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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걸그룹 팬픽 - 박정아 (1) 1세대 걸그룹 팬픽




                                     부제 : 나는 누구인가





 1995년 이른봄.

 90년대 중반이면 대진교 창원회관은 아직 대진교의 총 본산지인 총무원(불교의 총무원과 비슷한 기능)의 소재지로 있던 시절이다. 창원회관은 경남 창원의 농촌지역에 있는 한 야산의 중턱을 깎아 만든 대략 수백평 내지 수천평 정도로 추산되는 공간으로 그곳에 성전등 기도,종교시설과 신도 및 성직자들이 와서 숙식을 하거나 생활을 할수있는 공간,사무실등을 만들어놓았다. 그 구조가 대략 다음과 같다. 윗부분 정 중앙엔 우뚝선 ‘대성전’이란 큰 건물이 있고, 대성전은 글자그대로 기도등 종교의식을 비롯한 종단의 주요 행사를 치르기도 하는 장소다. 그리고 그 양 옆으로는 숙소로 쓰이는 건물이 방같은 형태로 좌우에 3-4칸씩 총 8개의 방이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그 방은 기도를 하러온 신도들이나 특히 종단의 큰 중앙행사를 치를때 참석한 신자들이 묵는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쭉 가다가 아래쪽으로 살짝 내려가면 후원 혹은 공양간으로 불리우는 식당 겸 주방으로 쓰이는 공간이 있는데, 후원은 대략 20-30명 정도의 사람을 수용할수 있는 정도 크기의 공간이라 종단의 큰 행사가 벌어졌을때는 참석한 신도들은 보통 후원에서 배식을 받은뒤 회관내 야외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여 식사를 하곤 한다. 한편 아래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다보면 역시 조금 평평한 공간이 있는데 그곳은 일반적으로 ‘광장’이라 부른다. 광장이라고 하면 보통 굉장히 넓은 공간을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게까지 큰 공간은 아니고 굳이 비유하자면 아파트 단지내 있는 놀이터보다 약간 큰 그 정도 넓이로 생각하면 된다. 보통 종단 특히 종단의 청년,학생회 단체인 청운동지회(약칭 : 청운회)들이 야외행사를 치르기도 하거나, 나이어린 청운동지들의 놀이터로도 활용되는 곳이다. 좀 더 내려가면 오른쪽에는 ‘사무실’로 쓰이는 요사체 건물이 하나 있고 그 건너편에도 좀 넓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은 주차장으로 쓰인다. 보통 차량을 이용해 종단행사나 집회에 참석하러 오는 사람들이 그곳에 차를 주차하기도 하고, 평상시에도 회관장등 회관이나 총무원 간부급들중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이 한두명 있어 두어대 정도의 승용차나 봉고차는 항시 주차되어 있다.

 한편 후원 뒤쪽으로도 또다른 건물이 있는데, 그곳은 회관에서 상주(常駐)하는 성직자나 간부들의 숙소로 쓰인다. 하지만 큰 행사를 치를때 신도들 거처가 모자랄때는 그곳도 역시 신도들 숙소로도 내주기도 한다. 후원뒷쪽 숙소건물 역시 앞뒤로 다섯 개씩 총 열 개의 방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그런 구조로 방은 한 개가 보통 2-3명 정도가 이용할수 있는 그 정도 크기의 방이다. 하지만 창원회관의 상주하는 성직자,간부라야 적을때는 5-6명 많을때는 열명 정도이니 간혹 한두칸 정도는 빈 방인채로 남겨져 있을때도 있다.

 그 열칸 정도로 이루어진 숙소 가장 끝자락 구석진 방을 이용하고 있는 청년이 한 사람 있다. 이름은 윤서인. 상주 성직자나 간부용 숙소라고 했으나 사실 그는 그런 출가(불교의 출가와 비슷) 성직자나 회관 간부는 아니다. 사실 윤서인이 언제부터 여기서 살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직 20대 중반의 젊은 청년이니만큼 청운동지들 중에는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들도 서인이가 대체로 학창시절 또는 그 이전부터 여기서 살았던걸로만 알고 있을뿐 보다 구체적인 사연은 모르고 있다. 아니, 그보다 윤서인의 일반적으로 거칠어보이고 어둡고 음침한 인상은 뭇 사람들이 쉽게 범접하여 다가가기 힘든 그런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대체로 마른 체구에 쉰 목소리 그리고 어두워보이는 인상 때문에 종단의 좀 나이많은 신자들이나 회관의 간부들 정도나 그저 자식이나 동생 같은 마음으로 그를 돌봐주는 것일뿐, 사실 청운회중 서인과 그렇게까지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충 봐도 뭔가 범상찮아 보이는 사연이 있을것 같은 청년. 무엇보다 방문 옆쪽에 놓여있는 한 대의 오토바이, 그리고 방 앞에 가득 늘어놓은 구두들이 눈에 뜨인다.

 오토바이는 그렇다치고 대충 봐도 열켤레는 넘어 보이는 구두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봤을땐 그 방에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은 그것은 모두 윤서인의 것이다. 무슨 구두수집광이라도 되는것인지 틈틈이 사모은 구두가 어느덧 열켤레를 넘어서고 있고, 서인은 일반적으로 정리정돈 같은것을 잘 하는 성격은 아닌지 그 구두들은 대체로 서인이 사용하는 방 앞쪽에 여기저기 제법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다. 가끔 회관장이 그 구두좀 깨끗이 잘 좀 정리할수 없냐고 타이르기도 했고, 또 보다못해 자신이 손수 깔끔하게 정리를 해놓기도 했지만 서인은 얼마안가 다시 그것들을 어질러놓는다. 서인의 성격이 일반적으로 그와같다.

 서인의 또다른 취미는 바로 방문앞에 놓여있는 오토바이가 말해주듯 오토바이 타는것이다. 가끔 심심하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스트레스 해소용일까. 그 오토바이를 회관의 정문이 있는 사무실 앞쪽까지 손수 끌고와서는 거기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어디론가 달리곤 한다. 얼핏 그 예전 어떤 흑백영화의 남자 주인공 마냥  ‘달리자...달려보는거야...’ 그렇게 울부짖으며 달리고픈 그런 심사라도 있는것인지 서인은 그렇게 이따금 오토바이 드라이브를 즐기곤 한다. 혼자 마음이 울적하거나 어떤 울분이나 아픔,슬픔 같은것이 있을때는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의 상처가 좀 달래지는것인지. 한없이 그렇게 어디까지 달려갔다가 돌어오곤 한다.

 계절은 겨울은 다 지났고 어느덧 봄으로 접어드는 무렵. 하지만 창원회관이야 어쨌든 산중턱이니만큼 밤이나 새벽엔 아직 춥다. 헌데 하루는 서인이 성전 오른쪽 숙소 건물앞 마당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깊은 밤중은 아니고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참 먼 어중간한 새벽시간이다. 사실 서인이 이렇게까지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혹 무슨 울적한 심사에 밤잠이라도 설친것인지. 여하튼 평상시 그 답지않게 이런 꼭두새벽 같은 시간대에 혼자 그곳에 나와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것이다.

 창원회관이야 시골지역이니만큼 도시와는 달리 밤에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볼수 있다.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수없이 많은 헤아릴수 없는 별들. 어쩌면 이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의 개체수를 모두 합한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를 별. 아니, 그보다도 우주의 크기와 생성이치 그리고 그 섭리는 인간의 아둔한 머리로는 모두 깨닫기 힘든것. 다만 서인은 이 이른 새벽시간에 혼자 나와 어찌된 영문인지 한참을 말없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것이다. 이따금 한숨을 내뿜으면서. 한기가 아직은 가득한 때라서인지 한숨을 내뿜으면 허연 입김이 어두운 공간속으로 퍼져나가곤 한다. 성전 옆쪽으로는 밤에는 일반적으로 전구를 하나쯤은 켜놓기 때문에 그 조명빛이 비쳐져 밤 하늘에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언뜻 바라보면 서인의 복잡한 심사를 대변하는듯 해 보이기도 하는 그 심란한 한숨. 얼마를 그렇게 말없이 바라보았을까. 갑자기 서인은 ‘흑~!’ 하며 흐느끼기까지 한다.





 “ 서인아 ! ”

 그런 서인을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인이 뒤돌아보니 다름아닌 회관장이었다. 회관장이란 글자그대로 회관에서 가장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불교로 치면 주지스님, 교회로 치면 담임목사 같은 역할) 이때 창원회관 회관장은 40대 후반의 중년 여성으로 중간키에 40대 후반으로 보기엔 그런대로 동안이라 할 수 있는 외모를 지닌 여인이기도 했다. - 다만 가끔 화가 나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어 얼굴을 찡그리면 엄청 나이들어 보이는 얼굴이 나오기도 한다. - 새벽예불(불교의 예불의식과 비슷)을 드릴 시간이 다 되어 그 준비를 하러 나왔다가 회관장은 마침 성전 옆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흐느끼고 있는 서인의 모습을 본 것이다. 대진교의 예불,기도의식은 보통 하루 네차례 있고, 그 하루 첫 의식격인 새벽예불이 보통 새벽 다섯시에 시작 한시간여동안 진행된다. 예불이나 기선은 일반적으로 회관장이 주도하지만 회관장이야 다른 회관 업무,사무를 봐야할때도 많으므로 그럴땐 회관 서열순으로 다른 성직자나 간부가 맡기도 하고, 때론 아예 ‘기선성자(祈禪聖者)’란 명칭의 성직자를 따로 두어 그 성자가 예불,기도 의식을 전담하게 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날 새벽예불 의식은 회관장이 직접 지휘할 생각인지 이 시간에 성전으로 나온것인데, 그러다 서인을 발견한것이다. 그러니 시간은 아직 새벽 다섯시가 되려면 어느정도 시간여유가 남은 그쯤의 시간인 것이다. 무엇보다 서인의 평상시 게으른 성격을 감안하면 이 새벽에 일찍 일어날 아이가 아닌데, 아니면 정말 밤잠을 설친것인가. 걱정이 되어 회관장이 서인에게 말을 건넨다.

 “ 니 여기서 뭐하고 있었는데 ? ”

 “ 아...아니에요 그냥... ”

 거칠고 쉰 목소리를 그와같이 내뱉은 서인. 그리고 민망한듯 머리를 긁적이기도 한다. 회관장은 걱정이 되는지 그런 서인의 용태를 살짝 살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말을 건넨다.

 “ 무슨...고민이라도 있나 ? ”

 “ 아뇨, 그냥 나와본거라니까요. ”

 회관장은 그렇다치고 서인의 경우엔 경상도에서 태어난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여하튼 이곳 창원회관에서 살아온지가 꽤 오래된 아이니 말투에 경상도 사투리가 살짝 배어있다. 그렇다고 사투리가 아주 심한 정도가 아닌 억양정도에만 경상도 말씨가 살짝 배어있는 그런 청년이다. 여하튼 별일 아니라는듯 회관장의 걱정되는 물음에 서인은 그와같이 답하고, 회관장이 걱정이 되는듯 그런 서인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 서인아...그러지말고 방에 들어가 한숨 자지그래. ”

 “ ...... ”

 “ 니 일찍 일어나야해 오늘. 부산회관에서 7일기선 하러 오신 부인님들 오늘 가시

  는데...니가 태워드려야 하지 않나. ”

 “ 네, 그건 걱정마세요. 늦지 않도록 할께요. ”

 대진교는 창원을 비롯한 서울,인천,부산,광주,용인,영월등 전국 모두 열곳에 회관을 두었다. 이중 서울,부산,광주 같은 도시지역은 대체로 개인주택을 구입 종교시설로 개조 사용하거나 사무실을 하나 빌려 그곳을 사용하기도 하고 영월이라던가 창원,옥천같은 군 지역에는 이런식으로 산 중턱 같은데 스스로 직접 종교시설을 만들어 기도터이자 종교시설로 사용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기도터들은 대개 풍수지리적으로도 좋은곳이라 다른 도시지역 신자들도 와서 며칠씩 기도를 하러 왔다 돌아가기도 한다. 대진교의 기도의식은 7일,3.7일(21일),백일기선식으로 분류가 되어 있는데, 신자들은 대개 그중 자신이 기도하고 싶거나 할수있는 기간을 정해 자신으 그동안 기선을 하러왔다가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기도를 하러온 신자들이 창원회관의 경우 성전 양옆에 지어진 숙소를 사용하는것이다.

 한편 서인은 평상시에는 그렇게 회관을 찾아오는 신자들이나 외부손님들을 태워다드리고 모셔오는 그런 역할을 맡곤 했다. 하지만 서인이 처음부터 그 일을 맡은것은 아니고, 학교를 마치고 한동안 별다른 하는일없이 지내다가 대충 성인이 되어 운전면허를 땄을때쯤부터 회관 관계자들이 이따금 그를 불러서 신자나 손님들을 운반할 차량 운전을 맡기곤 했다. 따라서 서인이 여기서 그런 차량운전을 도맡아 한지도 벌써 한 4-5년 정도가 된다.

 따라서 서인을 잘 아는 신자들은 보통 그를 ‘서인아 !’, ‘윤서인’ 하는 식으로 불렀지만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이나 외부 손님의 경우 ‘운전하시는 분’, ‘운전하시는 도인(道人)’ 이런식으로 부르곤 했다. 원래 대진교에서 신자들끼리 서로 칭하는 명칭이 도인(道人),부인(婦人),도자(道者),도우(道友) 이런식이었다. 교회에서 ‘OO형제님’, ‘OO자매님’ 이런식으로 부르는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청년,학생회 단체인 청운동지회의 경우 보통 ‘OOO 동지’ 이런식으로 부르고 그 외 일반 신도들끼린 ‘OOO 도인’, ‘OOO 부인’, ‘OOO 도자’ 이런식으로 부른다. 하지만 그것이야 어디까지나 종교내 명칭이 그렇다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친한 사람들끼리야 그냥 ‘야,너’, ‘형님,아우’ 이런식으로 호칭하고 상대적으로 좀 멀거나 그리 친하지 않거나 호칭이 애매한 경우엔 대진교 신자들끼리 부르는 공식 명칭인 그런 ‘도인님’,‘부인님’ 하는식의 호칭을 사용하는것이다.

 서인에게 ‘운전하는 분’, ‘운전하는 도인’ 이런식의 명칭이 붙은것도 대략 그런 이유에서다. 서인을 평상시 잘 아는 신자들이라면 모를까, 잘 모르거나 또는 처음온 신도거나 외부 손님일 경우 ‘운전하는 분’ 혹은 종단내 명칭을 아는 사람인 경우엔 눈치껏 ‘운전하는 도인’ 이런식으로 부르고 어떤이들은 아예 줄여서 간편하게 ‘운전도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윤서인에게 ‘운전도인’이란 명칭이 붙게된 과정이 대략 그렇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7일기선을 하러온 7,8명 정도의 3,40대 신도들이 있었다. 그분들이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고, 창원회관은 글자그대로 산골지역이니만큼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타는 터미널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대진교에 큰 행사가 있을때 다른 지역 신도들의 경우엔 관광버스 같은것을 대절해서 창원회관까지 오게 되지만, 그렇지않은 평상시엔 일반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걸어오긴 너무 힘든 거리기 때문에 아예 회관내에서 자체적으로 그렇게 차량을 운행하고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차량 운행시간이 규칙적으로 정해진것은 아니고, 창원회관의 경우 평상시엔 그렇게 윤서인이 기도를 하러 왔거나 외부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셔드리고 태워드리는 일을 전담하다시피 하게된 것이다. 여하튼 그래서 그날도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부산회관의 여성 신도들을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서인이 데려다 드려야하는 것이다.

 애매한 이른 새벽시간에 그렇게 나와있던 윤서인이었지만, 회관장의 주의와 당부가 있어 부산에서 오신 신도분들을 터미널까지 모셔다 드려야하는 시간에 늦지않게 자기방에서 사무실로 내려왔다. 방금 오전기선까지 마친 신도들이 내려와 집으로 가기위해 짐을 챙겨들고와선 자기네들끼리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 서인이 내려와서는 주차장에 세워둔 봉고차를 가져와 거기에 여신도들을 태운다. 봉고차는 12명 정도가 탈수있게 되어있는 차다.

 창원회관에서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시간여 정도. 하지만 서인이야 어느덧 이런 운전을 한지가 몇 년째니 적어도 거기까지 가는것만은 익숙하다. ‘운전도인’이란 별칭에 그런대로 무색하지 않게 빼어난 운전실력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한편 부산회관에서 온 여신도들중 3-4명 정도는 원래 오래전부터 대진교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이들이고 나머지 세명은 그들의 평상시 친분이 있던 친구나 지인이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런곳까지 와서 기선을 하게된 것이다. 터미널에 어느덧 다와갈때쯤 이들 여신도들중 리더격이 되는 한 사람이 다른이들과 수군수군 뭔가 귀엣말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뭔가 손가락을 펴서 무슨 암호같은것을 주고받는 시늉을 하기도 하고, 이번 7일기선 참석이 처음이었던 여성들은 대관절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잠깐 어리둥절해하거나 당혹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덧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봉고차. 신자들이 차에서 내릴때쯤 이들의 우두머리격인 여신도가 서인에게 다가온다.

 “ 서인아... ”

 “ 옛 ? ”

 웬지 부드러우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담아 부르는 40대 중년여인의 목소리에 서인은 순간 당혹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뭔가 살짝 기대감이 이는 표정이 되기도 하고. 여인이 그런 서인에게 말한다.

 “ 많이 힘들제 ? ”

 “ 아...아뇨 뭐... ”

 그런건 보통 서인을 잘 아는 신도들이 위로차 그렇게 건네는 인사말이고, 서인이야 그럴때 예의상인지 딱히 할말이 없어서인지 그런식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여인은 격려라도 하듯 서인의 어깨를 한번 툭툭쳐주고 그리고 봉투 하나를 건네준다.

 “ 이거... ”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서인. 여인이 건네준 봉투는 어느덧 서인의 손에 쥐여져있다.

 “ 그냥 가끔 니 이발비나 목욕비 같은데나 써라. 그리고...가끔 맛있는것도 사먹고

  재밌는것도 구경하고 그래. 그러라고 우리가 주는기다. 우리 맘 알겄제 ? ”

 그렇게 하며 건넨 봉투에 담겨있는것은 다름아닌 돈이다. 서인의 사정을 회관에 다닌지 웬만큼 된 신자들은 알만큼 알기에 그렇게 차량운전을 도맡아하고 있는 그에게 가끔 수고비나 차비조로 건네주는것이다. 보통 이렇게 5-10명씩 무리를 지어 기선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이들이 있곤 한데 그럴때 보통 자기네들끼리 눈치껏 돈을 모아 주는것이다. 액수가 정해진것은 아니고 보통 1,2만원을 그럴때 내는 사람도 있고 처음온 신도라서 이런일이 당혹스러운 사람들중엔 대충 눈치를 보다 4,5천원 정도 내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외부손님이나 이런이들은 ‘수고비’나 ‘차비’조라고 하니 제법 통크게 한 5만원 가까이 내주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 사실 윤서인의 이 수입은 비교적 쏠쏠한 편이다. 한사람이 평군 1-2만원씩 낸다 치면 다섯명이면 5-10만원, 열명이면 경우에 따라 20만원 가까운 돈이 건네지게 되는것 아닌가. 그리고 서인이 이런식으로 기도하러 온 신자들을 태워드리고 모셔오고 하는일이 한달에 열차례 가까이는 되니 그런식으로 모으다보면 한달 수입이 100만원을 넘는 경우도 가끔있다. ‘운전도인’으로 받는 수입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서인은 자신이 이런식으로 이곳 창원회관에서 ‘운전하는 기사’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지는 것을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특별한 하는일이 없이 계속 이곳 창원회관에 머물다시피 했던 그. 그랬던 서인을 언제까지 놀게 놔둘수는 없어서 회관장이 배려로 ‘운전이라도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운전면허를 딴 뒤 그때부터 시작한 운전일이다. 하지만 서인도 어쨌든 아직 젊은 나이고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픈 마음이 왜 없을까. 어린시절부터 이런 종교단체에서 자라왔다니 결코 평범했다고는 할수 없는 그의 성장기. 그렇기에 더더욱 나이가 들수록 차라리 세상으로 나가고픈 열망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서인이 딱히 좋은 학교를 나온것도 아니고 기술을 배운것도 없는지라 무작정 사회로 나간다는것도 쉽지 않아서, 또 어찌보면 그의 성장과정이 과정이니 만치 세상에 대한 어떤 두려움때문이라도 그것을 선뜻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계속 회관에 머물러있다가 시작하게된 신도들을 실어나르는 운반일. 그러다보니 대진교 신앙생활을 꽤 오래전부터 해와서 서인을 그런대로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처음온 신도 또는 외부 손님들은 서인을 그저 여기서 신도들을 전문으로 실어나르고 모셔오는 그런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생긴 명칭이 ‘운전도인’ 또는 ‘운전하는 도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서인은 솔직히 자신이 그런식으로 불려지는것이 싫었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대진교의 지도부급 법사중 한명이 자신의 대학시절 후배 한 사람을 창원회관에서 백일기선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일이 있었다. 대진교의 법사들은 글자그대로 대진교의 지도부급을 맡고있는 인물들로 설법회(불교의 법문,기독교의 설교와 비슷)를 열거나 또는 대진교의 핵심 간부를 맡으며 종단을 이끌어가는 일들을 하고 있다. 대진교 법사의 수는 그렇게 일정한것은 아니라 어떨땐 열명이 채 안 되었을때고 있고, 많았을때는 스무명을 넘은적도 있다. 대진교가 아무리 군소규모 종교단체라도 전국에 회관이 열곳임을 감안한다면 법사가 스무명씩이나 된다고 해도 적절한 숫자라고 할수 있다면 몰라도 ‘너무 많다’고 까지 할 수는 없는 숫자다. 대진교의 각 회관 회관장을 맡거나 또는 총무원의 부장급 간부들을 맡는 법사까지 합하면 여하튼 한 십여명 정도가 적정인원이 아닌가. 법사들은 출가 성직자인 경우도 있지만 일반사회에서 개인사업이나 기타 자유업등에 종사하며 법사일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 서울회관에 상주하는 법사(남성) 한명에게 대학시절부터 선후배 사이로 친하다고까진 할 수 없어도 간간이 교류를 해오는 사람이 있었다. 호형호제 정도는 하는 사이로, 그 후배는 이름대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부장급 간부까지 역임했으나 최근 부당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그러다 하루는 자신에겐 대학 선배격이기도 한 그 법사를 찾아온것이다. (선배가 대진교 법사라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상태) 그러자 후배의 고민을 다 듣고난 법사는 ‘실은 내가 이런 종교단체에서 이런일을 하고 있는데, 한번 거기서 백일기선이라도 하며 마음을 다스려 보는것은 어떻겠느냐 ?’는 권유를 하였다. 30년 가까이 근속하던 직장에서 실직하여 아들 둘을 키우는 가장으로 앞으로 어찌 살아야할지 막막하기까지 하던 그 후배는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선배의 제안에 응했다. 비록 생소한 종교단체이긴 했지만, 여하튼 그런 산골 기도터에서 기도라도 하며 한 석달 마음을 다스리다보면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릴수도 있겠지. 나름 그렇게 마음도 추스를겸 겸사겸사 그렇게 선배의 제안에 응하게 된 것이다.

 선배의 제안대로 창원회관에 와서 백일기선을 하게된 그 후배. 그리고 석달열흘간의 기도기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날이 되었다. 그날도 역시 서인이 그 법사님 후배인 남자분을 고속버스 터미널로까지 모셔다드리기로 되어 있었다.

 “ 그...운전하시는 도인님은 몇시에 나오시나요 ? ”

 회관에서 석달열흘 생활하면서 그 남자도 서인이 이곳에서 주로 신도들을 차로 태워나르는 일을 하는것을 보았을터이고 간간이 사람들이 그를 ‘운전하는 도인’, ‘운전도인’ 그렇게 부르는것도 귀동냥으로 들었다. 그래서 자신도 대충 눈치껏 그렇게 부른것이다. 다만 남자는 서인이 이곳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는 사람인것은 모르고 아마 직장 출퇴근을 하듯 나오는 사람쯤으로 생각했나보다. 여하튼 백일기도도 다 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하니 짐을 다 챙겨갖고 나와서는 자신이 몇시에 차를 탈수 있는지 여부를 그렇게 물은것이다.

 서인이 그때쯤 자기방에서 나와 봉고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갔고 차를 끌고 사무실앞으로 왔다. 남자가 차에 탔다.

 “ 그...운전하시는 도인님 ? ”

 “ 예 ? ”

 그 호칭이 그러잖아도 늘 귀에 거슬렸는데, 서인이 그날따라 컨디션이 좀 안 좋기라도 한것일까. 뭔가 좀 불쾌한듯 그의 눈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나 회관의 다른 관계자들도 서인의 뭔가 못마땅해하는 눈빛을 아직까지 눈치채진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서인의 임무야 이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사람을 터미널까지 모셔드리면 되는 일이니 말없이 봉고차 운전석에 탔다. 그리고 남자도 차에 타고 봉고차는 출발했다.

 한편 남자도 대학선배인 법사로부터 귀띰으로 들어 그건 알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는 그 법사가 며칠전에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말했다. 돌아갈 때 서인이 차비라도 몇푼 챙겨주라고. 사실 남자가 처음 여기 기도를 하러 올때도 물론 서인이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왔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말이 없었는데, 지금 돌아갈때가 되어서야 선배인 법사로부터 그런말을 들으니 좀 놀랍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선배에게 물었다.

 “ 아니, 차비라니...대체 얼마를 챙겨줘야 하는데요 형 ? ”

 “ 그야 자네 신심(信心 : 믿는 마음) 여부에 달린거지. ”

 남자는 얼떨떨하게 선배와의 통화를 마무리했고, 하지만 뭐 여하튼 이런데서 운전일을 하는 그런 사람에게 그런식으로 차비를 지불하는것인가 보구나 그렇게 생각하였다. 하긴 뭐 불교의 사찰 같은데는 국립공원 입장료까지 떼어먹는다는데, 그냥 운전을 전문으로 하는 청년에게 수고비조로 얼마 주는게 뭐 그리 나쁜 관행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그 봉고차가 아니었다면 택시를 타든 시외버스를 타든 그렇게라도 교통비는 들었을것 아닌가. 그걸 생각해보면 그 ‘운전하시는 도인’에게 차비를 지불하는것이 그렇게까지 나쁜일은 아니라는 판단도 들었다. 그래서 차가 어느덧 자신이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야할 터미널에 다다랐을때쯤 자신도 돈 몇만원을 꺼내며 서인을 불렀다.

 “ 저...운전하시는 도인님 ? ”

 “ 네 ? ”

 그날따라 뭔가 고까운일이라도 있었는지 서인은 아까부터 뭔가 불쾌해하는 모습이었다. 허나 서인의 목소리가 원래 거칠고 쉰편인데다가 인상도 대체로 어두운 편이라 웬만해선 그가 지금 몹시 기분이 상해있다는것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다. 남자도 자신이야 창원회관에 석달열흘 기도하러 온 사람이지 윤서인과 특별히 가까이 지내거나 친분을 나눌일은 없는 입장의 사람인지라 서인의 그와같은 기분상해있는 모습을 눈치채진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수고비로 돈 5만원을 꺼내서 서인에게 건네주었다. 헌데 갑자기 서인이 벌컥 화를 냈다.

 “ 아저씨 !!! ”

 “ 예 ? ”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서인을 보자 남자는 움찔했다. 자신이 뭘 잘못한게 있나 싶어 당혹스럽기도 하고, 헌데 서인이 그런 남자를 보며 항변을 하듯 말했다.

 “ 저 여기 기사 아니에요. ”

 “ 예 ? ”

 “ 저 여기 운전기사 아니라구요 !!! 그러니까 그런식으로 말하지 말란말이에요 !!!

  에이씨~~~ 정말... ”

 자신이 이런식으로 창원회관에서 신도들 실어나르는 ‘운전하는 사람’으로 이미지가 굳어져가는것을 몹시도 마음에 들어하고 있지 않은 서인. 서울에서 무슨 대기업을 오래 다니다가 실직해서 잠시 내려왔다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에 대한 인식이 그와같이 박힌다는것에 더 화가난것일까. 남자 입장에선 그야말로 영문모를 일이겠지만, 서인은 여하튼 뭔가 살기어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기까지 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돈은 받아야겠는지 아까 남자가 주려던 오만원은 얼른 나꿔챈다. 남자는 아무래도 이러다 이 윤서인이란 친구에게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는것은 아닌가 싶은지 덜컥 겁이나서 서인에게 돈을 건네준뒤 그대로 도망치듯 터미널로 달려갔다.



-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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