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 사격장.
과녁을 겨누고 있는 민경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과녁을 꼭 맞춰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나름 집중도를 한껏 드높이고 있는 중. 그래서인지 제법 심상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민경의 표정. 그리고 이내 곧 ‘탕~! 탕~!’ 하는 소리를 내며 총알이 나간다. 사격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민경은 그런대로 총쏘는 실력이 제법 있어보이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민경 딴에는 별로 만족하지 못한것일까. 표적판의 점수를 한번 확인해보고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듯 살짝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금 총을 겨누는 민경. 다시금 과녁을 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번엔 점수가 앞서 쐈을때보다는 그런대로 좋아보이는것일까. 아까처럼 그리 불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표정이 그런것인지 아니면 이번에 맞춘 과녁판의 점수도 불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처럼 잘 되진 않은것인지. 그저 무표정하게 과녁판을 다시금 응시하고 있는 민경의 모습. 사격 유니폼을 입고있는 그녀의 자태는 제법 섹시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 민경아... ”
한참 그렇게 사격에 열중하고 있던 민경을 부르는 소리가 있다. 부르면서 다가오는것은 민경보다 다섯 살 위인 이해리. 부르는 소리에 해리를 바라본 민경. 헌데 그러다 느닷없이 총을 해리를 향해 겨눈다.
“ 엄마얏~! ”
장난이거나 아니면 그저 단순히 폼을 한번 잡아보는 행동 정도로 보기엔 표정이 심상찮게 느껴져서일까. 살짝 어떤 독기나 살기가 느껴지는 민경의 표정에 해리는 기겁할 지경이다. 두손을 들고는 당황해서 민경에게 소리친다.
“ 미...민경아...왜 그래 ? ”
설마 쟤가 날 정말 쏘기라도 할 작정인가. 레저스포츠용 총알이지만 어쨌든 총알은 총알이다. 모조품일지라도 만약 잘못 맞으면 사람이 진짜 심각한 부상을 입을수도 있는 그 정도의 흉기. 따라서 해리는 순간 기겁하지 않을수가 없는데, 하지만 당황한 해리를 보며 민경은 바로 표정을 풀고는 재미있다는듯 깔깔대며 웃는다.
“ 아하하핫~~~!!! ”
되려 장난스레 그와같이 파안대소를 하고있는 민경. 해리는 여전히 멍하기만 한데, 자신도 모르게 일단 들었던 손은 내려놓은 가운데 민경이 다가와서는 해리를 장난스레 손으로 툭툭 치며 말을 건넨다.
“ 뭘 그렇게 놀라냐 ? 그냥 장난한번 한 걸 가지고. ”
“ 야...놀랐잖아 진짜루. ”
아까의 그 심상찮던 표정에선 민경이 정말 자신을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라도 순간 느꼈던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해리가 민경에게 그렇게나 원한 살일은 한것이 없고 잘못한일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느낀 위기감과 공포감 때문인지 혼비백산했던 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민경을 살짝 곱게 흘겨본다.
“ 무슨 장난이 그러냐 ? 진짜 놀랐단말야. ”
“ 언니도 참...내가 아무렴 진짜 언닐 쏘기라도 할까봐 ? ”
아무렴 우리가 그럴사이냐는듯 쾌활한 표정으로 말하는 민경. 하지만 조금전의 혼비백산때문인지 해리는 다신 그런장난 치지 말라는 당부의 말까지 입에 담는다. 두 사람은 사격장을 나오며 이야기를 나눈다.
“ 하여튼 민경이 넌 취미도 유벌나다. ”
“ 내 취미가 ? 내 취미가 어디가 어때서 ? ”
“ 무슨 여자애가 취미가 무슨 총쏘는거 아니면 운동하는거 그러냐. 진짜 니 이미
지랑은 안 어울리게. 겉보기엔 딱 봐도 청순가련한 그런 스타일의 여자애가. ”
“ 언니도 참...요즘은 운동하는 여자 좋아하는 남자도 많아. 그런데 그게 무슨 그
렇게 흉잡힐 일이라고. ”
“ 아무리 그래도... ”
하지만 사격 같은것을 취미로 삼고있는 민경이 해리에겐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일까. 괜시리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본다. 그리고는 다시 민경에게 말을 건넨다.
“ 근데...사격을 중학교때부터 배웠었다구 ? ”
“ 응, 사실은 학교다닐때...우리학교에 사격부가 있었거든. 그런데 언니들이 총쏘
는거 보니까...꽤 재미있고 흥미도 느껴지더라. 그래서 처음엔 사격부에 가입하고
싶다고 난리도 치곤 했었는데... ”
“ 그런데 ? ”
“ 하지만...직접 선수생활을 한다던가 하는건 나랑은 좀 안 맞더라. 그래서 선수
생활까지 하는건 포기하고...이렇게 취미삼아 레저삼아 즐기는거야. ”
“ 원 애두... ”
아무리 그래도 젊은 여자애가 사격이 취미라는것은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에서인지 여전히 그와같이 말하고 있는 해리. 하지만 그런 해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경은 사뭇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 언니, 나 사실 솔직히 기회가 되면말야. ”
“ 되면 뭐 ? ”
“ 이런데서 그냥 소총이나 권총 같은걸로 과녁판 맞추는거 말고... ”
“ ...... ”
“ 한번 사냥도 배워볼까 생각중이야. 직접 장총으로 멧돼지나 이런 짐승도 잡아
보고 하는거... ”
“ 뭐라구 ? ”
좀 놀랍다는듯이 말하고 있는 해리. 사실 해리가 이 강민경이란 여자애를 안지는 이제 5년정도 된다. 그래도 어느정도 마음이 맞고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그 정도의 시간 친분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겠지만 사격에 대한 나름대로의 열정은 해리는 여전히 이해가 안가는듯 하다. 헌데 그런 민경이 이젠 사격으로 짐승까지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으니 더더욱 놀라운일 아닌가. 당황한 해리를 보며 민경은 여전히 자랑스레 말을 이어간다.
“ 뭐 어때 ? 괜찮잖아. 요즘 멧돼지 출몰도 잦은데...그런 멧돼지도 잡고 그러면...
멧돼지로 피해보는 이웃들에 도움도 될거고...좋은일이지 뭐. ”
“ 그런데...우리나란 개인이 총기를 휴대하는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나 ? 개인이
사냥을 할수도 있어 ? ”
“ 아, 그건 면허제도가 있는걸로 알고있어. 다만 그 기준이 까다롭지. 하지만 만
약 정히 좋은데로만 쓸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냥면허든 총기면허든 일반인
도 그런거 취득하는게 그렇게까지 어려운일은 아냐. ”
“ 야, 아무리 그래도...여자가 멧돼지 사냥까지 직접 한다는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잘 안 온다. ”
어찌보면 민경도 이런 방면으로 좀 4차원 기질이 있다고나 할까. 어쩌다 이런 취미도 유별난 여자랑 언니,동생 하면서 5년의 시간을 사귀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좀 유별난 취미가 있는것 정도를 제외하면 해리도 민경을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하고 있기에 5년간 그와같은 친분을 이어온 것이다. 두 사람은 해리가 운전하는 차로 인근 호숫가로 가서 정담을 좀 더 나누게 된다.
“ 민경아... ”
호젓한 분위기의 호숫가. 어느덧 오후가 되어 따사로운 햇살이 처연하게 내리쬐는 시간. 조금씩 그늘져가는 경치를 바라보노라니 나름 어떤 감상에라도 잠기는것인지, 해리가 사뭇 묘한 말투로 말을 건넨다.
“ 우리 어떻게 보면 좀 기연이었던것 같지 않니 ? ”
민경과 해리는 5년전에 인터넷의 한 카페를 통해 알게된 사이다. 카페는 어떤 특별한 성격은 없는 그냥 컴퓨터와 인터넷에 관한 정보를 젊은 여성들끼리 교환하는 순수한 친목카페였는데, 그 카페 채팅실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둘이 좀 마음이 맞게 되었다. 당시 해리는 집안일로 좀 한참 힘든때에 있었는데, 그녀보다 다섯 살 어리고 그때 이제 겨우 갓 스물인 나이인 민경이었지만 그런대로 언니의 좋은 말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해리가 민경에게 사뭇 끌리기라도 했는지 하루는 문득 번개모임을 제안했다. 그래서 둘이 만나서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두 사람. 그렇게 인터넷 카페에서 시작된 친분이 어찌어찌하다 어느덧 5년째 이어오고 있는것이다. 인터넷 동아리도 어느덧 사람을 사귀는 하나의 친목공간으로 활용된지가 십수년이 되지만 아무래도 인터넷은 온라인 상에서의 만남이라서인지 누구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은 숨기는 면이 없지않아 있다. 그래서일까. 막상 만나보니 사격을 즐긴다는 약간 4차원 기질이 있었던 민경. 하지만 그 정도를 제외하곤 그런대로 두 사람의 마음이 잘 맞았는지라 그 친분이 5년째 이어져오고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올해 나이 서른인 해리는 새삼 민경과의 지난 5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나름 어떤 착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라도 하는지 그와같이 내뱉고, 민경은 말없이 그런 해리를 바라본다.
“ 민경이 너... ”
무슨말을 하고파서 이 언니가 갑자기 이러나. 약간 의아함이 드는 가운데 해리의 말이 이어진다.
“ 넌 어머니가 안 계시다고 했지 ? ”
“ 네, 맞아요. ”
민경은 해리와 대화를 나눌때는 어느정도 반말과 존대를 반반씩 섞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처음엔 해리가 나이도 다섯 살이나 많고 그래서 가급적 예의를 차리던 민경이었지만 해리가 자신의 그런 태도에 약간 벽을 느끼기도 했고, 무엇보다 해리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언제부터인가는 말을 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오늘은 사뭇 정색을 하고 말을 건네는 해리라서 괜히 심상찮은 느낌이라도 들어서일까. 존대말로 대답하는 민경. 해리의 말이 이어진다.
“ 그럼...돌아가신거야 ? 아님 이혼하셨다고 했나 ? ”
두 사람의 친분관계가 5년째 이어오고 있다면 서로의 가족관계 정도는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을 기회가 있었을법한데, 하지만 그런 정보까지 굳이 피차 교환해야할 필요까진 못 느껴서일까. 해리는 민경의 가족관계에 대해선 기억을 정확히 하고 있진 못하는듯 했다. 다만 여하튼 그동안 민경의 취미며 분위기 그리고 평상시 언행으로 볼때 그런대로 잘사는 집 딸이란것 정도만 짐작하고 있을뿐. 그런 해리한테 민경이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솔직하게 답을 해준다.
“ 이혼하신거 맞아요. 하지만 엄마는 미국인가 카나다 어디선가 살고 계시단 이야
기만 알고 있을뿐...정확히는 몰라요. ”
“ ...... ”
“ 게다가 솔직히 엄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아빠가 이혼하신게 제가 다섯
살도 되기 전의 일이니까요. 그리고나서 아빠가 혼자 절 지금까지 힘들게 키워오
신거고... ”
어쨌든 나름의 가정사의 상처가 있어서일까. 그런 이야기를 입에 담는 민경의 표정이 살짝 그늘진다. 해리가 그런 민경에게 괜한 측은지심이라도 느껴서일까. 다가와서는 살포시 그녀의 손을 잡아본다.
“ 많이 힘들었겠구나... ”
“ 힘들긴요. 무슨 제가 어린아이도 아니고...이제 다 컸는걸요. ”
그러면서 씨익 웃어보이는 민경. 해리 앞에서 괜한 그늘을 보이고 싶지 않은 의도인걸까. 사실 90된 노모가 칠순의 아들보고도 차조심,길조심하라 말하는게 세상의 이치라는데 ‘다컸다’는 말은 다섯 살 정도 많은 언니의 눈에도 그런 동생의 말은 좀 우습게 들리기도 한다. 여하튼 그런 상처가 있으면서도 그다지 구김살없이 지금껏 살아온것을 보면 민경이란 아이가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 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해리의 말이 이어진다.
“ 난...너하곤 정 반대야. ”
“ 반대...라니요 ? ”
“ 난...아버지 없이 자랐어. ”
의아해하는 민경을 보며 좀 느닷없이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는 해리. 그리고는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본다. 해리도 그녀대로 어쩌면 자신의 살아온 과정에 대한 회한에라도 잠기는것인지.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어릴때 기억에...아버지가 술주정에...폭력이 좀 심했던 그런 사람인걸로 알아. 그
래서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며...엄마가 어린 날 데리고 단 둘이 야반도주 하
셨던거야. 그 뒤로 어머니가 식당일이며 백화점 알바 이런걸 전전하며 날 키워오
셨지. 그렇게 자라온 사람이 나야. ”
“ 어머, 그랬어요 ? ”
사실 그동안 해리를 만나오면서도 그녀의 경우는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온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해리는 대학을 들어가진 못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일까. 대학까지 들어가야할 가정형편이 되지 못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때부터 직장생활을 쭉 해왔던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자가용까지 혼자 몰 정도인것을 보면 10년동안 그런대로 악착같이 돈을 벌어모으긴 했었나보다. 사실 해리가 애초에 인터넷을 시작했을때 그 의도도 혹 공동구매나 아나바다 같은 이벤트를 하는 동호회를 통해 생필품이라던가 또는 휴대폰이나 자동차 부품 따위를 좀 싼값에 구입하고픈 의도도 있었던 나름 알뜰한 살림꾼이기도 하기에 시작한것이 인터넷이었던것이다. 그러다 바로 그런 인터넷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다 알게된게 민경이기도 하지만, 그걸 생각해보면 민경과 해리의 인연이 확실히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대로 부유한 환경 하지만 이혼가정의 상처속에 아버지 밑에서 단둘이 자라온 민경. 그와 반대로 엄마가 술주정꾼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는 바람에 그런 엄마와 어린시절부터 힘들고 열악하게 살아온 해리. 자라온 가정환경이 180도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두 사람 거기다 나이차이도 다섯 살이나 나는 이 둘이 ‘언니,동생’하며 5년의 친분을 이어온것이다. 해리가 그녀대로 회한에 참긴 회상을 이어간다.
“ 사실 좀 그래서인지... ”
“ ...... ”
“ 난 좀 남자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어. ”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 그러한 고백을 하는 해리. 사실 그동안 해리와 함께 어울리면서 민경이 종종 그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애인이 있느냐던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던가. 하지만 그러면 해리는 보통 ‘그런데 관심없다’는 식으로 대꾸를 했다. 사실 이 정도 나이면 남자건 여자건 연애에 한참 관심있을 나이고, 무엇보다 그런류의 대화를 한참 나누고도 남을 나이이건만 ‘남자에 관심 없다’며 딱 잘라말하곤 하던 해리의 모습은 좀 이해가 안가는 면도 있었다. 헌데 그 부분에 대한 고백을 해리가 지금 이렇게 하고있는 것이다.
“ 세상 남자들이 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는것은 아니지만...그래
도 알고보면...남자란게 다 그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많이 해봤거든. 특히 술먹
고 술주정같은거 하고 여자 때리고 그런 남자는 딱 질색이야 나. 그러다보니...
그냥 남자라면 무조건 경계하게 돼. ”
어릴때부터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라 나름 상처가 깊은 해리. 보통 그리고 남녀가 여럿 모여 어울리는 자리면 술자리나 식사자리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그런데서 함부로 술주정하거나 여자한테 함부로 대하는 남자. 그런 사람은 딱 질색이란게 해리의 고백인 셈이다. 따지고보면 어린시절 아버지의 그와같은 모습으로 상처가 있는 해리. 혹 술자리에서 그런 주정같은것을 하는 남자라면 딱 ‘자기 아버지 같은 사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것도 당연한 일일것이다. 그리고 그런 (해리입장에서 딱 질색일) 남자의 다가섬을 얼마나 그동안 야멸차게 거절해왔을지도 짐작이 간다. 그런 해리는 현재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직 제대로 된 연애경험 하나 없는셈이다.
“ 언니... ”
그런 해리의 고백을 듣고나니 그녀의 마음이 이해라도 가는것일까. 민경의 나이 아직 스물다섯인데 해리의 그런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다소 무리인 나이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해리의 그런 슬픈 고백이 안타까이 여겨져서인지 딴에는 그녀를 위로하고자 말을 건넨다.
“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에...어디 꼭 언니네 아버지 같
은 사람만 있겠어요 ? 세상에 알고보면 좋은 남자도 많아요. ”
“ 그래 ? ”
민경을 살짝 묘하게 바라보는 해리. 이런말을 하는 민경이 어찌 보여지는 것일까. 별다른 말없이 해리는 민경을 한번 쓰다듬어준다.
“ 민경이 넌 역시... ”
“ ...... ”
“ 역시 착하구나. ”
그런말을 하는 해리의 눈에 살짝 물기가 어린다. 비록 나이는 어려도 이렇게 곧장 위로의 말을 잘 하는 민경이 그런대로 마음의 위안이 되는것일까. 그걸 생각해본다면 해리와 민경의 인연이 그런식으로 지난 5년간 이어져온것 그렇게 이해 못할일만은 아닌것 같다.
하루는 해리가 민경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지가 어느덧 5년 세월이지만 민경의 집에 해리가 방문해 보는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기회가 전혀 없었던것은 아닌데, 해리는 나름대로의 약간의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 기회가 있을때 사양을 하곤 했었다. 아무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일까. 아무리봐도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온것 같은 민경인데, 혹여 그녀의 집을 찾아가봤다가 잘사는 그녀의 집에 주눅이 들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다 한번은 민경이 해리언니를 꼭 한번 집으로 초대해보고 싶다는 간곡한 부탁을 해서 결국 마지못해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짐작했던대로 민경의 집은 대체로 부유한 느낌이었다. 2층짜리 번듯한 양옥집에 얼핏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구들. 그리고 정원처럼 잘 꾸며놓고 사는 마당등. 마당에선 정말 분위기 좋은 사진 한 장 찍어도 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민경의 방은 그 집 2층에 위치해 있었다.
“ 집에도 총을 들여다놓고 사니 ? ”
2층으로 올라가보니 벽에 장식으로 걸려있는 장총이 하나 바로 눈에 들어와 물어본 질문이다. 그렇다고 총이 즐비하거나 한 것도 아니고 달랑 총 한자루일 뿐인데, 그래도 원래 취미가 사격인것을 알고있는 해리기에 바로 그게 눈에 들어온것이다. 일전에 민경이 기회가 되면 사냥면허도 한번 따서 멧돼지도 잡아보고 그러고 싶다는 말도 했던것을 기억하고 있는 해리라서인지 딱봐도 사냥용으로 쓸법한 그런 총이 눈에 들어와 물어본 질문인것이다.
“ 이건 그냥 장식용이에요. ”
“ 하여튼 참 너도... ”
여하튼 이렇게 2층에 벽걸이 장식용으로 총을 전시해놓고 있는것을 보면 민경이 총쏘는것을 참 좋아하는 여자로구나. 그걸 한눈에 느끼게 된다. 민경과는 그녀가 직접 타온 커피를 마시며 2층 거실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민경이 아버지는...직업이 교수님이라고 하셨던가 ? ”
민경이 여하튼 잘사는 집 딸인것은 분명하고, 다만 민경의 아버지가 재벌 회장이라던가 그런것은 아닌듯 하다. 이따금 민경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은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돈많은 사장이나 회장보다는 뭔가 지적인 그런 느낌의 어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교수님이시냐고 물은 해리. 하지만 민경은 고개를 살짝 흔들어보이고는 짤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답한다.
“ 그건 아니고...출판사 사장님이세요. ”
“ 그래 ? ”
민경의 아버지가 대학교수거나 그런쪽인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출판사 사장이라니 좀 뜻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정도로 사는 출판사 사장이라면 꽤나 큰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민경의 아버지 직업이 그렇다니 민경도 좀 달리 보이는것일까. 해리는 잠시 그녀의 자태를 위아래로 훑어보기도 하고 2층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려보기도 한다. 아버지가 출판사 사장이라고는 하지만 민경은 일단 독서나 지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좀 있어보이는 아이다. 그러고보면 아버지와는 취향이 좀 다른 딸이라고나 할까. 민경이 이번엔 해리에게 뭔가 넌지시 질문을 건넨다.
“ 근데 언니. ”
“ 왜, 민경아 ? ”
“ 언니는 그럼 지금까지 연애경험은 한번도 없었던거에요 ? ”
“ 뭐...그렇지. ”
어린시절 술주정뱅이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남자에 대한 불신이 큰 편이라고 하던 해리. 그래서일까. 이따금 혹 직장이나 모임관계로 회식자리를 가질때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술주정처럼 자신에게 접근해오거나 하는것은 딱 질색이라고 말했던 해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해리의 성격탓이라서일까. 남자들도 나름 해리를 좀 범접하기 쉽지 않은 여자로 생각해서인지, 해리 스스로의 트라우마와 남자들이 해리를 쉽게 접근하기 힘든 여자로 생각하는 느낌. 그런게 겹쳐져서 지금껏 별다른 연애경험 같은것이 없이 나이 서른이 되도록 혼자 살고있는 해리다. 하지만 덕분에 돈은 그동안 악착같이 모을수 있어서인지 그런대로 지금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편이기도 한 그런 해리기도 하다. 소형차일지언정 자기가 번 돈으로 직접 산 차도 한 대 있는 정도이니까. 그런 해리가 민경을 바라보며 솔직담백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 사실 나... ”
“ ...... ”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내가 좀 마음놓고 의지할수 있는 그런 남자가 있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해본적은 있어. ”
아무리 그래도 젊은 여자는 여자인 것인지 남자에 대해 아주 흥미가 없는것은 아니었다는듯 그와같이 고백하는 해리.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 무엇보다 내가 좀...힘들고 지칠때 내 몸과 마음을 편히 기대고 의지할수 있는
그런 아빠나 오빠같은 남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생각 가끔 해본것도
사실이야. ”
어린시절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남자에 대한 불신이 있는 해리. 하지만 그로인한 반작용이라도 되는것일까. 그렇기에 오히려 진짜 자신이 좀 마음놓고 의지할수 있는 ‘아빠나 오빠같은 남자’를 원하는 심리도 가슴 한켠에 숨겨져 있는 편이라는 해리. 헌데 순간 민경의 눈빛이 살짝 번득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파고든다.
“ 아빠같은...남자요 ? ”
“ 꼭 나이많은...그런 남자란 의미라기보다는...여하튼 가슴이 넓고 따뜻한 남자.
이해심많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그런 남자. 그래서 내가 지치고 힘들때 언제든 의
지처가 되어줄수 있는 그런 사람... ”
헌데 이런식으로 해리의 바램을 줄줄줄 늘어놓다 보니 그 정도의 이상향이라면 차라리 어디 수도생활이라도 하는 성직자나 이 세상 모든 것을 달관한 초인 정도는 되어야 해리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확실히 이런 다소 이율배반적인 심리는 해리의 트라우마로 인한 반작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어린시절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남자를 불신하는 해리.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자신의 마음을 좀 의지하고 쉬고 싶은 그 정도로 ‘완벽한 남자’를 만나보고픈 해리의 심리.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해리같은 여자가 할 진대는 그 정도의 의미가 어느정도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헌데 민경이 그런 해리의 고백을 들으면서 눈이 묘하게 번득이고 있다. 그리고는 뭔가 잘 되었다는듯 약간 긴장된 어조로 해리에게 말한다.
“ 언니, 그러면 말이에요. ”
“ ??? ”
“ 우리아빠...어때요 ? ”
“ 뭐 ? ”
이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민경의 성격이 평소 좀 직설적인 면이 있어서인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물은것이다. 그리고 일단 해리가 자신의 말을 바로 못 알아들은것 같아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어릴때 부모님 이혼으로 지난 20여년 아버지하고만 단둘이 살아왔다는 그런 민경의 말이다.
“ 실은 저... ”
“ ...... ”
“ 꽤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 아빠...언젠가는 아무래도 재혼시켜
드려야 할 것 같다. 사실 제가 그렇게 어릴때 이혼하시고 아버지 혼자 저 키우시
며 고생하는 모습 보며 자라서 그런지... ”
민경은 나름대로 자신의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섞어가며 말한다. 아무래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주제라서인지 막상 이야기를 이어가는 민경의 가슴과 팔다리가 묘하게 떨리고 있다.
“ 어릴땐 몰랐는데 철이 없어서...하지만 나이가 들면서...아버지가 참 외롭고 쓸쓸
하시겠구나.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그리고... ”
“ ...... ”
“ 그래서...그런 저희 아버지를 좀 옆에서 지켜드릴 참 괜찮고 신뢰할만한 그런 여
자분 어디 없을까...그런 고민과 생각 많이 했거든요. ”
“ 미...민경아... ”
헌데 지금 민경의 이 말은 그러니까 자신의 아버지 재혼상대가 되어달라는 그리고 다시말해 자신의 새엄마가 되어달라는 그 말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헌데 해리와 민경의 나이차이가 불과 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데 그런 자신을 보고 ‘새엄마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하다니. 너무 놀라운 이야기인지라 해리는 쉬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런 해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경의 고백은 이어지고 있다.
“ 사실 그동안 언니와 친하게 지내면서...언니와 이것저것 마음도 많이 맞고 그래
서... ”
“ ...... ”
“ 언니한텐 아무래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라 말을 하진 못했지만...내심 그
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분을 한번 저희 아버지한테 소개시켜 드리면 어떨까.
이런분이 한번 저희 새엄마가 되어주신다면 어떨까. 언니 보면서 그런 생각 많
이 해왔어요. ”
“ 미...민경아... ”
“ 하지만 아무래도 쉽게 꺼내기 어려운 주제의 이야기다보니 그동안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이제야 이 말씀을 드리는거에요. ”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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