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드라의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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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박정아 (3) 1세대 걸그룹 팬픽




                                    부제 : 나는 누구인가





 유경엄마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것이 저녁을 조금 지났을 무렵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유경아빠인 남편은 회사에 일이 더 있어 좀 늦게 귀가를 했다. 퇴근후 늦은 저녁을 먹고 피곤한지 대충 씻고 잠자리에 누우려고 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귀여운 외동딸 유경이가 안방으로 들어온것은 그때였다.

 “ 아니...유경아. 왜 그래 ? ”

 아버지 입장에서 어린 딸이야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엽고 깜찍한 여식. 밤늦게 애비한테 무슨 재롱이라도 피우고파 들어온건가 싶어 유경이를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는데, 아이의 태도는 조금 뜻밖이었다.

 “ 아빠...나 무서워. 유경이 무서워~~~!!! 어어어엉~~~!!! ”

 아이의 그런 모습에 아빠는 당혹스러워하고 유경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무섭다’는 말을 하면서 자꾸 이상한 말을 입에 담는다.

 “ 오빠들이 나보고 자꾸 이상한거 하래...회관장님이 나보고 이상한거 하랬어...

  무서운 아저씨랑...나보고 이상한거 하래. 아빠, 무서워. 어어어엉~~~!!! ”

 “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 ”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어린 딸아이 입에서 ‘오빠들이 이상한걸 하라고 한다’느니 ‘무서운 아저씨랑 이상한걸 하라’고 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니 순간 유경 아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사실 유경아빠도 상상력은 좀 있는 사람이라서인지 순간 무서운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일단 유경엄마는 그런 남편의 오해를 풀기위해 낮에 있던일을 설명한다.

 “ 아니, 여보...그런게 아니라... ”

 하지만 덕분에 대진교란 군소규모 민족종교 단체에서 몇 년전부터 아이와 함께 신앙생활을 해왔다는것을 실토할수밖에 없었던 유경엄마. 지금까진 아내가 ‘절에 다닌다’고 해서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대체 회관은 뭐고 이게 다 무슨소리인가. 일단 아내로부터 대충 이야기를 들은 유경아빠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수 없는 일이라는듯 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려한다.

 “ 여보, 여보. 대체 어딜 가겠다는거에요. 이 시간에 ? ”

 퇴근을 늦게 했던 유경아빠가 아닌가. 더욱이 잠자리에 막 들려 했을때는 어느덧 시간이 밤 11시를 넘어 자정으로 향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밤늦은 시간에 얼마나 무서웠으면 어린 딸아이가 안방으로 쪼르르 들어와서는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까 그 생각도 들고. 여하튼 유경아빠는 도저히 이대로 그냥 넘어갈일이 아니라는듯 차에 시동을 켠다.

 “ 여보, 대체 뭘 하는거에요 ? 대체 어딜 가겠다는거에요 ? ”

 “ 잔말말고 앞장서기나 해. 그 회관인가 뭔가 하는데 당장 가잔말이야 !!! ”

 대체 유경의 일을 뭘 어떻게 이해하고 이 난리를 치는것인지, 아내인 자신이 그런대로 납득이 가게끔 설명을 해 줬는데도 그것만으로는 믿지 못하겠는듯 그야말로 이 야심한 시간에 바로 회관으로 달려갈 기세다. 남편의 기세에 눌려 하는수없이 차에 탄 아내. 그렇게 유경의 부모가 탄 차가 창원회관으로 달렸다.

 유경의 집은 창원 시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농촌지역에 위치한 창원회관까지는 시간이 한시간 가까이는 걸린다. 그래서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 한시는 다 되어서 회관에 도착한 유경내외. 유경아빠가 우선 차에서 내린다.

 “ 여보...지금은 회관 사람들도 다 잠들어 있을 시간인데...대체 여기서 뭘 어쩌겠

  다구...차라리 정 항의할일이 있거든 날이 밝은 다음에... ”

 “ 잔말말고 앞장서. 그 회관장이고 뭐고...그리고 그 무서운 아저씨란 이상한 사내

  놈도 전부 불러내라구 !!! ”

 지금 이 시간에 대체 뭘 어쩌란 소린지. 아무리 대진교가 군소규모의 민족종교 단체라도 죄없는 사람 공연히 해꼬지하고 그러는 단체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사이비 종교’라는것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대략 그렇듯 유경 아빠도 지금 머릿속으로는 별의별 불길한 상상을 다 하고 있는중이다. 어쩌면 아내도 한통속일수도 있겠다는 의심까지 들어 유경아빠는 아내를 거듭 닦달하며 회관장등 이곳 관계자를 당장 불러내라고 한다. 하는수없이 유경엄마는 숙소건물쪽으로 가 회관장을 깨운다.

 “ 아니, 유경 어머니. 대체 이 시간에 ? ”

 어제 유경이가 그렇게 병원까지 실려간일도 있고 하니 회관장 입장에서도 이 밤늦은 시간에 유경엄마의 방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수는 없는 일이다. 무슨일이 또 생긴것인가 싶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는데, 유경아빠는 그런 회관장 앞에서 ‘그 이상한 사내X’부터 당장 불러내라며 난리를 친다. 회관장으로선 도대체가 영문모를 일이라 어이없어하고. 여하튼 대충 상황파악이 된듯하여 결국 한참 깊이 잠이든 윤서인까지 불러내서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아니, 저 유경아버지. 지금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신듯 한데요... ”

 “ 제가 지금 그쪽 아주머니 해명이나 변명을 듣고자 찾아온것 아닙니다. ”

 한편 윤서인은 그 옆자리에 사뭇 짜증난다는듯한 모습으로 앉아있고, 그러잖아도 어제 회관장의 적극 권유로 연극연습에까지 참석할뻔 하다 당한 돌발상황으로 인해 서인의 속마음도 잔뜩 언짢아있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원래부터도 거칠고 어두운 인상의 윤서인의 얼굴도 잔뜩 일그러져 있어 유경아빠의 눈엔 그런 윤서인의 생긴 외양부터가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 그...형씨가 우리 아이한테 이상한짓 한 사람입니까 ? ”

 “ 아...아니 저...유경아버지. 그런게 아니라요... ”

 “ 아주머니한테 하는 이야기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

 회관장을 ‘아주머니’라고 부르며 버럭 소리지르는 유경아빠. 솔직히 대진교가 무슨 기독교나 불교처럼 유명한 종교단체도 아니고, 회관장도 어디까지나 대진교 안에서만 회관장이고 법사일뿐 평상복을 입고 외출을하면 그녀도 다른 사람들 눈엔 평범한 40대 후반의 아주머니일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 종단내에선 지도자급 인사인데 그런 자신에게 대놓고 ‘아주머니’라고 하는 모습을 보니 회관장도 사뭇 불쾌감을 느낀다. 여하튼 유경아빠는 회관장과는 별로 더 하고픈 이야기가 없는듯 서인을 자신 앞에 앉힌다. 서인은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못마땅하다는듯 털썩 그 앞에 앉고, 유경아빠를 살짝 째려보기까지 한다. 유경아빠는 그런 서인을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 내가...사실은 장가를 좀 늦게 간 놈이라서...나이 서른 다섯에 지금 집사람을 만

  나...이렇게 유경이 낳고 10년 가까이 살아온 그런 사람입니다. ”

 “ ...... ”

 “ 형씨가 장가를 간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이

  란게 다 그런거에요. 불면 날아갈까, 엎어지면 꺼질까 그렇게 늘 안쓰럽고 애틋

  한 마음으로 자식 키우는 그게 부모 마음인데... ”

 사실 윤서인이 제일 싫어하는 두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가 대진교 교리를 제법 섞어서 자신을 타이르거나 설교하려 드는것이고, 그 다음이 어른스레 자신을 누가 훈계하는것이다. 그나마 유경아빠의 말은 전자에는 해당이 되지 않으나 후자는 해당이 되는것 아닌가. 게다가 자신을 무슨 파렴치한 보듯 그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서인도 잔뜩이나 불쾌한 심정이다. 회관장은 회관장대로 거침없이 자신의 하고픈 말을 내뱉는 유경 아빠로 인해 잔뜩 불쾌해진 서인이 무슨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서인의 옆구리를 이따금 툭툭치며 자제를 시키려 한다. 어차피 서인은 뚫린귀로 유경아빠의 말을 듣고는 있으나 그의 말이 가슴으로 들어오진 않고 있으리라.

 “ 여하튼 형씨 내 지켜보겠소. 한번만 더 우리 딸애한테 이상한짓 했다느니 해꼬

  지를 했다느니 이런소리 들리는 날엔 바로 조치를 취할테니 그렇게나 아시오.

  내 그말 하려고 온거요. ”

 “ 아...아니 저 유경 아버님... ”

 정말이지 무슨 일이 이렇게 꼬여도 잘못 꼬였는지 모르겠다. 회관장은 나름대로 서인에 대한 배려로 한번 그를 청운회 연극연습에 참여시키고 싶었던것인데, 상대배역을 맡게 된 여자아이가 (그 정확한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난데없이 싫다며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것 아닌가. 헌데 유경아빠는 서인을 그야말로 초등학생 어린 여자아이한테 무슨 이상한짓이나 하는 그런 파렴치한으로 단정짓고 말을 하고 있는것이다. 여하튼 훈계와 경고를 섞은 유경아빠의 말이 그 정도로 끝나고 다시금 회관장과 서인에게 이런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다짐을 받아놓고는 아내와 함께 회관을 떠난다.





 “ 서인아...서인아 안에 있니 ? ”

 회관장은 서인에게 미안해서 어쩔줄을 몰랐다. 딴에는 서인에게 청운회와 한번 제대로 어울리면서 좋은 추억거리 하나 만들게 해주고 싶었는데, 일이 너무 예기치않게 꼬여버려 오히려 서인에게 큰 상처만 안겨준것이 아닌가. 날이 밝은뒤 오전내내 도무지 자기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꼼짝도 하지 않는 서인을 보다못해 회관장이 방으로 직접 찾아갔다.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려보았으나 안에선 대꾸가 없었다. 혹여 문을 잠근것은 아닌가 했는데 일단 그런것은 아니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서인은 이불을 푹 뒤집어쓴채 누워있었다.

 “ 서인아... ”

 서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이름을 불러보는 회관장. 그러면서 조심스레 서인의 안색을 살펴본다. 눈을 감고는 있었지만 자는것 같지는 않고, 일단 흔들어 깨워보려거나 하진 않고 그 옆에서 뭐라고 좀 말을 붙여보려했다.

 “ 그...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마음 많이 상했제 ? ”

 “ 나가세요... ”

 “ 서인아... ”

 그래도 다행히 대꾸는 하는 서인.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서인의 이름을 다시한번 불러보았는데, 그러자 서인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 괜찮으니까 나가 달라구요. ”

 “ 서인아... ”

 아예 그냥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은것일까. 판에 박힌 위로의 말보다는 차라리 이럴땐 그냥 혼자 안으로 삭이는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 유경이란 아이의 태도는 진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아닌말로 진짜 윤서인이 그 유경이란 아이한테 진짜 무슨 몹쓸짓이라도 한것도 아니고, 무슨 회관장이나 윗사람이 막말로 연극에서 커플연기라도 하라고 요구한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하다못해 무슨 포옹씬 같은것도 아니고, 몇마디 대화라도 나누는 장면도 아닌, 유경이가 맡은 역할인 ‘마을주민 3’은 그냥 ‘부상병 3’ 옆에서 치료해주는 시늉만 하면 되는것이다. 그리고 부상병 3을 맡은 서인은 어차피 무대에서 누워있어야 하니 만약 연극공연을 하는 당일에 관객들 눈엔 부상병 3 정도는 제대로 얼굴도 보이지 않을것이다. 그러니 ‘마을주민 3’역을 맡은 아이는 정히 내키지 않으면 그냥 부상병 3 옆에서 우두커니 앉아만 있어도 되는것이다. 그런데 유경이란 아이는 그것조차도 싫다며 그렇게 처절하게 울부짖은것이다. 아무리 윤서인이란 사람이 싫기로 이건 좀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혹여 서인이 정말 행여 평소에 그 유경이란 아이한테 나쁜짓이라도 했거나 괴롭힌적이 있기라도 한다면 억울하지나 않겠다. 서인과 유경 사이의 인연(?)을 정히 꼽자면 서인은 그저 늘 하듯이 청운회 집회나 행사가 있을때도 창원회관 청운회 아이들을 열심히 성실하게 차로 날라다 준 죄밖에 없다. 그럴때 유경이란 아이가 서인을 아주 보지 못하진 않았을터인데, 왜 유경이란 아이 눈엔 서인이 ‘무섭고 이상한 아저씨’로 비쳤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서인과 실제 뭘 어떻게 하라는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단 몇분짜리 연극에서 조차도 무슨 커플연기를 한다던가 하다못해 무슨 몇마디 말이라도 주고받는것도 아닌 그냥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시늉만 옆에서 해주면 되는것인데 그조차도 싫다고 완강히 거부한 초등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이. 글쎄, 뭐 굳이 어린아이 입장에서 이해해보자면 아무리 그래도 20대 중반의 성인인 아저씨 옆에서 뭘 해야한다는것 자체가 어린 여자아이에게 ‘무서움’이나 ‘공포’ 같은 것으로 다가왔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은 결과적으로 특히 유경 아버지란 사람한테 윤서인을 무슨 이상한 성범죄 같은것이라도 저지르는 파렴치한 사람처럼 낙인찍히게 만들어 버렸지 않은가. 아무리 사람 말이란게 한두단계만 넘어가면 이상하게 왜곡되고 꼬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세상이치이기로 그야말로 철없는 어린아이가 ‘무섭고 싫어서’ 내뱉은 울부짖음과 몇마디 말이 윤서인이란 사람을 유경 아버지한테 ‘진짜 이상하고 천하 몹쓸’ 그런 인간쯤으로 비치게 만든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그 한낱 초등학교 어린아이조차도 자신을 그것도 단 몇분 곁에 있는것조차 싫다고 완강히 거부할만큼 자신이 그런 사람이란것을 자각하게 만든것이 서인을 더더욱 상처받게 만들었다. 서인이 비록 남다른 성장기와 환경속에 자라온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날 이때까지 남한테 피해를 주거나 해꼬지를 하는 그런짓을 하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라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헌데 그런 자신이 불과 초등학교 2학년짜리 어린아이가 단 옆에 몇분이라도 있는것조차 싫다고 거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니. 그 현실을 새삼 깨달은것이 윤서인을 스스로 너무 비참하고 가슴아프게 만든것이다. 그야말로 서인이 받은 상처는 형언하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다.

 “ 그런일이 다 있었단 말이가 ? ”

 그게 벌써 2월 중순쯤에 있었던 일이니 벌써 한달전의 일이다. 다만 여하튼 산신도인으로서는 회관장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듣게된 터인지라 적잖이 놀라면서도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말없이 차를 한모금 음미하곤 산신도인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 애가 평소에도 워낙 말수가 적은 그런 아이지만...그때 이후론 애가 더 의기소침

  해진것 같아요. 너무 미안해서 제가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

 “ 회관장... ”

 “ 예, 산신도인. ”

 한참 혼자 곰곰이 뭔가 생각하는듯 하던 산신도인이 차분한 어조로 회관장을 부른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 그...서인이 좀 내려오라캐. ”

 “ 예 ? ”

 그러잖아도 이미 아까 서인에게 올라가서는 ‘산신도인 오셨는데 잠시 인사나 드리라’고 말했던 회관장이다. 하지만 서인은 그때 이미 만사가 다 귀찮다는듯한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오늘 서인을 산신도인께 인사시키는것은 다 틀린일이구나 이미 그렇게 단념하고 있던 회관장이다. 헌데 되려 산신도인은 그러니 더더욱 서인이를 좀 내려오라 말하는것 아닌가.

 “ 그 아가...지금 뭐 산신도인이 말씀하신다고 이야기를 듣겠어요 ? ”

 “ 후우...어려운 일이겠지만...그래도 좀 내려오라캐. ”

 “ 그...네...뭐... ”

 솔직히 서인도 서인이지만 회관장으로서도 이쯤되면 좀 성가셔지기도 한다. 사실 평상시에도 차량운전일을 시킬일이 있어 부르는 경우가 아니면 웬만해선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고 청운회건 종단의 일반 행사건 아예 관심 자체를 갖고있지 않은 그런 서인이다. 그냥 그래도 제 딴에는 밥값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에 차량운전과 그 외 기타 허드렛일 정도나 가끔 도와주는게 서인이지 그 외에는 일절 다른이들과 잘 어울리려 하지도 않고 회관일에도 통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이 윤서인이다. 그나마 서인이 회관장 말이라면 좀 듣긴 하지만, 여하튼 서인을 움직이게 하는것은 평상시에도 그리 쉬운일이 아닌데, 그것도 지금 하필 그런 서인을 산신도인께 부러 데려오라니.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차라리 황소 한 마리를 저 위에서 사무실 앞까지 끌고오라면 그게 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산신도인의 거듭 간곡한 부탁이 있자 하는수없이 회관장은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서인을 여하튼 한사코 설득하고 설득해 성공은 했는지 한참만에야 서인이 내려오긴 했다.

 “ 서인아... ”

 서인과 산신도인은 물론 면식이 있는 사이다. 이따금 풍수나 관상일로 회관일을 도와줄때 들르기도 하고 그 외에도 가끔 이렇게 마실차 들르는 그런 ‘산신도인’ 아닌가. 무엇보다 산신도인은 회관에 들를때는 윤서인만큼은 꼭 한번은 보고 가곤 했다. 따라서 서인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산신도인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 산신도인을 보며 그래도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서인. 산신도인이 다가와서는 그를 한번 안아보며 위로를 해준다.

 “ 회관장님한테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일이 다 있었대모 ? ”

 “ ...... ”

 대꾸없이 서인이 회관장을 흘깃 노려보았다. 마치 쓸데없이 그런 소리를 도인께 뭐하러 했느냐는듯한 그런 눈빛이다. 회관장은 미안해하면서도 그래도 이해하라는듯 살짝 눈짓을 보내고, 산신도인은 서인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건넨다.

 “ 서인아... ”

 대꾸없는 서인. 하지만 성격이 원래 그런 아이란것을 아는 산신도인인지라 개의치않고 하려던 말을 계속 이어간다. 작은 회관 사무실 안에 그런대로 훈훈한 온기가 감도는 느낌이다.

 “ 내...니한테 꼭 한번 충고해주고픈 말이 하나 있긴 했거만은... ”

 “ ...... ”

 “ 서인아...사람은 그래도...이 세상에서 무슨일을 하든... ”

 산신도인을 살짝 외면하고 있던 서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작은 키. 거칠고 어두운 분위기에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무엇보다 마른 체구의 서인은 일단 산신도인과 닮은 외양은 아니다. 그의 말이 계속된다.

 “ 그 분야에서 자기가 최고가 되려 노력하면 되는기다. 무슨말인지 알겄나 ? ”

 “ ...... ”

 “ 내 말은...니도 이제 어느덧 성인이고...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할 날이 아직

  많은 아이니께네... ”

 서인은 대꾸없이 앞에 놓인 차 한모금을 음미한다. 여지껏 방안에서 그러고 있었으니 목이 좀 마르긴 했나보다. 산신도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 한번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나 찾아 택해보란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을 택했거든

  ... ”

 “ ...... ”

 “ 한번 그 분야에서 니가 최고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봐. 그러면 어떤 사

  람이 니를 무시하겄노 ? 그러나, 안 그러나 ? ”

 자식을 타이르는 부모같은 자애로운 음성이 서인의 귓전을 묘하게 울리고 있다.





 한달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오전에 차량운행을 해야할일이 없어서 서인은 평상시보다도 더 늦게 일어났다. 보통 그래도 차량운행을 할때는 오전중에 차를 움직여야 할때도 있어 그 시간 맞춰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 오전에 차량 운행을 할 일이 없으면 오전 9시나 10시를 넘겨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날따라 어찌된 영문인지 더 늦잠을 자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면장에서 대충 씻고 컵라면을 하나 챙겨먹는다. 회관에야 원래 공양(식사)시간이 규칙적으로 정해져있고 따라서 회관에서 생활하는 성직자나 간부 또는 기도하러 온 신도들은 그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게되지만 서인이야 원래 그런 시간에 맞춰 식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자기가 먹고 싶은 시간에 아무 때나 일어나서는 때론 공양간에 대충 남은 찬거리를 꺼내 챙겨먹기도 하고 가끔은 신도들이 챙겨준 차량운행 수고비로 컵라면이나 여타 인스턴트 식품이나 간식거리를 사다 자기방에 쌓아 놓은뒤 자기가 먹고 싶을때 먹기도 한다. 그날도 그래서 대충 그렇게 일어난뒤 컵라면 하나를 꺼내 챙겨먹고 있었다. 라면을 다 먹고나서 그 용기를 대충 방구석에 쳐놓고는 바람이나 쐴까 해서 잠깐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 앞쪽에 차량 한 대가 들어서는가 싶더니 그쪽에서 제법 요란스럽게 회관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서인이 기거하는 숙소건물과 사무실과는 거리가 꽤 있으나 그래도 공양간쪽으로 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먼발치로 그쪽에서의 움직임이 대충 보이기는 한다. 서인이 대충 공양간 인근을 서성대고 있을때쯤 그때 저 아래 회관 정문 앞으로 삐까번쩍해보이는 먼발치서 봐도 꽤나 말쑥하고 고급스러운 자가용 한 대가 들어섰고, 거기서 누군가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회관장과 간부급 성직자 2-3명 정도가 제법 요란스럽게 거기서 움직이면서 차량에서 내린 일행을 맞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것이다. 대충 보니 운전석과 뒷좌석에서 각기 한명씩의 남자가 내리는듯 했다. 다만 거리상 서인이 그 차에서 내린 남자의 구체적인 연령대라던가 외양까지 식별하긴 어렵다. 뭐 이따금 그렇게 기도나 용무차 다른지역에서 오는 신도가 있기도 하고 외부에서 손님이 오시는 경우도 있으니 흔히 있는 그런경우쯤으로 생각하고 서인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자기 혼자 그 인근만 서성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사무실 앞에서는 회관장을 비롯한 회관 간부들이 바로 그 자가용을 직접 몰고 차에서 내린 신도 일행을 요란스럽고 반가이 맞이하는 그런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 아이고, 최도인. 이게 대체 얼마만입니꺼. 참으로 오랜만에 뵙십니더. 그리고 얘

  가 바로 광일이라고예 ? ”

 차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대충 50대 초,중반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였고,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뒷좌석에서 한 사람의 청년이 내렸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제법 우람한 체구에 훤칠한 외모가 한눈에 뜨일 지경이다. 일단 ‘최도인’이라 불린 50대 초반 남자는 대진교 신도인듯 회관장 및 간부들과도 아마 면식이 있는듯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있고, 다만 뒷좌석에서 내린 청년은 회관장등에겐 아마 초면인듯 제법 훤칠해 보이는 외모에 듬직한 풍채를 보고는 사뭇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 아이고, 그래 니가 바로 광일이라꼬 ? 아버지한테선 이야기 많이 들었다. 니가

  어릴때부터 그리 똑똑했던 천재라모 ? 그리고 이번에 서울대 철학과 수석으로

  졸업하고. ”

 “ 처음뵙겠습니다. 최광일이라고 합니다. ”

 허스키한 목소리의 청년은 가정교육을 제법 보수적으로 엄격하게 받은것인지 회관장 일행을 향해 넙죽 큰절까지 올린다. 그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너무 정중한 인사법에 회관장이 당황할 지경이고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맞절까지 하고는 광일이란 청년을 일으켜세운다.

 “ 아이고 이거...이리 큰절까지는 안 해도 된다. 이...우리 대진교에는 대진교식의

  예법과 인사법이 다 따로 있는데...하여튼 그건 우리가 앞으로 차근차근 잘 가르

  쳐줄기고...여하튼 부디 여기 있는동안 수도생활 잘 하면서 잘 지내도록 캐라. ”

 “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 아들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회관장님. ”

 회관장이 ‘최도인’이라 부른 50대 남자는 대진교의 신도인듯 광일을 자신의 ‘아들’이라 칭하며 그와같이 부탁을 하고 있는것이다. 광일은 차 뒷 트렁크에서 자기 짐을 내리고, 회관장은 그런 광일과 최도인 부자를 연달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 가만있자...그럼...광일이가 묵을 숙소는...내 조만간 결정을 할 테이께네...일단

  당분간은 요 사무실 뒷방을 쓰도록 하고...그리고... ”

 일반적으로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은 성전 건물 양 옆에 있는 숙소를 사용하고 회관에 장기 기거를 하는 회관장을 비롯한 간부급 신도들은 후원 뒤쪽에 있는 건물 숙소를 쓴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때는 사무실 뒤쪽에도 두어개 정도의 여분의 빈 공간이 있기도 한데, 그 방을 임시로 쓰게 해줄때도 있다. 사무실 뒷방이라고 해서 기거하는데는 뭐 크게 어려운 점은 없다. 다만 좀 어두운 공간이라서 독서를 하거나 할때 좀 불편하거나 한 정도의 어려움은 있을뿐. 여하튼 광일이 그렇게 회관장의 안내를 받아 임시로 쓰게되는 방으로 짐가방을 옮겨다놓고, 한편 광일의 아버지 최도인은 잠시 회관장등과 사무실에서 차를 한잔 하면서 환담을 나누게 된다.

 “ 광일이가 근데 진짜 억수로 잘 생겼네예. 덩치도 제법 듬직하고예 ? ”

 “ 하하...별 말씀들을 다 하십니다. ”

 자식 칭찬이란게 아무래도 무안한 면이 없지는 않은것일까. 최도인은 살짝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다소 민망한지 살짝 손을 내젓기도 하고. 방금 그 말을 한 회관 간부의 말을 받아 회관장도 한마디 거든다.

 “ 아이고...아니라예. 지가봐도...그리고 우리 OO교사가 웬만해선 사람보고 잘생겼

  다는 칭찬 잘 안 하는 사람이란거 최도인도 잘 아시지 않십니꺼. 그런데 그런 우

  리 OO교사 입에서 남자보고 ‘잘생겼다’ 소리 나온거면 진짜 잘생긴거라예. ”

 “ 허허...사람이야 외모만 아무리 잘나면 뭐합니까. 내실이 있어야지요. ”

 “ 아이고, 최도인. 무신 그리 섭섭한 말씀을. 그래 서울대 철학과를 그리 수석으로

  졸업한 우수한 인재가 내실이 없다모...그럼 진짜 변변찮은 사람들은 우예 살라꼬

  예. 세상에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하나 볼것없는 작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예. 정

  말이지 광일이 정도 인재면 외모도 훌륭하고 내실도 꽉 찾고 무엇하나 나무랄데

  없는 그런 사람이라예. ”

 “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여하튼 여러 가지로 부족한것 많은 제 아들놈 잘 좀 부탁

  드릴 따름입니다. ”



-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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