠지면서 정태와 그런 밀회를 즐겼다는것 생각하니 더 화가나고 분이 치민다. 그러고보면 일전에 미장원에 찾아갔다가 민경이 요즘 종종 이상한 핑계를 대며 일을 빠진다고 할때 왜 그때 진작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는지 그게 다 후회스러워질 지경이다. 해리가 그렇게까지 아둔하고 머리가 나쁜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어릴때 딱히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본적도 없다. 심지어 할머니의 경우는 여자애 답지않게 체격이 큰 해리를 두고 ‘기집애가 저리 기골이 장대해 뭐에 쓰누 ?’ 하며 혀도 끌끌 차지 않았던가. 할머니 입장에선 손 귀한 집안에서 달랑 손녀 하나만 태어난것에 대한 못마땅한 마음까지 담아 그런말을 했던 것이지만, 여하튼 해리는 겉으로 볼때도 뭔가 똑똑하거나 총명해보이는 쪽하고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여자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 자신이 친동생처럼 아꼈던 여자가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남편과 그런 사이가 되도록 까맣게 모를수가 있단 말인가. 해리는 그 부분에 대한 자책감에 몇 번이고 가슴을 치고 있다. 가슴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머리까지 몽땅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해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기왕 쥐어뜯는김에 내친김에 민경이의 속털까지 다 뜯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경인 해리. 한참을 말이 없던 해리가 다시 조심스레 입을연다.
“ 한가지만 더 물어보자. ”
민경이야 지금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을뿐이다. 만약 해리가 자신보고 죽으라고 한다면 그냥 이 자리에서 목이라도 매고 싶은 심정인 민경. 정말이지 민경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만큼은 지금 그녀로서도 주체할수 없을만큼 가득하다. 오죽이나 해리한테 미안했으면 지난 얼마간 그저 그녀에게 ‘미안하다’, ‘다 내 잘못이다’ 그런말만 반복하지 않았던가.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민경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진것인지는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해리. 비록 어릴때부터 언니-동생 하며 자란 두 사람이지만 지금은 너무나 기가막히고 답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두 사람이다. 해리의 말이 이어진다.
“ 내가 너한테 그런말 몇 번 한적 있었잖아. 나 지금 니 형부한테 애정 없다고.
”
그런말을 해리가 한적이 있다. 심지어 이 다음에 애들 다 크고나면 지금 남편인 정태하고 이혼하고 민경이와 어디선가 단둘이 살고 싶다는 그런 고백까지 했던 해리다. 헌데 그때 이미 정태와 그런 관계였던 민경 입장에선 해리의 그 말이 얼마나 기가막히고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겠는가. 바로 그 부분을 상기해내며 묻는것이다.
“ 그때 너...아주 옳다구나 하는 심정이었겠구나 ? ”
“ 아...아냐 언니. 그건 정말 아냐. ”
다른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정말 억울한듯 사뭇 간곡한 어조로 부인하는 민경. 하지만 지금 민경이 그런다고 해리가 그 말을 곧이 믿을까. 해리는 다시금 민경을 매섭게 쏘아보기만 할 뿐이고 해리가 그러면 민경은 또다시 움츠러든다. 헌데 민경의 이런 태도를 보면 근본이 그렇게 나쁘거나 독한 여자는 분명 아닌것 같은데 이런 여자가 어쩌자고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것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착잡한 심경으로 민경을 바라보던 해리가 다시 입을 연다.
“ 그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건가. ”
대체 무슨말을 하려는것인지. 어릴때부터 사생아로 놀림받으면서 술집을 하는 엄마와 단둘이 살아왔던 그런 민경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해리다. 그리고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은 ‘그런집 아이와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그토록 신신당부했는데, 해리는 되려 사춘기의 반항심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시절 나름 품고 있었던 정의감의 발호인것인지 오히려 왕따당하고 놀림받는 신세인 민경을 더더욱 감싸고 친동생처럼 대해주었던 그런 해리. 헌데 두 사람의 관계가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것이다. 그것도 민경이 자기 남편과 그런 사이가 되어 임신까지 한 상태로. 그걸 생각해보니 정말 세상에 이 이상 기가막힌 관계도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인 해리.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어른들아 다 너랑 놀지 말라고 주의주실 때... ”
“ ...... ”
“ 그때 그 말을 들었어야 하는건지 원... ”
적어도 해리에게 그 일은 도덕적 자부심을 느끼던 일이었다. 다들 놀리고 따돌림 당하며 심지어 어른들 조차도 ‘그런애와 놀지 말라’고 까지 주의를 주던 그런집 아이 강민경. 하지만 그런 아이이기에 더더욱 감싸주고 잘해주었던 이해리. 그러면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서 작은 선행상이라도 하나 받을거라 생각했던것일까. 그런데 해리의 그 도덕적 자신감에서 우러나와 나온 행동은 되려 이런 끔찍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던것이다. 해리로선 지금 정말 뭐가 옳고 뭐가 그른 행동인것인지 지금껏 30년 넘게 가져왔던 가치관과 판단 그 자체에 큰 혼란이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지 이마를 한번 손으로 짚어보는 해리. 한참만에 다시 민경에게 말한다.
“ 나... ”
“ ...... ”
“ 너 어떻게 할지 아무 결정 못했다. ”
민경의 문제를 어찌 처리해야할지가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해결을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닐것이다. 그래서 엄포라도 놓듯 그와같이 말한 해리.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당분간 니 방에서 자숙하고 있어. 널 죽여버려야 할지...이 집에서 내보내야 할
지 나 아직 아무 걱정 못했으니까. ”
“ ...... ”
“ 무슨말인질 알겠어 ? 지금 난 니 얼굴조차 보기 싫을정도로 니가 꼴보기 싫어
졌다구. 그러니 당분간...내가 별도로 무슨말 할때까지 방에서 꼼짝 말란말야. 뭐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 정도는 가야겠으니...그래 화장실 가는것까진 허락해 줄테
니 그 외엔 방안에서 꼼짝않고 가만히 있어. 내 말 무슨말인지 알겠어 ? ”
“ 어...언니... ”
지금은 해리가 그 어떤 가혹한 처벌을 내리더라도 다 감수해야만 할것 같은 심정인 민경. 하지만 그래도 너무 극단적인 말은 하지 말아달라는 한가닥 애원이라도 하고픈 것일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해리를 그렇게 불러보는데 해리는 여전히 무서운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 쓸데없이...무슨 우리 애들 밥을 해준다느니 청소를 한다느니 고따위로 움직이
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말야. 너 다니던 미장원도 내가 너 몸이 불편해져서 미장
원 그만둬야 할것 같다고 말해놓을테니까 미장원도 더 이상 다니지 마. 내가 너
한테 어떤 조치 취하기 전까지 방안에서 꼼짝도 하지 말라구. 화장실 갈 때 제외
하곤 절대 그 방에서 나와선 안 돼 !!! 알겠어 ? 쓸데없이 가사일 돕는답시고 나
오지마. 내 말 알아듣겠어 ? ”
민경은 울음을 터트린다. 어차피 해리가 죽으라면 정말 목이라도 매야할것 같은 처지인 그런 민경이 아닌가. 따라서 해리의 말을 모두 감수하겠다는듯 울면서 고개를 끄덕인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채로 제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리고 그 방에서 한바탕 대성통곡을 한다. 해리는 거실 소파에 앉은채 몇차례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깊은 고민에 빠져버린다.
정태가 한달 가까운 중국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했다. 11월 말에 출국을 해서 한해 연말도 거의 끝나가는 12월 말 끝자락에 귀국을 한 것이다. 연말 분위기가 온 천지에 물씬 풍길때 들어온 정태. 하지만 ‘여보, 수고하셨어요 ?’, ‘출장 가신일은 잘 되셨어요 ?’ 이런 인사가 나와야할 아내에게서 받은것은 매서운 뺨따귀였다. 배신감과 분노가 극도로 치달은 증오와 저주의 따귀세례였다. 정태는 느닷없는 아내 해리의 뺨따귀에 깜짝 놀라 당황하면서도 그래도 설마하는 심정으로 되려 아내에게 화를 낸다.
“ 당신 미쳤어 ? 한달만에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한테 이게 무슨짓이야 ? 대체 왜
이러는건데 ? ”
“ 뭐라구 ? 중국출장 ? ”
하지만 이미 민경과의 관계를 모두 알아버린 해리가 정태를 곱게 맞아줄 사람이 아니다. 일단 1층은 아이들이 볼수도 있으니 남편을 2층으로 올라오게 해서는 그곳에서 온갖 집기를 내던지며 있는대로 발악을 해댄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남편을 그야말로 어떻게라도 해버릴듯한 기세다. 아내 해리의 평소 성격이 좀 까칠한 면이 있는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은 일찍이 본적이 없어 정태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해리는 정태한테 바락바락 악을 쓰며 대든다.
“ 당신 도대체 민경이랑 무슨짓을 한거야 ? 다 알고 있으니 속일생각 하지마. 그
리고 세상에 어딜 건드릴 사람이 없어 우리 민경이를 건드려. 내가 민경이랑 대
체 어떤 사인데...어떻게 다른사람도 아닌 당신이 민경이를 건드릴수가 있어 ?
”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정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비록 아내 해리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정태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철면피이거나 양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백일하에 드러나버린 민경과의 관계에 정태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해리는 방안 침대에서 절망스러운듯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고 정태는 그런 아내를 어떻게든 달래보려 하지만 해리는 그런 정태의 손길마저 뿌리치고 만다.
“ 당신... ”
한참만에 입을 연 해리. 얼마전 민경에게 했던것처럼 잔뜩이나 노기띤 음성이다. 그래도 어릴때부터 언니-동생 하며 지낸 사이인 민경에게는 일말이나마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날지도 모를 해리이지만, 정태에겐 추호의 용서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것이 지금 그녀의 심정이다. 해리의 목소리가 무겁게 이어진다.
“ 당신 처음엔 민경이 껄끄러워 했잖아. 민경이든 누구든 객식구 집에 들이는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잖아. 헌데 그런 당신이 어떻게...그런 당신이 어떻게 !!! ”
바로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해리이기에 다른것은 몰라도 민경과 정태의 사이만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대로 재력이 있는 중소기업 사장이긴 하지만 정태는 사실 은근히 구두쇠인 면이 있기도 했다. 또 나름대로 개인 생활은 존중받고 싶었기에 이래저래 객식구를 그것도 젊은 여자를 집에 들이는것을 불편해했던 것이다. 헌데 그랬던 정태가 바로 그런 민경과 그런 사이가 되다니. 두 사람의 사이가 어떻게든 불편해지지 않도록 나름 민경과 정태가 가까워지도록 노력까지 한적있는 해리다. 헌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노력조차도 정말 바보같은 짓을 한게 되지 않는가. 둘이 그렇게 눈이 맞을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두 사람이 친해지도록 만들려 했다니. 그런 시간들조차도 후회되어 미칠지경인 해리다. 정태는 기왕 이렇게 된것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로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해리가 침대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데 정태가 바닥에 앉아 있으니 그런대로 잘못했다고 비는 죄인같은 모양새가 만들어지긴 한다. 정태의 말이 이어진다.
“ 당신... ”
“ ...... ”
“ 어차피 이렇게 된것 숨길수도 없는거지만...처제 너무 미워하지마. ”
“ 뭐라구 ? ”
“ 처제...막상 보니까 생각보다 꽤 순박하고 순진한 그야말로 시골여자더라. 당신
한테도 무척이나 미안해하는 모습이었어. ”
대체 지금 이런 변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태 입장에서 민경의 역성을 드는것이 오히려 해리는 더 기가막히다는듯 정태에게 따져든다.
“ 그걸 알면서 그런짓을 해 ? 민경이가 미안해하는걸 아는 사람이...그것도 그냥
선물 구애하고 데이트하고...그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시켜 ? ”
“ 뭐라구 ? ”
그제서야 정태도 충격을 받고 놀라는 모습이다. 그러고보니 정태는 아직까지 민경의 임신 사실을 모른다.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태는 물론 해리에게도 차마 말을 못하고 지난 한달 혼자 끙끙 가슴앓이만 했던것이 바로 민경이니까. 이제야 그런 사실을 안 정태도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다.
“ ...우리... ”
정태와 해리의 사이에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막상 이런 상황에 도달하고 보니까 피차 할말이 없어진것일까.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있다. 정태도 해리도 피차 부부간의 애정이 식어버린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란것을. 그러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심정이라도 드는것일까. 정태가 무겁게 입을 연다.
“ 어차피 이렇게 된것 헤어지자. ”
“ 뭐라구 ? ”
막상 남편으로부터 그런말을 듣자 해리도 더 기가막히다. 평소 정태가 자신을 여자답지 못하다며 늘 흉보던것을 알고있는 해리다. 그런 해리이기에 이런 남편으로부터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민경에게까지 했던것 아닌가. 그런데 정태는 지금 피차 마찬가지 감정이었다면서 그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는것이다.
“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당신을 여자로 느껴보지 못했어. 그런데 처제는...아니 경
아(정태가 민경을 부르던 애칭)는 당신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그 무엇을 가진 여
자더군. 그래서 내가 급속도로 우리 경아에게 빠져들은것 같아. ”
“ 잠깐...근데 이건 또 무슨말야 ? 경아라니 ? 경아는 또 누군데 ? ”
정태가 민경을 부르던 애칭을 해리가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의아해 하는것은 당연할것이고 정태는 그 부분마저 솔직하게 밝혀준다.
“ 애칭까지 정했다구 ? 둘이 아주 참 보기좋은 바퀴벌레 한쌍이었겠구나. 그런데
난 너희들이 그러고 다니는것도 모르고 !!! ”
더 약이 바짝올라 해리는 집안에 있는 집기 하나를 더 내던져 부셔버린다. 정태가 해리를 말려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 알면 알수록 너무나 기가막히기만 한 정태와 민경과의 관계에 극도의 절망감을 느끼는 해리.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난 그래도 최소한... ”
“ ...... ”
“ 난 뭐 당신한테 애정이 남아 있어서 지금껏 버틴건줄 알아 ? 그래도 난 우리 애
들 생각해서...아직 열 살도 채 안된 애들까지 있어서 혹 이혼하고 싶어도 그건
애들 학교나 졸업하고 난 뒤에나 생각해볼까 했어. 그런데 뭐 ? 당신은 지금 벌
써 갈라서자구 ? ”
“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계속 이어가는것도 쉽지
않을거 아냐. 그러니 기왕 결심 섰으면 결심했을때 빨랑 헤어지자. 그게 피차 우
리 서로를 위해... ”
해리는 그런 정태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다시한번 ‘철썩~!’ 그의 뺨을 후려갈겨버린다. 이건 도대체가 뻔뻔스러운건지 솔직한건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된데 대해 정태가 미안함을 느끼는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놓고 이혼하자니. 지금 어디 정태가 그럴 처지인가. 해리는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의 태도에 더욱 분하고 약이 올라 또다른 집기 하나를 집어 부셔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정태를 보며 독하게 한마디 한다.
“ 간통죄를 폐지하자고 한 X들이 어떤 X들인지...그걸 모르기에 망정이지 정말
알면 그냥 일일이 다 찾아가서 따지던가 어떻게 하고픈 심정이다. 왜 간통죄는
폐지해서 너희같은 것들을 처벌할수도 없게 이 지경을 만들어 놓았는지. ”
“ ...... ”
“ 그러나 각오해. 당신들한테...어떻게 복수하는게 제대로 복수하는건지 나 나름
대로 구상을 좀 해볼테니까. 어떻게 하는게 특히 당신은 둘째치고라도 민경이
한테 제대로 벌주는 일인지 생각해 볼테니까 둘 다 각오하고 있으란말야 !!!
”
그렇게 있는대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방을 나와버린 해리. 2층의 다른 빈방에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 마지막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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