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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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을만한 새엄마 사례가 없는게 딜레마다 재혼가정의 문제점




 이혼,재혼가정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새엄마,새아빠와 관련된 문제가 가정문제이자 사회문제가 된지도 꽤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새엄마에 의한 전처자녀 학대 사례가 연달아 터지면서 다시한번 새엄마나 계모에 관한 문제로 사회가 들끓기도 했다. 필자는 이글루스에서 ‘새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설’을 어느덧 5년째 연재해오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건들이 떠들썩한 사회이슈가 될 때마다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히곤 한다.


 헌데 필자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실제 새엄마 관련 카페나,블로그 또는 기타 신문,잡지등을 통해 수집할수 있었던 수백건에 달하는 새엄마와 관련된 사례들을 모아본 결과 알수 있었던 사실은 처음부터 무조건 싸이코패스 같은 그런 악한 새엄마도 없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은 그런 ‘착한 새엄마’도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새엄마는 알고보면 그냥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화나는 일 있으면 화내고 짜증나는일 있으면 짜증내고 미장원이나 찜질방에서 이웃주민이나 친구들과 수다도 떠는 그냥 평범한 ‘보통 아줌마’일 뿐이다.


 다만 어쨌든 재혼가정에서 새엄마 또는 새아빠로 인한 의붓자녀와의 갈등이 적잖은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요즘 고민하고 있는것은 솔직히 요즘 세상에 ‘본받을만한 새엄마 사례’로 제시할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처자녀와 별다른 문제없이 잘 사는 그런 새엄마의 사례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찾아보면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가령 계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례가 종종 발생할 때 언제부터인가 언론이 계도용으로 제시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시대 장계향이다. 장계향은 원래 ‘음식디미방’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여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젊은 나이에 아이 둘을 둔채 상처(喪妻)한 이시명이란 남자와 결혼 그녀 역시 ‘새엄마’의 처지에 있었던 여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계향의 경우엔 그녀도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여덟이나 낳았으니 장계향 그녀의 삶 자체는 그다지 손해볼것은 없는 인생이었을것이다. 정작 장계향의 삶에서 더 눈길가는것은 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친정집에 가문의 대가 끊길것을 우려 자신보다도 나이어린 여자를 아버지에게 시집보내 ‘새어머니’로 맞이하여 가문의 대를 잇게 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차피 집안의 대를 잇는 문제가 최우선의 가치였던 조선시대의 일이니 그 시절 가치관과 윤리관에서 이해해야할 일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와서도 좋은 새엄마 사례를 찾아보면 없는것은 아니다. 가령 2년전 세월호 사태때도 친자식처럼 키운 의붓아들을 잃고 비통에 잠긴 새엄마 사례가 소개된바가 있고 그에 앞선 마우나 리조트 사고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 외에도 친엄마가 버리고 간 중증 장애인이나 자폐아를 친아들처럼 거둔 새엄마 이야기라던가 또는 인터넷의 블로그나 카페 같은데를 검색해 보다가도 친엄마처럼 거두어주셨던 새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연세 지긋한 블로거나 카페 회원 글을 이따금 만나보게 되긴 한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설사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들 기억속에서 금새 잊혀지게 되거나 일부러 관심을 갖고 찾아보지 않는 이상 접해보기가 쉽지 않다. 보통 계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례들은 한번 터지면 온 사회가 떠들썩하게 들끓게 되지만 저와같은 새엄마 사례들은 일부러 관심을 갖고 찾아본 사람들이 아닌 다음에야 대체적으로 접해보지 못해 모르거나 혹 봤다 하더라도 대개는 얼핏 그냥 관련기사를 훑어보았을 정도였을 것이기에 금방 기억에서 잊혀지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막상 그와같은 ‘본받을만한 새엄마 사례’들을 쭉 모아보다 보면 결국 대개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다간 그런 여인이자 어머니의 사례이기에 현대 여성들에게 소개하긴 망설여진다. 가령 블로그나 카페 같은것을 검색하다 이따금 접하게 되는 친자식 처럼 보살펴주신 새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도 대개 보면 주된 내용은 6,70년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시절에 대한 어르신들의 회고담이다. 그리고 그중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분들은 그런 사연도 있음을 살짝 엿보이는 정도다.


 따라서 대개는 헌신과 희생이란 구 시대 여성상이라고 할수있는 여인들의 삶을 오늘날 ‘본받을만한 새엄마 사례’로 소개하기엔 망설여 진다는 이야기다. 한번 만약 ‘새엄마 이야기’임을 배제한체 저와같은 일화를 요즘 2,30대 젊은 여성들한테 소개하면서 ‘혹 당신도 한번 이렇게 살아보는건 어떻겠느냐 ?’고 권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마 ‘미X사람 아니냐 ?’며 귀쌰대기나 한 대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일것이다. 갈수록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시대가 아이러니하게도 ‘본받을만한 좋은 새엄마 사례’는 권장하기 힘들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와같은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같은 선진국과 재혼가정이나 새엄마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많이 다른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가령 미국의 경우 헐리웃 유명 여배우가 아이를 있는 이혼남과 결혼하면서 ‘아이들한테 좋은 새엄마가 되고 싶다’며 인터뷰에서 당당히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여배우가 그와같은 선택을 하면서 언론 인터뷰 같은데서 저런 말을 했을때 긍정적 반응이 나올수 있을지 솔직히 좀 회의적이다. 실제 수년전 이제 막 늦깎이 신인으로 뜨기 시작한 30대 초반 정도의 여성 방송인이 한 인터뷰에서 ‘난 돌싱도 상관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그 댓글반응이 절대 우호적이지 못했다.


 또한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엔 전처소생 자녀 7남매를 키우는 젊은 새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훈훈한 가족극형 이야기라던가, 카드빚에 쪼들리는 한 젊은 여자가 그 빚을 갚기위해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집에 네명이나 되는 장성한 아들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살면서 지지고볶고(?) 하는 포복절도하는 에피소드를 다루는 시트콤형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위 막장드라마 흥행코드라 하면서 툭하면 이복형제,이복자매간의 재벌가 상속다툼이나 출생의 비밀을 다루던지 아니면 심지어 어릴때 잃어버린 딸이 며느리가 될뻔하는 초 절정의 막장코드 드라마만을 양산해내는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물론 드라마야 어디까지나 가공의 이야기다. 특히 시트콤은 어디까지나 일상에서 벌어질수 있는 우스꽝스런 에피소드들을 과장시켜 꾸며나가는 코미디의 일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저와같은 드라마나 시트콤이 만들어질수 있다는것 자체가 어쨌든 제작사나 배우들도 작품 기획취지에 어느정도 공감하니 제작,출연에 사인했을것이고 그와같은 작품에 공감하는 정서가 있으니 저와같은 드라마를 만들수도 있는것 아닌가. 시청자가 공감하지 않는 드라마를 만들 제작사나 방송사는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실제 새엄마의 처지에 있는 이들의 고충 사례를 수집해보면 역시 가장 많이 보이는것이 전처자녀의 양육,훈육 문제다. 아이를 잘못했다고 야단치거나 체벌을 가하면 계모라서 구박한다는 오해를 받게되고, 차라리 그런 오해를 받기 싫어서 아예 방치해두면 ‘계모라서 전처소생에게 무관심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것이다. 그러니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처신을 하는게 합당할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거기다 계모에 의한 아동학대 사례가 몇차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놓은 뒤니 이래저래 새엄마들의 입지를 더더욱 좁게 만들어놓은 셈이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고충은 막상 새엄마의 입장을 들어주는 상담기관이나 시설은 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청소년 상담소나 가정문제 상담소 같은 경우에도 결과적으로 재혼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의 고민이나 고충을 들어주는 곳이지 새엄마들의 고충을 들어주는곳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면에서 새엄마의 입장을 들어주는 상담시설이 알고보면 전무하다시피한 현실 또한 그네들을 힘들게 만드는 점이다. 그 외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실제 전처자녀가 있는 남자와 결혼하게 될 경우 자기 아이를 가지면 전처자녀에게 소홀하게 될까봐 자신의 아이는 갖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런 부분 역시 새엄마 된 입장에서의 또다른 고충이라면 고충일것이다. 덧붙이자면 사악한 새엄마가 등장하는 막장드라마라던가 이런것들도 새엄마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일것이다. 제작진들이야 언제나 ‘드라마는 드라마일뿐’이라고 변명하지만, 드라마든 오락이든 그 근본 기능은 역시 휴식과 스트레스 해소일진대 새엄마된 입장에선 마음편히 볼수있는 드라마도 제대로 없다는것 또한 고충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그래서 거듭 말하지만 새엄마는 천사도 악마도 아닌 우리와 똑같은 ‘보통사람’이고 보통여자라는 관점에서 새엄마 문제를 접근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조건 악한 새엄마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에서 내려온 순결한 천사마냥 착하기만 한 새엄마도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이른바 ‘착한 새엄마’의 사례랍시고 세상이 제시하는것들 역시 대개는 헌신과 희생 그리고 인내를 요구하는 그런 여인들의 삶인 셈이니 갈수록 여성들의 발언과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는 시대인 요즘 세상에 제시할만한 합리적인 사례인지도 역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분이다.


 세상의 인식과 편견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굳이 대안이랍시고 제안해볼게 있다면 차라리 새엄마와 전처자녀간의 소통 프로그램 같은것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것이다. 일반적으로 새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게되는 고민이 결국 전처자녀에 대한 양육,훈육 문제이니 그 부분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인듯 싶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새엄마나 재혼가정 자녀들은 매스컴에 드러나기를 매우 꺼리니 이런 프로그램을 과연 현실화 시킬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 대안은 어쨌거나 전처자녀들을 잘 키우는 새엄마 사례들을 모아 사례집 같은 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 역시 만들어보면 결국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다간 구시대 여성상 모델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현대의 젊은 여성들에게 모델로 제시하긴 적절하지 못한 딜레마가 있다. 여성 상위시대가 아이러니하게 ‘바람직한 새엄마’상을 제시하긴 힘든 세상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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