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whaedra.egloos.com

포토로그



1세대 걸그룹 팬픽 - 박정아 (6) 1세대 걸그룹 팬픽




                                    부제 : 나는 누구인가





 3주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어느덧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어 6월이고, 날은 한창 더운때. 창원회관으로 들어서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다름아닌 부산회관 청운회 청년부에 소속되어 있는 박현경이다. 3주전 부산회관 청운회들끼리 창원회관에 왔다간적도 있고, 또 그런식으로 청운회들이 삼삼오오 짝을지어 대진교 총무원 소재지인 창원회관에 와서 모임이나 집회를 갖는것이 이따금씩 있는 일이긴 하지만, 석주전에 왔던 박현경이 개인적으로 다시 창원회관을 찾는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회관장은 반가와하면서도 좀 놀라는 표정이다. 일반적으로야 창원회관에 올때는 윤서인이 봉고차로 데려오거나 또는 자기차가 있는 사람은 자가용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현경은 그런 사전 연락도 없이 혼자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인지 땀을 뻘뻘 흘리며 허덕거리고 있다. 창원회관까지 올라오는 길이 그렇게 험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여하튼 산 중턱부근에 위치한 곳이고 마을에서도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곳이다. 마을 앞에는 창원까지 오가는 시외버스가 서는 정류장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창원회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거기에서 내려서 회관으로 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도보로는 대체로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대개는 그럴때도 윤서인의 봉고차를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는곳까지 오게 하기도 한다. 현경의 경우도 아마 시외버스를 타고 마을 앞까지 왔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20대 초반의 여성이 도보로 회관까지 오는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거리다. 그래서 사전 연락도 없이 이렇게 걸어서 회관에 들어선 현경을 보자 회관장은 적잖이 놀란것이다.

 “ 아니, 현경아. 니...어떻게 이리 연락도 없이 왔나 ? ”

 “ 회관장님은 무슨 그런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뭐 어디 못올곳이라도 왔나

  요 ? ”

 사뭇 멋쩍게 그와같이 말하고 있는 현경. 회관장은 일단 그렇게 찾아온 현경을 반기고 있고, 그러면서 어떤 용무로 왔는지를 묻는다. 현경은 사뭇 수줍은 얼굴로 말한다.

 “ 그냥 가끔 이렇게...속세의 번민,시름을 잊고 싶은때가 있는거죠 뭐. ”

 어차피 신앙생활이란게 다 그런것 아닌가. 세상살이가 다 편하고 즐거우면 사람이 종교나 신앙에 매달릴 이유는 거의 없다. 현경도 그래서 별다른 기별없이 느닷없이 회관에 온 이유를 사뭇 능청스럽게 그와같이 둘러대고 있는것이고 그쯤되면 이런곳의 지도자급인 법사나 회관장 정도 되는 사람이 그 말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리는 없다. 여하튼 무슨 개인적으로 심란한 일이 있나보다 그렇게 짐작하게 되는것이고, 회관장은 일단 숙소로 가 보라고 현경을 안내한다. 그리고 현경은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신도용 숙소에 짐을 풀게된다. 헌데 회관장이 사무실로 돌아갔을때쯤 현경은 살짝 주위 눈치를 보는듯 하더니 공양간 뒤쪽의 숙소건물로 간다. 그땐 마침 백일기도중인 최광일이 오전기도를 마치고 방에서 쉬는 중이었다. 현경은 그 방문을 두드린다.

 “ 저어...안에 계세요 ?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열어보는 광일. 광일은 석주전 이곳에 왔던 부산회관 청운회 일행중 한명인 박현경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진 못하는듯 했다. 광일이야 원래 청운회 활동을 하던 사람이 아니니 부산이든 서울이든 면식있는 청운회원이 있을 리가 없고, 또 그네들끼리 무슨 집회를 갖든 모임을 갖든 그리 큰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몇주전에 부산에서 젊은 청년회 몇사람이 오간것 정도만을 기억하고 있을뿐 그 멤버를 다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 광일의 속내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일까. 현경은 지난번 왔을때의 기억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한마디 건넨다.

 “ 저...지난번에 왔었던 부산 청운횐데 기억 안 나세요 ? 박현경이라고... ”

 “ 아, 예에...기억이 나네요. 헌데 제겐 무슨 용무로 ? ”

 박현경이란 이름까지 광일이 알지는 못하지만 여하튼 그 말에 지난번 왔었던 부산회관 청운회원들과 짧은 시간이나마 잠깐 나눴던 대화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 서울대 출신이라니까 유독 관심을 보이던 젊은 여성이 하나 있었던것도 기억하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박현경이란 이의 일에 대해선 그 사이 잊어버렸나보다. 여하튼 현경의 말에 광일도 그녀를 기억해내고, 현경은 광일을 보며 한번 씨익 웃어보이고는 말한다.

 “ 저...안에 들어가도 되죠 ? ”

 “ 아, 네에...뭐...괜찮습니다. 들어오세요. ”

 무슨 특별히 안될 이유는 없으니 들어오라고 말하는 광일. 그 말에 현경은 사뭇 씩씩하게 방안으로 들어선다. 얼굴에는 묘한 희열감까지 감도는듯 한데. 그러고보면 현경의 이와같은 태도는 꽤나 적극적이란 느낌마저 든다. 헌데 사실 평상시 현경의 성격은 이런 적극적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평소 내성적이고 수줍음도 많이 탄다는 평가를 주위로부터 받곤 하던 그녀인데, 혹 딴에는 ‘기왕 자기 맘에 드는 남자 확실하게 찍어놓을테다’ 이런 작심이라도 한 것일까. 평소의 수줍음 많은 그녀 답지 않게 적극적으로 아무런 경계심이나 거리낌도 없이 아직은 서먹한 상대라고 해야할 서울대 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최광일이란 청년의 머물고 있는 방에 적극적으로 들어선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방에 마주앉게 되고, 현경은 드러내놓고 그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서울에서 이렇게 시골구석...산골까지 와서 기도하시면 많이 불편하시겠어요. 뭐

  힘드신건 없으세요 ? ”

 “ 네, 뭐 괜찮습니다. 회관장님이나 다른 성직자님들도 많이 배려해주셔서...불편

  한건 없어요. ”

 어쨌든 광일이 여기 기도를 하러 온 것이지 무슨 호사를 누리려 하거나 놀러온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설사 여기서의 생활이 불편하다고 그에대한 투정을 부린다는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고. 여하튼 그와같은 말을 하는 최광일을 현경은 연신 미소띤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광일의 훤칠한 체구와 훈남 외모, 그리고 마치 외화더빙 성우같은 느낌까지 드는 허스키한 매력적인 목소리. 게다가 서울대까지 나온 학력이니 무엇하나 여성의 매력이 끌리지 않을수 없는것이 없다고 말할수 있겠으나, 여하튼 지금 광일을 바라보고 있는 현경의 눈빛은 드러내놓고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현경의 말이 이어진다.

 “ 근데 청운회 집회나 이런데는 참석해보신적이 없나봐요 ? 만약 수련대회나 이런

  때 참석하신 동지라면 제 기억에도 없지는 않을텐데. ”

 “ 청운회요 ? ”

 여하튼 광일도 그 아버지가 대진교 신자고, 그도 여기 기도하러 온지 어느덧 한달 이상이 지났으니 대진교 학생회 단체 명칭이 ‘청운동지회’ 줄여서 청운회라 하는것을 모르지는 않을것이다. 다만 여하튼 광일은 아마 학창시절엔 청운회든 뭐든 그런데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인것 같고. 따라서 현경은 그런쪽에 대한 의문과 궁금함을 덧붙여 그와같은 말을 건넨것이다. 광일의 말이 이어진다.

 “ 전 뭐...학교다닐땐 공부만 쭉 해가지고요. 아버지가 꽤 오래전부터 이런 종교단

  체에서 신앙생활을 하신다는것은 알고 있었지만...전 그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

 “ 그러셨구나. 그럼 지금은 어때요 ? ”

 “ 어떻다니요 ? 뭐가요 ? ”

 “ 막상 이렇게 여기 기도하러 와 보시니 느낌이 어떻냐구요. 제 말은. ”





 한편 이런것도 공교롭다면 공교롭다고 할 수 있는 일일까. 현경이 그렇게 혼자 창원회관을 찾았을때 하필 서인은 회관에 없었다. 서인은 평상시때는 보통 그렇게 신도나 외부손님들이 창원에 들를때 차로 데려오고 모셔드리는 일을 맡아하고 있지만, 가끔씩은 황태순 이사의 일을 도와드리러 서울에 갈때도 있다. 황태순 이사는 대진교 산하에 있는 재단법인의 대외업무 일을 도와주는 협력인사다.

 대진교는 원래 애초에 종단의 재산관리 문제 및 기타 대외문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재단’을 하나 만들었었다. 애초 명목은 청운회원중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명목으로 만든 장학재단이었으나 이후 문화재단으로 성격을 바꾸었고 근래 들어서는 전통문화와 역사(가령 환단고기나 천부경 같은것) 계승,보존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으로 성격을 바꾸어 나갔다. 황태순 이사는 원래 80년대에 민정당 원외 지구당 위원장과 공기업 감사를 잠시 역임한바 있는 정치권 인사로 대진교 지도자급 법사중 한명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40년 지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인연으로 80년대에 대진교에서 장학재단을 처음 만들때부터 ‘상임이사’로 초빙받아 그때부터 대진교 재단의 대외업무(행정관계 업무 및 정치권과의 중개인 역할 기타 학계인사 초빙 등) 일을 전담해서 맡아 돌봐주는 일종의 협력인사였다. 헌데 대진교 총무원 소재지가 창원회관인 만큼 황이사는 총무원인 창원회관에 들러 법사들로부터 자신이 해야할 관계 업무에 관한 협의를 본뒤, 혼자 서울로 올라가서 그러한 대외업무(재단 행정관련 업무 등)를 봐주곤 했던것이다. 헌데 서울에서 그 일을 할때 옆에서 차량운행을 도와줘야할 사람이 있어 그 일을 윤서인이 맡게 된 것이다. 사실 재단의 그와같은 대외업무는 일반신자들은 잘 모르고 경우에 따라선 극비로 해야할 일도 있어야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런 일들을 다른 신자들에게 옮기지 않을만한 사람이 황이사를 도와줘야 했고 그래서 서인이 그 일을 맡게된 것이다. 서인이야 청운회에서조차 왕따고 열외 신세니 황이사를 옆에서 보좌해주는 일을 맡길만한 사람은 윤서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서인은 그렇게 황이사가 재단일을 서울에서 봐야할 때 직접 차로 창원에서 황이사를 서울까지 모셔드리고 그리고 거기서 황이사가 일을 보는동안 황이사가 이동할 때 차 운전을 대신 해드리곤 하는것이다. 보통 그런일이 있을때는 서인은 황이사를 모시고 서울까지 올라가선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도 있다가 돌아오곤 한다. (* 황이사가 사는곳은 서울이다) 황이사는 서울에서 그와같은 일을 할때 자기차를 운전해주는 서인을 일반적으로 ‘윤군’이라고 불렀다.

 여하튼 그래서 현경이 창원회관을 찾았을때 하필 서인은 그때 황이사를 도와드려야 할 일이 있어 며칠전에 서울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서인이 돌아온것은 현경이 창원에 온 이튿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였다. 황이사야 서울에 사는 사람이니 그분을 댁까지 모셔다드리고 혼자 봉고차를 몰고 창원회관으로 돌아온 서인.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한 서인을 회관장이 맞이한다.

 “ 서인이 이제 온나. ”

 “ 네, 왔어요 지금. ”

 일에 지쳐 피곤한지 많이 초췌해진 서인. 회관장이 사무실로 불러 차하고 간단한 다과라도 내주며 그를 위로한다.

 “ 고생많았제. 이사님이 하시는 일은 다 잘 되었나 ? ”

 황이사가 하는일이 대개 종단과 관련한 대외 행정업무등이니 당연히 종단의 지도자급인 법사들은 알고 있어야한다. (* 창원회관장이 황이사와 대학 선후배란것은 아니고 황이사와 40년 지기인 법사는 다른인물(남성)이다. 대진교 법사가 모두 각 지역 회관장들을 포함 대략 10여명 정도 된다) 따라서 겸사겸사 그와같이 묻고있는 회관장. 하지만 서인이야 차량운전만 하는 사람이니 구체적인 내용이야 알 턱 있을까. 그래서 그저 잘 되었다는 통상적인 대답만 입에 담을뿐이다. 회관장은 서인을 위로하는 말을 거듭 입에 담는다.

 “ 그래, 여하튼 서인이 니가 고생이 많았다. ”

 서인은 피곤한듯 이만 일어나 자기 숙소로 들어가려 하고, 헌데 그때 회관장이 서인에게 슬몃 귀띰을 해준다.

 “ 아, 참 서인아. ”

 “ 왜요 회관장님 ? ”

 무슨 다른 할말이 있나 싶어 서인이 회관장을 돌아보고 회관장은 그런 서인을 보며 묘하게 씨익 웃으며 귀띰해줄 말을 건네준다.

 “ 현경이 왔다... ”

 “ 네 ? ”

 서인이를 자식처럼 돌봐오고 있는 회관장인데 아무렴 서인이 현경을 슬쩍 마음에 들어하고 있음을 왜 눈치채지 못 했을까. 설사 대진교의 다른 신자나 청운회들은 눈치 못 챘더라도 혼자는 눈치채고 있을 사람이 회관장이다. 헌데 서인은 그런 회관장에게조차 그런 자신의 속내를 들키기 싫은것일까. 일부러 무덤덤하게 아니 어찌보면 마치 박현경이라는 여자한테 아예 관심이 없거나 처음부터 그런 사람을 아예 모르는 사람인양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리고 되려 동문서답같은 말을 건넨다.

 “ 피곤하니 전 이만 들어갈께요. ”

 어쨌든 서울에서 그렇게 며칠간 일을 보고 밤늦게야 창원으로 돌아왔으니 피곤한건 분명한 사실일것 아닌가. 서인은 저벅저벅 자기방이 있는 숙소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고 회관장이 그 뒤에서 다시금 귀띰을 한번 더 해준다.

 “ 서인아...현경이 왔다니까... ”

 그러잖아도 하필 서인이 없을때 현경이 찾아온것을 회관장도 살짝 아쉬워하던 중이다. 현경이 특별히 기도를 하러 온것같지는 않으니 아마 하루나 이틀정도 있다 돌아갈것 같은데, 서울에 있는 서인이 그 전에 일을 마치고 빨리 돌아왔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서인이 그렇게 회관에 없을때는 다른 간부 성직자들이 대신 차량운행을 맡기도 하고, 그럴때를 대비한 여분용 차가 한 대 더 있기도 하지만, 어제 현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온다는 전화 한통화 없이 자기발로 걸어서 회관까지 왔고 그래서 이래저래 어제 그렇게 불쑥 나타난 현경의 행동도 좀 의아하다면 의아한 일일수도 있다. 여하튼 회관장의 그 귀띰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대체로 무덤덤하게 저벅저벅 자기방으로 가고있는 윤서인. 그때 숙소방 맨 앞쪽에 불이 켜져있는것이 보인다. 다름아닌 최광일이 묵고있는 방이다. 서인은 슬쩍 시계를 보았다. 밤늦은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잠자리에 들만한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기선을 하러온 신자들의 경우엔 대개 저녁기도를 마치고 나면 바로 잠자리에 드는게 일반적이다. 기도도 하다보면 은근히 체력소모가 많이 드는 일이라 그렇게 될수밖에 없다. 헌데 서인이 시계를 다시금 보니 의아한것이 아직 저녁기도가 끝날 시간은 아니었다. ‘이 친구가 백일기선을 왔다더니 벌써부터 요령이 생겨 땡땡이를 치나 ?’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 지경인데, 헌데 그 방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 최광일 동지. ”

 청운동지회 회원들끼리 아주 친한 경우가 아닐때 일반적으로 부르는 호칭이 ‘동지’다. 그 ‘동지’란 호칭으로 광일을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왔다. 무더운 여름철이라 창문을 반쯤 열어놓은 상태라서 방에서 나누는 대화 소리는 대체로 바깥에까지 들려와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거의 엿들을수 있을 정도다. 의아한 생각에 이미 그 창문 가까이까지 바짝 다가간 서인. 방안에선 두 남녀가 대화 나누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 그래서 어떻게 되긴요. 그 샌님같은 부잣집 막내아들X을 확실히 골탕먹여 놓

  았죠. ”

 “ 어머, 짓궂기도 해라. ”

 “ 하하...제가 바로 가장 꼴보기 싫어하는 녀석이 그렇게 집안만 좋다고 으스대는

  그런 녀석들이에요. 그런 집안 좋다고 으스대기만 하는 천하 샌님같은 녀석들은

  가끔 줘패도 되고 괴롭혀도 돼요. ”

 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 것인지 방안에서는 마치 자신의 소싯적 무용담이라도 자랑하는듯한 남자 목소리가 호탕하게 들려왔고 여자는 그러한 남자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어 어쩔줄 모르는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남녀간의 대화는 계속 들려왔다.

 “ 시험지 바꿔치기는 대체 어떻게 하신건데요 ? 그게 그렇게 쉬운일이 아닐텐데

  ... ”

 “ 하하...제가 누굽니까. 이 천하의 최광일...아이큐 140 머리는 아무도 못 당해내

  요. 여하튼 그러니 시험지 바꿔치기한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그 샌님같은

  녀석은 계속 담탱이한테 ‘시험답안 누가 바꿔치기한게 분명하다’고 울며불며 난리

  를 치고...하하하하...쌤통이었지 그 녀석...  ”

 광일은 사뭇 희열스런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그러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이었고, 광일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현경은 문득 궁금함이 생겨서일까. 광일에게 질문을 건넨다.

 “ 근데 그 학생한테 왜 그런 장난을 쳤어요 ? 그 학생이 그렇게 미웠어요 ? ”

 대충 이야기를 놓고보면 여하튼 죄없는 어떤 학생 하나 그야말로 날벼락같은 골탕을 먹인 일 아닌가. 광일이 제법 입담좋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고 가서 그렇지 따지고보면 좀 심각한 장난이긴 하다. 그래서 필히 어떤 곡절이 있을거라 생각했음일까. 궁금함을 담아 묻는 현경에게 그러나 광일은 어깨를 한번 제법 으쓱 거리면서 자랑스레 말을 이어간다.

 “ 그런건 아니고요...제가 학창시절엔 늘 그러고 지냈어요. ”

 “ 예 ? ”

 “ 저랑 비슷한 패거리(덩치가 되는) 한 6-7명 좀 데리고 다니면서 집안 배경좀

  좋다고 으스대는 녀석들 그렇게 X나 혼내주고 다니고 그랬죠. 그런 녀석들 한마

  디로 꼴보기 싫은 녀석들이잖아요. ”

 “ 에이...그래도 그건 좀 너무했다. ”

 현경은 광일을 살짝 곱게 흘겨보며 그와같이 말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광일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런것도 일종의 ‘서울대 프리미엄’일까. 사실 따지고보면 6-7명의 무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힘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고 그러고 다녔다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집단 괴롭힘’을 주도하고 다닌 가해자 아닌가. 광일이 서울대 출신이라길래 망정이지 만약 그저그런 껄렁껄렁한 청년이 학창시절 그러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야말로 양아치 취급을 받았을것이다. 하지만 ‘서울대 프리미엄’이란 금테를 두른 광일에게서 풍겨나오는 마법 때문인지 현경은 광일의 그런 에피소드조차도 더 멋있게 들리며 호감이 이끌리는 것이다. 현경의 그런 반응에 광일은 더욱 자랑스럽다는듯 한마디 더 덧붙인다.

 “ 사실 그런 녀석들은 학창시절에 좀 X나 밟아 놓아야돼요. 우리같은 X들이 그런

  가진집 아이들 그럴때 밟아놓지 않으면 언제 밟아놔요 ? 두고봐요. 그런 녀석들

  이 꼭 이 다음에 사회에 진출해서도 순 민폐덩어리가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애들...학교 다닐때 힘좀 쓸 수 있고 그럴때 확실하게 밟아줘야 한다니까요. ”

 광일의 이와같은 이야기를 지금 현경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여하튼 광일이 자기 주도하에 상황을 순전히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읊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거기에 ‘서울대 프리미엄’까지 덧붙여져서인지 현경의 귀엔 광일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줘도 다 근사하고 멋있게 들리는듯 하다. 이번엔 현경이 광일에게 궁금한것을 하나 묻는다.

 “ 권투는 언제부터 배우신거에요 그럼 ? ”

 “ 중학교때부터요. ”

 “ 어머, 그래요 ? 중학교때부터 배운거면 일찍 배우신편에 속하는건가요 ? ”

 “ 뭐 일찍 배우고 늦게 배우고를 떠나서... ”

 그렇게 운을 떼우며 슬쩍 주먹을 내보이는 광일. 그가 학창시절에 권투를 한것만은 분명한 사실인지 주먹 자체가 꽤 운동해본 사람의 그것처럼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광일은 잠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스파링을 휙획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현경은 그런 광일의 모습이 다 멋있고 듬직해 보이는지 옆에서 박수를 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주기까지 한다. 광일의 말이 계속된다.

 “ 남자가 태어나서 그래도 운동 하나쯤은 배워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배운게 권투에요.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쭉 하시는거고요. ”

 “ 아...그렇구나. 최광일 동지.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멋있어요. ”

 청운회에서 쓰는 호칭인 ‘-동지’라는 말을 붙이며 그와같이 말하는 현경. 사실 광일은 청운회 활동을 했던 사람은 아닌지라 아직 그런식의 ‘OOO 동지’라는 말은 좀 어색하게 들린다. 그래서 잠깐 멋쩍은 웃음을 짓기도 하는 광일. 그리고 문득 다시 다른 생각이 난듯 마주앉은 자세에서 다시금 현경에게 말을 건넨다.

 “ 현경씨, 제가 여기서 백일기도 마치고 서울 돌아가면 언제 한번 부를테니 오실

  래요 ? ”

 광일은 아무래도 ‘OOO 동지’ 같은 청운회 호칭은 입에 잘 붙지 않아서인지 일반 사회에서 쓰는 ‘OO씨’란 호칭을 쓰고 있다. 여하튼 동지든 ‘-씨’든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피차 그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고 갑자기 자신을 서울로 부르겠다는 광일의 말에 현경은 순간 놀라기까지 한다.

 “ 절 서울에요 ? ”

 “ 네, 제가 한번 현경씨에게 관악산 음주등반 한번 시켜드리고 싶어요. ”

 “ 예 ? ”

 ‘관악산’이란 산은 현경도 아마 한번 들어본 기억은 있는것 같긴 한데, 하지만 ‘음주등반’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어리둥절해하는 현경에게 광일이 설명을 덧붙여준다.

 “ 대학다닐때 학교 끝나고 나면 종종 관악산 등산을 했어요. 서울대 뒤편에 있는

  산이 관악산이니까요. ”

 “ 아, 그렇구나. ”

 서울대 뒤편에 있는 산이 관악산이란것을 부산에 사는 현경은 그제서야 처음 안 걸까. 여하튼 광일이 정말 서울대 출신이 맞다면 관악산 등반을 종종 했다는것이 그리 의심할만한 일은 아닐테고, 다만 ‘음주등반’은 여전히 생소하고 이해가 안 가는 일이라서인지 현경이 여전이 의아함이 채 가시지 않는채로 말한다.

 “ 근데 대체 음주등반은 뭐에요 ? 술을 드시고 등산을 한다는 말씀이세요 ? ”

 “ 아...현경씨는 아직 모르시는구나. 산 정상에서 한잔하는 막걸리와 소주 그게 얼

  마나 짜릿한지 아세요 ? 현경씨에게도 그 맛을 한번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학

  교 다닐때 수업을 마치면 저 혼자 등산배낭을 매고 관악산에 올라 산 정상에서

  한잔 하는 막걸리와 소주. 그 짜릿한 희열을 느끼며 세상을 다 정복한 기분으로

  산을 내려오곤 했죠. 그때 그 기분...그때 그 짜릿한 흥분감... ”

 “ 하지만 위험하지 않아요 ? 술을 마시고 산을 내려온다는것은 ? ”

 여하튼 술을 많이 마시면 사람의 정신상태가 정상적이 되지 않는다는것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상식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헌데 술을 마시고 등산을 한다니. 쉬이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현경이 사뭇 걱정된다는듯 말하는데, 그러나 광일은 만용이라도 섞여있음인지 되려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으로 음주등반을 권하고 있다.

 “ 현경씨...제가 한번 그러니 제대로 느껴드리게 해드리겠다니까요. 산 정상에서 한

  잔 쭉 들이키는 술잔. 그 맛이 얼마나 그만인지 진짜... ”

 “ 허허 참... ”

 최광일 이 사람. 좀 만용스러운 면이 있는것이 아닌가 사뭇 걱정도 되고, 하지만 여하튼 광일의 입담 덕인지 아니면 서울대 프리미엄 탓인지 현경은 광일의 이러한 이야기가 대체로 싫지않게 들린다. 무엇보다 여전히 호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광일을 바라보고 있는 현경. 하지만 이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서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다.

 ‘ 와장창~~~!!! 쨍그렁~~~!!! ’

 광일과 현경의 그와같은 화기애애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니 순간 흥분이라도 했던것일까. 서인은 평정심을 잃은채 순간 휘청거리며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뒤로 고꾸라지면서 그만 그쪽에 있던 물건들이 옆으로 좀 쏟아진것이다. 그래서 난 소리. 순간 당황한 서인은 후다다닥 바로 도망치듯 자기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광일과 현경이 의아함에 문을 열어보았을때는 이미 서인은 저만치 도망친 뒤고 무엇보다 어두운 밤 시간이라 두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다만 건너편에 바로 선반위 놓여있는 물건들이 옆으로 쓰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두 사람이 그것을 바로 정리하고 도로 방으로 들어갔다.

 ‘ 끄으으으~~~!!! ’

 서인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감정을 느끼며 방바닥에 엎드려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이런 감정은 대체 무엇이라 표현해야할까. 아련함 ? 아픔 ? 모르겠다. 아까 광일과 현경이 방안에서 다정스레 마주앉아 한참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때부터 이상하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쭈볏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정을 기어이 억누르지 못해 몸이 휘청이다 뒤로 나자빠지기까지 한 것인데 그러다 들킬세라 후다다닥 자기방으로 들어와버린 서인. 그러고보니 황이사 일로 서울에 갔다가 며칠만에 창원회관으로 들어와 아직 자기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때까지 광일이 묵는 방 옆에서 그러고 있었던것 아닌가. 이제 진짜 여정을 풀고 좀 쉬어야 할 판인데 서인은 자신의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전 광일과 현경이 한참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나누던 이야기들이 자꾸 떠올려지며 환영처럼 어른거려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마침내 실성이라도 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

 모르겠다. 이런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서인은 그저 괜시리 속상하기만 했다. 분하기만 했다.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이 야릇하고 묘한 감정. 광일과 현경이 다정스레 함께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 그것이 떠올려지면 떠올려질수록 서인은 자꾸만 흥분되고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와 도무지 자신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참을 방바닥을 구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미친사람처럼 한참을 울부짖다 이불을 푹 뒤집어써 버린채 잠이 들고 말았다.



- 7회에 계속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